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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돌연변이 보면 질병 보인다…돌연변이 잡는 과학자



심태보 화학키노믹스연구센터장, 백혈병 치료 혁신후보물질 개발

“신약개발과정 험난…‘생명 존중·차세대 먹을거리’ 위해 필요”



# 겨울, 그리고 첫 눈 하면 생각나는 영화 '러브스토리'는 서로 다른 집안 환경 때문에 반대에 부딪히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진짜 여주인공 제니가 백혈병에 걸리며 더 큰 비극이 시작되고, 죽음 앞에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별을 고하며 영화의 막이 내린다. 


러브스토리가 개봉한지 40여년이 지난 지금, 백혈병 치료는 얼마큼 진행됐을까. 백혈병과 관련된 다양한 치료법 개발로 완치율은 높아졌지만 안타깝게도 정복은 불가능한 상태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아직도 많은 환자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백혈병은 뼈 속 골수조직에서 만들어지는 세포(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중 백혈구에 발생하는 암이다. 백혈구가 과도하게 증식해 정상적인 세포의 생성을 억제시켜 면역저하를 일으켜 패혈증, 빈혈, 뼈의 통증, 의식저하, 호흡곤란 등을 일으킨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양한 증상들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백혈병의 종류는 흔히 4가지 형태로 분류되는데, 이 중 가장 흔한 형태로 나타나는 병이 '급성골수성백혈병'이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은 전체 백혈병의 43%를 점유하고 있으면서도 생존율이 가장 낮다. 고령에서 주로 발병하고 있어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한 신규 표적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KIST 화학키노믹스연구센터(센터장 심태보)를 찾았다.



화학키노믹스연구센터는 우리 몸의 생체 신호를 전달하는 키나아제(kinase/인 산화효소)가 돌연변이에 의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암과 같은 질환을 유발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키나아제의 과도활성화를 저해하는 신규표적치료제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다.


심태보 센터장은 "우리의 주된 연구목표는 암을 유발하는 키나아제를 선택적으로 저해하는 기전을 갖는 표적항암제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것"이라며 "신규 저분자 유기화합물을 이용한 키나아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며, 암화학생물학 기초연구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험난한 신약개발, 인내와 끈기로 반복하는 것


화학키노믹스연구센터의 연구실. 흰 가운을 입은 연구진이 세포 배양기에 있던 핑크빛 액체를 꺼내 스포이드로 옮기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액체 속에는 배양한 암 세포가 들어있다. 연구진은 "암 세포는 계속 자라는데 공간이 좁으니 옮겨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암세포들은 잘 키워 합성화합물 처리 후 세포가 죽는지 안 죽는지 실험한다"고 설명했다.


세포배양부터 표적물질 개발까지 신약을 탐색하고 개발하는 과정이 멀고 험난한 가운데 화학키노믹스연구센터가 최근 급성골수병백혈병 치료후보물질을 개발하고, 표적항암제 후보물질 2종을 기술 이전했다. 



최근 개발한 급성골수병백혈병 치료 후보물질은 기존 한계로 지적된 약물 내성의 결함을 원천적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연구를 주도한 심태보 센터장은 6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다.


심 센터장에 따르면 급성골수성백혈병은 해외에서도 후보물질만 있을 뿐 완전한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백혈병을 유발하는 여러 인자가 있는데 그 중하나가 FLT3다. FLT3가 돌연변이가 되면서 급성 골수백혈병이 유발되기 때문에 FLT3 돌연변이를 저해하면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FLT3 돌연변이는 크게 'FLT3-ITD'와 'FLT3 키나제 도메인'으로 구분 가능한데, 이 두 종의 돌연변이를 동시에 저해하는 차세대 표적물질치료제 후보물질(KIST136)을 심 센터장 연구팀이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마우스 실험에서 개발한 치료제가 두 돌연변이를 동시에 저해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후보물질은 기존의 해외 다국적 제약회사가 개발한 후보물질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기존의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 후보 물질은 임상시험에서 좋은 효능을 나타냈으나, FLT3 키나제 도메인 점돌연변이종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해 약물내성으로 33%의 높은 재발률이 나타났다.


심 센터장은 "두 종의 돌연변이를 강력하게 저해하는 신규화합물 개발을 목표로 설정해놓고 연구했다. 화합물 설계 합성하는 과정에 애로가 있었지만 설계-합성-평가의 과정을 원하는 목표치에 도달할 때 까지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급성골수성백혈병의 표적치료제가 출시된 사례가 없는 만큼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치료제인 글리벡의 경우처럼 급성골수성백혈병 표적치료제가 개발·출시된다면 환자의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경제적·산업적 가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개발한 후보물질이 중간 탈락할 가능성을 대비해 제2의 후속후보물질도 함께 개발 중이다. 그는 "신약탐색개발의 여정은 멀고 험난하지만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가 전무한 상황인 만큼 부단히 정진해 맞춤 표적항암제 도출을 통한 암 극복에 일조하겠다"고 강조했다.


의약연구 가치 ‘생명 존중’ “신약강국 일조할 것”


심태보 센터장은 국내외 제약회사에 몸담으며 키나아제 관련 의약화학팀을 이끈 경험이 있다.


그는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 샌디에고 연구소에서 키나아제 약물 발견을 위한 책임자로 전체 과정을 직접 체득했으며, 이 때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치료제인 글리벡의 내성극복을 위해서 T315I-Bcr-Abl 돌연변이종을 저해할 수 있는 후보물질을 최초로 도출한 바 있다. 이 성과는 심 센터장 30년 과학기술인 인생에 가장 기쁘고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다.



그는 “신약탐색하는 과정들에서 중요한 것은 진행과 포기, 결정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하는 것”이라며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신약탐색 전 과정을 직접 이끌고 경험한 것이 상당히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기술인으로서 국내 산업체 및 대학과 효율적인 협업을 통해 글로벌 혁신신약 창출·출시에 기여 하는 것이 큰 바람을 갖고 있다.


심 센터장은 “신약탐색·개발을 포함한 의약분야 연구의 가장 큰 가치는 질환 극복과 건강한 삶 영위를 통한‘생명 존중’이라고 생각한다”며 “의약분야 연구는 건강한 삶을 오래 영위하고 싶은 사람의 기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약탐색·개발의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에 차세대 먹거리가 될 수 있다. 향후에 우리나라에서 세계 거대제약사가 탄생하면 국가 성장 동력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신약탐색 연구의 우수한 후학들을 양성하는 것과 우리나라가 신약강국이 되는데 일조하는데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