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방기술 혁신 열쇠 '공동·융합 R&D'

 

이성호 박사

1970년대 우리나라 무기 개발은 온전히 미국에 의존했다. 우리나라는 재래식 무기 개발을 위해 미국 라이선스를 구매했다. 한국 국방 규격은 미국 국방 규격(MIL-spec)을 그대로 번역해 제정했다. 미국 규격에 따라 우리나라 무기를 생산한 것이다. 이 방법으로 군수품을 제조하는 경우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원료를 기반으로 제조해야 한다. 이에 따라서 수류탄의 폭발 지연 시간 조절을 위해 사용되는 간단한 점토도 다른 나라 원료를 사용하면서 성능이 저하되는 등 많은 문제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선진국 기술 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무기 개발에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국방 무기는 일반 소비 제품과 다르게 적용 분야 특성상 사람에게 위험한 제품이 많다. 이 때문에 제품 개발 단계가 매우 복잡하고, 저장 환경 시험을 거쳐야 한다. 실제 군에 적용하려면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더욱이 개발 자체가 군사기밀인 경우가 많아 진행 과정 공개가 불가능하다. 2000년대 들어 국내 기술로 개발된 다양한 무기 체계가 선보여 실전 배치되고 있지만 여전히 선진국 기초 기술에 기반을 둔 것임에는 부인하기 어렵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국방 분야 연구개발(R&D)의 세계 추세를 눈여겨봐야 한다. 선진국 국방 R&D는 대부분 민간 산업체, 대학교, 연구소와 함께 진행된다. 미국은 국가연구비 예산의 절반을 국방 분야에 사용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미래 지향 국가 프로젝트는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기획하고 집행한다. DARPA는 산·학·연 연계 혁신형 프로젝트를 추진해 민간 분야로 기술을 확산했고, 오늘날 혁신 연구 요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DARPA는 초기에 군의 수요에 맞는 기술 개발에 중점을 뒀다. 이후 기초 과학 중심으로 과제를 기획했다. 또 기업과 대학의 야심에 찬 R&D를 지원했다. 연구 결과는 민간 분야까지 확산 적용했다. 이런 노력으로 1970년대 인터넷을 포함한 개인 컴퓨터 시대를 이룩했고, 2000년대 들어와 자율주행과 로봇 사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국방 혁신의 핵심 기술에서 '복합 소재'를 빼놓을 수 없다.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은 머리카락 굵기 10만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철보다 200배나 강하다. 이것으로 반도체 소자를 만들면 무기의 초경량화가 가능하다. 또 질화붕소나노튜브(BNNT)로 방호복을 만들면 한 장의 얇은 직물 형태 섬유로도 방사선을 막을 수 있다. 이렇듯 국방 기술 혁신은 복합 소재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북한의 핵무기 폐기가 언급되는 상황에서 복합 소재 사용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있다. 복합 소재는 전략 물자이면서 경량 소재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현재 초경량 자전거, 낚싯대 등 스포츠용품부터 전기자동차 내장재·구조재로 쓰인다. 일본은 건물의 내진 보강재로도 사용한다. 웨어러블 기기, 스마트 로봇, 항공·우주 분야 등 복합 소재 활용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국방 R&D 분야의 산·학·연 연계가 미흡하다. 공동·융합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지적이 많다. 융합을 통한 노력 없이는 창의성이 뛰어난 기술 개발에 요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주지하고 민간과 군 협력을 통한 R&D 사업 촉진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소재 개발은 국방 분야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 변화를 선도할 핵심 기술이다. 이에 따라서 복합 소재 연구는 미래 첨단 소재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한다. 앞으로도 지원과 투자가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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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성장, 융합으로 시작하자

 

세렌디피티(serendipity)! 위대한 발견은 우연히 일어난다고 했는가. 실상은 끊임없는 노력과 준비, 고민을 딛고 나타난 필연이 우연이라는 기회를 만난 것이다. 우리 삶과 깊이 관련된 기술 가운데 우연히 얻는 기술은 거의 없다. 클릭 한 번으로 원고를 보낼 수 있는 인터넷은 냉전 시절에 핵 공격으로 인한 통신망 손상을 대비해 만들어졌다. 통신망과 정보를 유지하는 분산 시스템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작된 미국 고등연구계획국(ARPA·지금의 DARPA)의 연구 결과물이다. 국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아이디어는 내비게이션, 음성 인식, 무인 자동차, 원격 수술 로봇 등으로 나타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들 기술의 편의성을 누리며 살고 있다. 위대한 기술 진보는 운 좋게 나오는 게 아니다. 창의 아이디어로 출발, 다양한 연구자의 도전과 연구개발(R&D) 체계가 합작해서 만들어졌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연상되는 키워드가 바로 '융합'이다. 디지털로 대표되는 가상과 현실이 서로 섞여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만들어진다. 가상현실(AR)·증강현실(VR) 게임, 콜택시, 배달, 자동차 렌트, 부동산 중개, 은행 거래 등 온·오프라인연계(O2O) 서비스를 대표로 들 수 있다. 기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융합한다. 우리 정부가 융합 연구에 관심을 두고 지원한 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그동안 정책은 이종 기술 간 융합으로 기술의 한계 극복에 집중됐다. 유망 융합 기술을 발굴, 신성장 분야의 기술 경쟁력 확보에 일정 수준의 성과가 있었다. 다만 기술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성과를 국민이 체감하기에는 어려웠다. 기술 간 융합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도 등장, 새로운 이종 분야와의 융합이 필요해졌다.

 

최근에는 이런 변화를 반영해 사회 수요에 기반을 둔 문제 해결 중심 융합 연구, 초학제 융합 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전통문화 연구처럼 과거 문화와 현재 기술을 융합하는 '시간 융합'이 있다. 인문 사회가 문제를 발굴·기획하고 과학 기술로 해법을 제시하는 융합도 있다. 융합형 인재 양성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일부 초·중·고등학교에서 STEAM(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 융합 교육이 시도됐다. 많은 대학원이 융합 커리큘럼을 마련, 전문대학원을 설립했다. 문제 해결 방안 모색과 기술 한계 극복에는 지식, 언어, 문화가 다양한 연구자 간 협력은 필수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융합하고 소통하려면 같은 분야의 협력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도전을 격려하고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리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연구자도 실험실의 결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식과 성과를 사회에 전파하고 가치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융합의 최종 목표는 기술 한계를 극복하고, 그 기술을 사회와 인간의 연결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가 성공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은 이미 선진국이 제시한 답에 있었다. 이 때문에 그 길을 단시간에 효과 높게 되짚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의 R&D 수준과 역량은 이제 이 단계를 넘어야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탐색해야 한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발견과 혁신에는 확신 대신 확률이 존재한다. 가능성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를 탄탄하게 기획하고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그다음에 두텁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방향 전환을 위해 융합에 대한 기본 정책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 정책을 통해 기술이 진보하고 융합의 저변이 확대됐다면 이제는 융합 연구의 성과를 사회에 적용하고,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는 데 쓸 수 있도록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과학 기술에서 우연은 철저히 준비된 곳에서만 나타난다. 선진국의 연구자가 차지해 온 우연한 기회를 우리가 먼저 잡기 위해서는 융합에 대한 인식과 공감대를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을 시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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