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창의포럼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사진작가 ‘김중만’을 초청했다. 1954년 생으로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1971년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로 이주한 후 프랑스로 유학,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에서 서양화과를 수료했다. 이후 사진의 매력에 빠져 1975년 니스의 “쟝 피에르 소아르니”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사진작가로 데뷔한다. 1976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중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었고, 1977년 프랑스 ARLES 국제사진페스티벌에서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다작의 작가로 소재도 인물·풍광·동물·꽃 등 다양하며 패션사진, 광고, 영화 포스터와 수많은 스타 사진을 찍었다. 2006년부터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2010년대부터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 자연 속에 깃든 한국인의 정신을 표현함으로써 팝적인 대중성과 클래식한 풍모 모두를 완성도 있게 보여 주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던 아프리카에서 선행도 열심히 베풀고 있다. 아래는 창의포럼 강연내용의 요약이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단정하지 않은 머리, 서양 여성얼굴이 프린트된 흰색 V넥 티셔츠와 회색빛 양복상의, 종아리가 훤히 보이는 검은색 7부 치마바지, 귀걸이 그리고 목덜미, 종아리, 손등에 푸른색 타투가 가득 새겨진 모습(온몸에도 타투가 새겨져 있을 것 같다)... 그는 우리가 흔히 보기 어려운 독특한 모습과 특유의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우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김중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도 아침 7시에 잤는데 강의 있다고 자꾸 깨워서 그 강의 안 나가면 안 될까 생각을 했다. 뭔가 일이 있으면 내 몸에서 자꾸 안 받아들이는 거 같다. 특별하게 할 일이 없어서 지난밤에는 미드를 봤다. 1편에서 10편까지 보니까 아침 7시더라. 그래서 강의가 있으니까 이제는 자야 되겠다싶어  자고 오후 2시에 일어나 이곳에 왔다. KIST에서 가까운 전농동에 살고 있다. 금년 나이 64살, 환갑이 지난 지 4년 됐다. 3번 결혼했고 결혼마다 아이들이 다 딸려서 아이들만 넷이고 손녀가 셋. 손자가 한명이다. 내가 사람 복은 엄청 많은 것 같다.

 


< 영혼과 영혼을 이어 주는 다리.... >

김중만이라는 작가가 세상을 보는 아주 간략한 개념을 몇 글자로 알려드리려 한다. 우리 사회, 우리 세상의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숫자의 싸움이다. 사람과 사람의 숫자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게 정치다. 너무 삭막하다. 경제는 무엇이냐. 경제라는 것은 사람의 숫자와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다. 문화는 무엇인가. 문화는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다. 마지막으로 예술이 무엇이냐. 예술은 사람의 영혼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예술을 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오랜 연습과 기다림과 끊임없는 복습을 하고 나서 얻어지는 하나의 결과물이지만 그걸 넘어서 정말 미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대충 어떻게든 사람만 모으면 된다. 좋은 예로 6개월 전에 일어난 “어떤” 일과 상관없이 유권자의 25%가 같은 세력에 빨간 도장을 찍었지 않은가. 경제도 마찬가지로 정말 냉혹할 정도로 사람의 마음과 숫자만 동원하면 된다.

예술은 위대하기 때문에 불가능이란 단어를 쓸 수 없는 영역이다. 여러분들도 불가능을 만나면 끊임없이 아마 좌절도 하고 또 부딪히고 또 마음 아파하는 많은 시간을 보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된다. 과학에서는, 예술에서는 불가능이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종교는 가능과 불가능의 개념이 아니고 무한대의 개념이다. 과학은 창의력과 연관이 된다. 창의력은 어떻게 만드는가. 40년 동안 예술을 한 아티스트로, 사진작가로 살아오면서 창의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이런 거다. 창의력은 가장 불안정한 것에서 시작한다. 창의력의 출발은 어떤 하나의 과제나 어떤 아이템이나 아이디어를 놓고 우선은 그것을 타이틀로 해놓고 실현 가능한 쉬운 걸로 먼저 답을 생각한다. 가능하면 불안한 것은 좀 옆으로 피해간다. 예술가로서 창의력이라는게 그 출발점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을 깊이 보는 게 나의 일이기 때문에 여러분들하고 조금은 출발점이 다를 수 있다. 여러분들은 아마 수학으로부터, 어떤 기호로부터 또 어떤 입증으로부터 시작을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비수학이다. 입증할 수 없고 추상적인 것이다. 자기가 “이것이다.”라는 답을 미리 내놓고 할 수 없는 게 예술이다.

 

< 스무살.... 나의 사진.... >
여러분들이 지금 보신 것은 내가 스무살 때 처음 찍은 사진하고 동영상이다. 불가능의 가능성을 본 사람이 있는가. 스무살 때 생각해보니 우리 인간이 가장 본능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섹스하는거다. 그때 난 이렇게 사진작업을 했다. 간단하다. 사진 찍을 곳에 먼저 가서 구상을 한다. 그리고 니스 날씨가 워낙 좋은데라 크게 변함은 없지만 빛도 한번 재본다. 다음은 미대 친구 중 여학생들에게 ‘사진을 좀 찍어야 되니까 모델을 좀 해달라’ 라고 요청하고 오케이하면 정해놓은 장소로 데리고 간다. ‘뭐 가져오니?’ 그러면 ‘그래 치마입고 와’ 라고 하고 ‘저기 누워서 팬티 좀 벗어 봐.’ 그런다. 물론 우리하고는 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거에 대해서 갑자기 막 놀라고 도망가거나 그만 두겠다고 했던 그런 기억은 없다. 여하튼 제 정신은 아니다. 사람들 있는 곳에서 팬티를 벗으라고 하고 여러 포즈로 찍고 내일 만나기로 하고 나는 바로 암실에 가서 필름 현상을 해가지고 프린트를 한다. 여러분들이 본 사진 대부분이 내가 1975년에 사진을 시작한 첫 해에 찍은 사진들이다. 그 다음날 프린트를 해서 점심시간에 갖다 준다. 그러면 “아 얘가 변태는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는지 “다음에 또 할게.”그러는 거다. 이런 방법으로 내가 다니는 학교 니스 국립미술대학교 여학생들을 한 30명 정도 팬티를 벗겨서 찍었다. 만일 순수함이라는 것을 상대방에 전해주지 못했을 경우에는 30명이라는 숫자가 절대로 안 나온다. 사실은 불안했다. 이거 할 수 있을까. 재들이 내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해변가에 막 돌아다니는데 해변에 누워 팬티 벗고 치마 다 열고 있으라면 있을까. 안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예술을 해야 된다. 내가 이 작업을 통해서 사진이 무엇인가를 배운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힘이다. 즉, 소통이다. 그 사진을 전해줄 때 받았던 그 친구들의 느낌이 참 좋았었고 그리고 계속 내가 보고자 하는 세상이 무엇인가. 라는 것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겨놓는... 조금 정석적인 사진의 출발은 아니었다. 만약에 지금이라면 못할 거 같다. 한 사오년전에 저 앵글로 한번 찍어볼까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 역시 우리의 마음이 얼마만큼 진실성이 있는가에 따라서 그게 가능하고 그렇지 못한 게 있는 것이다.


