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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에서 융합으로

 

올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한다. 각종 언론 매체는 관련 기사를 봇물 터지듯 쏟아내고 있고 강연과 세미나는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인류 최후의 미지의 영역인 뇌과학 또한 인공지능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그것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뇌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독일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바프는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이 창출한 디지털 세계와 기존의 물리적·생물학적 영역 사이에 경계를 허무는 기술 융합에 의해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융합’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융합은 물리적·화학적 결합을 의미하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나 문화 등이 교류하면서 시너지를 일으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을 일컫는 것이라는 데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는 현대 과학을 해결하고자 하는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다각도로 문제를 고찰하고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한 융합 연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융합 연구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실행되고 있고 그 결과 많은 융합 연구들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뇌과학 또한 생물의 신경계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던 생물학의 한 분야에서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물리학·수학·컴퓨터과학·공학 등 다양한 학문이 어우러진 다학제적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처럼 진리를 추구하고 인간에게 유용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기술과 지식의 융합은 단순히 학문적 차원에만 국한돼서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물론 특정 분야의 최첨단 기술과 최신 지식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연구자들 간의 효율적 협업 의지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시스템,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통합’의 문화가 없이는 우리가 원하는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를 하다 보면 세상에는 뛰어난 연구자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가 훌륭한 인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개별 연구자가 이룰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해졌고 세상을 바꿀 새로운 가치는 효율적인 협업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협력 연구와 데이터 공유를 통한 연구자, 학문 간의 융합을 가속화시키자는 ‘오픈 사이언스’ 프로젝트와 그것의 핵심요소인 ‘오픈 데이터’ 개념에 과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다양한 연구자들 간의 협력 연구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조만간 KIST 뇌과학연구소가 출범시킬 ‘이음(Euem)’ 프로젝트는 뇌신경망 시각화 핵심기술인 신경망지도 제작기술(mGRASP)을 전 세계 500여 연구자들에게 보급하고 각각의 연구자들이 생산해낸 방대한 데이터를 통합해 인간 뇌지도를 완성하고자 하는 것으로 오픈 데이터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오픈 사이언스 프로젝트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연구자들이 공유한 데이터들이 서로 연계되고 융합돼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표준화된 통합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오픈 데이터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 십분 발휘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연구자, 연구기관, 정부 부처 등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을 구성하는 주체들 또한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통합된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융합을 이뤄내기보다는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통합은 구성요소가 조화롭게 합쳐짐을 의미하는 것이지 각자의 특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통합이 자신들의 고유영역을 침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통합을 이뤄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각각의 주체가 보유하고 있는 고유한 특성은 유지하면서 조화롭게 개방형 공유를 실행하는 것이 통합의 시작이고 이러한 통합은 진정한 융합의 발판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승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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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

설립 착수보고회 개최  
KIST, VKIST와 상호협력을 위한 MoU 체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병권)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최성호 이사장 업무대행)은 베트남 과학기술부(Chu Ngoc Anh 장관)와 공동으로 2017년 11월 21일(화) 오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 설립지원사업” 착수보고회를 개최했다.
 * Vietnam-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21일 진행되는 착수보고회에는 이혁 주베트남 한국대사, Vu Duc Dam(부 득 담) 베트남 부총리, Chu Ngoc Anh(추 응옥 아인) 베트남 과학기술부 장관, 임태훈 KIST 부원장 등 양국 주요 인사 200여 명이 참석하였다. 1부 행사에서는 VKIST(원장 금동화) 착수발표와 KIST와 VKIST 양 기관 간 상호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식이 진행되었다. 2부에서는 베트남 1위 통신기업인 비엣텔(Viettel)과 제약회사 바비오텍(VABIOTECH)의 전문가 및 과학기술정책연구소(NISTPASS)** 소장 등 과학기술분야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베트남 IT, BT 분야에 대한 발표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 National Institute for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and Strategy Studies

 

동 행사에서 KIST는 지난 50년간 국내 16개 정부출연연구소들을 탄생시키고, 국가 과학기술을 견인하며 경제발전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VKIST가 국가 발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공유하였다. 특히, VKIST의 연구인력을 KIST에 초청하여 연구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와 공동연구를 위한 교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할 것을 알렸다.

임태훈 KIST 부원장은 “이번 착수보고회를 통해 KIST를 배우고자 하는 베트남 정부의 뜨거운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KIST는 지난 50년간 쌓아온 과학기술 역량과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VKIST가 베트남의 선진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연구소로서 국가발전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 사업은 지난 2012년 3월 Nguyen Tan Dung(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가 방한하여 우리 정부에 직접 요청하여 시작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KOICA의 무상원조 392억 원을 지원하여 베트남 하노이의 호아 락 하이테크 파크(Hoa Lac high-tech park)에 KIST를 모델로 한 종합연구소 설립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 2017년 5월 금동화 前 KIST 20대 원장이 VKIST의 초대원장으로 공식 임명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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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성장엔진 작동시키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이 지났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택하고 있는 현행 헌법 아래서는 대통령 취임 후 첫 6개월 동안의 국정운영 청사진에 따라 그 정부의 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임기 초에 발표한 새로운 정책들이 꾸준하게 지속되지 못하고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레임덕 현상과 맞물려 추진동력이 떨어지는 일이 반복돼 왔다. 지난 정부의 부패와 정책실패로 수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이러한 국민들의 적극적 정치 참여에 기반해 새로운 정권이 탄생한 만큼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100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70%대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지지율의 이면에서는 바쁘게 헤엄치고 있는 백조의 발과 같이 최근 북한의 핵무기 위협과 이와 관련된 미(美)·중(中) 간의 갈등 상황 하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이 보장된 균형 있는 외교, 안보 정책을 수립하고, 촛불집회에서 분출된 각계각층의 요구를 적절하게 수용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새 정부의 구상과 정책이 차근차근 진행되길 바란다.

