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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만나다

일본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만나다
KISTI 일본탐방단, 파나소닉 설립자 기념관 방문
"내 성공 비결은 가난·병약·배우지 못함이었다"
 

 ▲ KISTI 일본탐방단은 일본의 3대 경영의 신으로 불리우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기념관을 방문하기 위해 파나소닉 본사를 찾았다.
 ⓒ2011 HelloDD.com

'물건을 만들기 전에 사람을 만든다.'
일본의 파나소닉을 설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남긴 말이다. 일본 3대 경영의 신('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자동차'의 혼다 소이치로, '쿄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으로 불리우는 마쓰시타는 마쓰시타 전기기구제작소를 창업해 소켓을 시작으로 연결 플러그, 선풍기, 오븐, TV, 전자레인지 등 인간이 좀더 편리한 삶을 살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한 기업인이다.

그는 "돈 버는 회사를 만들기보다 사람들이 손쉽고 값싸게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소위 '수돗물 철학'으로 경영의 원칙을 삼았다. 일본의 몇번에 걸친 경제 혹한기에 한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그가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러한 그의 생각과 행동들은 '물건을 만들기 이전에 사람을 만드는 회사'라는 경영이념에서 비롯한다. 즉 사람이 제대로 돼야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온다는 것이다.

낡은 공장에서 겨우 3명의 직원으로 시작했지만 그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잘 묻어난 파나소닉은 오늘 날 세계 전자기기 시장을 좌우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겨우 초등학교 중퇴에 몸은 허약하고, 가난했던 그가 파나소닉이란 업체를 만들어 이끌 수 있게 된 근본 배경은 무엇일까.

그를 자세히 알아보고자 28일 탐방단이 파나소닉 본사 내에 위치한 마쓰시타 기념관을 찾았다.

오사카 가도마시에 위치해 있는 파나소닉 본사에 도착하니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조각상이 정문에서 탐방단을 반겨줬다. 조각상 뒤로 낮고 길게 본사건물이 뻗어있고 그 옆에는 탐방단이 둘러보기로 한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기념관은 파나소닉 창업 50주년을 기념해 설립된 것으로 그의 철학을 육성과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고안돼 있다. 전시 영상을 다 보려면 하루 이상 걸리고, 고노스케 비디오 라이브러리에 빼곡하게 꽂혀있는 영상 자료들을 다 보려면 일주일은 넘게 걸린다고 한다. (라이브러리에는 일본어 영어 중국어로 500점 이상이 전시돼 있다.)

▲마쓰시타의 인생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KISTI 탐방단.
ⓒ2011 HelloDD.com
탐방단은 파나소닉 관계자를 따라 마쓰시타 고노스케 인물 소개영상을 감상한 후 박물관을 둘러봤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그의 인생 역정에 대한 사진과 부연 설명들이었다. 여기서 잠깐 마쓰시타의 인생역정에 대해 살펴보자.

마쓰시타는 1894년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났다.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 4학년에 중퇴하고 오사카의 자전거상회와 전등회사 등에 입사해 기술을 배운다. 그러던 어느 날 전기로 움직이는 전차를 본 그는 앞으로 전기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 1917년 회사를 다니면서도 가격을 대폭 낮춘 소켓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기 이른다. 하지만 소켓은 보완해야할 사항이 많아서 잘 팔리지 않았다.

워낙 몸이 약했던 그는 매일 회사에 가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하루벌이 생활을 했던지라 회사를 안 가면 그날은 반드시 굶어야 했다. 마쓰시타는 이같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창업에 나섰고 그의 부인과 처남 이우에 도시오(산요전기 창업자)와 함께 목조 가옥을 빌려 마쓰시타 전기기구제작소를 설립한다. 그렇게 해서 첫 히트를 친 상품이 연결플러그. 이후 그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고장이 없는 전자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여러번에 걸친 경기 악화기에 다른 많은 회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마다 그는 회사의 운영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위기를 헤쳐 나갔다. 공장 창고에 쌓이는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오전에는 정상근무를 하고 오후에는 모든 직원이 판매직이 되어 재고품을 파는 형태로 회사의 운영을 바꾸면서 단 한명도 해고하지 않은 것이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일본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게 되었다.

◆ 그가 남긴 자필, 기념관에 빼곡…파나소닉과 직원들의 자산
 

▲기념관에 전시된 그가 남긴 오서.
ⓒ2011 HelloDD.com

기념관을 좀 더 둘러보니 복도 가운데에는 '스나오(素直、정직하고 온순한)'라는 말이 정성스럽게 유리에 새겨져 있었다. 그는 이 말을 대단히 중시했다고 한다. 스나오는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사물의 진실 내지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꿰뚫어보며 그것에 순응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그는 이 말을 그가 설립한 마쓰시타 정경숙(정치·경영학원)에서도 사용했는데, 자신의 마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대중의 지혜를 모아 여러 사람이 같이 움직이고 스스로 수양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념관에는 그가 자필로 남긴 글들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 때문인지 파나소닉의 간부진과 사원들은 마음가짐을 새로이 해야할 때마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마쓰시타의 경영이념과 철학이 담긴 글이 회사와 직원들에게 무엇보다 큰 자산이요 공부이기 때문이다.