< 전농동에 일터를 마련하다.... >

한 100평정도 되는 스튜디오가 청담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앴다. 작년 10월쯤 갑자기 이 일이 하기 싫어졌다. 그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조금 쉬어야겠다하고 청담동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책과 원고와 소품들과 카메라들을 창고에 옮겨놓았다. 제자들도 다 내보내고 혼자서 가만히 백수가 돼서 너무 기분 좋게 놀았다. 그런데 작년 10월, 11월, 12월 세 달 동안 사진 6점 정도를 팔았는데 그게 한 4억 원이 되더라. 집사람이 아파트를 하나 사줄 테니까 거기 가서 일하라 해서 요즘은 전농동 25평 아파트에서 조그만 아뜰리에를 차리고 일을 하고 있다. 좀 전 사회자께서 소개한대로 연예인들도 찍고 상업사진도 하고 영화도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찍지는 않았다. 또 그렇게 많은 상업사진이나 광고사진을 하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했다. 그러면 왜 이 작업들을 했을까. 2000년도에 아프리카에서 가족들하고 1년 동안 동물사진을 찍고 서울에 돌아와 보니 내 소유의 집이 없더라. 나이 오십이 됐는데 가족은 있는데 집이 없는 거다. 그래서 사회와 타협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명함을 만들고 스튜디오를 냈다. 한 3년 일을 하니까 연간 10억 원을 벌었다. 그리고 한 7년 정도 되니까 연간 거의 18억 원을 벌게 되었다. 예쁜 배우들 만나고 찍고 초반에는 여자 배우들과 모델들을 많이 찍었다. 그러다 여자 배우들하고 모델들은 사진 한 장을 찍으면 거기에서 메이크업 바꾸고 옷 바꾸고 하는 데에 시간이 엄청 걸려서 남자 배우 쪽으로 찍는 영역을 좀 넓혔다. 그리고 영화포스터 좀 찍었다. 2007년에 찍은 게 괴물, 오래된 정원, 멋진 인생, 타짜, 달콤한 인생 등 이다. 이정도 찍었으면 많이 찍은 거다. “어느 작가의 손을 타면 잘된다.”라고 소문이 나면 완전히 줄을 선다. 하루에 2000만원씩 받는다. 꽤 수입이 괜찮다. 근데 실제로 따져보면 괴물은 100억짜리인데 난 2000만원을 받았다. 전체 예산에서 보면 500분의 1이다. 사진이라는 것 생각처럼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 사진 작가의 고민..... >
대부분 젊은 작가들이 사진전을 열심히 준비해서 전시회를 열면 커플들이 와서 보면서 남자가 이야기한다. “저거 내가 저렇게 찍을 수 있어” 그 말을 듣는 작가는 그냥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나름대로 정말 죽어라고 준비해서 어렵게 계약해서 벽에다 걸어놓았는데 그 마음 추스르기가 어렵다. 사진의 큰 장점이 생산성. 무궁무진한 빠른 생산성이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고자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내가 경험한 생산성은 하루에 한 스무장 정도 나오는 날. 인생에서 한번 밖에 없었다. 하루에 2000장 찍는 날도 수도 없이 있었다. 보통 일주일에 열심히 찍으면 한 오천에서 칠천장을 찍는다. 거기에서 다섯장 정도 작품이 나오면 정말 해피한거다. 생각처럼 안 되면 좌절의 시기가 온다. 나는 분명히 이걸 보고 찍었는데 왜 생각처럼 안나오지? 분명히 나는 다른 빛이었는데 결과는 왜 이렇게 나왔을까. 자신에 대해 어떤 능력에 대해서 끊임없이 싸움을 하다 대부분이 그 싸움에서 무너진다. 시를 쓴다고 소설을 한다고 치자. 물론 내가 시나 소설을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시는 일년 동안 쓴 것을 인쇄 들어가기 하루 전에 제목을 바꿀 수 있다. 또 단어 몇 개를 다른 단어로 바꿀 수가 있다. 사진은 한번 누르면 그 순간 그냥 90프로가 결정된다.

