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필자가 파인만 알고리즘을 설명하면서 단계 1 ‘문제를 쓴다’를 제치고 단계 2 ‘열심히 생각한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했습니다. 이제는 미루어둔 단계 1 ‘문제를 쓴다’, 즉 연구주제 선정을 다룰 차례입니다.

 

[ 파인만 알고리즘 단계 : 1. 문제를 쓴다 ]

 

파인만 알고리즘을 다시 써 봅니다.
1. 문제를 쓴다. 2. 열심히 생각한다. 3. 답을 쓴다.
1. Write down the problem. 2. Think real hard. 3. Write down the solution.

그럼 단계 1 ‘문제를 쓴다’에서, ‘문제를 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독자들이 연구를 처음으로 하기 시작할 때, 직접 ‘문제를 쓴’ 기억이 있으신지요? 필자가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선배의 연구주제를 이어받아서 연구를 시작했으니까 직접 ‘문제를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그 선배가 ‘문제를 쓴’ 걸까요? 그 연구를 왜 하는지, 왜 중요한지에 대해 그 선배가 설명하기는 했지만, 선배도 그 주제에 대해 잘 아는 상태는 아니었던 기억으로 보면 ‘문제를 쓴’ 건 아마도 지도교수님이라고 추측됩니다. 초보 연구자로서는 연구 분야나 주제에 대해 아예 감도 없고, 도대체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알기 어렵지요. 그래서 석사는 물론, 박사과정까지도, 지도교수가 논문 주제를 던져주는(?)거겠지요. 하지만 주어진 문제에 대해 연구를 해서 결과가 좀 나오고, 초보 단계를 벗어나면,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싶어지게 됩니다. 박사과정이라면 그래도, 내 주제를, 내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욕심이 생길 겁니다. 하지만 연구에 대해 조금 감을 잡은 2-3년차라도, 문제를 정확히 ‘쓰는’ 이 1단계를 잘 하는 건 여전히 많이 어렵습니다. ‘문제를 쓴다’는 것은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해결해야 할, 풀어야 할 문제를 잘 정의한다는 말입니다.

 
[ 어떤 연구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연구의 시작입니다. ]

 

필자를 포함해서 연구자들은 대부분 연구 프로젝트를 따고(?)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를 합니다. 그런데 연구 프로젝트 선정과정에서는 제출된 제안서 또는 계획서를 심사합니다. 어떤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푼다는 계획을 계획서에 제시하고 그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받아야만 하지요. 그러니, 어떤 연구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연구를 시작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입니다. 현실적 측면에서는 ‘열심히 생각한다’에 비해서도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합니다. :) 그러니까 연구자는 본인의 연구분야에서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문제에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서 헛수고를 하고 있다(finding precise answers to the wrong questions)”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헛수고를 하는 것은 ‘문제를 쓰는’ 데 실수를 범하기 때문이지요. 잘못 파악해서 문제를 '만들어 내는' 상황이 되면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기 때문에 ‘문제를 쓰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


문제를 잘 쓰기 위해서 어떤 것이 문제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막막하지요? 그럼 필자가 연구하는 '바이오가스 정제법'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질문을 하겠습니다. '바이오가스 정제법'은 파인만 알고리즘 1단계에서 이야기하는 '문제'라고 하면 맞을까요? 아닌 것 같지요? ‘바이오가스 정제법’은 '연구 분야'이지, 풀어야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연구 분야라고 부르기에도 사실 범위가 너무 넓은 것 같네요. 그럼 범위를 조금 좁혀 볼까요? '바이오가스 중 실록산의 정제방법'은 어떤가요? 이건 '특허 제목' 정도? 하지만 연구 ‘문제’는 아직 아닙니다. 필자의 7월 27일자 칼럼 4. 실제 연구과정을 한번 따라가 봅니다에 '바이오가스 정제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문제들을 정리했습니다.


문제 1.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려면 화석연료 대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문제 2. 우리나라에 적합한 경제성 있는 신재생에너지 대안이 없다.
문제 3. 가스터빈 발전도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문제가 있다.
문제 4. 바이오가스는 발열량이 낮고 불순물 문제도 있다.
문제 5. 실록산 제거 흡착제의 경제성이 나쁘다.
문제 6. 흡착재생용 실리카 겔 흡착제는 재생온도가 너무 높다.


