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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STORY/KIST 소식(행사·연구성과)

[창의포럼] 자연... 아이들... 그리고 나의 어머니... (김용택 시인)

[창의포럼] 자연... 아이들... 그리고 나의 어머니...

섬진강 시인 김용택

 

2016년 11월 창의포럼에서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언어적 절제를 지키면서 아름다운 시로써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시인 김용택 작가를 초청하였다. 1948년 전북 임실에서 출생하여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에서 30여년간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다 2008년 퇴임하였으며,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일상의 체험을 시적 대상으로 하면서도 그 소탈함과 절실함을 긴장감 있게 엮어내는 시적 상상력은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다. 1985년에 발표된 첫시집 『섬진강』 이후, 『그리운 꽃 편지』, 『강 같은 세월』, 『수양버들』 등 수많은 시집과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어린이 동화집,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펴내었다. 1986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97년 소월시문학상, 2012년 윤동주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

자그마한 체구에 짧은 머리, 검은색 캐주얼 의상과 밤색 목도리가 잘 어울리는 그는 고희를 눈앞에 둔 노인이라고 볼수 없는 힘찬 목소리로 강단이 아닌 우리옆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KIST 본관 건물이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매우 현대적인 건물이라 물어봤더니 50년전 건물이며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 선생님의 작품이라고 해서 수긍이 되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지는 것이 건축과 예술이다. 50년전에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지었다는 것은 굉장히 선구적인 일이다. 이런 건물을 볼 수 있어 굉장히 기쁘다. 같은 말이라 해도 해석에 따라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달라졌다는 것은 시대적 종말을 이야기 한다. 사회, 정치 등 전반적인 변화가 확실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배 권력층이 민중들에 의해 떠밀려 변화되는 것을 혁명이라 하는데 오늘날 정치현실은 군사용어로 ‘자폭’ 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 내가 사는 곳, 임실.... 마을.... >

전북 임실에 살고 있는데 임실이 무엇으로 유명한지 아시는가? (이구동성으로 임실치즈를 이야기함),    임실은 ‘시인 김용택’ 으로 유명한 걸 모르시는거 같다. 인문이란 바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임실읍에서도 멀리 떨어진 조그만 마을에 사는데 4~500년전 임진왜란 때 피난으로 생긴 마을이다. 35가구가 모여 살았으나 현재는 12가구가 살고 있다. 옛 사람들이 마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마을 뒷산이다. 의자의 등받이가 있듯이 안정감을 중요시 생각한 것이다. 서울이라는 마을의 뒤를 받쳐주는 산은 청와대 뒷산이다. 서울의 남산은 넓은 공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주는데 필요한 ‘안산’ 으로 볼 수 있다.    풍수지리에서 마을 왼쪽은 용(좌청용)이, 오른쪽은 호랑이(우백호)가 지켜준다고 생각을 했다. 묘자리 잡을 때나 집을 지을 때도   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 마을의 뒷산에는 500년된 큰 나무가 있는데 이는 다름아닌 마을을 지켜주는 상징물이다. 마을 앞에도 300년된 나무가 있고, 마을 좌우 경계에도 큰 나무가 있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도 이렇게 네 개의 나무가 마을의 경계를 만들고 공동체로 살아가게 된다. 인문학의 기본은 마을에서 부터 시작한다. 공동체 형성의 기본은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놀 때 같이 노는 것이다.

 

< 나의 집, 이정표.... >

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김용택 시인의 집’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국토부에서 만들어준 것으로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팻말이다. 이순신 장군 등의 생가 등에 붙여 주던 것을 나에게도 붙여준 것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두채의 집중 한집은 내가 사는집이다.     한 채는 예전에 살던 집이고 그위에 있는 12평 집은 농림식품부에서 지어준 것이다. 왜 지어 주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땅은 내가 기부채납을 했고 그땅에 죽을때까지 살 집을 지어준 것이다. 돌담을 규칙 없이 자유자재로 쌓아 지었다.    1년 반동안 지었는데 집지을 동안은 여자들은 얼씬도 안했다. 이는 예부터 내려온 금기였다.   새 집을 지은 후 구경 온 할머니가 옛집에 들려 서재를 본후 새집에 들어서며 ‘염병하고 있네, 여기도 책이 있네’ 라는 인문학적 탄성이 내 지르셨다.