 

< 뚝방길 위에서 이웃을 만나다..... >
내가 살고 있는 전농동에서 청담동으로 갈 때 중랑천 뚝방길이 있다. 거기에 건축물 폐자재하고 상하수도 처리장이 있는 그 길을 9년 동안 찍었다. 2004년도에 처음 이 사진속의 나뭇가지를 봤다. 환경미화원 터에 있는 나무인데 자꾸 나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 같더라. 그래서 2004년도에 처음으로 이 나무하고 말을 시작했다. “내가 너를 찍어도 되니?” 하는 것과 “내가 너를 찍을 자격이 있니?”라는 두 가지를 4년 동안 물어봤다. 2008년도 4월에 찍어도 된다고 해서 그래서 차를 옆에다 세우고 이 나무를 찍었다. 찍는데 이 길에서 일하는 우락부락한 업체 아저씨들이 방해를 많이 했었다. 3일 정도 찍으니까 옆에 있는 나무가 나도 있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한 달을 찍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때가 4월, 5월 넘어갈 때라서 겨울나무에서 봄 나무로 바뀌는데 나무 모양이 달라진다. 그러면 한 시즌만 한번 찍어보자. 봄까지 찍고 여름까지 찍어보니까 가을은 또 달랐다. 그럼 한 1년을 찍어보자 해서. 1년을 찍고 나서 금년까지 9년을 찍었다. 이것을 2m X 1.5m 정도 되는 한지로 프린트를 한다. 에디션을 다섯 개씩 하는데 한 장에 오천만원에 팔고 에디션 두 개짜리는 1억에 판다. 이제 그 길에 계시는 분들은 다 안다. 여름에는 생수도 갖다 주고 겨울에는 100원짜리 커피도 자기네들 방에서 마시게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 길에 먼지가 많으니까 살수 탱크가 있는 트럭이 있다. 트럭하시는 분이 작년에 8년 만에 내 앞에서 살수를 딱 스톱 시켰다. “아 내가 드디어 이 뚝방길을 점령을 했구나. 모든 분이 다 허락을 해주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서 같이 일하시던 노동자분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는지도 좀 의문이 가고 여하튼 나한테는 어떤 작가로서의 터닝포인트가 된 작업들이다. 그래서 좀 알려지게 됐고 아마 금년 미국의 유명한 세계적인 출판사에서 조만간 책이 나오도록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가격이 2배로 올라갈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의 시장이 생각하는 것 보다 외국에는 엄청 크다.

 

< 카메라로 그려낸 수묵화..... >

뚝방길을 좋아하게 된 것은 나무마다에 상처가 있어서이다. 그 모습이 우리 인간들 모습 같아서, 때로는 내 마음 같아서 정말 나무에게 열심히 물어 보았다. 한 장의 사진도 안 찍고 정말 매일같이 4년 동안 1,200번 정도 나무에게 물어보았다, 처음엔 한장만 찍으려 했는데 시즌을 찍게 되고 그것이 해을 넘기고 이렇게 5년을 찍으니 다 찍은 것 같았다. 거기서 멈추려 했는데 현대카드에서 주최하는 25분짜리 강연 ‘토크쇼’에 나가게 되었다. 첫 번째 연사가 뉴욕 모마뮤지엄 그렌날리 관장이었다. 이분이 내 강의를 들을 것을 생각하니 강의준비에 많이 떨었다. 실제 토크쇼에서는 그렌날리를 의식하지 않고 여러분들에게처럼 편안하게 떨지 않고 작품을 보여주며 나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 했다. 보름 정도 후 그렌날리가 보낸 편지가 왔다. 내용은 “당신 작업을 감동 있게 보았다. 전시 준비되면 연락해라.”였다. 이런 연유로 다시 뚝방길 사진작업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전에는 1, 2마리 밖에 없던 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들이 카메라 앞에 앉았다. 심지어 저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 주었으면 생각하면 그 자리에 앉는 새가 있었고 하늘을 지나가는 새도 있었다. 이렇게 영감을 받아 작업이 될 때에는 며칠 밤 잠을 자지 못한다. 올해까지 이 작업을 진행했고 한지에 프린팅을 했다. 카메라로 수묵화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좋은 시간이었다.

 

< 전통 산수화에 도전하다... >
다음 작업은 사진으로 전통 산수화를 그리는 작업이다. 산수화 하면 조그만 사이즈의 난, 꽃 등 사군자 등을 한지에 그리는 전통화법인데 난 스케일을 키워 카메라로 전통산수화를 그리고 싶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카메라를 수소문하니 스위스에 1억5천만 화소의 카메라가 있었다. 가격이 1억 5천만 원이었다. 그 카메라를 사서 2012년부터 작업을 진행해 15점을 완성하였다. 뉴욕의 모마, 파리의 그랑팔레, 런던의 테이트모던, 이렇게 세계 3대 뮤지엄이 있다. 2013년 엔디워홀이 전시를 했던 그랑팔레로 부터 초대를 받았다. 15점의 작품을 뮤지엄 바닥에 깔았다. 자세히 보더니 이건 사진이 아니라 회화 아니냐고 했다. 불어로 자세히 설명하니 이해하고 미안해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랑팔레로부터 “당신을 커미티 전원의 만장일치로 2016년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하고 2016년 1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기념 전시회를 개최해 주겠다.”라고 연락이 왔다. 세상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2015년 2월 28일 나에게 가장 행복한 편지를 보내준 사람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한국 정부와 무슨 일이 있느냐? 왜 당신 얘기만 하면은 문화부 직원들이 다들 도망가느냐?”고 물었다. 그랑팔레에는 국가대 국가의 계약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곳이다. “당신을 프로그램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정해서 너무 아쉽다.”라는 가장 불행한 편지를 받았다. 보이지 않게 4년 동안 엄청난 피해를 본 셈이다. 이 사진들이 파리 대형전시장 겸 박물관 그랑팔레를 거쳐서 나오면 그게 1억원이 돼서 나오는게 아니고 10억원이 돼서 나온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그 수요가 엄청나다. 지난 정부와 친하지 않은 내 탓이라 생각한다.