 

작년 10월,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전, 유력 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2007년 참여정부시절 북한 인권안에 대한 UN표결 관련 의혹에 휩쓸려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 적이 있다. 이때 문재인 대통령의 출구전략은 정치적 공세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유력 야당 대선 후보로서 민생에 전념한다는 이른바 '민생투어'에 나섰다. 민생투어 기간 중 국가 성장동력 창출의 핵심인 과학기술계에 현안을 청취하고 과학기술자들과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해 필자가 근무하는 KIST에 방문했다. 당시 수행인원 1명만을 대동하고, 의전도 거절한 그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과학자들과 사전 각본 없는 편안한 대화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과거 참여정부 시절 잠시 설치됐다가 다음 정부에서 교육과 과학의 결합정책으로 사라진 과학기술혁신본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국내 과학계뿐만 아니라 OECD에서도 인정한 가장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국가 R&D 정책수립 및 시행의 핵심기관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KIST방문은 그 가치와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또한 과학기술혁신본부를 통해 과학기술 정책에 일대 대전환을 기대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는 우선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주무부처의 이름을 바꾸며 그 역할을 명확히 했다. 뒤이어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부활하면서 과학기술인들이 직접 국가 R&D예산의 자율적 기획, 집행, 평가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기존 예산 배분을 주도해왔던 기획재정부와 정부 내 유관 부처간의 조율이 남아 있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므로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자율권이 과학기술계에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제시하는 '선수심판론'은 과학기술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과학기술은 항공우주와 같은 거대과학이나 기초학문 연구에서부터 기업을 지원하는 상용화 연구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국가 R&D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데 비전문가인 관료집단보다는 과학기술자들이 적극 나서야 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특히 경제논리만으로 국가 과학기술을 논하는 것은 하나의 잣대로 무게, 부피, 질량, 길이 등 서로 다른 특성을 모두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과 같다. 이런 이유로 과학기술계에서는 과학기술혁신본부의 부활을 환영하고 있다. 그만큼 20조 원에 달하는 국가 R&D 예산을 기획하고 집행할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역할은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좋은 시스템의 구축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 일을 맡아서 수행할 사람들의 역량에 성패가 달려있다. 후보 개개인에 대한 비토가 아니라 국가적 운명이 달린 문제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국가 R&D 정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과학기술에 대한 깊은 식견과 자기 전공 이외에 다른 분야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전문성 그리고 각 전문분야 간 융합을 추진할 수 있는 정확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함께 일을 추진할 과학기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정책을 책임지는 자리인 만큼 정파와 계층과 이념을 떠나 진정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정확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새 정부의 국가과학기술에 대한 의지는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이 일을 맡길 것인가도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수장이 누가 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이 새로운 제도가 수립되고 나면 그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도의 근본적인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를 운영하고 이해하는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만큼 기성 인력보다는 젊은 인력들이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습득력이 보다 빠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술개발 주기가 빠른 신기술을 개발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대학원 학생, 박사후 과정 연구자 등 신진연구인력 양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관심에는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기술 분야를 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포함돼있다. 대학들이 인력양성을 담당하고는 있으나 대학에 개설된 세부 전공만으로는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국가 연구개발의 큰 축인 출연연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연구환경이 우수하므로 대학과 공동연구를 통해 학생들에게 대학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학문 또는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새 정부에서는 출연연에서 근무하는 학생연구원의 처우 개선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정부기관의 특성상 예산 총액이 정해져 있으므로 혹여나 더 많은 젊은 학생 연구자들에게 돌아갈 기회가 줄어들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다.

 

세계 각국은 과학기술분야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기술 중심의미래 사회에서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술 선진국과 후발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 지고 있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지구촌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회연결망(SNS),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를 이용해 스스로 학습하고 분류해 인간의 영역인 판단까지 가능한 인공지능 등 생소하던 기술들이 어느덧 익숙한 시대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이미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물결에 뒤처지면 우리의 미래도 담보하기 어렵다. 국가적 역량을 총 결집해 이 물결을 잘 헤쳐 나가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 우리에게 있다. 이 엄중한 시기에 새 정부와 과학기술혁신본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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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성장, 융합으로 시작하자

 

