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고혜영

필자가 가장 최근에 본 Julius Ceasar는 2009년 8월 Stratford-upon-Avon에서 공연된 영국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 RSC)의 연출이었다.  시이저의 집단 살해 장면에서는 필자가 평소 상상 속에서 연출해 온 분위기와는 사뭇 전혀 다른, 소란스럽고 경박한 기운이 벌어져서 조금은 실망스러었다.  공포와 당혹 속에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시이저, 이를 눌러 제어하는 압박, 두려움과 망설임과 과감함이 뒤섞인 시해 가담자 한사람 한사람의 칼질, 시끄러운 비명, 쏟아지는 선혈, 그 와중에 들리는 시이저의 나지막한 말 세마디, 그것도 난데없이 영어가 아닌 라틴어로, “Et tu, Brutè?” ("브루투스, 너도냐?" 혹은 "브루투스, 너마저?").

어린 시절 처음 이걸 들었을 때, 필자는 도대체 왜 이 세마디가 그토록 유명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가 유명한 것이야 어린이에게 조차도 충분히 납득이 갈 만했다.  <햄릿>을 읽은 적이 없어도, 그 내용을 몰라도, 이 여섯개 단어가 주는 원초적인 느낌은 피할 수 없는 법.  하지만 “염~병할! 너도냐? 이 개OO!?”이라는 뜻의 “Et tu, Brutè?”는 얘기가 좀 다르다.  결국은 나중에 시이저를 둘러싼 고대 로마사와 “줄리어스 시이저”의 내용을 알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납득하게 되었다.  브루투스는 시이저가 키워낸 절친한 후배였지만 막상 시이저 시해 도모의 중심이 되며, 시해 직후 극예술역사 상(정치사 상?) 가장 선동적인 연설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뭔가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당신이 그걸 얼마나 진정으로 깊이 사랑했는지는 그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거나, 당신을 떠나거나, 당신을 배반할 때야 비로소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배반이란 사랑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사랑의 진실을 아프게, 선명하게 비추어 줄 뿐.  “Et tu, Brutè?”는 “I love you”의 다른 말이다.

윌리 셰익스피어(Willie Shakespeare)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작품의 플롯이나 운문이나 그리이스/로마 고전의 인용 등에서 늘상 다루곤 했다.  그리고 가만히 보면, 실지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건 판에 박힌 남녀상열지사가 아니라, 겉으론 대단히 평범해 보이지만 아주 미묘한, 숨어있는 구절들이다.  자, 이제 지금부터 에이번 시인(the Bard of Avon)이 밟아온 “애매모호한” 사랑과 배반의 오솔길을 함께 걸어가 보자.  <오텔로>(Othello)와 <햄릿>(Hamlet), 이 두 작품 중의 몇 장면을 들여다 보도록 한다. 

<오텔로>의 4막 2장에서 오텔로는 데스데모나를 대놓고 “창녀”라고 부르며 외갓남자와 저지른 부정을 따지기 시작한다.  영문을 모르는 데스데모나는 그저 억울하고 답답할 뿐이다.  여기서 오텔로는 다음과 같은 독백으로 그가 인생의 혹독함을 얼마나 훌륭하게 견뎌낼 수 있는지를 설토한다;

Had it pleased heaven
To try me with affliction, had they rained
All kind of sores and shames on my bare head,
Steeped me in poverty to the very lips,
Given to captivity me and my utmost hopes,
I should have found in some place of my soul
A drop of Patience. But alas, to make me
A fixed figure for the time of scorn
To point this slow unmoving finger at—
Yet could I bear that too, well, very well.

‘제아무리 하늘이(신이) 고통, 끔찍한 수치, 찢어지는 빈곤, 막막함(“give to captivity = imprison” me and my utmost hopes)이라는 온갖 고생으로 나를 시험한다고 해도, 난 좌우지간 최소한의 인내심을 짜내어 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found even a little “drop of Patience” in my soul to endure them with).  심지어는 경멸의 세월이 좀처럼 꿈쩍조차 않는 시계바늘로 계속 나를 가리킨다 하더라도(the clock of scorn points its slow, almost unmoving arm at me, who is made just “a fixed figure” on the clock), 그래도 여전히 나는 견뎌낼 수 있다.’  요악하지면, ‘그 어떤 고생도, 심지어는 최악의 경우도 나는 견디어 낼 수 있다’라는 얘기이다.  그리고는 바로 데스데모나에게 품은 그의 사랑에 관해 말한다;

