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 없는일..? 사실은 너무 필요한 일이다... (5월 창의포럼 후기)

   


2018년 5월 창의포럼에서는 풍부한 상상력과 신선하고 유머러스한 시선, 감각적 문체로 독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등단 23년차 여류소설가 ‘은희경’ 작가를 초청했다. 작가 은희경(1959~)은 전라북도 고창출신으로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자대학교,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후 출판사에 근무하던 30대 중반의 어느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대표작 『새의 선물』을 썼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이후 《타인에게 말걸기》,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중국식 룰렛》 등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96년 문학동네 소설상을 비롯하여 1997년 동서문학상, 1998년 이상문학상, 2000년 한국소설문학상, 2002년 한국일보문학상, 2006년 이산문학상, 2007년 동인문학상, 2014년 황순원문학상 등 안받은 상이 없을 정도로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현재 활발한 집필활동과 더불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자그마한 체구에 은회색 자켓과 데님 계열의 푸른색바지, 등까지 내려오는 갈색톤의 웨이브진 긴머리 그리고 의상과 잘 매치되는 멋스런 파스텔톤 줄무늬 머풀러를 매고...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로 다소곧이 우리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은희경입니다’ 로 인사를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른 시간인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와 주셨다. 이렇게 일찍 일과를 시작하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나도 평소에 지금쯤 일을 시작할 시간이긴 하다. 작가들이 대부분 밤에 작업을 많이 하는데 난 아침에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키운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아침형’이라는 건전한 생활습관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곳이 일산이어서 이곳에 오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여기 KIST 북문에 도착한게 7시 반이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예외적인 날이다. 그런데 이른 시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벌써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 하나쯤은 그냥 가볍게 살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 날씨... 커피... 잡념... >

오늘 비가오는 날씨에 이렇게 KIST에 오게 되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날씨 굉장히 좋아한다. 왜냐하면 뭔가 이야기가 시작될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지 않는가. 작가들이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라고 하면 ‘아, 역시 감수성이...’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작가들은 그렇게 감상적이지 않다. 감상적이면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작가들 만큼 냉정한 사람은 없는거 같다. 냉정해야지만이 휴머니즘을 설득력 있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날을 좋아하는 것은 일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나가놀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일이 좀 잘 된다.

  

오늘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KIST에 왔는데 오늘이 이슬람 라마단 시작일이라고 한다. 여기 와서 아침에 석잔의 커피를 마셨는데 평소하고 비슷한 양이긴 하다. 오늘같이 라마단을 시작을 하면 이슬람 신자들은 새벽 4시부터 밤 7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물도 못 먹는다. 그런데 의외로 고통스러운게 커피를 못 마시는 거라는 친구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잡념이 많은것도 작가의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말씀드릴 것은 작가들의 잡념 같은것 일수도 있다. 왜냐면 잡념이라는 것은 모두가 한 방향을 가리켜 보일 때 그곳에서는 안보이는 것일수 있는 것이다. 어떤 상투적인 것들, 그리고 이미 결정 되어버린 것들, 틀에 갇힌 것들... 그런 것들로부터 되도록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보고 인생에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과학자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작가들이 과학자들을 만나길 좋아하고 수학자의 사랑, 과학자의 사랑 이런 소설들도 꽤 있다. 소설가나 과학자나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야 될 환경, 지니고 있는 어떤 조건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너무나 서로 상반된 방향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서로 매력을 느끼나 보다.

  

< 문학... 도끼로 내면을 깨는것.... >

작가들은 어떻게 다른 방향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또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는지 그런 말씀을 좀 드려보려 한다. <행복에 대한 질문, 문학>이라는 제목을 이곳 담당하는 분하고 상의를 하면서 정했는데 조금 어색하긴 하다. 왜냐면 문학이 행복이라는 것하고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은 불편한 걸 자꾸 들춰내는 것이다. 누구는 그런 말도 했다. ‘문학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내면을 깨는 도끼여야 된다’ 이런 말을 했는데 얼어붙은 내면이라는 것은 그냥 우리가 상투적으로 살고 있는 어떤 삶의 패턴이나 또 우리 머릿속에 굳어져있는 어떤 그 고정관념 같은 것,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혜택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여러가지 특권들까지 포함된다. 쉽게 이야기하면 현재 내가 알고 있는것 안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그런 보수성이 우리의 내면 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자기자신을 ‘나 보수적인 사람이야~~ 나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고, 타인을 이해하고, 나 열린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그 모든것은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뀐다. 우리 자신이 유기체이기도 하고 모든 환경은 유기물이다. 과학자들 앞에서 이런 말은 좀 이상한거 같지만 어쨌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그런것들... 어떤 의심과 불온함이 문학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패턴이라고 부를수 있는 얼어붙은 내면을 깨주는 도끼가 곧 문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것 같다.

  

만약에 <행복에 대한 질문, 문학> 이렇게 이야기 했을때 그 뜻이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 가’에 대한 질문이라면 이것은 자기계발서의 다루어지는 부분이다. ‘무엇이 행복이냐. 무엇이 행복인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하면 그것은 인문학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너무 자기계발서의 세계에 빠져있다. 물론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는 거, 내가 충분히 어떤 것을 우위를 점하는 것... 그런 방법이 어쨌든 우리에게 굉장히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균형을 잡아주는 <추> 가 바로 인문학적인 생각이라고 난 믿고 있다. 균형을 잡아주는 추가 무거워서 귀찮긴 하다. 하지만 이것이 어딘가에서 내 중심을 잡아줘야지 앞으로 나아갈 때도 나의 좌표를 읽으면서 나아갈 수 있다.

  

< 내 방식의 휴머니즘... >

지금 사회가 너무 자기계발서의 세계 속으로 치우쳐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한다. 예전에는 강연할 때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난 인간이 기본적으로 나약하고 모순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을 위대하다는 어떤 틀 속에 자꾸 넣으려고 하고, 미담을 만들고,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포장하고 하는 이런 것들이 인간에게 위로가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추악한 점, 모순 이런 것을 그대로 인정하게 하는 것이 내 방식의 휴머니즘이었다. 소설 속에 정돈된 모습이 아니라 화장실 문을 열어보고, 빨래를 들춰보고 이런 식으로 까칠하고 삐딱한 소설을 많이 썼다. 평론가나 독자들이 ‘아, 은희경 소설은 너무 냉소적이다, 너무 페시미스트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난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휴머니즘의 방식이었다. 섣불리 위로를 하거나, 상처를 덮거나, 화해하거나 이런 것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싸울 사람들은 싸워야 하고, 도저히 안맞는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 하고, 그런 것을 냉정하게 보자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그래서 강연을 다닐 때 너무나 좋은 결말을 갖고 그런 것이 위로고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린 조금 더 냉정해져야 된다. 거리를 둬야 된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 우리는 너무 한쪽으로 경도되어 있다... >

요즘 강연에서는 무슨 얘기를 하냐면 ‘책을 좀 읽읍시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한다. 오래전에 어떤 의사, 교수 이런 전문가집단에서 독후감 심사를 한 적이 있다. 그 대상이 되는 책이 여러 권 있었는데 거의가 자기계발서에 대한 독후감을 냈더라. 그때 유행이었던 자기계발서가 <감성지수를 높여라>, <EQ를 높여라> 등등이었다. 그런데 정작 고흐의 산문집, 고흐의 편지글, 소설 이런건 안본다. 감성을 키우는데 있어 직접 그림을 보고 또 소설을 읽고 이런 걸 접하면서 자신의 감성지수를 키우는게 아니라 <감성지수를 키워라> 이런 책을 보는 거다. 이제 모든것을 정보로만 여기고 자기 감정이나 자신의 판단도 정보로만 생각하지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어떤 감각이나 통찰 이런 것을 중요하게 안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감성을 키우라는데 감성을 키우라는 잔소리를 읽고 있지 진짜 감성을 키우려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십여년 사이에 정치적인 것도 있고 사회적인 것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들이 너무 실용적인 세계... 즉 나의 이익을 위해서 ‘경쟁에서 이기는 것’ 이런 것에 대해서 너무 뻔뻔스럽게 경도되어 있는것 같다.

 

< 소설가의 눈으로 보는 우리사회... >

예전에 내가 자라던 시기에 억압을 느꼈던 것은 허세, 허위의식같은 거였다. 예를 들면, 혼을 담은 시공... 무슨 자기 직업에 혼까지 담는가. 모든 것이 허세와 허위의식이 너무 많았다. 경제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던 그 시기에 이런 이데올로기에 얽매어 너무 억압을 많이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래서 그런 허세를 부리고, 어려운 책 끼고 다니고 이런 것을 비웃는 글을 많이 썼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그런게 없이 드러내놓고 자기 욕망, 나만 이기면 된다는 거, 그런 거에 대해서 너무 노골적이 된거 같다. 그게 난 그 몇년 사이 우리 사회가 너무 이렇게 실용적인 것을 강조하고, 자기 이익만 쫓는 그런 경향이 노골화된 이유가 뭔지 너무 궁금하다. 이건 사회학자도 얘기할 수 있고, 정치적인 쪽으로도 분석할 수 있다. 여러가지 관점이 있겠지만 소설을 쓰는 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즉물적인 세계에 빠져 들었나 곰곰히 생각해 본다. 어떤 위기감, 불안도 있고 자기욕망이 실현되지 못할거라는 것에 대한 자기방어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자기 자신의 좌표를 읽지않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얼어붙어있는 얼음덩이(내면) 즉,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세계 안에서 그 시스템 안에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려고만 한다. 이 시스템이 왜 잘못됐는지, 이 시스템이 뭘 어떤 식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는지...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안하게 된거 같다. 난 그런 질문이 정말 진정한 행복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인문적인 깨달음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좌표를 읽는 어떤 생각의 사생활이 없고 자기 스스로가 뭔가를 생각해서 자기를 알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자꾸만 자기계발서같은 것에 조언을 구한다. 멘토를 찾고 하는것이 자기 스스로가 선택하는 삶에서 멀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

소설을 읽는 독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요즘 현실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어서라고? 인터넷 때문이라고? 일부만 맞는 말이다. 소설을 안 읽는 것은 최근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이란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현실이 힘들수록 더 설득력을 얻는 것 같다. 우리 모두 스펙을 쌓고 취업을 하고 생활비를 벌고 자리보전을 하기 위해 눈앞의 손익계산을 위주로 살아간다. 소설을 읽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 아리엘 도르프만은 소설가이다. 그는 1973년 피노체트가 군부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칠레에서 들었다.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그가 대사관으로 달려갔을 때 거기에는 천여 명의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혁명을 꾀하다 감옥에 갇히고 고문과 추방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밖으로 한발짝만 나가면 대사관을 포위한 군인들의 총에 맞을지도 모르는 고통스럽고 극적인 상황. 그들은 결코 한가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도르프만은 서른 명쯤 되는 난민들이 모여 큰소리로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돈키호테는 스페인 라만차마을에 사는 한 샌님의 이야기다. 그는 기사이야기에 심취한 나머지 즉, 소설을 많이 읽은 탓에 망상에 빠져 스스로를 기사로 칭하고 모험을 떠난다. 풍차를 향해 돌격하고 가상의 공주에게 구애하는 희극이 펼쳐진다. 그럼 도르프만이 목격한 난민들은 긴장을 풀고 웃으려고 돈키호테를 읽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는 군인이었다. 전투 중에 왼팔을 잃었고 해적들에게 포로로 잡혀 지하감옥에서 5년을 보냈다. 천신만고 끝에 조국으로 돌아온 그를 맞아준 것은 냉대와 괄시뿐. 그러나 그는 썩어빠진 스페인 사회를 원망하고 욕하는 대신 그것을 풍자하여 자유분방한 걸작을 만들어냈다.

  

그 책의 서문에서 ‘한가하신 독자들에게’ 라고 씌여있다. ‘한가하신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지상의 모든 불편이 도사리고 온갖 비통한 소리가 모여 있는 감옥에서 수태되었다’ 바로 그것이다. 고통스럽고 급박한 상황에서 난민들이 돈키호테를 읽는 것은 험난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발휘한 세르반테스를 본능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닥쳐오는 불운에 속수무책이지만 고난에 맞서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과 존엄성을 인간은 갖고 있다. 바로 그것을 깨우쳐 주기 때문에 소설은 고통스러운 순간에 힘이 될 수 있었다고 도르프만은 말한다. 개인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찬양하고 실천하는 돈키호테의 정신이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소설을 읽는 일이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맞는다. 소설은 돈 버는 일이나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소설은 그런 일에 내몰리느라 개인의 자유가 속박당하는 시스템에 저항한다. 우리가 남이 조종하는 대로 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라는데 가장 강력한 응원을 보내는 것이 문학이다. 시스템에 따르지 않으니 효용성이 없을 수밖에 없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예술은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불온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별 의미가 없다. 세르반테스가 제시한 비전은 그의 글에 한마디로 표현돼 있다.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것...’ 이 문장을 독자들을 위한 한가한 잔소리로 추천하고 싶다.

  

< 예술, 문학은... 고정관념을 깨는것이다... >

이렇게 문학이나 예술은 지금 결론이 이미 나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고정관념들을 계속 깨뜨린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에 저항한다. 이 시스템 안에서 성공하려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깨치고 혹은 이 시스템이 인간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전향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아이디어와 계기를 주는 발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 문학과 같은 예술이고 인문학이다.

  

‘야, 지금 이렇게 살기 바쁜데 한가하게 무슨 소설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불가능한 현실 같지만 거기서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서 역사가 바뀌어 왔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지금까지도 신분제도 그대로 있고, 여성한테 참정권도 없었을 것이다. 신분사회에서 누군가가 ‘어 왜 이렇게 신분이 정해져 있어? 이거는 좀.. 인간 다 똑같은데 기회가 이렇게 안 주어진다면 불공평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분명히 그 사회에서 불온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은 현재는 없었을 거다. 그런 시스템에서 계속 ‘너 안 돼. 지금 네 신분에 맞는 일을 해야지. 그게 지금 바람직한 일이고 모두가 바라는 거야’ 이런 말에 안주했다면 우리는 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자꾸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현실에 자꾸 적응하려고 하는 것이 쉬우니까.

  

< 누구나 보수가 되기 쉽다... >

대다수에 속해 있는게 쉽기 때문에 그렇게 보수적이 되어간다. 대다수에 속해 있고 어떤 기득권을 누리고 있으면 다른 사람 말을 듣는게 불편해진다. 그러면 점점 편한 사람들끼리만 만난다. 우리끼리 얘기하면 다 우리끼리는 다 맞는 말이다. 그러다보면 자기 확신이 생기고 다른 사람은 틀린것이 된다. 점점 계층은 나눠지고 반목하게 된다.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가 자기 스스로는 ‘나는 유연하고 나는 열려있고 남의 말 다 들을 마음이 있어. 우리 소통하자. 우리 대화 나누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대화로 풀자’ 라는 말은 ‘너 내 말 좀 더 들어봐. 내 말이 맞는거야’ 이런 얘기에 다름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와 약자들이 가만히 있어서 유지되는 평화라는 것은 불합리하기도 하거니와 굉장히 불안정한 시스템이다.

  

어쨌든 간에 ‘어 이상하다? 지금 이게 맞는 건가? 지금 내가 잘하는 건가? 이렇게 가는게 괜찮은 거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나 문학이란 얘기다. 문학이나 기초예술 분야는 어쨌든 계속 현재를 갱신하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다. 어떤 영화감독이 ‘인간은 다 억압 안에서 살고 있어요. 왜냐면 어떤 시스템에 맞춰서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또 경쟁에서 이겨야 되기 때문에... 하지만 본인들은 매일매일 일과가 바쁘고 이런 시스템이 워낙에 그렇게 돌아가게 되어있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라고 이야기 했다.

 

< 인간... 누구나 위로와 되돌아봄이 필요하다... >

예술가들은 그 억압을 관찰하는게 그들의 직업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인간을 억압하는지. 빅데이터에서 이건 어떠세요? 하고 살 물건을 추천을 해준다. 내가 딱 필요했던 물건인데 좋네~~ 하다보면 계속 구매하라는 것을 사고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왜? 편리하니까. 편리하다는 것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기득권 안에서 자기 자리를 공고히 하는 거다. 이런 중에서 누군가가 너를 지켜보고 너를 조종하는 것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이 문학이다.

  

가정을 예를 들어보자. ‘이만하면 우리 가정은 잘 꾸려지고 있어. 왜냐면 내 아내는 굉장히 살림도 잘하고, 내가 원하는 걸 탁탁 알아서 해주고 정말 현모양처야. 우리 애들도 잘 크고 있고 공부도 잘하고 있고 나한테 반항도 하지 않고 뭐 이만하면 잘 되는 거겠지!’ 그랬을 때 어떤 소설은 ‘그럴까요? 당신 아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요?’ ‘집에 있겠지.’ ‘그럴까요?’ 그런 생각을 자꾸 의심을 품게 해준다. 그러니까 불편하고 알기 싫다. 인간사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평온하지 않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도 ‘아... 이 문을 열기 너무 두렵다’ 하는 생각으로 만나야 될 사람이 있고, ‘내가 모르는게 뭐 있어.’ 이런 잘난 사람에게도 깜짝 놀랄만한 일은 매일 벌어진다. 아무리 친구가 많고 모든걸 갖추고 있다고 해도 ‘아.. 정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없을까. 지구상에 누군가 한사람만이라도 지금 깨어서 내 고민을 들어줬으면~~’ 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순간이 일상에서 시간적으로는 조그만 부분이다. 하지만 이 균열은 우리라는 인간을 엄청나게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 그런 것들이 중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 그런 것을 봐주는게 바로 문학이다.

 

< 소설은 생각의 근육... 감정의 근육을 만든다... >

네가 원하는 인생이 뭔지, 네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거기에 맞는 생각을 하고 거기에 맞는 어떤 인생을 살아라’ 라고 하는것이 실제로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어떤 시스템 속에 대해 내 안정된 위치를 흔들지는 모른다. 이것이 바로 좀전에 말씀드린 대로 어떤 <추>이다. 묵직하고 귀찮지만 나의 균형을 잡아주는 추... 이제 우리가 ‘그런걸 깨우쳐 준다면 나도 소설 좀 읽어봐야지’ 모두가 같은 얘기를 할때 ‘그럴까요?’ 그런 얘기를 하는 거라면 나도 한번 읽어봐야지 하는 분이 계실거다. 어렵지 않다. 조금의 훈련이 필요할 뿐이다. 모든 것은 다 훈련이 필요하다. 그림을 보는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이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글을 안다고 문학 작품을 금방 알겠는가. 조금 읽어봐야 된다. 왜냐면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어떤 미적인 도구를 가지고 알려준다. 그냥 ‘재난에 처한 사람하고 그 가족과 자연재해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을 우리가 도와야 된다.’ 이렇게 한마디로 하면 될것을 소설은 몇권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루키라는 일본작가를 많이 아실 거다. 하루키가 쓴 소설 중에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라는 소설이 있다. 중편소설 몇개를 묶은 책인데 고베 지진에 관한 얘기다. 그런데 그 소설에 지진 얘기 하나도 안 나온다. 작가들이 어떤 사건을 소재로 할때 자기 방식으로, 자기 미의식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어떤 작가는 다치고 죽고 이런 사람들에 대한 비극을 쓸 수도 있고 또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어떤 죄의식이나 이런 걸 쓸 수도 있을거다. 근데 하루키는 어떤 걸 썼냐면 지진 얘기 하나도 안 나오고 그냥 평범한 일상이다. 평범한 일상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어떤 사람은 홈리스로 살아간다. 알고 보면 그사람은 안정된 직장도 있고 가족도 화목하게 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근데 이 사람이 혼자 떠돌고 있다. 왜 그러냐면 뭔지 자기가 그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거에 대한 어떤 죄책감을 계속 느끼는 거다. ‘지진 이후에 이 사람은 사회적인 무엇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설명 안 하는게 문학이다. ‘아 왜 설명을 안 해주는 거야. 그래서 왜 이 사람이 이러는데’ 하는 것을 독자가 알아가는 동안에 스스로 어떤 재난에 대한 비극도 인식하게 되고, 소중한 것을 잃었던 사람들하고의 연대감, 그 사람의 고통에 연대감을 느끼게 되는 거다. 이런 것이 문학의 방식이기 때문에 픽션이라는 것은 읽는 사람이 생각할 자리를 많이 만들어 놓는다. 내가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귀찮은 거다. 하지만 그것이 내 생각의 근육, 내 감정의 근육을 만들어 준다. 우리가 어떤 어두운 문 앞에 서 있을때 두려운 상황...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은 고독감.. 그런것이 잠깐 스칠때 나한테 내 자신의 강함을 일깨워준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작품이 뭔가 각성을 주는 거다. 난 그것을 ‘당신의 통각을 찾아준다’ 라고 표현한다.

 

아까 돈키호테에서도 봤지만 대부분 우리는 계속해서 이시스템 안에서 그냥 살아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먼 데에서 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럴때 자기를 좀 멀리서 보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문학이다. 철학책도 마찬가지다. 장자를 읽어보면 ‘나는 여기서 이정도는 실수해도 되겠구나. 이정도는 조금 실패해도 되겠구나’ 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줄만큼 커다란 그 어떤 스케일을 체험하게 한다. 조금 방식은 다르지만 문학도 조금 더 멀리서 자기를 보게 만든다. 왜냐면 내가 이 시스템 안에서 사고하던 그 방식이 아니니까.

  

<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라는 소설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거다. 영국의 맨부커상 중에서 외국문학에 주는 상. 그 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그 책이 또 소설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소설을 읽게 만든 경우이기도 하다. 그 소설을 보면 채식주의자라는게 물론 채식을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남편의 시점으로 쓰여 있다. 읽으신 분들도 있을거다. 남편이 한마디로 나는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고 나는 잘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내가 잘한 것 중에 나는 결혼도 좀 잘한 편인데 나는 예쁜 여자도 싫고, 똑똑한 여자도 싫고, 그냥 나를 잘 보필하고 나를 위해서 가정을 잘 이끌어줄 여자를 원하는데 우리 아내가 그걸 잘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아무 불만 없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아내가 자기가 이제 고기를 안 먹겠다고 하면서 나한테도 고기반찬을 안 해준다. 내가 보통 불편한게 아니다. 그래서 심지어 직장상사하고 부부동반으로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자기 아내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이러니까 분위기 싸해지고 남편이 너무 분노가 치민 거다.

 

이 남편 공감된다. 자기 장인 장모한테 다 고자질을 한다. 그러니까 장인 장모 다 ‘이런 기집애가 지가 뭐라고 남편을 고기를 안 해주고’ 이렇게 된거다.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막 야단을 치면서 억지로 고기를 먹인다. 결국 병원에 가고... 그 뒷얘기는 중요하지않다. 이렇게 다 스토리를 말한다고 해서 이게 스포일러가 아니다. 문학작품은 줄거리가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이끌어가는 이야기 속에 배어있는 작가의 생각이다. 즉 작가의 주장이다. 줄거리로만 보면 ‘아 이 여자 왜 이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뭐 좀 남편한테 고기도 해주고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되지. 왜 이러는 거야?’ 이렇게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여자는 폭력을 거부한 거다. 단순히 어떤 육식의 폭력만이 아니다. 남편이 자기를 대하는 방식. 아내를 하나의 역할로만 보는 거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AI가 와서 그 역할을 해도 괜찮은 상황이다. 누군들 AI를 부리고 싶지 자기가 AI가 되고 싶겠나. 아내의 삶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거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에 흐르고 있는 폭력에 대한 고발이 있다. 어린 시절 개를 잡던 군인출신 아버지의 그 야만성... 그리고 그 아버지가 이끌어온 가부장제 안에서의 자기가 순종해야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자기다운 인생을 살 수 없었고, 아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어진 대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자기 인생에 대한 어떤 그 공허감, 두려움 그런 것들이 들어 있다.

 

남성들만 있는 경영자 강연에서 그 소설의 앞부분을 소개했을때 그분들이 그 남편이 뭐가 문제냐고 이렇게 얘기를 하다가 나중에 뒷부분을 알려드렸을때 ‘그 소설 한번 읽어보고 싶다’ 라고 이야기 했다. 근데 그 소설 읽고 실망했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런분들은 더 읽어야 된다. 왜냐면 아직 게임의 룰을 파악을 못한 거다. 소설이라는 것은 성공담이 아니다. 실패 이야기이다. 소설은 문학은 아웃사이더, 소수자, 실패자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 실패하는 이야기이다. 실패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럼 이 세상이 실패자로 다 가득 차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인가? 그게 아니다. 왜 실패했는가를 분석해서 다음에는 성공하려고? 절대 그게 아니다. 성공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주입하고 그 성공에 따르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받고 있는 억압들... 그런것에 대해서 깨우치게 하는 거다. 모든 작가는 휴머니스트이다. 인간에 대해서 애정이 없으면 소설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인간이 뭔가, 인간의 삶은 뭔가’ 이런 것을 관찰하고 이야기로 만드는게 소설가이다.

 

< 쓸데 없는일... 사실은 너무 필요한 일이다... >

어떤 장애를 이겨내고 뭘했다, 역경을 이겨내고 뭘 성공했다 그러면 그걸 보면서 우리 인간은 역경을 통해서 위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소설에 있는 어떤 실패담을 보면 인간은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난 두 깨달음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노력을 해야 되는 쪽인 자기개발서의 세계... 즉 역경을 극복하고 위대함을 찾는 세계에 경도돼 있다는게 문제다.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다는 세계로 조금씩 끌어내주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성공담이 나한테 어떤 인간애를 더 막 고양시키는게 아니라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 공원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아이들 교육을 하거나 다 뭔가를 하고 있다. 휴식이라곤 하지만 모든게 한 순간도 내가 지금 헛되게 보내면 안돼... 하는 이런 강박을 다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오락을 하는데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서 아니라 남들은 이거 한다는데 나도 좀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고있는게 문제다. 멍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것이다. 근데 멍한 시간이 많아야 된다. 그런데 공원에서 다들 무언가를 열심히 히고 있었는데 “와” 하면서 일제히 하늘을 보더라. 무지개가 뜬것이다. 다들 무지개를 보면서 좋아하는 그 장면에서 막 인간애가 샘솟았다. 이 쓸데없는 일을 할때 그럴때 인간이 자기가 되는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우리는 뭔지 시스템 억압 속에서 살아남거나 성공하거나 유리한 자리를 차지한다는데 너무 쫒기는 것 같다. 어떤 평범한 생각 속에 묻혀있는 게, 다수의 어떤 생각 속에 묻혀있는 게, 내게 안전을 보장해 주지만 그것이 나의 행복은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게 내가 여러분께 하고싶은 말이다.

  

< 소설... 새로운 관점의 제시... >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소설이 있다. 우리가 페미니즘책 하면 무슨 굉장히 핍박받은 여성이나 비극에 처한 여성들이 자기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이야기는 그냥 약간 사회학적인 상상일뿐이다. 문학적인 상상은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다. 문학적인 상상은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는 통각을 깨우려는게 문학이다. 어떤 비극적인 독특한 상황에서의 인간애라 하는 이런 것은 조금은 새로운 발견이라기 보다도 약간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약간 가깝다. 사실 북한 문학은 그런게 많다.

  

소설의 이야기를 보면 주인공 여성이 중산층 여성이다. 아무 부러울게 없이 보인다.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남편도 전문직이고, 아이들도 좀 컸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데 이 여자가 자기 방을 원한다. 여성들에게 자기 방이라는게 굉장히 의미가 크다. 버지니아울프의 ‘자기만의 방’ 산문집에 보면 여성은 자기만의 방과 식당에서 마음껏 쓸 수 있는 20실링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 말은 여성의 어떤 자기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 돈을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0만원쯤 된다고 한다. 어쨌든 그 사람도 평범힌 사람은 아니었던 거다. 그 규모가 어쨌든 여성들에게 제일 중요한게 자기만의 방과 그냥 생각없이 쓸 수 있는 그 정도의 돈이다 말했을 정도로 중요한 거다. 왜냐면은 자기라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공간이니까...


근데 ‘19호실로 가다’에서는 주인공 여성이 자기 방을 갖기를 원한다, 물론 남편에게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이 허락하는 방 그런 방은 자기 방이 아닌 거다. 그래서 자기가 어떤 여관에 19호실을 정해 갖고 정기적으로 그곳에 간다. 가서 그냥 가만히 있다 오는 거다. 무엇을 하기 위한게 아니라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니까... 근데 그걸 남편이 알게 됐다. ‘왜 그러지? 무슨 비밀이라도 있나?’ 하고 뒤를 밟고...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그 얘기에서도 이 남편이 이해를 못한다. 부족한게 뭐가 있어서 이러는 걸까? 나한테 말하면 다 해결해 줄 텐데. “너한테 말 안하고 싶은 게 나의 자유야” 그런 것이 있다는 걸 이해를 못하는 거다. 가족인데, 사랑하는 사람인데, 나는 내 아내에게 정말 부족함이 없이 모든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거다. 근데 남편(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되는 거지만 다른 관점을 문학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 문학 작품이라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굉장히 다른 여러가지 관점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방식하고 다른 방식으로 노숙자를 보고, 다른 방식으로 재난을 보고, 다른 방식으로 행복에 대한 개념에 대해 생각하고... 자꾸 다른 방식의 것을 제시한다. 작가들 전부 평소에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어떤 이야기들을 쓴다. 그래서 문학작품들 속 인간들은 전부다 이해할 수가 없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이때 왜 이러는 거야? 너 그여자 사랑하잖아. 그 여자가 지금 너 좋다는데 왜 떠나? 같이 살면 되잖아...‘ 현실에서는 그게 굉장히 쉬운 것 같지만 그 사람의 내부로 들어가면 그것은 좀더 복잡한 문제인 거다. 그런 복잡함을 자꾸 일깨우고 다른 방식으로 하게 하는게 문학작품이다. 그러면 결국 많은 작가들이 인간을 관찰하고, 연구해 보니까 ’이러기도 합디다‘ 라고 소설로 쓰는거다. 어떤것들은 내 생각하고 비슷하고 나를 깨워주지만 어떤 것들은 나랑 전혀 다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면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 마무리 말... >

그럼 어떤 책을 읽어야 되나 하는 문제에 부딛친다. 오늘은 책을 추천하지 않을 거다. 왜냐면 옷처럼 책도 다 자기에게 맞는 책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작가가 되던 시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모작가가 있었는데 10년 전에 읽었을 때에는 이해를 못해 읽지 못하고 그냥 내려놨다. 그런데 10년을 더 산 다음에 더 많이 깨지고, 더 많은 사유의 틀이 늘어났을 때 그 작가가 이해가 됐다. 그래서 사람은 각자 다 다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나한테 반드시 좋으란 법이 없고 싫으란 법도 없다. 그래서 책을 추천할 순 없지만 그런 것을 꾸준한 독서로 책을 많이 접하는 기회를 통해서 자기에게 맞는 작가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문학이라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다른 접근 방법을 떠오르게 하고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틀을 깨는 것이고 그래서 불온하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다. 결국 불온함이 우리의 작은 균열 같은것... 그런것에 대해서 각성과 위로를 동시에 준다. 모든 문학작품이 다 작가가 인간을 보는 방식이다. 그런 방식이 많아지면 그만큼 유연질것이다. 어느 프랑스 철학자가 이것을 ‘문학 작품에서 자기 이해를 벗어난 존재를 만난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이해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나를 보호해 주었지만 그만큼 폐쇄적이었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 그것이 삶의 치유이고 문학이다’ 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오늘 이 문장을 강연의 결론으로 삼고싶다. 경청해 주시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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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사태평~~ 난... 스트레스..!!! (4월 창의포럼 후기)

   

오늘 4월 창의포럼에서는 훈남 외모에 날카로운 분석과 거침없는 진단으로 각종 방송계를 누비고 있는 건강과 심리분야의 힐링닥터... 정신의학과 전문의 양재진 원장을 초청했다. 그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정신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현재 ㈜더진메디베스트그룹 대표이사이자 진병원 대표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02년 ‘진정신과 의원’에서 출발하여 2008년도 부터 <진병원>이라고 하는 알코올중독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특화병원을 개원했으며 2011년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으로 지정받은바 있다.

  

다방면의 다양한 방송프로에서 만나는 그는 사실 알코올중독 치료의 최고 권위자이다. 친근한 외모와 진솔한 언변을 무기로 종편 STORYON 「렛미인」에서 출연자들의 심리 상담을 통해 내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고, MBN 「황금 알」, JTBC 「닥터의 승부」 등에서 유용한 건강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MBN 「동치미」, O TVN 「어쩌다 어른」 등 여러 방송에서 자문위원, 전문가 패널 및 MC로 출연하여 실력을 겸비한 달변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외에도 활발한 강연활동과 2005년에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서를 출간한바 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방송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큰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헤어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은듯한 한껏 멋을낸 머리... 등뒤에 커다란 해골 무늬를 새긴 데님천으로된 셔츠... 핏이 살아있는 검은 바지에 큼직한 버클 장식 혁대... 그리고 흰 운동화... 의사라는 고정관념에서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예인스러운 튀는 복장을 한 그가 우리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정신의학과 전문의 양재진입니다. 반갑습니다’ 로 말문을 연 그는 사회자의 극찬의 소개에 매우 만족해 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 ‘스트레스 그리고 나’ 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과 한 시간반 정도 얘기를 나눠볼까 한다. 크게 개략적으로 스트레스란 무엇인가, 그리고 스트레스가 우리한테 왔을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런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런 순서로 강의를 할 예정이다. 일단 여러분들은 스트레스 많이 받는가?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고 대답을 했는데 어떤게 스트레스 인가? 스트레스가 무언가? 대답하기 싫은데 자꾸 물어보는 이런것도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하면 떠오르는게 주로 부정적인 의미들인데 보통 많은 분들이 떠올리는게 화, 짜증, 답답한 거, 마음대로 안되는거... 주로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데 과연 스트레스가 그렇게 꼭 나쁜 놈일까!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외래어 1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외래어가 꽤나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필이면 이 스트레스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외래어 1위라니.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스트레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환경에서 오는 모든 정신적, 신체적 자극>을 통칭해서 스트레스라고 한다. 즉 스트레스라는 것이 꼭 그렇게 부정적이고 나쁜 놈만은 아니라는 거다. 사실 내가 오늘 강연에 늦을까봐 아, 어떡하지... 빨리 가자! 라고 생각을 하면서 정신적 압박을 받은 것도 스트레스 일거다. 지금 운동하다가 담이 와서 여기저기가 아픈데 이것도 스트레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꼭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것만 스트레스는 아니다.

  

스트레스를 크게 둘로 나눠보면 좋은 놈이 있고 나쁜 놈이 있다. 좋은 스트레스가 사실 여러분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좋은 스트레스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는 거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받는 대부분 스트레스들은 당장은 나를 좀 짜증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거나, 좀 힘들게 할지 몰라도 다 내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자극들이다. 두번째 우리가 이것을 극복할 수 있고 극복해야 되는 스트레스가 좋은 스트레스에 해당이 된다. 즉 우리는 현재 이런 자극들로 인해서 순간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들 수는 있지만 이를 감당하고 극복해냄으로써 좀 더 나은 내가 되는데 꼭 필요한 스트레스를 바로 좋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나쁜 스트레스... 이것들이 문제가 되는데 ‘디스트레스’는 역시 두 가지이다. 첫째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스트레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랫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스트레스가 바로 나쁜 스트레스다. 이 나쁜 스트레스 때문에 살아가면서 사는게 참 힘들다, 답답하다, 혹은 살기 싫다, 그리고 삶의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게 바로 이들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질환들의 주원인으로 작용하는 원인 또한 이들이다.

  

그럼 이런 스트레스가 우리한테 실제로 왔을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자. 여기 첫번째 사진에서 보듯이 커다란 주차장에 무질서하게 여러색깔의 차들이 두엉켜 있고, 또 두번째 사진은 주차된차가 색깔별로 가지런하게 줄맞춰 있다고 생각해 보자. 또 한장의 사진을 보자. 차가 사고가 났다. 앞바퀴 날아가고 뒷유리창 날아가고, 이렇게 사고가 났을때 일반적으로 교통사고에 대한 운전자의 반응을 보면 사고 가까이에서 보험회사에 전화하거나 아니면 그옆에 쪼그려 앉아서 망연자실해 하거나, 뒤차와 사고가 났으면 뒤차 운전자와 멱살잡이 하거나 삿대질하고 싸우는게 우리가 보는 교통사고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데 이 사진속에 이 인간을 봐라. 운전자로 추정되는 그는 기타를 치고 있다. 뭘 말하고 싶은가 하면 똑같은 교통사고라는 스트레스(자극)가 왔을때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보여준 사진이다. 사실 정신과적으로 봤을 때 기타치는 이 사람을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 넌 괜찮은데... 난 속터지진다.... >

지금하는 이야기가 오늘 강의 가장 중요한것 중에 하나다. 우리에게 10이라는 크기의 스트레스가 왔다고 생각해 보자. 스트레스의 크기가 10이니까 그것에 대한 반응도 9나 10이나 11정도로 스트레스에 대해서 반응을 보이는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똑같은 10이라는 크기의 스트레스가 왔는데 그걸 한 2나 3으로 밖에 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좋게 얘기하면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굉장히 답답하고 속 터지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속하는 분들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본인은 본인이 저기에 속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꽤나 많은 분들이 아! 우리팀의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본인은 정작 그것도 모르고 웃으면서 아~ 이러고 있을 거다. 여기 속한 사람들은 딱 보면 해맑고 순수해 보이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굉장히 밝다. 긍정 에너지 뿜어 대서 옆에 사람까지 같이 기분이 좋아지는 굉장한 장점을 가진 반면 단점은 눈치가 없는 것이다. 이분들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모르기 때문에 옆에 사람들이 답답하고 속 터져 죽는 거다. 그리고 이분들은 스트레스가 왔을때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본인은 무병장수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하지만 함께 사는 배우자, 그리고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 그리고 저런 분들을 부하직원으로 둔 직장상사는 암에 걸릴 가능성이 굉장히 올라간다.

  

< 난 왜 거절을 못할까 ?.... >

반대로 똑같은 10이란 크기의 스트레스가 왔는데 이걸 남들보다 훨씬 크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다. 좋게 얘기하면 굉장히 꼼꼼하고 섬세하고 세심한 분들이다. 나쁘게 얘기하면 굉장히 예민하고 민감한 분들이다. 이분들은 둘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한쪽은 좀 부드럽고 약한 쪽에 속한 분들이다. 부드럽고 약한 쪽에 속한 분들의 특징은 첫째로 주변사람들의 평가가 좋다. ‘그 사람 착해. 사람 좋아. 배려심 좋아’ 이런 얘기를 주로 들으시는 분들이다. 두 번째로 저런 분들을 흔히 관찰할 수 있는게 같이 밥을 먹은 후에 식당에서 나가는데 굳이 테이블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일행 중 누군가 핸드폰이나 지갑 같은 소지품을 놓고 가지 않았나 챙겨주시는 분들... 아니면 같이 술 먹고 집에 갈때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아니라 일행 전부를 택시 태워 보내고, 대리 불러 보내고, 다 보내고 나서 마지막에 내가 택시타고 집에 가야 마음이 뿌듯하고 편하신 분들... 세번째는 이분들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인데 ‘이것 좀 해줘.’ 그러면 속으론 진짜 하기 싫은데 ‘응. 알았어’ 하고 뒤돌아서 ‘미쳤어. 미쳤어’ 하고 자책하고 후회하면서도 거절 못하시는 분들이다. 여기에 속하는 분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저분들은 손을 절대로 높게 들지 않는다. 손을 들때 손이 머리보다 올라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손을 보통 어깨 아래로 살짝든다. 그리고 손을 들때 그냥 들지 않는다. 혹시 누가 내가 손드는걸 쳐다볼까 주변을 살피시며 손을 듦과 동시에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손을 내린다.

  

그럼 이분들은 왜 이런 모습을 보일까. 저분들은 특징이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이 남들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남들한테 싫은 소리도 못하고, 나쁜 말도 못하고, 특히 거절을 못하는 특징을 보인다. 저분들이 착해서 주변사람을 그렇게 잘 챙기고 배려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인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거다. 예를 들어 이쪽에 속하는 분들이 거절 못해서 맨날 당하고, 맨날 힘들고 하다가 어느날 굳게 결심을 하고 ‘내가 이제는 거절하고 산다’ 라고 결심하고 거절을 딱 했다 치자. 그러면 거절한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와 상대방이 마음이 쓰여서 일주일동안 잠을 잘 못잔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 또 거절 못하고 다 해주는 거다.

  

< 내가 왜 싸움닭 이야 ???... >

반대로 똑같이 예민하고 민감한데 좀 강하고 센 쪽에 속하는 분들이 있다. 강하고 센 쪽에 속하는 분들의 특징은 첫째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만의 원리원칙이 있다. 이 나만의 원리원칙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법률적으로 대부분 옳은 얘기고, 맞는 얘기고, 좋은 얘기다. 그럼 뭐가 문제가 되느냐. 나만의 원리원칙이니까 나만 지키면 되는데 주변 사람들한테 지키라고 강요한다는게 문제다. 막 떠오르는 사람 있지 않는가? 저분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은 이렇다. ‘사람이라면’, ‘직장인이라면’, ‘어른이라면’ 이런 얘기들을 주로 하시는 분들... 이런 가치관 자체가, 규칙 자체가 나쁜 얘기 아니고 좋은 얘기고 대부분 들으면 다.

  

다 맞는 얘기지만 그것은 본인한테 해당이 되니까 본인만 지켜야 되는데 주변 사람들한테 자꾸 지키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다. 또 저분들의 두 번째 특징은 좋게 얘기하면 사회에서 정의의 사도, 나쁘게 얘기하면 싸움닭이 많다. 예를 들면 지하철을 타고 간다고 치자. 근데 노약자석에 젊은 친구가 앉아있고 다음 역에서 어르신이 타서 그 앞으로 갔는데 얘가 양보를 안한다. 그럼 우리 같으면 ‘아, 어르신한테 양보 좀 하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넘어가지만 이분들은 그런 꼴을 보고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앉아있는 젊은 친구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어린놈의 새끼가 싸가지 없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쫓아낸다든지... 누군가 난폭운전을 하고 지나가면 ‘아, 위험하게 왜 저래.’ 하고 말면 되는데 이미 차는 지나가서 들리지도 않는데 막 소리 지르면서 ‘저런 놈 때문에 대한민국 발전 안된다’ 고 막 소리 지르시는 분들... 그리고 이분들이 가장 자신의 저런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많이 보여주는 곳이 어디냐면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곳인데 우리가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곳들은 주로 음식점이다. 저분들이 유행시킨 유행어가 있다. ‘사장 나와. 점장 나와. 매니저 나와.’ 자, 나 여기 속한다고 손을 들고 싶지만 좀 전에 했던 부정적인 얘기들이 마음에 걸려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닌데’ 라는 생각에 손을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분들을 위한 약간의 변명 혹은 해명을 좀 하겠다.

  

< 나도 장점 있습니다.... >

저분들은 굉장한 장점이 있다. 첫째, 일을 아주 잘한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맡긴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고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는걸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끝까지 하건, 아랫사람을 조져서 끝까지 시키던 어떻게든 일을 해낸다. 두 번째 장점은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근데 아무한테나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 저분들은 내 영역(바운더리)이 있다. 그래서 내 영역 안에 내가 인정해서 집어 넣어준 내 사람들에 대해서 예를 들면 아버지는 별로고, 어머니는 좋고, 형제 중에서도 형은 좋은데 동생은 싫고, 친구 중에서 너는 마음에 들어. 이렇게 내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항상 있다. 그래서 자기가 인정한 내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리 힘들어도 이고, 지고, 안고, 끌고라도 함께 가려는 굉장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분들이 이고, 지고, 안고, 끌고 가는 그분들이 제발 ‘나 좀 놔달라고, 나 좀 그만 끌고 가라’고 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거다. 뭐 이정도 해명을 해본다. 보통 조직사회 수장으로 갈수록 이쪽 성격이 많다.

  

< 나 때문에... 너 때문에 누가 힘들까?... >

다시 정리를 해보면 똑같은 스트레스가 왔을 때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데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지만 답답하고 속 터지는 쪽에 속하는 이분들은 누가 힘들까? 본인은 편하다. 세상 살기 아주 편하다. 대신 주변 사람들이 힘들다. 그럼 예민하고 민감한 쪽에 있으면서 부드럽고 약한 쪽에 속하는 이분들은 누가 힘들까? 주변 사람은 되게 편하다. 이분이 다 챙겨주고 맞춰주고 하니까... 나만 힘든다. 예민하고 민감한데 강하고 센 쪽에 속한 분들은 누가 힘들까? 첫째, 주변사람 힘들다. 맨날 잔소리하고 뭐라고 해대고 자꾸 뭘 시키니까... 근데 문제는 주변사람만 힘든게 아니라 자기자신도 힘들다는 거다. 내 스스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분들이기 때문에 좀전에 이야기한거 같은 얘기를 해드리면 굉장히 억울해하고 서운해 하고 분해하면서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다. 그럼 왜 이렇게 똑같은 스트레스가 왔을 때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일까?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불안도와 민감도라는 것의 차이 때문이다. 누구나 다 불안이나 긴장, 불안도와 긴장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어떤 분들은 불안도나 긴장도가 낮고 어떤 분들은 적당하고 어떤 분들은 불안도와 긴장도가 높기 때문에 같은 스트레스 같은 자극이 왔을 때 다르게 반응을 보이는 건데 그것에 대한 얘기를 좀 하려한다.