연구문제 1. 폐열로 재생이 가능한 흡착제를 개발해야 한다.
연구문제 2.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연구질문 1.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떤 현상에 의해 결정되는가?
연구질문 2. RPA의 실록산 흡착-탈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여기서 필자는 문제 1~6, 연구문제 1,2, 연구질문 1, 2라고 썼습니다. 이것들은 언뜻 보면 모두 ‘문제’의 형식인데 굳이 구별해서 쓴 이유는 무얼까요? 단계 1에서 말하는 '문제'는 이 중에서 어떤 것일까요?


[ 문제인가, 질문인가? ]

 

연구에서는 문제와 질문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여기서 복잡하게 문제, 연구문제, 연구질문 이라는 용어를 쓴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문제→생각한다→답(Problem→Think→Solution)에서 단계 1에서 다루는 것이 ‘문제’일까요? 학교에서는 기말고사 등 시험을 많이 치는데, 시험 ‘문제’는 ‘문제’, 즉 영어로 problem일까요? 시험에서는 ‘문제’를 잘 풀어서 답(answer)을 씁니다. 맞지요? 그렇다면 시험 '문제'의 번역으로는 answer의 짝인 question(질문)이 더 맞겠네요. 이에 반해서 문제(problem)의 짝은 해법, 해결책이라고 번역하는 solution이 맞구요. 현실에서는 이 둘을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으니 엄밀하게 나누는건 어렵습니다. 또 용어가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는 문제와 질문을 구분하고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설명한대로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 문제이고, 답이 필요한 것은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자의 ‘연구수행전략’ 수업에서는 약간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문제와 질문을 확실하게 나눕니다.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연구개발의 목적으로 설정하는 반면에, ‘해결책’을 위해 필요한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을 잘 써서, ‘답’을 찾는 것을 연구 목표로 정하도록 합니다.


[ 연구를 위한 문제와 질문의 예시 ]

 

말로 설명하는 걸로는 이해가 쉽지 않지요? 앞에서 적은 문제와 질문을 예시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에너지원으로, 경제성 있는 신재생에너지인 바이오가스가 제시됩니다. 그런데 바이오가스가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바이오가스의 낮은 발열량과, 함유되어 있는 실록산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흡착재생용 실록산 흡착제, 즉 낮은 온도의 폐열로 재생이 가능한 경제적인 흡착제를  개발해야 합니다. ‘낮은 온도의 폐열로 재생-탈착이 가능한 경제적인 실록산 흡착제’라는 필자의 ‘연구 문제’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많은 ‘문제-해결책’ 단계를 거치지만, 아직 실제 연구에 도달한 건 아닙니다. 필자는 ‘연구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질문’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그 ‘답’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질문 1.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연구질문 2.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떤 현상으로 결정되는가?
연구질문 3. RPA 표면에서 실록산 흡착-탈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좋은 문제, 좋은 질문 ]


필자의 수업에서는 문제 1~6을 practical problems 즉 실제 문제라는 표현을 씁니다. 실제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진짜 해결해야 하는 좋은 연구 문제가 나옵니다. 그리고 ‘실제 문제’는 실제로 문제라야 합니다. 연구자들은 본인들이 하고 있는 연구 문제가 진짜 중요한 ‘문제’라고 모두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문제는 문제가 아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연구를 하기 때문에 그냥 그것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꼭 해결해야만 하는’ 심각한 문제도, ‘세상을 바꿀만한’ 해결책이 필요한 것도 아닌거지요. 그런 문제를 연구하겠다는 계획서를 냈는데 그 프로젝트를 선정해서 연구비를 주면 프로젝트 지원기관의 입장에서 큰 실수겠지요.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연구자들이 실제 문제가 아닌 문제를 문제라고 착각하고 연구를 하는 겁니다. 시간을 많이 들이고 열정을 가지고 연구를 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문제’에 대해 ‘정확한 답’을 찾는 연구라면 헛수고지요. 실제 문제가 아니라도 연구를 하면 논문을 쓸 정도는 됩니다. 하지만 이건 실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논문을 한 편 쓴 것이고, 당연히 좋은 논문도 아닐 겁니다. 논문이 좋은 논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문제를 쓰는게 꼭 필요합니다.