 

< 500년된 징검다리.... >

우리 마을 냇가에는 500년된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500년 동안 위치 하나, 디딤돌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옛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과학적으로 생각했는지 돌다리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과학은 KIST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옛날 시골마을에도 있었다. 돌다리를 반듯하게 놓지 않고 물의 속도를 분산시키기 위해 삐툴삐툴하게 놓았다.   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축조물인가! 그런데 어느날 퇴근후에 보니 징검다리를 포크레인이 다 뒤집어 놓았다.  그때부터 나는 ‘이건 나라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마을 주민과 상의도 없이 면장이 군수와 상의해 다 뒤집어 놓은 것이다. 40년전의 일이다.    징검다리는 마을 모든 사람들이 건너며 자연스럽게 자연과 생태계를 이해하게 된다. 3~4살 어린아이가 강변 징검다리 앞에서 놀다가 강건너에서 밭일하는 엄마를 부르지만 건널수 없어 울면 호미매던 엄마가 건너와 울지말라고 아이를 패 놓고 다시 건너간다. 첫 징검다리 돌에 올라가 건너려다 넘어져 울다 이 돌을 이해하게 되고 둘째, 셋째, 넷째 돌도 이런식으로  넘어지고  이해하며 하나씩  건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6살이 되어야 비로소 장검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집 앞의 강.... >

강은 예술적 가치와 생태를 이해하는 생태학교의 다름 아니다. 우리 집앞 30m 정도에 예쁜 강이 있다. 그러나 강물은 오염되어 죽어있다. 난 30년 전부터 이곳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강물이 죽었어도 도시 사람들은 여기와서 놀고 잡은 물고기도 맛있다고 먹는다. 도시사람들은 이 강이 죽은 강인 줄 모른다. ‘죽이면 반드시 죽는 것’이 인과응보이다.  자연, 문학, 예술, 정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 내가 심은 느티나무.... >

집 가까이에는 내가 심은 느티나무가 있다.   27살 때 마을 뒷산 500년 느티나무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새끼 느티나무를 캐어다 집 마당에다 심었다. 그런데 집에서 키우기는 너무 커버려서 마을 공터에다 옮겨 심은 것이다. 키우던 동물이 죽으면 거름되라고 나무 밑에 묻어주곤 했는데 동네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계속 돌보아 주면 큰 탈없이 잘 자란다. 집의 꽃나무도 잘 돌보아야 이쁜 꽃을 피우듯 잘 돌봐주어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교과서 외에는 읽을 책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선생이 되었는데, 22살 때 소설책을 처음 접했다. 읽은 책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생각이 많이 나서 자연스럽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인데,     어느날 내가 시를 쓰고 있더라~.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내가 심은 느티나무에서 일어나는 일을 썼더니 2권의 책이 나왔다.    같은 나무인데 위치에 따라, 계절에 따라, 낮과 밤에 따라 언제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느티나무가 나의 문학적 스승이 된 것이다.

 

이 나무 옆에 국수집이 있고 큰집과 마을 이장네 마늘밭, 정길이네 고추밭 등이 있다. 공동체란 서로의 관계를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꼭 이 나무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이장하던 분이 국수집을 내어 돈을 잘 벌고 있다. 곰이 재주를 부리고 돈은 사람이 챙긴 격이다. 내가 심은 나무에서 다른 사람이 벌이를 하니 기분은 좋다.

 

< 나무에는 정면이 없다.... >

난 나무를 좋아하는데 나무에는 정면이 없다. 과학도 그렇다. 우리 사회를 보면 우리들의 정면은 늘 하나다. 남과 북이 나눠져 있어 우리는 남쪽 생각만 한다. 우리들 의식속에는 남쪽만 있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경상도와 전라도, 좌파와 우파.... 늘 정답이 하나밖에 없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얼마나 답답한 현실인가! 중학교 2학년처럼 개념이 없어 논리가 없고, 논리가 없으니 해석을 할 수가 없어 이것이 공포가 된다. 우스개 소리로 중학교 2학년 때문에 김정은이 핵을 가지고도 우리를 못 쳐들어온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우리는 해석이 안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무는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요, 경계가 없다.    이과 문과가 없다. 아무데라도 넘나든다. 우리 사회는 경계가 많아서 넘어가면 안되는 것이 너무 많다. 정답이 하나인 나라, 아이들에게도 정답을 알려주고 외워서 답을 쓰게 하는 나라다. 방학 숙제는 학생도 부모도 하지 않는다. 숙제를 대행해주는 회사가 해준다.  딸래미가 다니던 대학원을 그만두었다. 왜냐면 선생님 생각을 넘어가면 안되는 것에 좌절했다. 사극을 보면 부모님 원수 갚기위해 입산하여 스승을 만나 수련을 하고, 스승을 이기게 되면 ‘이제 하산하거라’ 하면 산을 내려온다.  중간에 스승을 못이기고 하산을 하면 사회에 나가 나쁜 짓을 한다. 우리나라는 너무 경계가 많고 정면이 고정된 사회가 되어 버렸다. 권력자가 이것을 이용하다가 자폭하는 것을 여러번 보고 있지 아니한가?

