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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STORY/KIST 소식(행사·연구성과)

류춘수 이공건축대표 창의포럼 (10.19)

 

류춘수 이공건축 회장은 KIST 본관을 보면서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로 손꼽히는 그도 당신이 모셨던 김수근 선생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로워지는 모양이다.(KIST 본관의 설계자가 김수근 선생이다.)강연 도중 여러 차례 김수근 선생의 이름이 불려졌다. 회사이름인 ‘異空’인 것도 김수근 선생의 회사명 ‘공간’과 다른 공간이라는 의미와 그것을 넘어서는 Beyond Space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공간’을 넘어서려는 몸부림 안에는 큰 산과 같은 선생님의 존재감이 같이 녹아져 있는 듯 했다.

 

아이디어를 그리는 건축가

류춘수 회장은 본인이 지은 건축물과 설계도를 보며주며 강의를 시작했다. 건축물과 설계도 중간 중간 그림 몇 점이 섞여 있었다. 류춘수 회장은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림을 그린다.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 되며 글과 노래, 그림 등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했다. 류춘수 회장의 대표적 건축물인 방패연을 형상화한 서울 월드컵 경기장도, 한국건축의 명성을 세계로 알린 하이난 868타워도 그 시초는 아이디어를 담은 그림이었다. 사진보다 머리 속에 오래 남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는 건축가는 어딜 가나 붓과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隨時中處

건축가는 건축은 과학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라고 했다. 과학과 예술이 건축의 구성요소 이기는 하나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는 건축물의 예술성과 하이테크도 중요하지만 건축물 안의 사람과 사물의 모든 움직임을 세심하게 반영하고 컨트롤 할 수 있어야하며, 건물의 용도, 즉 실용성도 충분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치밀한 배려, 이용자의 관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건축은 인간을 탐구하는 인문학이다. 예술적 조형미와 어우러진 첨단기술, 선수와 감독, 관중의 다른 동선에 대한 고려, 월드컵 이후의 수익구조를 반영한 쇼핑몰, 영화관 등의 공간설계, 이 모든 것이 반영된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인문학의 최고봉이다. 건축물이 위치한 곳의 환경에 맞추고, 사람과 사물의 동선에 집중하고, 이용하는 사람의 필요와 조화를 이루는 ‘수시중처’가 류춘수 회장의 건축지론이다.

 

두날의 칼

류춘수 회장은 뒤로는 북풍을 막아주는 든든한 산과 앞으로 강이 흐르는 곳을 배산임수의 지형을 좋아 한다. 칼바람을 막아주는 산을 류춘수 회장은 우리의 전통에 비유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과 자긍심이 류춘수 회장이 말하는 두날의 칼 중 한날이다. 서구의 과학과 합리성이 다른 날의 칼이다. 최첨단 기술을 건축에 응용하면서도 한국의 미를 건축 속에 녹아내려는 류춘수 회장의 철학이 두날의 칼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노자의 동양철학이 담겨진 하이난 868 타워, 방패연 형상의 월드컵 경기장 지붕 말고도 류춘수 회장은 우리 전통건축의 철학을 설계에 반영해 오고 있다. 한옥의 긴 처마, 자연채광을 고려한 구조설계, 효율적 공간활용을 위한 기둥구조, 현관이 없는 집까지 류춘수 회장은 끊임없이 전통건축의 장점을 과학기술과 접목시키고 있다.

한국의 미를 가장 잘 살린다는 건축가 류춘수의 내면에는 우리 문화의 자긍심과 사람의 위한 건축철학, 치밀한 장인정신이 있었다. 월드컵 경기장 개장식에서 건축물은 지은 기업의 사장은 호명과 축하를 받았으나 실제 건축물을 설계한 류춘수는 이름조차 불려지지 않았다. 과학기술자를 우대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이 건축가에게도 예외는 아님을 보여준다. 어떤 이공계 사기진작방안보다 과학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과 솔선수범이 더 중요하다는 노 건축가의 주장이 여운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