세렌디피티(serendipity)! 위대한 발견은 우연히 일어난다고 했는가. 실상은 끊임없는 노력과 준비, 고민을 딛고 나타난 필연이 우연이라는 기회를 만난 것이다. 우리 삶과 깊이 관련된 기술 가운데 우연히 얻는 기술은 거의 없다. 클릭 한 번으로 원고를 보낼 수 있는 인터넷은 냉전 시절에 핵 공격으로 인한 통신망 손상을 대비해 만들어졌다. 통신망과 정보를 유지하는 분산 시스템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작된 미국 고등연구계획국(ARPA·지금의 DARPA)의 연구 결과물이다. 국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아이디어는 내비게이션, 음성 인식, 무인 자동차, 원격 수술 로봇 등으로 나타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들 기술의 편의성을 누리며 살고 있다. 위대한 기술 진보는 운 좋게 나오는 게 아니다. 창의 아이디어로 출발, 다양한 연구자의 도전과 연구개발(R&D) 체계가 합작해서 만들어졌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연상되는 키워드가 바로 '융합'이다. 디지털로 대표되는 가상과 현실이 서로 섞여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만들어진다. 가상현실(AR)·증강현실(VR) 게임, 콜택시, 배달, 자동차 렌트, 부동산 중개, 은행 거래 등 온·오프라인연계(O2O) 서비스를 대표로 들 수 있다. 기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융합한다. 우리 정부가 융합 연구에 관심을 두고 지원한 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그동안 정책은 이종 기술 간 융합으로 기술의 한계 극복에 집중됐다. 유망 융합 기술을 발굴, 신성장 분야의 기술 경쟁력 확보에 일정 수준의 성과가 있었다. 다만 기술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성과를 국민이 체감하기에는 어려웠다. 기술 간 융합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도 등장, 새로운 이종 분야와의 융합이 필요해졌다.

 

최근에는 이런 변화를 반영해 사회 수요에 기반을 둔 문제 해결 중심 융합 연구, 초학제 융합 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전통문화 연구처럼 과거 문화와 현재 기술을 융합하는 '시간 융합'이 있다. 인문 사회가 문제를 발굴·기획하고 과학 기술로 해법을 제시하는 융합도 있다. 융합형 인재 양성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일부 초·중·고등학교에서 STEAM(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 융합 교육이 시도됐다. 많은 대학원이 융합 커리큘럼을 마련, 전문대학원을 설립했다. 문제 해결 방안 모색과 기술 한계 극복에는 지식, 언어, 문화가 다양한 연구자 간 협력은 필수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융합하고 소통하려면 같은 분야의 협력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도전을 격려하고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리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연구자도 실험실의 결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식과 성과를 사회에 전파하고 가치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융합의 최종 목표는 기술 한계를 극복하고, 그 기술을 사회와 인간의 연결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가 성공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은 이미 선진국이 제시한 답에 있었다. 이 때문에 그 길을 단시간에 효과 높게 되짚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의 R&D 수준과 역량은 이제 이 단계를 넘어야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탐색해야 한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발견과 혁신에는 확신 대신 확률이 존재한다. 가능성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를 탄탄하게 기획하고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그다음에 두텁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방향 전환을 위해 융합에 대한 기본 정책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 정책을 통해 기술이 진보하고 융합의 저변이 확대됐다면 이제는 융합 연구의 성과를 사회에 적용하고,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는 데 쓸 수 있도록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과학 기술에서 우연은 철저히 준비된 곳에서만 나타난다. 선진국의 연구자가 차지해 온 우연한 기회를 우리가 먼저 잡기 위해서는 융합에 대한 인식과 공감대를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을 시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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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퍼스트 무버'가 되는 길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정부 조직 개편, 내각 인선 등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해야 하는 사안이 많다. 작은 틀의 변화로 가까운 미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연 19조원 규모 정부 연구개발(R&D) 투자의 효과 높은 정책 수립, 집행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정부 조직 개편, 내각 인선 등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해야 하는 사안이 많다. 작은 틀의 변화로 가까운 미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연 19조원 규모 정부 연구개발(R&D) 투자의 효과 높은 정책 수립, 집행이다.

 

그동안 공공 R&D 성과 부진, 생산성 문제를 둘러싼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 원인으로 R&D 관리 소홀, 정량 평가 치중, 연구 수준 미흡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지금 같은 연구 기획, 과제 선정 방식으로는 기초 R&D 성과나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선도 국가(first mover)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첫째 연구 기획 방식이 변해야 한다. 기획이 미흡한 R&D 투자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부분 규모 있는 국가 R&D 기획은 정부 주도로 이뤄진다. 선진국에서 이미 연구 결과가 발표됐거나 상품화된 뒤에야 정부가 중요성을 인지하면 선도 국가가 되기 어렵다.

 

알파고 신드롬에 따른 인공지능(AI) R&D 기획, 포켓몬고 신드롬에 따른 증강현실(AR) R&D 기획이 대표 사례다. 정책 관료가 연구 현장과 동떨어진 채 몇몇 전문가에 의지하면 정책과 기획이 편향되기도 한다. 국가 전략 차원이 아닌 정치 성향을 띤 기획이 반복되면 과학기술 분야 선도 국가의 꿈은 더욱 멀어진다. 선도 국가 기회를 높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기획 단계에서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가 되는 것이다. 선진국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R&D를 기획한다. 이들 기획 자료를 정부와 산하 기관이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각 분야의 대표 학회가 세계 연구 동향 보고서를 정기 제출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책 관료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빠른 추종자가 되도록 지원할 수 있다. 과제 선정 절차도 개선해야 한다. 기초 연구 분야의 경우 연구자 경력별 투자는 있어도 학문별 투자는 거의 없다. 학문 내 경쟁을 통해 가장 우수한 연구 제안서를 선정하고 투자해야 성과가 나온다. 현재 구조를 지나치게 표현하면 사과와 오렌지 정도가 아니라 사과와 철근을 비교하는 수준이다. 과제 선정을 관장하는 책임자(PM, PD) 수는 턱없이 적다. 공정성을 이유로 우수 연구제안서 선정에 관여할 수 있는 역할도 극히 제한됐다. 한국연구재단 상임 PD는 20여명에 불과하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학문 분야별로 총 470여명의 상임 PD를 두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4배가 넘는 연구제안서 선정 심사를 주관한다.