<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불안도... 긴장도... >

지금 보는것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피크닉하는 사진하고 주차장 사진이다. 이평범한 일상은 불안도와 긴장도가 아주 일반적인 분들의 모습이다. 다음 사진은 불안도와 긴장도가 아주 높은 분들의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이 피크닉 사진을 보자. 매트리스별로, 파라솔별로, 남자별로, 여자별,로 애들별로, 장난감별로 기가 막히게 줄을 세워놨다. 또 이 주차장 사진을 보자. 노랑, 빨강, 파랑, 까망, 은색, 흰색... 색깔별로 아주 예쁘게 맞춰놨다. 이 사진을 보면서 몇몇 분들은 ‘어우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살아~’ 하고 답답함을 느끼며 흐트러뜨리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분도 있을 수 있다. 또 몇몇 분들은 이제야 무언가 좀 정리가 된 듯한 느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분도 있을수 있다. 그 반응을 가지고 나는 이쪽에 좀 더 가까운지, 저쪽에 좀 더 가까운지를 추정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처음에 보여드린 주차장에 색깔별로 가지런하게 줄맞춰 있는 사진을 보고 다들 기겁하고 있을 때 검은색 차들이 가지런히 서있는 맨끝에 노란차를 발견한 발견한 분... 이 차는 노란색인데 왜 여기 있지? 하면서 나 홀로 속상해 하는분도 있다. 보통 강의를 가면 100명에 1명 정도 있기 때문에 이 컨벤션홀에도 분명히 계실거다. 이 노란 차를 발견하신 분들을 우리가 뭐라고 부르냐하면 ‘불안도와 긴장도의 끝판왕’이라고 부른다. 즉 불안도나 긴장도가 높다는건 뭐일까? 노란 차를 발견한 것처럼 남들 눈에 안 보이는게 나한테는 보이고, 남들 귀에 안 들리는 게 나한테는 들리고, 남들은 눈치 못채는 묘한 분위기라는 걸 나는 눈치를 챈단 말이다. 즉, 남들한테는 자극이 아니고 스트레스가 아닌게 나한테는 자극이자 스트레스이고, 그 각각의 자극을 남들보다 훨씬 더 크게 받아들이다 보니까 하루하루 안정되게 사는데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쏱아야 되는 분들이다. 반면 이런 노란차를 발견한 불안도와 긴장도의 끝판왕 분들은 최고 장점이 센스가 무척 좋다는 것이다. 아까 말한 대로 남들이 못 보는걸 보기 때문에 그런 쪽에 맞는 일을 하면 굉장히 좋다. 특히 틀린 그림 찾기 이런 게임 굉장히 잘할거다.

  

< 누가 날 닮은 아이일까? ... >

그럼 이런 불안도나 긴장도라는 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고 왜 사람마다 다를까? 이 차이는 바로 성격으로부터 오게 된다. 캐릭터, 퍼스널리티라고 하는 이 성격을 100이라고 놓고 봤을때 절반에 해당되는 50%는 언제 만들어지는 성격일까? 이건 가지고 태어나는 성격이다. 이걸 우리가 흔히 기질이라고 이야기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을 하면 아버지 정자, 어머니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고 72시간 내에 어머니 자궁벽에 착상이 된다. 이후 세포분열이 되면서 사람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수정이 되고 착상이 될때 이미 결정이 되어있는 성격이다. 그러면 가지고 태어나는 성격인 기질은 당연히 엄마, 아빠한테서 받는 거다. 이론적으론 이 성격이 엄마, 아빠한테 반반 받아야 될텐데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아실거다. 아이의 성격이 엄마, 아빠를 반반 닮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한쪽을 더 많이 닮게 되어 있다.

  

그러면 누가 날 닮은 아이인가?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집에서 하는 얘기를 하면 안된다. 착하고 말 잘듣고 좋은건 다 나 닮았고 나쁜건 다 아빠 닮았다고... 엄마 닮았다고 이야기들 한다. 과연 누가 날 닮은 애인가?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배우자하고 싸워서 배우자가 꼴 보기 싫어 죽겠을때 똑같이 꼴보기 싫은 애는 배우자를 닮은 아이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경험들 있으실 거다.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애가 누구냐... 엄마, 아빠가 엄청 크게 싸우고 아빠가 확 집을 나가버린 상태에서 엄마와 둘이 남겨진... 아빠 닮은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아이다. 그 아이는 그날은 앉아있어도 혼나고, 돌아다녀도 혼나고, 웃어도 혼나고, 울어도 혼나고... 그러면 누가 날 닮았을까? 날 닮은 애는 화 안났을 때... 평정심 유지하고 있을때 나도 모르게 자꾸 뭔가 눈에 걸리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는 아이가 나를 닮은 아이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이유가 뭐냐면 내가 살다보니 이러이런 나의 성격때문에 내가 항상 힘들었고, 불편했고, 뭔가 문제가 생겨서 그놈의 성격을 좀 고치려고 하는데 진짜 안 고쳐진다. 근데 그런 내 모습이 아이한테 보여질 때 조금이라도 보여지면 ‘야, 쟤 저러다 커서 나처럼 이러면 되게 힘들 텐데’ 라는 나만의 불안, 걱정 때문에 애한테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어 있다.


< 나랑 다른 저 사람에게 왜 끌릴까?... >

이게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겪는 대인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몇번 보지도 않았고 나한테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싫은 사람이 있다. 괜히 정 안가는 사람... 나한테 뭘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사람이 왜 괜히 싫을까? 그 사람한테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반대도 있다. 괜히 좋은 사람, 특히 이성 간에... ‘나한테 딱히 잘해준 것도 아니고 많이 보지도 않았고 특히 내 이상형하고 거리도 먼데 왜 나는 쟤한테 자꾸 끌리지?’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그 사람은는 나한테는 없는걸 그 사람이 가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얘길 한다. ‘이성은 서로 간에 결핍에 끌린다’ 라고 한다. 그러다보니까 어떤 참사가 일어나느냐. 이쪽 동네에 있는 사람들 하고, 반대쪽 동네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끌려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유가 뭐냐면 이쪽 사람들이 볼때 사람들은 정말 멋있다. 왜냐면 자기는 계획이라는 걸 세워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 사람들이 일처리를 계획적으로 해나가는 모습이 되게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이쪽 사람들이 볼때 자기들은 매일 불안과 긴장이 내 어깨를 혹은 목을 짓누르는 것처럼 항상 뭔가 좀 조이는 듯한 삶을 살아서 답답하고 불편한데... 얘네들한테는 불안 따위를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상당히 부러운 것이다. 또 이 사람들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굉장한 불안과 공포가 있다. 그래서 일탈을 꿈꾸지만 이분들은 일탈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항상 정해진 길을 간다. 근데 얘네들을 길이 없다. 그냥 자기 맘대로 막 이렇게 가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또 그런 자유분방함이 부러워서 서로 이런 차이로 끌려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함께 살다가 이런 차이 때문에 죽도록 싸우게 되는 거다.

  

< 좋아서 결혼해 놓고 왜... 죽도록 싸울까? ... >

여러분들이 흔히 겪는일... 실제로 우리한테 부부치료를 받으러 오는 분들 중에 가장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는 커플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조금 생활에서 와 닿게 설명을 하면 이렇다. 이쪽에 있는 사람이 치약을 밑에서부터 열심히 짜 올리면 얘가 가운데를 확 눌러버리고... 반대쪽에 있는 성격의 남편이 자다 깨서 변기 뚜껑을 올리고 볼일을 보고 들어가 잤는데 부인이 아무 생각없이 와서 앉았다 변기에 빠졌다는 둥 뭐 이런 것들... 실 사례도 있다. 나한테 왔던 부부인데 결혼 한지 한 1년 좀 넘었던 젊은 부부였다. 부인의 특기와 취미는 청소와 정리, 남편의 특기는 마신 컵 아무데나 놓기, 물 마시고 여기다 놓고, 콜라 마시고 저기다 놓고, 심지어 화장실에 커피잔이 가있고... 부인이 그걸 맨날 수거하고 다니다가 어느날 너무 화가 난거다. 왜 나만 이걸 자꾸 해야 돼? 그래서 거실에 소파 옆 테이블 위에 남편이 마시다 만 컵을 일주일 동안 내버려 둬봤다. 자 일주일 뒤에 그 컵은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거다. 그러니 부인이 얼마나 화가 났겠나. 남편을 불러다가 ‘야 인간아. 네 눈엔 이게 안 보이냐?’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컵은 남편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남편의 뇌에서는 그 컵을 치워야 될 대상으로 인지하는게 아니라 가구와 마찬가지로 그냥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물건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이걸 치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한다.

  

반대 케이스도 있었다. 이 집은 결혼한지 좀 된 집이었고 나이 차이가 좀 났었는데 남편의 특기와 취미 역시 청소와 정리, 부인의 특기는 어지럽히기...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집안이 완전히 난장판이다. 부인이 깨 있으면 집이 더 더러워지기 때문에 부인을 빨리 재우고 남편이 청소를 한다. 그리고 자고 있는 부인과 깨끗해진 집을 보며 뿌듯한 마음에 잠이 든다. 아침에 출근할때 깨끗한 집을 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그리고 퇴근하고 오면 또 난장판... 남편이 어느날 생각을 했다. ‘이거 내가 자꾸 해줘 버릇해서 이러나’ 그리고 ‘왜 나만 자꾸 이렇게 괴롭고 청소를 해야 되지?’ 그런 마음에 ‘너도 한번 괴로워봐라’ 라고 하면서 일주일 동안 청소를 안했다. 자, 일주일 후에 누가 괴로울까? 남편만 괴롭다. 부인은 익숙한 환경이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 사람... 변하지 않는다... >

그럼 이분들이 안 싸우고 잘사는 방법이 뭘까. 안 싸우고 잘 사는 방법은 딱 하나다. 불편한 사람이 치우는 거다. 대부분은 이쪽에 있는 사람들이 이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청소를 시킨다. 마신 컵 갖다 놔라, 양말 거꾸로 뒤집지 마라, 옷은 벗었으면 세탁기 통에 갖다 놔라’ 라고 10년 동안 보통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보통 살기 위해서, 순전히 살아남기 위해서 변한 척 조금 조금씩 노력을 한다. 그러면 이 분들은 내가 잔소리를 해서 사람을 바꿔 놨다고 되게 뿌듯해 한다. 과연 이 분이 바뀌었는지는 집에 CCTV를 설치하고 일주일만 혼자 여행을 갔다가 온후 CCTV를 보시면 깜짝 놀랄거다. 정확하게 6일 반나절 동안 옛날로 돌아가서 살던 인간이 그 반나절 동안 살아보겠다고 다시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대표적인 유형의 커플이 있다. 이쪽에 속하는 사람(A), 즉 부드럽고 약한 쪽에 속한 분들은 아까 얘기한 것과 같이 싫은 말도 못하고 나쁜 말도 못하고 거절도 못하기 때문에 ‘나는 뭔가 항상 손해보고 산다.’ 라는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다. 근데 반대쪽 사람들(B)을 봤더니 이쪽 동네에 있는 사람들은 할 말, 하면 안되는 말을 다 하는 거다. 그런 부분이 대리만족도 느끼고 굉장히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B가 봤을 때 A는 완전 자기 밥이다. 그렇게 말을 잘 들을 수가 없다. 이분들이 서로 끌려서 같이 사는 경우 어떻게 될까? B는 갱년기 올때까지는 되게 잘 산다. 반면에 A는 어떻게 되느냐. 화병이 생긴다. 그래서 저희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장 주 단골 고객들이 A쪽 분들이다.

  

< 저 인간... 바꿀수가 있을까? ... >

이렇게 ‘사람이 안 변한다’는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정신과의 대전제가 뭐냐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그럼 그게 진짜 안 변한다는 뜻일까. 그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게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인 거다. 그런데 사람이 변하기 위해선 필요한게 3가지가 있다. 첫째 동기가 있어야 된다. 근데 이 동기라는 건 내가 능동적으로 어디 가서 막 찾는게 아니라 주로 수동적으로 당하는 거다. 그리고 긍정적인 동기보다는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 동기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 나 이렇게 살다가 큰일 나겠다’ 아니면 ‘내가 아이한테 이렇게 했다가는 큰일 나겠다’ 혹은 ‘아, 이런 버릇가지고 내 이런 생활습관으로는 회사에서 큰일 나겠다’ 뭔가가 생겼을 때 ‘나 바뀌어야 되겠다.’ 라는 동기가 딱 생긴다. 이런 동기는 많이들 경험해 보았을거다. 두번째는 ‘동기’ 다음에 반드시 필요한 게 의지다. ‘내가 어떻게든 죽어도 바뀌어야 되겠다... 죽어도 변해야 되겠다’ 라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된다. 근데 이 동기와 의지까지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갖는다. 그럼 이 동기와 의지가 보통 며칠 가냐하면 작심삼일로 딱 3일 간다. 보통 3일... 길면 3개월... 세번째가 제일 중요하다. 동기, 의지 이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뭐냐. 바로 충분한 시간 동안의 충분한 노력이다. 그럼 얼마의 시간이 충분한 거냐.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많이 다들 들어보셨을 거다. 어느 한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 1만 시간인데 이걸 24로 나누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 우리가 하루 24시간 잡았을 때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그리고 하루에 8~9시간 일하는 시간, 출퇴근 시간 등 다 빼고 내가 오롯이 이것 하나만을 위해서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보통 하루에 3시간 정도밖에 안 나온다. 그럼 이 3시간을... 일만 시간을 3으로 나누고 그걸 365로 해보면 딱 10년이 걸린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투자해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성격을 바꾸거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행히 일할 때도 할 수 있다. 밥 먹으면서도 생각할 수 있다. 즉, 잠자는 시간하고 기타 잡시간을 빼고 최소 하루에 10시간 정도는 ‘나 이거 변해야지, 나 이거 바꿔야지, 나 이렇게 해봐야지’ 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가 있는 거다. 그럼 일만 시간을 하루에 10시간으로 나누고 이걸 365으로 나누어 보면 3년이 걸린다. 그래서 보통 우리가 어떤 성격 하나를 혹은 어떤 행동 하나를 반복함으로써 나의 패턴으로 바꾸는데 걸리는 시간이 보통 3년 정도이다. 즉 동기가 생기고 의지를 가진 다음에 최소 3년 정도 하루에 10시간씩 꾸준히 노력을 해야 내 성격 하나가 바뀌는 거다. 정확한 동기 혹은 나의 강렬한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나 시선을 바꾸는게 훨씬 더 본인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고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거다.

  

< 유아기... 중요하다~!!! >

앞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가지고 태어나는 성격이 절반, 그리고 절반의 반. 즉 25%의 성격은 언제 만들어지는 성격일까. 이건 ‘아동기’에 만들어 진다. 아동기를 보통 성장발달 쪽에서는 ‘유아기’라고 한다. 유아기 즉 쉽게 생각해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만들어지는 성격이 25%나 된다. 우리나라 나이로 따지면 한 만 5~6세 된다. 그러면 태어나서 유아기 때는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까? 엄마다. 옛날에는 우리 아버지 세대때는 사실 남자가 육아에 참여를 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이 양육에 거의 참여를 안하고 가끔 훈육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쓸데없이 어마어마하게 지나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하나로 집안 분위기가 좌지우지 되곤 했다. 아버지가 술 마시고 통닭이라도 하나 사들고 오면 집안 분위기 좋고, 아버지가 술 한잔하고 인상 막 쓰고 들어오면 어머니가 ‘얘들아 아버지 기분 안 좋으신가보다. 조용히 해라’ 이런식으로 아이의 유아기에 아버지가 영향을 미쳤다.

  

요즘에 젊은 남편들... 한 20~30대 정도의 아빠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부인에게 소환이 되어서 아이 양육에 참여를 하게 된다. 요즘 젊은 아빠들이 몇년전부터 제일 싫어하는 프로가 2개가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와 ‘아빠 어디가’ 라는 프로다. 부인이 시키면 하기 싫고 안해도 되는데 애들이 아빠에게 ‘저 아빠는 하는데 왜 아빠는 안 해?’, ‘왜 아빠는 나랑 안 놀아줘?’ 하면서 애들이 나쁜 아빠로 인식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양육에 참여를 한다.

  

< 내 아이 성격 3/4 은 어디서 오나?.... >

요즘에 젊은 남편들은 아이 양육, 육아에 참여를 한다. 과거에는 참여를 안했지만 현재는 분위기 변했다. 직접 아이 육아에 참여를 함으로써 유아기에 아이가 엄마, 아빠의 영향을 받는다. 성격의 1/4이 첫째 어떤 환경에서 아이가 자랐느냐라는 양육환경, 두번째 어떤 교육, 가정교육을 어떻게 해서 애가 자랐느냐를 가지고 만들어진다. 재밌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이야기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되는 성격의 4분의 3이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인가? 바로 부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거다. 요즘 간혹 강의를 가거나 상담을 하거나 교육을 가거나 했을 때 젊은 부모들 같은 경우에 예전과 좀 다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질문하는게 똑같았다. ‘어떻게 하면 애가 공부를 잘 해요?’, ‘어떻게 해야 집중력을 올릴 수 있어요?’, ‘ADHD 약을 먹으면 진짜 집중력이 올라가나요?’ 이런 얘기들을 주였는데 한 2~3년 전부터 물어보는게 조금씩 변했다. 뭘 물어보느냐면 ‘어떻게 하면 우리애가 좀 괜찮은 사람이 되냐? 어떻게 하면 우리애가 좀 인성이 좋은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느냐’ 라는 인성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한다. 2~3년 전부터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채로 공부만 잘한 사람들이 감옥에 가는걸 정말 많이 본 이후로 인성이 중요하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애가 괜찮은 사람으로 자랄수 있느냐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 있다. 누가 괜찮아야 애가 괜찮아지는가 바로 부모다. 성격의 3/4을 차지하는 부모가 괜찮아야 된다. 즉 내가 괜찮은 사람이고 배우자가 괜찮은 사람이어야 아이가 괜찮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 그 괜찮은 배우자는 누가 선택하나? 결국 누가 괜찮아야 애가 괜찮나? 이게 정답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성이 좋은 사람에게 끌린다. 인성이 좋은 그 사람도 인성이 좋은 사람한테 끌린단 말인 거다. 즉 내가 인성이 좋아야 인성이 좋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커지고... 나와 내 배우자가 인성이 좋아야 우리 아이가 인성이 좋은 사람으로 자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 성격의 1/4 내가 만든다.... >

성격중 나머지 1/4, 이게 바로 10대, 20대, 30대를 거쳐 대략 만 40세까지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성격이다. 과거엔 만 40세면 성격이 굳어진다고 그랬다. 그때는 60살이면 죽었으니까... 근데 요즘에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내가 볼때는 40대 중반 정도까지 성격이 만들어지는것 같다. 그럼 재밌는게 평생 가지고 살아가야 되는 성격의 4분의 1밖에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보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뭐야. 부모가 다 내 인생 이렇게 만든거 아니야?’ 반대로 ‘내가 이렇게 된거 부모 탓이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실제로 상담을 하다보면 그런 분들 꽤나 많다. ‘엄마가 내 인생을 망쳤어요., 아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어요, 우리 부모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등등...

  

그런데 우리가 성격적으로 성숙한다는게 어떤 거냐면 내가 만들어가는 10대, 20대, 30대 동안 내 성격을 잘 만들어서 내가 태어난 기질 그리고 양육환경과 가정교육에 의해서 만들어진 성격을 잘 조절하면서 사는게 바로 성격적으로 성숙한다... 라는 거다. 즉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 탓, 엄마 탓, 아빠 탓을 하고 있는 분들은 ‘나는 정신적으로 혹은 성격적으로 아직 많이 미성숙해요’ 라고 말하는거 밖에 안된다. 한 20대까지는 그 얘기가 통한다. 자기가 만들어온 성격이 조금밖에 안되기 때문에 부모 탓 하는게 이해되고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 하지만 최소 30세가 넘어서 혹은 35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모 탓을 한다는건 ‘나는 아직 내 성격을 잘 만들지 못해서 이걸 조절할 정도의 성숙함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 내 아이... 괜찮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

그러면 아까 얘기한 불안도와 긴장도하고 도대체 이 성격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느냐? 가지고 태어나는 기질 안에 사실 불안도나 긴장도가 어느 정도 결정이 돼 있다. 갓난아기를 보셨던 기억을 잘 떠올려 봐라. 약간 극단적인 예지만 어떤 애는 잠투정 한번 시작하면 기본 한두 시간이고 엄마 팔 떨어지게 만들고 겨우 잠든걸 내려놓으면 또 깨고, 자기가 덮고 자는 이불만 바뀌어도 못자는 애가 있다. 그리고 옆집 아줌마가 아니라 할머니가 와서 ‘아이고 예쁘다’ 해도 낯가리면서 막 우는 애들이 있다. 반면에 어떤 애들은 자나보다 하면 벌써 잠들어있다. 그리고 아무데나 갖다놔도 잘 잔다. 지나가는 아줌마가 ‘아이고 예쁘다’고 해도 방긋방긋 웃는 애가 있다. 즉 애기들은 이미 태어날때 그 기질 안에 불안도나 긴장도가 이미 결정이 돼있다. 전자는 예민하고 민감한 애, 후자는 순한 애... 가지고 태어난 불안도와 긴장도가 기질 안에 녹아있는 거다.

  

근데 사실 더 중요한 건 가지고 태어난 불안도, 긴장도 보다 유아기 시절이다. 이 시절에 가지고 태어난 불안도나 긴장도가 수정이 된다. 예를 들어서 불안도나 긴장도를 높게 가지고 태어난 애가 있는데 이 유아기 때 집안 분위기가 엄마,아빠가 매일 싸우고, 집에는 항상 불안과 긴장이 흐르고, 애는 주로 꾸중 혹은 비난 같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서 자라면 가지고 태어난 높은 불안도나 긴장도가 강화가 돼서 더 올라간다. 반면에 똑같은 높은 불안도나 긴장도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부모 사이좋고, 가정 화목하고, 집안에 항상 안정감이 흐르는 집 그리고 칭찬, 격려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로 받고 자랐다고 하면 높았던 불안도나 긴장도가 완화가 되어 낮아진다. 그렇게 가지고 태어난 불안도나 긴장도를 이 시기에 수정을 하게 되고, 그 수정되고 변형된 불안도나 긴장도를 가지고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보이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 스트레스를 받으면 ?... >

그러면 이런 스트레스가 실제로 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간략하게 몇 가지 이야기 하겠다. 스트레스 받으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힘든 일을 겪으면 마음이 아프다... 하는 얘기들을 하는데 우리의 이놈의 마음은 어디 있을까? 과거의 분들은 마음이 아프다 그러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실제로 굉장히 격렬한 사랑 후에 결별을 할 때나 아니면 정말로 가족의 죽음이라든지 큰 스트레스 앞에서는 실제로 가슴이 아프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가슴에 있을까? 그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은 머릿속, 뇌 안에 있다. 우리 뇌 안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들이 우리의 기분, 감정, 생각 등등을 다 조절해 준다. 근데 이 신경전달물질.. 도파민, 그리고 세로토닌도 많이 들어보았을 거다.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중요한건 이들이 뇌 안에서 자기들끼리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우리의 기분, 감정을 다 조절해 주는데 처음에 얘기했던 나쁜 스트레스,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스트레스, 혹은 오랫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스트레스에 의해서 이들 사이에 균형이 깨져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거다.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진 그런 질환들이 바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주로 다루는 질환들이다.

  

<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다.... >

우울증의 유병률이 대략 몇 퍼센트 될까? 우울증의 유병률은 약 10%다. 유병률이 10% 정도나 되는 질병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예를 들면 여기에 100명이 있다 그러면 이중에 10명은 걸렸거나 걸려있거나 혹은 앞으로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인 거다. 유병률이 10%인데 대신 남녀차가 있다. 여성한테서 남성보다 2배 더 많이 생긴다.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호르몬 때문에 그렇다. 여성 성호르몬이 꼭 성호르몬 역할만 하는게 아니라 그중에 에스트로겐은 아까 언급한 신경전달물질과 더불어서 뇌에서 기분을 조절해준다. 여성에게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전 증후군, 산후 우울증 같은게 생기는게 바로 이 때문이다. 산후우울감은 대략 60%에서 호소한다. 그리고 그중에 대략 20%가 산후우울증으로 간다. 그래서 옛날에 어르신들이 그런 얘기 했다. 애 낳을 때 혹은 애 낳고 나서 초기에 잘해야 그게 평생 간다 라고 그랬는데 그때 잘 못하면 큰일 난다. 또하나 여성이 우울증이 잘 생기는 이유는 결혼하고 한 20년 정도 남편 뒷바라지, 애들 뒷바라지 열심히 했는데 애들은 10대 넘어가면 엄마랑 안 놀아준다. 그리고 남편은 40대 50대까지 맨날 밖으로 떠돈다. 그러면 집안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나는 도대체 뭐하고 살았나. 내 인생은 어디 있나. 이게 빈둥지 증후군이라는 건데 이런 거 때문에 우울증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울증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두가지가 문제 때문이다. 첫째 우울증인지 모르고 지나가다가 더 힘들어지는 경우를 막아보자. 두번째 우울증이라는 병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증상이 심각한 병이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우울한 거를 ‘나 우울증인가봐’ 이런 얘기를 안했으면 좋겠다. 우울증 증상은 내가 이야기하는 것중에서 몇 가지가 골라서 나타난다. 첫번째 실제로 상담을 오신 분들이 ‘저 우울해요. 슬퍼요.’ 라고 얘기하는 분들은 별로 없다. 대부분 뭐라고 얘기 하느냐하면 ‘가라앉는다’ 는 표현 많이 한다. ‘기분이 가라앉아요.’, ‘마음이 가라앉아요.’ 이런 얘기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두번째 그냥 우울한 게 아니라 불안하고 초조진다. 지은 죄도 없는데 막 쫓기는 것처럼 가만히 못 있게된다. 세번째 눈물이 많아진다. 누군가한테 내 얘기 좀 하려고 그러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데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네번째가 제일 중요한 증상인데 만사가 귀찮아진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옆에 해야 되는 일이 있는데 하기가 싫다. 옛날에 재밌게 하던건데 귀찮아서 하기가 싫다. 이걸 무의욕증이라고 한다. 의욕이 뚝 떨어진다. 이게 우울증의 기분증상 중에 가장 중요한 증상이다. 그래서 간혹 가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에게 도움이 되라고 ‘야, 산책 좀 해. 나가서 운동 좀 해. 그러니까 더 우울하지’ 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그건 마치 지금 발이 부러져서 깁스하고 있는 친구한테 ‘야, 다리운동을 해야 빨리 낫지. 뛰어’ 라고 얘기하는 거하고 똑같은 거다.

  

< 우울증... 불면... 그리고 아프다... >

신체증상이 따라 온다. 몸으로 나타나는 증상인데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잘 나타나는 증상이다. 신체증상의 첫번째는 수면이 망가진다. 잠을 못잔다. 자려고 누워있으면 오만 잡생각이 떠올라서 못자든가, 잠이 겨우 들었는데 자꾸 깬다든지 혹은 두세 시간밖에 못잤는데 새벽에 깨서 더 이상 못자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수면의 질이 나빠지니까 꿈을 많이 꾸게 된다. 낮 동안에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니까 악몽을 많이 꾸게 된다. 두번째 신체증상은 식욕변화가 온다. 남자에서 거의 대부분, 여자에서 한 절반정도는 식욕이 뚝 떨어진다. 뭘 먹고 싶지도 않고 먹어도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고 그러니까 당연히 살이 쭉쭉 빠지게 된다. 반대로 남자에서 극히 일부와 여자에서 나머지 절반은 폭식을 한다. 근데 이게 배고파서 먹는게 아니다. 본인도 음식물 여기까지 차 있는거 본인도 안다. 근데 그냥 뭔가 허한거 달래겠다고 계속 우겨넣게 되는 거다. 세번째 신체증상이 우리나라에서 특히 중년여성에서 가장 흔한 증상인데 몸이 여기저기가 아프다. 가장 흔한게 두통, 머리 아프고 얹히고, 체하고, 토하고, 아님 배탈 나서 설사하고 아님 목, 어깨 뭉쳐 아프고, 허리 아프고. 무릎 아프고 온몸이 다 아프다. 근데 이게 한꺼번에 아프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아프다. 안타까운 건 나는 아파 죽겠는데 병원 가서 검사하면 다 정상이라고 나온다. 그래서 맨날 듣는 얘기가 ‘신경성입니다. 스트레스성입니다’ 가 우리나라의 가장 흔한 것이다. 우리를 찾아오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내과, 통증의학과, 가정의학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이런 데를 최소 두세군데 돌다가 오시는 분들이 제일 많다. 그 다음 네번째 신체증상은 에너지 레벨이 뚝 떨어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곤해지고 그냥 막 누워있고 싶고 그렇다.

  

< 이런 증상 생기면 위험하다.... >

다음으로 인지증상이 사실 제일 중요한 증상인데 많은 분들이 우울증 증상이라고 인지를 못하는 것들이다. 인지증상 첫번째는 ‘사고의 왜곡을 통한 부정적 사고의 반추’라고 하는데 쉽게 얘기하면 머리에 무슨 막이 씐 것처럼 외부에서 오는 모든 자극이 다 나쁘게만 해석이 된다. 일이 잘 되고 있는데 내가 봤을 때는 왠지 망할것 같고, 이제 거의 다 끝났는데 해봤자 소용없을것 같고, 그냥 상대방은 나한테 안부인사 물은 건데 왠지 나를 비꼬는거 같고 얘도 나를 싫어하는것 같고, 저애도 나 미워하는것 같고, 이것도 해봤자 소용없을것 같고, 저것도 다 안될거 같고...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들어온다. 근데 그게 한 번에 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게 우리 환자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증상이다. 두번째는 이런 증상 때문에 자존감이 뚝 떨어진다. 옛날엔 내가 괜찮은 사람 같았는데 지금은 내가 볼때 예전에 비해서 쓸모없는 사람, 가치 없는 사람, 옛날보다 못난 사람처럼 스스로가 자꾸 인지가 된다. 그러면서 계속 자존감이 떨어진다. 이러다보니 주변사람들 특히 가족한테 쓸데없는 지나친 죄책감만 든다. 나 때문에 우리 애들만 힘든것 같고 나 때문에 내 부인만 힘든것 같고, 나 때문에 우리 엄마만 고생하는것 같고 그게 가면 어디까지 가느냐하면 ‘나만 사라지면 될것’ 같고 까지 가는 거다. 세번째 집중력이 뚝 떨어진다. 일을 하는데 도저히 손에 안 잡히고 내가 좋아하던 드라마, TV에서 영화가 돌아가는데 눈은 거기에 있지만 머릿속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그리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단기 기억력이도떨어지면서 깜박깜박하고 건망증이 심해진다. 그래서 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 치매하고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그걸 우리가 가성치매라고 하는데 이런 증상은 당연히 우울증이 완치되면 다 없어지는 거다. 그 다음 네번째 인지증상은 우유부단해지며 결정장애가 생긴다. 옛날 같으면 바로바로 결정해서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A냐 B냐 선택해라 그러면 A를 하자니 B가 걸리고 B를 하자니 A가 걸린다. 하자니 이게 걸리고 안 하자니 저게 걸리고 결정을 못 내린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절대로 중요한 결정을 못하게 하고 치료 이후로 선택을 미루게 한다.

  

< 통계로 보면... 이렇다... >

그다음에 이 세상 아무도 내 마음 몰라주는 것 같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힘들 것 같고, 내일이 희망이 없을것 같은 절망감이 들게 된다. 이렇게 힘들다보니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 그리고 죽고 싶다, 확 죽어버릴까~~ 라는 자살사고, 자살충동까지 생기는게 우울증이다. 우울증 때 우울해서 자살하는게 아니다. 우울증의 하나의 증상으로 자살사고, 자살충동이 생기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40명 정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살시도자가 아니고 자살로 돌아가시는 사람수다. 자살시도자는 거기에 곱하기 한 100쯤 해야 될 거다. 매일 밤 응급실에 자살시도한 분들이 엄청나게 오는데 그분 중에 돌아가시는 분들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40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40×365 해보면 일 년에 몇 명이나 자살로 돌아가시는지 나온다. 그 많은 분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그분들 중에 대략 80% 정도가 정신과적 질환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분들이다. 그리고 그분들 중에 대략 70% 정도가 이 우울증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분들이다. 즉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그많은 분들 중에 최소 60% 이상은 우울증 때문에 사망한다는 얘기다.

  

그럼 우울증이 무슨 걸리면 무조건 죽는 무서운 병이란 이야기가 아니라 통계가 말하는건 이거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는데 치료를 안 받았다든지,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에 중단했다든지, 혹은 우울증치료를 받았고 완치된 이후에 재발이 됐는데 다시 치료를 안 받았다든지 그런 경우가 이런 자살로 이어지는 위험군이다. 우울증 때 제일 위험한 시기는 제일 우울할 때가 아니다. 제일 우울할 때는 아까 말한 의욕이 없기 때문에 자살도 못한다. 그런데 치료를 막 시작한 초창기에 의욕이 좀 생길 때가 제일 위험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에 대한 혹은 정신과약에 대한 어마어마한 사회적 편견이 있다 보니까 이제 좀 살만하고 좀 괜찮아지면 다 치료를 중단해버리거나 중단을 시킨다. 딸이 우울증이라 병원에 와서 치료를 하는데 아버지가 집안망신이라고 약을 못 먹게 하거나 부인이 치료를 받고 있는데 남편이 병원에 전화해서 욕을 하며 왜 우리 부인을 멀쩡한 여자를 정신병자 만드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데가 대한민국이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우울증으로 저렇게 많이 죽게된는 것이다.

  

< 치료하면 나을수 있다... >

우울증은 치료만 4~6개월 정도 잘 받으면 거의 다 완치되는 병이다. 정신과 치료가 그리고 아직도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상담실에 들어와서 ‘환자용 침대가 없네요?’ 라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있다. 카우치라고 아는가? 눕는 의자를 말한다. 미드 혹은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에도 아직도 카우치가 나온다. 누워서 환자는 혼자 떠들고 정신과 선생은 옆에서 졸고 있고 이런게 자주 나오는데 드라마 작가들이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이 좀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현대 정신과는 정신분석학에서 출발을 했지만 모든 치료의 70% 이상은 약물치료이다. 정신과는 신경생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울증도 똑같다. 우울증의 치료는 70%가 약으로 치료한다. 나머지 30%가 상담인데 처음엔 병에 대한 설명, 치료에 대한 설명, 그 다음에 약 잘먹게 만들고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 치료가 좀 되어 인지증상이 좋아진후 부터는 재발방지를 위한 상담이 들어가게 된다.

  

< 우울증... 마음을 굳게 먹어라... No, No, No... >

우울증을 이렇게 길게 설명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흔한 병중에 하나이고 우리나라에서 사망원인 중 가장 높은걸 차지하는게 자살이라서 그렇다. 대한민국이 OECD에서 자살률 1위인거 다 아실거다. 노인자살률 세계 1위, 20세 이하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 20대 사망원인 1위 자살, 30대 1위 자살, 40대 1위 자살, 50대부터는 암이 1위로 바뀌서 자살은 2위가 된다.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이다. 여러분들은 안하실거 같지만 근데 자살이라는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유혹을 느끼고 그리고 실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근데 이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 우울증이기 때문에 제발 이런 증상이 있으면 참지 말고 그리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병원에 가시라. 가까운 누군가가 우울증으로 힘들다 얘기하면 아까 얘기한 것처럼 산책을 해라, 햇볕을 쬐라 라는 쓸데없는 얘기하지 말고 손잡고 병원에 데려가면 된다. 그게 사람 하나 살리는 거다.

  

우울증 환자분들한테 절대 해서는 안되고 제발 좀 안했으면 하는 말이 있다. ‘마음을 굳게 먹어라’ 이중에 감기가 걸렸을 때 본인의 의지로 콧물을 멈출 수 있는분? 마음을 굳게 먹어서 기침을 멈춰 보신분 있는가? 병의 증상을 즉, 생리적 현상을 내 의지로 어떻게 할수 없는거다. 근데 우리나라는 정신과적 질환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한 자가 걸린다, 의지가 약해서 걸렸다, 사람이 무슨 양초도 아닌데 막 심지를 굳혀라,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그러면 안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환자분들은 내가 마음이 약해서, 내가 의지가 약해서 이런 병에 걸렸구나... 라는 생각에 안그래도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데 자존감이 더 떨어지고 증상은 더 악화된다. 그래서 제발 가족 중 혹은 친구가 이런 병 우울증으로 힘들어한다고 그러면 그 사람을 살리는 길은 손잡고 그냥 병원 데려가는게 정답이다.


< 이런 증상이 조울증이다... >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하루에도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나빴다가 왔다갔다 하는데 조울증 아니냐 묻는다. 근데 우울증은 앞에서 쭉 이야기한 증상 중 다섯가지 이상이 2주일 이상 지속돼야 우울증이다. 하루 그냥 우울한건 그냥 기분이 우울한 거다. ‘조증’이라는건 1주 이상 지속돼야 된다. 즉 하루에도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건 조울증이 아니다. 그냥 성격이다. 감정기복이 심한 성격일 뿐이다.

  

그리고 불안장애 중에 공황장애만 좀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우울증이 여성에서 2배가 많다고 그랬는데 교과서에는 불안장애는 남녀 차이가 없다고 나온다. 근데 신기한게 한 5~6년 전부터 남성에서 공황장애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유는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실제로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늘어났다 라는것, 그거 아는가? 우리가 하루에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18세기에 영국 농부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하고 똑같다고 한다. 그때는 태어나서 40~50세면 죽었다. 50세까지 살았다 치고 영국 농부가 50년 동안 평생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우리가 요즘에 하루에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하고 똑같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자극의 세계에서 살다보니 당연히 스트레스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니까 공황장애가 많이 생긴게 원인일수 있다. 또 하나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공황장애다 라고 커밍아웃이라도 하듯이 이야기한다. 방송에서 혹시 ‘나 발 부러졌어요’ 이런 얘기 들어보았는가? 연예인들이 그동안 방송에서 공황장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픈하지 못했거나, 공황장애인지 몰랐던 환자분들이 수면위로 올라온 거다. 한 5~6년 전부터 공황장애가 확 늘어났는데 압도적으로 남성에서 많다.

  

< 최순실은 공항장애라고 했다... >

공황장애는 두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 공황발작이라는 거, 이게 원래는 panic attack이다. 그거를 우리나라 말로 바꾸다 보니까 그걸 발작으로 해석을 해놔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오해를 하는데 panic attack이다. 근데 공황공격 그러면 되게 웃기잖는가. 그래서 이렇게 공황발작이라고 해놓은거 같은데 공황발작이라는 증상이 있어야 된다. 두번째는 ‘이게 또 오면 어떡하지.’ 라는 예기 불안이 있을 때 우리가 공황장애란 진단을 내리게 된다. 공황발작은 여러분들이 살면서 겪을수 있는 최대의 불안, 긴장의 공포치 곱하기 1000 하면 된다. 죽을 정도의 공포가 공황발작의 핵심이다. 갑자기 불안해지고 긴장이 되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숨쉬기가 힘든게 특징이다. 심장이 미친듯이 빨리 뛰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때처럼 가슴이 아파온다. 그래서 응급실에 실려간 분들이 꽤나 많고 온몸에 식은땀이 나면서 손끝 발끝에 이상한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고, 내가 내가 아닌것 같은 느낌, 심지어 유체 이탈하듯이 내가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또 하나는 주변사람들의 말소리가 꼭 물속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웅웅웅 하면서 멀어지는 느낌, 그리고 바로 앞에 내 앞에 사람이 있는데 사람이 갑자기 쫙 멀어지는 느낌들..... 그러면서 내가 미칠 수도 있겠다. 내가 어떻게 잘못될 수도 있겠... 라는 공포, 제일 심한 형태로 내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까지 느끼는게 공황발작이다.

  

그리고 또하나 문제는 이게 처음엔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첫 에피소드가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번째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아무 이유 없이 나타난다는 거, 즉 운전하다가 갑자기 오고, 밥 먹다 갑자기 와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 일상생활을 못한다. 그래서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공황장애는 초기치료가 중요하고 빨리 치료를 받아야 그나마 예우가 좋아진다. 공황장애 그러면 비행기를 못 탄다는 공항장애로 아시는 분들도 있는데 최순실씨도 재판 불출석 사유에 공항장애 때문이라고 써놨더라. 사람이 좀 배워야 된다.


< 무서운 알콜의존증... >

알콜의존증은 아까 사회자분가 잘 설명해 주었지만 나의 전문분야이다. 알콜의존증은 오해들을 하는게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폭... 술먹고 술주정을 부려야 알콜중독이라고들 알고 있다. 그렇지가 않다. 알콜중독 진단기준 중에 술주정은 그중에 그저 아주 조그만 부분일 뿐이다. 그게 있건 없건 크게 상관이 없다. 한번 술문제가 생기면 그 상태에서 술을 끊고 단주하고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알콜남용에서 시작해 100% 알콜의존으로 간다. 생각보다 굉장히 흔한 질환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치게 관대한 질환이고 이게 생각보다는 굉장히 무서운 질환이다. 우리나라에서 담배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금연시설을 많이 늘려나가고 TV에서 옛날 영화에 심지어 오리지널 영화를 보는데도 모자이크처리를 하고있다. 그런데 혹시 주변에 담배 때문에 이혼했다는 이야기 들어본적있는가? 담배 때문에 살인을 했다, 담배 때문에 자살했다, 들어본적이 없는 이야기다. 근데 술은 이게 다 가능하고 다 현재 존재하고 있다. 술 때문에 이혼하는 집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실제 나의 입원환자 중에서 이혼 당하신 분들 굉장히 많다. 두번째 술 때문에 가족을 죽였거나 혹은 가족을 찌르거나 가족을 다치게 했던 인간이 우리나라에 엄청 많다.

  

알콜의존은 무서운게 첫째 한 집안, 한 가족을 다 망가뜨린다는거다. 절대 나만 죽지 않는다. 두번째 유전이 된다는 거다. 알콜중독은 대물림이다. 알콜의존증의 제일 중요한 원인 하나는 유전이다. 내가 만약에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삼촌 혹은 외삼촌, 외할아버지 정도의 가까운 친척이 술을 좋아했는데 술 때문에 돌아가신 분, 혹은 술먹고 많은 문제를 일으킨 분이 한분이라도 계신다면 난 술을 안먹어야 된다. 즉 남들에 비해서 나는 알콜의존이 될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은거다. 알콜의존은 남자하고 여자하고 양상이 다르다. 남성 알콜의존은 그냥 좋아해서 먹다가 알콜의존이 된다. 보통 남자들이 술을 규칙적으로 많이 먹기 시작하는게 우리나라에서 대학 들어가거나 군대가거나 사회생활 시작하는 20대 초 중반이다. 알콜에 의해서 뇌가 망가져서 술을 조절해서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진게 알콜의존인데 남자는 평균 15년 걸린다. 즉 30대 중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알콜의존이 생기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근데 여자분들은 좀 복잡하다. 여자분들은 알콜의존이 많이 생기는 나이가 두군데 있다. 첫번째는 남자하고 똑같이 그냥 술 좋아해서 술 많이 먹다가 일차성으로 알콜의존이 되는거, 여자도 똑같이 20대 초반부터 술을 많이 먹는다 치면 알콜에 의해서 뇌가 망가지는데 남자보다 더 짧다. 10년밖에 안걸린다. 이유는 첫째는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 자체가 남성의 절반밖에 안된다. 그러다보니 똑같은 양의 술을 마시면 깨기까지 남자보다 두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거다. 그 두배의 시간만큼 뇌, 간, 췌장 등등이 알콜에 의해서 망가질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두번째 이유는 알콜은 수용성이라 물에 녹는다. 근데 여성은 남성보다 체내에 수분이 적다. 지방이 많다 보니까. 이 얘기는 똑같은 양의 술을 마셨을 때 혈중최고 알콜농도가 남자보다 여자에서 두배 빨리 올라간다는거, 즉 똑같이 소주 한병 마시면 여자가 남자보다 더 빨리 취하고 더 늦게 깬다. 곱하기 2정도 생각하면 네 배만큼 더 힘든 거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알콜에 의해서 뇌가 망가지는 시간이 5년이나 짧다. 그래서 여성분들은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에 알콜의존 생기는게 제일 많다. 또 하나는 여성의 기분과 관련되는 성호르몬 그게 변화가 오는 시기가 50세다. 폐경... 요즘에 완경이라고 표현하는데 성호르몬 변화로 인해서 갱년기 우울증이 오거나 혹은 아까 말한 빈둥지증후군이라는게 오는 나이가 대충 그쯤이다. 결혼하고 한 15년, 20년 그 나이때 우울증이 오는데 그 우울한걸 치료를 받아야 되는데 나 혼자 달래겠다고 집에서 부엌에서 홀짝 홀짝 술 마시다가 이차적으로 알콜중독이 되는 경우다.

  

또 우리나라는 원샷문화, 파도문화, 2차~3차 문화 등이 있기 때문에 혼자마실때 보다 같이 먹을때 훨씬 더 많이 먹는다. 혹시 친구와 먹거나 회식할때 내가 얼마나 마셨는지 기록한 다음에 집에서 혼자 그만큼 드셔보시라. 절대 죽어도 그만큼 안들어간다. 그리고 이놈의 동호회... 좋은 등산 동호회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주목적이 산타는 건지 술먹는 건지 맨날 번개하고 산을 타는 쪽은 별로 없는데 하산경로에는 뭔 술집, 음식점이 그렇게 많은지.. 실제로 이런 동호회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술 먹다가 알콜중독이 되는 중년여성들이 굉장히 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은 이런 차이가 있다.

