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규제, 좋은 규제 …

‘테스트 베드’로 가려내자

 

1826년 영국에서 등장한 증기자동차는 당시 마부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마부들의 청원으로 1865년 영국에는 적기법(Red Flag Act)이라는 교통법이 제정됐다. 시내에서 차량들은 붉은 기를 든 보행요원의 선도 아래 마차보다 느리게 주행하도록 했다. 1896년까지 지속된 이 법은 훗날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독일 등에 뒤처진 원인이 됐다.법철학 거두인 독일 라드부르흐 는 법이란 사회에 안정성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과학기술과 법은 상충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혁신 속도가 글로벌 경쟁의 핵심인 지금, 우리의 법규제 현실에 19세기 적기법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최근 언론에도 등장하듯 드론, 자율주행차, 유전자 가위, 제대혈 활용 줄기세포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이 가이드라인 없이 규제만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내 규제를 피해 해외에서 연구가 진행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각종 질병 진단기술 등은 원격진료 등과 연계하면 그 효용성을 높일 수 있지만 관련 법에 가로 막혀 실용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우버와 같이 신사업을 개척하는 기업들은 현재의 촘촘한 규제망으로 국내에서 사업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규제가 기술혁신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적절한 규제는 새로운 시장과 수요를 만들어 낸다. 기후변화협약은 탄소저감 기술개발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안전·환경 등의 규제는 기업 R&D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한편, 인공지능 등 인간 존엄성 침해의 우려가 있는 신기술은 적절한 규제와 통제장치가 필요하다. 주요 선진국들이 혁신을 장려하는 ‘좋은 규제’와 신산업을 가로막는 ‘나쁜 규제’를 분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곧 출범할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관련 법·규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논의체계가 수립돼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안정성과 혁신의 가속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한다. 그러기위해선 연구자, 신기술 창업·혁신가, 법·제도 전문가들이 모여 신기술이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을 논의·시험하는 ‘테스트 베드’가 필요하다. 사회적 안정성과 기술혁신의 공존을 위해 현실의 한계를 극복할 그들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공유해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세계 박람회, 에펠탑, 세계 최초 지하철 등이 등장하며 과학기술이 프랑스의 경제·사회·문화·예술 융성기를 견인한 시대를 아름다운 시절, ‘벨에포크’라 부른다. 삶이 윤택했던 시절을 그리워해 붙인 이름이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 시대를 지속가능한 벨에포크로 만들기 위해 ‘나쁜 규제’를 분별하고, 혁신을 촉진시키는 ‘좋은 규제’를 함께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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