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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채소만 먹는데 고(高)콜레스테롤?…‘피 한 방울‘로 희귀질병 진단한다

 

 

 

 

 

최만호 KIST 연구원,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질환' 혈흔 기반 진단기술 개발
기존대비 시간·비용 획기적으로 줄여
‘성인만성질환·치매·선천성호르몬장애‘ 등 다양한 치료법에도 활용 가능

 

 

# 6살 된 딸을 가진 A씨는 아이 몸에서 황색종을 발견해 병원에 갔다. 검사 결과 콜레스테롤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약 처방과 콩, 채소, 견과류 등 식이섬유 섭취를 권유받았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A씨는 병원을 전전하다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질환'이라는 희귀질환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질병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혈액을 채취해 미국의 연구센터로 보냈지만 대답이 온 것은 8개월 후. 아이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질환은 식물성 식이섭취 후 정상인과 달리 스테롤이 배출되지 못하고 과다하게 흡수되어 축적되는 질병을 말한다. 체내 식물성 스테롤 수치가 증가하면 혈관에 달라붙어 혈액순환을 막아 동맥경화, 고지혈,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식물성 스테롤은 그 구조가 콜레스테롤과 매우 유사하여 병원에서 주로 사용되는 키트로는 구분 및 분석하기 힘들다. 이에 고콜레스테롤혈증 또는 죽상동맥경화로 오진되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근 KIST는 피 한 방울로 희귀질환인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질환'을 24시간 내에 진단할 수 있는 분석기술을 개발했다. KIST분자인식연구센터의 최만호 박사와 유은경 분당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공동 연구한 결과이다.

 

분석기술을 주도한 최만호 박사는 "성인만성질환과 신생아 선천성대사이상 질환, 치매 등도 콜레스테롤이 문제가 되어 발생하는 질병"이라며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뿐 아니라 다양한 질환들도 조기에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도핑연구경험, 희귀질환 진단으로 이어지다

 

 

지금까지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질환 유무는 미국에서만 가능해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평균 8개월이 소요돼 약을 써보기도 전에 질병이 악화되는 일이 잦았다.

 

반면 최만호 박사팀 진단법은 최근 대부분의 임상기관에서 활용하고 있는 질량분석기로 하루 만에 분석이 가능하고 값도 저렴하다. 특히 총 20가지 이상의 콜레스테롤 대사물질들을 동시에 스크리닝 할 수 있어 콜레스테롤 합성 및 대사와 관련되는 모든 질환에 대한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최 박사에 따르면 이 질병은 주로 청소년기에 발견될 수 있다. 호르몬 기능이 발전하는 단계에서 유전자가 변이되면 특정한 화합물을 대사시키지 못해 이 같은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운이 좋으면 성인이 되면서 호전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 최소한의 음식만 섭취하면서 평생 질병을 관리해야한다.

 

미국 국립보건원 희귀질환연구센터 자료에 따르면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환자들은 80여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희귀병으로 분류되다보니 제대로 된 치료방법이 개발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희귀병의 경우 관련 치료법이나 진단법을 개발해도 수요가 적기 때문에 개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최만호 박사가 관련 진단법을 개발한 것은 유은경 분당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평소 관련 희귀병을 접했던 유은경 교수가 지인들에게 물어 스크리닝 기술을 개발할 사람을 찾아 나선 것이다. 과거 KIST 도핑컨트롤센터에서 스테로이드(콜레스테롤·남성 및 여성호르몬·황체호르몬·부신피질호르몬 등 생체 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화합물)관련 연구를 했던 그에게 식물성 스테롤을 구분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최만호 박사와 유은경 교수는 의기투합해 지난해 2월 공동으로 관련연구를 하게 됐고 약 6개월 만에 연구 성과를 도출해냈다.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질환은 간편한 진단기술의 부재로 희귀병으로 분류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최만호 박사와 유은경 교수가 의심환자를 검사한 결과 추가의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환자들을 진단하게 되었는데, 한 병원에서 희귀병으로 분류된 환자가 여럿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희귀질환은 우리나라의 경우, 유병율이 20,000명 이하로 정의)

 

최만호 박사의 검사법을 도입하면 국내외적으로 아직 진단되지 않은 환자를 분류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질환이 더 이상 희귀병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제약회사나 관련 R&D가 활발하게 이뤄져 그동안 병을 몰라 고통 받았던 환자들의 병을 빠르게 고쳐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 대사증후군, 선천성호르몬장애 등 사회적 질병 치료에도 효과적

 

 

최만호 박사팀 검사법의 가장 큰 특징은 혈액 한 방울로 검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의 연구센터로 약 10 cc의 혈액을 보내야 검사 가능했으며, 보내는 과정에서 혈액이 제대로 보관되지 않으면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보관된 혈액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검사되는지 궁금했다. 먼저 혈액이 보관된 장비를 열어보니 종이에 혈액이 한 방울씩 묻혀있었다. 종이 혈액 하나를 유기용매에 넣어주면 종이 속 혈액이 용액에 스며들면서 빨갛게 변한다. 혈액이 스며든 용액에서 연구자들은 스테로이드를 분리하는 작업을 한다. 이어 기체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법을 통해 콜레스테롤 및 식물성 스테롤 화합물들의 개별적인 농도를 분석하면서 대사체간의 비율도 측정한다.

 

 

여기서 환자들은 정상인에 비해 식물성 스테롤과 콜레스테롤의 비율이 10~20배 이상으로 현저하게 높게 나타난다. 최 박사는 "이를 통해 식물성 스테롤 대사이상 질환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다"며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병원이 보유하고 있는 질량분석기에 우리의 검사법만 도입하면 빠른 시일 안에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그는 상용화를 위해 정상인을 대상으로 임상검증을 지속 실시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병원에서 실질적인 임상진단에 적용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기준 값을 설정하기 위해 대규모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큰 금액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검사법인 만큼 소아 및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혈액검사를 할 때 함께 검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편, 해당 기술은 2013년 한국 및 미국 내 특허출원이 완료되었으며, 국내 최초로 진단된 임상환자 증례는 임상내분비학 분야의 세계적인 저널 ‘Journal of Clinical Endocrinology & Metabolism’ 5월호에 ‘Sitosterolemia Presenting With Severe Hypercholesterolemia and Intertriginous Xanthomas in a Breastfed Infant: Case Report and Brief Review‘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