  

< 알콜의존증... 똑바로 알자... >

알콜의존증은 앞으로 말하는 4가지가 있을때 우리가 알콜의존증이라고 한다. 4개 중에 하나만 해당이 되도 알콜의존증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4가지 말하면 속으로 ‘웃기고 있네. 그럼 대한민국 남자는 다 알콜중독이냐’ 이런 얘기를 할텐데 대한민국 성인남성의 40%가 문제성 음주다. 문제성 음주가 뭐냐면 현재 알콜의존증이거나 혹은 이대로 쭉 마시면 알콜의존증이 되는 음주를 말한다.

  

첫째 내성이 생겨야 된다. 두통약을 매일 먹으면 언젠가부터 진통제가 약발이 안듣고 2알 먹어야 된다. 알콜도 똑같다. 즉 뇌에서 요구하는 알콜의 양이 점점 늘어나면서 내가 술을 마시는 양과 회수가 점점 늘어나는게 내성이다. 이미 남성분들 중 거의 다 30대에 이 내성을 경험하셨을 거다. ‘야 마시다보면 늘어’ 하면서 마시다 보니까 ‘진짜 늘었어’ 이게 내성이다.

  

두번째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이게 중요한데 금단증상은 뇌에서 요구하는 알콜량은 점점 늘어나는데 사람이 그만큼 못 마시면 뇌가 ‘빨리 술 줘’ 하면서 술 달라고 저 혼자 흥분을 한다. 첫번째 신체적 금단증상은 몸으로 나타난다. 제일 흔한게 술 안마시면 잠을 못 잔다. 술을 연달아 삼사일 마시다가 ‘아우 죽겠다 오늘은 쉬어야지’ 하고 누우면 말똥말똥 해진다. 그러면 자려고 술을 먹는다. 환자분들이 많이 얘기하는게 ‘자려고 밤에 한두잔 해요’ 하는데 거꾸로다. 사실은 술 때문에 못자는 거다. 두번째, 밥 먹거나 잘 때 옛날에 비해서 땀이 그렇게 많이 난다. 세번째 손떨림 증상이다. 손떨림은 가만히 있을때는 괜찮다. 그런데 술잔 잡을때 달달달 떨리고, 담배 피우거나 손으로 뭘 쓰거나 손으로 뭔가 행동을 할때 떨리기 시작한다. 점점 손만 떠는게 아니라 턱도 떨고 온몸을 달달 떨게 된다. 그 다음에 가만히 못 있게 된다. 안절부절해서 왔다 갔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번째 금단증상부터는 심각한 거다. 이때부터는 정신병적 금단증상이라고 헛것이 보이고, 귀신보이고 헛소리 들리게 된다. 세번째 금단증상이 알콜성 간질이다.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입원했는데 한 이틀 지나니까 갑자기 헛소리 하고 간질 중상을 보인다. 그러면 뇌파검사, 피검사하고 그다음 주치의가 제일 먼저 물어 보는게 평상시에 술 많이 드시는가 물어본다. 술 끊기고 이삼일 지나면 금단 증상이 아주 심하게 오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직업적 사회적 기능이 망가지는 거다. 술 때문에 일을 못하거나 아니면 지각 결석 등을 하다 잘리게 되는것, 경제활동 못하게 되는것, 사회적 기능 망가지는것 안에 아까 얘기한 술주정이 들어간다. 집에서 때려 부수고, 밖에서 시비 걸다 맞아서 병원가고, 때려서 경찰서 가고 이런 것들... 그다음 여기 술 마시고 아무대서나 자는분도 있는데 그러다 동사 할뻔 하고, 경찰차 타고 들어오고 다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제일 중요한 대인관계가 망가지는 거다. 술 때문에 가족과 배우자와 갈등이 있고 그러다가 주변사람들과도 갈등이 생기는것 그리고 친구들 다 떠나고... 옆에 남아있는 친구가 없거나 있다면 한두 명 같은 알콜중독 친구밖에 안남게 된다. 알콜의존은 반드시 치료받아야 되는 질환이고 제일 중요한건 알콜의존은 가족의 병이라는 거다. 절대 혼자 죽는 병이 아니다.

  

< 환경을 바꾸어 볼까?... >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적당한 운동을 해라. 외부환경이 둘러싼 모든 정신적 신체적 자극을 통틀어서 스트레스라고 하기때문에 죽지 않는한 스트레스를 안받는건 불가능하다. 그럼 이 스트레스,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힘들어 죽겠다 고 한다면 나를 바꾸던지, 환경을 바꿔야 된다. 환경을 바꾸는 것, 어떤게 있을까? 내가 ‘배우자하고 싸워서 배우자 때문에 못 살겠어’ 이럴땐 이혼... 회사를 다니는데 상사는 나만 괴롭히고 동료들이 맘에 안 들어 죽겠고. 못 다니겠어... 어떻게 하면 되나? 이직... 이직하기 전에 퇴사... 아파트에 사는데 위에는 애들이 운동회를 하는지 시끄러워 죽겠고 나는 혼자 사는데 아래에선 까딱하면 애들 뛰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이사... 이혼, 퇴사, 이사 이중 하나라도 해보신 분도 있을거다, 층간 소음으로 이사해 보신 분, 혹은 배우자와 갈등 때문에 이혼해 보신 분, 아니면 그 전 회사 마음에 안 들어서 때려치우고 여기 온 분, 사람이 살면서 죽을 때까지 받는 100가지 스트레스를 미국 정신과 부부의사가 순위를 메겨놨다. 그 10개 안에 지금 얘기한 3개 다 들어가있다. 10위 안에 재미있는게 이혼이 들어 있는데 또 하나 있는데 뭐 들어있는지 아는가? 결혼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사도 들어 있다. 그 다음 회사내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이 들어가 있을 거다. 그 외에 배우자의 죽음, 자식의 죽음 이런게 들어있다. 미국은 1등이 배우자의 죽음이다. 우리나라는 배우자의 죽음은 순위에 없었던 같은데.. 자식의 죽음이 1등이다. 우리나라는 아무튼 이 환경을 바꾸 것은 생각만큼 쉽지않다.

  

< 그럼... 무엇을 바꾸어나 하나?... >

이혼에 대해서 환경을 바꾸는 예로 이혼에 대해서 재미있는 조사가 있다. 재혼전문 사이트에서 한건데 이혼하고 재혼한 그후에 그 재혼생활 결혼만족을 조사한게 있다. 이혼했던 이유, 원인 등을 이 전 배우자한테서 찾았던 분들은 재혼하고 결혼만족도가 낮다. 근데 이혼의 이유, 원인 등등을 나한테서 찾았던 사람들을 재혼하고 결혼만족도가 높다. 이게 뭘 뜻할까? 즉 환경 백날 바꿔봤자, 배우자를 맨날 갈아 치워봤자 결국 내가 변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반복해서 일어난다라는 거다. 이것을 증명해주는 옛어르신들의 명언이 있다. ‘그놈이 그놈이다’ 라는 말 들어봤을거다. 이게 ‘남자는 다 똑같애’ 라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의 깊은 뜻은 결국 나를 바꾸지 않으면 배우자를 아무리 바꿔봤자 누구를 만나든 간에 결국 같은 문제는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라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이걸 이야기 하기위해 처음에 스트레스는 받을때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 불안도와 긴장도가 이렇게 다르고, 그건 성격으로부터 오는거고 성격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설명을 드린 거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만들어진 사람이고 어떻게 지금 나를 만들어 가냐가 핵심인 거다. 환경이라는 바꾸기 쉽지 않고 백날 바꿔봤자 결국 내가 바뀌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이 된다고 다시한번 말씀드린다.

  

< ‘나’ 를 알아야 한다.... >

나를 바꾸려면 내가 누군지 알아야 바꿀거 아닌가. 내가 누구냐에 대한 생각을 하고 사시라. 누구 누구씨 당신은 어떤 분이세요? 하고 물어보면 선뜻 답하는 분이 한명도 없다. 왜? 별로 생각 안해보고 사니까....그러다가 이런 얘기들을 한다. 남편은 어디 다니고, 부인은 뭐하고, 애는 몇 명이고, 큰 애는 어쩌구 둘째는 어쩌구... 이게 본인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다. 그래서 본인 얘기를 해보라 하면 또 고민한다. 도대체 이 사람이 나한테 원하는 답이 뭔 가하고. 그러다 얘기를 한다. 부모님은 어디계시고, 형제 자매 어떻고, 이게 본인 이야기? 365일 중에 거의 대부분 우리가 ‘나’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여기는 것들은 사실 사회적 관계 속에 대한 나의 얘기다. 근데 진짜 본연의 나, 나는 도대체 어떤 성격인지, 본인 성격 어떤가 물어보면 대부분 ‘어떤 때는 내성적인데 어떤 때는 외향적’ 이라고 답한다. 물론 하나로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나를 구성하는 것 중에 주로 밖으로 많이 표현되는게 결국 그게 나의 성격의 본 모습이다. 어떤때는 내성적이고 어떤때는 외향적이겠지만 주로 남들에게 비춰지는 혹은, 내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성격은 어떤 건지 정도는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된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왔을 때 이렇게 즉, 나는 불안도와 긴장도가 높은 사람인지 낮은 사람인지, 나는 남들에 비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인지 적게 받는 사람인지, 그리고 이런 성격뿐 아니라 나는 진짜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고, 현재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건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게 어떤 건지, 난 어떨때 행복한지 혹은 어떨때 우울하고 슬픈지, 어떨때 즐거운지 기쁜지 등등... 즉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떤 사람인지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자아성찰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돌아보는 것인데 정말 별거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할 여유나 시간이 별로 없었다.

  

< 한번... 일기를 써 보자... >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림을 그려나가기 위해서 하는 자아성찰에 가장 도움이 되는 행위가 일기쓰기다. SNS에 사진올리고 고독, 울고싶다... 이런거 말고... 일기란 무엇이냐면 내가 묻고 내가 답하는 나와의 대화다. 오늘 하루 했던 일을 쓰는게 아니다. 일기쓰는 몇가지 팁을 알려드린다. 첫째 매일 쓰려고 하지 마라. 써야만 하는게 되는 순간 쓰기가 싫어진다. 언제 쓰면 될까? 필 받을때 쓰면된다. 어떨때 뭘 쓰고 싶은 삘을 받나? 기쁠때 뭘 쓰고 싶은 분들은 강연 끝나고 나한테 오셔야 할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때 뭔가를 쓰고 싶은 필을 받느다. 거기다가 맥주 한잔이나 와인 한잔 곁들이면 대박이다. 그런날 쓰면 된다. 한 1~2주에 한번 정도... 그리고 쓸때 오늘 뭘했고 뭘먹었고 그런거 쓰지 마시라. 오늘 내가 왜 기분이 안 좋았는지를 쓰면 된다. 그러면 대부분 누구와의 관계 속에 갈등이 주원인이다. 그러면 나는 왜 그 사람과 싸웠을까? 싸웠을 그 당시에는 감정이 올라가 있기 때문에 왜 싸웠는지 화만나지 기억도 안나고 잘 모른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 집에 혼자 앉아 차분히 그때 내가 그 사람하고 왜 싸웠지? 라는 걸 떠올려 보면 원인을 찾을수 있다. 근데 그 원인이 시답지 않거나 참 하찮은 것들이다. 별거 아닌 걸로 대부분 싸운다. 그럼 그 별거 아닌걸 찾은 다음에 해야 할게 있다. 대부분 상대방의 말, 단어, 말투, 표정. 혹은 나를 쳐다보는 시선 뭐 등등 별거 아닌 것 때문에 싸웠을 거다. 근데 그것 때문에 이 사람하고 전에도 싸운 적이 있는지.... 부부나 가족이면 분명히 되풀이 됐을 거다. 혹은 이것 때문에 나는 이 사람 말고도 다른 사람하고 싸운 적이 있는지.... 이걸 찾아가는 거다. 그 다음은 어? 내가 이것 때문에 저 친구하고도 싸웠었네... 하면 그럼 그다음 단계는 뭐냐. 그럼 이게 뭐길래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길래 왜 나는 이걸 가지고 그렇게 싸움을 반복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글로 써보는거다. 이게 중요한게 사람이 말을 한다는 거는 생각을 최소한 한번은 정리해야 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글로 쓴다는 거는 생각을 최소 두세번 정리해야 글로 쓸 수 있게된다.

  

글로 쓰면서 생각을 두세번 정리하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거나 굉장히 어렵고 힘든 거라고 여겼던게 사실을 별게 아닌 거라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혹은 별게 아니라고 느껴서 방치해 뒀던게 사실은 나도 모르게 나한테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하는거를 발견할 수도 있게된다. 일기는 그런 작업이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그림을 그리는데 지금 얘기한 내 약점, 건들면 욱 하고 올라오는 것, 혹은 내 몸에 난 가시같은 것, 나의 단점 그걸 찾아내면서 나의 몸에 난 가시같은 아이들은 내가 함부로 휘둘러서 남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살았는지.... 더 중요한 건 그런 것들 때문에 내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상처를 주고 살아왔느냐를 찾아가는 작업인 것이다.

  

< 마무리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움... >

그걸 찾고 끝내는게 아니다. 사포로 지우듯이 그것을 바꾸려는 아까 말한 일만 시간의 법칙 같은 노력을 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게 일기를 쓰고 자아성찰을 하는 진짜 목적인 것이다. 그러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나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고, 나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심지어 그럼으로써 변화되는 나를 알게 됐을때 자존감이 올라간다. 내가 좀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가지만 실제로 그런 변화를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달라진 나를 스스로 발견했을 때 자존감이 쭉쭉 올라간다. 또 하나는 주변사람들의 피드백이다. ‘야 너 옛날보다 되게 괜찮아졌다. 너 옛날에 빽빽대고 욱욱 대고 하더니 요즘엔 되게 젠틀하네. 잘 참네. 혹은 너 옛날보다 생각이 깊어졌어 등등’ 주변에서 들려오는 그런 긍정적인 피드백이 또 내 자존감을 올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자존감이 올라가면 결과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느냐면 제일 좋은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때 내가 괜찮은 사람이면 남들이 뭐라 떠들어도 신경이 크게 안쓰게 된다. 남들이 날 어떻게 쳐다보는가도 별로 신경이 안쓰인다. 즉 타인의 시선, 타인의 말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거다. 여러분들이 아마 오늘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하고 이 강의를 듣는 지금 6시까지 타인의 시선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나 될까? 일어나서 아침에 씻고 옷 입을 때부터 시작될것이다. 혹 누군가와 같이 산다면 눈 뜨는 순간부터 시작될거다. 날 이렇게 쳐다보면 어떡하지, 날 이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 옷 입고 갔다가 괜히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등등... 그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자존감을 올리는 이 자아성찰이라는 걸 통해서 여러분이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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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에 웬... 배고픈... 거지가 나타나다...

(3월 창의포럼 후기)

  

  

2018년 3월 창의포럼에서는 대한민국 춤통령이라 칭할수 있는 공연예술가 팝핀현준을 초청했다. 그는 1979년 서울에서 출생하셨으며 12살때 팝핀댄스에 빠져 30년 가까이를 이 춤에만 매달려 살았다고 한다. 어린나이에 가난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세상을 비관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춤에 매진하여 오늘날 공연계술계 최고의 춤꾼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룹 ‘영턱스클럽’ 객원멤버, 댄스팀 ‘바이닉 주노’ 멤버로 활동했다. 그리고 6집의 음반을 발표 했으며 팝핀현준아트컴퍼니 대표를 역임했다. 2007년에는 'One &Only' 저서를 출간했고, 2012년 평창동계 스페셜 홍보대사, 2013년 제 12회 국제 음악극 축제 홍보대사, 2017년 아테네 성화봉송 평창조직위원회 축제공연, 2018년 평창올림픽 성화봉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중에 있다. 현재 서울호서예술전문학교 실용무용예술학부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방송활동도 많이 하고 있는데 KBS 2TV '불후의 명곡'에 국립창극단 출신인 부인 박애리와 함께 수회 출연하여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이외에도 네이버 TV 세바시, KBS1 TV 명견만리, 기타 다양한 예능프로그램 등에 출연하고 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170센치도 안되어 보이는 다소 왜소한 체격...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이마에서 부터 여러갈래로 땋아 단정하게 정리하고, 작은무늬가 들어있는 하늘색 계열의 평범한 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다소 커보이는 흰운동화를 신고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걸이로 우리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팝핀현준입니다.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처음으로 강연을 하는것 같아 너무 설레고 지금 긴장도 많이 된다’ 라고 말문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내가 오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가서 강의를 한다고 했더니 “네가?”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야, 우리 막내아들이 학교도 보내기 힘들었는데 ‘너 오늘 가서 잘해라... 이상한 말해서 무식한 거 티내지 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지금 너무 떨린다.

  

일단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거와 같이 팝핀현준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팝핀이라는 것을 다 아실 거다. 혹시 춤을 좀 좋아하시면 예전에 각기춤, 꺽기춤, 털기춤 이런 말씀을 들어봤을거 같다. 꺾어서 추는 이런 춤을 예전에는 각기춤이라고 했었는데 이런 춤을 바로 팝핀이라고 한다. 힙합이 미국문화이기 때문에 모든 용어가 다 영어다. 이름도 우리가 알고있는 뒤로가기 댄스... 이런 동작이 ‘문워크’라는 동작인데 이것도 영어로 돼있다. 내가 추고 있는 춤을 각기춤이라고 이야기하면 외국에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한국 사람들만 알아듣는다. 대한민국이 전세계 이 스트릿댄스라고 하는 힙합댄스의 가장 높은 자리에 서 있다. 내가 어렸을때 세계대회에 참가자로 활동을 많이 했었다. 지금은 여러나라에 심사위원으로 나가는데 외국 친구들이 나한테 늘 얘기한다. ‘세상에서 제일 춤을 잘 추는 애들 10명 중에 8명이 너희 나라 출신 즉, 대한민국 비보이인데 어떻게 용어정리가 그렇게 안되어 있냐’ 며 이야기 한다. 그래서 내가 방송에 나갈 때마다 ‘제가 추는 이춤이 팝핀춤입니다’ 이렇게 늘 말씀 드린다. 그랬더니 팝핀현준만 유명해졌다. 여전히 방송국에서는 각기춤이라고 이야기한다. 내일 모레 ‘불후의 명곡’ 녹화가 또 있는데 거기에서도 다시 한번 ‘팝핀춤을 추고 있는 현준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려 한다. 여러분들께서도 이제부터는 각기춤, 꺾기춤이 아니라 팝핀춤으로 불러주시길 바란다. 결혼을 위해 장인어른을 찾아뵈었는데 ‘그러면 자네. 어디 팝씨인가’ 하고 물으셨던 적이 있는데 본명은 남씨... 남현준이고... 팝핀을 추는 현준이...해서 팝핀현준이 됐다.

  

< 영턱스클럽... 그 영광과 몰락... >

내가 활동했었던 모습들을 조금씩 여러분들한테 소개시켜드리려 한다. 1998년도에 영턱스클럽으로 데뷔를 했다. 영턱스클럽은 여기계신분 모두 잘 아실 거다. ’한번만 안아주세요~~‘ 이게 2집이었고, ’다른 여자 생긴거라면~~‘ 그게 ’정‘ 이었다. 그리고 3집 혹시 아시는가? ’흰 눈이 내려와~~‘ 모르실거다. 내가 참여한게 4집인데 정말 모르실거다. 영턱스클럽이 1집, 2집 때 완전히 최고로 갔다가 3집 때부터 약간 시들면서 4집때 망가졌는데 망가지면서 내가 멤버로 들어간거다. 참 이게 슬픈 일이기도 하고 내가 더 이를 악물고 춤을 추게 했었던 이유가 됐던 앨범이기도 하다. 1집, 2집, 3집을 하셨던 영턱스클럽에 두 명의 남자 댄서가 있었다. 물론 그때는 춤을 추시다가 가수로 데뷔하신 분이니까 그 이후부터 가수다. 1, 2, 3집에 참여했던 그 남자 멤버분들이 당시에 대한민국에서 춤을 제일 잘 췄던 사람들이다. 정말로 너무나 멋있게 춤을 잘 추는 형들이었기 때문에 영턱스클럽 1집, 2집, 3집은 별도의 댄서가 없다. 뒤에서 같이 춤을 춰주는 백업댄서가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5명이 다 춤을 잘 추니까 굳이 백업댄서를 쓸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런 영턱스클럽의 4집 멤버로 내가 들어가면서 그 분들이 나갔다. 이제 내가 그자리를 다 메꿔야 했다. 진짜 어깨가 너무 무겁고 신인 멤버로 들어왔기 때문에 기존에 있었던 멤버들의 텃세도 있었다. 나이도 제일 어리고 하니까 막내, 막내, 하면서 ’야 그런 식으로 춤추면 안돼. 우리 팀이 얼마나 춤을 잘 추는 팀인데 이따위 밖에 못해? 이런 식으로 혼냈다. 그래서 정말 밤새도록 연습을 하느라고 타이틀곡 랩 녹음을 외우지 못했다. 다음날 연습실에서 매니저가 ‘곡 다 외웠지’ 하며 오늘 녹음하는 날이라고 날 처음으로 녹음실로 데려갔다. 노래방 같은 크지않은 상자안에 들어가서 노래를 하는건데... 내가 25년 가까이 춤을 추는데도 이렇게 무대가 떨리는데 그 어린 나이에 녹음실에 들어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려니 얼마나 떨렸겠는가. 그것도 처음 보는 곡인데... 그 당시에 최고의 작곡가 선생님... 바로 윤일상 선생님이 우리 타이틀곡을 만들어 주셨다. 작곡가 선생님이 ‘노래 해봐’ 해서 노래 못외웠다고 하니까 10분의 시간을 주고 외우라고 했다. 10분 동안 어떻게 외우는가. 못 외웠다. 결국은 나를 빼고 녹음을 해서 타이틀곡에 내 목소리가 없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왕 이렇게 된거 춤으로 승부를 봐야겠다하고 마음먹었다. 나를 더 열심히 춤을 추게 했고 어떻게 보면 영턱스클럽이 나에게는 좋은 작용을 했다고 본다.

  

< 또다시 폭 망함.... >

이후 2005년도에 ‘사자후’라는 싱글앨범을 냈다. 2007년도에는 돈스탑, 2009년도에는 에이포스, 그리고 2015년도에는 나는 현준입니다. 라는 앨범을 또 냈다. 이렇게 앨범을 굉장히 많이 냈는데 사람들은 날 댄서로만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가수로는 좀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2007년도에 돈스탑이라는 앨범을 냈을때 타이틀곡 내용이 포기하지 않고 춤으로 갈 수 있는곳 그 끝까지 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그 말처럼 앞으로 더 열심히 앨범을 낼 계획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려면 호흡이라든가 이런게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잘 부르는거 같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댄스가수들은 여러 작업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아주 쉽게 노래할 수 있게끔 밑 즉 MR을 좀 깔아놓는다. 이것을 더블링을 친다고 얘기를 하는데 높은 음을 몇 개를 잡아 이미 녹음을 해놓고 그 파트가 지나면 ‘이야! 어!’ 하고 쉬운 부분만 노래하고 다시 춤을 출수 있게끔 한다는 말이다. 특히 솔로인 경우에는 더 그게 많아지는데 난 솔로로 이런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해야 했다. 팝핀이라는 춤이 근육에다가 힘을 주는 거기 때문에 힘을 줄때마다 으,으,으,으... 이렇게 힘이 들어간다. 심지어 바이브레이션이라고 몸을 떠는 춤, 그거는 으으으으으! 이런 식으로 목소리가 흔들린다. 노래를 하는데 이게 저 친구가 어떻게 가수가 됐지. 싶을 정도로 음이 떨린다. 기획사에서 나한테 ‘야 아래 다 깔고 가자. 그냥 쉬운 것만 부르고 높은 건 다 깔고 가자’ 라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그랬다. 이렇게 부르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이게 진짜니까... 여러분들도 나처럼 춤추며 노래방 가서 노래 해봐라. 이렇게 되나 안 되나. 내 춤추면서 M.O.V.E 팝핀현준 ~~ 이렇게 이런 식으로 하면 반드시 떨릴 거다. 난 대중에게 솔직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득부득 밀고 나갔다가 결국 망했다.

  

< 바퀴발레가 날 울리다.... >

2009년도에 ‘에이포스’를 만들었다. 팝핀현준이 퍼포먼스(댄스)가 좋으니까 노래를 잘할 수 있는 여자 멤버 4명을 붙였다. Boney M이라는 외국가수가 있잖은가. 우리 Boney M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자. 라는 생각으로 의기투합했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인 ‘용감한 형제’에게 곡을 받고 팝핀현준이 안무를 짜고 여자애들이 노래를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용감한형제가 ‘형! 내가 진짜 기가 막힌 비트 만들어 줄 테니까 형은 거기에 멋있게 춤만 딱 추면 된다... 라고 해서 진짜 멋있게 춤을 만들었다. 막 날라다니고 몸을 3단으로 4단으로 꺽고... 근데 소속사 사장님이 그걸 딱 보시더니 ’우리 1집 했을 때 네 춤이 멋있긴 한데 너무 어려워서 대중들이 못 따라 했잖냐. 그러니까 이제는 대중이 좀 따라할 수 있는 쉬운거 하나 만들어 봐‘ 해서 고민을 했다. 어느날 연습실에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바퀴벌레 한 마리가 지나가는 거다. 그래서 그 바퀴벌레를 보면서 저거다.. 하고 바퀴벌레 춤을 만들었다. 바퀴벌레가 이렇게 기어가듯이... 그런 다음에 사람이 딱 치면 죽는데 꼭 뒤집어서 죽는다. 그래서 노래하는 여자멤버들이 날 딱 치면 내가 몸을 뒤집어져 바퀴벌레가 죽는 모습을 춤으로 보여드렸더니 사장님이 너무 좋아하시는 거다. ’이거야. 내가 말한게 이거였어. 야~ 가즈아‘ 해서 그걸로 앨범을 만들어 발표했다. 뮤직뱅크에 갔다. 뮤직뱅크가 전문음악방송인데 ’팝핀현준팀 나오세요. 이제 리허설 갑니다‘ 해서 보여드렸더니 갑자기 뮤직뱅크가 개그콘서트로 바껴버렸다. 사람들이 다 빵 터지고 막 웃었다. ’아, 드디어 터졌구나. 잘 됐구나... 하고 생방송에도 나갔다. 그리고 나서 인터넷 연관검색어에 ‘팝핀현준 세스코’ 이게 떴다. 세스코. 바퀴벌레 퇴치업체 아닌가. 그리고 내가 춤을 추는데 에프킬라가 가지고 나에게 막 뿌리는 그런 짤방(움짤)이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조금 더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몇번 더 방송에 나갔다. 인기가요도 가고, 음악캠프도 가고, 공중파를 몇 개를 딱 도니까 전화들이 오더라. 그때 내가 영화배우 이준기의 춤 선생으로도 유명했었고, 또 가수 조관우의 콘서트 안무 감독을 맡아 연말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 두분이 바퀴발레 춤을 추지말라고 했다. 뭐가 잘못 됐다고 생각해서 사장님한테 말씀드렸다. ‘사장님, 이건 아닌 것 같다. 뭔가 잘못된거 같다. 옛날같이 멋있게 춤추는게 나을거 같다고’ 라고 했더니 ‘아니야 인마, 이건 실패가 아니야. 그리고 그런 댓글 보지 말라고.... 이런 반응이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잖냐. 이건 되는 거라고’ 해서 댄서들 10명을 데리고 바퀴벌레 춤을 같이 추었다. 바퀴벌레가 알을 깐거 같이 말이다. 그래더니 방송국에서 ‘다음주는 안 나오셔도 된다’ 고 연락이 왔다. 결국 망했다. 어쨌든 바퀴벌레 춤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는 내춤을 만들어 내긴했다. 지금도 가끔 그춤을 어떤데서 추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곤 한다. 그 당시에도 창피하다고 생각 안했다. 왜냐면 내가 만든 창작춤이고, 작품이고 또 내가 원해서 했던 일이기 때문에 그냥 즐거웠던 추억으로 생각하지만 씁쓸한 기억이다.

  

< 영화배우 팝핀현준... >

영화도 찍었다. MBC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 에 출연했고 영화 ‘플라이 대디’ 는 이준기씨랑 같이 작업한 거다. 그리고 ‘쿵후힙팝’은 중국에 김태희라 불리는 판빙빙과 내가 주인공으로 찍은 영화다. 소속사 사장님이 한국에서 앨범을 그렇게 말아먹고 이놈을 어떻게 하지. 아직 계약기간이 남았는데. 한국에서 더 해보자니 흔히 하는 말로 망가졌고 한국에선 한번 쉬었다가 가야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중국으로 가라라고 한거다. 그때는 진짜 중국에 신호등도 없을 때다. 중국에 가면 딴 나라구나. 진짜 확 느껴지던 때였다. 그때 ‘쿵후힙합’이라는 영화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조금 보류해보자고 했다. 왜냐면 다들 헐리웃 가고 미국으로 진출하고 그리고 유럽으로 진출하는데 나만 중국에 왔지 않냐.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했다. 마침 그런 찰나에 영화 ‘스텝업’이라는 헐리웃에서 만든 댄스영화가 있다. 그게 진짜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했었다. 1편이 히트하고 2편 히트하고 아마 3편 때일 거다. 3편 때 아시아에서 넘어온 춤왕의 캐릭터를 구상하고 감독이 나한테 연락을 해와서 LA에 갔다. 감독이 날보고 너무 반가워했다. ‘유튜브에서 늘 보고 있다. 왜 한국에서 있냐. 여기 미국에서 살지’ 라고 했다. 너같은 캐릭터가 필요하니 같이 영화를 해볼 생각이 없냐 라고 물었다. 난 너무 해보고 싶은데 소속사와 계약이 돼 있어서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매니저랑 얘기를 하라고 했다. 매니저는 무조건 첫번째가 돈이 우선이다. 여기 내 매니저가 와 있는데 이 친구는 아니다. 이 친구는 인간적이고 착한 사람이다. 매니저는 개런티로 5만불을 주고 초호화 대접을 해달라고 했다. 물론 5만불이 크면 클수도 있고 또 연예인들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개런티로 봤을 때는 안클 수도 있지만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에서는 엄청나게 큰돈이다. 그 감독이 뭐랬냐면 ‘여기 나오는 어떠한 배우도 5만불의 개런티를 받지 않는다고. 그리고 너를 정말 아티스트로서 존경하는 마음에 친구로서 같이하자고 한거지 지금 우리가 돈 얘기를 하려고 부른게 아닌데, 너무 안타깝다. 다음 기회로 미루자’ 라고 해서 난 정말로 아깝지만 마음을 접었다.

  

< 그놈의 지진이 발목을 잡다.... >

그런데 중국에서 내가 이 영화를 찍으면 그 돈을 주겠다는 자가 나타났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입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중국 가서 궁후힙합 영화를 찍었다. 헐리웃에서 ‘스텝업’ 에 나올 뻔 했었지만 못나오고 ㅠㅠ... 근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 영화 스폰서가 펩시콜라였다. 그런데 펩시콜라의 본사에 있는 분이 오신 거다. 그분이 2008년도면 중국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중국 시장이 굉장히 커지니까 펩시콜라 CF 모델을 아시아인으로 뽑고 싶어해서 나에게 요청이 왔다. 펩시콜라 중국 전 대륙에 나오는 CF모델이었다. 두명의 CF 모델중 한명이 나이고 또 한명은 판빙빙이었다. 나는 솔직히 판빙빙보다 잘할 수 있는게 더 많다고 하니 보여달라고 했다.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펩시콜라 캔을 들고 한 30분을 춤을 췄다. 진짜 먹는 춤, 머리에 올려놓고 움직이고 별 춤을 다 췄다. 춤도 좋고 마인드도 좋다고 하면서 오늘 네가 영화 찍는 씬을 모니터를 하다가 너한테 손가락을 이렇게 치켜세우면 네가 CF 모델이 된 거라고 했다. 어디서 보고 있는지 넌 모를 테지만 끝까지 열심히 영화를 찍으라고 하면서 자리를 떳다. 난 속으로 나한테 구라쳤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나한테 엄지를 치켜 드는것도 볼 수도 없고, 어딨는지 알 수도 없는데 진짜 영화 찍는 내내 그 사람을 찾았다. 그러다 구석에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 사람만 보고 계속 춤을 췄는데 진짜로 나갈때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나간 거다. 난 그냥 반신반의로 되면 되고 아니면 말자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정말 열심히 한 덕분에 기가 막히게 나왔다. 진짜 딱 한달 뒤에 연락이 왔다. 펩시콜라 모델로 발탁이 됐으니까 홍콩으로 넘어오라고... 그래서 홍콩에 가서 펩시콜라 중국 전 대륙 모델을 했었다. 춤으로 펩시콜라 광고를 찍은건 내가 최초였다. 이 영화는 나한테 그런 행운을 가져다 줬다.

  

이후 펩시콜라에서 나한테 ‘당신은 에너지가 좋으니까 이 영화 홍보하러 중국에 다니면서 100군데에 중국 행사를 계약을 하자’ 고 제안을 해왔다. 100군데면 우리나라 돈으로 어마어마한 돈이다. 소속사 사장님이 날 지그시 안아주시면서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옛날부터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팝핀! 잘했어. 뭐 갖고 싶냐’ 고 물어서 철이 없을 때라 난 람보르기니가 갖고 싶다고 했더니 선뜻 승락을 하셨다. 람보르기니 서울 사무소에 가서 노란색으로 계약을 먼저 했다. 나중에 돈은 완불하면 되니까... 그런데 사천 지진이 났다. 그래도 우린 이미 계약서에 사인했으니까 그들이 약속했던게 엄청나게 큰돈이니까 그 몇 십억중 반이라도 좀 받아야 되겠다...고 해서 꼼꼼히 알아봤더니 계약서 맨 마지막에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일은 아무도 변상해주지 않는다’ 라고 되어 있었다. 진짜 너무나 맥이 빠지는 일이었다. 근데 천만다행이 뭐냐면 사천지진이 나는 바람에 중국 정부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문화를 다 막았다. 일체 공연예술도 허가하지 않고 한 3개월, 4개월을 그렇게 꽉 막아놨었는데 그동안 중국 사람들이 볼 영화가 쿵후힙합 밖에 없는 거다. 중국에서 박스오피스 1등을 했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나를 알아보고 사인을 해달라는 통에 공항을 다닐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 난 중국에서 인지도를 좀 많이 쌓았던 영화여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 CF 광고모델 기피 1순위가 되다... >

이제 CF이야기를 해보자. 2004년에 조PD의 ‘친구여’라는 노래 혹시 아시는가? 인순이 누나랑 같이 불렀던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 굉장히 큰 히트를 하게 됐는데 CF가 한몫을 했다. CF를 보면 어린애도 나와서 팝핀춤을 추고, 아빠도 나와서 팝핀춤을 추고, 할머니도 팝핀춤을 추고 이렇게 온가족이 팝핀춤을 추는 CF로 세간에 이슈가 됐었던 작품이다. 그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삼성 YEEP, LG 캔유, 하이트 맥주, SK 엔크린, 펩시콜라 그리고 베이직하우스 등등의 2007년도부터 2008년도까지 1년 동안 10개의 CF를 단독모델로 찍게 되었다. 근데 내가 광고주가 제일 싫어하는 모델로 뽑혔다. 왜냐 했더니 사람들이 춤만 기억을 한단다. 내가 핸드폰을 들고 춤을 췄는데 핸드폰 광고로 안 보이고 저 친구 춤진짜 잘 춘다. 라고 누군지 한번 검색해 보라고 하고... 엔크린 CF는 주유소에서 춤을 추는 거였다. 차를 타고 가다가 기름 넣으면서 춤을 막 추는데 ‘와 주유소에서 저런 춤이 되나? 나도 해볼까’ 라든가... 맥주 마시면서 춤을 췄는데 맥주는 안 보이고 대중들은 춤만 기억했다. 김연아 선수는 30개가 넘는 CF를 찍었는데 우리가 기억하는건 딱 하나 있다. 씽씽씽씽~~~ 그렇게 너무나 인물이 강하면 제품이 가려져서 그런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난 지금도 CF가 안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공연으로서는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는 들어보았는가? 그리고 이주노씨의 ‘빨간구두’ ‘비보이코리아’ 뭐 이러이러한 공연들을 많이 했었다. 지금도 하고 있고 불후의 명곡 이런 르로글 통해 안무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 갑자기 집이 망해 버렸다.... >

이제부터 말씀드리려고 하는건 이제껏 살면서 겪어왔었던 인생의 한 부분이다. 1995년도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 당시에 가장 인기 있었던 가수가 <서태지와 아이들> 이었는데 ‘컴백홈’이라는 4집 앨범을 부를때였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은 청소년의 우상 문화대통령이었으니까 ‘컴백홈’이라는 노래로 집 나갔던 많은 가출 청소년들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이슈도 많이 되고 대통령한테 문화대통령 상도 받았다. 난 고등학교 1학년때 컴백홈 노래를 듣고 가출을 했다. 가출을 한 이유가 아버지가 사업을 하셨는데 실패를 해서다. 정말 순간적으로 너무나 큰 빚을 떠앉게 되신거다.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없고 그때 아버지 지갑 안에 2만원이 있었다고 한다. 난 세상물정도 모르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기억으로도 중학교 2학년 때까진가 엄마가 ‘현준아 업혀!’ 이러면 엄마한테 업힐 정도로 그냥 집에서 귀여움만 받는 막내였다. 엄마가 우시면서 부도가 났다고 했다. 부도가 뭔지도 몰라서 그게 뭔데? 그랬더니 집이 망한 거라고 말씀하셨다. 집이 망했다는데 뭐 멀쩡한데 어디가 망했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도망가야 된다면서 아버지랑 새벽에 나가셨다. 엄마가 다시 금방 올 거니까 집에 있어, 이러고 나가셨고 형이 한명 있는데 형은 부모님이랑 상의를 한 다음에 해병대로 자원입대를 바로 해버렸다.

  

정말 혼자 남겨진 거다. 집에 혼자 있는데 너무 좋았다.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야 우리 집 비었어! 놀러와’ 라고 하며 친구들을 불러서 라면 끓여먹고 방에서 놀고, 다음 날 학교도 늦게 가고 그렇게 한 일주일 이주일 지나니까 전기가 끊기고 ,가스가 끊기고 물도 끊겼다. 딱지 붙이시는 분들이 문을 따고 들어오셔서 ‘뭐야 여기 사람이 자고 있으면 어떡해?’ 하면서 나가라고 막 깨우는 거다. 아저씨들 왜 남에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왔냐고 그러니까 ‘야 너네 집 이거 넘어 갔어’ 라고 하면서 가방을 주섬주섬 싸서 휙 던지면서 야 나가라고 했다... 무서우니까 집을 니왔다. 갈데도 없고 친구네 집에 며칠 묵었다. 친구집에 머무는게 한 이틀 삼일은 괜찮은데 일주일 가까이 되면 친구 부모님이 물어본다. 현준이 집에 왜 안 가냐고 친구에게 물으면 현준이네 집 망해서 우리 집에서 며칠 더 있어야 될거 같다 라고 대답을 한다. 그 어린 나이에 그게 정말 비수같이 꽂히더라. 아~ 나쁜놈! 우리 집 망했다는 얘기를 그렇게 쉽게 하다니... 이제 딴 친구네 집으로 간다. 거기서도 패턴이 똑같다. 그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 뒤로 친구네 집은 안가고 건물 옥상에서 좀 자다가 아침에 학교를 갔는데 누가 내 도시락을 싸오는 거였다. 이게 뭐야? 그랬더니 ‘이거 우리 엄마가 너 먹으라고 도시락 싸준 거야’ 너네 엄마가 이걸 왜 싸? 이랬더니 ‘너네 집 망했다고 너 밥 못 먹는다고’ 난 도시락을 바닥에 내던지고 누가한테 그 얘길 들었냐 그랬더니 ‘너 어저께 학교 안왔을때 담임선생님이 얘기했어’ 라고 했다. 그길로 교무실로 가서 울면서 선생님한테 ‘누가 이런 동정해달라고 그랬냐고... 우리집 망했다고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좋겠습니다’ 막 이러면서 선생님한테 덤볐더니 선생님도 놀라셨다. 교복 윗도리를 벗어던지고 ‘학교 안 다닐래요’ 그러고는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고 1때였다. 그때는 교복을 던지고 딱 영화 ‘친구’ 처럼... ‘길에서 내랑 만나지 마소’ 그런 분위기였다. 그땐 무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아주 주접이었다.

  

< 고 1에 노숙인이 되다... >

그렇게 나와서 갈 데가 어디있겠는가. 밖은 춥고 그냥 떠돌다가 서울역에 가서 노숙자 선생님 (그는 노숙자에게 선생님 호칭을 썼다) 들을 만나게 된다. 노숙자 선생님들에게는 추위를 피하는 방법, 밥을 먹는 방법, 잠을 자는 방법 이런 노하우들이 있더라. 그 방법들을 배웠다. 너무 추우면 병원 응급실 대합실에 가서 자라, 따뜻하니까... 이런 말씀도 해주시고, 그렇게 흘러 흘러 길거리에서 약 2년 동안을 노숙을 했다. 너무나 배가 고프니까 나중에는 먹는거에 대한 냄새만 맡아도 나도 모르게 냄새를 향해 내가 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먹는걸 보고 빤히 쳐다본다. 그러면 열 명중에 여덟명, 아홉 명은 자기가 뭘 잘못했나? 하면서 먹질 못한다. 조금 착하신 분들은 아무 말없이 조심히 음식을 나누어 준다. 이렇게 얻어먹기도 하고 맥도날드 앞에 쓰레기통을 뒤져서 햄버거, 감자튀김 주워 먹곤했다. 그렇게 못 먹었더니 머리랑, 손톱이 다 빠지더라. 어느 날은 길에 앉아있는데 손톱 여기가 간지러워서 만지다보니까 손톱이 쭉 딸려 나오는데 안아팠다. 옆 손톱도 흔들려서 빼면은 쭉 진물이랑 같이 손톱이 빠지는 거다. 이게 죽는 병인가, 이게 문둥병인가 싶어서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에게 이거 안좋은거 같다고 그랬더니 의사가 볼때 정말 이상한 애가 온거다. 머리도, 이상하고 옷도 이상하고... 그런데 검사를 해주셨다. 절 앉혀놓고서 너 부모님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내가 너네 부모님은 혼을 내야 된다고 하셨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영양실조로 병원에 온 애가 있냐며 이건 학대라고 하셨다. 부도나서 감옥 가셨다고 그랬더니 이건 잘 먹으면 낫는거야 하시며 지갑에서 밥사먹으라고 삼만원을 꺼내 주셨다. 그 돈으로 밥도 먹고 압구정동으로 갔다.

  

< 압구정동에 웬 배고픈 거지가 나타나다... >

그당시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는 패션의 거리, 문화의 1번지였다. 로데오거리 앞 쇼윈도우에서 나이키 신발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데 그 신발이 너무 신고 싶어서 계속 그 쇼 윈도우를 보고 있었다. 당시 그 나이때 학생들에게 나이키 신발은 그야말로 선망, 로망이었다. 압구정동에서 구정 고등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학교 등교하면서 돌아가는 쇼 윈도우를 봐야하는데 웬 거지가 그걸 자기들과 같이 보고 있는 거였다. ‘압구정동에 거지가 있구나‘ 이러면서 지나가고 그 친구가 하교하고 지나가는데 여전히 그 거지가 그걸 보고 있는게 아닌가. 며칠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더니 한 명이 와서 물어보더라. 너 거지야? 그래서 ’어.. 처음부터 거지는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까 이렇게 됐어. 이름은 현준이야. 남현준‘ 친구는 이름을 안부르고 ’야! 거지야 일로 와봐‘ 그런 식이었다. 도시락도 좀 줄 때도 있고, 아니면 빵을 줄 때도 있고... 그 친구들이 수업 끝나고 떡볶이를 먹으러 간대서 한번은 ’야 나도 좀 같이 가면 안될까‘ 이랬더니 넌 창피해서 안 되겠다. 그러더니 돈을 주었다. 그 돈을 받아 무얼 사먹고 그랬다. 그 친구들은 그들의 인생이 있고 나는 내 인생이 있으니까 그렇게 쇼 윈도우를 보면서 이렇게 ’문워크‘와 ’팝핀‘ 춤을 추고 있었다. 쇼 윈도우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춤을 추고 있으니까 그 친구들 중에 한 명이 ’현준아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그렇게 말을 걸어 왔다. 그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는구나 하면서 ’이거? 이거 되게 쉬워 이렇게 움직이면 되는 거야. 이렇게... 너 다리 두 개잖아. 나처럼 이렇게 해봐. 아무나 할 수 있어! 다 되는 거야‘ 그랬더니 ’야 이거 좀 가르쳐줘! 그래서 가르쳐 주었더니 ‘야 우리집 가자. 가서 밥 먹자’ 하면서 데리고 갔다. 그친구 집에 가서 따뜻한 밥을 먹는데 눈물이 났다. 그밥이 너무 맛있어서... 밥을 먹고 자기 입던 옷중에 안입는 옷을 주면서 좀 씻으라고.... 이제 날 씻기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사람이 됐다.. 그리고 친구들이랑 친해졌다. 춤을 가르쳐줘서 밥 얻어먹고, 빵 얻어먹고 그러면서 지냈다.

