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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창의포럼] 박현모 대표 (박병수 기자)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려운 한문을 공부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쓴 한글날 일기의 한 구절이다. 9월 창의포럼 강사인 세종 연구의 권위자 박현모 한국리더십개발원 대표는 우리역사에서 세종대왕은 그 시대를 기점으로 전후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랜드마크와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 바로 세종대왕이 확립한 지금 한반도의 영토와 세계적으로 과학성을 인정받은 한글이다. 박대표는 문자를 몰라서 고통 받는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든 것처럼 모든 백성이 행복하게 사는 생생지락’(生生之樂)을 세종시대의 최고의 통치철학으로 삼았다고 했다.

 

 

생생지락을 위한 소통

 

생생지락의 실천을 위해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만들어 인재를 양성하고(得人爲最, 인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주위에 있는 것, 기존의 것을 잘 벤치마킹하고(象形制之, 친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라) 우리 실정에 맞게 개량하여 최대의 성과를 이뤘다고 했다. 이를 통해 세종시대에 농업생산량이 이전시대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이런 성취에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소통이다. 실제 세종실록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표현이 더불어 의논하다’(與論)이다. 세종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신하들과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하는 최만리와 허조 등과도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한글의 창제의 기본철학이 음양오행과 주역의 원리가 있다는 논리로 그들을 설득하여 결국 반포하기에 이른다. 당시 중요한 세금제도인 전분육등연분구등법(토질에 따라 여섯 등급으로 나누고, 풍흉에 다라 아홉등급으로 나누어 세금을 매기는 제도) 시행을 위해서도 반대세력 설득을 위해 당시에는 획기적인 전 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결과 백성의 57%가 이 제도를 찬성했지만 2/3이가 찬성하지 않았다며 시행을 미루며 또다시 제도를 개선을 위한 소통을 했다. 결국 이 제도를 전국이 아닌 일부지역에 시행하는데도 제도개혁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지 무려 14년이 걸렸다. 세종은 백성들의 생생지락을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반대가 있더라도 그 반대를 설득하기 위해 소통하고 또 소통하여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룬 뚝심의 지도자였던 것이다.

 

세종시대 과학입국의 비밀

 

이런 세종의 소통과 뚝심은 세종시대에 꽃피운 과학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박대표는 일본에서 발간한 과학기술사사 사전에 따르면 15세기 노벨상에 버금가는 과학적 성과가 우리나라가 21, 중국 5, 유럽을 비롯한 그 외 전 지역이 28건이라고 했다. 15세기 세계적 연구성과의 40%가 세종시대의 조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세종시대의 과학적 성과물은 중국 등 기존의 것을 모방하고(집약모방), 우리에 맞게 개선하고(개정보완), 새로운 것을 발명하여(창안발명), 전국에 보급하는(실용화)의 단계를 거쳐 완성되었다고 했다. 앞서 언급한 친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象形制之)의 철학이다. 우리 실정에 적합한 물시계인 자격루, 의약서인 향약집성방도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개발되고 전국에 보급되어 실용화 되었다고 했다. 세종의 새로운 과학기술의 창조과정이 앞서 4단계를 거친 것처럼 세종대왕의 일하는 방식도 4단계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첫째 널리 묻고(廣問), 심사숙고하여(徐思), 정밀하게 연구한 후(精究), 진심으로 일관되게 추진(專治)했다고 한다. 세종시대의 그 어떤 위대한 발명도 단시간에 이루어진 것이 없다. 삼국시대부터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중국의 달력을 그대로 이용했던 것을 우리 실정에 맞는 역법으로 만드는데 무려 20년이나 걸렸다. 왕이 중심이 되고 집현전 학자들과 장영실, 이순지 등의 기술관료들이 조선의 역법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여 20년간의 연구 끝에 만들어낸 것이 바로 최초의 우리나라 역법서인 칠정산이다. 조선에 적합한 역법을 만들어 우리 땅에 맞는 절기를 확립하여 농업생산을 늘려 백성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세종의 애민정신과 문제해결을 위한 과학적 사고와 뚝심의 실천력이 어우러져 세종시대를 과학의 전성기로 만들었던 것이다.

 

노벨상 시즌을 계기로 단기 성과만을 쫓는 우리의 연구풍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연례행사처럼 또 이 시기만 지나면 성찰은 온데간데없이 기업의 이윤을 따지듯 투입대비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난무할 것이다. 600년전 세종시대에도 칠정산 프로젝트처럼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20년 동안 국가의 자원을 전략적으로 투자해서 했는데, 지금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전략 없이 우왕좌왕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