 

연구 현장에서는 연구재단을 학문 분야별로 재구성, 분야별 묶음 예산을 배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상임 PD의 충원도 요구된다. 예산상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운동 경기에도 종목별 심판이 따로 있고, 정확한 판단이 전제된 경기 경험으로 우수 선수가 육성된다. 적정 수의 우수 심판관이 유지되도록 PM, PD 시스템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우수 제안서를 선정하려면 이들의 권한과 책임도 강화돼야 한다. 예산을 절감해야 할 곳은 따로 있다. 개별 부처마다 유지하는 연구 지원 시스템의 중복 분을 공동 활용해 보자. 부처마다 별도로 개발해서 연구자 사용을 의무화한 전자연구관리시스템도 통합할 필요가 있다.

 

공공 R&D 투자 예산이 지난 10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했다. 초기 과학기술부에 비하면 6배로 늘었다. 새 정부는 순수 기초 연구비를 2배 확대하고 연구자 주도의 자유 공모 비율을 20%에서 2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투자가 결실을 맺으려면 '선택과 집중'만이 아니라 연구 분야, 범위에 따라 다양한 정책이 가능한 '포트폴리오' 방식이 요구된다. 선진 연구관리·운영 체계를 갖춰서 유망 분야의 기획이 적시에 이뤄지고, 연구 수월성을 높여야 한다. 작은 틀의 변화로도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과학계는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고,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선도 국가로 도약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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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범죄 위에 나는 과학 기술'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과학기술은 법의학이나 유전자 감식 등 과학수사 분야와 융합되면서 법과학을 놀랍도록 발전시켰고 수사기관의 범죄 대응능력을 향상시켰다. 미국의 TV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 속 이야기는 더 이상 TV 속 가상현실이 아니다. 이미 경찰은 지문감식, DNA 분석, 영상분석 등의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해 중요 범죄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그 한 예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로봇·미디어연구소 김익재 박사팀이 개발한 '폴리스케치'를 들 수 있다. 이 기술은 한국인들의 얼굴 특징을 데이터베이스화해 3D 몽타주를 작성하고 인공지능을 통해 나이 변화에 따른 모습을 추정 가능케 한다. 2016년에는 38년 전 실종된 어린아이의 사진을 기반으로 현재 나이를 반영한 몽타주를 작성해 중년이 된 실종자를 찾는데 성공했다. 

 

최근 3년간 범죄 검거율 상승,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등 치안 지표가 크게 개선되고, 테러 등의 위기 상황에 대비한 경찰의 현장 대응 역량도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우리 사회의 안전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2016년 통계청이 실시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안전 상태를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더 위험해졌다고 답변한 사람이 50.1%로 절반이 넘었으나, 더 안전해졌다고 답변한 사람은 12%에 불과했다. 또한,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전한가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45.5%가 '불안하다'고 답한 반면 13.2%가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국민이 생각하는 가장 큰 사회적 불안요인은 '범죄발생(29.7%)'으로 2년 전보다 무려 10.2%p나 증가했다. 특히 스미싱, 파밍 등의 사이버범죄나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와 같이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범죄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이처럼 범죄가 갈수록 다양화, 전문화, 지능화되면서 국민들이 체감하는 불안요소가 증대하고 있고 안전한 삶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도 이와 비례해 증가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살인, 강도, 납치, 아동학대 등의 중대 범죄 해결에 있어 많은 부분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절도, 전화금융사기, 보험사기 등 일상생활 속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생활 범죄 해결의 경우 아직 국민의 높아진 기대 수준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민들은 중요범죄 사건뿐만 아니라, 생활 범죄, 위험 징후 등의 사건·사고의 경중을 막론하고 모든 범죄에 대해 신속한 해결을 원한다. 현장의 경찰들은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중요 범죄 검거 중심의 경찰 활동' 등의 범죄 사후 대응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경찰의 치안 활동에 있어 과학기술의 접목도 사건·사고 발생 후 사후 대응을 위한 과학수사, 범죄수사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반해 국민들은 중요 범죄자의 검거와 같은 사후적인 경찰 활동도 중요하지만, 위험이 현실화되기 전에 범죄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안전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전적인 대응을 원한다. 즉, 경찰의 중요 범죄 중심의 치안활동과 국민의 니즈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결국 기존 경찰 활동을 보완하고 국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수준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생활 치안분야에도 과학기술의 접목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에 경찰청에서는 이러한 국민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스마트폰 기술을 활용한 '사이버캅', '스마트 국민제보', '원터치SOS', '한달음 시스템', '안심이 앱' 등이 바로 그 예다. 특히 금융권, 편의점에서 운영 중인 '한달음 시스템'은 경찰과 편의점 점주 간의 핫라인으로, 비상상황 발생 시 전화 수화기를 7초 이상 내려놓으면 112상황실에 자동으로 신고되는 기술이다. 그러나 '한달음 시스템'도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는 점과 직원의 실수로 비상출동이 발생하는 등 몇몇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최근에는 이런 단점들을 극복하고자 편의점과 경찰청이 편의점 결제 단말기 터치스크린에 '긴급신고' 기능을 추가해 화면 터치만으로 신고할 수 있는 '원터치 신고시스템'과 같은 아이디어 기술도 선보였다. 이와 같은 노력에서 보듯이 과학기술은 우리의 주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기술들을 현장 맞춤형으로 조합하고 개선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기술들의 개발로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했다. 생활치안 분야에서도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IoT, AR/VR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첨단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이런 첨단 기술들이 지금보다 고도화되고 최적화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국민들의 치안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술들이 미제로 남아있는 사건들의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기술과 생활치안의 만남은 국민이 갈망하던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구현하는데 필수 요소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있다. 국민 생활 속의 치안의 필요성, 수사기관이 느끼는 현장에서의 필요성이 과학기술계에 잘 전달된다면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 국민, 경찰, 과학기술계 간의 더 많은 소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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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필자가 파인만 알고리즘을 설명하면서 단계 1 ‘문제를 쓴다’를 제치고 단계 2 ‘열심히 생각한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했습니다. 이제는 미루어둔 단계 1 ‘문제를 쓴다’, 즉 연구주제 선정을 다룰 차례입니다.