  

< 큰 인연... 이주노와의 만남.... >

한 친구가 ‘너 이렇게 춤을 잘 추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이주노씨 한번 만나봐라. 그래서 난 그아이가 이주노씨를 잘 아는줄 알았다. 왜 그걸 지금 얘기했냐고 하니까 그 뱅글뱅글 돌아가는 나이키 신발 파는 그 윗층에 이주노씨가 산다고 했다. 난 사무실에 약속도 안 잡고 찾아갔다. 진짜 똑똑 두들기고 문을 열었는데 이주노가 딱 거기 있는거다. 티비에서만 보던 연예인이 말이다. 그런데 그 분도 웬 거지가 들어오니까 ’어떻게 오셨어요?‘ 물어서 ’저 형님 밑에서 춤추면 진짜로 세계최고가 될 수 있을 거 같다고. 열심히 할 테니까 받아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하나도 안 물어보시고 ’어 그래 그러면은 연습실 가서 연습해. 형이 조금 있다 보러 내려갈게‘ 하셨다. 한방에 연습생이 된거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고 갈려는데 머리 모양이나 옷, 이런 모습을 보시고 ‘차림이 왜 그러니. 머리 스타일이랑?’ 물었다. 집이 없어서 길에서 자고 먹고 해서 그런데요 그랬더니 ‘그러면 안 되지’ 하면서 연습실에다가 숙소를 만들어줄 테니까 연습실에서 살라고 했다. 연습실도 얻고 내 보금자리도 생긴 거다. 이제 그분이 내려오시면 멋지게 보여드려야지 하고 진짜 연습을 많이 했는데 6개월 만에 오셨다. 바쁜 시기기도 하셨고 ‘어 내려가서 연습해’ 이렇게 애기 해놓고 지나다가 복도에서 만나면 ‘너 누구니? 그러면 형 어저께 들어왔던... 하며 ’아 형이 내려가서 볼게‘ 하고는 한달 쯤 뒤에 ’음 누구세요?‘ 이런 통성명을 몇번 했다. 그래도 잘 기억을 못하셨는데 6개월 만에 정말 오셨다. 연습생들중 마지막에 나와서 춤을 딱 추는데 ’문어야, 일로 와봐‘ 이러셨다. 이렇게 막 문어처럼 춤을 추니까 그때 내 별명이 문어였다. 이름을 물으셨다. ’현준입니다‘ 했더니 ’너는 다른 거 하지 말고 이것만 해‘라고 말해주셨다. 그때부터 그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하다.... >

1997년 당시 이주노가 라디오 DJ를 했다. 라디오 1부와 2부 사이에 인터미션을 채워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걸 전에는 마술사가 나와서 마술도 하고 경품추첨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이주노가 누구인가? 굉장히 빨리 춤의 문화를 시작하신 분이지 않은가. 그는 전문 댄서가 춤을 한번 보여주자는 생각을 하고 우리에게 ‘내가 일주일후에 1부랑 2부 사이를 춤으로 만들거야. 그러니까 연습해라’ 라고 했다. 그 일주일 동안 정말 피나게 연습했다. 그리고 무대에 서게 됐는데 그때 잘췄던 형들은 다 가운데 서고 난 조명도 비치는 않는 맨구석에 자리에 섰다. 굳이 사람이 안서도 되고, 화분 같은거 세워놔도 전혀 문제가 안 되는그런 자리였다. 이주노의 입장에서는 ‘어린 친구지만, 지금 막 들어왔지만 그래도 똑같은 기회를 줘보자’ 라고 생각했던 거다. 무대 끝에 섰을때 너무 좋았다. 처음으로 조명이 있고 마룻바닥에 정상적인 관객이 있는거였다. 정말 프로만이 선다는 그 무대에 선건데 무대에 앞뒤가 어디있나. 가운데면 어떻고 끝이면 어떠냐고 생각했다. 똑같은 무대 위에 있는데... 너무나 벅찬 가슴에 음악 큐사인이 나오자마자 온 힘을 다해 춤을 췄더니 같이 맨 끝에 날개를 맞추는 친구들이 날보러 ‘현준이 미쳤나봐. 왜 저러냐’ 한거다. 나랑 똑같은 합을 맞춰야하는 것이라서... 아니면 밸런스가 안 맞으니까. 공연이 끝나니까 친구들이 와서 막 뭐라고 그랬다. ‘너 돌았어? 네 가족이라도 왔냐? 누가 보러왔어?’ 그러면서 왜 이렇게 오바를 하냐. 우리는 끝에 서서 보이지도 않으니까 형들한테 안 혼나게끔 그냥 합만 잘 맞추면 된다.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 그래서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우리 아무도 안볼 수도 있어. 끝에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야 이건... 너도 제일 좋아하는 일이잖아,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왜 우리가 우리 자신한테 거짓말을 하냐고... 난 이렇게 할래. 춤추는 게 너무 행복해’ 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도 안보는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정말 보고있었다. 그 무대를 연출했던 연출가 선생님이 보신 거다. 꼬마가 막 오바하니끼 재밌었을 것이다. 그 감독님이 이주노에게 ‘저 끝에 있는 저 친구는 새로 들어왔어? 귀엽네. 되게 열심히 해. 내가 저번에도 저렇게 하는걸 봤는데 오늘도 보니까 진짜 열심히 한다고. 저런 친구는 잘 될거야’ 그때부터 이주노가 절 유심히 보셨다. 전 누가 보던말던 계속 열심히 했다. 그래서 다음번 무대를 설 때는 무대 중앙으로 한 칸 들어갔다. 이제야 관객들이 보이더라. 관객들이 보이니까 더 열심히 했다. 그러니까 또 다시 한칸 안으로... 이제는 정말 주인공이랑 가까이 있게 되었다. 가끔 여유가 있으면 주인공이랑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는 자리까지 왔다. 그래서 열심히 했더니 결국은 무대의 가운데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이 자리까지 오면서 뼈저리게 느낀게 있는데 우리앞 사이사이에 안 보이는 벽이 있다. 이 벽은 뭘로 무너트릴 수 있냐면 내 경험으로는 돈도 아니고... 어떤 잘하는 기술, 기교도 아니더라. 그건 바로 ‘진정성’ 인것 같다. 진심으로 정성을 다한다는 말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진정성을 더하고 더하면 보이지 않는 이 벽이 무너져서 결국은 내가 원했던... 무대의 가운데에 설 수 있는 내 꿈의 자리로 올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 마무리말 >

와이프(국립창극단 출신 전통가수 박애리) 를 만나서 결혼을 한 것도 꿈의 이상형을 만나서 결혼을 한거다.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 팝핀 현준이 결혼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만약에 한다면 클럽에 가면 볼 수 있을만한 섹시한 여자랑 결혼하지 않을까! 이상형이 그러지 않을까! 라고들 이야기 한다. 사실은 정반대다. 단아하고 우아하고 그리고 정말 속이 꽉 차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와이프를 처음 만난날 공연 연출가가 공연 때문에 우리 둘을 섭외한 거였다. 와이프가 조금 늦게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박애리가 딱 들어오는데... 박애리가 진짜로 슬로우모션으로 들어오는것 처럼 보이는 거다. ‘우와, 저런 여자가 있구나’ 하며 매니저한테 ‘어때? 저런 여자가 진짜 멋있는거야’ 그랬더니 그 매니저는 ‘형 누구? 저 아줌마?’ 이러는 거다. 그러면서 중국을 많이 가서 사람이 좀 미친거 아니냐고 했다. 어쨌든 꿈과 목표를 가지고 그것에 대한 막연한 전진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처음만난 이상형 처럼... 또 처음 만난 내 꿈처럼.. 설레임을 가지고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그 꿈은이루어 진다는것을 난 경험했다. 마지막으로 외국에서도 많이 공연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곡에 맞추어 팝핀 댄스 솔로 작품을 보여드리겠다. 초청해 주시고 경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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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들처럼 살 수 있을까...?

(11월 창의포럼 후기)

 

 11월 창의포럼에서는 시인으로 출발했으나 지난 20여 년간 거의 모든 방송사에서 진행자와 패널로 얼굴을 알리며,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고 있는 김갑수 문화평론가를 초청했다. TBS(교통방송) 심야 팝 프로그램 「김갑수의 마이웨이」 DJ를 맡고 있으며, 종편TV 프로그램인 <강적들>, <아궁이>, <황금알> 등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세종사이버대학교 초빙교수를 비롯해 교보문고 북멘터 전문위원과 중앙선데이, 국제신문 고정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세월의 거지>를 필두로 클래식 음악 칼럼집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작업실 생활기 <지구 위의 작업실>, 시사 칼럼집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서평집 <나의 레종 데트르>, 음악 에세이집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 작업인문학 <아는만큼 꼬신다> 등이 있다.

 

문화평론가 김갑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평범하게 차려 입은... 종편에서 보던 그모습 그대로 였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흰색 셔츠위에 검은색 양복상의... 그리고 특유의 질끈 동여맨 머리와 밤색 뿔테 안경... 다소 커보이는 구두를 신은 모습으로 성큼성큼 걸어 무대위로 올라 ‘안녕하세요. 김갑수 입니다.’ 로 말문을 열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사회자께서 나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는데 좀 민망하다.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궁금할때가 많다. 우리 아들이 대학생인데 “아빠를 뭐라고 설명해야 돼?” 라고 얘기를 한다. 내 얼굴을 아는듯한 분도 많아서 ‘아, 종편을 보시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98년부터 직업적으로 방송을 해왔는데 주로 라디오에서 했기 때문에 노출이 좀 덜 됐었다. 이른 아침시간이다. 오늘 이자리가 여러분들한테 즐거운 휴식시간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오늘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은 좀 거창한 이야기일수도 있으나 한번은 해야할 이야기이다. 전에는 PPT를 띄우고 통상적으로 이야기 했는데 오늘은 그냥 말을 통해 여러분들 질문도 받고 내 생각을 좀 말해보려 한다.

 

< 당연시 하는걸...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

먼저 선후배 이야기부터 해보려 한다. 누구나 선후배가 있고 그와 연결된 관계가 있다. 직급, 직책 이런 거 말고 후배가 선배를 공경을 해야 하는것이 당연시 되어있다. 즉 선배는 윗사람이 되는 거다. 근데 왜 그래야 되는걸까? 고등학교에서 2학년은 1학년한테 반말을 한다. 그럼 1학년은 2학년을 형이라 부르고 당연히 받들어 모시며 심부름도 시키면 한다.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어떤 학교를 1년 먼저 들어간게 어떻게 해서 벼슬이 되는건가. 너무나 우연히 1년을 늦게 들어왔는데 그게 어떻게 아랫사람이 되는가. 이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못마땅했다.

 

다른 나라 언어를 보니까 선배, 후배 이런 개념의 말이 거의 없더라. 굳이 찾으면 일본의 센빠이가 있는데 그것도 그런 의미로 쓰이지도 않는다. 윗사람, 아랫사람의 개념이고 그들은 선배, 후배 관계도 형성돼 있지않다. 그게 참 이상하다... 라는 말을 어디서 했더니 종편에서 나와서 그런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하더라. 그걸 시작으로 이렇게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됐다. 열심히 그 얘기를 했더니 이번엔 시청자들이 너무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고 반발해서 다 편집을 당했다. 그 이상한 이야기 몇가지 하면서 오늘 본론에 들어가려 한다.

 

이건 딴데서도 한 이야기인데 12~3살 먹은 여자아이 아비가 백내장에 걸려셔 앞이 안보인다. 조폭들이 와서 너의 몸을 내놓으면 몸값으로 1억을 준다고 했다. 아버지 수술비용을 생각해서 눈물을 머금고 여자아이가 목을 바쳤다. 1억을 받아서 아비는 눈을 뜨고 아주 아주 뺑덕어멈과 행복하게 살았다. 몸을 바친다는게 물에 빠져 죽는 거였다. 여러분 그 여자애 참 잘 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비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 물에 빠져 죽은 행동이 잘한건가, 못한 건가? 그냥 같이 생각해보자는 거다. 그 아이 잘했나, 못했나? 근데 왜 칭송을 하나. 온 나라가 그아이를 칭송을 한다. 심청이를 한번 생각해 보자. 자기 아버지 앞 못 본다고 여자애가 물에 빠져 죽었더니 그돈 받아서 그 아비는 뺑덕어멈 얻어서 잘 놀고 잘 살사는데 그걸 효도라고 잘했다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게 부모의 덕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게 그렇게 평생토록 너무나 감사해서 미치겠는가? 그게 그렇게 고마운가? 내가 원한것도 아니고 선택하지 않은 삶이다. 어느날 하룻밤에 부모가 날 만든것이다. 물론 학교도 보내주고 옷도 입혀주고 밥도 먹여줬으니까 고맙긴 하다. 근데 그건 나도 그렇게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거다. 그걸 그렇게 고마워라. 감사합니다. 눈물겹습니다. 이래야 되는것인가? 그리고 자기가 부모 입장이 되면 자녀에게 너 그렇게 고마워해라. 고마워해라. 가르쳐야 되는가. 잘 생각해 보면 좀 웃기는 이야기다.

 

< 효에 대한 또다른 생각... >

조금만 눈을 돌려서 효라는 관념에 대해서 비교 문화론적으로 들어가보자. 이 지구상에 효라는 관념을 가진 문화권은 단 하나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천년 전에 효사상을 가졌던 중국도 이미 폐기한지 오래됐다. 근데 우리는 효도, 효도, 효도, 효도 이러고 있다. 그럼 다른 나라 사람들은 효도 안하나? 효도 안 한다. 대신 사랑이라는게 있다. 사랑은 자발적인 것이고 사랑은 매우 애착관계도 있지만 미움의 관계도 있다. 그러니까 사랑은 강요라든지 무슨 절대적인 계율이라든지 이런게 있는게 아니다. 난 부모와 나이가 육십이 다 되도록 만나면 싸우는데 뭘 이렇게 고마워 해야 되나. 나이 먹은 사람들이 평생을 자녀 상태로 살아야 되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조금 더 스터디를 해보니까 이 효도라는 것이 사실은 국가통치의 기술 같은 거였다. 국가를 확대된 가정으로 생각하고 이 가부장이라는 관념 하에서 최고 통치자에 대한 절대적 복종, 이것을 위해서 중세 농경사회에 있었던 것을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이어오는 거다. 그래서 마치 그것이 인간의 가장 고매한 도덕이자 가치인냥 여기게 됐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도 그러지 않는데 우리나라만 그러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형태로서 자발적인 것이다. 그러면 요구되는 덕목이 뭘까. 여기 생명공학 하시는 분들 많이 있을것 같다. 리처드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에서 보면 인간이란 생명체가 세상에 태어난 유일무이한 이유를 들자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파하라는 그 사명 하나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효 대신 새롭게 형성돼야 될 관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나의 삶을 충실히 사는 거고, 이와 더불어 그만한 가치를 지닌 또 하나의 대상이 있다면 즉, 열정을 쏟아야 될 대상이 있다면 그건 나의 배우자다. 즉 아내나 남편이나 연인이다. 그러고도 힘이 남으면 그 다음 대상은 유전자가 내려가는 그 흐름의 순서인 자녀에게 열정을 쏟는 거다. 그러다 가끔 생각이 나면 1년에 한두번 명절날 부모한테 전화는 할 수 있을거다. 좀 가까이 살면 1년에 한 서너 번 찾아갈 수도 있고 용돈을 드릴수도 있겠다. 그러나 평생을 자녀가 돼서 ‘아이고 부모님 사랑해요. 어쩌고저쩌고 하는 눈물겨운 이것은 굉장히 웃기는 신파극이다. 이 신파극이 왜 계속 이어져야 될까. 그게 우리 모두에게 공동체에 어떤 도움이 될까... 라는 이야기를 어떤 토론회에 가서 얘기했더니 미친놈이라 하더라. 내가 미친놈인가? 미친놈일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 김정은... 그를 생각하다... >

이번엔 좀 센걸 이야기 하겠다. 그렇다고 정치적 발언하려는 건 아니다. 난 김정은이 집권했을 때 아주 환호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핵실험 때문에 골치 아프지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김정은의 꼬라지를 봐라. 나이를 보고 과거를 봐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놈 그자체다. 유일하게 할아버지가 누구고,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 외에는 아무 공적이 없다. 김일성은 다르다. 나름대로 제3세계 비동맹에서 힘깨나 쓰던 사람이다. 그 아들 김정은 18년 동안 승계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나름 정당성도 있다. 그런데 그 손자가 정권을 잡았다. 그럼 어떻게 될까. 체제 유지를 하는데 어떠한 정당성도 명분도 없기 때문에 상당히 위태로울 거란 말이다. 동북권 몰락과 더불어서 산업이라는게 존재하질 않으니까 진짜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다. 우리에겐 너무 좋은 기회가 온것이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점프에 점프를 거듭해 왔다. 점프 과정에서 중동 특수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기가 막힌다. 중동 특수를 통해서 한국 경제가 왕창 점프를 한건 다아는 사실이다. 내 전공이 국문학이고 대학원 때 <고전>을 했는데 옛날에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졌노라... 하는건 전부 뻥이었다. 동북아시아의 존재가 없는 작은 나라인데 특이한건 총생산량에 비해서 문(文)을 매우 숭상했고 철학적 성찰의 깊이가 제법 있는 나라였더라... 하는 여기까지만 맞는 것이다. 북경이 옛날에 평양을 의미하고, 중국 세웠던 은나라의 시조가 우리 한민족이고 하는건 전부 뻥이다. 지금이 이 땅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제일 잘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왕 잘됐는데 이정도 잘되고 있는것으로 끝낼거냐 하는 말이다.

 

< 이게 왠떡... >

여기 계신 분들은 다 해외여행 했을 사람들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이런데 가봤지 않은가. 뭐 그 정도는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쯤 한번 돼보는게 우리가 가질 현실적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럴려면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수준을 따라가야 되겠지만 솔직히 1번은 경제력이다. 한번은 더 점프를 해야 되는데 이제 점프 할 꺼리가 없다. 옛날에 60명이던 반에서 57등을 했으니까 그때는 저임금으로 무기로 30등, 20등 까지는 올려 놓았는데 그 다음엔 잘 안되고 있다. 왜? 다 열심히 하기때문에... 여러분들 공부 잘 한 사람들이다. 공부 좀 하면 10등이 9등 되고 9등이 5등 되는 거 거의 무지하게 어려운 일이다. 지금 우리가 딱 그 상황이다.

 

근데 이게 왠떡인가. 북한이라는 경제와 영토가 우리에게 있다. 이천만 노동자가 기다리고 있고, 개발 안된 자원이 있고, 그 다음에 물류통로로써의 유럽하고 항로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니까 저렇게 취약하고 얼칙이 지도자가 있는 북한이 우리한테 기회인 것이다. 그래서 너무  좋아했는데 9년전 단박에 인연을 딱 끊어버리고 종북, 종북, 종북 이 소리만 하고 있으니까 아주 미치겠더라.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은 오기만 남기전에 살살 긁어주고, 체면 세워주고, 우리가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이면 얻을 이득이 엄청날텐데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을 하고 방송에 나가서 김정은 체제의 가능성을 얘기했다가 편집되고 프로에서 영원히 퇴출됐다. 내가 생각이 잘못 된 건가? 난 이북 출신이다. 어머니는 황해도 해주, 아버지는 평안남도 강서, 장인어른도 평안도 대동군 전부 이북이다. 마음의 고향이 이북이랬더니 아 진짜 빨갱이라더라. 진짜 빨갱이가 되려면 공부 꽤나 해야 되는데 난 <자본론> 한번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 자아의 발견... >

예컨대 한 오백년 전에 길거리에 사람이 지나가는데 칼에 푹 찔려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으면 그냥 보는 거다. 길거리에 죄지은 놈을 매달아서 돌로 쳐서 아주 잔혹하게 죽여도 ‘아, 재밌네.’ 한다. 자기 자식이 죽으면 어떻게 했나? 일손이 하나 부족해진 것이기 때문에 돼지우리에 주거나 들판에 버렸다. 귀족계층이 아니면 대부분 그랬다. 부부 간에 사랑?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말하는 건 근대휴머니즘이라는 건데 근대라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 때문에 생긴 새로운 역사다. 즉, 신의 세계에서 인간이 벗어나서 과학기술문명으로 살게 되고 이 과학기술문명의 결과물에서 첫 번째 가장 큰 발명품은 ‘자아’ 즉 나라는 관념이다. 그전에는 자아라는 관념이 없었을까?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거대한 전체에 소속된 어떤 것이기 때문에 왕이 죽으면 300명씩 땅에 들어가서 같이 묻힐 수도 있었다. 자아는 뭐냐면 나의 욕망, 나의 슬픔과 기쁨, 나의 것... 이 모든 것이 우주만큼 중요해지는 것,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가장 첫 번째인 가장 중요한 것이 되는 것이 자아라는 관념이다. 이 근대 발명품인 자아관념이 과학기술문명에 의해서 확장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전략과 선택으로 <사랑>을 발명했다... 하는거다.

 

< 사랑과 성의 정치학... >

예전에는 거대한 농토에 노비 같은 사람들이 일하니까 일하는것과 노는것 이런게 구분이 안됐다. 그런데 이제 어느 시점부터 산업사회라는게 형성될 때는 임금노동이라는 형태로써 일하니까 쉬는 시간이 분리가 되고, 이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건 단위가정을 많이 만드는 거다. 엄마, 아빠, 아이라는 구도하에 이 단위가정을 무지하게 많이 만들면 한 개별가정들이 자기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고 이게 자본주의의 사회적 선택 같은게 되었다. 무지하게 열심히 사람들이 처음으로 역사상에 나타나게 된것이다. 그런데 모든 재화는 독점의 성격을 갖는다. 위에서 다 해먹는 것이다. 온갖 방법으로 윗에서 다 먹게 돼있다. 그전에는 교회가 다 먹었다. 그렇게 위에서 다 먹으니 현장에서 일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굶주리고 빈곤했다. 그들에게 밥 대신 주는게 사랑이다. 너희들은 비천한 물질을 소유하진 못했으나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대한 가치인 사랑을 가졌노라... 하면서 사랑을 마구 선양하고 강조하고 키운것이다. 그게 사회적 선택이었던 거다.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은 어느 정도로 키워지냐면 유부녀인 당신을 내가 너무 사랑해서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데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니 나는 ‘빵’하고 머리에 총을 쏘고 죽어버리겠다... 이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다. 이와 같이 근대가 흘러오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막 키워서 현실을 마구 파괴하고 뒤집어업는 그런 인간의 격정을 찬미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것이 매우 매우 중요한 인간의 가치가 되어갔다. 옛날엔 안 그랬다. 인간에게는 성적교접을 위한 본능적 욕망으로서의 사랑의 흔적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인생에서 너무나 중대한 가치가 된 것은 근대의 전략이다. 그럼 섹스는 뭐냐. 우리는 근대인의 섹스를 한다. 지속시간이 3분이면 그대는 로마인이고 3시간이면 아주 위대한 선각자다. 에로티시즘... 성을 기쁨의 대상으로 삼게 된것 또한 근대 발명품이다.

 

< 카사노바... 그대는 바람둥이인가? ... >

카사노바... 우리가 아주 미묘하게 알고 있는 무슨 난봉꾼으로 알고 있는 사람... 카사노바는 굉장히 많은 저술을 남겼고 3권의 자기 자서전이 있다. 이걸 꼼꼼히 읽어봤는데 카사노바가 여자를 많이 건드렸다고 해서 내가 그의 책을 읽으면서 세어보았다. 40명이 채 안되더라. 그러면 바람 꽤나 피고, 룸살롱 가는 사람들의 원나잇스탠드 숫자를 세어보면 카사노바가 별로 많이 한게 아니다. 카사노바는 아주 뛰어난 당대의 철학자이고 문필가였고 지식인이었다. 기독교적 전략으로 성적탐닉을 해악으로 삼아야만 될 사회적 필요가 그시기에 대두되었고, 그를 상징적 존재로서 나쁜놈으로 막 몰아간 거다. 에드워드폭스의 <로마 풍속사>의 내용을 보면 로마인들의 지속시간은 5분이었다. 5분이라는 거는 그야말로 종번식을 위한 남자의 쾌감만을 위한 시간이다. 그런데 근대라는 인간의 욕망이 마구 확장되고 분출하는 시기가 되면서 끝없이 그 시간과 기쁨을 매우 확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그 에로티시즘의 결과물이 문화예술의 모든 원천이었더라... 라는 것이다. 전쟁이 생산이나 산업에 기여한 몫이 있다고 한다면 인간의 문화예술적 요소들은 사실 성적인 어떤 동기가 모티브가 된다. 조용필이 우리나라 최고 가수다. 조용필은 왜 이렇게 인기 있을까. 그의 목소리를 잘 들어보라. 콧소리 비슷한 발음이 나온다. 옐로우 보이스라고 음악적으로 얘기하는 건데 이 옐로우 보이스가 성적인 건드림이다. 사람들은 모르게 왠지 조용필이 좋은데 사실은 그게 굉장히 섹슈얼한 발성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여간 에로티시즘이 충만해서 그것이 굉장히 다채로운 방법. 다른 말로 하면 변태적으로 흐를 때 그 사회가 굉장히 발전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매우 도덕적인가? 한국은 이중사회다. 표면에는 매우 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나 문만 열고 나가면 10m 거리에 모텔이 있는 아주 기이한 사회다. 즉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통로를 다 막아버리고 대신 오로지 말초적 쾌락만으로 남아있는 아주 불행한 선택을 했다는 얘기다. 이런 식의 얘기가 어떻게 방송을 타겠나. 다 잘린다.

 

< 아!!! 우리나라... >
 나도 이제 어쩌다보니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됐다. 영원히 철없을 것 같았는데 정말로 휙 하고 10년씩 가더라. 특히 50대 10년이 이제 한해 남았는데.... 그러다보니 이제 나에 대한 생각이 많이 줄어들었다. 지진 나고, 핵무기 위기 오고 그러면 나한테 어떤 위험이 닥치나? 하는 생각은 뭐 살만큼 살았으니까 잘 안난다. 그런데 우리 다음세대 애들이 그걸 복구하느라고 30년 세월을 보낸다고 한다면 원통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 지금 우리가 뭘 해야 되지? 어떻게 해야 되지? 에 대한 큰 얘기를 좀 해볼까한다.

 

먼저 우리가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에 대한 얘기를 짧게 정리를 해보자. 자꾸만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 어쩌고 얘기하는데 좀 그러지 좀 말자. 우리는 신생국의 아들들이다. 70년 된 나라다. 그 옛날 나라들은 우리 선조들의 왕국이지 우리나라는 아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대체 언제 만들어졌느냐 하는 건국절 논란... 참 웃기다고 생각한다. 삼성의 그룹 역사의 맨 앞을 보면 국수집이 먼저 나온다. 국수집이 삼성 대기업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이씨 집안에서 처음 시작한 가게를 시초로 보는 거니까 위로 끌어당긴건 맞는다. 그런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언제 생겼느냐 하면 지금으로부터 한 이십여년 전인 1900년대에 생겼다고 확신한다. 우리나라가 1900년대에 생겼다는 이유가 뭐냐면 적어도 한 국가가 형성되려면 공화정이 그 시작이다. 근데 공화정이 제도로써 덜컥 주어진 것이 광복 이후의 산물인거 잘 알고 있지않은가. 결정적으로 공화정은 시민사회의 산물이다. 시민사회는 왕권이나 귀족으로부터 해방된 혹은 그걸 극복한 사람들의 무리다. 즉, 자율성이 핵심인 집단이다. 언론사 사장을 바꾼다고 언론사가 전부다 바뀌어버리고, 대학총장을 바꾼다고 그 대학의 분위기가 싹 바뀌어버리는 그런게 없는 자기 독자성을 갖는 집단들... 각종 사회들 즉 학교사회, 군대사회, 공무원사회, 기업사회 등 온갖 사회의 집합들이 한 국가의 기본구성이 되는데 이 사회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을 만큼의 판단을 하는 시민들, 권력, 이런걸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시민사회의 권력이 그 사회의 기초가 되는데 한국에서 시민사회는 1900년대에 만들어졌고  우리가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의 내용을 갖췄다...라고 생각을 한다.

 

< 노태우... 그를 다시본다... >

그러면 그 내용을 갖추는데 기여한 사람이 누구냐. 자꾸 박정희 떠올릴 텐데 난 노태우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다 하는건 아니지만 어쨌든 상징적 존재로 그렇다는 말이다. 인간의 종 분류에서 한국만 하는 분류가 있다. 계문강목가속종...으로 분류할때 한국은 분류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게 좌파 우파다. 나더러 좌파라고 한다. 왜 좌파인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렇다. 난 좌파 좋아한다. 좌파 역사인 체계바라를 봐라. 정말 멋지다. 근대 사람들은 ‘넌 좌파인데 왜 노태우 대통령을 칭송해?’ 이런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처음으로 민선대통령이니까 일을 많이 했다. 북방외교도 하고, 인천공항 그런 것도 만들고 일산, 분당 베드타운도 만들고 일을 많이 했다. 근데 다른 대통령도 사실 그만큼 일한다. 근데 자꾸 사람들이 뇌리에서 잊어버리는게 있다. 그가 36%로 집권을 했다. 이거는 정통성이 없다시피한 거다. 정권을 어떻게 잡았는지는 모르지만 집권의 유지가 불가능 했다. 그런데 노태우 5년 동안에 노동자 실질임금이 3배가 상승했다. 연세가 좀 있는 분들은 다 기억을 할 거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때는 자기 급여가 확 느는 걸 느꼈을 거다. 백만원 받는 사람이 삼백만원 받게 되고 삼백만원 받던 사람이 천만원 받는 세상이 돼 버렸다. 그때의 보수언론들 다 우리나라, 기업이 망한다고 그랬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 기업이 훨씬 튼튼해졌다. 왜? 내수가 늘어나니까. 내 수입이 늘어나면 저축만 하나. 뭔가를 쓰지.... 엄청난 한국의 변화는 바로 대중에게 처음으로 최초로 돈이 갔다는 거다.

 

< 엄청난 변화... >

대중에게 돈이 가고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1988년도의 일일거다. ‘87년 12월 17일날 정권을 잡았고 ’88년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고 그 사이에 10월 노동자대투쟁 이라고 하는 엄청난 격변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임금을 한 네다섯 번에 걸쳐서 마구 올렸다. 지금은 임시직, 파견직 등 괴상한 제도가 많아서 임금을 올려도 이익 보는 사람 만큼 손해 보는 사람이 생겨나는데 그때는 그냥 노동사회가 단순했다. 고용 아니면 실직이나 이 두 가지 밖에 없으니까.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노동자고 사는게 괜찮아지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하면 전민련, 전민투, 애학투 뭐 이름도 복잡한 ‘투’자 들어가는 단체가 싸그리 사라졌다는 거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투’자 들어가는 단체들은 뭐냐면 혁명하자는 말이다. 혁명은 체제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권력을 잡아서 옛날에 카스트로가 했던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다... 라는 그런 민중혁명의 뜻을 갖고 있다. 그리고는 시민단체라고 하는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이렇게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막 생겨났다. 시민단체는 우리가 그때 최초로 체험한 건데 그런 성격의 기구들은 바로 부르주아 시민운동 즉, 내부의 개혁운동인거지 체제를 전복하자는 혁명운동이 아니었던 거다.

 

대중에게 돈이 가니까 차를 사고, 아파트를 사고, 여가를 즐기고 슈트 한 벌이면 됐는데 멋을 위해서 다섯 벌도 사는 사람도 생겨났다. 한국인들이 최초로 돈을 쓰는 체험을 하게 된다. 소비사회에 진입된 거다. 그당시 소비의 주체가 누구냐 하면 놀랍게도 ‘난 알아요.’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변되는 청소년이었다. 텔레비전 광고 보면 그 나라의 소비주체가 누군지를 안다. 소비의 주체로 청소년이 등장하고 대중은 자기 여유를 갖게 되고 등등등 이런 식으로 진화하면서 소위 신민이거나, 백성이거나, 민중이거나 이런게 아닌 시민... citizen 시민계층인 시민이라고 하는 존재가 한국사회에 확고부동하게 뿌리를 내려서 지금까지 오게된 것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건국이라고 생각한다.

 

< 너무 좋은 미국.... 미칠것 같은 유럽... >

옛날의 꿈의 나라 같은 나의 체험담을 얘기해 보자. 1988년에 최초의 해외여행 자유화제도가 생겨났는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운이 좋아서 ‘87년 미국을 한 달간 여행할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어떤 대표단에 뽑혀서 샌프란시스코 행사를 갔는데 그건 3박 4일로 끝나고 나의 그녀가 유학가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잘릴 각오를 하고 그녀와 한 달간 여행을 했다. 정말 죽을 거 같더라. 미국이라는 데가 너무 좋아서 말이다. 보이는 게 전부 미제고 안 좋은게 하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동네슈퍼 같은데 가서도 막 황홀하고 그랬다. 미국이 너무 좋아 돌아왔는데 병이 났다.

 

이어서 ‘92년에 프랑크프루트 도서전이 열렸다. 국가단위로 모아서 가는데 거기 또 뽑혀서 유럽을 갔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달을 있었다. 거기도 행사는 5일인가 그랬고 행사 끝난 다음에 유학을 가있던 친구 놈하고 투어를 했다. 프랑스를 가보고, 독일을 가보고, 영국을 가보고, 스위스를 갔는데 어땠을까. 말로 설명이 안 됐다. 인간이 이럴 수가 있구나. 여섯시만 되면 사람들이 싹 흩어져 어디로 가나 했더니 집으로 가더라. 집에서 뭐하냐고 하니까 목수질 등 각자 취미생활을 한다더라. 아파트는 다 5층 이내고, 사람들은 천천히 걷고 다들 표정이 너무 편안해. 아~ 인간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지 않는 세상이 있을 수도 있구나...하는 그때의 감동과 충격은 정말 진짜 오래갔다. 1년 이상 갔던것 같다. 요약하면 프랑스는 나같은 기질의 사람은 상상도 못 할 꿈의 나라다. 독일하면 너무나 멋진 곳이다. 영국하면 너무 품위 있는 곳이다. 일본은 너무나 우아하고 섬세하다... 라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후진 나라였는지 이중에 제일 연로해 보이는 원장님은 아실 거다. 북한병사가 회충 50마리 나왔다고 그러는데 그때는 다 그랬다. 초등학교 때는 한반에 96명인가 그랬다. ‘70년대 우리들이 지금 북한 인건데 경멸하고 조롱하는 사람 보면 참 가소롭다. 깜짝 놀라고 대단한 일이 벌어진냥 그러는데 정말 사람은 과거를 빨리 잊어버린다. 그시절 미국을 구경하고, 서유럽을 보니 어찌 미치지 않을수 있겠는가.

 

< 대한민국... 희망은 있다... >

그 와중에 2002 월드컵이 있었다. 아마 그 즈음일거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그때 한겨레신문에 정치칼럼을 몇 년을 연재했었다. 꽤 길게 연재를 했는데 칼럼을 쓰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거다. 언감생심 꿈도 못 꿀줄 알았는데 굉장히 특이한 걸 발견을 했다. 우리나라 면적하고 영국이 1자 하나 틀리고 똑같다. 프랑스는 인구가 칠천여만명이다. 우리가 남북을 합치면 칠천이백만이다. 교육수준을 보니까 대학가는 인구는 우리가 더 많다.  GDP를 보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그 당시에 일만불 앞서고 있었다. YS때 우리는15,000불 달성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참고로 이야기하면 사회 갈등은 만불 이상부터 생긴다. 중국이 6천불, 7천불 조금 안된다. 그때는 에브리바디 해피이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시진핑이 그걸 딱 잡은거다. 그런데 만불, 만오천불이 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경쟁관계가 된다. 그러면서 너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는, 그런 시기에 돌입하기 때문에 사회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통합하느냐는 또다른 큰 이야기거리가 있다. 어쨌든 우리는 개발에 땀 쏟는 나라니까 영토도 비슷해, 인구도 비슷해, 교육 수준도 뒤질 것 없어, GDP도 큰 차이 안나니 우리나라가 영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 될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능성이 어느날 보인 거다. 너무너무 흥분했다.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이거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왜 누구도 안 가르쳐 줬지? 우리나라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영원이 어떤 수준의 덫에서 못 헤어날 거 같았는데, 우리나라가 서유럽하고 별로 다를 것이 없더라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2만7천불이고 이들이 4만불 조금 미만이다. 극복 가능한 격차다. 굉장히 흥분했었다. 너무 좋았다.

 

< 선진국 문턱에서 망하는 지름길... >

어쨌든 한 150년 역사를 보니까, 우리가 1세계, 2세계, 3세계 분류를 한다. 혹은 선진국, 후진국 이렇게 분류를 한다. 되게 웃긴 게 있다. 선진국은 150년 전에도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이탈리아 정도 한 7~8개 나라, 100년 전에도, 5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지금도  명단이 항상 똑같은 거다. 200개 나라가 있는데 선진국은 100년 이상 명단이 똑같다니 다른 나라들은 도대체 뭐냐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도 있었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굉장히 잘 나간 적이 있는데 거꾸러졌다. 한때 필리핀이나 태국도 잘 살았다. 그랬는데 여전히 고만고만하다. 즉, 개발에 땀낸 나라들이 있었지만 그 나라들은 확 성장했다가 거꾸러지고, 제1세계라 부르는 한 10개 미만의 몇몇 나라들은 100년 전에도, 50년 전에도 계속 1세계고, 전쟁을 해서 완전 잿더미가 되도 금방 일어나고, 뭘 해도 계속 잘 산다. 그들은 혈통이 다른가? 인종, 유전자가 다른가? 별 생각을 다 하게 되었다.

 

선진국 근처로 열심히 올라갔다가 거꾸러진 사례를 보면 보이는게 있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다. 거기는 지주경제였다. 거대한 영토를 가진 지주들이 목축 등으로 경제 성장을 했던 역사가 있다. 선진국 부근까지 가거나 실제 선진국이 된 배경과 이유, 과정은 나라마다 다 다르다. 그런데 그 나라들이 잘 나가다가 자빠지고 거꾸러진 이유는 똑같다. 너무나 똑같은게 놀라울 정도다. 이유가 뭐냐면 성장을 주도한 각종 세력들 즉 정치권력이 있고, 언론권력이 있고, 각종 분야마다 권력이 있는데 성장을 주도한 세력이 대물림을 해서 내려오면 다 망하더라는 것이다. 대물림을 하면 그대로 망한다.

 

< 선진국... 그들은 왜 승승장구 하는가...? >

미국은 로스차일드 가문도 있고 록펠러도 있다. 그러나 그 집안의 자손들은 사회경제 활동의 중심에 서 있지 않다. 단지 부유한 사람들인 거다. 자선 바자회 많이 하고, 연예인들이랑 놀아나고. 자가용 비행기 타고 폼잡고 부유한 인생을 살지만, 그 사회의 첨예한 주류적 위치에서 실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가문이 배후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흔들고 이럴 수가 없다. 왜냐면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사회는 끊임없는 내적 주류 교체의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미국을 보자. 이런저런 한계에 부딪히면 흑인을 대통령으로 앉히고, 백인 우월자를 딱 앉히기도 하고, 카터 같은 목사 같은, 수도승같은 사람을 앉히기도 하고, 끊임없는 내부의 주류 교체가 전 사회적으로 일어난다. 단적으로 드러나는게 포브스라는 그 유명한 경제잡지가 세계 400대 부자를 매년 발표하는데 400명 중 한 380명이 미국 부자다. 그런데 그중 세습 부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 다 당대에 창업해서 구글도 만들고, 페이스북도 만들고, 마이크로소프트도 만든 당대 부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는 4명, 내가 알고 있는 통계가 6년전 건데 4명 전부가 세습 부자들이다. 결론은 그게 어느 분야가 되든 대를 물려서 그 주도 세력이 계속 끌고 왔더니 2대, 3대 때는 탁 쪼그라들더라는 것이다.

 

끊임없는 주류 교체를 하여 선진국의 반열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비해서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붕괴되고 만다. 우리나라는 교회도 세습을 한다. 역사상 없는 일일 거다. KIST에도 아마 자신이 독실한 신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다. 난 청년사에서 시리즈로 종교 서적을 많이 내고 관심있어서 공부도 많이 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어떤 종교가 있는데 돈을 달라고 하면 그건 종교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성당이 됐건, 절이 됐건, 교회가 됐건 돈 요구하는데 있으면 나와 보라 해라. 자신있게 말하는데 다들 성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경작을 해서 먹고 사는게 종교의 기본이다. 현대 사회에는 그게 불가능하니까 국고로 보조금 주어서 생계를 유지시켜 주는 것이지, 개별 신앙 집단이 신도들에게 돈을 걷는다면 그것은 사업이다.

 

<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려고 하는 것일까? 난 지난 여러해 동안 이렇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으면 항상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우리나라는 망했다. 이미 망했다. 이미 망했는데 망한 모습이 나타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못 느낄 뿐이다’ 라고 이야기를 무척 많이 하고 다녔다. 모든게 세습에 의해 망가지고 있는게 온통 보였다. 여기에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에 대해 논박은 하지 않겠다. 다만 한국도 다시 한번 무언가 새 출발을 한번 해야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노태우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이승만 때부터 최근까지를 대통령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다 긍정적인 이야기다. 공적들이 실제로 존재를 했었으니까. 내가 진보 근처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승만이 독재 정권을 우격다짐으로 세운거는 잘한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냉전에 끼인 역사를 보니 그렇다. 냉전이 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그 다음에 박정희 시대인 총동원 체제, 유례없는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신흥국들이 쿠데타를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쿠데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80년의 쿠데타는 매우 잘못된 건데, 60년대 쿠데타는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왜냐? 거의 식민지 통치 형태로 세계사가 지배되고 있다가 1945년 전쟁이 끝나면서 다들 신생독립을 하는데, 식민 모국의 행정가들이 싹 빠져나갔을 것이다. 국가라는 건 기초적인 행정 시스템이 존재해야 하는데, 국가를 운영할 도리가 없었던 거다. 그럴 때 거의 유일하게 훈련된 조직이 군대였다. 그 군대에서 야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냥 톡 건드리면 정권을 잡을 수 있어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쿠데타를 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으로부터 자금지원도 받고, 경제개발 계획을 세웠다. 다 실패했는데 우리나라는 성공했다.

 

박정희의 공적을 이야기 안할 수가 없다. 소위 총동원 체제인데, 시골 촌로부터 도시의 아주 교양 계층까지 ’잘 살아 보세‘로 뛰게 만들었다. 그 우격다짐이 상당한 정도의 효율성을 발휘한 것도 사실이고, 거기의 문제점을 이야기해보면 많다. 하지만 그 모든 문제점을 상쇄할 만큼의 현실적 성과가 있었던게 사실이다. 그러고 나서 1973년부터 유신이라는 걸 했는데 사실 나치가 했던 것과 똑같은 총통제다. 입법, 사법, 행정을 한 사람이 거머쥐는.... 그러니까 왕인데 왕위를 갖지 않은 것이 총통제인데, 그러다가 79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이 사살이 된 다. 김재규라는 부하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때의 시대 상황이 그랬다고 이해를 하셔야 한다. 한국은 소위 남미가 경험한 하이퍼 인플레의 직전이었다. 하이퍼 인플레가 1000~2000% 되는 거다. 오늘 100원짜리가 내일 휴지가 되는... 밥 한끼 먹으려면 수레에 돈을 지고 와야 하는 상황으로 경제가 일정 속도, 어떤 단계를 지나면 전혀 통제되지 않은 상태로 날아간다. 우리가 그 직전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아무리 무도한 장군이었다 할지라도, 적어도 김재익이라는 경제수석의 말을 듣고 거의 무식한 방법으로 총칼을 사용해서 중화학공업을 쪼개고 이 기업을 저 기업에다 붙이고 해서 한일이 있다. 그때의 슬로건은 물가 안정, 내용은 저성장으로의 시프트였다. 고성장 구조가 이렇게 이렇게 가다가 거의 날아갈 뻔 한것이다. 이것은 시장이라는 차원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건데, 총칼의 힘으로 3% 이하의 저성장 기조로 집권 초반에 확 돌려 놓았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건 그야말로 무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가능했던 거고, 그 과정이 없었다면 우리도 남미의 경험을 했을 것 같다. 아주 명확한 공적이다.

 

< 시장영역... 정부영역... >

이후 노태우 등 우리가 아는 대통령들 각각의 공적이 있다. 그 흐름 속에 쭉 왔는데 이제 우리는 세습 사회를 맞이한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대한민국은 1990년대에 시민 권력이 최초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세워진 나라다. 그런데 시민에 반하는게 왕정이나 귀족정인데 지금 귀족정 앞에 우리가 직면해 있다. 그 귀족 앞에 심지어 변호사들도 고개 숙이고, 돈만 생기면 뭐라고 하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제 발로 귀족정으로 걸어가고 있는 와중이다. 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3가지만 이야기를 하겠다. 국가는 2개의 범주, 2개의 영역에서 항상 갈등하면서 같이 간다. 하나가 시장 영역이고 다른 하나가 말 그대로 정부 영역, 국가 영역이다. 시장이 자율성을 갖고 합리를 추구한다는 경제학 개념은 예전에 깨진 허구의 논리이다. 그 시장은 자체가 합리성을 갖는게 아니라 무한 독식, 독점의 방향으로 간다. 그러면서 일정 시점이 지나면 거의 자동적으로 돈이 위로 쫙 빨려 들어가는 속성을 갖는다. 위에서 다 먹는다는 말이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속성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을 해서 아주 전폭적이고, 심지어 무식한 방법으로 돈을 밑으로 확 내려야 한다. 밑으로 돈을 억지로 내리는 일을 해서 또다서 한 바퀴 섞었다가 또 일정 시간이 지나고, 이 일을 반복하는 거다. 지금 우리는 그 시점을 너무 오래 경과해서 너무 오래 늦춰져 버렸다. 민주당 정권 10년 있어서 분배가 될줄 알았는데 첫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은 IMF 수습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 다음에 대북 관계에 전념을 해서 분배에 신경을 쓸 여지가 없었다. 그 다음 노무현 대통령 시기는 거의 5% 아주 고성장을 기록했지만 그것을 분배로 정책화시킬 힘이 없었다. 의회를 움직여야 했고, 입법을 해야 했는데 힘이 없었고, 의지만 갖다가 허무하게 끝났다. 그 이후 보수정권들은 돈이 상층부로 빨려가도록 적극적으로 풀무질을 했다.

