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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스테인드글라스+발전기=‘염료감응형 태양전지’

 

아름다움과 실용성 갖춘 3세대 태양전지로 각광
KIST태양전지연구센터, ‘종합연구소’ 장점 살려 상용화 기술 선도


2054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 날렵한 자동차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의 제품처럼 정확히 통제 아래 움직이고, 목적지만 입력하면 자동차가 교통통제시스템에 따라 알아서 운행하기 때문에 탑승자는 운전 대신 자신의 업무를 본다. 지붕 위의 태양전지를 이용해 충전하기 때문에 주유할 필요가 없다.

SF(science fiction)영화 속 도시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는 ‘태양전지’다. 건물은 자가발전을 하고, 휴대용 전자기기들도 알아서 충전이 된다. 아직까지는 태양광 에너지가 투입비용 대비 효율이 높지 않지만 점차 개선, 발전하고 있어 매우 ‘현실적인’ 공상과학 소재다.

하지만 여기에 수정되어야 할 오류가 하나 있다. 바로 영화 속 배경은 물론이고, 기기와 물품들이 모조리 청회색으로 표현되는 것. ‘염료감응(染料感應)형 태양전지(이하 DSSC:Dye-Sensitized Solar Cells)’가 개발되기 전에는 청회색으로 표현되는 것이 옳았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태양전지도 알록달록 총천연색을 띌 수 있다.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처럼 아름다운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원장 문길주) 태양전지센터를 찾았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정육면체의 태양전지. 한 면에 4개의 판이 부착돼 있는데 판마다 각각의 색깔과 디자인이 되어 있다. 그냥 보기 좋은 예술품이 아니라 태양전지임을 증명하는 건 조형물 위에 달린 회전날개. 조형물 아래로 빛이 비춰질 때마다 힘차게 돌아간다.

또 그 옆에는 작은 마을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모형 속 건물 뒤편 공터에는 가로세로 20cm 안팎의 붉은색 유리판 여러 개가 가지런히 배열돼 있다. 진한 빨강색을 띄고 있지만 투명하게 뒤쪽을 비추고 있어 무겁다거나 답답한 느낌이 없다. 잘 익은 석류알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잠시 후 유리판 아래쪽에서 빛이 비추자 가장자리를 둘러싼 기찻길 위로 작은 기차가 씩씩하게 달려 나온다. 빛이 사라지면 기차도 슬며시 걸음을 멈춘다.

두 조형물에 설치된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유리판들이 모두 DSSC다. 어둡고 투박한 실리콘 기반 태양전지와 달리 가볍고 투명해 ‘과연 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실용성을 의심할 만큼 심미적이다.

 

 

색을 입은 유리판이 태양빛을 만나 ‘전기’를 만들다
‘광합성’ 원리 이용, 제조과정·비용 대폭 절감
실리콘 보다 효율 낮지만 흐린 날도 가능, 응용분야 다양

DSSC는 1991년 스위스 로잔공대(EPFL) 화학과의 마이클 그라첼(Michael Gratzel) 교수가 처음 개발에 성공, 네이처에 소개되면서 알려졌다. 식물의 엽록소가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는 원리를 응용한 것인데, 햇빛을 받으면 전자를 만드는 특수 염료를 흡착해 발생한 전자를 외부 전극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류를 공급한다.

DSSC는 현재 많이 쓰이고 있는 결정질 실리콘계 태양전지에 비해 빛을 전기로 바꿔주는 효율이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제조비용을 1/3에서 1/5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결정질 실리콘계 태양전지는 원료인 폴리실리콘부터 잉곳, 웨이퍼, 모듈 등에 이르는 생산 공정이 복잡하고 소요비용이 크지만 DSSC는 저렴한 유기 염료와 전해질, 유리 혹은 필름 기판으로 이루어지므로 제조공정이 간단하고 투입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고민재 선임연구원은 "태양광에너지의 가장 큰 장점은 친환경 에너지라는 것"이라며 "태양전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도 훨씬 줄어든다는 점에서 DSSC의 장점은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또 DSSC는 반드시 직사광선이 필요하지 않아, 하루 전체 일사량으로 놓고 보면 실리콘계 태양전지보다 1.5배의 효율을 나타내기도 한다. 얇고 투명한 데다 염료의 색상에 따라 다양한 색도 낼 수 있어 건물 외벽이나 유리창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 반면 폴리실리콘은 햇빛의 위치, 구름의 유무에 따라 효율에 차이를 보여 태양광이 직각이 아닌 사선으로 비추거나 날씨가 흐리면 태양전지의 효율이 떨어진다. 이런 단점 탓에 실리콘계 태양전지는 빌딩 측면에 설치하기가 어렵다.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실리콘계 태양전지를 빌딩에 설치하면 외관이 칙칙하거나 삭막해 보인다. 햇빛이 내부로 들어가지 않아서 실내는 항상 어두컴컴하다.