 

[ 파인만 알고리즘 단계 : 1. 문제를 쓴다 ]

 

파인만 알고리즘을 다시 써 봅니다.
1. 문제를 쓴다. 2. 열심히 생각한다. 3. 답을 쓴다.
1. Write down the problem. 2. Think real hard. 3. Write down the solution.

그럼 단계 1 ‘문제를 쓴다’에서, ‘문제를 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독자들이 연구를 처음으로 하기 시작할 때, 직접 ‘문제를 쓴’ 기억이 있으신지요? 필자가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선배의 연구주제를 이어받아서 연구를 시작했으니까 직접 ‘문제를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그 선배가 ‘문제를 쓴’ 걸까요? 그 연구를 왜 하는지, 왜 중요한지에 대해 그 선배가 설명하기는 했지만, 선배도 그 주제에 대해 잘 아는 상태는 아니었던 기억으로 보면 ‘문제를 쓴’ 건 아마도 지도교수님이라고 추측됩니다. 초보 연구자로서는 연구 분야나 주제에 대해 아예 감도 없고, 도대체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알기 어렵지요. 그래서 석사는 물론, 박사과정까지도, 지도교수가 논문 주제를 던져주는(?)거겠지요. 하지만 주어진 문제에 대해 연구를 해서 결과가 좀 나오고, 초보 단계를 벗어나면,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싶어지게 됩니다. 박사과정이라면 그래도, 내 주제를, 내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욕심이 생길 겁니다. 하지만 연구에 대해 조금 감을 잡은 2-3년차라도, 문제를 정확히 ‘쓰는’ 이 1단계를 잘 하는 건 여전히 많이 어렵습니다. ‘문제를 쓴다’는 것은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해결해야 할, 풀어야 할 문제를 잘 정의한다는 말입니다.

 
[ 어떤 연구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연구의 시작입니다. ]

 

필자를 포함해서 연구자들은 대부분 연구 프로젝트를 따고(?)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를 합니다. 그런데 연구 프로젝트 선정과정에서는 제출된 제안서 또는 계획서를 심사합니다. 어떤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푼다는 계획을 계획서에 제시하고 그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받아야만 하지요. 그러니, 어떤 연구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연구를 시작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입니다. 현실적 측면에서는 ‘열심히 생각한다’에 비해서도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합니다. :) 그러니까 연구자는 본인의 연구분야에서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문제에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서 헛수고를 하고 있다(finding precise answers to the wrong questions)”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헛수고를 하는 것은 ‘문제를 쓰는’ 데 실수를 범하기 때문이지요. 잘못 파악해서 문제를 '만들어 내는' 상황이 되면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기 때문에 ‘문제를 쓰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


문제를 잘 쓰기 위해서 어떤 것이 문제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막막하지요? 그럼 필자가 연구하는 '바이오가스 정제법'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질문을 하겠습니다. '바이오가스 정제법'은 파인만 알고리즘 1단계에서 이야기하는 '문제'라고 하면 맞을까요? 아닌 것 같지요? ‘바이오가스 정제법’은 '연구 분야'이지, 풀어야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연구 분야라고 부르기에도 사실 범위가 너무 넓은 것 같네요. 그럼 범위를 조금 좁혀 볼까요? '바이오가스 중 실록산의 정제방법'은 어떤가요? 이건 '특허 제목' 정도? 하지만 연구 ‘문제’는 아직 아닙니다. 필자의 7월 27일자 칼럼 4. 실제 연구과정을 한번 따라가 봅니다에 '바이오가스 정제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문제들을 정리했습니다.