 

< 복지... 내수 기반을 다지는 재정투자... >

우리나라가 돈이 없지는 않다. 단지 밑으로 가지 않는 것 뿐이다. 내수 기반이 거의 붕괴 상태이다. 수출이 올해 들어 좀 높아졌다고 좋아하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물건을 해외에 많이 팔아서 돈을 벌어야 우리가 부자가 된다는 말은 웃기는 이야기다. 여기 계신 엘리트들은 설마 그렇게 생각 안하실 거다. 좌우간 경제 총량에서 내수 비중이 17~20% 가 적당하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그게 50%가 넘어야 한다. 지금 해야 할일 첫 번째는, 그냥 재래 용어를 쓰자면 복지이다. 그러면 복지가 뭐냐, 매우 큰 착오가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거를 복지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아니다. 국가의 재정 투자가 복지다 지금은 구조가 복잡해 돈을 뿌릴 수도 없고 임금 상승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방법은 지출을 줄여 주는것이 선택이다. 내 지출 분야를 국가나 지자체가 상당한 부분을 맡아서, 대행해서 떨궈 나가게끔, 그러면 300만 원 벌지만 실질 효과가 400도, 500도, 심지어 600도 되게끔 만든다면 그 사회의 내수 기반은 매우 튼튼해질 것이고 위에 올라간 돈이 아래로 내려가는 효과가 분명히 생겨날 거다. 지금이 그래야만 할 시점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입법 과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데, 그러지 않으면 이 공동체는 붕괴된다는 이야기이다.

 

< 통일... 그거 멀기만 한건 아니다.... >

두번째는 북한이다. 북한은 길게 이야기 안 해도 너무 우리 사회에서 많이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재론할 필요는 없다. 장기적으로 연방제 국가를 형성을 해야한다. 연방제는 다른게 아니다. 전부 위아래로 따로 노는 건데, 군대가 하나 되고 외교가 하나 되는 거다. 적어도 전쟁 가능성 앞에 사람이 산다는 건 사는게 아닌것이다. 그리고 북한이라는 경제 영토를, 북한을 경제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아주 비난들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솔직한게 낫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도 먹고 살 수 있게 되고, 하다못해 도라산역에서 출발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거쳐서 유럽까지 가게 되면, 그 중간 기착지, 경유지, 북한 영토를 지나는 경유지에 숙소, 식당, 도박장, 노는 것, 그런 것만 해도 엄청난 양이 된다. 개성공단 폐쇄되었잖은가. 거기 부지가 천만평인데 80만평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북한 전체 GDP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아시는가? 이 천만평을 꽉 채우고 남포, 신의주, 해주 공단을 만들고 우리 기업이 가서 직접 투자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까지는 한국 기업이 단 한 군데도 직접투자(설비)를 한 데가 없다고 한다. 개성공단이 가공 무역이었다는 거다. 우리 기업들이 가서 직접 설비를 하고 북한 사람 고용을 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북한 GDP의 20%를 점할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게 바로 통일이다. 구태여 한 개의 나라가 될 이유가 없는 거다. 북한 GDP를 우리 기업들이 가서 15~20% 육박하는 정도의 경제적 내용을 갖추게 되고 고용 효과를 갖게 되면 그냥 통일인 거다. 김씨 왕조 당분간 유지시켜도 된다. 안 그러면 내몽고에 텐트 치고 망명 국가 세운다고 하는 판인데,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다.

 

< 재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마지막이 바로 재벌 문제이다. 재벌은 지식인이라면 정말 인식을 확실히 하셔야 된다. 나와 아무 관계가 없더라도 인식을 하셔야 한다. 민주화는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독재도 괜찮아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을 봤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민주화의 속성이 뭐냐면 분배하는 거다. 민주화는 권력 가진 사람이 다 먹는 건데 우리도 달라 하는 거다. ‘80년대 10년동안 거리에서 한국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돌 던지고 싸웠다. Stone-Throwing People 이라고 불렀다. 돌 던지는 백성이라고.... 그런데 그게 의미한게 무슨 주사파하고 막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그런게 아니다. 그 배경의 모든 것은 70년대 말까지 형성된 국가적 부를 우리도 달라 하는 분배의 욕망이었는데 학생들이 책을 보다 보니까 복잡한 이야기를 했던 것뿐이다. '80년대 민주화는 정치 민주화를 의미했고, 이 민주화는 독재를 하지 말자는 거다. 그러면 경제 민주화는 뭘까? 경제도 지금 민주화 이야기가 나온다. 그건는 독점을 하지 말라는 거다. 마이크로소프트같이 우량 기업이 미국에서 독점 재제에 걸려서 5년인지 7년인지 고생하는거 뉴스에서 보셨을 거다. 독점은 그만큼 경계해야 할 자본주의 최대의 해악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가? 누구도 창업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면 똘똘한 놈은, 기업 들어간 놈은 바보야 이래야 한다. 아버지 돈 뺏고 이모 돈 빌려서 5백만 원 갖고 조그만 귀퉁이만 생기면 친구 자취방에서 창업을 해야 하는 거다. 그 중에 망하고 또 망하고 10번 망했다가 한 번쯤 되는 것이고, 그 중 한 놈은 거물도 되는 것이다. 그래야 살벌한 생태계 속에서 국가의 경제 체제가 건강해지고 세계 경제에 경쟁이 가능하다. 아무도 창업하지 않는다. 왜? 이유는 단 하나, 재벌 때문이다. 공무원이 되고 싶고, 교사가 되고 싶고, 의사가 되고 싶고, 또 공부 잘 하면 법조인이 되고 싶어 하고... 이 직종들의 특징은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 없이 오래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 망한다.

 

1대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 이런 사람들이 수퍼맨이다. 방송하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봤는데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다. 머리 팍팍 돌아가고, 배짱이 있고, 지를 줄 알고 정말 존경해 마지않는다. 난 그런 사람들 정말 수퍼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옛날에는 애들을 일찍 낳았다. 조그만 회사 키우는 거 보고 자라서 성장 과정을 알아서 2세들도 인정해야 할것 같다. 3세부터가 심각하다. 도련님으로 자랐는데 얘들이 엄청난 결정을 내리는 존재들이 돼있다. 4세는 말할 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과 여느 사람들과 다른, 아예 종자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태어났다. 어떤 기업이나 주력 기업이 있는데, 주력 기업의 중요한 자리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삼성중공업을 보자. 회장을 맡고 상무, 전무 할 수 있는 것들은 직계 가족 몇 명일 것이다. 그런데 가족은 무지하게 많은 거다. 4촌, 5촌, 6촌, 7촌, 8촌, 9촌, 10촌이 있다. 이 사람들이 다 돈이 무지하게 많다. 삼성중공업에 들어가고 싶지만 못 들어간다. 그런데 돈은 많다. 그러면 동네에서 할 만 한 일들을 하는 것이다. 이쑤시개도 수입하고, 떡볶이, 만두도 다 만들고, 빵집도 하고, 플라스틱 제품 소소한 것도 다 하고, 이런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모든 영역에 조금 잘되는 곳을 뒤집어 보면 재벌가와 연관이 된다. 그러니 아무도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 재벌... 부유하게만 놀아다오.... >

우리가 살아나는 길은 중하위 계층의 경제력이 다시 한번 복원되게끔 개입하는 일, 또 하나는 북한이라고 하는 경제 영토를 어떻게 최소한 10년 이내에 우리가 사업으로 왕래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 그라고 마지막으로 재벌을 정리 하는일... 무조건 해야하는 일이다. 지구상 어디에도 이런 식의 가문 경영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이바츠라고 일본재벌이 1945년에 해산되고 더 이상 없다. 그게 왜 문제인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 되고 있다. 무조건 정리해야 한다. 그집안 사람들이 부유하게 사는 것은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팜 스프링 필드에 별장이 엄청나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중동 부호들하고 같이 노는 곳이다. 한국의 부호들이 지금 그러고 논다. 그 수준으로 노는데, 그건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지배구조는 안 된다는 거다. 그 지배구조 때문에 누구도 경쟁하지 않고, 누구도 시장에 신규로 진입하지 않고, 창업하지 않고, 모든 인재들은 연구원이 되거나, KIST만 들어오려 한다. 지금 열을 내서 이야기를 드렸는데 최소한 이게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마무리 말 >

어쩌다 보니 나이 많은 할아버지 수준이 되었다. 살아 있다는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본다. 허무감에 많이 빠진다. ‘인생이라는 게 요만큼 반짝였구나, 35살에서 45살까지 활발하게 사는게 인생이구나, 그 전은 어설프고 그 후는 쇠락하더라...’ 나이들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락하고 중심에 있기 어렵다. 다만 내가 소속된 공간이 근사하면 좋겠구나 하는 간절함이 있는데 눈에 보인다. 이렇게 하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많은 희망적인 조짐이 보인다. 내가 한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은 권력의 중심부로 많이들어가 있는 환경이 되었다. 어쨌든 우리가 상위 중진국 쯤 근처에 있다. 우리나라가 교역규모가 13위라고 착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벨기에 이런 나라보다 훨씬 못 산다. 교역 규모 때문에 그렇게 보일뿐이다. 200개 나라 중 적어도 5~60위권 정도인데 조금은 잘 되었으면 좋겠다. 3가지로 집약해서 드린 말씀이 그야말로 선결 과제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면 혹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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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오를까? 내릴까?

부동산 전문가 고종완 원장

 

 

9월 창의포럼에서는 다른 실력과 경험으로 방송과 언론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 고종완 원장을 초청했다. 현재 한국자산관리연구원을 운영하며 국민연금투자심의위원, 공무원연금자산운용위원, 경기도 도시재정비위원, 강남구 기업유치위원 등 정부의 중요한 투자 및 부동산 정책수립에 관여하고 있다. TV조선에 고정출연중이고 매일경제신문 명예기자, BBS 불교방송, MBC 경제매거진M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초빙교수, 한양대 도시융합 대학원 특임교수직을 맡고 있다. 2015년 조선일보 <시니어가 가장 만나고 싶은 인물 1위>로 선정되었으며 2006년 <부동산 투자는 과학이다>를 발간 한바 있다. 강남부자들이 제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1순위가 바로 고종완 원장이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자그마한 몸매에 파마기가 있는 짧은 머리, 자주빛 체크무늬 셔츠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전형적인 중년 모습의 그는 ‘사회자께서 오늘 저에게 열강을 하라고 미리 과분하게 소개를 해주신거 같다’ 라고 말문을 열었다. 암튼 오늘 임태훈 부원장님을 비롯해서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기술의 싱크탱크인 이곳에 온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내강의는 맨앞줄 먼저 앉는데 이곳은 뒤부터 앉으신거 같아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특별한 장소에서 또 특별한 분들을 모셨기 때문에 정말 특별한 내용을 준비했다. 오늘 가져온 것은 9월 15일, 16일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트렌드쇼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여러분들께서는 관심이 좀 덜 하실수도 있지만 일반인들은 엄청 많이 온다. 정말 따끈따끈한 자료이다. 내 강의는 프라이빗 세미나라 유료다. 무료로 하면 이렇게 앉아서 듣는 분이 있을 수가 없다. 한 2천명 이상이 온다. 잘 차려입은 강남아줌마들이 바닥에 앉아서 듣을 정도다. 자화자찬 같지만 귀중한 시간에 여기 함께 해주신 분들이기 때문에 유익하고 알찬 강의를 해드리겠다.

 

< 왜 부동산을 공부해야 할까? >

‘질문 속에 답이 있다.’고 한다. 하버드대에서는 늘 그렇게 가르친다고 들었다. ‘왜 부동산 공부를 해야할까? 그리고 왜 부동산 투자를 해야할까요?’ 여기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이 되야 한다. 그렇게 물으면 학생들은 답변을 이렇게 한다. “돈 벌려고.” 그 말은 맞다. 왜 부동산 공부를 하러 왔는가. 교수 되려고 온 것은 아닐거다. 난 그 말 대신에 이 말을 하려고 한다. “돈 벌려고” 하면 좀 없어 보이고 천박해 보인다. 그래서 난 “자산축적하러.” 이렇게 말을 바꾼다. 같은 말이지만 말이다. 오늘 내가 여기온 목적은 국가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 가장 수고하시는 여러분들의 자산축적에 도움이 되도록 기여하러 온 것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노후가 행복한 부동산 세상> 이다. 부동산 공부해야되는 이유, 부동산 투자 해야되는 이유는 노후를 위해서 자산을 축적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오늘 교육의 목적이다. 참고로 난 한 시간 상담료가 백만원이다.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들은 적어도 백만원을 벌어가는 거다. 근데 오늘 내 강의를 들어보고 혹시나 백만원이 아닌거 같다. 그러면 청구하시기 바란다. 이정도 자신 있으면 된거 아닌가.

 

오늘 강의는 주로 주택 쪽이야기를 하겠다. 먼저, 앞으로 어떻게 갈것인가. 이걸 시장의 흐름이라 하는데 이 큰 흐름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이것을 우리는 경기예측, 경기전망이라고 말한다. 부동산 경기도 일정한 싸이클이 존재한다. 두 번째는 전체 시장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내가 보유하고 있는 집값이... 내가 사고자하는... 집값>이 과연 오를 것인가. 내릴 것인가. 말을 바꾸면 살 집인가. 팔 집인가. 이게 가장 궁금한 것이다.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오늘 얻으실 수 있다. 정말 오늘 나를 초청했다고 내가 감사도 드리지만 칭찬도 드리고 싶다. 우리나라에 부동산이나 도시를 연구하는 분들이 정말 많고 석학들이 많다. 하지만 방금 말한 이 두가지는 내가 아니면 듣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택을 한 번 매입하면 평균 보유기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10.6년 이다. 두번째 질문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파트인 경우 평당, 우리가 인당 주거면적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인당 주거 면적이 과연 몇평 정도 일까? 약 10평 정도 된다. 33제곱미터 즉 10평... 우리나라의 인구통계상 가구원수가 얼마인지 아는가? 2.5명이다. 일본이 2.2명이다. 앞으로 재건축 아파트를 사거나 주택을 옮겨갈 때 도대체 난 몇평을 사는게 현명한가. 요즘 다운사이징란 말들을 많이 하는데 부동산학에서는 다운그레이드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일본은 참고로 국민소득이 4만3천불 정도 된다. 일본은 인당 주거면적이 15평, 주택의 유형이 우리와 좀 다르긴 하다. 미국은 한 20평 정도로 보인다. 여기서 알 수 있는건 소득이 높아질수록 주택면적은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가격은 우리나라에서는 소형이 먼저 오른다. 그러나 강남은 예외라 큰 평수가 먼저 오른다. 오르는 것도 소득과의 연관관계가 많다.

 

< 성공하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 >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을까? 여러분들은 잘 아실것 같은데...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 성공하는 성공공식이나 성공비법이나 법칙 이런 것들이 있을까? 실패하는 사람과 성공하는 사람과의 차이점이 있을까? 이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한번 찾아보자. 뭔거 같은가? 실패하는 사람은 늘 이것을 찾고, 성공하는 사람은 늘 이것을 찾는다. 우선 실패하는 사람은 늘 두자를 찾는다. 그게 뭘까. 먼저 실패하는 사람은 <변명>, 반면에 성공하는 사람은 <방법>... 종전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새로운 방법을 찾자. 그래서 연구한게 가치투자비법이다. 이건 워렌버핏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러니까 부자들의 투자법... 난 그렇게 똑똑치 못해서 따라하기를 잘한다. 즉 벤치마킹. 새로운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절대 앞으로 부동산 부자가 될 수 없다. 라는 것이다. 내가 발견한 새로운 방법은 무엇인가. 워렌버핏이 이미 주식시장에서 성공했던 성공공식을 그대로 방정식을 가져왔다. 워렌버핏은 세 가지, 나도 오늘 이 세 가지 부동산 투자 비법을 얘기할 것이다.

 

< 투자 비법 >

첫째는 워렌버핏은 투자를 할 때 가치투자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쓰고 있다. 워렌버핏은 기업을 우량기업과 불량기업으로 구분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한다. 그리고 이때의 기준. 객관적 기준이 과학적이다. 이때의 기준은 재무재표 분석이다. 그다음에 CEO의 비전과 능력 두가지를 본다고 한다. 우량기업은 전체 상장기업의 10% 정도다. 라고 한다. 그러니까 투자할 대상은 10%도 안된다. 우량한 기업과 불량한 기업을 구분하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근데 일반인이 투자하는 것을 보면 신문에서 뭐가 개발되었다... 어떤 기업이 유망하다... 또는 영업에서의 창구에서 영업직원이 말하면 그걸 듣고 투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는 내가 아는 영업직원이 이거 사세요. 하면 혹해가지고 사지 않는다는 거다. 신문을 보다가 어 이거 괜찮네. 이렇게 투자를 대상을 종목을 결정하지 않는다. 부동산 투자도 연구해 보니 전체의 20%만 유망하다. 서울을 중심으로 얘기하겠다. 어느 지역이 유망한지 내가 좀 컨디션이 좋거나 여러분들이 열심히 따라주시면 종목까지 이야기해 드리겠다. 작년에 트렌드쇼 프라이빗 세미나에서 돈을 내고 온 분들께만 공개한 <강남 재건축 베스트 10> 부동산이 투자 성과가 얼마나 높았는지 정말 여러분 들으시면 놀라실거다. 상승률이 평균 20%, 조선일보 기사에 그대로 떴다. 제일 많이 오른게 28% 올랐다. 수익률은 50%다. 갭투자를 했다면 즉 전세를 끼고 샀다면 훨씬 높다. 평균 올라간거 보니까 한 5억원 정도가 올랐다. 괜찮지 않은가. 근데 여러분들 표정은 왠지 어두워 보인다. 실제로 투자에 성공한 분이 나를 보면 진짜 우는 분도 계신다. 부동산 사서 한 5억원 벌면 눈물이 난다. 내 손을 꼭 잡고 이제 노후준비 됐다... 고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꽤 많다. 그래서 강사를 하는거 같다. 나름 그런대에서 보람을 느낀다.

 

두 번째가 중요하다. 난 유망한 부동산의 이름을 슈퍼부동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뭐 독특한 아이디어는 아니고 내가 네이밍을 좀 한다. 슈퍼부동산의 반대말을 좀비 부동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오늘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공감이 된다면 실행하셔야 한다. 계속 나만 5년째 따라다니는 분이 있다. 계속 공부만 한다. 뭔가 좀 성과가 있었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계속 공부만 하고 있다고... 실천(행동)을 안하면 꽝인것이다. 내재가치와 미래가치... 좀 어렵지만은 이 용어는 워렌버핏이 그대로 쓴 용어다. 참고로 워렌버핏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가치투자를 넘어서> 라는 책이 있고 <머니>라는 책도 나와 있으니 읽어보셔도 좋겠다.

 

이분은 언제 사고 팔았을까?. 매매전략, 매매행동을 말하는데 재미있다. 내재가치는 재무재표. PER이나 PBR과 같은 것들을 잘 분석해서 우량한 기업인지 아닌지를 본인이 직접 분석을 한다. 그리고 내재가치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었다. 여기에 굉장히 우리와 차별점이 있다. 기업이 망하면 받을수 있는 <청산가치>는 공개는 하지 않는다. 중요 주주들에게만 공개한다. 예컨대 삼성전자라고 치면 내재가치(청산가치)를 자기들이 평가한 그 방법이 있을거다. 부동산에 관한한 난 그걸 안다. 그걸 보면 내재가치가 150만원인데 지금 100만원이다. 이러면 저평가되어 있는거다. 이때 난 저평가라는 말을 쓴다.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다르다. 우리가 알고있는 상식은 무언가? 안 오르면 무조건 저평가 되어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저평가 지역이 어디냐 그러면 여러분들이 주로 사시는 보통 강북구와 중랑구를 꼽는다. 성북구도 들어간다. 그러면서 근거가 무언가? 그러면 ‘강남이 오를 때 우리집은 안올랐잖아요. 그러니까 ? 저평가 되어 있잖아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안 올랐으니까 앞으로 많이 오를거야. 이런 기대를 하게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대부분 계속 버틴다. 이건 굉장히 부동산에서는 편견이다. “내가 지금 10년째 살아봐서 잘 아는데.” 이 말도 많이 한다.

 

< 살기 좋은 곳, 사기 좋은 곳 >

<살기 좋은 곳>과 <사기 좋은 곳>은 다르다. 이것도 오늘 같이 좀 이해해 보자. 굉장히 혼동을 한다. 살기 좋은 곳은 살기 좋은 주거환경을 의미한다. 키스트에 오니까 아 정말 여기 살고싶은 생각이 든다. 이곳만 보면 너무 환경이 좋다. 좋은데 과연 이 하월곡동 주변에 집값은 과연 오를까? 라는 질문에 살기는 좋은데 사기(buy) 는 어떨까? 살기 좋은 집과 사기 좋은 집은 다르다. 라는 것을 오늘 꼭 이해하셔야 된다. 이 두가지를 너무 혼동하는 분이 많다. “강남은 왜 비싸요?” 그러면 내재가치라를 잘 모르는 분은 “살기가 좋잖아.”, “교육이 좋고 환경이 강북보다 좋잖아.” 이렇게 말을 한다. 근데 그렇지가 않다. 강북 등 집값이 싼 동네에 사는 사람에게 <주거만족도 조사> 라는걸 한다. 국가에서도 주거실태조사를 한다. 그러면 강북에 집값이 싼 지역에 사는 사람은 “당신은 만족하십니까?” 그렇게 말하면 굉장히 불만족스럽다고 얘기할 거 같은가? “이 사람아 집값을 봐. 천만원짜리가 살기 좋겠냐. 내가 지금 마지못해서 여기 살고 있지. 이 사람아 나도 오천만원짜리 강남에 살고 싶어.” 그러지 않는다. 강북지역도 80%가 주거 만족도가 높다고 나온다. 좀 더 대비되는 얘기를 해보자. 분당과 일산은 주거만족도가 어디가 더 높게 나올거 같은가? 일산이 더 높게 나온다. 근데 집값은 어디가 더 비싸나면 분당이 비싸다. 이 차이를 이해하시는가? 그래서 일산 사람들은 늘 이해를 못한다. 살기는 좋은데 집값이 안 오른다고... 분당은 우리보다 살기 나쁜데 집값은 오른다고.... 그 원리를 지금 알려드리겠다. 이걸 깨달으면 ‘왜 내가 집값이.. 살기는 좋은데...’ 라는 편견을 버리라는거다. 살기 좋다고 해서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 이 원리는 토지에 그 비밀이 있다. 토지가치 때문이다.

 

< 토지 가치와 내재 가치 >

토지가치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워렌버핏은 이걸 ‘안전마진’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청산가치 즉 내재가치 대비해서 하락할 때만 산다. 우리도 부동산도 그렇게 해야된다. 그때가 언제였을까? 2012년에서 2014년 사이였다. 부동산 경기도 사이클이 있다. 워렌버핏은 그걸 발견한거다. 그러니까 우량한 기업을 언제 산다고? 아무 때나 사지 않는다. 오를 때 사지 않는다. 내재가치 대비해서 내릴 때 산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한다. ‘이 회사가 망해도 이 회사를 처분했을 때 청산가치 이상은 나올 것이다.’ 라고... 안전마진을 확보하고 투자하면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가 없다. 우리 부동산에서 보면 이게 토지가치다. 건물이 아니다. 전세금 이하로만 산다면 나는 망해도 손해볼 일이 없다. 굉장히 멋진 원리를 우리에게 알려준거다. 근데 일반인은 모른다. 그리고 이걸 알고나면 이제 어떻게 우리가 행동해야 되는지... 투자결정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럼 언제 팔까? 이분은 이런 얘기를 한다. 자기가 살 때 시장상황, 분위기를 보면... 일반인들은 가격이 많이 내려가면 이제 끝났다면서 그때 판다고 한다. 그 우량주식을 말이다. 가격이 계속 오르거나 계속 내리지는 않는다.

 

그 다음에 반대로 매도할때는 언제인가? 오버슈팅되었을 때 즉, 자기가 정한 내재가치보다도 턱없이 올랐을 때 그때 파는 것이다. 그때 다른사람들의 행동을 친절하게 설명해놓고 있다. 봤더니 뭐라면서 굉장히 사자는 사람들이 몰려오더란다. 뭐라면서? 더 간다면서.... 그때 자기는 팔아버리는 것이다. 그랬더니 80조를 벌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뭐냐고 나에게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돈 버는 일이라고 말하겠다.” 그렇게 말했다.

 

그럼 부동산은 언제 사고 팔아야 될까? 부동산 경기를 미리 예측하는 기법들이 있을까? 부동산은 본래가 종합응용과학이다. 경제학, 경영학, 정책학, 행정학, 건축학 이렇게 짬뽕이 되어가지고 굉장히 힘든 분야다. 서울대나 카이스트. 연고대 등 좋은 대학들이 부동산학과가 없다. 건국대가 부동산에서는 강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총 자산중에 76%가 부동산이다. 매우 중요한거다. 석학들이 부동산학을 공부를 좀 해야 된다. 이렇게 중요하고 관심이 높은데 실제 석학들은 금융쪽에만 많다. 이게 결국은 사회적 비용과 고민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여러분 10년 법칙을 알고 계실거다. 이제 재미있는 강남 사람들 예를 하나 들겠다. 강남사람들 만나보면 지금 재건축을 가지고 앞으로 5년 이상 버티겠다는 사람이 많다. 이때의 버티기를 그 사람들은 말을 만들어 ‘전략적 버티기다.’ 이런 말을 쓴다. 그냥 버티는거 아니다. 전략적으로, 왜 전략적으로 버틸까? “문재인 정부가 5년이면 끝나니까... 난 지금 돈도 있고, 여유자금도 있고... 강남을 떠날 생각이 없거든요?” 이렇게 얘기를 한다. 그런데 버티는 이유가 중요하다. 아무리 길어도 난리를 쳐도 부동산을 향해서 전쟁을 하겠다고 하니까 근데 이건 비판하려는게 아니라 전쟁이니 이런 용어는 좀 안썼으면 좋겠다. 이런 분위기니까 지금 그런 반발이 나오는 것이다.

 

< 가격의 선행지표 : 거래량 >

전략적 버티기 5년은 성공할것인가. 우리가 꼭 알아야 되는게 뭐냐면 거래량과 가격이다. 거래량은 가격의 1,2분기 선행한다 오늘 이것만 젊은분들 꼭 알아두자. 6개월 후에 집값이 오를지 내릴지 궁금하면 가격을 보면 안된다. 선행지표인 거래량의 변동치를 봐야한다. 변동의 기준은 30%다. 난 2분기 이상 거래량이 30%이상 늘어난다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금 거래량이 반으로 줄었다면 1,2분기 후에는 가격이 하락한다. 이건 법칙이다. 이건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근데 일반인은 모른다. 가격이 좀 오르는 지금 반등을 하고 있으면 ‘또 오르는거야.’ 일반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근데 우리는 거래량 선행지표를 보고 있기 때문에 가격은 반등하고 있어도 이미 에너지가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남보다도 6개월 먼저 안다는 것은 행복한거다. 과학적 지식을 안다는게 이렇게 도움이 된다.

 

두 번째, 십년주기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것인데 5~6년 상승하면... 상승의 반댓말이 무언가? 하락? 근데 하락이라는 단어를 쓸 것 같으면 그냥 깔끔하게 상승하고 하락한다. 이렇게 넘어가야지 여러분들에게 구구절절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락한 적은 딱 2번 밖에 없다. 이게 우리나라 주택경기를 앞으로 예측하는데 도움이 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도 있다. IMF때 하고 지난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리먼쇼크때 한번 내렸다. 그리고 IMF때는 V자 반등을 했다. 그 다음 리먼쇼크때는 부동산 경기가 그때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U자 반등을 했다. 중요한 요점만 말씀드리면 앞으로 강남은 하향안정으로 갈거다.

 

< 서울 집값. 오를까? 내릴까? >

201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실러 교수는 부동산은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에 따라서 완만하게 상승하는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근데 우리 정부는 자꾸 집값을 내리는게 정책의 목표라고 하는것도 경제학적으로 맞지가 않는다.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과 따라서 연동되어 움직일 때 오버슈팅되거나 언더슈팅 되지 않을 때이다. 근데 강남은 좀 오버슈팅된 측면이 있다.

 

글로벌적으로 살펴보면 집값이 우리보다 더 올랐다. 그러니까 서울만 오른게 아니라 대한민국 서울이 우리 도시이론에서는 글로벌메가시티 10대 도시 안에 드는거 다 아실거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서울은 어머어마한 도시다. 우리가 서울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다. 서울의 집값이 비싸야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셰계 10대 도시 중에 지난 10년간 서울의 집값 상승률은 얼마나 될까. 상,중,하로 볼때 ‘하’에 속한다. 집값이 많이 내릴까? 적게 내릴까? 강남은 올해가 고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8.2대책이 나와서 고점이 당겨졌다. 그러니까 8.2대책 때문에 집값이 내리는게 아니라 근본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8.2 대책이 아니어도 시장의 큰 싸이클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 안에 정책이나 금리나 수급이나 이런 변수들이 핵심요인들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서 결론 하나 내린다. 내년에는 더 집값이 오르기는 어려울거 같다. 이미 고점이 왔고 거래량과 가격을 보면 가격이 꺾일 가능성이 많다.

 

그럼 내린다면 얼마나 내릴까? 내린다가 아니라 기간은 3~4년 내지 4~5년 정도 하향안정 될 가능성이 많다. 많이 내리지 않는 이유는 글로벌 집값과 비교할 때 서울의 집값은 결코 지난 10년간 정부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만 오른게 아니다. 다른데도 올랐다. 근데 우리만 많이 내려야 되고 오르지도 않았는데 많이 내려야 하는것인가?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맞는 것이다.

 

이제 가격 이야기를 해보자. 서울의 아파트 평당 매매가격은 2500만원 정도고 서울 아파트 한 채 가격은 5억2천만원이다. 강남은 평당 5천만원 정도 한다. 가격이 낮은 동네가 중랑구, 강북구, 성북구... 여러분이 주로 살고 계시는 동네다. 아주 친숙한 동네가 이런데가 천오백만원 정도다. 싼 동네와 비싼 동네의 가격 격차가 3배정도 난다. 뉴욕은 한 9배 정도 가격차가 나고, 도쿄가 한 5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거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양극화 현상은 벌어진다. A, B 중에 B가 내려가거나 아니면 B도 오르고 있는데 A가 더 올라가서 벌어질 것인가. A가 더 올라가서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서울 도심의 3가지 축 >

들어보셨겠지만 서울 도심권에 3가지 축이 있다. 그게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종로구, 중구 이런 것들이 하나 있고, 두 번째는 강남 강남은 교대역에서 지금 삼성동을 지나서 잠실까지 연장이 되었다. 그래서 송파가 유망한 이유다. 그 다음에 양재에서 신사까지 이게 강남의 핵심이다. 그 다음은 여의도, 영등포가 있다. 근데 도시계획상은 그러한데 실제로는 2개 축밖에 없다. 임팩트 있는 내용이라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 부동산의 두 축은, 딱 두 군데... 하나는 4대문, 동대문 서대문도 포함해서 안쪽으로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이 곳에 투자하거나, 또 하나는 강남에 투자하라. 또 하나를 더 한다면 한강변으로 가라. 기억하길 바란다.

 

"서울의 보물은 궁궐이다"라고 말들을 한다. 그런데 난 "서울의 보물은 한강이다"라고 말한다. 궁궐이 보물, 문화재인건 맞다. 부원장님께서 바쁘신데도 함께 해주셨는데 마침 강남의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계신다니까 얘기를 좀 드리겠다. 10년 주기설에 따르면 5년까지는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결론이다. 그런데 5년 후에는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스프링 효과, 눌러 놓을수록 장기간 눌러 놓을수록 전쟁을 하듯이 눌러 놓으면 사이클 원리에 따르면 튀어오르는데, 많이 튀어오를 가능성이 많다. 근데 또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5년짜리기 때문에 버틴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10년 법칙에 따르면,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공화당, 민주당 식으로 10년마다 정권은 변함없이 바뀐다.

 

< 좋은 시대가 올까? >

난 지금 정권도 10년 정도 간다고 생각하고 이 이야기를 한다. 5년만 버티면 강남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정권, 좋은 시대가 올 것인가. 안 올 것 같다. 개인적으로 거의 김정은에 버금가거나 하는 무서운 정부가 올 것 같다. 이 분들 인내심의 한계가 5년인데 4년 정도 버틸 거다. 근데 계속 정권이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가는 분위기라면 이 때 참을 만큼 참았다면서 팔 가능성이 많다. 팔면 이게 뭐가 될 가능성이 많은가? 10년 주기설의 바닥일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2006년에서 2008년 집 샀던 사람들이, 언제 집 팔았는가? 통계가 있다. 2013년에 강남 거래량이 80%가 증가했다. 그래서 고종환이 어떻게 했는지 아시는가? 조선일보, 매경, 종편이 그때 활성화되어 내가 나와서 정말 강남 재건축 사라고 노래를 불렀었다.

 

미국은 7년-10년, 미국은 그동안 20년 주기설이 통설이었다. 최근에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10년 주기설이 맞다. 그렇게 썩 경제 상태는 좋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에도 재건축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재건축은 선행 시장, 리딩 마켓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오른다면 강남 재건축부터 오른다. 강남 재건축이 오르면 그게 신호다. 의심하면 안된다. 거래량이 먼저 오르고, 재건축이 오르면 강북. 강북하고의 시차는 1년 정도다. 강북은 시작은 늦게 하지만 마지막 고점도 늦게 온다. 초기에 강남만 오르고 강북이 안 오르면 "왜 아랫목만 뜨뜻하고 윗목은 미지근해요? " 라고 자꾸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대로 온다. 그리고 용산을 주목해야 한다. 이야기한 세 군데와 용산은 변화가 많다.

 

< 땅값이 올라야 집값이 오른다. >

부동산이 뭐냐고 물으면 난 이렇게 답한다. 사실 부동산 전문가라도 갑자기 "부동산이 뭐예요?" 물으면 바로 답하기 어렵다. 부동산이란 단순하게 토지와 건물 딱 두 가지 요소밖에 없다. 그런데 토지와 건물의 물리적, 자산적 특성이 판이하게 다르다. 어떻게 판이할까? 토지는 무한성, 영속성의 특징이 있는 반면에, 건물은 유한성, 감가상각된다. 마치 건물은 인간의 육신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노후화된다. 노후화되면 감가상각 되어 경제적 잔존가치가 감소한다. 이걸 파악하지 못하면 계속 내 집값이 오를지 내릴지 감이 안오는 것이다.

 

전체 시장을 사이클 원리로 이해해야한다. 지난 3~40년간 그런 사이클 원리가 발견된다면 올해 참고할만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이클 원리인 10년 주기설을 최초로 발표한 사람이 바로 고종완이다. 중요한 건 땅값이 올라야 집값이 오른다. 이거 기억해야 된다. 아파트를 예를 들겠다. 아파트도 30년이 지나면 건물의 가치는 회계장부 상 0원으로 바뀐다. 결국, 내 아파트가 10년 후에도 오르려면 땅값이 올라야 되는 것이다. 땅값이 오르지 않으면 절대 집값은 오르지 않는다. 명심하자. ‘우리 집은 살아 보면 살기가 좋은데 왜, 우리 건물이 얼마나 잘 지었는데, 새 아파트고 그런데 그걸 자꾸 감가상각한다고? 말도 안 돼, 10년 후에도 더 좋아질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면 큰일난다.

 

다음은 대지지분이 넓어야 한다. 아파트나 공동주택은 땅을 대지지분이라고 말한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 슈퍼 부동산인지, 슈퍼 아파트인지, 아니면 슈퍼 좀비 부동산인지, 좀비 아파트인지를 잘 봐야 한다. 좀비 아파트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아는가? 남이 오를 때 안 오르고, 남들 내릴 때 자기가 알아서 더 많이 내린다. 이거 정말로 환장한다. 근데 본인이 생각하기는 살기는 좋아. 공기가 좋고, 우리 동네는 공기가 좋아.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태원에 대림아파트라고 있다. 그 아파트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그기에 사시는 분이 이태원도 용산인데 왜 집값은 안 오르냐고 계속 문는다. 살기 좋은 이유가 뭐냐 물었더니 아침마다 남산에서 새가 백 마리 날아와서 그 지저귀는 소리가 마치 음악과 같고, 10년 째 살고 있는데 너무 좋단다. 그런데 "그러면 됐지 않아요?" 하고 물으니 집값이 안 오른단다. 그러니 자기는 굉장히 궁금한거다. '새 소리도 들리고 살기가 좋은데 왜 집값은 안 오르나' 사실 집값이 오르려면 새 소리가 들려야 되는게 아니라 사람 소리가 들려야 된다.

 

주상복합 살고 계신 분 꽤 계신다. 나도 주상복합 70평에 살고 있다. 같은 동네에 아파트도 있고, 주상복합이 있고, 요즘은 오피스텔도 주거형 오피스텔 이런게 존재한다. 공간만 놓고 보면 3가지가 차별성이 없다. 아파트 구조로 다 짜여 있지만 내재가치는 다르다. 토지가 보이지 않는 숨은 가치다. 즉 숨은가치는 대지지분을 말한다. 그러니까 내 집값이 오르려면 건물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건물 부분보다 내 아파트의 대지지분이 몇 평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 시간이 내편인 부동산 >

한국감정원에서 대지지분에 대한 공시지가를 발표한다. 잘 보셔야 한다. 이 추이가 상승률이 평균보다 높아야 된다. 강남이 이렇게 집값이 오름에도 불구하고, 강남 중에서도 집값이 내린 아파트 단지가 여러 군데가 있다. 대표적인게 도곡동에 타워팰리스다. 타워팰리스 얼마나 내렸을까? 주력이 68평인데 5년전 평균 31억원에서 지금은 21억원 한다. 10억원이 내렸다. 그 옆에 붙어있는 개포동 주공1단지 15평은 재건축 들어갔다. 여기는 10억원에서 17억원으로 올랐다. 7억원이 올랐다. 다 쓰러져 가는 15평이 7억원이 오를 때, 대한민국 대표 부촌인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10억원이 내렸다. 이거 굉장히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비교분석을 해보자. 대지지분이 타워팰리스는 68평이 10평밖에 안 된다. 만약 주상복합 살고 계신 분들은 15년 되었다 그러면 빨리 갈아타야 된다. 이번 가을에는 실행해야 된다.

 

근데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 타워팰리스 주민만 모르고 "버티면 10억원이 오르겠지" 이렇게 말하는 배경에는 도곡동 타팰에 부자들이 여전히 살고 있고, 살아본 사람이 여전히 살기가 좋고, 불편함이 없고, 은행들 PB센터는 도곡동에 다 밀집되어 있고, 그래서 이 사람들은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 "아니 지금 내가 15년째 살고 있는데 불편한거 하나도 없어. 화장실이랑 주방 낡아서 한 1억 들여 싹 고쳤더니 다시 호텔식으로 됐거든?" 이렇게 이야기한다. 주변에 나가면 각종 운동시설에, 각종 음식점이 즐비하다. 학교도 다 좋다. 근데 뭐만 내렸다고? 집값만 내렸다. 반면 개포주공 15평은 대지지분이 21평이다. 40평을 그냥 준다니까 그래서 17억원으로 오르고 새 아파트로 바뀌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 편일까? 이게 투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고종환 생각은 <시간이 내 편인 부동산>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내 편인 부동산, 그게 성장지역 부동산이다.

 

< 땅값이 오르는 원인 >

땅값이 오르는 요인은 4가지다. 지금 여러분들은 내가 10년, 15년간 연구한 노하우를 지금 공유하고 있는거다. 첫 번째  땅값은 그냥 오르지 않는다. 땅값은 사람의 영혼과 비슷하다. 사람의 본성, 본심, 본질은 쉽게 변하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보면 안다. 두 번째, 인구집중. 사회적, 경제적, 행정적 요인이 변해야 한다고 하는데, 부동산의 이론적 근거는 부동산의 지리적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만 사회적, 경제적, 행정적 요인의 가변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딱 4가지만 기억하자. 사회적 요인은 인구 구조의 변화, 인구 증가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 소득 증가해야 된다. 땅값이 오르려면 구매력이 높은 생산 인구가 증가해야 한다. 답이 다 나왔다. 지금 강남이나 집값이 오르는 곳, 광화문 이 주변은 구매력이 높은 생산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은 선거구가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었다. 세 번째가 중요한데 바로 인프라다. 강북 지역에 앞으로 변화가 있다면 인프라의 변화다. KTX, GTX, 경전철이 있다. 지하철이 개통되면 15%에서 23%가 오른다. 9호선이 효과가 가장 컸다. 가장 높게 오른 데가 염창동이다. 그리고 언제 사야 될까? 지하철 개통 2,3년 전이다. 개통 후 사면 안된다. 개통 후 사면 심지어 내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한 번 역세권은 영원한 역세권이라고 하는데 이 말도 맞지가 않는다. 무슨 말일까? 미래 역세권에 미리 투자하라. 역세권과 비역세권 가격 차이는 이미 벌어져 있다. 20% 차이 난다. 요즘 경전철 계속 들어서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영향을 준다. 마지막으로 중요한게 특정 지역 개발을 장려, 촉진하려 하는 행정계획이 있는곳이 오른다. 이 네가지 조건을 난 '고의 법칙'이라 부른다. 이때 고는 고종완의 ‘고’이다. 인구 증가, 소득 증가, 인프라 증가, 국토계획, 도시계획, 개발계획이 존재하는 행정계획이 있는 이 4가지가 존재하는 곳이 땅값이 오른다. 그 실례가 제주도와 세종시다.

 

< 석촌호수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

여러분,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해야될까? 실패의 원인을 밝혀야 성공할 수 있다. 우리 땅값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이 4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고향이 경남 하동이다. 실패의 사례를 한번 더 보자. 난 KT 인사부장 한게 직장생활 마지막이었다. 내가 명퇴할 때 돈이 2,3억 생겼다. 당시 잠실주공 4단지 1억8천5백만원이었다. 십 몇년 전 이야기다. 고향 하동에 갔는데 거기 쌍계사라는 절이 있고 그 주변 땅 2만평이 마침 2억원에 나왔다. 산봉우리가 있고 계곡도 있고 너무 좋았다. 은퇴하면 가려고 했었던 것 같다. 뭘 살까 2달을 고민하다가 결국 고향 땅을 선택했다. 내가 안 샀던 잠실 4단지는 지금 43평 아파트가 18억원이 되어있다. 그래서 난 잠실 살면서도 석촌호수를 안간다. 자꾸 트라우마가 생각나 기분이 안 좋아진다. 산책하러 운동하러 갔다가 그것만 보면 옛날 생각이 나고 불행해 진다. 그런데 경남 하동은 왜 안올랐을까? 경남 하동은 인구가 감소한다. 경남 하동 지리산은 소득이 증가가 없고 개발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오른다. 혹시 지리산에 관심이 있거나, 귀농이나 귀촌 또는 귀산에 관심이 있으신 분에게 10년 전 가격 2억원에 드리겠다. 자산 선택을 잘못하면 이렇게 10배 차이가 난다.


 땅값이 오르는 한 집값은 안 떨어진다. 주택보급률이 서울은 98% 올해 말, 경기도는 100%인데 105%가 적정하다는 거다. 이것도 정부가 좀 놓치고 있다. 다만 과공급 지역이 있다. 김포, 남양주, 화성, 동탄, 평택, 공급이 많은 지역은 일시적으로 전세가 내리고 있다. 전세가 내리는 이유는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갑질을 해서 전세가 오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금 평택의 전세값이 내리는 거는 평택 집주인이 착해져서 그러는거 아니지않는가. 작년까지는 올랐다. 그러면 집주인이 갑자기 착해졌냐, 이렇게 설명되어야 하는데 말이 안된다.공급이 많아져서 내린거다. 서울의 입주물량은 많지는 않고 여전히 공급부족이다. 전세가 안내린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매매 가격은 내려갈 가능성이 좀 있다. 그래도 참고 견뎌야 된다. 다음 정권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사이클을 기다리라는 거다.

 

< 마무리 말 >

마지막 선물은 도시재생 지역에 주목해라 이거다. 사람들은 도심회귀현상이 강하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직장과 주거와 의료와 문화가 많은 곳으로 간다. 이 조건을 갖춘 곳이 서울에 5군데밖에 없다. 그게 강남이고 4대 문안이다. 우리 인구는 2031년까지 증가한다. 그래서 2031년까지 우리 경제는 망가지지 않는다. 2040년까지 소득은 4만불이 된다고 한다. 성장국가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도 2030년 내지 2040년 인구와 소득이 성장하는 한은 부동산은 멈추지 않는다. 2030년까지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금리는 단기간 오르겠지만 우리도 5년 후에는 제로금리 혹은 마이너스 금리로 전환될 확률이 많다.

