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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KIST Opinion

[디지털타임스] (포럼)감동 R&D의 출발점_윤석진 부원장 기고

(이 글은 윤석진 부원장님이 디지털타임스에 2월 26일 기고한 내용으로 링크는 맨 아래에 있습니다.)

 

윤석진 부원장

6000억 원과 600억 원. 이 두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는 분이 많으실 듯하다. 6000억 원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개폐회식에 사용한 예산이다.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의 엄청난 규모와 화려한 연출에 모두 깜짝 놀랐다. 10년 전 기억이지만 저도 정말 깊고도 다양한 중국 문화에 눈이 크게 호사를 누렸던 기억이 남아 있다. 중국은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G2로서 당당하게 세계 중심국가로 용솟음하는 기세를 보여줬다. 정말 중국다운 개막식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공감하며 가슴에 새기는 감동이 있었다고는 기억되지 않는다.
 
600억 원, 평창올림픽 개폐막식의 예산이다. 10년 전 중국이 마련했던 예산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는 이 예산으로 우리는 전 세계인에게 큰 감동을 주는 개막식을 연출했다. 물론 제가 대한민국 국민이었기에 느끼는 감동이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세계적인 큰 행사를 개최했다는 자부심에서만 오는 감정만은 아니다. 우리 개막식은 다섯 아이가 신비의 문을 통해 미래로 나아간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구전 동화를 듣는 아이처럼 개막식으로 빠져 들어갔다.

물론 개막식에서 선보인 여러 첨단기술은 세계인의 큰 주목을 받았고, 우리는 자긍심을 한껏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크게 감동받은 순간은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남북한 선수들이 공동 입장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첨단기술이 다섯 아이가 상징하는 우리 미래 세대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단이라면, 미래가 존재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돼야 할 평화를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진심과 의지가 전달됐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은 개막식만으로 이미 성공한 올림픽이라 믿는다.

 

적은 예산으로도 큰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 평창올림픽 개막식은 우리 연구개발(R&D)의 오늘을 되돌아 볼 기회이기도 했다. 올해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보다 7천억 더 많은 19.7조원을 R&D예산으로 책정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 예산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민간의 연구개발도 활발해 16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4.24%로 세계 2위다. 하지만 우리 과학기술계가 우리 국민과 정부의 투자와 기대에 부합하고 있다고 답변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R&D 패러독스란 신조어마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 연구자들은 실험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연구비 한 푼을 허투루 쓰지 않으며, 시간을 쪼개가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믿는다. 좋은 논문을 써 다른 연구자의 길라잡이가 되었고, 경쟁력을 갖춘 특허를 만들어 실제 제품 생산에 적용되는 모습을 보며 자긍심을 가졌었다. 그렇기에 역설로 표현되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기만 하다. 어느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일까?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과학기술계에 평창올림픽은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진심이 담긴 스토리가 있는 R&D로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이다.

 

지난 대한민국 과학기술 50년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1966년 최초 국책연구소로 KIST가 설립됐지만 국내엔 연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당시 정부는 해외 연구소에서 촉망받고 있던 한인 과학자들에게 귀국을 권유했고, 18인의 과학자는 몇 배의 급여, 최고의 연구 환경을 뒤로하고 지체 없이 달려왔다. 귀국 초기, 미처 실험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에도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그 분들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포항제철과 같은 국가산업기반시설의 기획을 주도하며 국가발전에 기여했다. 이와 같은 그 분들의 빈틈없으면서도 자기희생적인 헌신은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 분명 이는 지금껏 과학기술계에게 보내는 절대적인 국민적 지지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 과학기술계는 이 시대 국민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한다. 국민 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거나 줄 지금과 미래의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연구자가 돼야 한다. 그렇다고 개개인 연구자 모두가 국가적 현안 해결에 나서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일 것이다. 

 

또한 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창의적인 연구도 필요하다. 다만 국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국가에 혜택이 돌아가는 성과를 내겠다는 신념을 갖자는 것이다. 연구자 개개인이 각자의 스토리를 품고 연구실에 들어설 때 비로소 국민이 감동하는 R&D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란 이미 존재하던 실체가 때가 되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의지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나 하나로 무엇이 변하겠느냐고 묻는 분들에게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피어'를 전해 드립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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