문제의 유형: 발생형과 설정형 ]


필자가 제시한 문제를 다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온난화 문제, 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화석연료 대체에너지원을 개발하는 문제, 우리나라에는 경제적인 신재생에너지의 생산조건이 좋지 않다는 문제, 대안인 가스터빈 발전도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문제, 바이오가스의 낮은 발열량과 불순물 문제, 실록산 제거의 경제성 문제, 실리카 겔 흡착제의 재생온도가 높다는 문제, 엔진 폐열로 재생하는 흡착제를 개발하는 문제. 이 중에는 모두들 ‘아 그건 정말 문제다’라고 공감할 문제와 ‘그것도 문제인가? 이해가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문제의 유형에는 ‘발생형’ 문제와  ‘설정형’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라도 문제라고 인정할, 이미 발생한 ‘발생형’ 문제와, 입장에 따라서 문제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설정형’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발생형 문제'가 공통적으로 인정받는 문제라면, '설정형 문제'는 '바람직한 상태'를 설정하고 그 상태에 비교해서 현재 상태가 문제라는 걸 이유를 제시해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연구자 본인이 지도교수님, 박사님을 설득해야 하면 ‘설정형 문제’입니다. 설정형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게 공감을 끌어 내야하니 이것이 당연히 어렵지요. 또한 설정형 문제의 대상인 ‘바람직한 상태’라는 것이 어떤 상태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렵고, 각자 미래의 상황을 어떻게 예상하는가에 따라서 결론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론: ‘질문’을 잘 쓰자. ]


이제 칼럼의 결론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꼭 해결해야만 하는’ 심각한 문제를 대상으로 삼고, ‘세상을 바꿀만한’ 해결책을 답으로 쓰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결책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적절한 ‘연구 질문’을 설정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다시 필자의 예를 든다면, 기술개발의 영역인 ‘바이오가스의 재생가능 흡착제’의 개발 연구문제에서 시작되었지만, ‘질문’은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떤 현상에 의해 결정되는가?’ 또는 ‘흡착소재의 실록산 흡착-탈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하는 과학 연구의 영역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실록산의 흡착-탈착 메카니즘을 과학적으로 밝혀낸다면, 원하는 흡착-재생온도와 흡착량을 가지는 실록산 흡착소재를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뛰어난 연구자들을 만나보고 느낀 점은 연구만 많이 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꼭 풀어야 하는 문제를 잘 제시하고 그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연구에 집중해서 답을 찾아내고 그 문제와 답을 잘 설명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칼럼을 읽은 독자 여러분들도 연구도 연구 잘 하는 법 공부도 많이 하셔서, 모두 뛰어난 연구자가 꼭 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칼럼까지 안녕히 ~~

 

2017.09.11 [Dr.Jung's R&D Clinic] 5. 파인만 알고리즘

2017.07.27 [Dr.Jung's R&D Clinic] 4. 실제 연구과정을 한번 따라가 봅시다.

2017.07.10 [Dr.Jung's R&D Clinic] 3. 에디슨처럼 연구한다’는 말은 칭찬?
2017.06.09 [Dr.Jung's R&D Clinic] 2. 칼럼 제목이 Dr.정's R&D 클리닉?
2017.05.25 [Dr.Jung's R&D Clinic] 1. 연구란 무엇인가?

 

Posted by KIST PR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고슐랭 2017.11.14 1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엇이 '정말' '문제' 인지는 그냥 지금 제 생활속에서도 중요한거 같습니다.

  2. 이승은 2017.11.14 2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가 있는 문제를 잘 찾아서 유용한 해결책을 제시하는건 좋은 논문의 필수이며 가장 기초적인 단계임을 알았습니다. 문제를 잘 인지하는것어 더 시간을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글 참 감사합니다~

  3. 김영민 2017.11.15 1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구를 위한 첫 스텝이 중요하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파인만 알고리즘 ]
한 번 더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 프로세스를 더 간단하게 쓸 수는 없을까요?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3단계 프로세스는 어떠신가요?
1. 문제를 쓴다. 2. 열심히 생각한다. 3. 답을 쓴다.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Write down the problem. 2. Think real hard. 3. Write down the solution.
문제를 쓰고, 생각하고 답을 쓰는 3단계... 간단해 보이시나요? ^^

 

이 3단계 문제해결 방법은 필자의 창작물은 물론 아닙니다. 파인만 문제해결 알고리즘(The Feynman Problem-Solving Algorithm), 약칭 '파인만 알고리즘'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노벨상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이름을 들어보셨지요? 그의 이름이 붙어있는 이 '파인만 알고리즘'은 파인만이 근무하던 칼텍의 라이벌 물리학자인 겔만과의 에피소드가 있답니다. 평소 파인만의 직관적 문제해결법을 좋아하지 않았던 꼼꼼한 성격의 겔만이 인터뷰를 하면서 이 말을 했다고 하는군요. 파인만을 까려는(?) 의도였나본데, 오히려 그 덕분에 파인만이 더 유명해 진건가요. 물론 두 분 모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훌륭한 연구자들입니다. 파인만 알고리즘에서는 지극히 복잡한 연구 과정을 문제-생각-답이란 3단계로 너무 단순화(?)시킨 거 같아서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알고리즘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가 앞서 제안한 9단계 연구과정과도 맥락이 잘 연결됩니다.