 

< 구치소와 정신병원... 그리고 내일.... >
마약을 해서 구치소도 가보고, 마약을 하지 않았는데 한다고 정신병원에도 들어가 보고, 또 추방도 당해보고 여러 가지를 젊은 시절에 겪었다. 내가 좀 둔해서 추방을 당해도 한 이틀정도 있다가 “아 내가 지금 상황이 심각하구나. 내가 여기 이렇게 앉아 있을 조건이 상황이 아니구나.” 하는 정도로 낙천적이었다. 뭐 일이 있으면 그래. 마약했으니까 구치소가서 살지 뭐... 되게 좋았다. 55일 동안 책도 110권 읽고 나오고 5대 범죄라고 해서 강도, 살인 등 제일 살벌한 수감자들이랑 같이 있는데 내 방이 나중에는 선빵이 되가지고 애들이 다 너무 착하게 교화되었다. 작가로서 좋은 경험이다. 정신병원은 구치소보다 더 심했다. 구치소는 내가 어떤 잘못을 한 거를 안다. 들어가면 고참 수감자들이 몇 년, 몇 달 사는지를 다 얘기 해준다. 전과들이 너무 화려하니까 다 법률가 뺨친다. 마약을 하지 않았는데 담당검사가 서울시립정신병원에 날 입원시켰다. 80명이랑 보름동안 있었는데 약을 안 먹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아침에 정말 영화처럼 다 입 벌리고 제일 많이 먹는 애부터 한 알 짜리가 쫙 줄 서 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 대한민국이 나를 예술가로 만들려고 작심을 했구나.” 이것은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하루에 1리터씩 피를 뽑힌 적도 있다. ‘90년대 초인데 국과수가 요즘처럼 발전이 안 된 때이다. 요즘은 1시간이면 마약테스트 결과가 나온다. 그때는 보름이 걸렸다. 사진을 한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그런 어떤 관찰자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 병원에서 만난 80명 중에 정신이상이 있는 친구는 10프로밖에 안되었다. 나머지는 왜 그럼 여기 있을까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관찰해보니 ‘내일’이 없어서 였다. 그 이후 어떤 생각을 갖게 됐는가 하면 “난 오늘만 살자” 주의자이었는데 내일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 것이더라. 그 친구들한테는 갇혀있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였다. 그냥 내일이 없어서, 갈 곳이 없어서, 할 일이 없어서 그냥 미쳤다고 드러누운 거다. 내가 그동안 너무나 오만하게 살지 않았었나. 너무나 자만으로 살지 않았나. 반성을 했다. 나를 처음 마약으로 잡아간 검사님한테도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 한 장 건지기가 너무 어렵다.... >
한두 달 전 문재인 대표님한테 ‘김작가는 뭐하고 살고 싶어?’ 그래서 ‘아 저는 그냥 사진 찍고 책 읽고 대마초 피고 음악이나 듣고 사는 게 제일 좋습니다.’ 이러니 웃으시더라. 만약 조선시대였다면 그분은 곧은 선비고 나는 굉장히 삐딱한 한량인 셈이다. 아무튼 예술은 정상적으로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됐든 자기의 혼이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하는 것을 하나의 어떤 특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 업보고 어려움이고 좌절이다. 1000장을 찍어서 한 장 정도를 오케이 했을 때 나머지 999장을 보면서 절망하고 좌절한다. 왜 이거밖에 안했을까. 왜 내가 이 시간에 그 빛을 놓쳤을까. 하는 것들로 절망한다. ‘보그’에서 일하는 영국 출신 프랑스의 유명 패션사진가 ‘스티브하이트’ 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에게 물어봤다. 내가 400장 정도 찍어 한 장 정도 건진다고 했더니 “난 700장 찍어.” 그러더라. 그게 답이다. 1000장을 찍어도 한 장이 나올까 말까하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 EAST... 동양을 찍다.... >
‘이스트’ 라는 제목의 큰 사진을 찍고 있다. 뭐를 찍는가 하면 ‘동양’ 을 찍는다. 서양 작가들과 전쟁을 하고 있는데 그들을 이기려면 그들이 절대로 보지 못하는 거를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동양을 찍는 거다. 한국을 찍고, 나의 뿌리를 찍고, 동양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찍는 대형작업이다. 결과물로는 그 사이즈가 2.5m X 5m 짜리 한지로 나오게 됐다. 그 작품을 독일 창고에 매달 꽤 많은 돈을 주고 보관하고 있는데 조만간에 전시회 할 기회가 있으면 가져와서 전시를 할 계획이다. 일단 17개 만들었는데 제작비만 한 점당 7,000만원 들었다. 프린트하고 디아섹 입히고 나무프레임을 했다. 17개 만들어 놓고 돈이 떨어졌다. 이제 ‘고비사막’만 남았다. 고비사막까지가 내가 보는 동양이다. 시작은 베트남의 하롱베이부터 중국의 장가계, 황산, 백두산 그리고 한강, 제주도, 일본의 야쿠시마 섬까지 찍었고 이제 고비사막만 찍으면 이 시리즈는 스무장 짜리로 끝난다.

< 마무리 말.... >
어떻게 하면 잘 놀까. 하는 게 나의 계획이다. 여지껏 찍은 사진은 800만장이 좀 넘는다. 아카이브 하는 데만 한 4년 걸린다. 아직도 내가 뭐를 찍었는지 다 파악을 못하고 있는 상태고, 여태까지 정말 그냥 끊임없이 작업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산수화나 수묵화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 내가 처음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작가들이 했지만 이걸 이제 어떤 식으로 어떤 좋은 곳에서 보여주느냐.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어떤 평을 받느냐가 중요하다. 이외에도 구름 찍고. 풀 찍고, 꽃 찍고, 사막 찍고 그 다음에 빌딩 찍고, 그래서 동시적으로 한 7가지 주제를 매일같이 촬영을 한다. 이것들이 모아지면 전시회를 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자선전시를 통해 한 10년 동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했고 베트남, 아프리카 등에서 꾸준히 아이들을 돕고 있다. ‘이스트’ 작업하고 ‘뚝방길’ 작업은 정말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 총력을 기울여 한 작업들이고 나머지는 매일 같이 노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다. 매일 같이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까’하는 게 나의 주된 관심사다. 아무튼 김수근 선생님이 멋있게 지어준 이 공간에서 여러분들 만나 뵙게 되어 너무 영광이었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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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목 한그루, 해일은 막지 못하지만 무너지는 마음은 붙잡을 수 있다....

