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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독일이 졌어(유럽연구소 이재상 기자)




독일 현지의 여러 가지 생생한 뒷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호기심에 든 첫 펜, 오늘은 최근 개막한 ‘2018 러시아 월드컵 - 챔피언 독일의 패배’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뒷이야기’라고 붙인 이유는 독일 축구에 대해 한국/독일 언론의 기사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라, 실제 길거리에서 만나는 독일 축구팬들의 생각, 이를 현장에서 듣고 느끼는 한국인들의 관점에 대해 공유하는 시각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차군단’, ‘월드컵 우승 트로피 4개’와 ‘FIFA 랭킹 1위(18년 6월 기준)로 대변되는 독일은 두말 할 나위 없는 축구 강국이다. 도저히 약점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완벽한 팀으로 각종 언론에서 소개되며, 이에 한국 및 독일 양국의 대표적인 기사 내용들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 ‘한국 언론’ : 독일은 현 스쿼드로 16강, 8강, 4강을 진출하냐 마냐가 아니라 우승을 하느냐 마느냐로 판단될 것

■ ‘독일 언론’ : 뢰브 감독, 팀정신 부재, 불완전한 조직력 등 무수한 문제점 안고 러시아행


무슨 생각이 스쳐지나가나? 그렇다. 독일 대표팀을 평가하고 바라보는 온도 차가 양국 간에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그럼 도대체 이게 뭘까 축구팬 입장에서는 좀 갸우뚱하기도 한데, 독일 언론이 자국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아서 충족을 못 시켜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독일인 특유의 항시 부정적인 사고와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해보는 태도가 기자의 펜을 통해 담기게 된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필자가 소개하고 공유하고 싶은 주제는 독일 축구팬들은 독일 축구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하며 관람할까?로 이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현장에서 듣고 싶어 6월 17일 일요일, 독일 현지시각 17시에 열린 독일-멕시코와의 조별예선 첫 경기를 관람하러 KIST 유럽연구소가 위치한 독일 자브뤼켄(Saarbrücken)시의 젖줄인 자르강의 강변으로 길거리응원을 나섰다. 


 

 


먼저 길거리 응원 장소의 분위기를 평하자면, 한국의 길거리 응원과 굉장히 유사한 분위기이고,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단체로 응원가를 부르며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응원객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독일인들은 차분히 관람하는 스타일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독일, 멕시코, 스웨덴, 한국이 같은 조에 편성이 되어있어 조별 예선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바(마지막 경기), 이에 우호적인 인상을 주고 싶어 독일, 한국 국기를 지참하고 유럽연구소 이정용 인턴생과 함께 양볼에 독일 국기문양 타투를 하고 가니, ‘얘네 봐라’라는 독일인들의 시선이 꽤나 많이 느껴졌다. 결국은 이로 인해 상호간 인상도 많이 좋아지고 뒤에 소개할 현장 인터뷰에서도 가점 요소가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경기 결과가 핵심이 아니니 먼저 결과부터 언급하는 게 좋겠다. 조별리그 1차전, 독일-멕시코간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는 0대 1로 멕시코가 승리했다. 독일 해설진들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한마디로 ‘unerwartet (=unexpected)’. 경기를 풀어가는 과정도 좋지 않고 결과도 최악인 경기라고 혹평을 일삼았다. 멕시코와 비겨도 쓴 소리를 들을 판국에 오히려 졌으니, 이러한 상황은 한국 언론 뿐만 아니라 독일 언론에서도 쉽게 떠올리지 못했었나보다. 하긴, 지난 대회 우승국이고 모국의 선수들, 후배들일텐데...


90분간의 경기 도중 주목할 점은 길거리 응원 현장 반응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선수간 전반적으로 호흡이 맞지 않을 때나, 전반 35분 멕시코 선수에게 골을 먹힐 때도 다들 흥분하기보다는 스크린 화면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도 안 돼’,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 뿐만 아니라 ‘몸값이 수천만 유로인 선수들이 이 수준이라니...’라는 자조석인 목소리도 들렸다. 필자가 자리잡은 테이블 근처에 적당히 흥분수위 조절하며 관람하는 2명의 독일인들이 보이길래 눈여겨 보았다가 맥주 두 잔을 들이밀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주제는 ‘독일인이 바라보는 독일 축구’.

 


인터뷰에 응한 Kevin Schmitt씨와 Sebastian Lohr씨는 필자가 들고 온  한국국기와 독일국기를 먼저 보더니 미소를 머금으며 양국(독일, 한국)이 동시에 16강에 올라갔으면 한다는 소망을 하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위에 언급했던 독일 언론의 ‘독일 대표팀 부정적 평가’에 대한 사견을 물으니, “한국인들이 이번 독일 대표팀도 우승 후보로 거론해주는지는 미처 몰랐다”며 “본인을 포함한 많은 독일인들이 근래부터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생각하는데 월드컵 개막 전 수차례 평가전에서의 졸전, 선수 간 불협화음이 본선에서 언젠가는 이러한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오늘 이 경기를 함께 하는 모든 독일인들은 독일이 단순히 패배하여 침묵한 게 아니라, 평상시 우리 스스로 우려하던 부분이 터졌기 때문에 자조하고 자멸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한국인인 나에게 설명해주었고, 덧붙이는 말로 “그럼에도 독일은 반드시 조별리그를 통과할 것이라 믿는다’고 ‘한국에도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며 섬뜩한(?) 덕담을 해주었다. 정답게 서로의 국기를 들며 우애를 다졌다.


 

 

(그 와중에 짤막 문화차이 : 다른 인터뷰어인 Sebastian Lohr씨는 인터뷰는 응하되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사진은 거절했다. 독일은 정말 이런 일이 비일비재)
오늘 이후 독일 패배에 대한 한국 및 독일 양국 언론의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도 주목해볼만 하다. 느낌상으로는 아래와 같이 소개가 되지 않을까 궁금증을 일으키게 하는 혼자만의 예상을 해본다.


■ ‘한국 언론’ : 잠깐 미끄러졌지만 우승 후보는 우승 후보, 남은 경기가 더 치열해질 것
■ ‘독일 언론’ : 무기력, 실수 투성이, 이대로는 희망 없어


독일인에 대한 한국인의 고정 관념은 크게 ‘시간 약속 철저’, ‘정직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에 ‘부정적 사고’도 추가해볼 것을 추천한다. 이들은 생각보다 생활의 많은 면에서 부정적이다. 어느 분야든, 독일인들은 매사 자신감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어 상황에 대처해나갈 수 있음에도 말이다.


특정 기대치가 높아 이에 도달하지 못할 때 나오는 아쉬움과, 어떤 상황 자체를 애초부터 부정적 관점으로 보는 것은 성격이 상이한데 이번 독일 대표팀의 첫 경기 패배에서 살짝 엿볼 수 있었던 독일의 모습은 후자였던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