 

우리나라의 집값은 높은 편이 아니다. 런던은 지금 평당 매매가격이 1억3천만원, 1억5천만원까지 올랐다. 우리는 2천5백만원이라고 했고 제일 비싼게 8천만원이다. 그런데 선진국은 한평에 제일 비싼게 4억5천만원까지 간다. 우리 아파트도 1억원까지 가야 한다는게 글로벌 기준에서 보면 맞다. 소득 대비 월세 비중도 한국이 높은 편은 아니다. 이것도 주목해야 된다. 가처분 소득 대비 런던은 월세를 50%를 내야 된다. 한국은 25%이다. 그래서 글로벌 조사 대상에서 빠져있다. 보고서에 ‘대한민국 서울은 글로벌 도시는 맞으나 월세 수준이 너무 낮아서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 라는 친절한 멘트를 붙여놓았다. 그러니까 서울의 월세는 월세가 아니다 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와는 참 많이 다르다.

 

강북의 도시재생 지역을 주목하자. 도시재생 시범지구에는 무조건 가야한다. 행동전략 중요하다. 시기가 발표나면 그날 당일 가서 제일 싼걸 사면 된다. 수락, 월계, 삼양 이런 곳들이 앞으로 서울시가 경전철 건설지로 주목해야 된다. GTX도 주목해야 된다. 한강은 풍납, 암사, 광진 쪽이 좋다. 예컨대 수서 신동아 같은 데는 3-4년 전 내 제자들이 많이 샀다. 15평형에 2억5천만원 했고 전세/매매 차이가 5천만원 이었다. 그런데 지금 5억 5천만원에서 6억원이다. 그러니까 5천만원 투자했더니 한 3년만에 3억원을 번거다.

 

젊은 분들한테는 용산을 권해드린다. 여러분들이 하남까지 가시기는 좀 힘들것 같고. 신안산선은 여러분들이 주목해야 된다. 노선이 좋다.

토지는 제 2 경부고속도로 부근 용인시 원산면 이런데 좋다. 임야는 제주도, 남해안 뜨고 있다. 고종완의 홈페이지(http://salzippalzip.com)가 있는데 10억원 들여서 완성한 것이다. 지금은 무료다. 모바일로도 검색이 되니까 고민하지 마시고 많이들 활용하시기 바란다. 모두 부자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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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으로 보는 세상

- 만화가 이현세 -

 

2017년 8월 창의포럼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만화가 ‘이현세’ 교수를 초청했다. 1954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성장하여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만화를 좋아했고 그것 밖에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소년은 고교 졸업 후인 1974년 상경했다. 1978년 <월남전은 알고 있다>로 공식 데뷔하였다. 만화주인공 까치가 처음 등장한 작품은 1979년 발표된 <시모노세끼의 까치머리>였는데 까치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2년에 발표한 <공포의 외인구단>부터 였다. 많은 작품이 있지만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지옥의 링>, <떠돌이 까치>,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폴리스>, <아마게돈>, <카론의 새벽> 등 많은 사랑을 받아 영화화나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제 23대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5 독도경비대 명예대장을 지냈다. 아시아만화인대회 특별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한민국만화부문 대통령상, 대한민국만화에니메이션캐릭터 대상, 한국만화문화상 공로상, SICAF 특별상, 고바우만화상 등을 수상한바 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희끗희끗한 짧은 머리, 붉은색 셔츠위에 베이지색 상의 그리고 회색계열 바지, 감색 스니커즈를 신은 훤칠한 외모의 그가 우리 앞에 섰다. ‘만화가 이현세 인사드립니다’ 로 말문을 열었다. 난 세가지가 아주 잼뱅이다. 첫 번째는 기계치고, 두 번째가 방향치다. 이렇게 몇바퀴 돌고나면 동서남북을 모른다. 그 다음에 박자치다. 성량은 괜찮은데 박자를 도저히 못 맞춰 술이 취하면 않으면 절대 노래방에서 노래를 안 부른다. 그래서 대표적인 음주(飮酒)가(歌)무(無)다. 만화 그리는 것 외에 낙은 골프와 술이다. 그래서 결국 성인병이 20개는 되는 종합병원 신세가 되었다. 덕분에 요즈음은 아주 건전하게 살고 있다. KIST에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KIST 같은 무시무시한데 가서 무슨 강의를 해야할까. 어릴 때 만화에서 보면 박사님들은 특히 과학기술 분야 박사님들은 무지 높은 존재셨다. 그래서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런 분들이었는데 그런 분들 앞에서 특강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아득하기도 하고. 그래서 두세번은 거절했었다. ‘난 감히 그런데 설 수가 없다’ 고 생각했는데 ‘인문학 강좌니까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다’ 고 해서 찾아왔다. 38년째 만화가 현역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 네이버 웹북에 신화 6부를 연재하고 있다. 22년 전 다행히 시대를 잘 만나 한국에도 만화애니메이션학과가 생겼다. 소개해주신 분 말씀대로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 대학교수가 되고... 너무 신기한 일이다. 모든게 시대를 잘 만난 덕분이다. 21년째 세종대에서 강의중이고 앞으로 3년 뒤면 정년이다.

 

< 소년... 이현세의 꿈... >

    어릴 때 소원이 첫 번째가 만화작가가 되는 거였고, 두 번째가 로봇을 조정해보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 드론을 조종할 수가 있으니까 꿈도 이루었다. 그리고 아주 높은 빌딩에서 살고 싶었다. 그때 아톰이라는 SF만화를 보면 전부 배경이 높은 빌딩에 서치라이트가 좌우상하로 막 비치는 거였다. 아톰을 만든 박사가 있는 그 연구소에는 밤에 보안을 철저하게 해야하니까 서치라이트가 막 비추는 것으로 표현했던것 같다. 이제 이렇게 오늘 한국과학기술연구원도 들어와보고 했으니까 그때 그 소원은 오늘로써 다 이루었다. 그런 점에서 더 감사를 드린다. 

    과학자들이 어떤 이론과 가설을 내놓으면 우리 만화가들은 상상력과 꿈을 보태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린다. 그 덧붙인 이야기들을 가지고 또 과학자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이론을 내놓는다. 전깃줄 없는 전화기, 어렸을 때 신기하다 하지 않았는가. 이런 것들이 다 만들어지는 걸 보면 진작에 만화가들하고 과학자분들하고 서로 융합컨텐츠를 만들려고 생각했었으면 우리도 굉장히 더 많은 업적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 만화에서도 훨씬 더 공상과학적인 내용이 더 많이 만들어졌겠다... 라는 생각을 오늘 KIST를 오면서도 했었다. 늦게나마 지금 젊은 우리 작가들이 IT기술을 이용해 웹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앞으로 점점 더 기술과 만화는 서로 상생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 프레임은 만화의 기본 >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첫째로 그냥 세상을 보는 눈, 만화가가 프레임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은 과연 어떤 눈인가 하는 내용과, 둘째 살아오면서 이 만화라는 편견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전쟁을 해왔는지를 말씀드리면 가장 재미있어 하실거 같다. 과학자들도 어떤 편견하고 전쟁을 하는거 아닌가. ‘여기까지가 과학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식이다, 기술이다’ 라고 해놨는데 과학자들은 그걸 뛰어넘어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만화가들도 그렇다. 프레임은 아시다시피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우리 만화가들에게는 프레임은 동화처럼 한 컷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나의 아웃라인도 프레임이라고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작가가 세상을 보는 눈도 프레임이라고 한다. 프레임 속 안에 작가가 또 프레임을 만들수도 있다. 여기 만화컷 속에 있는 큰 나무를 프레임이라고 한다. 이 나무에 잎이 없으면 가을이나 겨울이 된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건 만화가에게는 이 칸을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이다. 그림이나 재능이나 어떤 기술이나 지식보다 더 중요한건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가장 중요한 거다. 과학자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새내기 만화작가가 처음부터 착하고, 유익하고, 위대한 만화는 절대 그리지 못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진보도 되어보고 보수도 되어보고 그러면서 남녀노소 독자들하고 소통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거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어 아이들이 전화기만 들면 프레임을 다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어린시절에는 카메라라는 건 언감생심 절대로 가질수가 없는거 였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 방법을 알려주었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가지고 이렇게 사각형을 만들어 보이는 대상을 어떻게 프레임을 잡아야 이쁜지를 알려주었다. 이걸 모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안 예뻐진다. 프레임이 안맞기 때문이다. 우리 만화가들도 자기가 프레임을 가지고 덤비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고 지식이 많아도 절대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건 이 프레임인 것 같다.

 

< 재미있다는 것 >

    프레임을 잡기 전에 첫번째로 만화가에게 가장 중요한게 뭐냐면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는 것이다. 과학자 분들도 그럴거다. 뭐든지 처음에는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난 그것만 만들고 있으면 제일 재미있어... 그런데 이걸 왜 만들어야 하지?’ 이런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갖기는 쉽지 않다. 그걸 갖는다고 하면 아마 그 분은 특별한 분 일거다. 뭔가를 만들고 궁금한게 견딜 수 없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보면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우리 만화가도 그렇다. 위대하고 훌륭한 만화를 만드는건 이길로 들어선 후에 자각을 하고 공부를 해야하지만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는 건 굉장히 쉽다. 왜냐하면 자기가 아는 만큼 쓰고, 자기가 느끼는 만큼 그리면 그 만화는 굉장히 재미있다. 물론 전제조건은 작가 자신에게, 자기감정에 대해서 정직해야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난 군것질 거리를 친구들에게 만화를 보여주고 해결했다. 그때 소재가 뭐였냐면 평판이 안 좋은 선생님을 놀리거나, 욕하는 이야기였다. 교장선생님을 욕하면 더 인기가 있었다. 결국 내가 느끼는 이야기를 그냥 정직하게 그 수준에 맞게 그려놓으면 재밌어하더라. 그리고 다른 사람 일기를 훔쳐보는 거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글재주가 하나도 없어도 이건 그 사람의 진실을 기록해놓은 거니까 정말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재미있다. 그리고 화장실 낙서 정말 재미있다. 천정까지 따라 가다보면 대개 <뭘 봐 이 XX야> 이렇게 적혀있는데 그런데도 화장실에 가서 새로운 낙서가 있으면 또 훑어가게 된다. 

    또 막장드라마가 굉장히 재미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있을수 없는 이야긴데도 아침, 저녁으로 나오는 그 막장드라마가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그걸로도 부족해 지금은 종편같은데를 보면 그보다 더한 심한 상황의 이야기들도 나온다. 속에서는 자기도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박사이기 때문에, 만화가이기 때문에, 어른이기 때문에 내가 감방가기 싫으니까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쁘니까, 패는 건 나한테도 보복이 오니까 등.... 내가 또 이렇게 성질 냈다가는 이혼해야 하니까, 이렇게 하면 엄마하고 애들이 한 편이 되고 내가 왕따가 되니까... 이런 수많은 이유로 우리가 참지 않는가. 그런데 막장드라마에서는 이런걸 토해내놓는 거다. 그리고 개콘이나 이런 것들이 재미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는 우리의 희노애락이 들어가 있다는 거다. 이걸 다 우리는 감추고 산다.

 

< 재미를 넘어서는 훌륭한 만화 >

    작가가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려면 첫 번째로는 자기 수준에 맞게 자기 감정에 정직하게 표현했을 때 가능하다. 약간이라도 고상한 척한다던지, 더 아는 척하고 그러면 자기하고 수준이 똑같은 사람은 ‘뭐야 이거, 멜로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이렇게 되버리는거다. 그러나 재미있는 만화를 넘어서 좋은 만화, 유익한 만화, 자기에게 신념을 주는 만화, 훌륭한 만화, 위대한 만화로 가기 위해서는 이제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우리는 작가들끼리 재밌는 만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기 수준에 아는 만큼 쓰고 그려놓은 것들, 그 다음에 훌륭한 만화라고 하면 적어도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어떤 작가의 신념이 확고히 들어가서 세상을 어떻게 본다... 라는게 들어가 있는 만화를 말한다. 위대한 만화가 되려면은 그 수준의 한계를 더 뛰어넘어서야 한다. 

    들어봤던 말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이야기는 1950년대 쯤에 중국이 영토를 확장해나갈 때 티베트를 점령했는데 인민은 다 가난하게 사는데 절 안의 창고에는 금은보화와 먹을 것이 가득 차 있었다. 인민의 피를 빨아먹는 중들이라 해서 탄압에 들어가니 많은 스님들이 히말라야를 건너서 유럽으로 도망을 쳤다. 근데 팔십 넘은 노인이 히말라야를 넘어 유럽에 온거다. 유럽에서는 너무 놀래 전부들 묻는게 어떻게 그걸 넘어왔냐. 그러니까 그 스님이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왔다... 이렇게 이야기 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위대한 작품은 결국 작가가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서 어느날 개안을 하고 대상 전체를 다 받아들이고 가슴에 품었을 때 나오게 되는 거다. 난 아직 그 수준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훌륭한 만화도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대중에게 사랑받는 재밌는 만화는 많이 그렸다.

 

< 만화, 웹툰, 애니메이션 >

다를 박사님들이니까 어디가서 혹시 손자, 손녀 또는 아들 딸 하고 얘기 할때 ‘웹툰이 뭐야, 만화가 뭐야’ 라고 물어오면 요즘 인터넷으로 만화를 제공하는 걸 웹툰이라고 하지. 이러시는 것보다는 조금 더 기술적으로 말씀해주면 좋을거 같아 말씀드린다. 난 옛날 출판 만화를 하던 사람이고 또 연재가 끝나면 책을 찍어내야 하니까 일단 콘티를 짤 때도 출판 만화 형식으로 콘티를 짠다. 하나의 종이 즉 지면을 각 공간으로 나눠 콘티를 짰고, 이걸 그대로 연필 스케치로 옮긴후 펜을 입히게 된다. 여기에 채색을 해서 완성한후 지면의 각 공간을 분리해 세로로 보여주는 웹툰 형식으로 연재를 하고 있다. 근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핫한 이 웹툰이라는 건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까. 우선 만화부터 보면 만화는 하나의 지면을 칸 여백이라는 컷으로 공간을 나눠서 움직이게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공간 연속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면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언제나 공간을 나눈다. 근데 영화는 공간을 하나 하나 시간적으로 병렬로 배치를 해서 착시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시간 연속 예술>이라고 일반적으로 얘기한다. 그러면 웹툰이라는 것은 바로 그 중간에 있는 것이다. 컷이 나눠질 수도 있고 이 칸 여백이 길어질 수도 있다. 만화는 아무리 늘리려고 해도 이 지면 하나로 끝난다. 근데 웹툰은 이걸 스크롤로 계속 내릴 수 있는 거다. 그러니까 웹툰은 시간과 공간을 같이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웹툰은 <시공간 연속 예술>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 웹툰의 진화... >

웹툰이 최근에 VR하고 합쳐지면서 또 진화를 했다. 우리가 웹툰을 보면서 가장 짜증이 나는게 뭐냐하면 처음 pc로 볼 때는 꽤 그래도 괜찮았다. pc나 e-book으로 볼 때는 이 스케일이 느껴질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99%가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본다. 스마트폰의 그 작은 공간으로 봐야하니까 와일드한 장면이라든가 이런거를 살릴때 너무 힘들었다. 근데 지금 VR하고 합쳐져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앞으로 웹툰은 또 어떻게 발전해 갈지 모르겠다. 영화 4D 나왔을 때 우와... 했었는데 난 못보겠더라. 2D까지는 괜찮은데 4D는 물 떨어지고, 바람 불고, 의자 흔들리니까. 정신이 없게 만들어 스토리에 집중이 안된다. SF, 호러 이런 쪽은 전혀 다른 시장을 만들 수 있을것 같다. VR과 웹툰이 결합이 되었을 때 스마트폰 들고 다니면서도 이 사람은 실제로 지금 운동장만한 화면을 즐기고 있는 거다. 그게 이번 여름 부천 만화 페스티벌에서 처음 우리나라에서 선보였다. 어쨌든 이제 창작 만화는 99%가 웹툰으로 소비를 하고 있으니까. 아마 집에 있는 애들도 거의 아침 저녁으로 오늘 어떤 웹툰이 올라왔는지 리서치할거다. 웹툰은 월요 웹툰, 화요 웹툰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아마 웹툰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서 웹툰으로 잠이 들거다. 웹툰이라는 형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기억을 하시면 특히 이현세 만화만 좋아했던 오십 넘는 분들은 애들하고 대화하는데는 도움이 될듯 하다. 애들한테 아무리 이현세 만화 얘기해봐도 애들은 ‘까치가 뭐야’ 이럴 거다.

 

< 만화, 편견에 얼룩지다. >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편견이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었다. 지금은 아마 젊은 여성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내 동기 여자친구들과 얘기를 해보면 ‘넌 도대체 태어나서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편견을 언제 처음 느꼈냐’ 라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엄마, 아빠와 유원지 같은 곳에 놀러가다가 소변을 볼 때 느꼈다고 한다. 남동생 같은 경우는 아무데나 세워놓고 괜찮다고 하며 소변을 보게 하는데 자기는 숨어, 우산 씌우고 소변을 보게 하니까 그때부터 ‘여자는 남자만큼 이런걸 하면 안되는 구나, 불편한 세상이구나’ 이것을 느꼈다고 한다. 근데 내가 태어난 곳은 아주 시골이었다. 기차도 자동차도 없는... 모든 보급물자를 헬리콥더로 실어나르던 깡촌이었다. 근데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생활이 어려워 아버지는 노가다라도 하려고 그 당시 도시였던 경주로 나왔는데 아버지는 죽을 맛인데 난 너무 신났다. 기차역 앞에 집을 얻었는데 그때 기차를 처음 봤고 밤에 네온사인도 화려했다. 살던 깡촌은 밤만 되면 아무것도 없었다. 근데 반짝반짝 그 반짝이는 불빛 속에 6살된 내 눈을 사로 잡은 것이 바로 만화가게에 진열해 놓은 만화책들이었다. 옛날에 만화책은 고무줄에 걸쳐놓아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해, 지나가다보면 안에 어떤 만화가 들어왔는지가 다 보였다. 지금 보면 정말 유치한 세계인데 삼원색을 가지고 빨강, 노랑, 초록으로 채색된 것이니 정말 유치 했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너무 멋있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당연히 만화에 푹 빠져버렸다. 집은 동화책 사줄 형편은 안됐고, 영화는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것 빼곤 불법.... 만화책이 제일 만만했다. 일원만 들고 들어가면 다섯 권씩 볼 수 있었으니까. 이 만화가 가장 먼저 부닥친게 학교였다. 학교에서 이런 그림이 너무 좋아서 만화를 그리고 있으니까 미술 선생님이 이런 그림을 그리면 안된다고 꾸중을 하셨다. 그 다음에 더 치명적이었던 건 만화책 보면 정학 당하고, 책가방에 만화책이 있으면 다 뺏겼다. 어마어마한 편견에 부딪친 거다.

 

< 암울했던 나의 미래 >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서 공무원이 되야지...라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색약이었고 집은 둘째 삼촌이 빨갱이로 인민군으로 북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있었다. 이건 완전히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공무원은 커녕 인문계 빼고 자연계도 못가고 사관학교도 갈 수 없는 처지였다. 군대에서 행정반에 근무를 했는데 인사기록 카드가 제대할 때까지 안 넘어왔다. 중간에서 연대장님이 그걸 다 찢어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홍대 미대 나온 동료보다 열 배의 몫을 내가 해냈기 때문이다. 우리 만화가는 원래 상상으로 그린다. 회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책을 보고 밀도 있게 드로잉을 하기 때문에 우리와 펜을 잡는 방법도 다르다. 미술은 밀도인 면을 중시하고 우리는 선을 중시한다. 그러니까 바쁜 군대에서 아무것도 안보고 쭉쭉 그리는 데에는 내가 제일 빨랐다. 제대 할 때까지 내내 들었던 말이 뭐냐면 ‘특별히 공부를 한 놈도 아니고 집 안도 좋지 않으니까 너 같은 놈은 군대에 말뚝 박아라’ 였다.

 

< 희망없던 시절, 만화를 선택 하다. >

고등학교 때 갈 곳을 잃었다.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그림 그리는 재주 밖에 없는데 색맹 에다가, 빨갱이 에다가, 연좌제에 걸려 있어서 갈 데가 없었다. 그때 제일교포 친척분이 만화책을 하나 보내왔다. 사람이 죽기 전에 뭔가가 반짝하고 오는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걸 잡으면 사는거고 그걸 못 잡으면 죽을거 같았다. ‘일본에서 요즘 인기있는 만화책인데 네가 그림을 좋아한다고 할머니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낸다’ 라고 했다. 우리 할머니가 북한에 있는 둘째 아들하고 어떻게든지 만나보려고 조총련 친척을 통하다보니까 얻어진 결과였다. ‘사스케’ 라는 만화였다. 지금 보아도 그렇게 유치하지는 않다. 그 당시 한국만화만 보다가 너무 깜짝 놀라 버렸다. 책 자체가 품격이 아주 줄줄 흘렀다. 책의 내용은 당연히 몰랐다. 그때는 일본말 배우자마자 해방됐다. ‘나 완전히 똥됐다’ 이러는 분들이 많았었던 때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통일하고 난 뒤에 천민 자객집단인 닌자를 다 쓸어버리는 그런거에 대한 이야기라고 들었을 때 문화적으로 너무 쇼크를 먹었다. 우리 만화에는 그냥 공주 이야기 나오고, 동물전쟁 이야기 나오고.... 그런 아주 어린아이 상대의 이야기가 나올 때였는데 저런 천민의 정체성이라던지, 반항이라던지 그런거를 다룬 만화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말귀는 알아들을 때였으니 만화라는 세계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래서 사스케라는 만화를 보고 우리나라도 만화를 열심히 그리다보면 언젠간 이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아주 그런 희미한 희망을 보고 만화라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니까 만화라는 천박한 금기의 편견을 깨준게 우리나라 만화가 아닌 일본 만화책이었다. 그때 일본문화는 우리들에게 전혀 들어오지도 못하던 때였다. 난 사스케의 저자 <시라토산페이> 라는 작가를 너무 좋아한다. 너무 어릴 때도 영향을 받았고 이후 내내 영향을 받았는데 일본에서 약간 사회주의이며 진보 쪽 작가다.

 

< 나의 가치관 >

만화를 그리면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은 3개 였다. 첫 번째는 <모든 것은 스스로 결정한다>라는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주인공, 두 번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절대적 자기애에 가까운 자존감> 이다. 이현세의 <까치>라는 캐릭터는 이 세가지를 가지고 있다. 가치관 자체가 절대 남에 의해서 조종되지 않고, 둘째는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마지막으로는 자존감이 너무 심한 까치라는 이 캐릭터는 인본사상의 대표적 캐릭터라 거의 한 두 작품 빼고는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현세 만화의 덕목은 <우정, 사랑, 도전, 승리> 이 네가지다. 모든 이현세 만화는 이것이 기본이 된다. 그런데 지금 이현세 만화가 젊은 독자들하고 소통이 안 되는건 바로 이것 때문인것 같다. 우리 때는, 여기 나이드신 분들은 그렇지 않았나? 여자친구보다 불알 친구의 우정이 더 소중히 했던게 그당시의 덕목이었다. 만일 지금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택도 없지않은가. 지금은 모든 것을 앞질러 그 순서의 첫번째가 자기 여자친구 남자친구니까... 지금은 만화든, 영화든 지옥훈련도 가볍게 즐기면서 하는 만화는 굉장히 호응을 받는데 외인구단처럼 이 악물고 모든걸 다버리고, 여자친구 버리고 지옥훈련 갔다가 오면 엄지는 이미 시집가고 없을 것이다.

 

< 경주남자 그리고 우정 >

아직 큰딸이 결혼을 안하고 있는데 한번은 경주에서 후배들이 “좋은 후배 판사가 한 명 있는데 형님 큰딸하고 딱 맞을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먼저 만나보니 풍채도 좋고 인물도 훤하고 잘 생겼더라. 과학자였으면 훨씬 좋았겠지만 과학자는 아직 한명도 선이 안들어왔다. 근데 집에 가서 집사람에게 이야기하니 “오 괜찮아요” 그러더니만 ‘근데 어디 사람이야?’ ‘경주’라 했더니 그 자리에서 뺀지를 당했다. ‘왜?’ ‘경주 남자 못 쓴다. 당신 보면 알잖아.’ 친구들 보면 그사람을 다 아는 거다. 신혼집으로 이놈들이 올라오면 2박 3일, 서울 출장오면 2박 3일 내 집에서 개긴다. 밤에 불러내 밤새도록 술먹다가 새벽 한시 두시에 들어와서 ‘제수씨 여기 술상...‘ 그 행태를 집사람이 너무 잘 아니까 경주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짤린것이다. 그래서 아직 우리 큰딸은 결혼 못하고 있다.

 

<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

    맥아더 장군이 퇴임사에서 한 마지막 말이 "노병은 죽지 않습니다. 노병은 다만 사라질 뿐입니다." 어릴땐 그게 무슨 뜻인지 별로 몰랐고 약간 뜻을 알면서도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근데 육십고개를 넘고나니 그말이 확 와 닿는다. 작가로서 그러니까 내가 틀린 건 아니다. 내 정체성은 틀린게 아니다. 다만 시대에 밀려나는 것 뿐이지. 하지만 내가 살아온 내 명예와 내 가치와 내 생각이 틀린건 아니다. 라는 말이었다는걸 이제는 느낀다. 

    내가 만화를 할때 지금 십대들이 좋아하는 달달한 만화를 그릴 수가 없더라는 거다. 그리고 <천국의 신화 6부>를 웹에 연재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려나가니까 인기가 제일 꼴찌다. 네이버에 가보면 천국의 신화가 나온다. 목요 웹툰 항상 제일 밑에... 근데 그거를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그 고집 그대로 가는데 아마 이제는 일선에서 창작 만화 대신에 다른걸 해야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현세의 까치 시리즈 만화는 '80년대에 거의 책표지가 없어도 나가는 만화여서 나에게 큰 돈을 안겨줬다.

 

< 그림체에 대한 고정관념 >

그때는 도라에몽 같은 <명랑체>는 슬픈 사랑을 하다가 이별을 해도 개그였다.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사무라이 얼굴을 한 <극화체>에서는 개콘같은 개그를 해도 그건 활극이다. 눈에서 별이 발짝반짝하는 <순정체>의 ‘베르사유의 장미’는 대단한 작품인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공주와 공주의 호위기사의 러브스토리다. 근데 호위기사는 남장여자... 그러니까 동성애였다. 그리고 그애는 민중의 지도자가 된다. 공주의 호위병으로 있으면서 실제론 레지스탕스 지도자였던 것이다. 공주는 무너져가는 왕정의 상징이었다. 그걸 다룬 만화인데 이걸 순정만화라 했다. 그 당시에 내용하고 관계없이 그림체만 가지고 이렇게 나누었다.

 

< 까치의 탄생 >

난 그 3가지가 다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개그도 있으면서, 웃기면서 속으로는 울고, 겉으로는 웃고 그러면서 불같은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그런 이야기... 영화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근데 그림에서는 이게 한계였다. 이 모든걸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라고 맨날 고민을 했다. 내 친구들은 전부 무엇을 얘기할것인가를 고민하고 지금 독재정권. 민중이 탄압받는 시대니까 그런 민중의 이야기를 하고싶어 했는데 난 ‘이 세상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표현력이 풍부한 그런 캐릭터를 갖고 싶다’ 라는 그런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걸 어디에서 찾았냐하면 어릴 때 경주에서 시골에서 자랐으니까 나무에 까치집이 천지였다. 까치가 울면 길한 손님이 온다 라고 해서 길조라고 했다. 그땐 머리가 삐쭉삐죽하면 경주에서는 더벅버리라고 하지 않고 까치가 머리에 집 지었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 그래서 생각한게 까치집을 머리에 얹어버리는 거였다. 그러니 그림체하고 관계가 없어져 버렸다. 별 노력도 하지 않고 까치는 귀여울때도 있고, 순정의 슬픈 눈을 가질 때도 있고, 사람 잡을 거 같은 사무라이의 얼굴도 가지게 되었다. 이렇데 탄생한 것이 이현세의 까치라는 캐릭터이다. 이 세개를 합쳐놓으니까 3배의 효과가 아니라 3X3=9의 효과가 나더라. 다른 작가의 표현력보다는 열 배 정도 더 강렬하게 보였다. 까치가 아무 표정도 안 짓고 커피잔에 눈만 딱 뜨고 있는데도 어마어마하게 살벌해보인다고 했다. 한 때는 대한민국의 작가 한 80%가 이 방법을 썼다. 이현세가 슈퍼스타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또 하나 나쁜 게 있었다. 이 그림이 대한민국 일상적 표준 그림체가 되다보니까 내가 가장 개성이 없어지는 작가로 보여지기도 했다.

 

< 이현세 답게 살고 싶다. >

어쨌든 여기까지는 내가 편견을 뛰어넘어 왔다는건데 참 이상하다. 이 까치라는 새가 희소식의 상징에서 지금은 유해조수가 돼 있잖은가. 내 만화의 까치 주인공도 그런거 같다. 일편단심 오로지 님만 바라보던 해바라기 사랑은 요즘은 <스토커>라고 불린다. 까치의 불굴의 집념은 이제는 <집착>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즐겨입는 청바지는 반항의 상징이었는데 지금은 <패션>이 되어버렸다. 이게 세상인심처럼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때는 여자들이 다 이현세의 까치같은 남자 하나만 있으면 참 좋겠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지금은 가장 기피하는 인간형이 되어버렸다. 매일 뉴스에 보면 나오는 인간이 다 이런 인간들이다. 그러니까 세상 인심따라 까치가 변했듯이 까치 시리즈의 오해성도 그렇게 변해버린거 같다. 그래서 세상은 이렇게 변해 버렸는데 아까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이현세라는 작가는 과연 어떻게 할것인가. 이 까치라는 캐릭터를 어느날 달달한 캐릭터로 바꿔야 되나. 오래 생각했지만 안 하는게 낫겠더라. 그냥 이현세는 이현세답게 살다가 사라지는게 맥아더 어른 말씀처럼 맞을 거 같다.

 

< 또 하나의 편견과 외인구단 >

     또 하나의 편견을 만나는데 '80년 군부가 다시 들어서고 정화운동이 벌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정권이 들어오면 정통성을 확보가 필요하다. 군부가 들어섰으니 들어설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줘야되니까 첫번째 했던게 삼청교육대였다. 아시는 분은 아실거다. 깡패뿐만이 아니라 문신이 있다거나 술먹고 주정부리면 잡혀갔다. 이 훈련 받다가 죽어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도장 하나 찍고 삼청교육을 받았던 때였다. 

    삼청교육 다음에 들어온게 뭐냐면 우리 만화가들 정신을 좀 고쳐야겠다는 만화가들 정화운동이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만화를 제일 싫어한다. 공부에 방해되니까. 애들은 제일 좋아한다. 그럼 그거 만화 없애면 되겠구만... 해서 없애려고 보니까 한 30만명 이상이 만화를 가지고 먹고 살고 있었던 거다. 30만명을 없애는 좀 부담스러워 그 만화가들 손 좀 봐주는 것으로 된것이다. '80년 가을  남산 안기부 마당에 전국 만화가들이 전부 모여 오와 열을 맞춰서 서있는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분위기가 아주 괜찮았다. 그래서 자정운동을 하고 나서 나이 드신 분들은 그냥 귀가 했는데 젊은 작가들은 분노 때문에 집에 못갔다. 명동쪽에 있는 소주집에 가서 분노를 토해 냈다. 왜 퇴폐이발소나 터키탕 이런데는 목욕탕 없애자, 이발소 없애자 라는 소리 안하는데 왜 만화는 없애자고 하는지 이유는 하나였다. 어른들이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중학생만 되면 만화를 읽지 않았다. 초등학교의 전유물이니까 만화라는건 언제든지 존폐를 어른들이 정책적으로 얘기를 할 수 있는거였다. 그래서 작가들끼리 남녀노소가 다 즐겨보는 가족 만화를 만들어보자 라고 결론을 내었다. 엄격한 심의도 다 거쳐야되니까 심의를 어떻게 빠져나가야 되는지는 각자 작가의 몫이다. 

    그래서 내가 만든건 바로 아까 노래가 나왔던 <공포의 외인구단>을 기획하게 된거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른들의 러브스토리에 야구라는 스포츠를 포장을 해 어떤 격렬한 감정이나 폭발을 다 스포츠로 푸는 이야기다. 권투로 풀면 안된다. 왜냐하면 주먹이 얼굴에 닿으면 다 수정해야 했다. 그러니까 만만한게 야구였다. 야구는 던지는 놈 따로, 던지고 치는 놈 따로 있으니까 이를 악물든지 말든지 일단 직접적인 스킨십은 없는거니까. 그런 식으로 포장을 해 기획을 한게 외인구단이다. 지독한 사랑 얘기, 지금으로 보면 스토커다. 결혼한 여자를 끝까지 물고 안 놓는거니까. 이 당시에는 남녀 주인공 두명이 여관으로 들어가는 장면만 그려도 폐기였다.

 

< 외인구단. 성인을 공략하다. >

당시 외인구단의 효과는 대단했다. 제일 먼저 학교에서 나타났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애들 가방 뒤지다가 만화책 나오면 다 압수였다. 압수하고 긴긴 겨울밤 숙직당번하시다가 보면 지겨우니까 ‘이놈들이 요즘 어떤 만화보나’ 이러면서 외인구단을 보게된다. 다음날 ‘철수야 외인구단 다음편 나왔냐’ 하셨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빠가 공부 안한다고 막 만화책 뺐어놓고는 아버지가 ‘야 이 다음편 어디있어. 빨리 가져와’ 이런식으로 성인들이 공략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마침내 이현세의 외인구단은 영화화도 되고 이현세가 까치시리즈로 떼부자가 되도록 만들어준 만화다. 그 뒤로 계속 스포츠 만화만 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큰 돈 이었다. 그때 원고료가 한 800만원 됐는데 그때 아마 목동아파트가 한 4000만원 했다. 그런데 말씀드렸다시피 집에 어른도 안계신데다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가지고 제가 모든 경제권을 다 가지고 있었다. 난 진짜 투자라는, 재테크라는 개념을 모르고 산 사람이다. 그땐 무지 큰 돈을 벌었는데 지금은 생각만큼 부자가 안 되어 있다. 할 수 없는거다. 다 가질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툴툴대면 우리 집사람이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니까 지금도 만화 그릴 수 있게 해주잖아’ 어떤게 좋은지 모르겠다. 내가 부자가 됐으면 지금 안 그렸을거 같다. 그 뒤부터 권투, 프로야구, 아마추어 야구, 또 야구도 환타지 야구, 럭비 등 모든 스포츠를 소재로 작품을 했다.

 

< 앙드레김과 미국 여행 >

모든 스포츠를 다 돌다가 미국을 가게 된다. 참 세상 희한한데 이것도 편견이다. 빨갱이 집안이니까 미국에서 비자 내줄 일이 없고 한국에서도 여권을 안내준다. 해외여행은 전혀 꿈도 못 꿨다. 근데 신문사에서 접촉이 왔다. 신문 구독부수를 올리려면 만화가 이현세의 만화를 실었으면 좋겠는데 원고료를 많이 줄 수가 없었다. 이현세 원고료는 지금 이만큼 올라가있는데 신문 원고료는 많이 작았다. 신문사에서 뭔가 이현세를 꼬드기긴 꼬드겨야 되겠는데... 내가 미국가고 싶다했다. 여권이 진짜 쉽게 나왔다. 당시에만 해도 신문사 기자들 진짜 쎘다. 방송기자를 앞지르던 때다. 신문사에서 여권은 내줬는데 이제 비자가 문제였다. 지금도 그분한테 고맙다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 편집국장이 ‘앙드레김 선생한테 부탁을 해야됩니다’ 해서 앙드레김 선생한테 부탁해서 3일 만에 비자가 나왔다. 다들 아시지만 당시 비자받는건 엄청 어려운 일이었다. 알고보니 미국대사 부인의 힘이었다. 앙드레김 선생이 정말 로비는 잘했는데 모든 대사들이 오면 대사부인 드레스를 앙드레김 스타일로 화려하게 만들어 두세벌을 선물을 했다 한다. 그러니 대사부인이 대사한테 한마디만 하면 비자는 그냥 나오게 된다. 그래서 미국을 잘 다녀왔다.

 

< 우리나라 천지창조 신화를 그리다. >

    미국 여행중 미국 역사의 기념비적인 장소가 곳곳에 있었는데 주로 보면 원주민을 죽이고 그 땅을 개발한 억척 아줌마 얘기부터 억척 아저씨들 얘기인 서부 카우보이들 이야기들이다. 그걸 보면서 느닷없이 각성이 되었다. 일본도 중국도 다 있고 마우이족도 아프리카에 마사이족도 피그미족까지도 천지창조 신화가 있는데 내가 기억하기에는 우리나라에는 단군 건국신화까지는 확실히 잡혀져 있는데 이 천지창조 신화가 애매했다. 어렴풋이 한 두세가지가 있는데 어떻게 보니까 성경책 약간 빌려온거 같기도 하고, 중국의 신화를 약간 가져온거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느닷없이 든 생각이 그래 우리 나라의 천지창조 신화가 없을 리는 없는데 이게 없어진 거에는 정치적 이유나 여러가지 지정학적 이유가 있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내가 이 우리나라의 천지창조 신화를 한번 만들어볼까. 만화가는 거짓말이 전문이니까~~라고 덤빈게 지금 30년째 천국의 신화를 그리고 있다. 물론 이것 때문에 음란,폭력으로 6년 재판을 했고 대법원까지 갔다. 40대 열정적인 나이에서 재판 끝나고 나니까 50대가 되어있더라. 그 사이 세상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어버렸다. 이제 거의 웬만한 사람들은 만화책을 돈주고 사서 안본다. 만화 대여방도 거의 없어졌다. 사람들은 웹툰이라는 희한한 인터넷에서 만화를 지금도 돈주고 보십니까? 이러면서 만화를 공짜로 보고있는게 현실이다. 

    재판 끝나고 나니까 설 자리가 없더라. 만화가 이현세는 있는데.... 유명한 사람이긴 하지. 근데 만화를 즐기는 사람들한테 인터뷰를 하면 아무도 까치형제를 모르더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다 어디 가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니까 지금은 아이를 키우고 있든지, 골프를 하든지 장래에 골프를 하고 싶다...라든지 뭐 그런 분들이 되어 있었다. 만화를 많이 봐가지고 다들 잘 되신거 같다. 그래서 다시 제 자리를 갖기 위해서 <한국사>를 시작했다. 적어도 나를 좋아했던 학부모들은 같은 한국사면 이현세의 한국사를 사주지 않을까. 이런 아주 얍샵한 발상으로 <한국사>와 <버디버디>라는 골프만화를 그렸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는 만화가로서 자기 자리를 지켜 왔다.

 

< 마무리 말 >

기본적으로 이현세를 지금까지 오게 한 가장 큰 동력은 세상살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치관이 어떻고, 덕목이 어떻고 해도 결국은 어느 순간에 호기심이 없으면 동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염없이 어떤 이야기에 몰두하고 덤벼들 수 있는건 다른 사람보다는 약간 심한 호기심이라는 것 때문이었고, 이를 통해 지금까지 38년간 만화를 그릴수 있었다. 과학자의 동력도 호기심인거 같고, 만화가들의 동력도 결국 호기심이다. 또 만화가들의 데뷔작이 곧 은퇴작이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소설가들도 그렇고. 대부분 첫작품은 잘 하는 편이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자기가 진하게 경험한 자전적 이야기를 하게되면 그걸 공감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가공을 해야 되기 때문에 힘들어진다. 역시 작가의 덕목은 모든 세상살이에 대한 호기심이 첫 번째다. 오늘 여기 내가 감히 모자라면서도 박사님들 상대로 강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도대체 거기는 어떤 곳일까. 어떤 분들이 거기에서 대한민국을 다 끌고 가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초청해 주시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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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창의포럼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피부과 전문의인 ‘함익병 피부과’ 원장을 초청했다. 1961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마산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대한민국에서는 처음으로 <피부과 스케일링>이라는 아이템을 창안했다. 이후 1990년대 미용피부과의 시작을 알린 ‘이지함 피부과’를 개업하고, 제일병원 피부과장을 거쳐 현재 강남에서 함익병 피부과를 운영하고 있다.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얼굴, 뛰어난 화술과 예능적 끼를 무기로 강적들, 정치옥타곤, 백년손님 등 각종 방송 프로그램을 누비고 있다. 저서로는 <최신 여드름 치료기법>, <여드름 뿌리뽑기>, <피부에 헛돈 쓰지마라> 등이 있다. 아래는 그의 창의포럼 강연 내용 요약이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은 몸매가 드러나는 말끔한 감색 정장, 회색빛 셔츠, 품위있는 굵은 체크 무늬의 넥타이를 메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뚜벅뚜벅 우리앞에 섰다. 50대 후반으로 보이지 않는 중년같지 않은 몸매에 180cm도 넘어 보이는 우월한 기럭지, 자그마한 동안의 얼굴이 중년 '흔남'들의 질투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가 아주머니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는 이유를 알것만 같다.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 제가 말씀드릴 내용은 피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로 말문을 열었다. 

이곳 KIST 뇌과학연구소, 의공학연구소 등에서 의과대학하고 연결된 일을 많이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하루하루을 살아가며 어떻게 하면 내 피부를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려 한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셨고, 절대로 안하겠다고 약속드렸지만 얘기하다보면 정치이야기 같은게 나올거다. 사실 정치와 의학은 비슷한게 많다. 국가라는 것도 인간이란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유기체로 볼 수 있고 지구라는 것도 따지자면 생명체랑 비슷하다. 좀 넓은 관점으로 볼 것 같으면 이 우주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는 느낌을 많이 갖는다. 다윈이 진화론을 얘기했지만 지금 천체 현상이나 물리현상과 같은 모든 과학현상을 설명할 때 진화라는 것을 빼고 설명할 수 있는 분야는 거의 없다. 어떤 분야가 됐건 그 분야를 공부하다보면 전체적인 맥락에서 진리라는 게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그나마 여러분들 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주제는 바로 이 피부이다. 피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건강 얘기를 같이 나눠보도록 하겠다.

 

< 소중한 나의 피부는 어떻게 구성 되었나.... >

우선 피부의 구조를 살펴 보겠다. 여러분들 뺨 한번 잡아 보아라. 부위마다 두께가 다 상대적으로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표피, 진피, 피하지방 이렇게 세가지 구조로 나누어져 있다. 아시다시피 피하지방은 사람마다 두께가 매우 다르다. 그런데 눈꺼플은 왜 얇을까? 눈꺼플의 기능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눈꺼플의 피부는 얇아야 한다. 그러면 뺨은 왜 두꺼울까? 얼굴 피부 밑에는 중요한 혈관이나 신경 등이 굉장히 많다. 가끔 여자분들이 양악수술을 하다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양악수술을 하기 위해서 뺨 안쪽으로 절개를 하고 들어간다. 이곳 혈관이 두꺼운 곳은 새끼 손가락 보다는 조금 가는 정도이고 혈압은 되게 높다. 이 혈관 하나 잘못 건들이면 퍽 하고 심장 뛸때마다 피가 수술방 천장까지 쭉쭉 뿜어 올라간다. 지혈을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어어어... 하다가 바닥이 피바다가 되고... 바로 코 앞에서 환자가 쓰러져 죽어나가는 것이다. 마취과 전문의가 있고, 응급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성형외과면 모르겠는데 마취과 의사 대신 간호조무사 쓰는 엉터리 병원은 이런 사고 터지면 순간에 눈 앞에서 환자가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이 혈관들을 덮기 위해서 얼굴 피부가 두껍게 되어있는 것이다. 옆구리는 왜 두꺼울까? 두꺼운 피부가 체중을 견뎌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서서 다니는 동물이지 않은가. 서서 다니는 동물이다 보니 요추, 허리뼈가 가장 굵고 그 뼈 주의를 둘러싸고 있는 안심 등심이 두텁다. 우리가 먹고 있는 소, 돼지의 안심, 등심이 척추를 둘러싸고 있는 근육 덩어리다. 결국 이것을 둘러싸고 있는 진피, 피하지방이 두터워서 체중을 건뎌 주는 것이다. 이렇게 피부도 각각 위치에 따라서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두께가 상대적으로 모두 다르게 되어있다. 피부의 표피는 세포 덩어리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포장지다. 그 아래에 위치한 진피가 진짜 피부다. 여기 땀샘과 모근이 들어있고 피지선이 있고 혈관, 신경.... 이렇게 피부의 중요한 모든 기관들은 여기에 다 들어있다. 그 다음에 이 진피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콜라겐과 엘라스틴, 메트릭스라는 기질, 이렇게 세가지가 이렇게 네트워킹을 구성해서 진피를 보호하고 있다. 이 구조를 보면 건물의 벽하고 똑같다. KIST 본관 외벽 콘크리트에 시멘트와 모래, 자갈이 콜라겐과 엘라스틴이라고 하는 이 섬유소들이고, 그 다음에 건물 벽돌 사이에 들어가 있는 전화선, 인터넷 선 등에 해당하는 것이 혈관이다.