 

20174월 창의포럼에서는 1976년에 출가 이후, 오랫동안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며 방송 진행을 통해 우리들에게 마음 공부의 길을 안내하고 있는 치유의 어머니 <정목스님> 초청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정각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고 동국대학교 선학과와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전화 상담기관인 '자비의 전화'를 만들었다. 20년 가까이 서울대병원, 동국대병원과 함께 하는 아픈 어린이 돕기 운동 작은사랑을 펼치고 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자그마한 키 ,파르라니 깍은 머리, 단아하게 잘 다려진 승복차림의 정목스님이 무대에 섰다. ‘이렇게 밤낮 없이 우리나라 기초과학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시는 연구원 한 분 한 분 앞에 두 손 합장하는 마음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하면서 오늘의 제 강의를 시작할까 합니다.’ 라고 하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국민의 세금이 쓰여야 할 곳.... > 

좀 전에 부원장님과 잠시 차담을 나누면서 내가 이런 얘길 드렸다. 국민의 세금이 가장 뜻있게 쓰여야 할 것이 난 과학 분야라고 생각한다. 전국 강연을 다니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관심 가져야 할 분야가 과학 분야이고 지금 이정도로 지원하는 것 가지고는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지고 갈 수는 없다.’ 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다닌다.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서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남의 나라 일이지만 눈을 번쩍 뜨고 보게 된다. 과학과 예술 분야는 국가에서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라도 물심양면으로 보살피고 후원해야 된다. 실패와 실패를 거듭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시하고, 거듭 실패를 하라고 실패 기금을 주어야 하는 분야가 과학 분야라고 생각한다난 사실 과학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다. 오늘 강연 제목이 통찰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통찰이라고 하는 것이 과학도인 여러분들은 이미 가지고 계시는 능력이다. 통찰의 힘을 가지지 않고서는 과학적으로 뭔가를 연구할 수도 볼 수도 없을 것이다. 미세한 바이러스, 미토콘드리아, 박테리아 이런 것 하나를 연구를 한다고 해도 그것과 연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어디로 발전해 가고 있고,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그 유기체적 상관관계를 한눈에 파악하지 않고서는 과학의 연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그러니까 그게 바로 통찰의 힘인 것이다.

 

< ‘없을 무()’자에 항상 상()’> 

작년부터 과학 분야 공부를 해봐야겠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승가의 불교 공부라는 건 과학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공부하기 어렵다. 불교는 무조건 믿어라 하는 신앙이 전혀 아니다. 불교의 첫 출발은 믿지 마라이거부터 시작한다. ‘부처의 가르침조차도 믿지 마라.’ 신격화 하지 말고 신으로 모시지 마라. 그리고 그것이 실제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 확인이 되지 않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리고 어제까지 믿음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오늘 와서 보니까 아닌 거라면 당장 어제까지 믿었었던 걸 쓰레기통에 다 내다 버려라이렇게 얘기를 한다. 오늘 연구한 것이 어제 한 것보다 훨씬 더 너와 나에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고 맞는 길이라면 그 길을 가야한다. 도덕적 신념이나 윤리적 신념이라고 하는 것이 그대로 붙박이처럼 있는 건 없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가졌던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것. 진리는 아니지 않는가. 그 시절에는 그것이 어필됐지만 지금 와서는 전혀 씨도 먹히지 않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고 하는 건 계속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고 그것을 불교에서는 무상이라고 한다. ‘없을 무()’자에 항상할 상()’. 항상하지 않은 것이다. 불교에서 오직 변하지 않는 건 하나밖에 없다. 변하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들이 무상하게. 변화해 간다는 사실 하나 만이 유일하게 진리이다.

 

< 반야심경... > 

불교가 과학과 접근하지 않고서는 반야심경 한편도 해석 할 수 없다. 모든 전국 사찰이 새벽에 눈뜨는 새벽 3시부터 하는 예불 중에 꼭 나오는 게 반야심경이다. 이백육십글자로 되어있다. 해인사에 있는 팔만사천대장경. 그 장대한 경전 속에 반야경에 해당하는 것만 부에 달한다. 통찰을 통해서 꿰뚫어 아는 것을 반야라고 하는데 이는 곧 지혜를 뜻한다. 그런데 그 반야심경의 내용을 지금 4차 산업 혁명시대를 모르고는 해석할 수가 없다. 3차원에 앉아서 3차원을 볼 수 없고, 2차원에서 2차원을 볼 수 없듯이 4차원이어야 3차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반야심경에 나오는 내용자체가 3차원의 물리적 세계에서 바라볼 수 있거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불생불멸이라든지 부증불감이라든지 불구부정이라는 경구가 있다. 이것은 욕망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논해봐야 이 세계를 알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인간은 감정이라고 하는 걸 가지고 살아간다. 감정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불안하고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고를 느낀다. 이런 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어떻게 불생불멸, 불부부정, 부증불감이 가능하지 않다. 

 

< 4차 산업시대의 화두.... >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와서 인간보다 더 똑똑한 알파고를 만들어낸다고 하니 이제 4차 산업은 정말 인간의 뇌의 감정이라는 걸 떼어 내겠다는 것 아닌가. 뇌 안에서 감정이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게 하나의 화두이다. 3차 산업까지는 생명에 대한 연구를 했다 한다면 이제 4차 산업은 광물에 대한 연구라고 들었다.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를 연구하는 게 4차 산업이라는데 이 세계를 모르고는 불교경전의 한마디도 진도를 못나간다. 쉽게 말하면 우선 반야심경의 불생불멸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세계,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세계,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세계, 그게 욕망의 차원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소리다. 그러니까 소설 쓰는 소리 같고 황당한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과학이 맞물려서 함께 발전해 나가다 보니 지금 불교는 서양에서는 떠오르는 새로운 하나의 이념이 되어 과학도들이 불교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 화엄.... > 

불교의 화엄경이라고 하는 책이 80권으로 되어있다. 스님들이 마지막 대학과정에서 배우는 과목이다. 그런데 토인비가 영어로 번역된 화엄경의 압축된 내용을 보고 무릎을 치면서 다가오는 21세기 시대를 이끌어가게 될 사상이 있다면 불교의 화엄이 될 것이다라며 탄복을 했단다. 그게 무슨 말일까. 불교의 화엄은 딴 말이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소멸함으로 저것이 소멸하고 저것이 소멸함으로 이것이 소멸한다.’ 딱 이 말이다. 그래서 화엄경은 한마디로 압축하면 연기법이다. 인연이 있어서 연결된다는 거다.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뭐가 아니라 있음으로서 이것이 있게 되는 또 저것이 있음으로서 이것이 있게 되는 이런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유기체적 관계를 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사실 4차 산업혁명은 비유기체적 관계에 대한 것 아닌가. 이제는 그 유기체적 관계의 시대를 끝내고 비유기체적 관계 속에서도 또 다른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게 뭐가 있을까. 뭐 이런 걸 이제 논한다고 알고 있다.