고 선임연구원은 "DSSC는 흐린 날씨나 직사광선이 아니더라도 가동되기 때문에 건물과 일체형으로 설치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건물 외벽과 유리창 등에 활용이 가능해 현재 BIPV(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 System:건자재 일체형 태양발전시스템)로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나노마켓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2016년까지 DSSC 시장이 19억달러, 우리 돈으로 2조5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시장의 80%를 BIPV 방식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DSSC는 BIPV에서 상용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이 모색되고 있다. 미국의 로지텍은 DSSC를 활용한, '전원 없는' 무선 키보드를 만들고 있으며, 독일의 IT업체인 G24i도 DSSC로 휴대폰을 충전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 호주에서는 위장용 무전기 배터리에도 적용했다. 또 혼다나 폭스바겐은 향후 계획된 출시 차량에서 선루프에 DSSC 장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채광이 좋은 DSSC를 선루프로 사용하며 에어컨 가동 등 편의시설에 쓰이는 에너지를 공급하도록 하면 일반 소비자는 연비가 향상된 것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KIST 태양전지센터의 DSSC 에너지 변환 효율은 약 10%대 로 해당 연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DSSC는 직사광선이 필요 없으며 어두운 곳에서도 에너지를 모을 수 있어 염료 효율이 6%이상이면 상용화가 가능한 것으로 분류된다. 특히 연구팀은 지난 2009년 가시광 전 영역의 빛을 흡수할 수 있는 DSSC 기술을 개발해 경쟁자들보다 한 발 앞서고 있다.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염료를 크로마토그래피(chromatography) 원리를 이용, 선택적으로 흡착하고 탈착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연구팀은 유리가 아닌 유연한(flexible) 플라스틱 기판에 응용한 박막형으로도 제작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고 선임연구원은 "KIST는 종합연구소로서 핵심재료, 소자, 시스템 등 DSSC 전 분야의 연구가 원내에서 협업이 가능하다"며 "상용화에 있어서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DSSC 제작과정 체험]"판박이처럼 찍고 쿠키처럼 굽고 곱게 염색하면 제작 완료"

DSSC는 마치 식물의 광합성 작용처럼 색을 입혀 놓은 투명한 유리가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장치로서, 물질에 빛을 비추었을 때 물질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인 ‘광전 효과’를 이용한다.

고 선임연구원은 DSSC에 대해 "독일에서는 초등학생들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원리가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DSSC는 유리 등 투명기판과 빛이 들어오는 창(투명전극필름), 빛을 흡수하고 전자를 내뿜는 염료를 흡착한 나노입자들, 전자를 내어 놓은 염료에 전자를 다시 전달하는 전해질 등으로 구성된다.

제작과정은 먼저 미리 디자인이 새겨진 틀 아래에 유리기판을 대고, 나노입자와 전해질을 채운다. 나노입자에는 이산화티타늄(TiO₂)이 사용된다.

틀에 뚫린 미세한 구멍들을 통해 나노입자와 전해질이 새겨져 디자인이 완성되면 400℃ 안팎에서 굽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전자가 이동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할 나노입자들을 매끄럽고 단단하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후엔 원하는 색상의 염료로 유리기판을 염색한다. 염료는 일반 과즙이나 일반 염료를 사용해도 가능하지만 전자를 더욱 많이 배출하도록 금속화합물이 포함된 염료를 사용한다.

  


이렇게 만든 유리기판에 빛을 쬐면 빛을 받은 염료의 분자에서 전자가 나와 전류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전자를 잃은 염료분자는 기판 사이 전해질을 통해 다시 전자를 보충 받아 새 전기를 만들 준비를 한다.

고 선임연구원은 "DSSC는 이 과정을 반복하며 전기를 계속 생산한다"며 "이처럼 제작에 값비싼 원료가 필요 없고 공정이 간단해, 제작비용을 회수하는데 몇 년이 걸리는 실리콘계 태양전지와 달리 6개월이면 회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DSSC의 에너지 효율은 염료와 나노분말, 전해질, 기판 등이 어떤 재료로 이뤄졌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며 "염료와 나노입자 등 각 부분이 기능을 최대한 발휘해 전자의 흐름이 원활 할 때 가장 좋은 태양전지가 된다"고 말했다.

DSSC 기술은 다양한 학문영역이 융합되어 있는 종합과학의 산물이다. 또 발전(發電)이라는 고유의 기능 외에도 예술품과 같이 보기에도 좋아 일석이조의 태양전지 기술이기도 하다. 이제 미래의 도시에는 성당과 교회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발전까지 가능한 것으로 그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