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환경' 반도체기술로 미래 열자

 

NASA의 토성 탐사선 '카시니'는 20년이 넘는 기나긴 우주여행을 마치고 2017년 9월 15일에 토성에서 그 생을 마감했다. 카시니를 제어하는 컴퓨터는 우주의 극한(극저온·방사선)환경에서도 오류 없이 그 기능을 잘 수행했다. 여기에 사용된 중앙제어장치(CPU)는 MIL-STD-1750A라는 16비트 CPU이다. 원래 F-16/F-18 전투기, 공격용 아파치 헬리콥터의 핵심 중앙컴퓨터로 설계·제작됐지만, 처음부터 극한 환경에서의 사용을 고려해 만들어진 덕분에, 미국의 달·화성 탐사선과 인공위성, 우주탐사선 등에 적용됐다.
 
또한, 미국 스페이스 셔틀의 중앙컴퓨터는 인텔 80386 32비트 CPU였고, 대부분의 주변 제어장치도 인텔 8086 16비트 CPU를 탑재해 2011년 스페이스 셔틀 프로그램을 마칠 때까지 계속 사용됐다. 몇몇 독자들은 컴퓨터를 켤 때 부팅용 OS 디스크를 삽입해야 하는 XT 컴퓨터를 기억할 것이다. 16비트 XT 컴퓨터의 CPU가 인텔 8086의 형제인 인텔 8088이다. 이보다 진보한 인텔 80386 CPU를 사용한 컴퓨터가 우리가 잘 아는 386컴퓨터다. 이만하면 그 성능을 짐작할 만하다. 심지어 8비트 CPU도 자주 우주 환경에서 사용된다. NASA는 허블 망원경과 갈릴레오 목성 탐험선에 1802라는 8비트 CPU를 제어장치의 일부분으로 사용했는데, 성능은 70년대 후반 비디오 게임기에 사용되는 정도다. 당연히 위에 기술한 CPU의 성능은 20년 전의 인텔 펜티엄 CPU만도 못하며 일부 휴대폰에 들어있는 ARM사의 중앙처리장치(AP) 보다도 훨씬 못하다. 

 

그러나 이런 우주용 반도체의 가격은 계산능력에 비해 매우 높다. 인텔 펜티엄과 성능이 비교될 정도면 개당 1억 원이 훌쩍 넘는데다가 주문 후 배달까지 1년 이상 걸린다. 또한, 이러한 반도체를 주문하려면 모든 사양과 용도를 제조사에 공개해야 한다. 이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소수의 우주강국에 한정되기 때문에 국가 간 전략기술 이전에 대한 긴 행정적 협상과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반도체는 0~70℃의 온도와 5~10Krad(누적 방사선 흡수선량 단위)의 방사선량을 견디면 되지만, 우주(항공) 반도체는 영하 55℃ ~ 영상 125℃의 온도, 무려 1만Krad에 달하는 방사선량을 견뎌야할 뿐 아니라 2000G(중력가속도) 이상의 충격도 견뎌야 한다. 지금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은 우주 환경에서 쏟아지는 방사선에서 몇 시간도 버틸 수 없다. 50Krad 정도의 방사선에 누적 피폭되면 대부분의 상용 반도체 소자는 손상된다.

 

1년 이하로만 사용한다면 일반 상업용 반도체 보다 내구성이 좋은 산업용·군사용 반도체를 선별해 인공위성을 제작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고가의 발사비용을 고려한다면 1년 이하로 사용하기 위해 위성을 발사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 최소 10년에서 최대 40년간 우주 환경에서 고장 없이 동작하려면, 재료의 선택 뿐 아니라 소자의 설계부터 달라진다. 우주 반도체에는 사파이어 혹은 석영 위에 실리콘을 씌운 것, 3-5족 화합물이나 질화갈륨, 탄화규소 또는 다이아몬드가 사용되며, 고장에 대비해 동일 회로를 복수 설계한다. 그 외에도 테스트할 항목이 수없이 많다 보니 가능하면 오랜 기간 사용해온, 오류가 발견되지 않고 검증된 CPU로 설계하는 것이다. 즉, 상용 반도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설계·제작되다 보니 최신 실리콘 반도체에 20년 이상 뒤처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주용 반도체들은 1년에 수백 개에서 수천 개 정도만 제작되고 대량생산용 대규모 반도체 라인을 우주 반도체 생산을 위해 재설정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외국의 경우 국책연구소나 방산기업에서 직접 독립적인 소규모 반도체 공장을 운영해 특수 목적용으로 제작하는 실정이다. 또한, 극한 환경 반도체 기술은 우주용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지만, 원자력 발전소 제어용 반도체, 방사선 유출 환경에서 작업하는 재난구조 로봇 등에도 사용된다. 이 경우 더욱 강력한 내방사선 반도체가 요구된다. 일본 후쿠시마의 파손된 제2원자로에서는 최대 시간당 65 Krad 정도의 방사선이 누출되고 있다고 보고됐고, 이 정도면 내방사선 반도체로 제작되지 않은 전자장비는 수십 분 이내 모두 멈추게 된다. 사람의 경우에는 30초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극한 환경 반도체 기술의 경우 국내에서는 경제성 등의 이유로 필요할 때마다 구매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극한 환경 반도체 개발에 사용되는 설계, 재료, 공정 및 환경 제어·측정 기술들은 항공이나 군사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반도체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일반대중이나 정책결정자들의 관심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는 전투기 레이더의 핵심소자부터 전기자동차의 전력 분배용에 이르기까지 소위 4차 산업혁명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기술에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극한 환경 반도체 기술을 몇몇 선진국들만 보유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결코 좌시해서는 안되는 분야다.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호가 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물결 속에서 항해를 지속하기 위해선 기초 원천기술, 소재·소자, 특히 산업화의 핵심인 반도체 개발은 필수다. 경제적 논리보다는 전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의 반도체 개발에 대한 지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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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ST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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