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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취미가 연구로…'전통문화에 科技 입힌다'




 

전통문화과학기술사업단 '녹슬지 않는 유기개발·전통공예 건축소재 개발'등

KIST, 5대 국새 제작과 과학적 근거 바탕 문화재 규명 등 연구

한호규 단장 "뿌리 찾는 일 중요…전통+科技 고부가가치 창출"


망원동의 한 공방. 옻칠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한 과학자가 앉았다. 옻칠을 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공방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도 전문가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옻칠이 취미인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통문화과학기술사업단 한호규 단장이다. 


전통과학기술사업단은 전통문화에 첨단과학기술을 입혀 우리만 할 수 있는 전통문화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전통문화 대를 잇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소재나 과학적인 분석 등을 하다 보니 그들과의 스킨십이 중요하다. 


한 단장은 "퇴근 후 옻칠모임에 자주 간다. 어제는 자개를 만드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며 "한두 번 만나서는 그들의 속사정을 알 수 없는 만큼 현장 사람들과 계속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함께 작업하며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KIST는 90년대부터 전통과학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제5대 국새 제작을 총괄한 바 있으며(총괄 도정만 박사),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문화재의 제작 연도나 과정 등 밝히고 맥이 끊긴 전통문화를 복원하는데 힘썼다.


올해부터는 미래부가 선정한 '과학기술을 통한 한국 재발견 프로젝트'에도 선정돼 2021년까지 ▲녹슬지 않는 유기개발(연구책임자 김긍호) ▲전통 공예, 건축소재 기반 스마트 3D 프린팅용 소재개발(연구책임자 문명운) ▲전통문화산업 R&D Platform 전통르네상스지원단 구축(연구책임자 홍성태) 과제를 목표로 기획연구를 진행 중이다.


유기그릇의 경우 예로부터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대를 이어가며 사용하던 것으로 은은한 광택이 고급스럽고 탁월한 보온 보냉효과가 특징이다. 최근 유기가 유해한 균을 살균하는 등 몸에 이롭다고 알려지면서 고급 음식점에서 고급식기로 사용되며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유기는 사용 중에 쉽게 변색되고, 녹이 슨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전통문화과학기술사업단은 녹슬지 않는 소재를 발굴하고 표면처리 기술을 개발해 우리 전통식기 유기그릇의 우수성 유지와 전통식문화 확산, 유기그릇 대중화와 신 시장 창출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전통산업인데 재료는 수입산 “우리 뿌리 찾아야”


한호규 단장은 화학을 전공한 과학자로 전통문화과학기술사업단에 소속되기 전 신약을 개발하는 파트에서 활동해왔다. 그러면서 취미로 우리나라 전통공예인 옻칠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문화재청에서 시행하는 문화재 수리기능자격증도 취득했다. 취미가 연구가 된 셈이다.


그는 옻칠을 하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옻칠은 전통공예인데 좋다고 평이 난 안료는 일본제품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품이 개발되지 않는 이유가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지만 그는 "그렇다면 일본은 돈이 돼서 이 일을 하는 것일까"라고 반문하며 "우리의 뿌리를 찾는 일을 하면서 산업계랑 연결시킬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한 단장의 말처럼 돈이 되지 않아 명맥이 끊기는 일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명유'가 그 예이다. 명유는 우리 선조들이 단청을 마감할 때 발랐던 것으로 빗물이나 습기, 해충으로부터 단청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명유를 제조하는 명유장의 맥이 끊겼으며, 제조법에 대한 자세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요즘에는 명유 대신 들기름을 쓰는데 쉽게 마르지 않고 먼지가 잘 달라붙어 외관이 지저분해질 뿐만 아니라 들기름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일주일이 지나도 빠지질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한호규 단장팀은 여기에 아이디어를 더했다. 단청 수요가 많지 않으니 건축자재 실내용 마감재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하자는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명유는 생 들기름이 고분자화한 것으로 들기름이라는 전통소재를 친환경 도료 마감유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단청 전문가에게 직접 받은 알록달록한 샘플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의 실험실. 화학적 반응을 통해 냄새 나지 않도록 들기름을 짜 샘플단청에 직접 발라보는 등의 다양한 실험을 하는 그는 "들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며 "건축 마감재뿐 아니라 과일 싸는 봉지, 햄버거 싸는 종이, 생선초밥의 밑에 까는 종이 등의 코팅제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재연구, 문화산업 확산의 주춧돌”


빠른 경제성장으로 우리의 아름다움과 멋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급급했던 지난 우리의 모습이 있다. 아름다운 한옥 건물을 싹 밀어버리고 고층의 아파트를 세우거나, 더 이상 돈이 되지 않아 맥이 끊겨버린 전통산업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복산업이 다시 각광받고, 한옥마을에서 하루를 묵으며 한국의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새로운 변화가 반갑다.

현대 과학기술이 전통산업을 일으키는 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는 “전통문화의 대를 잇는 많은 예술가들이 더 아름답게 디자인 하고 마케팅 할 수 있도록 소재연구가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크리스털이라는 소재에 정밀가공이라는 과학기술을 더해 아름다운 액세서리를 만들어내는 유럽기업 스왈로브스키처럼 말이다. 


“우리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 말하는 한 단장은 “빠른 시일 안에 되는 일은 아니나 우리 전통문화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연구개발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주에도 전통공예 장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새로운 연구 과제를 준비 중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현장의 예술가들과 대화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전통공예가들은 수공업을 기계로 반자동화하는 것에 대해 크게 반대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을 기계로 작업함으로써 일거리를 뺏긴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을 잘못 활용하면 오히려 전통문화 활성화를 돕는 게 아니라 현장 예술가들의 먹을거리를 뺏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들과 터놓고 대화함으로써 현장에서 필요한 재료와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