But there where I have garnered up my heart,
Where either I must live or bear no life,
The fountain from the which my current runs
Or else dries up—

‘내 심장을 고이고이 모셔둔 성스러운 곳, 내가 온전히 살든가 아니면 아예 죽어버리든가 해야하는 성지, 내 생명의 물줄기가 뿜어 나오든가 아니면 바싹 말라버리든가 하는(“my current runs or else dries up”) 원천(“the fountain”)—‘  이어서 그는 배반당한 사랑에 대해 말하는데…… ;

—to be discarded thence,
Or keep it as a cistern for foul toads
To knot and gender in—

‘—만약 이 성지가 버려지고 썩어들어가 흉칙한 두꺼비들이 모여 새끼나 치는 더러운 늪으로 전락한다면—‘  그리고는 그 자신의 “인내심”에게 이렇게 말한다;

—turn thy complexion there,
Patience, thou young and rose-lipped cherubin,
Ay, there look grim as hell.

그 자신이, 마냥 행복하고 축복받은 풋풋한 아기천사로 표현하는(“thou young and rose-lipped cherubin”) “인내심”에게, 그 밝은 얼굴을(“thy complexion”) 타락한 사랑에다 돌려보라고 하고, 거기서 곧장 “인내심”의 얼굴이 그만 참담하게 어두워짐을(“look grim as hell”) 본다.  “사랑하는 이에 관한 한”…… ”다른건 다 참아도 이것만은 절대 못 참아~”

<오텔로>에서 “이야고”는 밉살맞고 샘나게 하는 인간들을 망하게 할 흉계를 꾸미는 전형적인 악한으로 그려진다.  동료 “카시오”의 대위로의 승진에 샘나고, 직속상관이며 흑인인 오텔로의 행복한 혼인과 승승장구에 샘나는 이야고, 그래서 그는 그들의 행복을 파괴할 계획을 짜고 실행한다.  그런데 정말로 이게 전부일까? 
우리 “윌리”는 오텔로와 이야고 사이에 특별한 결속이 있음을 아예 이 작품의 맨 첫장면 부터 아주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필자가 보아온 대부분의 영화나 연극들에서 이 관계의 뉴앙스가 빠져있다고 여긴다.
1막1장에서, 로데리고와의 대화 중에 이야고는 오텔로가 카시오를 그의 직속 보좌관 겸 대위로 선택한 것이 얼마나 불공평한지를 토로한다;

And what was he? ......
One Michael Cassio, a Florentine, ……
That never set a squandron in the field,
…… Mere prattle without practice
Is all his soldiership. But he, sir, had the election;
And I, of whom his eyes had seen the proof
At Rhodes, at Cyprus, and on other grounds
Christened and heathen, must be beleed and calmed
By debitor and creditor. This countercaster,
He, in good time, must his lieutenant be,
And I, God bless the mark, his Moorship’s ancient.

‘마이클 카시오는 플로렌스 출신의, 실지 전투경험이 전혀 없는 놈으로 책과 이론만 알고 말빨만 세다(“mere prattle without practice”, “debitor and creditor” [book-keeper], “countercaster”).  반면, 이 몸은 오텔로와 수없이 많은 전쟁터에서 그 모든 것을 함께 겪은, 가장 경험 많은 병사이고 또한 오텔로의 “절친”이 아닌가?  게다가 오텔로 자신이 이 점을 몸소 인정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왜, 그런 카시오가 대위가 되고 나는 겨우 기수로 머물러야만 하는가 말이다. (“ancient” 혹은 “ensign”이란 전투중 군기를 휘날리며 다니는 임무를 맡은 최하층의 지위)

위험한 전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며 생사를 함께한 병사들에게 있어서 그들 사이의 결속이란 대단히 특별한 것이다.  말하자면 사랑, 그 자체이다.  이야고는 바로 이 사랑을 배반당한 것이다.  1981년 BBC 방송 드라마 버젼(Jonathan Miller 감독)에서 Bob Hoskins는 순전히 깡패같은 분위기로 이 대사를 발성함으로써 단순히 사악하고 가증스런 악한을 그려낸다.  반면, Oliver Parker 감독의 1995년 HBO 영화 버젼에서는, Kenneth Branagh가 “And I, of whom his eyes had seen the proof at Rhodes, at Cyprus, and on other grounds Christened and heathen, ……”, 를 조용하게 속삭이듯 말하면서 눈물로 살짝 젖은 눈을 비친다.  맨 마지막 장에서 오텔로는 카시오에게 이야고가(계략이 드러나 이제는 체포당하고 오텔로에게 칼까지 맞은 상태의)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어야만 했는지”를 그에게 물어봐 달라고 촉구한다. (“…Will you demand that demi-devil why he had thus ensnared my soul and body?”).  이에 대해 이야고 자신이 답하길;

