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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STORY/KIST 소식(행사·연구성과)

소설가 김훈 창의포럼 개최(8.24)

그는 컴퓨터로 글을 쓰는 행위를 비천하다고 표현했다. 연필 없이는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다고 했다. 원고지와 연필, 지우개가 있어야 글쓰기가 가능한 아날로그 작가 김훈이 이메일 계정을 가질리 없다. 창의포럼을 기획하면서부터 강연하는 당일까지 작가와의 연락은 오로지 휴대전화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이상 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등을 수상한 김훈 선생과 자주 통화할 기회를 접한 것도 그의 지독한 아날로그 사랑 덕분이었다.

 

과학책을 사랑하는 소설가

김훈은 유클리드 기하학, 파브르 곤충기와 식물기, 그리고 다윈의 책들을 자주 읽는다. 네비게이션이 등장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항해의 기술’도 그가 즐겨 읽는 책이란다. 아날로그 문명의 수호자처럼 대중에게 각인된 김훈이 자신의 전공인 소설책보다 과학서적을 즐겨 읽는다는 것은 의외였다. 김훈 소설 특유의 간결한 문장이 왠지 과학과 닮았다. 그가 쓴 소설 속 문장은 과학의 언어처럼 상징성과 추상성, 모호성이 배제되고 명징함을 추구한다.

 

김훈의 삶과 ‘칼의 노래’

김훈이 풀어낸 이야기보따리의 시작은 한국전쟁 피난지 부산이었다. 미군들에게 조롱당하며 얻어먹은 초콜릿의 무서운 맛의 충격, 할머니와 어머니와 비교되는 양공주의 치명적 아름다움(선생은 날카로움이라 했다), 어린 김훈으로선 도저히 알 수 없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의 소설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작가가 수용소라고 표현한 대학에서 김훈은 19세 낭만주의 영시가 표방한 아름다움, 소망, 그리움, 동경, 열망, 그리고 신과 조화된 자연에 취해 있었다. 그러다 불현 듯 만난 책이 ‘난중일기’였다. 난중일기에는 영시의 낭만이 없었다. 거기에는 희망도 삶에 대한 보증도 전혀 없는, 강력한 적들의 공세에 전혀 의지할 데 없는 한 사내가 있었다. 김훈은 그 사내를 소설로 쓰고 싶었다. 그래서 40일 동안 쉼 없는 작업 속에 탄생한 것이 ‘칼의 노래’이다. ‘칼의 노래’에는 이념이나 가치를 담지 않았다. ‘칼의 노래’에는 이순신이라는 사내의 고독과 증오, 그리고 투쟁해야만 하는 고통을 담았다. 그 속에는 작가의 젊은 날의 경험도 부산에서 느낀 두려움도 들어있다.

 

동어반복이라는 똥통

언어에서 동어 반복은 똥통이다. 동어반복에 빠지면 새로운 표현으로 갈 수 없다. 작가에겐 ‘노랗다’와 그것의 사전적 정의인 ‘개나리꽃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노르다’는 동어반복이다. 이 동어반복 속에서는 인식의 확장을 기대할 수 없고 매일 자신이 글쓰기에서 부딪치는 문제라고 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무엇이 정의인가’는 완전히 다른 표현이다. 전자가 정의에 대한 모호한 질문이라면 후자는 구체적 일상에서 현존하는 문제가 정의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다. 그래서 후자의 정의는 다양한 ‘정의’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전자의 질문은 동어반복에 빠져 더 이상 논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라

작가는 언어의 과학화를 주문했다. 언어를 과학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주변을 과학적으로 보는 것과 같다. 주변을 과학적으로 보는 것은 저것은 무엇이고, 저것이 변하면 이것과 저것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질문하고 해답을 모색하는 것이다. 언어의 과학화의 핵심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 언어가 자신의 욕망인지, 자신의 의견인지, 본 것인지, 들은 것인지 뒤죽박죽 섞여서는 절대 소통을 할 수 없다. 그런 경우 말은 소통의 도구가 아닌 단절의 도구일 뿐이며 사실을 왜곡하는 정치적 언어이다. 사실과 의견이 구분되지 않으면 소통도 할 수 없다.

 

서두에 작가는 비논리와 무질서, 엉망진창, 뒤죽박죽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 무질서 속에 소설가적 상상력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강연 후의 느낌은 과학, 설득, 논리, 명징성이 더 잘 어울리는 과학자에 더 가깝게 보였다. 수개의 조사로 살림살이를 하고, 발표된 작품보다 앞으로 쓸 작품으로 평가받겠다는 대작가의 겸손함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