[ 실제 연구와 파인만 알고리즘 ]
그럼 이 3단계 파인만 알고리즘을 실제 연구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진행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첫 번째 단계는 '1. 문제를 쓴다.'입니다. 연구의 처음 단계에서 어떤 연구를 할지를 결정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연구실에서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 보통은, 어떤 연구를 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연구 주제는 이미 그 연구실의 프로젝트 또는 현재까지 해온 연구주제와 관련되어 결정되어 있거나, 지도박사님, 교수님이 하라고 주시는 주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요? 필자의 경우도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 2년차 올라가면서 바로 윗기 선배의 연구주제를 이어받아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연구를 왜 하는지, 이 주제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듣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는 역시 뭐가 뭔지 어리버리 잘 모르는 상태였던 것 같네요. 그저 교수님이 원하는 멋진 결과를 만들어보려고 열심히 방법을 찾아 헤맸던 기억이 ㅠㅠ 교수님이 연구주제를 주시지 않아서 연구주제를 본인이 생각해서 가져가야 하는 행운(?)을 받은 분이 있으신가요? 이 경우에도 연구실 선배들이 했던 주제와 유사한 문제를 안전하게 택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다면 첫 단계인 주제 선정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는 대신 연구수행에 직접 관련이 있는 단계 2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 단계 2. 진짜 열심히 생각한다. ]
지금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면 이 '열심히 생각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중요한 걸까요? 하지만, ‘해결책’을 찾아내는 방법 중에 '열심히 생각'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 걸까요? '아는 사람에게 답을 물어 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 그건 연구를 '스스로' 수행해야 하는 거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럼 우리가 하는 실제 연구에서는 '열심히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요? 이론물리학 분야 연구를 한 파인만에게는 '열심히 생각'하면 답을 얻는 것이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험 연구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생각'하는 걸로 좋은 결과가 나올까요? 필자가 앞에 쓴 9개의 스텝과 연관해서는, 이 '열심히 생각'하는 단계가 '문제'와 '답' 사이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음의 5~7 스텝이 됩니다.  즉 '가설이 맞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하는 단계에 ‘열심히 생각한다’가 해당합니다.
 5. 가설과 이유를 준비한다.
 6. 실험을 통해 근거를 제시한다.
 7. 5번-6번을 반복한다.

여러 문헌들을 참고해서 '가설이 맞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하는 5-6번 스텝을 좀더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5. 가설을 제안한다. (Articulating hypotheses)
6-1. 가설 입증에 필요한 연구를 설계한다. (Determining what will be studied)
6-2. 가설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설정한다. (Identifying variables)
6-3. 적절한 실험 방법을 선택한다. (Choosing appropriate research methodology)
6-4. 실험에서 도출된 결과를 분석, 해석한다. (Collect Data -> Analyse Data)
여기서 '가설'은 연구 '질문'에 대한 잠정적인 답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설'을 잠정적으로 세우고 이것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 결국 연구과정의 중심이 됩니다. 가설을 입증하려면 필요한 실험을 해서  결과를 제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요. 그러다 보니까 이 과정에서 ‘가설’을 ‘충분히 열심히 생각’하지 않으면, 자칫하면 에디슨 방법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열심히 실험을 하다가, 원하는,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하다가 ㅠㅠ
(꼭 나와야만 하는 '좋은' 결과, 교수님이 좋아하실 만한 결과를 내야하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할 수는 있겠네요. 하지만 연구 주제를 고민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데서 근본적 한계가 오는 것은 아닐까요?)


[ 진짜 '열심히 생각'하면 잘 될까? ]
이 시점에서 에디슨 방식 연구의 함정을 피하기 위한 ‘팁’을 하나 드릴까요?

팁, 그것은 '열심히 생각하라.' 입니다.

"뭐라구요???"
"네. '열심히 생각'하는 것이 답이랍니다."

