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성장, 융합으로 시작하자

 

세렌디피티(serendipity)! 위대한 발견은 우연히 일어난다고 했는가. 실상은 끊임없는 노력과 준비, 고민을 딛고 나타난 필연이 우연이라는 기회를 만난 것이다. 우리 삶과 깊이 관련된 기술 가운데 우연히 얻는 기술은 거의 없다. 클릭 한 번으로 원고를 보낼 수 있는 인터넷은 냉전 시절에 핵 공격으로 인한 통신망 손상을 대비해 만들어졌다. 통신망과 정보를 유지하는 분산 시스템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작된 미국 고등연구계획국(ARPA·지금의 DARPA)의 연구 결과물이다. 국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아이디어는 내비게이션, 음성 인식, 무인 자동차, 원격 수술 로봇 등으로 나타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들 기술의 편의성을 누리며 살고 있다. 위대한 기술 진보는 운 좋게 나오는 게 아니다. 창의 아이디어로 출발, 다양한 연구자의 도전과 연구개발(R&D) 체계가 합작해서 만들어졌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연상되는 키워드가 바로 '융합'이다. 디지털로 대표되는 가상과 현실이 서로 섞여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만들어진다. 가상현실(AR)·증강현실(VR) 게임, 콜택시, 배달, 자동차 렌트, 부동산 중개, 은행 거래 등 온·오프라인연계(O2O) 서비스를 대표로 들 수 있다. 기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융합한다. 우리 정부가 융합 연구에 관심을 두고 지원한 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그동안 정책은 이종 기술 간 융합으로 기술의 한계 극복에 집중됐다. 유망 융합 기술을 발굴, 신성장 분야의 기술 경쟁력 확보에 일정 수준의 성과가 있었다. 다만 기술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성과를 국민이 체감하기에는 어려웠다. 기술 간 융합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도 등장, 새로운 이종 분야와의 융합이 필요해졌다.

 

최근에는 이런 변화를 반영해 사회 수요에 기반을 둔 문제 해결 중심 융합 연구, 초학제 융합 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전통문화 연구처럼 과거 문화와 현재 기술을 융합하는 '시간 융합'이 있다. 인문 사회가 문제를 발굴·기획하고 과학 기술로 해법을 제시하는 융합도 있다. 융합형 인재 양성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일부 초·중·고등학교에서 STEAM(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 융합 교육이 시도됐다. 많은 대학원이 융합 커리큘럼을 마련, 전문대학원을 설립했다. 문제 해결 방안 모색과 기술 한계 극복에는 지식, 언어, 문화가 다양한 연구자 간 협력은 필수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융합하고 소통하려면 같은 분야의 협력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도전을 격려하고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리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연구자도 실험실의 결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식과 성과를 사회에 전파하고 가치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융합의 최종 목표는 기술 한계를 극복하고, 그 기술을 사회와 인간의 연결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가 성공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은 이미 선진국이 제시한 답에 있었다. 이 때문에 그 길을 단시간에 효과 높게 되짚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의 R&D 수준과 역량은 이제 이 단계를 넘어야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탐색해야 한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발견과 혁신에는 확신 대신 확률이 존재한다. 가능성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를 탄탄하게 기획하고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그다음에 두텁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방향 전환을 위해 융합에 대한 기본 정책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 정책을 통해 기술이 진보하고 융합의 저변이 확대됐다면 이제는 융합 연구의 성과를 사회에 적용하고,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는 데 쓸 수 있도록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과학 기술에서 우연은 철저히 준비된 곳에서만 나타난다. 선진국의 연구자가 차지해 온 우연한 기회를 우리가 먼저 잡기 위해서는 융합에 대한 인식과 공감대를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을 시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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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자존감' 일으켜 세워라

 

필자가 융합연구정책센터장을 맡고 있을 몇 해 전 일이다. NBIC 융합기술 보고서로 전 세계적으로 융합연구를 본격화한 미국 국립과학재단 디렉터인 미하일 로코(Mihail Roco)가 한국의 국가융합기술정책과 융합연구센터를 벤치마킹을 하고 싶다며 만남을 요청해 왔다. 아직 우리 융합기술수준이 선진국에 못 미친다고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아해 했었다. 한발 더 나아가 EU의 융합연구회에서는 우리 융합연구정책을 배우고 싶다며 기조연설을 부탁했다. 게다가 우리가 과학기술 선도 국가로 올려봤던 그들이 위기라 주장하며 혁신을 추진하는 이유가 바로 한국이라니 납득하기 어려운 하소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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