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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STORY/카드뉴스

[카드뉴스]科技 아버지 최형섭 박사 '박사님이 그립습니다'


1966년 국내 최초 종합연구기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소)초대 소장

역대 최장수 과학기술처 장관 역임

우수한 해외 한국과학자들을 국내 유치

한국 과학기술의 기틀을 세운 사람 


‘한국 과학기술의 아버지 최형섭 박사’. 


최형섭 박사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사를 얘기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입니다.


1920년 11월 2일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미국 노트르담대학 금속공학석사, 미네소타대학 화학야금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한 그는 한국에 돌아와 국산자동차 주식회사 부사장과 원자력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며 국내 최초 소형자동차 제작 세부계획 마련, 현재 원자력 발전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스웨터 수출 기특한 일이지만 언제까지 스웨터만 팔껍니까”


원자력연구소장 재임시절, 박정희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스웨터 수출에 들뜬 박정희 대통령에게 소신발언을 한 최 박사. 당시 참석했던 VIP들은 박정희 대통령 눈치를 살피기 바빴지만 두 사람은 통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발언을 계기로 박 대통령은 ‘과학기술 발전’과 ‘공업화‘를 위해 연구소 설립을 결심, KIST 설립 임명장을 최형섭 박사에게 건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재(人材)였습니다. ‘연구소는 있는데, 이 넓은 연구소에서 누가 일을 하지’


브레인들이 대부분 해외로 유출돼 인재가 없어 고민하던 때 최형섭 박사는 해외로 흩어진 한인과학자들에게 조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냐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회신을 해주었고 과학자들을 직접만나 조국에 돌아오도록 설득했습니다.


"노벨상이 목표인 사람은 여기 남아도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고국 근대화를 위해 나와 함께 가자!"


가난한 조국의 근대화와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그 누구보다 간절했던 최형섭 박사의 외침에 과학자들은 공감했습니다. 뜻을 함께 하겠다고 결심한 18명의 한인과학자는 해외 좋은 여건을 다 포기, 과학기술 불모지나 다름없는 조국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KIST 초대소장 시절(1966∼1971) 최형섭 박사는 과학기술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연구 이외의 행정적인 문제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또 ‘계약연구 도입’를 도입해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연구자의 책임 있는 업무수행을 통해 공업연구 추진의 기본자세를 확립했습니다.


이로써 KIST는 발족 10여년 만에 수 천 건의 계약연구를 수행해 국가공업화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과학기술처 장관 시절(1971∼1978)에는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장관실 문을 늘 열어놓고 연구소 실장이나 대학교수가 쉽게 출입하며 상의할 수 있게 했습니다. 과기처 직원들의 불만이 높았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과기처에서 일하는 목적은 과학기술행정을 위해서가 아니다. 훌륭한 과학기술자가 더 많이 배출되는 바탕을 만들어 이들이 불철주야로 연구에 전념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에 전략을 다해야 한다.”(최형섭 장관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중)


이 외에도  대덕연구단지 건설을 계획·추진, 특정연구기관육성법 등 과학기술 발전 법적 토대 마련, 과학기술인 인재양성, 우리나라 최초 종합제철건설 관한 기본계획 수립 등 최형섭 박사가 과학기술계에 남긴 거보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학문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되어야 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故 최형섭 박사 ‘연구자의 덕목’-



생전 최형섭 박사가 늘 생각했던 연구자의 덕목. 최근 KIST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원내에 ‘연구자의 덕목’을 새긴 조형물을 설치했습니다. 그의 묘비, 그리고 조형물에 새겨진 연구자의 덕목은 여전히 연구자들에게 연구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형섭 장관님의 투철한 철학과 강한 추진력이 여러 과학자에게 귀감되고 있다. 과학입국 100년을 맞이하기 위해 남은 50년의 과학계에 과학기술 초심을 항상 되새기겠다"(2016년 2월 이병권 KIST원장 인터뷰 중)


“최형섭 박사님과 처음 만난 순간, ‘이분이라면 믿고 한국에 갈 수 있다. 평생 모셔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내 평생 한 치의 후회는 없다”(2016년 윤여경 초대 KIST 연구원 인터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