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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재미로 읽는 책] 미시마 유키오, "부도덕 교육 강좌"(이청아 기자)

중2병 관심종자인줄만 알았는데

 - 미시마 유키오 작, 『부도덕 교육 강좌』

 

부도덕 교육 강좌, 미시마 유키오 작, 소담, 2010년


 

오늘 소개할 책은 미시마 유키오의 『부도덕 교육 강좌』입니다. 제목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책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 책은 일본 근현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집으로, 내용은 말 그대로 독자에게 부도덕해질것을 요구하는 책입니다. 이 부도덕 교육강좌는 제목부터도 당황스럽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목차를 훑어본다면 더 당황하게 됩니다. 모르는 남자와도 술집에 갈 수 있다, 자만심을 가져라, 친구를 이용하라, 약속을 지키지 마라, 은혜는 잊어라... 심지어는 예쁜 여동생을 이용해라, 여자에게 폭력을 휘둘러라 등, 이 에세이집이 일본에서 연재되고 출간된 것이 1958년~59년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충격적인 표제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시마 유키오라는 작가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최근 신경숙 작가의 소설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실시간 검색어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이미지는 다름 아닌 극우의 표본이었습니다. 1970년 전쟁을 할 수 없다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부정하고 자위대가 아닌 군대의 창설, 천황제의 부활을 주장하며 할복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자위대 주둔지에 난입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서 할복했다는 것은 당시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할복 전에도 미시마 유키오는 작품활동 뿐 아니라 우익적인 정치활동, 그리고 영화배우, 모델 등 연예활동도 적지 않게 했기 때문에 작가보다는 셀렙으로 인식하고 있던 일본인도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미시마의 평가는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고뭉치 관심병 셀렙으로, 반대로 그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에게는 현대 일본문학의 1인자, 탐미적인 문장의 대가, 차기 노벨문학상 수상 유력자로 존경받는 인물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었습니다. 

  좌우의 이념과는 관계없이 우리나라에도 포스트 미시마 유키오가, 또는 이념논란과 예능적 관심을 같이 한몸에 받는 아이돌이 되고싶어하는 논객이 적지 않은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람들이 미시마 유키오와 같은 행보를 가려다 가랑이 찢어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죠. 사실상 그처럼 능력있는 라이터 겸 셀렙의 위치를 점유한 사람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을 떠올려보면, 미시마 유키오가 그냥 극우, 관심종라는 단어로 묶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그의 우익이력이 부담스러워 작품읽기가 망설여지는 분들께 권할 수 있는 책이 바로 『부도덕 교육강좌』입니다.
  도덕을 성악설적인 면에서 본다면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고 사회에 섞여 살아가도록 하는 사회규범입니다. 도덕적인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지나치게 - 라는 부사를 붙여도 될지 모르겠으나 - 도덕적인 사람에게 ‘유도리’(일본어의 ゆとり[유토리]에서 온 말이지만 실제 쓰임은 실제 일본어와는 다르게 융통성으로 쓰임)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는게 현실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60여편의 에세이에서 미시마 유키오가 던지는 부도덕적인 명제에 대해 남몰래 무릎을 치게 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앞에서 강의하듯 쉬운 말과 자신이 직접 겪은 예시를 통해 쓴 에세이는 책의 두께에 비해 쉽게 읽을 수 있어, 한 번 읽어보고 나서는 단순히 사회규범과 남들이 씌워놓은 도덕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내 마음대로 살테다, 라고 선언하는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책을 읽고 덮었을때 그런 느낌만으로 이 책을 설명하기에는 껄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400여페이지에 걸쳐 부도덕해질 것을 권하고 있으나,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이번에는 다른 느낌에 무릎을 치게 될 것입니다. 과연 이 책은 여러분들에게 부도덕해질 것을 권유하고 있는 책일까요? 미시마 유키오가 이 에세이를 연재했던 50년대 후반의 일본은 세계대전 패망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엄청난 산업화 발전을 이룩해냈습니다. 물론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싶긴 하네요. 어쨌거나 이 시기 일본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기존의 도덕이 더이상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아노미현상을 겪게 됩니다. 더이상 과거의 도덕이 통하지 않고 그런 덕목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이 쿨하게 여겨지는 시대. 제가 서두에서 말했던, 이 책의 표제들 - 은혜를 잊어라, 약속은 지키지 마라 등등 - 은 사실 미시마 유키오가 독자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닌 당시 일본사회에서 보이던 ‘부도덕’한 면면이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유려한 필력으로 부도덕을 권장하는 척 하지만 결론은 그런 부도덕을 꼬집고 도덕을 권장합니다. 과거의 도덕관념에 사로잡힌 고루한 자들과 도덕을 벗어던지고 남들을 상처입히는 부도덕한 자들에게 일타이피의 시원한 독설을 퍼붓고 인간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사실 에세이를 읽으면서 찔리는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님을 고백해야할 정도입니다. 유쾌한 이 에세이는 우리에게 허울뿐인 도덕의 허망함을 고발함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더불어 진짜 현실에 맞는 ‘도덕’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이 얼마나 도덕적인 강좌인지!

 

* 이 책을 읽고 미시마 유키오의 행적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에게 관심이 생기는 분에게는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인 『금각사』를 권해드립니다. 정치적인 그의 행보와는 달리 그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극예술지향적 작품입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알아왔던 미시마 유키오의 단면적인 면이 아닌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독서활동이 될 것입니다. 시간이 더 되신다면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