 

< 과학자들의 업적.... > 

불교공부라고 하는 게 과학에 대해서 귀 기울이지 않고, 경청하지 않고는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이 될 것이다. 그러다보니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내가 돈 내고 보는 유일한 잡지가 사이언스지 등의 과학 잡지다. 유명한 과학자들의 이름이 쫙 나열되는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분들의 업적 앞에 경외심이 생기고 저절로 존경심이 생기고 이거 하나를 연구하기 위해서 전 생애를 바친 그분들의 삶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출가수행자로서 기도하고 수행하고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분들이 얼마나 낮밤 없는 전 생애를 바쳐 열정적으로 연구를 했겠는가. 그 한사람의 연구업적이 세상에 탄생하는 순간 전 인류가 동시에 혜택을 받게 되는데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들고 있는 이 마이크 하나, 내가 서있는 이 공간 하나하나가 과학자들의 업적이 아니고서 우리가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과학도들에게는 더 많은 후원과 지원이 국가 세금이 아깝지 않다 생각하고 지원해야 한다. 

 

< 대단한 나라, 대한민국.... > 

내가 쓴 책 중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전국 강연을 4년을 불려 다녔다. 4년 동안 일 년 열두 달 365일 중에 거의 360일을 불려 다녔던 것 같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다 보니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직업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나주가 됐건 목포가 됐건 어느 곳이든 시간만 맞으면 웬만하면 다 갔다. 그렇게 많은 곳들을 다니면서 참 많은 걸 배웠다. 특히 장로님들 70명이 모인 자리에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는데 이것은 종교 역사 이래 전무후무한 일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인데 이게 바로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나라가 망할 나라이겠는가. 우리나라에는 종교가 이렇게 많은데도 우리는 종교전쟁이 없다. 그저 집안 안에서 찌그렁 찌그렁 싸울 뿐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 절에 다니는 사람. 그것 때문에 총을 쏘아 죽인다던지 이런 일은 거의 드물다. 그러니까 참 대단한 민족이고 우리 정말 별난 DNA를 가진 사람이다. 지금도 시리아 등에서는 폭탄을 터트리고 난리를 치는데 대한민국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 어떤 전쟁보다 가장 무서운 것이 종교이념(전쟁)이다. 아편보다 더 무섭다. 근데 우리나라는 그런 식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기독교건 불교건 함께 잘 가고 있다. 

 

< 달팽이... 그 궁금증을 살피다.... > 

달팽이 책이 나오다 보니까 그것으로 인해서 강의를 불려 다니며 달팽이라고 하는 녀석에 대해서 연구해보게 되었다. 달팽이라고 하는 그 작은 생명체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간을 대신해서 그 조그만 몸뚱이가 우주여행까지 갖다오고 그리고 현기증도 느끼지 않고 쓰러져 죽지도 않고 잘 돌아온 이 작은 생명체를 통해서 오늘 몇 가지 지혜를 배워보고 싶다. 일단 달팽이는 지구에서 가장 느린 생명체에 속한다. 한 시간에 오십 미터를 간다고 한다. 우리가 백 미터 달리기를 910초에 달려가는데 달팽이는 오십 미터를 기어가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인간이 느리다고 표현을 한다. 느리다고 말하는데 달팽이의 우주에서 볼 때는 느리고 빠르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말이다. 달팽이하고 인간이 달리기를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인간과 독수리 또한 달리기를 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뇌 안의 의식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전 생에 나라를 구하신 분들.... > 

여러분들은 계시는 KIST, 환경이 얼마나 좋은가. 여러분은 정말 아마도 적어도 전생과 그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던 분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공간 못 오신다. 대한민국 땅덩어리 안에 그것도 서울 장안에 여러분은 어쨌건 과학을 연구한다는 이유 하나로 환경이 극락세계인 이곳에서 혜택을 받고 계신다. 그런데 이곳이 극락으로 보이시는지를 여쭙고 싶다. 눈은 뜨고 있는데 그냥 다니시는 건 아닌지 물어보는 거다. 과학 하는 분들에게 통찰의 힘이 자비의 힘으로 꽃피워지려면 시적인 시상이 떠올라야지만이 가능한 것이다. 근데 이 꽃나무를 과학적으로만 해석하면 얼마나 멋없겠는가. 여러분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계시고 이곳을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다른 외부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가 듣기로는 굉장히 만족도가 높은 분들이라고 들었다. 다만 가장 큰 스트레스 중에 하나라면 실적 내놓으라는 것. 업적 내놔라. 세금 받아먹은 것만큼 결과 내놔라. 근데 그걸 빨리 내놔라. 이게 가장 죽겠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거는 백년을 투자해서 하나 나올까 말까하는 것을 기다려야 되는 거다. 그게 정말 과학적으로 우리가 후원하는 것이 실패를 거듭할 수 있도록 연구실의 환경을 더욱더 좋게 지원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로 나오시는 분들 중에 과학발전에 힘쓰겠다는 말을 하는가 안하는가를 제일 먼저 본다. 그것은 차세대의 우리 후세 사람들이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해주는 운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데 별로 과학에 대해서 말하는 분이 없다. 

