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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대세 거스른 과학자 "뭘 해도 10년은 해야 하더라"



신경과학연구단 이창준 박사 '비신경세포' 연구 한 길

비신경세포 新기능·관련 신호전달 메커니즘 규명 '경암학술상' 수상

"미지의 세계 뇌 연구, 삶의 질 향상 해결 열쇠"  



"뇌는 풀리지 않은 신비로 가득합니다.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인 셈이죠. 뇌 연구는 고령화시대 우리 삶의 질을 향상하는 한 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KIST 신경과학연구단 이창준 박사는 뇌과학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중요한 연구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뇌와 사랑에 빠진 지도 10여 년. 그는 기능 자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비신경세포' 연구를 통해 뇌의 신비를 밝히는 과학자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알려진 신경세포에 집중해 연구해 왔지만, 그는 비신경세포에 주목해 새로운 기능과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를 했다. 대세를 거스른 결과 이 박사는 비신경세포도 뇌의 학습과 인지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결국 밝혀냈다.


특히 기억력 상실과 치매 등 난치병의 원인을 비신경세포 관점에서 해석하고 규명해 차세대 신약개발 초석을 마련했다.

 

그간의 연구성과와 활동을 인정받은 이 단장은 최근 '경암학술상 생명과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경암학술상은 경암교육문화재단이 2004년부터 전공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학자·예술가들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시상식을 위해 최근 부산에 다녀온 이창준 박사를 만났다. 뇌과학을 시작한 계기부터 향후 계획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논밭 구르던 소년 '과학자' 되다


"김포의 작은 촌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가축을 키우며 생물학자를 꿈꿨죠. 그러다 대학에서 뇌를 접했고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산과 바다, 논과 연못을 친구삼아 지냈던 그는 다양한 생물체들을 접하며 생명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특히 집에서 키우던 닭 토끼, 돼지 등을 직접 사육하며 동물들의 신비한 생명력이 늘 관심사였다.

 

생명과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다. 이 때 생물학에서 중요한 화학, 유기화학, 생화학 등 화학전공 학부를 마치고 컬럼비아대 생리학과로 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처음으로 뇌의 신비를 접하면서 뇌 연구에 홀딱 빠져버렸다.


"대학원 지도교수께서 뇌과학 연구자셨죠. 그때 처음 뇌 연구를 접했고 신비하다고 느꼈습니다. 아직 밝혀진 것이 많지 않은 미지의 세계, 뇌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느꼈었죠."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지내던 때 이창준 박사는 당시 KIST 뇌 연구자 신희섭 박사의 소개로 KIST에 잠시 방문했다 귀국을 마음먹었다. 미국에서의 취업, 대학교수 등 제안보다 KIST에서 제대로 연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박사는 2004년 KIST에서 연구 랩을 구축하면서 본격적인 비신경세포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처음부터 비신경세포 관점 연구를 한 것은 아니다. 박사후과정에서 신경세포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용체의 활성화 메커니즘 연구를 통해 비신경세포의 역할이 적지 않음을 깨닫고 KIST로 오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비신경세포, 비만에도 관여? 新 비만억제제 개발 가능성 높여

 

"비신경세포가 언어, 비만에도 관여할까요? 최근 연구를 통해 관련 메커니즘을 발견했습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다이어트 등에 비신경세포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롭게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는 최근 연구에서 비신경세포가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다. 언어와 관련된 유전자가 비신경세포에서 발현되는 것을 발견, 이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것만으로 단어의 습득력이 약해지고 소통능력도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비만에도 비신경세포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식욕을 억제해 먹는 것을 줄이는 비만치료제와는 달리 비신경세포 억제를 통한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기대된다. 비만과 언어의 비신경세포 관련성은 현재 논문 게재를 준비 중이다.

 

이창준 박사는 최근 식품연과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의 비밀을 푸는 데도 성공했다. 그동안 피톤치드는 심신을 편하게 해주는 진정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정확한 작용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박사는피톤치드의 진정효과를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규명하는데 성공, 천연물 유래 성분의 수면제 개발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커피와 녹차 등에 들어있는 카페인이 뇌암 세포의 성장을 둔화시키는 것을 규명하고, 각종 정신질환의 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인 중추신경계의 지속성 가바가 소뇌의 비신경세포인 아교세포에서도 분비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바 있다.

 

연구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을까. 그는 '연구진들과 털어놓고 대화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후배연구자들이 스스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도록 연구 계획 고민 시간을 갖는다. 이후 미팅을 통해 아이디어를 모아 본격 연구에 돌입한다.

 

그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은 하향식 연구에서는 절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진행할 때 추진력이 다른 것이 그 예다.

 

그는 "남의 아이디어를 강요하는 것은 연구자를 의존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좋지 않으며 창의성도 많이 떨어지게 된다"며 "우리 실험실에서는 최소한 연구자가 스스로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게 하고 싶다. 그것이 함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논의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연구, 뇌과학을 통해 실현"

 

이 박사는 지난 9월 늦은 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제12회 경암학술상 생명과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내용이다. 그는 시상식을 위해 최근 부산에 다녀왔다. 수상자로는 이 박사를 비롯해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 이효철 KAIST 화학과 교수,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석학교수 등이 선정됐다.

 

수상자들의 공통점은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연구에 매진했다는 점이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랩을 구축해 10년 이상 연구한 분들이더라. 무엇을 하든지 10년 이상, 꾸준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KIST와 인연을 맺은지도 12년이 지났다. 그는 "지금은 마우스, 인간 뇌와 가까운 영장류를 통해 연구하고 있지만 앞으로 정말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의 비신경세포 작용과 뇌 질환 치료에 기여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며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한 연구를 뇌과학을 통해 실현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