문제 1.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려면 화석연료 대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문제 2. 우리나라에 적합한 경제성 있는 신재생에너지 대안이 없다.
문제 3. 가스터빈 발전도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문제가 있다.
문제 4. 바이오가스는 발열량이 낮고 불순물 문제도 있다.
문제 5. 실록산 제거 흡착제의 경제성이 나쁘다.
문제 6. 흡착재생용 실리카 겔 흡착제는 재생온도가 너무 높다.


연구문제 1. 폐열로 재생이 가능한 흡착제를 개발해야 한다.
연구문제 2.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연구질문 1.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떤 현상에 의해 결정되는가?
연구질문 2. RPA의 실록산 흡착-탈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여기서 필자는 문제 1~6, 연구문제 1,2, 연구질문 1, 2라고 썼습니다. 이것들은 언뜻 보면 모두 ‘문제’의 형식인데 굳이 구별해서 쓴 이유는 무얼까요? 단계 1에서 말하는 '문제'는 이 중에서 어떤 것일까요?


[ 문제인가, 질문인가? ]

 

연구에서는 문제와 질문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여기서 복잡하게 문제, 연구문제, 연구질문 이라는 용어를 쓴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문제→생각한다→답(Problem→Think→Solution)에서 단계 1에서 다루는 것이 ‘문제’일까요? 학교에서는 기말고사 등 시험을 많이 치는데, 시험 ‘문제’는 ‘문제’, 즉 영어로 problem일까요? 시험에서는 ‘문제’를 잘 풀어서 답(answer)을 씁니다. 맞지요? 그렇다면 시험 '문제'의 번역으로는 answer의 짝인 question(질문)이 더 맞겠네요. 이에 반해서 문제(problem)의 짝은 해법, 해결책이라고 번역하는 solution이 맞구요. 현실에서는 이 둘을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으니 엄밀하게 나누는건 어렵습니다. 또 용어가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는 문제와 질문을 구분하고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설명한대로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 문제이고, 답이 필요한 것은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자의 ‘연구수행전략’ 수업에서는 약간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문제와 질문을 확실하게 나눕니다.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연구개발의 목적으로 설정하는 반면에, ‘해결책’을 위해 필요한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을 잘 써서, ‘답’을 찾는 것을 연구 목표로 정하도록 합니다.


[ 연구를 위한 문제와 질문의 예시 ]

 

말로 설명하는 걸로는 이해가 쉽지 않지요? 앞에서 적은 문제와 질문을 예시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에너지원으로, 경제성 있는 신재생에너지인 바이오가스가 제시됩니다. 그런데 바이오가스가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바이오가스의 낮은 발열량과, 함유되어 있는 실록산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흡착재생용 실록산 흡착제, 즉 낮은 온도의 폐열로 재생이 가능한 경제적인 흡착제를  개발해야 합니다. ‘낮은 온도의 폐열로 재생-탈착이 가능한 경제적인 실록산 흡착제’라는 필자의 ‘연구 문제’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많은 ‘문제-해결책’ 단계를 거치지만, 아직 실제 연구에 도달한 건 아닙니다. 필자는 ‘연구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질문’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그 ‘답’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질문 1.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연구질문 2.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떤 현상으로 결정되는가?
연구질문 3. RPA 표면에서 실록산 흡착-탈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좋은 문제, 좋은 질문 ]


필자의 수업에서는 문제 1~6을 practical problems 즉 실제 문제라는 표현을 씁니다. 실제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진짜 해결해야 하는 좋은 연구 문제가 나옵니다. 그리고 ‘실제 문제’는 실제로 문제라야 합니다. 연구자들은 본인들이 하고 있는 연구 문제가 진짜 중요한 ‘문제’라고 모두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문제는 문제가 아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연구를 하기 때문에 그냥 그것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꼭 해결해야만 하는’ 심각한 문제도, ‘세상을 바꿀만한’ 해결책이 필요한 것도 아닌거지요. 그런 문제를 연구하겠다는 계획서를 냈는데 그 프로젝트를 선정해서 연구비를 주면 프로젝트 지원기관의 입장에서 큰 실수겠지요.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연구자들이 실제 문제가 아닌 문제를 문제라고 착각하고 연구를 하는 겁니다. 시간을 많이 들이고 열정을 가지고 연구를 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문제’에 대해 ‘정확한 답’을 찾는 연구라면 헛수고지요. 실제 문제가 아니라도 연구를 하면 논문을 쓸 정도는 됩니다. 하지만 이건 실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논문을 한 편 쓴 것이고, 당연히 좋은 논문도 아닐 겁니다. 논문이 좋은 논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문제를 쓰는게 꼭 필요합니다.


