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iracle KIST

20년간 산 속에서 연구···"천연물은 보물창고"



천연물 찾는 심마니 과학자 권학철 천연성분응용연구센터장

"자연, 과학적 영감 주는 곳...천연물 연구 통해 바이오·메디컬 산업 이끌 것"


봄, 여름, 가을 야생식물을 찾아 산을 찾는 과학자가 있다. 권학철 KIST 천연성분응용연구센터장이다.

 

연구하고 싶은 야생식물을 위해 울릉도행도 마다치 않는 그는 지난 초여름 동부지방산림청의 도움을 받아 대관령 산 속에 30종의 식물을 심었다. 계절마다 야생식물이 뽐내는 모습이 다르기도 하지만 그 효능과 성분 또한 차이가 커 직접 야생식물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 산을 찾는다. 천연물을 통한 식·의약 후보물질창출 연구를 하는 그에게 산은 보물창고다.

  

"야생식물은 시기별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언제 채취하느냐에 따라 효능이 달라 자주 산을 찾습니다. 계절별 야생식물 조사를 위해 4~5년간은 같은 산만 다녀요. 산은 저에게 있어 가장 좋은 연구 장소이자 보물창고입니다."

 

약대 출신인 그가 천연물 연구를 시작한 것은 대학교 4학년, 생약학을 전공하던 조교 선배를 따라다니면서다.

 

그는 "산속을 헤매며 야생식물을 씹어보고 직접 개어 몸에 발라보는 선배의 모습은 흡사 심마니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 세상 생약학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모두 산을 떠돌며 식물 잎을 씹어 먹는 줄 알았던 때.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선배 따라 산 타던 그가 주변의 신기한 눈빛을 느낀 것은 꽤 나중의 일이었다.

 

그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산행연구였지만 꽤나 마음에 들었던 그는 "야생식물을 보는 순간 라틴학명과 유효성분을 말할 정도로 식물에 대한 학식이 깊었던 선배를 보며 '저 사람처럼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천연물 공부를 시작했고 두꺼운 식물도감을 들고 깊은 산속 야생식물을 만나러 다녔다. 그러면서 '모든 시작은 자연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고 말했다.

 

산을 연구 터로 삼은 지 20여년. 이제는 그가 제자들에게 자연에서 연구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사비로 내건 야생식물 현상금을 쫒아 산행을 시작했던 후배들도 이제는 현상금보다 자연을 큰 스승 삼아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최근 KIST 강릉분원에서 가까운 오대산과 대관령 인근 산지에 자주 오르며 야생식물로부터 식·의약 후보물질을 연구한다는 권학철 센터장은 "천연물은 인간에게 선물과 같다"며 "천연물은 그 성분 자체뿐 아니라 변화하는 의료기술의 파트너십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 천연물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물조사 중인 연구원들. 권 센터장은 즐겁게 식물조사를 하기 위해 찾고자 하는 식물에 현상금을 걸어 아름답게 사진을 찍은 연구원에게 포상하기도 한다. 덕분에 연구원들의 식물조사는 늘 인기다.


권학철 센터장은 후배연구원들과 함께 산을 자주 찾는다. 연구원들에게 산은 보물창고다.


심봤다~! 식물 조사 중인 권학철 센터장.


 "스토리 있는 특허가 좋다...특허출원, 정말 필요할 때 하는 것"

 

권 센터장은 최근 한국생약학회 정기총회에서 시상하는 젊은생약학자상을 수상했다. 지난 10여 년간 KIST에서 천연물 화학 분야 연구를 수행하며 미생물과 약용식물 등에서 유래한 천연물로부터 건강 기능성 물질과 신규 화합물 발굴 연구로 천연물 화학과 생약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 그는 천연물의 유용성분 연구와 이를 활용한 식의약 후보물질 개발을 통해 40여 건의 특허 출원과 등록 및 기업기술이전 등을 했다.