 

< 김용택, 선생이 되다.... >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생이 되었다.    교사 수천명이 부족해 고등학교 졸업자가 선생이 될 수 있는 딱 한번 있던 기회를 잡았다. 인구수를 따져보면 학생수와 필요한 교사의 수가 나올텐데 교육부에서 계산을 못했다.   이해가 안된다.     지금도 여전히 교육부는 헤맨다. 친구의 권유로 선생되는 시험을 친구들과 같이 봤는데 나만 합격했다. 4개월 만에 선생이 되어 내가 졸업한 덕치초등교에 부임했다. 5년을 한 학교에 있으면 전근을 가야 한다. 5년후 이웃학교로 갔다가 1년후 다시 돌아온다. 6번을 그렇게 했다. 60세까지만 교사를 하려고 했다. 60살 이후까지 나라로부터 잔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7년을 덕치초등학교에만 있었다. 2008년에 8. 31부로 퇴직을 하고 환경청 초청을 받아 유럽을 가게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작성하는 탑승서류에 직업을 쓰는 란이 있었는데 시인이라 적었다가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고 무직으로 고쳐졌다. 하루만에 직업이 사라진 것이다. 너무 충격이었다. 이런 날이 여러분도 머지 않은 시기에 올 것이다.

 

< 과연... 공부란 무엇인가 ? >

어머니는 평생 책을 보지 않으신 분이다. 그래도 밥을 잘 하시고 보리밭도 잘 매시고, 떡도 맛나게 만드시고 농촌의 모든 것을 잘 해내셨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는데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내가 평생을 생각한 공부란 과연 무엇인가?   농촌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이 곧 공부다. 삶 자체가 공부인 것이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직장생활 자체가 공부다.   돈을 벌어 자식을 먹여 살리기도 하지만 다니면서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우리는 행복을 미루어 두고 목적이 달성되면 그때 찾으려 한다. 놀랍게도 미뤄두면 어디로 사라져 버린다. 시험을 잘 치러 좋은 대학에는 갔는데, 아침에 부모가 잠을 깨워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가 밥을 먹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가 이것을 먹어야 할지 저것을 먹어야 모르고 할일이 없게 된다.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을 부모가 빼앗은 것이다. 그래서 흔히 보는 식당에서 아이들이 그렇게 소란스러운 것이다.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돌아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다. 왜 먹여주고, 깨워줘야 하는가?    인간이 해가 뜨면 일어나야 되는 것이다.   공부는 잘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른다.

 

어머니는 삶 자체가 공부였다. 어머니는 자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다 알아듣는다. 애호박을 썰어 담위에 지푸라기로 두줄 레일을 만들어 널어놓으면 사진을 찍은 작가들이 자기의 작품이라 한다. 한나절 밭일 하고 와서 고추를 뒤집어 놓는다. 공기를 통하게 하여 잘 마르게 하기 위함이다. 이런것이 곧 과학이다. 바다를 보지 않아도 강물의 흐름을 보고 조금과 사리를 안다.    장독관리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황새가 날아들면 빨리 장독을 덮는다.   비올 것을 미리 알고 장독을 덮고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기가 막히게 맞는다. 힘들어 들어누을 때까지 계속 일을 한다.   평생 공부였다.   삶이 공부이고 사는 것이 자체가 예술이었다. 집    자체가 예술이라고 김수근 선생이 말했듯 삶 자체가 예술이다. 서울시청 같이 무지막지 하게 짓지 않고 건축물은 작품으로 지어야 한다.

