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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비행기·선박 대형사고 원인 '전자파 간섭' 잡는다



구종민 박사팀, 기존 한계 뛰어넘는 '전자파 차폐 소재' 개발

기업에 기술이전 "빠른 시일 내 상용화 박차 가할 것"



1996년 7월 17일, 미국 뉴욕의 존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트랜스월드 항공 800이 롱아일랜드 인근 대서양에 추락해 탑승자 230명이 전원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원인으로는 ▲구조적 결함 ▲미사일 또는 폭발물 ▲날개 측 중앙 연료탱크 내부 연료와 공기 혼합물의 폭발 등의 가능성이 조사됐다. 그러나 이 배경에는 '전자파 간섭으로 인한 기계적 오작동'이 원인이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제기돼 논란이 되었다.

 

전자파 간섭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자부품들로 구성된 전자제품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다. 각 소자에서 불필요한 전자기 신호 또는 전기 잡음이 발생해 다른 기기나 시스템 동작에 장애를 일으키는 무서운 현상이다. 


점점 늘어나는 전자기기,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폰과 노트북, TV 등 다양한 전자기기들이 손 안에 들어오면서 많은 장치들 간의 전자파간섭현상에 대한 오작동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전자파 간섭으로 인한 사건 사고는 이미 수차례 일어나고 있다. 229명이 사망한 1998년 9월 스위스에어 항공사고와 217명이 사망한 1999년 10월 이집트 항공의 사고에서도 전자파간섭이 의심됐다. 항공 외에도 자동차, 군용무기 오작동 등 사건·사고 등이 존재한다.

 

전자파는 인간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자파를 발암의 원인 물질로 규정하고 전자파 노출 최소화를 권고하고 있다.

 

이미 너무 많은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현대인에게 피할 수 없는 장애 전자파 간섭. 이를 막기 위해 연구개발에 나선 과학자가 있다. 구종민 KIST 물질구조제어연구센터장이다.

 

그는 전자파 간섭현상을 차단하는 '전자파 차폐' 소재연구를 하고 있다. 구 센터장은 지난해 기존 전자파 차폐 문제점을 극복한 금속 없는 고분자 복합체 '전이금속 카바이트(MXene, 이하 맥신)'을 개발한 바 있다. 전기전도성이 우수하면서도 가볍고, 저가이며, 가공성 또한 우수한 전자파 차폐 소재를 개발할 소재로 주목받았다.

 

그는 "우리는 많은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전자기기들의 소형화와 고집적화, 박형화 등으로 한 기기 안에 많은 소자가 집적되면 전자파 간섭문제는 더 대두될 것"이라며 연구개발 중요성을 설명했다.


물질구조제어연구센터 연구실 모습.

 

무겁고 비싸고 부식 쉬웠던 기존 전자파 차폐재료, 신소재로 고민 한방 해결


 

"맥신이라는 나노소재를 전자파 차폐소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분자 복합체로 만들어서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맥신의 좋은 특성이 변질될 우려가 높았죠. 맥신과 궁합이 잘 맞는 폴리머 선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운이 좋게 좋은 폴리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연구의 가장 큰 난제를 운이 좋게 잘 극복했네요.(웃음)"


구 센터장이 들고 있는 병 안에 맥신 재료의 일부분이 들어있다.


전자파 차폐 자체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다만 기술적으로 보완이 필요했었다. 기존 전자파 차폐는 은, 구리와 같은 금속 소재들이 주로 사용됐지만 밀도가 높고, 제조비용이 비싸며, 무겁고 부식이 되기 쉬웠다. 또 가공이 어려운 단점을 가지고 있어 차세대 모바일 전자·통신 장치들에 사용에 한계가 있었다.

 

구 박사팀이 개발한 소재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기전도성이 우수하면서도 가볍고, 저가이며, 가공성 또한 우수한 전자파 차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구 박사팀은 2D 나노 재료인 맥신을 포함하는 분자 복합체를 이용하여 마치 흑연의 구조와 유사한 다층적층 구조의 전자파 차폐가 우수한 소재를 개발했다. 맥신은 티탄늄(Ti )과 같은 중금속 원자와 탄소 (C)원자의 이중 원소로 이루어진 나노물질로서 형상적으로는 1nm(나노) 두께와 수 μm(마이크로미터) 길이를 가지는 이차원적인 판상구조를 가지는 2D 나노 재료다.