문제의 유형: 발생형과 설정형 ]


필자가 제시한 문제를 다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온난화 문제, 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화석연료 대체에너지원을 개발하는 문제, 우리나라에는 경제적인 신재생에너지의 생산조건이 좋지 않다는 문제, 대안인 가스터빈 발전도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문제, 바이오가스의 낮은 발열량과 불순물 문제, 실록산 제거의 경제성 문제, 실리카 겔 흡착제의 재생온도가 높다는 문제, 엔진 폐열로 재생하는 흡착제를 개발하는 문제. 이 중에는 모두들 ‘아 그건 정말 문제다’라고 공감할 문제와 ‘그것도 문제인가? 이해가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문제의 유형에는 ‘발생형’ 문제와  ‘설정형’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라도 문제라고 인정할, 이미 발생한 ‘발생형’ 문제와, 입장에 따라서 문제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설정형’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발생형 문제'가 공통적으로 인정받는 문제라면, '설정형 문제'는 '바람직한 상태'를 설정하고 그 상태에 비교해서 현재 상태가 문제라는 걸 이유를 제시해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연구자 본인이 지도교수님, 박사님을 설득해야 하면 ‘설정형 문제’입니다. 설정형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게 공감을 끌어 내야하니 이것이 당연히 어렵지요. 또한 설정형 문제의 대상인 ‘바람직한 상태’라는 것이 어떤 상태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렵고, 각자 미래의 상황을 어떻게 예상하는가에 따라서 결론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론: ‘질문’을 잘 쓰자. ]


이제 칼럼의 결론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꼭 해결해야만 하는’ 심각한 문제를 대상으로 삼고, ‘세상을 바꿀만한’ 해결책을 답으로 쓰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결책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적절한 ‘연구 질문’을 설정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다시 필자의 예를 든다면, 기술개발의 영역인 ‘바이오가스의 재생가능 흡착제’의 개발 연구문제에서 시작되었지만, ‘질문’은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떤 현상에 의해 결정되는가?’ 또는 ‘흡착소재의 실록산 흡착-탈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하는 과학 연구의 영역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실록산의 흡착-탈착 메카니즘을 과학적으로 밝혀낸다면, 원하는 흡착-재생온도와 흡착량을 가지는 실록산 흡착소재를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뛰어난 연구자들을 만나보고 느낀 점은 연구만 많이 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꼭 풀어야 하는 문제를 잘 제시하고 그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연구에 집중해서 답을 찾아내고 그 문제와 답을 잘 설명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칼럼을 읽은 독자 여러분들도 연구도 연구 잘 하는 법 공부도 많이 하셔서, 모두 뛰어난 연구자가 꼭 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칼럼까지 안녕히 ~~

 

2017.09.11 [Dr.Jung's R&D Clinic] 5. 파인만 알고리즘

2017.07.27 [Dr.Jung's R&D Clinic] 4. 실제 연구과정을 한번 따라가 봅시다.

2017.07.10 [Dr.Jung's R&D Clinic] 3. 에디슨처럼 연구한다’는 말은 칭찬?
2017.06.09 [Dr.Jung's R&D Clinic] 2. 칼럼 제목이 Dr.정's R&D 클리닉?
2017.05.25 [Dr.Jung's R&D Clinic] 1. 연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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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슐랭 2017.11.14 1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엇이 '정말' '문제' 인지는 그냥 지금 제 생활속에서도 중요한거 같습니다.

  2. 이승은 2017.11.14 2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가 있는 문제를 잘 찾아서 유용한 해결책을 제시하는건 좋은 논문의 필수이며 가장 기초적인 단계임을 알았습니다. 문제를 잘 인지하는것어 더 시간을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글 참 감사합니다~

  3. 김영민 2017.11.15 1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구를 위한 첫 스텝이 중요하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영화 속 영웅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최근 마블의 새 히어로 영화 ‘스파이더맨’이 개봉됐습니다. 이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은 거미줄에서 영감을 받은 화학물질을 손목에서 분사하여 강력한 거미줄을 발사합니다. 이 거미줄을 건물과 건물에 쏘아대며 이동하기도 하며, 다양한 범죄자들을 제압하거나 심지어 무거운 물건을 가볍게 들어 올립니다. 이런 다양한 기술들을 선보이기 위해선 힘(strength)과 탄성력(elasticity)이 매우 우수해야 합니다. 물론 영화 속 이야기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데요, 과연 가느다란 거미줄이 이렇게 튼튼하고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을까요?

<그림 1> 영화 속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은 튼튼한 거미줄을 손목에서 발사하여

빌딩 사이에서 움직이거나 적을 붙잡고 공격합니다.
<출처>1. http://movie-rater.com/


거미는 거미줄을 방적돌기라는 부위에서 생성합니다. 이렇게 생성한 거미줄은 일반적으로 먹이를 잡기위한 집을 짓고, 그물을 짜는데 사용합니다. 거미줄은 가늘고 가볍지만 매우 튼튼하고 잘 늘어나며, 내구성이 강합니다. 거미줄의 탄력성과 내구성을 이용한 물건을 제작하려는 시도가 많이 되었습니다. 거미줄이 실제로 쓰이는 곳은 꽤나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인도-태평양의 어부는 튼튼한 거미줄을 이용하여 작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그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가느다란 거미줄의 굵기를 이용하여 망원경과 현미경, 소총 등의 십자선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거미줄을 이용하여 광통신에 응용하거나 바이올린의 현으로 이용이 되기도 합니다.