 

<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

우리는 때때로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란 말을 한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곧 인문이다. 모든 지식을 모아 한줄로 쓰면 ‘사람이 그러면 못써’로 요약할 수 있다. 공부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모순을 조정하여 맞추어 나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새로운 세계로 가야한다. 결혼을 하는 순간 너무나 고치고 바꿀 것이 많다. 엄청 힘든 일이다. 결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엄청 고치고 맞추어 새롭게 살아야 하는 것이 결혼이다.

 

< 자연과 어머니는 내 시의 원천.... >

우리나라 산에서 생강나무는 봄에 제일 일찍 꽃이 핀다. 자귀나무는 제일 늦게 잎이 핀다. 두릅은 세 번은 다시 꺽어먹고 네번째는 가시가 올라와 먹지 못한다. 농사짓는 사람은 다시 살아날 것만 먹을 것으로 뜯었다. 바닥풀은 부딪혀 소리가 안 날 때 뜯어서 논에 뿌려야 그해 거름이 된다. 대단한 과학이다. 나무가지를 꺽어 해를 가리며 집에 오고 그 나무가지를 호박 옆에 꽂아 놓으면 호박이 그것을 거름삼아 자란다. 과학적이다. 시인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을 종합하면 곧 그것이 예술이 된다. 그래서 각 분야의 책을 열심히 읽는다.   넘나드는 것이 많고 경계가 없이 한다.    꾀꼬리 우는 소리에 참깨를 심고 보리타작 소리가 마당을 울려 잠자고 있는 토란을 깨운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절대 헛짓을 안한다.   정확한 곳에 괭이를 꽂는다. 이것을 받아쓰면 시가 된다. 꾀꼬리 울음소리가 지방마다 다르다. 우리마을 꾀꼬리는 ‘덕치 조서방 3년 묵은 술값 내놔!’ 라고 운다.

 

시인들이 ‘시를 쓰려면 뼈를 깍는 아픔과 피를 말리는 고통이 따른다’ 고 하는데 나는 어머니 말씀으로 쉽게 시를 쓴다. 이 사진을 보고 소쩍새를 맞춘 사람이 없었는데 역시 KIST는 다르다.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용솟음 친다. 소쩍새가 울면 우리나라 모든 산천이 눈을 뜬다. ‘봄이 왔구나’ 를 알려준다. 농사짓는 사람은 소쩍새 소리에 민감하다. 소쩍새가 소통.. 소통.. 하고 울면 흉년이 들고 솥꽉.. 솥꽉.. 하고 울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마당에 고추말리는 것을 자세히 보아라.    세계의 모든 글자가 그속에 다 들어있다. 나무를 자세히 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것이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면 아이의 생각과 집안 사정을 확연히 알게 된다. 아이들 그림도 마찬가지다.

 

< 정리...를 해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수 있다.... >

농사를 짓던 어머니는 삶을 정리해 가면서 살아 오셨다. 난 아이들에게 정직과 진실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이 배웠다. 교육은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는 것이다. 내가 받은 최고점수는 65점이다. 나는 모르면 답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65점은 내 평생의 자존심이다. 한번도 누구에게 밀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늘 새롭고 감동적이다.   감동은 느끼고 스며들어서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마음을 움직인다. 개념이 없다고 생각한 아이들이 정직과 진실을 배우며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한 인간으로 자라난다. 우리 사회는 정리를 못하고 앞으로 나가기만 하다보니 너무 많은 일들이 우리앞에 산적해 있다.   정리를 해야만 새로운 세계로 나설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관심과 공감을 가져야 한다. 산업사회에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다 겪어버렸다. 공장에서 물건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오지만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 공감은 오는데 감동까지는 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

 

< 마무리 말.... >

감동은 자연에서 온다. 나무는 어디서 보더라도 사시사철 완성이 되어있고 볼 때마다 다르다.   자연은 늘 완성되어 있어 자연속에 넣어 놓은 삶은 편안하다. 그래서 강물을, 나무를 좋아한다  . 나무가 제 몸위에 흰눈을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 창조의 세계를 보여준다. 나무는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세상도, 삶도, 과학도 마찬가지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태하고 나태해진다. 받아들일 때만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여러분도 좋은 환경의 KIST 캠퍼스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많은 것을 받아들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