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IST Talk/KIST Opinion

[포럼] 과기연구 선순환 환경 시급하다(장준연 차세대반도체연구소 소장 기고)

[포럼] 과기연구 선순환 환경 시급하다

 

장준연 차세대반도체연구소 소장

지난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시작은 1966년 KIST가 설립되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듬해인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가 발족하고 그 다음해인 1968년부터 과학기술처의 발족일을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과학의 날'로 지정됐다. 

 

최근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는 스마트폰 기술에서 볼 수 있듯, 과학기술은 경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에서 과학기술 연구는 시장이 아닌 정부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의 경우처럼 기술개발이 제품이나 상용화로 무조건 직결되는 것은 아닌 경우가 있고, 원천기술의 개발이 산업화 기술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비교적 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우주개발과 같은 국가적 차원의 큰 프로젝트는 당장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지는 않지만 국가의 존립과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기에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타당하다.

 

과학기술처의 발족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다소 부침은 있었으나 일관적으로 국가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을 강조하며 수립됐다. 1970년대에는 대덕연구단지 건설이 시작됐고 다양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설립됐다. 이후,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 '선도기술개발사업(G7프로젝트)' 등의 장기적인 연구 프로젝트가 80~90년대에 시행됐다. 또한, IMF 경제위기가 엄습한 1998년에는 과학기술처가 과학기술부로 승격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과학기술기본법이 제정돼 2003년부터 5년마다 제정된 법에 근거한 과학기술분야 최상위계획인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04년에는 과학기술부총리제 시행으로 과학기술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는 듯 했으나, 2009년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되며 연구개발 예산권이 기획재정부로 이관됐고, 이후에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재개편됐다. 최근에는 R&D 예산의 총괄조정과 R&D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에 대한 권한이 기획재정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관돼 과학기술의 위상이 재정립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2월 정부는 '제4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18-2022)'을 발표하며, 현 정부의 과학기술방향을 제시했다. "과학기술로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인류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비전 아래, '미래도전을 위한 과학기술역량 확충', '혁신이 활발히 일어나는 과학기술 생태계 조성', '과학기술이 선도하는 신산업·일자리 창출', '과학기술로 모두가 행복한 삶 구현'이라는 4대 전략이 발표됐다. 그리고 각 전략별로 4~5개의 중점추진과제가 선정돼, 연구자 중심의 연구몰입 환경 조성, 원천적 기초연구 육성,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 제조업 및 중소기업 육성, 일자리 창출,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 구현 등의 과제들이 중점과제로 선정됐다. 현재 부각되는 사회문제를 과학기술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4월20일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과학기술유공자 32명에게 증서가 수여됐다.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선배 과학자들께서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됐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인의 한사람으로서 자랑스럽고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미래의 과학기술을 이끌어 갈 어린이들에게 과연 과학기술자가 사회에서 성공한 직업으로 인정받고, 선망의 직업인가 하는 점에서는 맘이 편하지 못하다. 

 

금전적인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밤늦게까지 주말에도 쉬지 않고 연구 개발에 몰입하는 것이 과거 연구자에게 기대되는 미덕이었다. 워커홀릭 되는 것이 마치 바람직한 것으로 취급받았고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가 당연하게 여겨졌었다. 그러나 돈도 제대로 못 벌고 일만 열심히 해야 하는 과학자, 연구자는 더 이상 미래 새싹들이 바라는 장래희망 1순위가 아니다. 필자는 이제 과학자라는 직업은 본인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나아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로 좋은 직장의 조건)이 좋은 직종으로 인식돼야 한다.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가 아닌 개인의 시간이 보장되고 저녁이 있는 삶의 기반을 마련하는 연구소이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창의적이고 원천적 연구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성과들의 기술적,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 노력에 대한 충분한 금전적 보상이 가능한 선순환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취급받고 희생을 강요당한 적이 많다. 정부는 늘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효율성과 성과 면에서 과학기술자들의 반성과 위기의식을 강요해 왔다. 우리 기억 속에 우리나라는 늘 경제 위기였고 그 주요 원인을 정책의 실패나 외부 요인이 아닌 과학기술 성과에 돌렸던 것 같다.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밝혔듯이 한국은 ICT 발전지수 2위, 과학기술 경쟁력 6위로 세계 선두권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인력 양성은 39위, 과학흥미도 26위, 수학과학교육의 질적 수준 36위 등 미래 희망을 담보하는 과학기술의 기반순위는 아직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과학기술 종사자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우리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이 다시 과학자가 되고, 국민들이 과학자들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연구 환경, 풍토가 만들어져 경제, 기술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꿈꿔 본다.

 

[디지털타임스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