<그림 2> 거미줄을 이용한 십자선과 바이올린의 현. 가느다란 거미줄을 이용하여 십자선을 만들었고,

거미줄을 이용하여 제작한 바이올린은 아주 특이한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출처> (좌)https://www.thestrad.com/ (우)http://www.dehilster.info/

2009년 마다가스카르에서는 황금 원형 거미(Golden Orb Spider)의 실을 이용하여 ‘거미줄 비단’을 제작하였습니다. 11 피트 X 4 피트 크기의 비단을 만들기 위하여 백만 마리 이상의 암컷 거미가 사용되었고 4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거미줄 비단은 황금빛을 띠는 아름다운 비단이지만 필요로 하는 거미의 수와 시간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공 거미줄을 만들고자 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림 3> 마다가스카르의 거미줄 비단 사진과 황금원형거미의 거미줄. 황금원형거미 100만 마리의 거미줄을 이용하여

4~5년 동안 거미줄을 모아 실크옷을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출처> (좌)http://www.studiozna.com/ (우)https://www.yatzer.com/

 

거미줄은 실크(Silk)의 일종입니다. 실크는 단백질 섬유를 전반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거미의 방적돌기에서 생성된 실크단백질은 스프링 모양으로 꼬여있습니다. 스피링 각 코일이 주변의 다른 스프링 코일과 결합하고 있는 구조가 거미줄의 높은 강도의 비밀입니다. 분자 단위로 수없이 많은 결합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벼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보다 튼튼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 4> 거미줄의 분자구조. 베타 시트라는 붉은 부분과 비정형 단백질인 푸른 부분이 거미줄에 특별한 탄성과 강성을 부여합니다.
<출처> Biophysical Journal, 2011 (100) 1298


위 그림에서 붉은색은 베타 시트(β-sheets)라고 불리는 결정체이고, 푸른색 부분은 단백질 펩타이드(peptide)가 비결정 상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결정 상태 혹은 비결정 상태의 펩타이드만 존재한다면 그 섬유는 유연하지 못하여 부러지거나 힘을 지지하지 못하는 연약한 섬유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분자구조 덕분에 거미줄은 단위면적당 강도가 강철에 비할 정도로 매우 튼튼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에 거미줄 혹은 거미줄의 구조를 이용하여 튼튼하고 질긴 성능을 가지도록 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마다가스카르의 거미줄 비단과 달리 더욱 손쉽게 거미줄의 성능을 가져오고자 한 연구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거미줄에 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거미줄을 생물로부터 추출하게 만드는 연구이며 두 번째는 거미줄의 특이한 물리/화학적 결합구조를 흉내 낸 물질 구조를 가져오는 연구입니다. 두 방법은 각각 생명공학과 생체모방기술(Bio mimicry)이라는 다른 범주에 속하지만 결과적으로 강력한 섬유를 만들겠다는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거미줄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구성 분석에 대한 연구가 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부터는 거미 실크 단백질에 대해 연구가 되었고, 1990년대 이후 대장균(E. coli)을 이용하여 거미 실크 단백질을 합성하려는 연구가 되었습니다. 이후 유전자 이식 기술을 이용하여 염소의 젖 등에서 거미줄을 추출하거나 누에에 거미줄 단백질 성분을 생산하게 만들어 거미줄 생산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개발한 거미줄을 이용하여 방탄복보다 가볍고 성능은 뛰어난 새로운 군복 등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림 5> 유전자 변형 염소의 젖에서 추출한 거미줄로 제작한 방탄섬유. 거미줄의 단백질구조를 염소의 젖에서 추출하였을 때

방탄 성능을 가지는 섬유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강철에 비해 10배 정도 강력하다고 말합니다.
<출처> https://sallyhanreck.com/


이렇게 다른 생물을 통해 거미줄을 연구하려는 시도 외에 ‘인공거미줄’을 제작하려는 연구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고분자(polymer)의 모양을 거미줄과 유사한 나노구조로 제작하거나 판상구조를 가지는 첨가물(그래핀 등)을 거미줄의 베타 시트처럼 넣음으로써 고분자의 강도를 증가시키려는 연구입니다. 국내 연구진에 의해 진행된 연구에서는 나노 탄소 물질을 이용하여 거미줄을 모방한 물질을 제작하였는데요, 거미줄이 젖은 상태에서 공기 중으로 배출되어 굳으면서 특별한 구조를 가진다는 것에 착안하여 wet-spinning 이라는 방식을 도입하였습니다.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의 복합체를 젖은 상태에서 뿜어내는 방식을 통해 섬유를 제작하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제작한 필름은 다른 방식으로 제작한 섬유에 비해 크게 향상된 물성을 가진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검은색의 섬유가 얻어졌지만, 매우 튼튼하고 강력한 섬유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림 6>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으로 제작한 거미줄 같은 섬유. 거미줄의 모습을 모방하여

케블라보다 더 높은 성능을 가지는 섬유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Nature communications, 2012 (3) 650

비록 영화 속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조금 많이 과장되었을지는 몰라도 튼튼한 강도의 거미줄은 현재도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처럼 손목에서 섬유를 발사할 수는 없겠지만 가볍고 가는 인공 거미줄을 통해서 무거운 하중을 지탱하는 것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아마 멀지 않은 미래에 거미줄 같은 섬유가 무거운 쇠줄을 대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Posted by KIST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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