즉, 연구의 '가설'을 세울 때부터 미리, 그 가설이 맞을 수 밖에 없는 이론적인 '이유'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필자가 쓴 5번은 ‘가설과 이유를 준비한다’인데, 문헌에 나오는 5번, ‘가설을 제안한다’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이유'라는 부분을 추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열심히 생각'하는 부분이지요. 많이들 경험하시는 일이지만, 실험이 실패한, 즉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근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상식적인 범위에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했는데 결과가 예상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비슷한 다른 실험을, 또 시도하는 거지요. 실패한 '이유'는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채로 .. 이것이 바로 '경험주의적 시행착오', 즉 에디슨 방법의 연구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러면서 점점 빠져나오기 어려운 막다른 골목으로 .. 여기서 이와상황에 맞는 것 같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명언을 소개합니다. "미친 짓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을 말한다." 하하하~~
(유사 버전으로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정신병자이다."도 있습니다. 필자는 이게 아인슈타인의 말이라고 들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확인해 보니 그가 이 말을 했다는 증거가 없답니다. 마크 트웨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했다는 설도 사실이 아니라고 하구요. 1983년 미국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이 쓴 'Sudden Death'가 출처라고는 하는데, 그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사람들은 있었답니다.)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무엇을 인용해야 할 때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긴 건 좋은 것 같습니다. 글은 오래 남으니까요 ^^)


[ 가설의 ‘이유’와 확증편향에 의한 실패 ]
이제 필자가 연구과정에서 ‘열심히 생각하지 않아서’ 범했던 실패를 하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바이오가스 중 실록산을 제거하는 연구의 에피소드입니다만, 가설과 ‘이유’의 중요성에 대해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 해서 적어 봅니다.


지난 번 칼럼에서 썼던 대로 필자는 실록산을 제거하는 재생가능한 흡착제인 RPA 물질로 실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당초 예상한 가설은 '이 물질이 상온에서 실록산을 흡착하고 60도 정도에서 탈착을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 가설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 물질이 '극성 분자'인 수증기를 잘 흡착하는 특성이 있으니까, ‘극성 분자’인 실록산을 잘 흡착할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필자나 연구를 하고 있던 박사과정 학생 모두 그 이유에 대해 오래 깊이 생각을 해 본 건 아니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실제 실험에서도 당초 예상했던 대로 ‘상온 흡착, 60도 탈착’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상온 흡착, 60도 탈착’의 이유인 ‘극성분자 흡착’이 옳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실록산 중에는 '극성분자' 아닌' 실록산이 있고, 이 '극성분자 아닌' 실록산의 흡착 성능도 실험에서 큰 차이가 없었는데 그 ‘극성분자 흡착’ 가설이 틀렸다는 생각을 못한 거지요.
(이렇게 스스로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이라고 합니다. 연구를 하다가 이렇게 뭔가 결과가 좀 좋게 나오면 이 확증편향 경향이 특히 강해집니다. 그때문에,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상당히 큰 지장을 주기도 합니다.)

필자도 연구팀도 그런 확증편향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이미 벤치스케일 규모 실험으로 확장하는 연구 준비를 하고 있었던 상황인데, 이 물질의 흡착온도 작동범위가 좁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받은 것입니다.

 
[ ‘이유’를 진짜 '열심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즉 실록산 흡착-재생처리 시스템의 흡착-탈착 작동온도를 높이려면, 연구 중이던 RPA 물질의 흡착-탈착온도를 높일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고, 그게 잘 안되면 완전히 새로 흡착온도가 높은 소재를 찾아야 하는 심각한 문제 상황이 된 거지요. 더구나 흡착온도와 소재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새 소재를 찾는 문제야말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주간 ‘진짜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박사과정 학생도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겠지만, 필자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참고논문을 찾아 읽어 보고, 실제 소재 표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진짜 열심히 생각’한 후에야, 실록산의 흡착과 탈착과정에서 흡착제와 실록산 사이에 어떤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는 지 어렴풋이 떠올랐고, 이것을 가설로 삼아서 연구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세운 새로운 가설은 “흡착제 표면의 ‘수산화기(OH)’가 실제 흡착-탈착과정에서 특성을 결정한다.”이고, 그 ‘이유’는 조금 전문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흡착제 표면의 ‘수산화기(OH)’와 실록산 표면구조에 있는 ‘산소’ 사이에 형성되는 수소결합에 의해 적절한 정도의 인력이 생겨서 흡착-탈착이 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다행히 이 새 가설을 바탕으로 흡착온도가 적절히 높은(?) 새로운 흡착물질을 찾을 수 있었고, 연구를 계속 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처음 실험을 하기 전무터 가설(수증기를 잘 흡착하고 탈착하는 특성이 있는 RPA 물질이 실록산을 잘 흡착-탈착할 것이다)의 이유를 더 깊이 생각했다면, 아마도 이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 늦긴 했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함으로써 결과를 얻게 된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이유’를 ‘깊이=열심히’ 생각하는 Five Why ]
최근에 필자가 읽은 ‘일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내용이 연구방법론을 강의하고 있는 필자에게 꽤 와 닿았습니다. ‘열심히 생각’하는 것과 관련되는 대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도요타자동차에는 '왜왜 다섯 번'이라는 말이 있다. '왜'를 다섯 번 반복하면서 '깊이' 파고들어야 비로소 근본원인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5'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를 한두 번만 생각해서는 표면적인 원인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태의 본질에 다가간다는 의미를 담아 '왜왜 다섯 번'이라고 표현하는 듯하다.”
‘다카다 다카히사’라는 일본 저자가 쓴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연구자들의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할 만한 내용 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쓰는 칼럼에서도 중간중간 소개할 생각입니다. 도요타의 ‘Five Why’ 기법은 표면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아닌 진정한 원인을 찾아내는 기법으로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 있는 내용은 아닌데, 필자의 흥미를 끄는 예시가 ‘제퍼슨 기념관’ 이야기입니다.