 

< 땀을 흘려야 달릴 수 있다.... >

콘크리트 건물이 없는 유일한 것이 땀샘이다. 분비선. 땀샘과 피지선과 같은 기름을 만드는 분비선은 살아있는 조직만 가지고 있다. 우리 피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뭐냐면 무언가를 막아준다, 보호해준다 라는 역할이다. 두 번째가 뭐냐면 땀샘이 하는 체온조절 기능이다. 개는 땀을 흘리는가? 안 흘린다. 말은 땀 흘리는가? 말은 땀 흘린다. 땀을 흘리는 동물이라야 장거리 달리기가 가능하다. 여러분들 지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이 무얼까? 치타다. 순간 속도 시속 100킬로가 넘는다.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를 100킬로로 달릴 수 있을까? 딱 30초다. 30초 그 이상 뛰면 죽는다. 땀을 흘리지 않는 동물들은 오래 달리면 체온이 올라서 금방 죽는다. 개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같은 날씨에 사람하고 개하고 달리기 하면 사람이 이긴다. 우리는 땀을 흘리기 때문에 오래 달릴 수 있는데 개는 오래 달리면 죽는다. 눈오는 날에 강아지 눈 밭에 내려놓으면 폴짝폴짝 뛴다. 왜 그럴까? 눈이 좋아서? 발바닥이 시려워서 뛰는 거다. 개는 몸이 털로만 덮혀 있고 땀샘이 없다. 유일하게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부분이 발바닥이다. 개 발바닥에는 굉장히 많은 혈관이 있다. 여러분들 혹시 개 키우시는 분들은 개 발톱 잘라주다가 피 본 적 많으실 거다. 발톱 끝까지 혈관이 나와 있어 조금만 잘못 자르면 피가 질질 흐른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그래서 개와 사람의 소통은 참 어렵다. 아무튼 추운 땅 위에서 개가 몇발자국 걸으면 혈관이 수축한다. 그래서 나중에 가선 눈밭에서도 그냥 걸어다니는 거다. 개는 고향이 원래 시베리아다. 시베리아에서 땀나면 얼어 죽는다. 그래서 땀샘이 없는 것이다. 

< 어떻게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길수 있었을까..... >

사람은 고향이 어디인가? 동아프리카 서쪽 지방에 이디오피아 부근이 인류의 고향, 즉 호모 사피엔스의 고향이라고 유추하고 있다. 우리 고향에서는 땀 안 흘리면 죽는다. 이 땀샘이 인간의 생존에 참 중요한 것이다. 현생인류가 호모사피엔스인데 왜 네안데르탈인을 이기고 이 지구를 지배하는 종족이 됐었을까? 네안데르탈인의 근골격구조는 이미 밝혀져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보다 훨씬 더 어깨도 넓고 근육도 두껍고 몸이 더 좋다. 사냥도 훨씬 더 잘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들은 멸종하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 차이를 비교고고학자들은 목의 길이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목이 짧아 성대가 발달하지 않아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이 떨어졌을 거라는 것이다. 처음 언어가 발생하기 전에 우리는 이 보컬코드가 발달이 되어서 충분하게 의사 전달이 가능했는데 걔네들은 이런 능력이 떨어졌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생존 경쟁에서 이겼을 거라는 거다. 원래 사냥을 할 때 흉기를 가지고 바로 찔러죽이지는 못한다. 둔탁한 돌칼로 동물의 두꺼운 가죽을 어떻게 찔러 죽였겠는가. 그냥 쫓아가는 거다. 사냥감들은 땀을 못 흘리는 동물들이기 때문에 열심히 릴레이식으로만 쫓아가면 우리가 이기게 되있다. 개네들이 지쳐 쓰러지면 그때 가서 찔러죽이는 거다.

 

< 얼굴 피부와 모근의 비밀.... >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우리 피부를 좀더 리얼하게 보면 이렇게 표피, 진피, 피하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피는 언제든지 벗겨질 수 있다. 표피는 그렇게 중요한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면 새로 만들면 된다. 표피의 가장 아래쪽 경계부위에 있는 이 세포들이 재생층이다. 이 재생층만 살아있으면 언제든지 재생이 된다. 이 표피가 훌러덩 다 벗겨져도 표피 아래 재생층이 모근을 타고 올라온다. 모근이 풍부한 털이 많은 조직은 피부가 다 벗겨져도 새 살이 올라온다. 모근 주변에 있는 기저세포들이 다 올라와 똑같은 상처가 생겨도 털로 덥여있는 두피는 금방 아문다. 두피에 혈관이 워낙 많고 모근이 많기 때문에 잠재되어 있는 피부재생층이 쉽게 올라오기 때문에 금방 아무는 것이다. 실제로 두피는 어지간히 찢어져도 흉이 잘 안 남는다. 성형수술이나 흉터제거 수술이나 뭐 피부 재생술 같은게 얼굴 피부에는 잘 통하는 이유가 뭐냐면 얼굴만 하더라도 이 모근이 굉장히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은 칼자국이 나도 금방 아문다. 하지만 팔이나 다리는 모근 밀도가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흉터가 잘 남는다. 얼굴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흉이 뚜렷하게 남는다. 어떤 사람들은 얼굴에 점을 빼도 흉이 안 남는 걸 보고 다리에 있는 점도 빼달라고 온다. 백퍼센트 흉이 남는다. 얼굴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피부 재생력이 떨어진다.

 

< 목욕은 어떻게 해야할까... >

다들 공부 많이 하신분들인데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어떻게 목욕을 해야하나. 손은 어떻게 닦아야하나’ 이다. 이 정도는 피부과 전문의 한 2년차 정도 되어야 배우는 공부다. 표피 부분만 떼어내서 확대해서 보면 기저 세포층, 유극 세포층, 과립세포층 맨 위가 각질층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기저세포에서부터 시작해서 각질세포로 변해서 떨어져 나가기까지의 시간이 한달이 걸린다. 각질이 하루에 한층씩 떨어져나간다. 떨어져나가는 맨 바깥쪽 각질이 우리가 말하는 때이다. 질문하나 드린다. ‘나는 목욕을 할 때 절대로 내 피부에 손바닥 외에는 닿지 않는다. 항상 나는 손으로만 가볍게 씻는다’ 하는분 손 들어 봐라. 역시 KIST는 꽤 많은 분이 계신다. 보통 백 명 중에 한 두명 손을 드는게 고작인데 여기는 10%가 넘게 손을 드셨다. 목욕할 때 아주 부드러운 수건으로만 씻는분, 스펀지나 부드러운 수건으로 씻는분, 목욕할 때 꼭 때수건을 써야 개운한 분도 많다. 여기서 목욕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손으로만 씻는 사람들이다. 나머지 분들은 목욕할 때 자신의 피부를 학대하는 가학증, 자기 학대증 환자들이다. 여러분들이 쓰고 있는 때수건을 사용하면 피부의 절반 가까가 날라간다. 손으로만 가볍게 씻는 분은 맨 바깥쪽 한층만 떨어져나간다.

 

< 껍데기 벗기기... >

때수건으로 빡빡 밀고나면 피부에 점이 콕콕 찍히는거 기억나는가? 한달에 한 두 번 꼭 그래야 개운하신분들, 이런 분들은 어디까지 목욕을 하신거냐면 표피에 절반 이상이 날라가 피부가 반쯤 투명해지면서 이 혈관이 비치는게 보인다. 속 된 말로 껍데기 벗긴 거다. 그리고는 ‘아! 개운하다, 시원하다’ 이런 말씀들을 한다. 그게 자기 학대지 어떻게 정상적인 목욕인가. 피부에서 분비되는 피지선이라던지 땀샘에서 분비되는 분비물들에서 냄새가 난다. 그게 체취인데, 그 냄새가 싫어서 씻는 것이고 맨 바깥쪽에 있는 각질을 하나 벗겨내기 위해서 씻는 거다. 세수할 때 때수건 쓰시는 분 손들어 봐라. 아니면 부드러운 타월로 얼굴 미는 분 계신가? 거의 없다. 세수할 땐 다 손으로만 한다. 그런데 왜 몸을 씻을 때는 밀어야하나? 이게 바로 잘못된 인습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적폐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물이 흔한 나라다. 그러니까 세수는 가볍게 늘 할 수 있다. 물이 없어서 못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목욕탕을 만들지 않는 한 벗고서는 목욕을 못한다. 경복궁에 가봐라. 우리나라는 궁궐에도 목욕탕이 없다. 목욕 문화가 없는 나라다. 그러다보니 목욕은 언제 했겠는가. 겨울에는 할 수가 없었다.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에 우리나라에 왔던 선교사들이 뭐라고 했냐면 기록에 보면 이가 끓고 더럽다고 했다. 상투틀고 머리 안 감았는데 이가 끓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6.25 때만 하더라도 피난민이 제일 먼저 했던게 뭐냐면 디디티 가져다 뿌리는 거였다. 지금 우리가 대단히 선진화된 국민인건 맞지만 우리 조상님들이 선진적인 국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여야한다. 목욕이라는 것은 추석이나 명절때 하는 연례행사였다. 어린시절 내복을 갈아입으려고 하면 우리 엄마는 항상 신문지를 깔아줬다. 왜냐면 비듬같은 때가 떨어지니까 옷 갈아입으면 나면 신문지를 둘둘 말아서 버렸다. 그 시절이니 삼십층이상 쌓여있는 정말 묵은 때를 제거를 해야되기 때문에 때수건으로 빡빡미는 그런 목욕을 한거다.

 

< 참 어려운 인습 바꾸기... >

요즘은 세수하는 횟수나 목욕하는 횟수가 같다. 하루에 한 두 번은 늘 한다고 자다가 땀나면 하루 세 번도 씻는다. 바뀐 목욕 문화 패턴에 맞게 여러분들의 목욕법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 옛날 엄마한테 배운 인습이 배어가지고 늘 때를 밀게 되는 것이다. 안 그러면 마음이 찝찝한거다. 그러나 피부는 안 찝찝하다. 그러니 여러분하고 내가 소통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누구 말이 옳으냐 내 말은 백 퍼센트 옳다. 손으로만 씻으신 분들 빼면 백 퍼센트 틀린 것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이고 과학의 문제다. 과학은 그 시점에 있어서 옳고 그름이 분명히 나눠진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도 다수결로 결정하려고 든다. 내가 이렇게 설명해도 그래도 왠지 때를 말지 않으면 찝찝해 한다. 그간 해왔던 교육, 해왔던 행동을 바꾸기가 무척 힘들다. 삽십년째 데리고 살고 있는 아니, 모시고 살고 있는 마누라를 명색이 의사인 내가 아직도 못 고치고 있다. 안 바뀌더라. 별 짓을 다 해봤다. 이태리타올을 가위로 잘라 버리고, 화장실, 창고를 뒤져 있으면 다 갖다버린다. 그래도 집에 이태리 타올이 쌓여있다. 없으면 못 살겠다는데 어떡하겠는가. 마음이 안 바뀌는 거다.

 

< 후유증... >

여러분들이 하고 계신 목욕 습관으로 목욕을 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각질이 너덜너덜 일어난다. 피부를 보호하는데 국경선이나 휴전선 같은 철책이 무너지고 서울, 대전까지 밀고 내려온 상황이 된 것이다. 전방에 사람들이 무너지니까 후방의 사람들을 밀어 올려야할 것 아닌가. 일단 방어선은 쳐야하니까 피부입장에서는 한달에 걸쳐서 차근히 잘 만들어진 잘 구운 기왓장 같은 것들이 착착 덮혀야 하는데, 수해가 나서 응급복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달 동안 잘 숙성된 각질이 올라가는게 아니라 일주일 만에 만든 그냥 숙성도 안된 급히 만든 모랫주머니 같은 걸로 피부를 덮게 된다. 그게 불량 각질이다. 불량 각질이 덮히면 이렇게 너덜너덜한 각질이 생긴다. 우리 마누라 같은 사람은 일주일 딱 지나면 ‘때가 또 꼈네’ 라며 매일 목욕하면서도 일주일에 한번 때 밀러 가는 거다. 그리고 건성 피부염으로 가려우면 나한테 약 갖고 오라고 그런다. 이럴 때 쓰는 약이 스테로이드인데 스테로이드를 계속 바르면 또 피부가 얇아진다. 악순환이 일어나는거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접근할 때 과학은 과학으로만 접근해야하는데 과학을 민주주의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꽤 있다. 아무리 목욕시 때미는 사람이 많아도 그건 잘못된 거다. 목욕은 세수하듯이 해야 한다. 오늘 집에 가서 끼고 있던 안경을 여러분의 목욕 타월도 닦아봐라. 안경에 기스가 난다. 그래도 믿음이 안 가면 새로 산 신 차를 여러분들의 목욕 타월로 닦아봐라. 차에도 기스가 난다. 여러분들의 피부는 절대 쇠나 유리보다 강하지 않다. 오늘부터 목욕을 세수하듯이 해라. 목욕 시간은 5분이면 족하다.

 

< 화장실과 손... >

결론적으로 피부는 간단하게 씻는게 좋다. 그래야만 맨 바깥쪽에 있는 각질 하나만 벗겨지고 그 다음에 한달 동안 잘 숙성된 각질이 착착 올라오는 건전한 피부재생 과정으로 돌아오도록 하려면 잘못된 목욕습관을 한 달 동안 잘 참고 견뎌야 한다. 손 씻는 얘기 나왔으니까 한번 물어보자. 화장실 갈 때 손 닦고 들어가시는 분들 손들어 봐라(거의 없음). 화장실 나올 때 손 닦는 분 손들어 봐라(대부분). 여러분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가? 우리 몸에서 가장 세균 오염이 많고 더러운 데는 손바닥이다. 아침에 샤워하고 두 겹이상 옷을 입는 데가 바로 거시기다. 여기가 오염이 제일 덜 되는 부위다. 더러운 손으로 깨끗한 거시기를 만지기 전에 깨끗이 손을 씻고 만지는게 옳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가장 더러운 손으로 깨끗한 거시기를 만지고 나오고 가장 더러운 손을 씻고 나온다. 잘못된 것이다. 더러운 손으로 깨끗한 거시기를 만지기 전에 깨끗이 손을 씻고 만져야 한다. 손을 닦고 거시기를 만지고 그냥 나오시면 된다. 왜냐면 손에 뭐 좀 묻은 게 소변일거다. 소변은 균이 없어 더럽지 않다. 여러분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물 한모금 안 마시면 죽는 상황에 놓였다고 가정을 해보자. 여기에 강물이 한 사발있고, 여기에는 사생활이 건전한 내 친구가 싼 오줌이 한 사발있다고 치자. 두 개의 물이 있다면 어느 물을 마시겠는가? 난 오줌을 마신다. 아프리카의 소독되지 않은 물 속에는 세군뿐만 아니라 약이 없는 기생충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차라리 한 모금을 먹어야 한다면 친구 오줌을 먹는게 낫다. 혹시 사생활이 좀 지저분한 친구더라도 그건 약이 있다. 페리실린 먹으면 다 해결된다. 그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 내 몸속의 점막.... >

점막에 대해 알아보자. 점막이 뭐냐면 피부에서 각질이 없는 것을 말한다. 점막의 대표가 입술이다. 입술 색깔은 빨간데 이유가 뭐냐면 각질이 없으니까 표피가 얇아 혈관이 비쳐서 빨갛게 보이는 거다. 모든 점막은 다 빨갛다. 또 코 속도 점막, 눈 속도 점막이다, 거시기도 항문 주변도 점막이다. 이 점막으로만 세균이나 바이러스나 유해물질이 들어간다. 피부로는 안 들어간다. 각질이 있다는 것은 완벽하게 보호 장치가 되어있는 것이고, 보호 장치 중의 일부가 빠져있는 자리가 점막이다. 우리가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하는 이유가 세균이 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손을 닦고 밥을 먹으라는 거다. 그 다음 화장실 가기전, 눈 비비기 전에, 코 후비기 전에 손을 닦아야 한다. 왜냐면 손이 코보다 훨씬 더럽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감기 걸리는 루트가 코 점막 아니면 눈 점막이다. 그래서 점막이 건강해야하는 거다.

 

< 피지, 천덕꾸러기가 되다... >

이제 피지선을 이야기 하려한다. 피지선이라는 게 뭐냐면 피부에 기름샘을 뿜어내는 곳이다. 피지 이러면 지저분하다, 냄새난다. 이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피지선이라는 것은 원래 원시시절에는 반드시 생존에 필요한 물질이었다. 피지선이 많은 곳이 어디냐면 얼굴부터 시작해서 여자들 브래지어 라인, 남자들은 젖가슴 라인까지 피지선이 많다. 외부에 노출된 자리인데 이 피지가 여름에는 천연 자외선 차단제 역할을 한다. 얼굴에 기름이 많은 사람은 자외선 차단제 안 발라도 늘 바르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은 벌레 쫓는 역할이다. 얼굴에 개기름 끼는 사람 특징이 뭐냐면 절대로 모기한테 얼굴이 안 물린다는 거다. 얼굴에 모기 물리는 사람은 거의 다 어린애들이다. 사춘기 전에는 피지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지가 중요하다. 겨울에는 천연 보습제 역할을 한다. 기름이 많이 나오면 피부가 잘 보호되는 피부다. 인간이 이렇게 좁은 공간에 복닥복닥 모여살게 되면서 냄새나는거 싫어하고, 지저분한거 싫어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서 피지가 많이 나오는게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게 된거다. 이게 많이 나오면 지루성 피부염이 생기는데 주로 생기는 자리가 티존 부위다. 귀, 이마, 등에도 생기고 두피에 생기면 그게 비듬이다. 얼굴의 각질은 두피의 비듬이랑 동격인데 이름을 다르게 부를 뿐이다. 여러분들 얼굴에서 각질이 많이 생기면 지성피부인가, 건성피부인가? 대부분 건성이라고 생각한다. 얼굴에서 기름이 많이 나오면 그게 지성이라고 그러는데 이 지성피부의 특징이 뭐냐면 각질이이다. 얼굴에 각질이 많이 일어나면 지성피부다. 여자분들은 대개 얼굴에 각질이 많이 생기면 자기가 건성이라고 하고 화장품을 반대로 쓴다. 이 지루성 피부염은 왜 생기냐면 피지가 많이 생겨서 발생하는데 늦게 자면 많이 생긴다.

 

< 너무나 중요한 잠. 잠. 잠... >

여러분 보통 몇시에 자나? 10, 11시, 12시, 1시? 잘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초등학교 때 몇 시에 자라고 배웠지요? 늦게 자면 면역이 떨어진다. 그래서 늦게 자는 사람은 단명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에이 뭐 잠이라는게 때 되서 한 7~8시간 자면 되지. 이렇게 생각들 한다. 그런데 잠은 양이 아니라은 질이다. 보통 일곱 시간 정도는 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언제자야 하는가 하면 해 떨어지고 4시간 안에 자야 한다. 그게 보통 10시, 11시 언저리다. 그 시간을 어기면 한 시간씩 늦어질때마다 면역력이 10~15프로 씩 떨어진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 한국사람은 늦게 자기 때문에 면역이 떨어져서 지루성 피부염이 생기는 거다. 미국이나 독일이나 일본을 가보면 아홉시면 불이 꺼진다. 그리고 독서 등만 켠다. 10시, 11시면 다 잔다. 난 의사입장에서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 있다. 스무살 넘어서 걸리는 병은 본인 책임이 많다는 거다. 스무살 이전에 생기는 병은 유전적인 영향이 강하기 때문에 조상 탓을 할 수가 있지만 스무살, 성인이 지나서 생기는 모든 병들은 자세히 보시면 특히 사오십대 건강하게 살다가 이런 병 저런 병이 생기면 누구 탓일까? 자기 생활 태도의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거다. 여러분이 12시, 1시에 자는데 누가 그때까지 못 자게 했나? 본인이 안 잔거다. 제 시간에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라. 제 시간에 자야 건강하다. 잠이라는게 두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육체가 쉬는 거고, 또 하나가 정신이 쉬는 거다. 정신이 쉬고 몸이 쉬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이 쉬는 건 몸이 쉬기는 하는데 정신이 제대로 못 쉬는 거다. 우리 뇌는 해가 떠서 햇빛이 눈에 들어오면 눈을 감고 있어도 이미 각성 상태로 살짝 변한다. 그러니까 깊이 못 잔다. 요즘 해가 다섯 시면 뜬다. 난 매일 일출을 본다. 그때 눈을 뜨는 게 가장 개운하다. 그렇게 하면 하루가 굉장히 보람되고 길다. 연구도 낮에 하고 논문도 낮에 쓰시길 바란다. 그때가 우리 머리가 감성보다는 이성이 발달할 때다. 작곡하고 그림 그리고, 글 쓰시는 분들이 밤에 하는 이유가 뭔가. 그 시간은 감성이 발동되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는 이성과 감성이 있는데 이성이 더 앞서나가는 시간이 낮이다. 그런 시간을 잘 생각하면 여러분이 언제 움직여야하는지 답이 나온다.

 

< 잘 먹고, 유산소 운동을 하자... >

그 다음으로 중요한게 잘 먹는거다. 잘 먹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뭘 먹으면 좋아요? ’ 라고 반드시 물어본다. 아무거나 다 먹으면 된다. 여기서 잘 먹으란 의미는 무슨 의미냐면 제 시간에 먹으라는거다. 아침, 점심, 저녁을 정해진 시간에 먹는게 잘 먹는 것이다. 그 다음에 또 잘 먹는다는 건 뭐냐면 정량을 먹는거다. 맛있는 거 있다고 막 먹고, 맛 없다고 확 안 먹고 이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정량을 꼬박꼬박 먹는 사람이 잘 먹는 거다.

 

잘 먹었으면 운동을 해야한다. 난 하루에 1시간 내 몸을 위해서 꼭 운동을 한다. 일주일에 4번은 운동해야 한다. 몰아서 일요일날 토요일날 하루에 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매일 해야한다. 운동하라고 하면 여자분들 가장 먼저가는 데가 어딘가. 요가, 필라테스 등도 좋은 운동이지만 내가 말하는 운동은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땀을 질질 흘리는 운동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다. 헬스는 근육을 만드는 무산소 운동이다. 내가 말하는 건 유산소 운동 즉, 그냥 허벌나게 뛰는 거다. 어느 정도로 뛰어야 할까. 앞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름을 부를 수가 없을 정도가 돼야 운동을 한 거다. 그렇게 하루 한 시간은 운동을 해줘야 여러분들이 먹은 거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거다.

 

정량을 먹고난 다음에 열심히 운동을 하면 HDL 이라는 좋은 콜레스테롤이 되어서 혈관 속에 윤활유가 많이 돌아다니게 되고, 그걸 먹고 드러누워 있으면 LDL이라는 나쁜 콜레스테롤이 되는 거다. 나는 날씬하니까 괜찮다고? 검사해보면 운동 안하는 사람은 LDL만 높다. 운동하는 사람은 토실토실해 보여도 HDL이 높다. 그래서 비쩍 마른 사람이 고지혈증도 생기는 것이다. 결론은 뭘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먹고 난 뒤에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건강상태가 달라진다는 거다. 그러면 운동은 누가 해야하나. 본인이 하는 거지 어느 누구도 해줄 수가 없다. 있는 집 사모님들 칼슘 섭취를 위해 온갖 종류 값비싼 우유를 배달해서 먹는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유 배달하시는 아주머니가 훨씬 더 뼈가 튼튼하다.

 

부원장님이 날 보고 80학번인데 너무 젊게 보인다고 하셨다. 내가 피부과에서 이것 저것 많이 발라서가 아니고 그냥 규칙적으로 살아서 그렇다. 굉장히 기계적으로 산다. 사람이 기계적으로 사니까 인간관계가 좀 뻑뻑하다. 9시 30분 되면 술먹다가도 일어나서 집에 가자고한다. 10시 되면 칼 같이 집에 들어간다. 마누라는 내가 집에 들어가면 귀신 보듯이 본다. 저 귀신 또 들어왔다 이거다. 사람마다 이렇게 다 다르다.

 

< 탈모, 피해갈 수 있다... >

여러분들 중에도 탈모가 많다. 진단하는 방법은 뒷머리, 윗머리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잡고 비벼보면 알 수 있다. 한쪽이 가는 사람이 있을거다. 정수리 부분 머리카락이 가늘다고 느끼는 분들은 모두 대머리다. 나도 대머리인데 대머리가 왜 생기는가 하면 대부분 유전적 요인이다. 유전될 확률은 남녀불문 모두 동일하다. 다만 남자가 여자보다 탈모가 되는 양이 훨씬 많기 때문에 여자 보다 대머리가 많아 보이는 것이다. 남녀가 양상이 다를뿐이지 20대 초반부터 자세히 관찰해  봐라. 집안에 엄마, 아빠 중에 대머리가 있고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이 가늘어 지면 약 먹을 때가 온 것이다. 약을 먹으면 나처럼 대머리 아닌 사람으로 살 수 있다. '프로페시아, 아보다트' 라는 경구용 발모약을 먹으면 된다. 바르는 약은 미녹시딜이 있다. 여자들은 아기 낳기 전에는 절대 발모약을 먹으면 안된다. 가족계획이 끝나기 전까진 미녹시딜로 버텨야한다. 문제는 거짓말에 속는게 문제다. ‘무슨 케어를 하면 좋아진다. 무슨 샴푸를 쓰면 좋아진다’ 이게다 거짓말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쓰는 돈이 헛돈이다. 치료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약을 먹으면 된다. 그게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단 남자의 경우 부작용이 있다. 약을 먹으면 성욕이 떨어지는데 확율은 1%다. 의사들이 자신은 이 약을 먹고 있으면서 환자에게 처방은 잘 안한다.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 마무리 말... >

초등학교 1학년 때 9시에 자고 하루 세번 이를 닦고, 우측통행하라고 가르친 것은 우리가 문명사회에서 안 죽고 사는 법을 가르쳐 준 거다. 20~30대를 차라고 치면 새차이고, 30~40대라면 2~3만 키로 뛴 중고차다. 그런데 50, 60살 넘어가면 10만키로 이상 뛴 고장 직전의 차랑과 똑같다. 건드리면 무너진다. 굉장히 약해진 상태라 아껴서 써야한다. 난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오늘 밤 10시, 11시에는 꼭 주무셨으면 좋겠다. 긴 시간 동안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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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창의포럼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사진작가 ‘김중만’을 초청했다. 1954년 생으로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1971년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로 이주한 후 프랑스로 유학,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에서 서양화과를 수료했다. 이후 사진의 매력에 빠져 1975년 니스의 “쟝 피에르 소아르니”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사진작가로 데뷔한다. 1976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중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었고, 1977년 프랑스 ARLES 국제사진페스티벌에서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다작의 작가로 소재도 인물·풍광·동물·꽃 등 다양하며 패션사진, 광고, 영화 포스터와 수많은 스타 사진을 찍었다. 2006년부터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2010년대부터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 자연 속에 깃든 한국인의 정신을 표현함으로써 팝적인 대중성과 클래식한 풍모 모두를 완성도 있게 보여 주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던 아프리카에서 선행도 열심히 베풀고 있다. 아래는 창의포럼 강연내용의 요약이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단정하지 않은 머리, 서양 여성얼굴이 프린트된 흰색 V넥 티셔츠와 회색빛 양복상의, 종아리가 훤히 보이는 검은색 7부 치마바지, 귀걸이 그리고 목덜미, 종아리, 손등에 푸른색 타투가 가득 새겨진 모습(온몸에도 타투가 새겨져 있을 것 같다)... 그는 우리가 흔히 보기 어려운 독특한 모습과 특유의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우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김중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도 아침 7시에 잤는데 강의 있다고 자꾸 깨워서 그 강의 안 나가면 안 될까 생각을 했다. 뭔가 일이 있으면 내 몸에서 자꾸 안 받아들이는 거 같다. 특별하게 할 일이 없어서 지난밤에는 미드를 봤다. 1편에서 10편까지 보니까 아침 7시더라. 그래서 강의가 있으니까 이제는 자야 되겠다싶어  자고 오후 2시에 일어나 이곳에 왔다. KIST에서 가까운 전농동에 살고 있다. 금년 나이 64살, 환갑이 지난 지 4년 됐다. 3번 결혼했고 결혼마다 아이들이 다 딸려서 아이들만 넷이고 손녀가 셋. 손자가 한명이다. 내가 사람 복은 엄청 많은 것 같다.

 


< 영혼과 영혼을 이어 주는 다리.... >

김중만이라는 작가가 세상을 보는 아주 간략한 개념을 몇 글자로 알려드리려 한다. 우리 사회, 우리 세상의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숫자의 싸움이다. 사람과 사람의 숫자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게 정치다. 너무 삭막하다. 경제는 무엇이냐. 경제라는 것은 사람의 숫자와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다. 문화는 무엇인가. 문화는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다. 마지막으로 예술이 무엇이냐. 예술은 사람의 영혼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예술을 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오랜 연습과 기다림과 끊임없는 복습을 하고 나서 얻어지는 하나의 결과물이지만 그걸 넘어서 정말 미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대충 어떻게든 사람만 모으면 된다. 좋은 예로 6개월 전에 일어난 “어떤” 일과 상관없이 유권자의 25%가 같은 세력에 빨간 도장을 찍었지 않은가. 경제도 마찬가지로 정말 냉혹할 정도로 사람의 마음과 숫자만 동원하면 된다.

예술은 위대하기 때문에 불가능이란 단어를 쓸 수 없는 영역이다. 여러분들도 불가능을 만나면 끊임없이 아마 좌절도 하고 또 부딪히고 또 마음 아파하는 많은 시간을 보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된다. 과학에서는, 예술에서는 불가능이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종교는 가능과 불가능의 개념이 아니고 무한대의 개념이다. 과학은 창의력과 연관이 된다. 창의력은 어떻게 만드는가. 40년 동안 예술을 한 아티스트로, 사진작가로 살아오면서 창의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이런 거다. 창의력은 가장 불안정한 것에서 시작한다. 창의력의 출발은 어떤 하나의 과제나 어떤 아이템이나 아이디어를 놓고 우선은 그것을 타이틀로 해놓고 실현 가능한 쉬운 걸로 먼저 답을 생각한다. 가능하면 불안한 것은 좀 옆으로 피해간다. 예술가로서 창의력이라는게 그 출발점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을 깊이 보는 게 나의 일이기 때문에 여러분들하고 조금은 출발점이 다를 수 있다. 여러분들은 아마 수학으로부터, 어떤 기호로부터 또 어떤 입증으로부터 시작을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비수학이다. 입증할 수 없고 추상적인 것이다. 자기가 “이것이다.”라는 답을 미리 내놓고 할 수 없는 게 예술이다.

 

< 스무살.... 나의 사진.... >
여러분들이 지금 보신 것은 내가 스무살 때 처음 찍은 사진하고 동영상이다. 불가능의 가능성을 본 사람이 있는가. 스무살 때 생각해보니 우리 인간이 가장 본능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섹스하는거다. 그때 난 이렇게 사진작업을 했다. 간단하다. 사진 찍을 곳에 먼저 가서 구상을 한다. 그리고 니스 날씨가 워낙 좋은데라 크게 변함은 없지만 빛도 한번 재본다. 다음은 미대 친구 중 여학생들에게 ‘사진을 좀 찍어야 되니까 모델을 좀 해달라’ 라고 요청하고 오케이하면 정해놓은 장소로 데리고 간다. ‘뭐 가져오니?’ 그러면 ‘그래 치마입고 와’ 라고 하고 ‘저기 누워서 팬티 좀 벗어 봐.’ 그런다. 물론 우리하고는 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거에 대해서 갑자기 막 놀라고 도망가거나 그만 두겠다고 했던 그런 기억은 없다. 여하튼 제 정신은 아니다. 사람들 있는 곳에서 팬티를 벗으라고 하고 여러 포즈로 찍고 내일 만나기로 하고 나는 바로 암실에 가서 필름 현상을 해가지고 프린트를 한다. 여러분들이 본 사진 대부분이 내가 1975년에 사진을 시작한 첫 해에 찍은 사진들이다. 그 다음날 프린트를 해서 점심시간에 갖다 준다. 그러면 “아 얘가 변태는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는지 “다음에 또 할게.”그러는 거다. 이런 방법으로 내가 다니는 학교 니스 국립미술대학교 여학생들을 한 30명 정도 팬티를 벗겨서 찍었다. 만일 순수함이라는 것을 상대방에 전해주지 못했을 경우에는 30명이라는 숫자가 절대로 안 나온다. 사실은 불안했다. 이거 할 수 있을까. 재들이 내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해변가에 막 돌아다니는데 해변에 누워 팬티 벗고 치마 다 열고 있으라면 있을까. 안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예술을 해야 된다. 내가 이 작업을 통해서 사진이 무엇인가를 배운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힘이다. 즉, 소통이다. 그 사진을 전해줄 때 받았던 그 친구들의 느낌이 참 좋았었고 그리고 계속 내가 보고자 하는 세상이 무엇인가. 라는 것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겨놓는... 조금 정석적인 사진의 출발은 아니었다. 만약에 지금이라면 못할 거 같다. 한 사오년전에 저 앵글로 한번 찍어볼까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 역시 우리의 마음이 얼마만큼 진실성이 있는가에 따라서 그게 가능하고 그렇지 못한 게 있는 것이다.


< 전농동에 일터를 마련하다.... >

한 100평정도 되는 스튜디오가 청담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앴다. 작년 10월쯤 갑자기 이 일이 하기 싫어졌다. 그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조금 쉬어야겠다하고 청담동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책과 원고와 소품들과 카메라들을 창고에 옮겨놓았다. 제자들도 다 내보내고 혼자서 가만히 백수가 돼서 너무 기분 좋게 놀았다. 그런데 작년 10월, 11월, 12월 세 달 동안 사진 6점 정도를 팔았는데 그게 한 4억 원이 되더라. 집사람이 아파트를 하나 사줄 테니까 거기 가서 일하라 해서 요즘은 전농동 25평 아파트에서 조그만 아뜰리에를 차리고 일을 하고 있다. 좀 전 사회자께서 소개한대로 연예인들도 찍고 상업사진도 하고 영화도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찍지는 않았다. 또 그렇게 많은 상업사진이나 광고사진을 하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했다. 그러면 왜 이 작업들을 했을까. 2000년도에 아프리카에서 가족들하고 1년 동안 동물사진을 찍고 서울에 돌아와 보니 내 소유의 집이 없더라. 나이 오십이 됐는데 가족은 있는데 집이 없는 거다. 그래서 사회와 타협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명함을 만들고 스튜디오를 냈다. 한 3년 일을 하니까 연간 10억 원을 벌었다. 그리고 한 7년 정도 되니까 연간 거의 18억 원을 벌게 되었다. 예쁜 배우들 만나고 찍고 초반에는 여자 배우들과 모델들을 많이 찍었다. 그러다 여자 배우들하고 모델들은 사진 한 장을 찍으면 거기에서 메이크업 바꾸고 옷 바꾸고 하는 데에 시간이 엄청 걸려서 남자 배우 쪽으로 찍는 영역을 좀 넓혔다. 그리고 영화포스터 좀 찍었다. 2007년에 찍은 게 괴물, 오래된 정원, 멋진 인생, 타짜, 달콤한 인생 등 이다. 이정도 찍었으면 많이 찍은 거다. “어느 작가의 손을 타면 잘된다.”라고 소문이 나면 완전히 줄을 선다. 하루에 2000만원씩 받는다. 꽤 수입이 괜찮다. 근데 실제로 따져보면 괴물은 100억짜리인데 난 2000만원을 받았다. 전체 예산에서 보면 500분의 1이다. 사진이라는 것 생각처럼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 사진 작가의 고민..... >
대부분 젊은 작가들이 사진전을 열심히 준비해서 전시회를 열면 커플들이 와서 보면서 남자가 이야기한다. “저거 내가 저렇게 찍을 수 있어” 그 말을 듣는 작가는 그냥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나름대로 정말 죽어라고 준비해서 어렵게 계약해서 벽에다 걸어놓았는데 그 마음 추스르기가 어렵다. 사진의 큰 장점이 생산성. 무궁무진한 빠른 생산성이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고자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내가 경험한 생산성은 하루에 한 스무장 정도 나오는 날. 인생에서 한번 밖에 없었다. 하루에 2000장 찍는 날도 수도 없이 있었다. 보통 일주일에 열심히 찍으면 한 오천에서 칠천장을 찍는다. 거기에서 다섯장 정도 작품이 나오면 정말 해피한거다. 생각처럼 안 되면 좌절의 시기가 온다. 나는 분명히 이걸 보고 찍었는데 왜 생각처럼 안나오지? 분명히 나는 다른 빛이었는데 결과는 왜 이렇게 나왔을까. 자신에 대해 어떤 능력에 대해서 끊임없이 싸움을 하다 대부분이 그 싸움에서 무너진다. 시를 쓴다고 소설을 한다고 치자. 물론 내가 시나 소설을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시는 일년 동안 쓴 것을 인쇄 들어가기 하루 전에 제목을 바꿀 수 있다. 또 단어 몇 개를 다른 단어로 바꿀 수가 있다. 사진은 한번 누르면 그 순간 그냥 90프로가 결정된다.

 

< 뚝방길 위에서 이웃을 만나다..... >
내가 살고 있는 전농동에서 청담동으로 갈 때 중랑천 뚝방길이 있다. 거기에 건축물 폐자재하고 상하수도 처리장이 있는 그 길을 9년 동안 찍었다. 2004년도에 처음 이 사진속의 나뭇가지를 봤다. 환경미화원 터에 있는 나무인데 자꾸 나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 같더라. 그래서 2004년도에 처음으로 이 나무하고 말을 시작했다. “내가 너를 찍어도 되니?” 하는 것과 “내가 너를 찍을 자격이 있니?”라는 두 가지를 4년 동안 물어봤다. 2008년도 4월에 찍어도 된다고 해서 그래서 차를 옆에다 세우고 이 나무를 찍었다. 찍는데 이 길에서 일하는 우락부락한 업체 아저씨들이 방해를 많이 했었다. 3일 정도 찍으니까 옆에 있는 나무가 나도 있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한 달을 찍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때가 4월, 5월 넘어갈 때라서 겨울나무에서 봄 나무로 바뀌는데 나무 모양이 달라진다. 그러면 한 시즌만 한번 찍어보자. 봄까지 찍고 여름까지 찍어보니까 가을은 또 달랐다. 그럼 한 1년을 찍어보자 해서. 1년을 찍고 나서 금년까지 9년을 찍었다. 이것을 2m X 1.5m 정도 되는 한지로 프린트를 한다. 에디션을 다섯 개씩 하는데 한 장에 오천만원에 팔고 에디션 두 개짜리는 1억에 판다. 이제 그 길에 계시는 분들은 다 안다. 여름에는 생수도 갖다 주고 겨울에는 100원짜리 커피도 자기네들 방에서 마시게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 길에 먼지가 많으니까 살수 탱크가 있는 트럭이 있다. 트럭하시는 분이 작년에 8년 만에 내 앞에서 살수를 딱 스톱 시켰다. “아 내가 드디어 이 뚝방길을 점령을 했구나. 모든 분이 다 허락을 해주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서 같이 일하시던 노동자분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는지도 좀 의문이 가고 여하튼 나한테는 어떤 작가로서의 터닝포인트가 된 작업들이다. 그래서 좀 알려지게 됐고 아마 금년 미국의 유명한 세계적인 출판사에서 조만간 책이 나오도록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가격이 2배로 올라갈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의 시장이 생각하는 것 보다 외국에는 엄청 크다.

 

< 카메라로 그려낸 수묵화..... >

뚝방길을 좋아하게 된 것은 나무마다에 상처가 있어서이다. 그 모습이 우리 인간들 모습 같아서, 때로는 내 마음 같아서 정말 나무에게 열심히 물어 보았다. 한 장의 사진도 안 찍고 정말 매일같이 4년 동안 1,200번 정도 나무에게 물어보았다, 처음엔 한장만 찍으려 했는데 시즌을 찍게 되고 그것이 해을 넘기고 이렇게 5년을 찍으니 다 찍은 것 같았다. 거기서 멈추려 했는데 현대카드에서 주최하는 25분짜리 강연 ‘토크쇼’에 나가게 되었다. 첫 번째 연사가 뉴욕 모마뮤지엄 그렌날리 관장이었다. 이분이 내 강의를 들을 것을 생각하니 강의준비에 많이 떨었다. 실제 토크쇼에서는 그렌날리를 의식하지 않고 여러분들에게처럼 편안하게 떨지 않고 작품을 보여주며 나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 했다. 보름 정도 후 그렌날리가 보낸 편지가 왔다. 내용은 “당신 작업을 감동 있게 보았다. 전시 준비되면 연락해라.”였다. 이런 연유로 다시 뚝방길 사진작업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전에는 1, 2마리 밖에 없던 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들이 카메라 앞에 앉았다. 심지어 저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 주었으면 생각하면 그 자리에 앉는 새가 있었고 하늘을 지나가는 새도 있었다. 이렇게 영감을 받아 작업이 될 때에는 며칠 밤 잠을 자지 못한다. 올해까지 이 작업을 진행했고 한지에 프린팅을 했다. 카메라로 수묵화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좋은 시간이었다.

 

< 전통 산수화에 도전하다... >
다음 작업은 사진으로 전통 산수화를 그리는 작업이다. 산수화 하면 조그만 사이즈의 난, 꽃 등 사군자 등을 한지에 그리는 전통화법인데 난 스케일을 키워 카메라로 전통산수화를 그리고 싶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카메라를 수소문하니 스위스에 1억5천만 화소의 카메라가 있었다. 가격이 1억 5천만 원이었다. 그 카메라를 사서 2012년부터 작업을 진행해 15점을 완성하였다. 뉴욕의 모마, 파리의 그랑팔레, 런던의 테이트모던, 이렇게 세계 3대 뮤지엄이 있다. 2013년 엔디워홀이 전시를 했던 그랑팔레로 부터 초대를 받았다. 15점의 작품을 뮤지엄 바닥에 깔았다. 자세히 보더니 이건 사진이 아니라 회화 아니냐고 했다. 불어로 자세히 설명하니 이해하고 미안해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랑팔레로부터 “당신을 커미티 전원의 만장일치로 2016년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하고 2016년 1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기념 전시회를 개최해 주겠다.”라고 연락이 왔다. 세상이 참 아름답게 보였다. 2015년 2월 28일 나에게 가장 행복한 편지를 보내준 사람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한국 정부와 무슨 일이 있느냐? 왜 당신 얘기만 하면은 문화부 직원들이 다들 도망가느냐?”고 물었다. 그랑팔레에는 국가대 국가의 계약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곳이다. “당신을 프로그램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정해서 너무 아쉽다.”라는 가장 불행한 편지를 받았다. 보이지 않게 4년 동안 엄청난 피해를 본 셈이다. 이 사진들이 파리 대형전시장 겸 박물관 그랑팔레를 거쳐서 나오면 그게 1억원이 돼서 나오는게 아니고 10억원이 돼서 나온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그 수요가 엄청나다. 지난 정부와 친하지 않은 내 탓이라 생각한다.

 

< 구치소와 정신병원... 그리고 내일.... >
마약을 해서 구치소도 가보고, 마약을 하지 않았는데 한다고 정신병원에도 들어가 보고, 또 추방도 당해보고 여러 가지를 젊은 시절에 겪었다. 내가 좀 둔해서 추방을 당해도 한 이틀정도 있다가 “아 내가 지금 상황이 심각하구나. 내가 여기 이렇게 앉아 있을 조건이 상황이 아니구나.” 하는 정도로 낙천적이었다. 뭐 일이 있으면 그래. 마약했으니까 구치소가서 살지 뭐... 되게 좋았다. 55일 동안 책도 110권 읽고 나오고 5대 범죄라고 해서 강도, 살인 등 제일 살벌한 수감자들이랑 같이 있는데 내 방이 나중에는 선빵이 되가지고 애들이 다 너무 착하게 교화되었다. 작가로서 좋은 경험이다. 정신병원은 구치소보다 더 심했다. 구치소는 내가 어떤 잘못을 한 거를 안다. 들어가면 고참 수감자들이 몇 년, 몇 달 사는지를 다 얘기 해준다. 전과들이 너무 화려하니까 다 법률가 뺨친다. 마약을 하지 않았는데 담당검사가 서울시립정신병원에 날 입원시켰다. 80명이랑 보름동안 있었는데 약을 안 먹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아침에 정말 영화처럼 다 입 벌리고 제일 많이 먹는 애부터 한 알 짜리가 쫙 줄 서 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 대한민국이 나를 예술가로 만들려고 작심을 했구나.” 이것은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하루에 1리터씩 피를 뽑힌 적도 있다. ‘90년대 초인데 국과수가 요즘처럼 발전이 안 된 때이다. 요즘은 1시간이면 마약테스트 결과가 나온다. 그때는 보름이 걸렸다. 사진을 한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그런 어떤 관찰자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 병원에서 만난 80명 중에 정신이상이 있는 친구는 10프로밖에 안되었다. 나머지는 왜 그럼 여기 있을까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관찰해보니 ‘내일’이 없어서 였다. 그 이후 어떤 생각을 갖게 됐는가 하면 “난 오늘만 살자” 주의자이었는데 내일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 것이더라. 그 친구들한테는 갇혀있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였다. 그냥 내일이 없어서, 갈 곳이 없어서, 할 일이 없어서 그냥 미쳤다고 드러누운 거다. 내가 그동안 너무나 오만하게 살지 않았었나. 너무나 자만으로 살지 않았나. 반성을 했다. 나를 처음 마약으로 잡아간 검사님한테도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 한 장 건지기가 너무 어렵다.... >
한두 달 전 문재인 대표님한테 ‘김작가는 뭐하고 살고 싶어?’ 그래서 ‘아 저는 그냥 사진 찍고 책 읽고 대마초 피고 음악이나 듣고 사는 게 제일 좋습니다.’ 이러니 웃으시더라. 만약 조선시대였다면 그분은 곧은 선비고 나는 굉장히 삐딱한 한량인 셈이다. 아무튼 예술은 정상적으로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됐든 자기의 혼이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하는 것을 하나의 어떤 특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 업보고 어려움이고 좌절이다. 1000장을 찍어서 한 장 정도를 오케이 했을 때 나머지 999장을 보면서 절망하고 좌절한다. 왜 이거밖에 안했을까. 왜 내가 이 시간에 그 빛을 놓쳤을까. 하는 것들로 절망한다. ‘보그’에서 일하는 영국 출신 프랑스의 유명 패션사진가 ‘스티브하이트’ 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에게 물어봤다. 내가 400장 정도 찍어 한 장 정도 건진다고 했더니 “난 700장 찍어.” 그러더라. 그게 답이다. 1000장을 찍어도 한 장이 나올까 말까하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 EAST... 동양을 찍다.... >
‘이스트’ 라는 제목의 큰 사진을 찍고 있다. 뭐를 찍는가 하면 ‘동양’ 을 찍는다. 서양 작가들과 전쟁을 하고 있는데 그들을 이기려면 그들이 절대로 보지 못하는 거를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동양을 찍는 거다. 한국을 찍고, 나의 뿌리를 찍고, 동양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찍는 대형작업이다. 결과물로는 그 사이즈가 2.5m X 5m 짜리 한지로 나오게 됐다. 그 작품을 독일 창고에 매달 꽤 많은 돈을 주고 보관하고 있는데 조만간에 전시회 할 기회가 있으면 가져와서 전시를 할 계획이다. 일단 17개 만들었는데 제작비만 한 점당 7,000만원 들었다. 프린트하고 디아섹 입히고 나무프레임을 했다. 17개 만들어 놓고 돈이 떨어졌다. 이제 ‘고비사막’만 남았다. 고비사막까지가 내가 보는 동양이다. 시작은 베트남의 하롱베이부터 중국의 장가계, 황산, 백두산 그리고 한강, 제주도, 일본의 야쿠시마 섬까지 찍었고 이제 고비사막만 찍으면 이 시리즈는 스무장 짜리로 끝난다.