 

특허와 상용화에 대해 묻자 권학철 센터장은 "동료들과 함께한 연구한 결과"라며 "화학자로서 성분을 밝히는 역할을 했을 뿐 내가 주발명자인 것은 없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야기 있는 특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 있는 특허란 꼭 보호가 필요한 특허를 말한다. 무의미한 깡통특허는 지양한다. 그는 "특허보다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야기 있는 특허를 묻자 홍삼의 유효성분인 진세노사이드를 기존 가공법보다 40배 이상 월등히 증가시킨 인삼소재 가공기술을 소개했다. 그동안 홍삼은 여러 날 인삼을 찌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유효성분 함량을 증가시키는 전통적인 방법을 써왔지만 최근에는 스팀가열, 온풍건조, 발효공정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유효성분 함량을 좀 더 빠르게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권 박사가 옆방 연구팀에 놀러갔을 때 발견한 연구 장비 속 홍삼의 유효성분량은 놀라운 것이었다. 당시 권 박사는 중소기업 지원 목적으로 홍삼 유효성분을 늘리기 위한 연구를, 다른 연구자는 홍삼을 만들기 위해 빠르게 시간을 단축하는데 초점을 맞춰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홍삼분석을 매일 하고 있었는데 옆 연구자 장비를 보니 엄청난 유효성분을 기록하고 있었다"며 "장시간의 가공 단계를 거쳐 얻을 수 있는 유효성분을 10분 만에 얻어낸 것이라더라. 이건 당장 기업에도 필요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어 동료들과 함께 산업화 기술 개발에 참여하였고 국내 중소기업에 기술이전했다"고 말했다.


강릉분원 

또 다른 이야기 있는 특허는 쑥 추출물에서 얻은 아토피 치료제다. 권 센터장은 가장 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약물로도 피부질환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지인의 고생을 인식하고 10여 년 전 출장에서 들은 어떤 쑥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전통의학 연구자에게 중국에서 그 쑥을 피부질환자를 위해 욕조에 풀어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인을 위해 최후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써보라며 그 쑥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줬는데 다 나았다며 기뻐하더라"라며 "생각보다 좋은 효능에 유관기관 연구자와 아토피개선용 천연물질을 개발했다. 최근 이 기술을 상용화하고 싶다는 기업이 나타나 특허를 출원한 상태"라고 말했다.

 

진짜로 필요할 때 주발명자로 특허를 출원하는 그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구축한 것이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의 천연물 라이브러리이다. 강릉분원 연구진은 2014년 1월부터 천연물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 우리나라에는 3~4곳에 대규모 천연물 라이브러리가 있지만 KIST 천연물라이브러리의 차이점은 로봇암 기반 생리활성 탐색시스템을 통한 관리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이 강점이다.

 

생리활성 탐색시스템은 기업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한 끝에 구축한 체계다. 그는 "기업은 개발하고 있는 혹은 개발하고자 하는 천연물질이 어느 정도의 효능을 갖는지를 가장 궁금해 할 것 같았다"며 "우리의 라이브러리는 초고속 생리활성 탐색 시스템(HTS)과 연계 활용해 천연물 개발 후보의 효능이 얼마나 좋은지 순위를 알 수 있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천연물 중 연구가능성이 있는 상위 1%효능 등을 알려주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강릉분원은 자체구축한 천연물라이브러리를 무료분양하고 기업에는 시험분석 지원을 하는 등 공동활용 중이다.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는 천연물을 대상으로 기초원천기술을 개발하고 보유기술을 중소기업에 지원하여 상용화를 적극 추진하는 등 국책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KIST 천연물연구소


'건강기능보조식품' 천연물의 한계 '새로운 연구로' 뛰어 넘는다

 

"천연물은 자연주의, 혹은 건강기능 보조식품 등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천연물 신물질은 바이오·메디컬 산업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분야입니다. 천연물 연구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단점을 극복하는 노력할 것입니다."

 

권학철 센터장은 내년 '천연물 신물질 개발사업'에 중점을 두고 움직일 계획이다. 유효성분과 효능 검증이나 작용 메커니즘 규명이 어려워 건강기능보조식품에 그쳤던 천연물 한계를 뛰어넘자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다.

 

그에 따르면 이미 선진국들은 천연물을 새로운 의료기술과 질병 대응 연구를 위한 신물질 탐색 R&D대상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천연물을 잘만 활용하면 금보다도 더 값비싼 약물을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식물의 엽록소 성분에서 유래한 물질은 특정 파장 빛에 반응해 그 구조가 변화하는 성질로 암세포를 제거하는데 탁월하다. 이 외에 미세조류에서 발견한 신물질은 특정 파장에 반응해 신경세포를 제어해 질병을 치료하는 광유전학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천연물 신물질 개발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연구대가들을 모셔 천연물 연구에 대한 인식 전환과 단점 극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