Demand me nothing. What you know, you know.
From this time forth I never will speak word.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이래야만 했는지를 설명하라 마시오.  내가 그 모든 것을 겪은 뒤, 어찌 차마 당신들 같이 무지하고 무심한 인간들 앞에서 나의 본래 심정을 드러낼 수 있겠소?’ 라고.  “이야고의 속사정, 오텔로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바로 이 1995년 영화가 있기 전 까지는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었다.

<햄릿>의 3막 2장.  햄릿은 그의 절친 호레이시오를 “진짜 말 통하는 놈은 너 밖에 없어~”라고 칭찬을 하며 맞이한다. (“thou art even just a man as ever my conversation coped withal.”).  이에 호레이시오는 “별 말씀을 다~”하며 멋쩍어 한다.   그러나 햄릿은 이건 절대로 아부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Since my dear soul was mistress of her choice
And could of men distinguish, her election
Had sealed thee for herself.  For thou hast been
As one in suffering all that suffers nothing,
A man that Fortune's buffets and rewards
Hast ta'en with equal thanks; and blessed are those
Whose blood and judgment are so well commeddled
That they are not a pipe for Fortune's finger
To sound what stop she please.  Give me that man
That is not passion's slave, and I will wear him
In my heart's core, ay, in my heart of heart,
As I do thee.
—Something too much of this.—

이 문단은 아마도 우리 윌리가 쓴 것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문단이리라.  여기서 그는그의 깊숙한 감정, 혹은 그 자신을 “내 소중한 영혼”이라 칭하며 마치 그것이, 사랑에 빠진, 다시 말해, 호레이시오와 사랑에 빠진 어떤 여인인 것 처럼 묘사한다. (“mistress of her choice”; ‘could distinguish her man from other men’; “had sealed thee for herself”=”had defined you as her man”).  햄릿은 계속해서 그의 절친을 찬양한다, 그를 ‘온갖 고난을 겪어보고도 티를 안내는, 그리고 불운이든(“Fortune’s buffets”)  행운이든(“rewards”) 감지덕지로 받아들이며 꿋꿋하게, 겸허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라 표현하며……  그리고는 이어서 감성과(“blood”) 이성이(“judgment”) 너무나도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 절대로 운명의 여신의 장난감으로 전락하지 않을(“not a pipe for Fortune's finger to sound what stop she please”), 그래서 축복받아 마땅할 어떤 고귀한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제는 마찬가지로 그같이 현명하고 멋진 (“쿨”한?) 남자가 어디 있다면 “내게 달라”고 한다, 그 남자를 가슴속 깊숙한 곳에 품고 다니겠다고 한다, …… 아, 그런데 바로 여기서, …… 짜잔~하며 등장하는 네마디: “As I do thee.”, 결국 그가 그의 가슴속 깊이 애지중지 품고 다니는(“wears in his heart of heart”) 고귀한 남자란 바로 다름아닌 호레이시오라는 얘기다.  간결하고, 그래서 더욱 더 강력한 이 마지막 한 줄, 여기서 오로지 영어라는 언어만이 보여줄 수 있는 iambus(약강격/단장격)의 리듬을 타면서! 
“As-I-do-thee”: Teeh-Dum, Teeh-Dum. 

도대체 “I love you” 혹은 “I adore you”라는 말을 이 세상 그 누가 이보다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이 원고를 저장하기 전에, 한가지만 더! : 우리 윌리는 여기서, 어찌보면 좀 감상적인 반면 살떨리고도 설레는 이 고백에다가 코믹 터치를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그가 자주 그러듯이).  햄릿은 “—Something too much of this—” , 즉 ‘내가 봐도 이건 좀 닭살~” 이라는 한마디를 던지고는 갑자기 화제를 바꾼다: “아, 근데 오늘 밤 말야…… 아바마마, 어마마마 앞에서 연극공연이 있을 거라는 거, 내 언제 한번 네게 얘기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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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상원 2011.05.17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편의 연극을 본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울러, "뭔가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당신이 그걸 얼마나 진정으로 깊이

    사랑했는지..." 이 부분. 저에게 정말 와 닿네요.

    요즈음 계속 "If you love something, give it away." 문구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다음 산책도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고혜영 선생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