< 마무리 말.... >
어떻게 하면 잘 놀까. 하는 게 나의 계획이다. 여지껏 찍은 사진은 800만장이 좀 넘는다. 아카이브 하는 데만 한 4년 걸린다. 아직도 내가 뭐를 찍었는지 다 파악을 못하고 있는 상태고, 여태까지 정말 그냥 끊임없이 작업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산수화나 수묵화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 내가 처음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작가들이 했지만 이걸 이제 어떤 식으로 어떤 좋은 곳에서 보여주느냐.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어떤 평을 받느냐가 중요하다. 이외에도 구름 찍고. 풀 찍고, 꽃 찍고, 사막 찍고 그 다음에 빌딩 찍고, 그래서 동시적으로 한 7가지 주제를 매일같이 촬영을 한다. 이것들이 모아지면 전시회를 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자선전시를 통해 한 10년 동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했고 베트남, 아프리카 등에서 꾸준히 아이들을 돕고 있다. ‘이스트’ 작업하고 ‘뚝방길’ 작업은 정말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 총력을 기울여 한 작업들이고 나머지는 매일 같이 노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다. 매일 같이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까’하는 게 나의 주된 관심사다. 아무튼 김수근 선생님이 멋있게 지어준 이 공간에서 여러분들 만나 뵙게 되어 너무 영광이었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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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목 한그루, 해일은 막지 못하지만 무너지는 마음은 붙잡을 수 있다....

 

20174월 창의포럼에서는 1976년에 출가 이후, 오랫동안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며 방송 진행을 통해 우리들에게 마음 공부의 길을 안내하고 있는 치유의 어머니 <정목스님> 초청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정각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고 동국대학교 선학과와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전화 상담기관인 '자비의 전화'를 만들었다. 20년 가까이 서울대병원, 동국대병원과 함께 하는 아픈 어린이 돕기 운동 작은사랑을 펼치고 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자그마한 키 ,파르라니 깍은 머리, 단아하게 잘 다려진 승복차림의 정목스님이 무대에 섰다. ‘이렇게 밤낮 없이 우리나라 기초과학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시는 연구원 한 분 한 분 앞에 두 손 합장하는 마음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하면서 오늘의 제 강의를 시작할까 합니다.’ 라고 하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국민의 세금이 쓰여야 할 곳.... > 

좀 전에 부원장님과 잠시 차담을 나누면서 내가 이런 얘길 드렸다. 국민의 세금이 가장 뜻있게 쓰여야 할 것이 난 과학 분야라고 생각한다. 전국 강연을 다니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관심 가져야 할 분야가 과학 분야이고 지금 이정도로 지원하는 것 가지고는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지고 갈 수는 없다.’ 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다닌다.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서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남의 나라 일이지만 눈을 번쩍 뜨고 보게 된다. 과학과 예술 분야는 국가에서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라도 물심양면으로 보살피고 후원해야 된다. 실패와 실패를 거듭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시하고, 거듭 실패를 하라고 실패 기금을 주어야 하는 분야가 과학 분야라고 생각한다난 사실 과학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다. 오늘 강연 제목이 통찰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통찰이라고 하는 것이 과학도인 여러분들은 이미 가지고 계시는 능력이다. 통찰의 힘을 가지지 않고서는 과학적으로 뭔가를 연구할 수도 볼 수도 없을 것이다. 미세한 바이러스, 미토콘드리아, 박테리아 이런 것 하나를 연구를 한다고 해도 그것과 연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어디로 발전해 가고 있고,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그 유기체적 상관관계를 한눈에 파악하지 않고서는 과학의 연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그러니까 그게 바로 통찰의 힘인 것이다.

 

< ‘없을 무()’자에 항상 상()’> 

작년부터 과학 분야 공부를 해봐야겠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승가의 불교 공부라는 건 과학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공부하기 어렵다. 불교는 무조건 믿어라 하는 신앙이 전혀 아니다. 불교의 첫 출발은 믿지 마라이거부터 시작한다. ‘부처의 가르침조차도 믿지 마라.’ 신격화 하지 말고 신으로 모시지 마라. 그리고 그것이 실제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 확인이 되지 않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리고 어제까지 믿음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오늘 와서 보니까 아닌 거라면 당장 어제까지 믿었었던 걸 쓰레기통에 다 내다 버려라이렇게 얘기를 한다. 오늘 연구한 것이 어제 한 것보다 훨씬 더 너와 나에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고 맞는 길이라면 그 길을 가야한다. 도덕적 신념이나 윤리적 신념이라고 하는 것이 그대로 붙박이처럼 있는 건 없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가졌던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것. 진리는 아니지 않는가. 그 시절에는 그것이 어필됐지만 지금 와서는 전혀 씨도 먹히지 않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고 하는 건 계속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고 그것을 불교에서는 무상이라고 한다. ‘없을 무()’자에 항상할 상()’. 항상하지 않은 것이다. 불교에서 오직 변하지 않는 건 하나밖에 없다. 변하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들이 무상하게. 변화해 간다는 사실 하나 만이 유일하게 진리이다.

 

< 반야심경... > 

불교가 과학과 접근하지 않고서는 반야심경 한편도 해석 할 수 없다. 모든 전국 사찰이 새벽에 눈뜨는 새벽 3시부터 하는 예불 중에 꼭 나오는 게 반야심경이다. 이백육십글자로 되어있다. 해인사에 있는 팔만사천대장경. 그 장대한 경전 속에 반야경에 해당하는 것만 부에 달한다. 통찰을 통해서 꿰뚫어 아는 것을 반야라고 하는데 이는 곧 지혜를 뜻한다. 그런데 그 반야심경의 내용을 지금 4차 산업 혁명시대를 모르고는 해석할 수가 없다. 3차원에 앉아서 3차원을 볼 수 없고, 2차원에서 2차원을 볼 수 없듯이 4차원이어야 3차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반야심경에 나오는 내용자체가 3차원의 물리적 세계에서 바라볼 수 있거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불생불멸이라든지 부증불감이라든지 불구부정이라는 경구가 있다. 이것은 욕망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논해봐야 이 세계를 알 수가 없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인간은 감정이라고 하는 걸 가지고 살아간다. 감정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불안하고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고를 느낀다. 이런 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어떻게 불생불멸, 불부부정, 부증불감이 가능하지 않다. 

 

< 4차 산업시대의 화두.... >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와서 인간보다 더 똑똑한 알파고를 만들어낸다고 하니 이제 4차 산업은 정말 인간의 뇌의 감정이라는 걸 떼어 내겠다는 것 아닌가. 뇌 안에서 감정이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게 하나의 화두이다. 3차 산업까지는 생명에 대한 연구를 했다 한다면 이제 4차 산업은 광물에 대한 연구라고 들었다.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를 연구하는 게 4차 산업이라는데 이 세계를 모르고는 불교경전의 한마디도 진도를 못나간다. 쉽게 말하면 우선 반야심경의 불생불멸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세계,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세계,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세계, 그게 욕망의 차원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소리다. 그러니까 소설 쓰는 소리 같고 황당한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과학이 맞물려서 함께 발전해 나가다 보니 지금 불교는 서양에서는 떠오르는 새로운 하나의 이념이 되어 과학도들이 불교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 화엄.... > 

불교의 화엄경이라고 하는 책이 80권으로 되어있다. 스님들이 마지막 대학과정에서 배우는 과목이다. 그런데 토인비가 영어로 번역된 화엄경의 압축된 내용을 보고 무릎을 치면서 다가오는 21세기 시대를 이끌어가게 될 사상이 있다면 불교의 화엄이 될 것이다라며 탄복을 했단다. 그게 무슨 말일까. 불교의 화엄은 딴 말이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소멸함으로 저것이 소멸하고 저것이 소멸함으로 이것이 소멸한다.’ 딱 이 말이다. 그래서 화엄경은 한마디로 압축하면 연기법이다. 인연이 있어서 연결된다는 거다.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뭐가 아니라 있음으로서 이것이 있게 되는 또 저것이 있음으로서 이것이 있게 되는 이런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유기체적 관계를 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사실 4차 산업혁명은 비유기체적 관계에 대한 것 아닌가. 이제는 그 유기체적 관계의 시대를 끝내고 비유기체적 관계 속에서도 또 다른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게 뭐가 있을까. 뭐 이런 걸 이제 논한다고 알고 있다.

 

< 과학자들의 업적.... > 

불교공부라고 하는 게 과학에 대해서 귀 기울이지 않고, 경청하지 않고는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이 될 것이다. 그러다보니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내가 돈 내고 보는 유일한 잡지가 사이언스지 등의 과학 잡지다. 유명한 과학자들의 이름이 쫙 나열되는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분들의 업적 앞에 경외심이 생기고 저절로 존경심이 생기고 이거 하나를 연구하기 위해서 전 생애를 바친 그분들의 삶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출가수행자로서 기도하고 수행하고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분들이 얼마나 낮밤 없는 전 생애를 바쳐 열정적으로 연구를 했겠는가. 그 한사람의 연구업적이 세상에 탄생하는 순간 전 인류가 동시에 혜택을 받게 되는데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들고 있는 이 마이크 하나, 내가 서있는 이 공간 하나하나가 과학자들의 업적이 아니고서 우리가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과학도들에게는 더 많은 후원과 지원이 국가 세금이 아깝지 않다 생각하고 지원해야 한다. 

 

< 대단한 나라, 대한민국.... > 

내가 쓴 책 중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전국 강연을 4년을 불려 다녔다. 4년 동안 일 년 열두 달 365일 중에 거의 360일을 불려 다녔던 것 같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다 보니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직업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나주가 됐건 목포가 됐건 어느 곳이든 시간만 맞으면 웬만하면 다 갔다. 그렇게 많은 곳들을 다니면서 참 많은 걸 배웠다. 특히 장로님들 70명이 모인 자리에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는데 이것은 종교 역사 이래 전무후무한 일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인데 이게 바로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나라가 망할 나라이겠는가. 우리나라에는 종교가 이렇게 많은데도 우리는 종교전쟁이 없다. 그저 집안 안에서 찌그렁 찌그렁 싸울 뿐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 절에 다니는 사람. 그것 때문에 총을 쏘아 죽인다던지 이런 일은 거의 드물다. 그러니까 참 대단한 민족이고 우리 정말 별난 DNA를 가진 사람이다. 지금도 시리아 등에서는 폭탄을 터트리고 난리를 치는데 대한민국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 어떤 전쟁보다 가장 무서운 것이 종교이념(전쟁)이다. 아편보다 더 무섭다. 근데 우리나라는 그런 식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기독교건 불교건 함께 잘 가고 있다. 

 

< 달팽이... 그 궁금증을 살피다.... > 

달팽이 책이 나오다 보니까 그것으로 인해서 강의를 불려 다니며 달팽이라고 하는 녀석에 대해서 연구해보게 되었다. 달팽이라고 하는 그 작은 생명체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간을 대신해서 그 조그만 몸뚱이가 우주여행까지 갖다오고 그리고 현기증도 느끼지 않고 쓰러져 죽지도 않고 잘 돌아온 이 작은 생명체를 통해서 오늘 몇 가지 지혜를 배워보고 싶다. 일단 달팽이는 지구에서 가장 느린 생명체에 속한다. 한 시간에 오십 미터를 간다고 한다. 우리가 백 미터 달리기를 910초에 달려가는데 달팽이는 오십 미터를 기어가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인간이 느리다고 표현을 한다. 느리다고 말하는데 달팽이의 우주에서 볼 때는 느리고 빠르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말이다. 달팽이하고 인간이 달리기를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인간과 독수리 또한 달리기를 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뇌 안의 의식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전 생에 나라를 구하신 분들.... > 

여러분들은 계시는 KIST, 환경이 얼마나 좋은가. 여러분은 정말 아마도 적어도 전생과 그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던 분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공간 못 오신다. 대한민국 땅덩어리 안에 그것도 서울 장안에 여러분은 어쨌건 과학을 연구한다는 이유 하나로 환경이 극락세계인 이곳에서 혜택을 받고 계신다. 그런데 이곳이 극락으로 보이시는지를 여쭙고 싶다. 눈은 뜨고 있는데 그냥 다니시는 건 아닌지 물어보는 거다. 과학 하는 분들에게 통찰의 힘이 자비의 힘으로 꽃피워지려면 시적인 시상이 떠올라야지만이 가능한 것이다. 근데 이 꽃나무를 과학적으로만 해석하면 얼마나 멋없겠는가. 여러분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계시고 이곳을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다른 외부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가 듣기로는 굉장히 만족도가 높은 분들이라고 들었다. 다만 가장 큰 스트레스 중에 하나라면 실적 내놓으라는 것. 업적 내놔라. 세금 받아먹은 것만큼 결과 내놔라. 근데 그걸 빨리 내놔라. 이게 가장 죽겠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거는 백년을 투자해서 하나 나올까 말까하는 것을 기다려야 되는 거다. 그게 정말 과학적으로 우리가 후원하는 것이 실패를 거듭할 수 있도록 연구실의 환경을 더욱더 좋게 지원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로 나오시는 분들 중에 과학발전에 힘쓰겠다는 말을 하는가 안하는가를 제일 먼저 본다. 그것은 차세대의 우리 후세 사람들이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해주는 운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데 별로 과학에 대해서 말하는 분이 없다. 

 

< 달팽이 느림의 교훈.... > 

달팽이라고 하는 이 작은 생명체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기어 다니는 생명체 하나하나가 이 아침에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 성자들만의 가르침. 훌륭한 사람들만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 생명체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를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달팽이를 그렇게 느리다고 하는데 달팽이의 우주에서 볼 적에는 느려요. 빨라요 라고 하는 말이 의미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 여러분들이 과학의 업적을 내야하고 실적을 내야하는 자리에 있으시지만 여기 계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유능한 과학도일 수는 없다. 출중하고 뛰어난 브레인을 가진 분도 있겠지만 같은 과학도인데도 아직 중간 혹은 밑에나 계시거나 의식 차원이 다른 분들이 뒤섞여있을 거다. 이게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인가. ‘유능하고 능력 있는 사람만 세상 살아가라 하는 법은 없다는 것이 바로 달팽이가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한 시간 동안 50m를 기어가지만 달팽이의 우주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자기의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늦다 빠르다는 아무 필요가 없다. 

 

< 놀고먹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 

죽음은 지금까지 종교도의 문제였고 철학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공학도에게 넘겨야 된다고 본다. ‘죽음을 공학도가 해결하겠다.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다.’ 이 말이 가장 충격적 이었다. 지금까지 죽음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저편 너머의 세계이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 것이었는데 영생의 길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거 아닌가. 정말 눈 크게 뜨고 공부 안할 수가 없는 그런 세상에 와있다. 원장님이나 부원장님 입장에서 볼 때는 연구업적을 내지 못하는 연구원이 있을 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데 그렇게 업적을 못 내가 지고 너 어떻게 할래.’ 라고 하는 마음이 당연히 들것이다. 그러나 더러는 이렇다. 놀고먹는 사람이 있어야 또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도 있는 거다. 그러다보면 이 중에 한 두 사람이 엄청난 연구를 한다. 근데 중요한 사실은 그 한 두 사람은 이 놀고먹는 사람 때문에 연구를 하는 거라는 것이다. 그 두 사람을 위해서 이 공간을 허락하진 않는다. 여러분 그렇지 않은가? 너무 말도 안되는 웃기는 얘기로만 들리는가. 아무튼 느린 걸음으로 간다. 빠른 걸음으로 간다.’ 가 아니라 각자의 인생의 속도를 허락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달팽이를 통해 배워야 한다. 이 말은 여러분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업적도 내지 말고 들입다 놀아라. 라는 말은 아니다. 연구를 하는데 안되는 게 있다. 그럴 때 실망하시지 말라는 거다. 스스로의 느린 걸음에 대해서 낙담하거나 좌절하는 것은 과학도에게는 금물이다. 과학자는 열정이 식으면 안 된다. 종교인과 과학자가 가야할 길 열정 식으면 이거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실패한 것 앞에서 또다시 열정을 불태울 수 없다. 그런다면 그때는 정말 과학도의 명함 내놓아야한다. 그런 사람에게 국가가 녹을 줄 수는 없다. 

 

< 저항하지 않는다.... > 

두 번째는 달팽이는 저항하지 않는 생명체라는 걸 우리는 꼭 기억해야한다. 여러분 혹시 실험을 해보셨는지 모르는데 칼날이 번뜩번뜩하는 것 위에 달팽이를 올려놓으면 그 칼날을 미끄러져 기어가는 달팽이는 절대 몸이 베이지도 피도 나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점액질이 나오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점액질만 가지고는 몸이 안 베일 재간이 없다. 칼날의 번뜩거림보다 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못 베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신기한 생명이다. 저항하지 않는 생명이라고 하는 건 나와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할 메시지 중에 하나다. 우리는 아침에 눈만 뜨면 밤에 잠들 때 까지 저항하면서 살고 있다. 좋다 싫다, 나쁘다 예쁘다, 이렇다 저렇다, 기분 좋아, 기분 나빠, 그리고 사람을 평가하느라고 온종일 저항한다인생을 살다보면 자기에게 닥쳐오는 걸 만나야 할 때가 있다. 만났을 적에 피해서 돌아가려고 하지마라. 지금 이 순간 그걸 피해서 돌아가면 저 골목에서 그것이 기다리고 있다가 골목에 숨어 있다가 나와서 또 만나게 된다. 언제 만나도 만나져야 하는 것 일 때는 반드시 그게 내게 돌아오지. 피해서 도망갈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 말은 홍수가 나서 떠내려 오면 자기가 헤엄을 좀 칠 줄 안다고 물살을 헤치고 이리 비틀어보고 저리 비틀어보다 힘이 쫙 빠져서 죽는다. 근데 소는 이러나저러나 헤엄을 못하니 그냥 어화둥둥 떠내려가는 거다. 그러다보면 하류에 가서 빠져나올 수가 있다. 닥쳐온 상황에 대해서 그것을 저항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고 그래서 거기서 지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삶은 더 나은 발전의 도약을 만들어준다. 

 

< 멈추지 않는다.... > 

세 번째가 달팽이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생명체라는 것 또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달팽이는 눈이 없고 더듬이로 간다. 더듬이로 어디에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를 딱딱 짚으면서 가는데 앞에서 위험 물질이 나타나면 그냥 몸뚱이를 싹 말아가지고 자기한테 딱 맞는 껍질 속으로 쏙 들어간다. 호랑이나 사자는 먹이를 물어뜯는 이빨을 가지고 있다. 강인한 이빨. 고슴도치는 가시를 가지고 있고 뱀은 독을 가지고 있고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뭐 한 가지의 방어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달팽이는 아무 무기가 없다. 스스로를 보살필 무기라는 것 자체가 없고 위험이 오면 그냥 자기 집 속으로 들어가서 위험을 잠시 피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 다음에 달팽이가 앞으로 전진은 되는데 후진은 안 되는 건 아시는가. 위험이 있나 없나 확인 후 또 앞으로 전진 한다. 계속 자기가가 가야할 길 만을 향해서 정말 뚜벅뚜벅 나아간다. 근데 우리는 조금만 힘들면 그만 손을 놓아버리고 싶어지고 그냥 모든 걸 때려치울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니체가 ‘20세기 30세기를 살아보고 고통스럽다고 명함 내밀지 마라. 적어도 일만 년에서 이만 년을 죽었다 태어났다 죽었다 태어났다를 해보니 이거 진짜 힘드네.’ 하고 그때 가서 명함 내밀어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업적, 실적 내놓을게 없으면 아, 어떡하면 좋지. 고민을 하는 것은 좋으나 낙담과 절망을 통해서 스스로가 더 이상은 일어나지 못하겠네. 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지금 니체가 하고 것이다. 

 

< 쓰나미... 한그루 묘목.... > 

인도네시아에 2003년 쓰나미가 왔다. 전 세계 각국에서 봉사대가 가고, 의료진이 뜨고 도움을 주러 갔다. 그 마을 전체가 바닷물이 들어와 헤일에 휩싸여 그 마을 전체가 통째로 날아갔다. 사진전을 갔다가 굉장히 감동 있는 사진 한 점을 봤다. 사진 속에 네 살에서 여덟 살까지 먹은 꼬마들이 오물오물 모여가지고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황폐한 마을에 들어가서 나무묘목을 심는다. 그 광경을 본 외국인들이 아이들에게 얘들아. 거기에 그 나무를 심는다고 이게 뭐 너희들에게 힘이 되겠니?’ 라고 묻는다. 그랬더니 그 중에 일곱 살 먹은 꼬마가 이렇게 대답하는 내용을 그 사진에 밑에다가 붙여놨더라. ‘맞아요. 이 묘목이 거대하게 밀려오는 해일을 막지는 못할 거예요. 하지만 자꾸 절망하려는 내 마음을 붙들어 줄 수는 있지 않겠어요? 난 이런 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먹는 게 어른이 아니더라. 정말 자기가 위기 앞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가 진짜 어른을 판별하게 한다. 

 

< 통찰의 힘... > 

어느 관점에서 누가 보느냐에 따라 통찰의 힘이 다르다. 내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불평, 불만 밖에 없다. 나를 통해서만이 우주가 펼쳐지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내 위치에서만 세상이 돌아가주라는 법은 없다. 나의 우주와 그대의 우주. 나와 그대를 제외한 나머지 우주는 전부 물질 우주다. 나와 그대와 물질우주의 세계가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되는 세상 속에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내 우주 밖에 없다. 내 시각을 빼서 저 대상 사물이 나를 보고 있는 걸로 보게 될 때 정말 세상은 달라진다. 세상 사물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를 볼 수 있도록 또 하나의 눈을 뜰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 역할을 바로 과학도인 여러분이 해주셔야 한다. 우리가 이런 걸 깨달을 수 있도록... 과학자들의 눈은 바로 그런 거 아닌가. 정말 인생에서 우리는 멈추고 싶을 때 있고 주저앉고 싶을 때 있고 그만 살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여기 계시는 여러분에겐 그런 경우가 거의 없을 지도 모르겠는데 이 세상 바깥. 바로 이 키스트 바깥만 나가면 그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라고 하는 말을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그게 나의 입장에서만 바라봐서는 세상은 전혀 통합적으로 보아지지 않는다. 이제는 지식이 경쟁력이 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냥 밥하는 아줌마, 시골에 있는 할머니도 인터넷 뒤지면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지식이 무슨 경쟁이 되겠는가. 오직 통찰의 힘이 앞으로 21세기를 이끌어 가는 새로운 경쟁력인데 과학도인 여러분이 해주셔야 되는 역할인 것이다. 

 

< 인생의 목표... > 

정말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어른다운 것일까. 누구는 판사, 검사. 누구는 과학자. 누구는 의사. 뭐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직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은 아닌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몸 받아 올 때 과학자가 되려고 이 세상에 온 거 아니고 의사 되려고 대통령 이런 직함 가지려고 세상에 오지 않았다. 이건 수단이다. 이 세상에 와서 살다보니 우리에게 그 역할이 주어졌고 거기에 우리가 기여해야 되는 바가 있다 보니 저는 종교인이라는 걸 선택했고 여러분은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인생의 목표는 뭘까. 정말 있다면 한가지다. 나 자신의 성장과 타인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온 것 밖에 없다는 거다. 그게 인생의 목표이다. 내가 고통 받고 싶지 않듯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주지 않을 수 있는 것. 내가 행복 하고 싶듯이 다른 사람이 행복을 완성할 수 있도록 협조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거다. 지금 이 시대는 패밀리의 개념을 다르게 가지기를 바라고 있는 시대다. 내 아들 딸. 내 자식, 김씨, 박씨 그 다음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이렇게 영역을 정하고 어느 대학 출신이냐 이렇게 라인을 정하는 사람살이가 아니라 이 모든 경계를 다 넘어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내 부모 형제 아니었던 자가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마음.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사실이다. 이런 생각과 마음을 가질 때 어떻게 그가 고통 받는 걸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으며 그가 행복한 것을 보는 순간 어떻게 시기심과 질투심에 내 눈이 멀 수가 있겠는가. 라는 마음을 가져주는 자비심이 없이는 그게 종교가 됐건 판사, 검사, 의사가 되었건 과학자가 되었건 그것은 반쪽짜리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 마무리말... >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간다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지혜를 풀어 놓을 수 있고 또 내가 남을 도울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협조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60년에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노인국가 1위가 된다고 한다. 과학의 발달로 우리의 수명은 늘어났다. 연장되고 늘어난 이 수명을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와 있고 그것은 과학도인 여러분들의 몫이기도 하다. 부디 고통 받으며 무지몽매하게 어리석게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 여러분의 과학적 업적과 연구가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되고 그들의 행복의 길에 비단길을 놓아줄 수 있는 길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곧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온다. 내가 있는 사찰에 아름다운 등불을 켜고 KIST에서 이렇게 과학을 연구하고 계시는 여러분 한분 한분이 부디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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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2016년 12월 송년 창의포럼 연사는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우리에게 팝을 비롯한 대중음악의 세계를 친숙하게 전해주고 있는 가요계의 마당발 임진모 대중 음악평론가를 초청했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후, 1984년 경향신문에 입사, 본지와 주간지를 통해 약 5년간 팝송 평론을 썼다. 음악의 힘에 이끌려 음악평론을 인생의 목표로 정하고 ‘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하게 된다.

 

저서로는 《우리 대중 음악의 큰 별들》, 《젊음의 코드, 록》, 《가수를 말하다》,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MBC 표준FM에서 《임진모의 뮤직스페셜》을 진행했으며, 동 방송 《지금은 라디오 시대》,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고정출연하고 있고 2006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공로상을 받았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

통통하고 자그마한 키에 안경, 곱슬머리에 밤색계열의 수트를 입은 평범한 중년신사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임진모입니다. 어디를 가서 봐도 강연시 앞자리가 비어있는 것은 사회학 전공으로 풀어보면 동굴심리라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앞에 앉는데~~’ 라고 농담을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의를 가장 열심히 듣는 부류는 40~50대 주부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감동을 예약하고 온다. 사법연수원의 판사들도 강연을 열심히 듣고 제일 안 듣는 부류가 20대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노트북만 보고 있으면서 돈 이야기에만 살짝 고개들뿐, 취업이야기도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관심이 없다. 대학생의 부모인 베이비 세대 부모가 뭔가 잘못하고 살아온 게 원인이지 싶다. 강연 요청하기 전에 먼저 ‘강의료가 얼마예요? ’라고 물어본다. 어떻게 강의료부터 물어보나. 온통 돈이 전부인 사회가 되었다. 얼마의 문제가 아니라, 명예가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점점 돈에 의해 소중한 것들을 좀먹고 있다.

 

< 꼰대가 꼰대를 이야기 하다 .... >

20대는 50대를 단군 이래 최악의 ‘꼰대‘라고 말한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전쟁시대여서 배우지 못했던 ‘꼰대‘ 였지만 우리세대 아버지들은 학력이 있다 보니 조직적으로 아이들의 정서를 지배한다. 그래서 악랄한 꼰대라고 한다. ’배웠다는 것‘을 공학적으로는 모르겠는데 인문학적으로 볼 때 배움과 학벌에 대해 상당히 회의를 느낀다. 이 세상의 모든 범죄는 배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20대 여성의 가장 큰 형벌은 회식때 50대 부장 옆에 앉는 경우란다. 모두 젊은이들 앞에서 그렇게 잘난척 한다. ‘우리시절의 보리고개 들어봤어?’를 비롯해 한 얘기 또하고 또한얘기 또한다. 꼰대의 특성은 끝없는 반복이다. 제발 성공담보다 실패담을 얘기하라. 그리고 한얘기는 제발 스마트폰에 적어두고 다시하지 마라.

 

< 밥딜런과 비틀즈.... 노벨문학상.... >

혹시 밥딜런을 들어본 적이 없는 분이 계신가? 혹시 모르는 분이 있다면 자결해야한다. 그런 사람은 통장 잔고와 명예만 아는 사람이다. 돈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왜 배우고... 왜 관계를 맺는가? 우리에게도 뭔가 차원 높은 것이 있을텐데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돈만 아는 천민화된 사회로 돈이 권력이고 목표이고 해결수단이 되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대중 가수인 밥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41년 생으로 비틀즈 시대에 많은 활동을 했다. 양희은, 김창완, 기타리스트 김목경씨도 자신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과 같이 기뻐했다고 들었다. 나도 밥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날, 심한 감기에도 불구하고 너무 기뻐서 소주 한잔을 했다. 딴따라 대중가수가 노벨상을 수상하다니, 이제 세상의 가치와 질서가 많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배경을 살펴보면, 내가 78학번인데 우리나라는 베이비 부머 세대는 한국전쟁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55~64년생을 이야기한다. 미국은 2차 대전을 기준으로 삼아 42~43년생부터를 베이비 부머라 규정한다. 밥딜런이 베이비 부머시대의 초입부이고, 60년대가 되면서 이들 세대가 대학에 입학한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와 달리 배운만큼 자신들의 음악이 필요했다. 60년대 초에 아버지들이 듣던 음악에 대해 반기를 든다. 비틀즈는 락큰롤 밴드이고 밥딜런은 포크싱어이다.

 

폴 메카트니(42년생), 밥딜런(41년생), 존 레논(40년생)인데 서로 어울려 지냈고, 심지어 비틀즈에게 마약까지 가르쳤다. 비틀즈와 밥딜런은 ‘63년에 동시에 떴는데 혁명적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 곡에서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싶어, 너는 내사랑~ ’이라는 가사의 노래에 10~20대 여성들이 기절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밥딜런 공연장에는 숫자는 적었으나 대학생과 지성인들이 모여들었다. 노랫말을 보면 ‘누군가 사람으로 불릴 때까지 얼마나 하늘을 쳐다보아야 하나, 폭탄이 영구히 금지될 때까지 얼마나 전쟁을 겪어야 하나’ 등 심도 있는 가사로 비틀즈 노랫말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런 가사내용에 비틀즈는 깜짝 놀란다. 어떻게 이런 가사를 만들 수 있는가? 하며 비틀즈의 노랫말도 포크송의 영향을 받아 바뀌게 된다. 밥딜런을 만난 비틀즈도 1년 반만에 가사의 내용이 깊어진다. 밥딜런이 노랫말을 통해 전후 세대의 새로운 시대적 감성과 사회상을 표현한 공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 음악 .... >

한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는 아버지들이 듣던 뽕짝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전쟁후 가난했던 우리나라는 일부 대학생을 빼놓고는 밴드음악을 들을 수가 없었다. 밴드음악은 연습공간이 필요하다. 특히 신중현의 음악인 락큰놀은 일렉트릭 기타, 드럼 등 비싼 악기가 필요해 돈이 많이 드는 음악이다. 서대문, 문화촌, 미아리, 공덕동에 산재한 당시 우리나라 집들은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있어 동네에서 밴드 연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통기타 하나로 음악이 가능한 포크 송, 즉 밥딜런류의 음악이 발달하게 된것이다. ‘너의 침묵에~~’ 로 시작하는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노래 같은 조용한 음악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비틀즈에게 영향 받은 가수가 신중현, 김홍탁, 조용필, 김수철, 배철수이다. 밥딜런의 영향을 받은 가수는 김민기, 한대수, 양희은, 서유석,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4월과 5월, 김광석 등을 꼽을 수 있다.

 

요즘은 진정한 의미에서 세대와 계층을 막론하는 대중가수는 없다. 지금은 모두 섹션화 되어있다. 요즘 20~30대 청년들이 좋아하는 가수는 유희열, 김동율, 이적, 성시경, 장범준 같이 모두 좋은 학교출신이다. 50대들은 유희열 노래를 하나도 모른다. 안다고해도 듣지 않는다. 반대로 세시봉 좋아한다. 10대들은 세시봉을 모르고 들어도 금방 까먹는다. 우리 아들은 조용필과 김현식이 비슷하다고 아직도 헷갈려한다.

 

< 역시.... 대단한 마돈나.... >

강남스타일이 뜨고나서 싸이는 마돈나의 공연에 초청을 받는다. 2012년 마돈나의 초청으로 싸이가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강남스타일 같은 대중음악을 듣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난 이들을 클래식만 듣는 온통 돈과 권력만 아는 자본주의의 쓰레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암만 쓰레기라도 강남스타일 정도는 알아야 한다. 유튜브 조회수가 26억 9천회 정도된다. 올 초에 유튜브에 엄청난 인기를 모은 곡이 있는데 3개월 정도 오르다가 뚝 떨어지고 말았다. 강남스타일이 너무 재미있어 그 어느곡도 따라오지 못한다. 19살이나 어린 싸이를 자신의 공연에 초청한 것은 정말로 엄청난 일이다. 마돈나는 빌보드 차트 1위곡만 13곡이다. 슈퍼스타들은 자신의 공연에 게스트들은 쓰지 않는다. 왜 싸이를 불렀냐고 마돈나에게 묻고 싶다. 이런 심리작용이 아닐까? 오랜만에 보는 남녀노소, 잘나고 못난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대중 스타일이라 초청한 것일 것이다. 마돈나가 공항에 리무진까지 보내 극진한 대우를 하였으며 싸이에게 한마디 한다. 충격이었다. ‘무대에서는 나의 아무데나 만져도 돼’ 이건 살벌한 말이다.

 

마돈나 공연이 끝날 즈음에 싸이가 마돈나를 들어올렸다. 상당히 무거웠다고 한다. 들어올린 마돈나의 치마를 뒤에서 걷어올린다. 빨간 팬티가 보였다. 관객들이 환호했다. 다른 곳에서 이랬다면 바로 구속이다. 바로 그 한마디! ‘무대에서는 나의 아무데나 만져도 돼’ 마돈나의 말이 있어서 가능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마돈나는 페미니즘에 물꼬를 튼 정말 대단한 여자다. 락을 하지도 않았는데 ‘살아있는 락의 전설’이라 한다. 기성에 질서에 덤벼드는 저항행위로 락의 전설로 불리는 것이다. 멘탈이 중요하다.

 

마돈나의 공연에 싸이 가랑이에서 마돈나가 기어나오는 장면이 있다. 박남정 가랑이 사이에서 패티김이 나온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에 노홍철이 가랑이를 벌리고 흔드는 장면에서 싸이가 나오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강남스타일 초반의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쇼킹한 장면이 왜 나오겠는가? 대서특필을 원하거나 게런티가 오르는 것이 아니다. 마돈나 공연은 티켓료가 300불, 400불이나 한다. 자신의 공연에 온 팬들을 무조건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관객이 좋아한다는 그 하나 때문에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이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 2차 직업... 음악평론가.... >

내 직업은 음악평론가다. 이름이 알려지고 잘나갈 때 우쭐했는데 46살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악평론가와 음악가와의 관계로 볼때 가수 조용필과 작곡가 조용수(저작권료 1위)와 옆에는 어마어마한 게런티를 받는 섹스폰 연주자가 있다. 이런 분을 우리는 뮤지션, 존칭을 써서 아티스트라 부른다. 음악평론가는 이런 분들과 거래하는 사람이다. 나의 직업은 가수, 작곡자, 연주가가 없으면 직업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즉, 2차 직업인으로 음악가들에게 서비스하는 사람이다. 내가 살려면 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해야 한다. 나는 왜 이런 사실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연주하는 사람은 날 의식하지 않는다. 이런 분들은 음악만 생각한다. 임진모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내나이 58세인데 46세에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서비스를 제대로 하기 위해 이들을 신랄하게 까야 한다. 칭찬은 가장 독일수 있다. 신랄한 비판이야말로 정말 애정의 표현이다. 하지만 독설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연구원들은 3차 직업일지 모른다. 항상 국가, 국민에게 봉사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 세대간 소통을 위한 가요계 공부.... >

상식을 넓히는 시간을 가져본다. 소녀시대가 제시카가 빠지면서 숙녀시대가 되었다. 슈퍼주니어가 데뷔한지 12년 다가온다. 기성세대가 잘아는 바니걸스가 6년 활동했다. 아이돌의 수명이 짧다고 단정내릴 일이 아닌 것이다. 2NE1의 공민지가 탈퇴했고 박봄은 나올때 마다 얼굴이 바뀐다. 성형중독이다.

 

케이팝은 세계로 뻗어간다. 엑소(EXO)를 ‘이엑스오’로 읽으면 큰일난다. HOT는 ‘핫’이라 하지않고 ‘에치오티’로 발음해야한다. 엑소는 이수만 사단의 작품인데 원래 순수 한국인들로 구성된 팀과 중국시장울 겨냥해 중국인 위주로 구성된 2팀이 있었다. 이수만은 한류의 귀착지를 중국으로 봤다. 절대 미국, 유럽이 아니다. 그들은 그냥 인증샷일뿐이다. 독일, 프랑스, 사람이 한국음악을 보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 2010년에 엑소를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난 안된다고 생각했다. 중국 성장속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정확히 3년 반이 지나자 실제로 크리스, 루한, 타오가 탈퇴했다. 셋 모두 중국에서 솔로로 활동중이다.

 

방탄소년단 들어보셨나? 영어로 BTS인데, 홍콩에 방탄소년단이 가면 공항이 마비된다. 모든 직원들이 일손을 놔버린다. WINGS라는 앨범이 빌보드 26위 까지 올라갔다. 어마어마한 성공이다.

 

설현! 우리모두 기억해 두자. 이뻐도 너무 이쁘다. 20대 여자들이 박보검, 송준기를 좋아한다. 남자들은 설현을 좋아한다. 설현이 안중근을 모르고 이세돌은 조세돌이라 해서 화제가 된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에 CF가 5개 더 들어 왔단다. 브레인이 그렇게 허약한데도 ‘예쁘잖아~~’ 로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 왜 그렇게 외모를 따질까. 이쁜게 뭐가 그리 중요한데 안중근도 모르는 애를 막 가져다 쓰는가! 우리나라가 썩은 것이다. 학력은 필요하지만 학벌사회가 돼서는 안된다.

 

마마무! 투와이스! 아이오아이! 어차피 다시는 안 불릴 이름이지만 한번 불러보자. 마마무의 노래 ‘넌 is 뭔들’ 제목이 특이하다. 누가 항상 잘하면 “뭔들 못해“ 에서의 뭔들이다. 아이들을 창찬할 때 앞에 대놓고 하지 말고 지나가는 말로 ‘누구, is 뭔들?’ 해봐라. 바로 손가락을 치켜들며 ‘대박~’ 이라 할 것이다. 이게 소통이다.

 

투와이스는 실제로 보면 더 이쁘다. 눈이 휭하고 돌아간다. 예외없이 가혹하게 예쁘다. 남자 아이돌도 얼굴이 너무 잘났다. 장동건, 배용준을 봤을 때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인간이 아니다. 70m 거리에서도 화려하게 빛을 발하며 걸어오더라. 후광이 비칠 정도다. 배용준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쫙 뻗었다. 흠 잡을데가 없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외모다. 그렇게 잘 났다.

 

< B급 가수 싸이의 반란.... >

잘난 그 많은 가수들을 제치고 세계무대는 못생긴 ‘싸이’ 가 접수했다.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빌보드차트에 올려놨다. 2위까지 7주간 지켰다. 지금 같으면 1위다. 그때는 유튜브 조회수를 참고하지 않았다.

 

한 기자회견장에서 놀라운 장면을 연출한다. 한기자가 ‘묻겠습니다. 미국시장에서 먹힌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제가 B급이다’ 라고 했다. 갑자기 싸해졌다. ‘그럼 기자분들은 절 C급이라 생각하시나요?’ 라고 긴장감을 유머로 반전 시켰다. ‘광대 같고 삐에로 같으니까, B급 스타일이기 때문에 통했다’ 고 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말을 듣고 눈물이 와르르 쏱아졌다. 그렇게 맹렬히 춤을 추는데 싸이는 살도 빠지지 않는다. 실물은 봐줄만 한데 화면에서는 조폭같이 나온다.

 

한라그룹 강의에 회장님이 참석해서 한 이야기다. 강남스타일이 뜨기전 싸이가 참여하는 행사를 잡았는데 강남스타일로 대박을 쳐 못오겠구나 했는데 그가 약속을 지켰다. 동시에 인터뷰가 진행됐는데 첫 번째, 말이 너무 이쁘다. 기자들의 질문에 ‘월드스타라 부르기 전에 국제가수라 하시고요. 그전에 전 쌍둥이 딸을 가진 뚱뚱한 아빠예요’라고 했다. 이렇게 겸손하다. 많은 사람들이 재능도 없고 더구나 겸손하지도 않다.

 

우리나라에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언론과 검찰이다. 언론은 정말 자정을 해야 한다. 나도 기자출신이지만 어떻게 사람에게 ‘엽기 가수’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가! 오만방자해서 그렇다. 그러나 B급 싸이는 부자이고 아버지, 어머니가 경기고 나온 수재집안이다. 싸이 어머니가 양희은과 고교 동기동창이다. 서울대보다 더 높이쳐주는 경기고와 경기여고의 만남이다. 그러나 싸이는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졸업장 못 받아 최종학력은 고졸이다. 싸이를 좋아하는 여자를 본적이 없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좋아한다. 그 선택에 감동한다. 세계적 선택 아닌가!

 

< B급 천재들 .... >

과연 B급이란 무엇인가? 신중현 선생은 키가 157cm이다. 학력은 중졸이다. 가난하고 잘 생기지도 않았다. 이런 사실만 보면 B급이 아니라 C급이다. 그러나 신중현이 등장하면서 60년대 우리 대중음악이 바뀐다. 이미자, 나훈아, 남진 등의 노래는 명곡이지만 뽕작인데 1963년 신중현은 밴드를 구성하고 새로운 음악세계를 펼쳤다. 그의 대표곡 ‘미인’을 보자. 일렉트릭 기타로 한국적, 동양적 느낌을 주기 위해 가야금, 거문고를 뜯듯이 땅다아당~ 땅따당따다당~ 따다당땅땅~ 따다당땅땅... 으로 연주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천재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스펙을 따지고 있다.

 

심수봉이 10.26 시해사건에서 병풍뒤에서 노래불렀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못생겼다는 의미다. 이 소문이 사실인지 너무 궁금했다. 음악평론가가 되면 꼭 물어보겠다고 생각했다. 2001년 누나동생 하는 사이로 친해지고 나서 역사를 기록한다는 용기로 물었다. 첨으로 욕 비슷하게 말씀하신다. ‘내가 지금도 소문낸 사람 찾고 있다. 대통령 바로 앞에서 노래 불렀다’ 고 했다.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낸 허구였다. 누가 심수봉을 B급이라고 하나? 유명한 곡은 모두 심수봉이 직접 썼다.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고‘  ’사랑밖에 난 몰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서러운 세월만큼 안아주세요’ 어린 처자가 써낼수 있는 노랫말이 아니다. 그녀는 천재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기점으로 꼰대세대를 구분 할수 있다. ‘72년생이니까 지금 40살이 훨씬 넘었다. ‘난 알아요’ 를 모르면 간첩이다. 서태지는 락음악, 일본음악에 심취하다 공고에 들어갔다 중퇴를 한다. 최종학력은 중졸인 셈이다. 그러나 그의 곡들을 보자. 그 노래들이 어디 중졸의 작품인가?

 

내가 한때 음반제작에 손을 댔다가 쫄딱 망했다. 그래서 음반제작자로 내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다. 음반제작의 빚을 갚게 해준 고마운 친구들인 아카펠라 6인조 그룹 ‘인공위성’이 있는데 이들 모두 서울대 학생이었고 경제학과, 법학 등 학과도 쟁쟁했다.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청앞 지하철역에서’ 등의 알려진 노래가 있다. 그 스팩좋은 인공위성 아이들도 인정하는 서태지다.

 

< 마무리말.... >

사람은 모름지기 재능과 함께 겸손의 미덕을 가져야 한다. 사람 인격이 B급이면 안된다. 성공보다는 행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나이를 먹었어도 가끔 영화도 보고, 새로운 음악도 들으며 아랫사람과 소통하고 접점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외롭지 않다. 대중들은 익숙함을 좋아해 주구장창 듣던 장르의 음악만 듣는 경향이 있다. 요즘 노래를 찾아서 들어보자. 문화적 감수성이 없으면 살아있는 시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건강을 챙기자. 그래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Posted by KIST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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