 

기존 나노 재료들에 비해 제조 공정이 간편하고 저비용으로 생산 가능할 뿐만 아니라 표면에 다수의 친수기(물과 친화성이 강한 원자단)를 포함하고 있어, 용매에 분산이 용이하고 고분자 복합체 제조가 용이하다. 또 우수한 전기전도성을 가지고 있어 전기전도성이 요구되는 다양한 필름, 코팅 제품 응용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다.


전자파 차폐를 측정하는 기기.


구 센터장은 "맥신은 구조적으로 1nm 두께에 마이크로미터의 길이를 가지는 2차원 판상구조를 가지면 전기전도성이 매우 우수한 특성을 가진다"며 "전자파 차폐의 효율은 전기전도성에 크게 의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연구진은 개발한 소재를 매우 얇게 만들어도 우수한 전자파 차폐특성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얇게 제작 가능한 만큼 스핀코팅, 스프레이코팅, 롤 가공 등의 다양한 필름가공과 코팅성형이 가능해 향후 전자파차폐재 상용화 연구에도 매우 유리한 장점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개발에는 난제가 있기 마련. 그는 맥신을 전자파 차폐소재로 활용하기 위해 가공하는 과정에 고민이 많았다. 맥신이 가진 전기전도성을 유지하는 고분자복합체를 만들기 위한 고분자 선정에 애를 먹었다. 맥신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 폴리머를 선정할 경우 맥신이 가진 특성을 저하시킬수 있어 신중하게 고분자를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폴리머 선정을 위해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고 매우 힘든 작업이었는데 다행히 친환경적이면서 가공이 쉬운 고분자(Sodium Ailginate)를 이용해 최적 가공특성을 가진 복합체를 제조할 수 있었다"며 "쉽지않은 작업을 운이 좋게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Ti3C2Tx 및 Ti3C2Tx-SA 고분자 복합체 필름 제조 모식도


Ti3C2Tx 및 Ti3C2Tx-SA 고분자 복합체 형상 및 특성

 

해당 소재는 현재 기업 기술이전을 통해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상용화를 위한 또 한 번의 도전과 여러 난제가 존재하지만 그는 "연구자 입장에서 저희 연구결과물이 빠른 시일 내에 상용화되길 바라고 조만간 상용화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종류의 나노재료를 제조하고 이를 이용하는 전자파 차폐 응용기술인 만큼 기존에 없는 제조공정 및 장치 설치 등이 필요해 상용화 하고자 하는 기업의 역할이 매우 큰 만큼 협업해 상용화 후속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당 연구는 미국 Drexel University, Yury Gogotsi 교수팀과 공동으로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우수 과학 저널인 ‘Science’에 9월 9일자(한국 시간) 온라인 판에 게재되었다.


KIST 구종민 박사가 전자파 차폐가 우수한 필름형태의 고분자 복합체를 제작하고 있다.


 3월 센터장 보직…"국가와 인류위한 연구에 매진"

 

구종민 센터장은 지난 3월 물질구조제어연구센터장 보직을 맡게 됐다. 물질구조제어연구센터는 구조 및 기능한계 극복을 위한 다원 다차원 융복합 소재 개발을 주로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고분자, 세라믹, 금속 연구자들이 융합해 각 소재에 대해 차원제어, 크기제어, 기능그룹제어를 통한 차세대 소자를 개발하고 있다.

 

차세대 소자를 개발하는 만큼 기초 및 원천연구의 성격을 가진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당장의 성과보다 장기 연구가 중요한 곳이지만, 한 번의 성과가 큰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이 분야의 큰 특징이다.


대표적인 것이 구 박사팀의 맥신 소자 개발과 하헌필 박사팀의 세계 최초 선박엔진용 저온탈질촉매 개발, 매연 및 공기 정화용 환경촉매 기술이전, LED용 봉지재 기술이전, 고분자 패턴 소재 기술이전, 고분자 전해질 소재 기술이전 등이다.


센터는 앞으로 복합소재(초경량, 초고강도, 초고전기전도도, 초고열전도도)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다. KIST의 이병권 원장은 지난 3월 많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복합소재 관련 연구사업비중을 늘릴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우리 센터는 복합소재 연구를 하고있다. 고전기전도성 및 고열전도도를 가지는 나노소재 개발 및 이를 이용한 고분자 복합소재 연구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연구 역량을 향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면 이제부터는 우리의 연구역량을 향상시키는데 힘을 쏟고자 한다"며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가라, 하지만 멀리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라는 터키 속담처럼 저희 센터구성원들과 함께 국가와 인류가 필요로 하는 큰 연구를  수행하고 싶다. 집단연구, 국가적 과제와 세계적 인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매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