마쓰시타의 경영이념은 그가 쓴 오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오서에는 ▲소지관철(초지일관과 같은 뜻)▲자주자립(주체적으로 움직여라) ▲만사연수(모든 것에서 배워라) ▲선구개척(남을 따라다니지 말고 자기 길을 개척하라) ▲감사협력(살아 움직이는 것 자체에 감사하라)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는 후배들에게 오서를 잊지 말 것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성공한 이유를 배우지 못하고 몸이 약했으며,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배우지 못해 남의 말에 귀 기울여야 했던 버릇은 최고 경영자가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으며, 몸이 약해 운동을 하던 버릇은 그를 95세까지 장수케 했다. 돈이 없어 어릴 때부터 일을 한 덕분에 남보다 일찍 세상만사를 배워 창업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주어진 것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가. 그의 일생을 돌아보며 생각해 볼 대목이다.
 

▲복도 한 가운데에 설치된 유리관에 마쓰시타가 좋아했던 '스나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2011 HelloDD.com

▲파나소닉이 만들어낸 1세대 제품들. 유리관에 넣지 않아 실제 모습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배려했다.
ⓒ2011 HelloDD.com


이번 탐방에서 실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투자와 기다림'이라고 하겠다.
한국을 떠나며 계속 머리를 아프게 하고 고민하게 하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와 일본의 과학 분야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는 부분들에 대한 아픔이다.
"정부는 연구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연구자는 정부에게 무엇을 보답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부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본다.
'투자와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는 일본 R&D분야의 특징, 인류에 공헌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겠다는 기업가들의 철학을 돌이켜 볼 때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연구의 자유로움이 도덕적 해이로 지적받는 우리의 현실이 가슴 아프다.
연구자를 포함해 모두가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가치체계를 새로이 재정립해야 할 때가 아닌지 가늠해 본다.
(KISTI 정보화전략팀장 정택영)

이번 탐방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문가들의 경영 마인드가 인상 깊었다. 이들의 철학을 다시금 인식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SPring-8과 같은 뛰어난 연구시설이 갖춰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봤다.
흔히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을 한다. 우리가 계란이고 뛰어난 연구성과가 바위라면 우리가 바위를 깨뜨리지는 못하더라도 금이라도 내기위해 노력하자. 우리가 열매 맺지 못하더라도 잎이 되어서 다음 세대를 위해 양분을 마련하자.
연구에 임하기전에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한 번 더 생각하며, 단지 ‘회사 일’이 아니라 ‘본인의 일’로서 인식하고 국가의 발전에 개인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KISTI NTIS사업단 한승우)

이번 탐방동안 일본을 찾아 기초과학에 관한 시설을 보며 놀라움과 부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 같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봤다.
향후 20년을 내다보고 연구개발에 투자를 한다는 시마즈제작소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어제와 오늘 얻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20년 전에 투자한 결과인 것이다.
우리의 오늘과 미래는 어떤지를 한번 더 곰곰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KISTI 차세대연구환경개발실 김영진)

일본의 연구풍토에서 본 “많은 혜택이 책임감을 불러 일으킨다”라는 점을 자신도 실감했다. 방문하는 탐방처마다 한국의 뛰어난 과학자라는 대우, 소개를 들으며 어느샌가 자신이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책임감을 깊게 느꼈다. 이번 탐방동안 자신의 업무와 관련이 깊어 뇌리에 깊게 남은 대목이 있다.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이다. KISTI에서 학술지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나에게 그는 충격이었다. 자신의 연구결과를 알리기 위해 외국의 학술지에 싣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이론물리학 저널을 창간해서 알렸다는 것을 들으며 작은 감동을 느꼈다. 적지 않은 한국과학자들이 한국 학술지를 무시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볼만한 대목인 것 같았다.
(KISTI 지식기반실 김병규)

흔하게 방문하기 어려운 연구소, 기업체, 학교 등을 견학하는 기회가 매우 유익했다. 탐방을 통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일본 과학계 전반에 흐르고 있는 ‘점진적 발전’에 대한 공감대이다. 20년 뒤를 내다보며 연구하는 시마즈제작소나, 어려운 환경에서 사업을 일으켜 종래에는 후진 양성에 힘쓴 마쓰시타 고노스케씨를 보며 ‘점진적 발전’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과거 50년간의 급속한 산업화에서 우리가 놓친 부분이 이런 마음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지금 우리부터라도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라는 공감대 형성을 시작해보자.
(KISTI 정보서비스실 김지영)

얼마 전부터 한국가요가 전 세계로 전파되며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우리의 과학도 곧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본이 1949년 패망의 사회에서 유카와 히데키의 노벨상 수상으로 떨치고 일어섰듯 우리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타는 날, 지금까지 웅크리고 있었던 과학계가 폭발적으로 터지며 전 세계로 펼쳐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미래는 그냥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날을 위해 맡은바 위치에서 연구하고 지원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KISTI 총무시설팀 전남식)

과학과 연구에 집중하는 삶 속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뛰어난 기업가들과 그들의 철학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 기업처럼 내외국인에게서 존경을 받는 기업이 한국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이번 탐방동안 만나고 깨닫게 된 부분들에 대해 한국에 돌아가 더 공부하고 스스로를 갈고 닦는 계기로 삼고 싶다.
(KISTI ASTI사업단 정희석)

탐방 기간동안 다양한 탐방처를 다니며 공통적으로 느꼈던 감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외부인을 대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그들의 자부심이다. 자신이 소속한 기관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 이러한 마음을 기반으로 한다면 긍정적인 생각들과 경영이념들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느꼈던 이 마음들을 가슴 속에 깊이 새기고 생활하며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KISTI 홍보협력팀 공주희)


<오사카 = 김지영, 이재택 기자> orghs12345@HelloDD.com
 


     

2011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