한 때 미국의 워싱턴 주에 있는 제퍼슨 기념관은 돌로 된 기념관의 벽이 심하게 부식되고 있어서 유지보수작업이 불가피하게 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방문객들은 기념관에 대한 관리가 부실하여 훼손된 것이라며 불만을 터트렸고 기념관의 이미지는 악화되었습니다. 또한 보수작업 요원들은 청결 유지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었고 그만큼 비용도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었지요. 제퍼슨 기념관은 이 문제를 '5 Why'를 통해 해결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문제의 원인 또는 이유를 단계적으로 조금 더 ‘깊이’ 생각하는 5 Why 기법을 적용함으로써 근본원인을 찾아낸 잘 알려진 예시입니다. 제퍼슨기념관의 대리석 벽이 심하게 부식되고 있다는 문제에 대해 직원들 퇴근을 늦게 하도록 한다는 해결책은 말이 안 됩니다만 ㅠㅠ


[ 결론: 가설의 ‘이유’를 ‘미리 깊이’ 생각한다 ]
'가설'을 세울 때 미리 이론적인 '이유'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는 것이 좋은 또 다른 점은, 실험을 계획할 때부터 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어떤 실험이 좋은지, 어떤 실험조건을 변수로 삼아야 하는지 등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그렇게 ‘미리’ ‘깊이’ ‘이유’를 생각함으로써 에디슨 방법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피하고, 실험의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기쁨은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럼 다음 칼럼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

 

2017.07.27 [Dr.Jung's R&D Clinic] 4. 실제 연구과정을 한번 따라가 봅시다.

2017.07.10 [Dr.Jung's R&D Clinic] 3. 에디슨처럼 연구한다’는 말은 칭찬?
2017.06.09 [Dr.Jung's R&D Clinic] 2. 칼럼 제목이 Dr.정's R&D 클리닉?
2017.05.25 [Dr.Jung's R&D Clinic] 1. 연구란 무엇인가?

 

 

Posted by KIST PR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필자 2017.09.12 1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플방지위원회 활동의 일환으로 ㅎㅎ 셀프 댓글을 올려봅니다 ^^

  2. minsu 2017.09.12 1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에 나오는 확증편향이라는 단어에서 진행해오던 연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결과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에 대한 결과를 믿음으로서 그 결과로만 연구를 바라봤던 과정들을 돌이켜 볼수 있는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3. HDJung 2017.09.12 1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깊이 생각하는 부분을 잘읽었습니다. 평소에 쉽게 깊게 고찰하고 생각하는게 어렵지만. 연구때 만큼은 그럴수있도록 노력해야겟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칼럼 읽었습니다.

  4. BlogIcon 늘봄 2017.10.13 0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퍼슨 기념관의 five why 기법이 정말 기가 막히네요-
    대리석 전용 세척세제를 알았다면 1st why에서 끝났을수 있었을테고 혹은 5th why에서 자동 점화 회로를 설계할줄 알았다면 직원들의 야근이라는 비극을 막을수 있었을텐데요-

    누군가의 야근으로 이루어진 과학기술의 발전이 또 다른 누군가의 야근을 막을수 있다니- 참 아이라니한 세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