 

< 달팽이 느림의 교훈.... > 

달팽이라고 하는 이 작은 생명체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기어 다니는 생명체 하나하나가 이 아침에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 성자들만의 가르침. 훌륭한 사람들만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 생명체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를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달팽이를 그렇게 느리다고 하는데 달팽이의 우주에서 볼 적에는 느려요. 빨라요 라고 하는 말이 의미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 여러분들이 과학의 업적을 내야하고 실적을 내야하는 자리에 있으시지만 여기 계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유능한 과학도일 수는 없다. 출중하고 뛰어난 브레인을 가진 분도 있겠지만 같은 과학도인데도 아직 중간 혹은 밑에나 계시거나 의식 차원이 다른 분들이 뒤섞여있을 거다. 이게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인가. ‘유능하고 능력 있는 사람만 세상 살아가라 하는 법은 없다는 것이 바로 달팽이가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한 시간 동안 50m를 기어가지만 달팽이의 우주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자기의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늦다 빠르다는 아무 필요가 없다. 

 

< 놀고먹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 

죽음은 지금까지 종교도의 문제였고 철학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공학도에게 넘겨야 된다고 본다. ‘죽음을 공학도가 해결하겠다.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다.’ 이 말이 가장 충격적 이었다. 지금까지 죽음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저편 너머의 세계이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 것이었는데 영생의 길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거 아닌가. 정말 눈 크게 뜨고 공부 안할 수가 없는 그런 세상에 와있다. 원장님이나 부원장님 입장에서 볼 때는 연구업적을 내지 못하는 연구원이 있을 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데 그렇게 업적을 못 내가 지고 너 어떻게 할래.’ 라고 하는 마음이 당연히 들것이다. 그러나 더러는 이렇다. 놀고먹는 사람이 있어야 또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도 있는 거다. 그러다보면 이 중에 한 두 사람이 엄청난 연구를 한다. 근데 중요한 사실은 그 한 두 사람은 이 놀고먹는 사람 때문에 연구를 하는 거라는 것이다. 그 두 사람을 위해서 이 공간을 허락하진 않는다. 여러분 그렇지 않은가? 너무 말도 안되는 웃기는 얘기로만 들리는가. 아무튼 느린 걸음으로 간다. 빠른 걸음으로 간다.’ 가 아니라 각자의 인생의 속도를 허락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달팽이를 통해 배워야 한다. 이 말은 여러분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업적도 내지 말고 들입다 놀아라. 라는 말은 아니다. 연구를 하는데 안되는 게 있다. 그럴 때 실망하시지 말라는 거다. 스스로의 느린 걸음에 대해서 낙담하거나 좌절하는 것은 과학도에게는 금물이다. 과학자는 열정이 식으면 안 된다. 종교인과 과학자가 가야할 길 열정 식으면 이거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실패한 것 앞에서 또다시 열정을 불태울 수 없다. 그런다면 그때는 정말 과학도의 명함 내놓아야한다. 그런 사람에게 국가가 녹을 줄 수는 없다. 

 

< 저항하지 않는다.... > 

두 번째는 달팽이는 저항하지 않는 생명체라는 걸 우리는 꼭 기억해야한다. 여러분 혹시 실험을 해보셨는지 모르는데 칼날이 번뜩번뜩하는 것 위에 달팽이를 올려놓으면 그 칼날을 미끄러져 기어가는 달팽이는 절대 몸이 베이지도 피도 나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점액질이 나오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점액질만 가지고는 몸이 안 베일 재간이 없다. 칼날의 번뜩거림보다 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못 베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신기한 생명이다. 저항하지 않는 생명이라고 하는 건 나와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할 메시지 중에 하나다. 우리는 아침에 눈만 뜨면 밤에 잠들 때 까지 저항하면서 살고 있다. 좋다 싫다, 나쁘다 예쁘다, 이렇다 저렇다, 기분 좋아, 기분 나빠, 그리고 사람을 평가하느라고 온종일 저항한다인생을 살다보면 자기에게 닥쳐오는 걸 만나야 할 때가 있다. 만났을 적에 피해서 돌아가려고 하지마라. 지금 이 순간 그걸 피해서 돌아가면 저 골목에서 그것이 기다리고 있다가 골목에 숨어 있다가 나와서 또 만나게 된다. 언제 만나도 만나져야 하는 것 일 때는 반드시 그게 내게 돌아오지. 피해서 도망갈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 말은 홍수가 나서 떠내려 오면 자기가 헤엄을 좀 칠 줄 안다고 물살을 헤치고 이리 비틀어보고 저리 비틀어보다 힘이 쫙 빠져서 죽는다. 근데 소는 이러나저러나 헤엄을 못하니 그냥 어화둥둥 떠내려가는 거다. 그러다보면 하류에 가서 빠져나올 수가 있다. 닥쳐온 상황에 대해서 그것을 저항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고 그래서 거기서 지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삶은 더 나은 발전의 도약을 만들어준다. 

 

< 멈추지 않는다.... > 

세 번째가 달팽이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생명체라는 것 또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달팽이는 눈이 없고 더듬이로 간다. 더듬이로 어디에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를 딱딱 짚으면서 가는데 앞에서 위험 물질이 나타나면 그냥 몸뚱이를 싹 말아가지고 자기한테 딱 맞는 껍질 속으로 쏙 들어간다. 호랑이나 사자는 먹이를 물어뜯는 이빨을 가지고 있다. 강인한 이빨. 고슴도치는 가시를 가지고 있고 뱀은 독을 가지고 있고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뭐 한 가지의 방어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달팽이는 아무 무기가 없다. 스스로를 보살필 무기라는 것 자체가 없고 위험이 오면 그냥 자기 집 속으로 들어가서 위험을 잠시 피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 다음에 달팽이가 앞으로 전진은 되는데 후진은 안 되는 건 아시는가. 위험이 있나 없나 확인 후 또 앞으로 전진 한다. 계속 자기가가 가야할 길 만을 향해서 정말 뚜벅뚜벅 나아간다. 근데 우리는 조금만 힘들면 그만 손을 놓아버리고 싶어지고 그냥 모든 걸 때려치울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니체가 ‘20세기 30세기를 살아보고 고통스럽다고 명함 내밀지 마라. 적어도 일만 년에서 이만 년을 죽었다 태어났다 죽었다 태어났다를 해보니 이거 진짜 힘드네.’ 하고 그때 가서 명함 내밀어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업적, 실적 내놓을게 없으면 아, 어떡하면 좋지. 고민을 하는 것은 좋으나 낙담과 절망을 통해서 스스로가 더 이상은 일어나지 못하겠네. 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지금 니체가 하고 것이다. 

 

< 쓰나미... 한그루 묘목.... > 

인도네시아에 2003년 쓰나미가 왔다. 전 세계 각국에서 봉사대가 가고, 의료진이 뜨고 도움을 주러 갔다. 그 마을 전체가 바닷물이 들어와 헤일에 휩싸여 그 마을 전체가 통째로 날아갔다. 사진전을 갔다가 굉장히 감동 있는 사진 한 점을 봤다. 사진 속에 네 살에서 여덟 살까지 먹은 꼬마들이 오물오물 모여가지고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황폐한 마을에 들어가서 나무묘목을 심는다. 그 광경을 본 외국인들이 아이들에게 얘들아. 거기에 그 나무를 심는다고 이게 뭐 너희들에게 힘이 되겠니?’ 라고 묻는다. 그랬더니 그 중에 일곱 살 먹은 꼬마가 이렇게 대답하는 내용을 그 사진에 밑에다가 붙여놨더라. ‘맞아요. 이 묘목이 거대하게 밀려오는 해일을 막지는 못할 거예요. 하지만 자꾸 절망하려는 내 마음을 붙들어 줄 수는 있지 않겠어요? 난 이런 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먹는 게 어른이 아니더라. 정말 자기가 위기 앞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가 진짜 어른을 판별하게 한다. 

 

< 통찰의 힘... > 

어느 관점에서 누가 보느냐에 따라 통찰의 힘이 다르다. 내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불평, 불만 밖에 없다. 나를 통해서만이 우주가 펼쳐지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내 위치에서만 세상이 돌아가주라는 법은 없다. 나의 우주와 그대의 우주. 나와 그대를 제외한 나머지 우주는 전부 물질 우주다. 나와 그대와 물질우주의 세계가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되는 세상 속에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내 우주 밖에 없다. 내 시각을 빼서 저 대상 사물이 나를 보고 있는 걸로 보게 될 때 정말 세상은 달라진다. 세상 사물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를 볼 수 있도록 또 하나의 눈을 뜰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 역할을 바로 과학도인 여러분이 해주셔야 한다. 우리가 이런 걸 깨달을 수 있도록... 과학자들의 눈은 바로 그런 거 아닌가. 정말 인생에서 우리는 멈추고 싶을 때 있고 주저앉고 싶을 때 있고 그만 살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여기 계시는 여러분에겐 그런 경우가 거의 없을 지도 모르겠는데 이 세상 바깥. 바로 이 키스트 바깥만 나가면 그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라고 하는 말을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그게 나의 입장에서만 바라봐서는 세상은 전혀 통합적으로 보아지지 않는다. 이제는 지식이 경쟁력이 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냥 밥하는 아줌마, 시골에 있는 할머니도 인터넷 뒤지면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지식이 무슨 경쟁이 되겠는가. 오직 통찰의 힘이 앞으로 21세기를 이끌어 가는 새로운 경쟁력인데 과학도인 여러분이 해주셔야 되는 역할인 것이다. 

 

< 인생의 목표... > 

정말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어른다운 것일까. 누구는 판사, 검사. 누구는 과학자. 누구는 의사. 뭐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직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은 아닌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몸 받아 올 때 과학자가 되려고 이 세상에 온 거 아니고 의사 되려고 대통령 이런 직함 가지려고 세상에 오지 않았다. 이건 수단이다. 이 세상에 와서 살다보니 우리에게 그 역할이 주어졌고 거기에 우리가 기여해야 되는 바가 있다 보니 저는 종교인이라는 걸 선택했고 여러분은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인생의 목표는 뭘까. 정말 있다면 한가지다. 나 자신의 성장과 타인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온 것 밖에 없다는 거다. 그게 인생의 목표이다. 내가 고통 받고 싶지 않듯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주지 않을 수 있는 것. 내가 행복 하고 싶듯이 다른 사람이 행복을 완성할 수 있도록 협조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거다. 지금 이 시대는 패밀리의 개념을 다르게 가지기를 바라고 있는 시대다. 내 아들 딸. 내 자식, 김씨, 박씨 그 다음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이렇게 영역을 정하고 어느 대학 출신이냐 이렇게 라인을 정하는 사람살이가 아니라 이 모든 경계를 다 넘어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내 부모 형제 아니었던 자가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마음.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사실이다. 이런 생각과 마음을 가질 때 어떻게 그가 고통 받는 걸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으며 그가 행복한 것을 보는 순간 어떻게 시기심과 질투심에 내 눈이 멀 수가 있겠는가. 라는 마음을 가져주는 자비심이 없이는 그게 종교가 됐건 판사, 검사, 의사가 되었건 과학자가 되었건 그것은 반쪽짜리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 마무리말... >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간다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지혜를 풀어 놓을 수 있고 또 내가 남을 도울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협조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60년에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노인국가 1위가 된다고 한다. 과학의 발달로 우리의 수명은 늘어났다. 연장되고 늘어난 이 수명을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와 있고 그것은 과학도인 여러분들의 몫이기도 하다. 부디 고통 받으며 무지몽매하게 어리석게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 여러분의 과학적 업적과 연구가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되고 그들의 행복의 길에 비단길을 놓아줄 수 있는 길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곧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온다. 내가 있는 사찰에 아름다운 등불을 켜고 KIST에서 이렇게 과학을 연구하고 계시는 여러분 한분 한분이 부디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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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사이언스] KAOS 강연 '착각하는 뇌'

 

KIST 뇌과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단의 정수영 박사님이 재단법인 KAOS에서 진행하는 뇌 관련 강의를 하셨습니다. 영상과 재미있고 쉬운 설명을 통해 뇌가 어떻게 사물 정보를 왜곡해서 받아들이는지 그 원인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요즌 KAOS 강의 신청하는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다행히도 YTN 사이언스에 그 영상이 링크되어있어서 소개드립니다. 아래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셔서 강연 들어보세요 ^^

 

[YTN 사이언스 방송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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