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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영화평론가 심영섭 교수 창의포럼(06.27)

 

 

 

영화평론가 심영섭 교수는 올빼미형 인간인 본인을 이렇게 이런 아침에 불렀다고 애교어린 타박을 한다. 새벽 3시가 일상적 취침시간인데 오전 특강이라 아예 밤을 새우고 KIST로 왔단다. 본인의 강의는 90분은 부족하고 최소한 두 시간 이라며 급한 사람은 강의 중에라도 나가란다. 밤을 새운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에너지가 엿보였다. 실험에 젬병이여서 생명공학 연구자의 길을 포기하고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며 심영섭 교수는 강연을 시작했다.

 

시민케인 vs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심영섭 교수는 9,500편의 영화를 보았다. 어렸을 때는 주말의 영화를 두루 섭렵했고, 요즘도 매일 한편 이상의 영화를 본다. 5천편 이상 영화를 보게 되면 주로 일반인이 관심을 가지는 영화의 스토리, 배우, 음악보다는 영화감독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만의 고유한 영화철학, 촬영기법, 컷, 편집 등이 보인다고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배우와 스토리, 음악이 잘 어우러진 훌륭한 작품이지만 우리는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기억하지만 감독은 기억하지 못한다. 소설이 아닌 영화만이 가지는 독특한 색깔과 감독의 철학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없다고 했다. 이에 반해 흥행에는 참담하게 실패했지만 딥 포커스 촬영기법(Deep Focus,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한 화면에 잡아 내면심리를 모두 보여주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기법) 등 시대를 앞서가는 다양한 촬영기법과 제작방식으로 후대에 와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오손 웰즈의 ‘시민케인’은 다른 예술과 대비되는 영화만의 도두라진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영화의 속살 미장센, 편집, 카메라 움직임

 

‘배우와, 대사, 음악이 없이 바닥만 3시간 찍어도 영화일까요’ 예술매체로 영화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심영섭 교수가 청중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 심영섭 교수는 영화를 속살의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장센, 편집, 카메라의 움직임 3가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심영섭 교수는 3가지의 의미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 3가지 특징이 잘 반영된 영화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미장센은 화면 구도, 등장인물이나 사물의 배치 등으로 표현되는 감독의 철학이나 메시지로 미장센이 좋은 영화는 스토리 보다는 영화의 장면으로 기억된다. 편집은 영화에서 배경음악보다 더 음악적인 요소로 편집이 영화의 시간과 리듬을 만들어 내며 이를 통해 시간을 줄일 수도 있고, 늘릴 수도 있다. 컷 수가 많아질수록 화면이 더 역동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맞지 않은 잦은 편집은 오히려 관객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좋은 옷의 꼼꼼한 박음질처럼 좋은 영화도 편집의 솔기가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카메라의 움직임에서는 현장성을 강조하는 핸드 헬드(Hand-held, 다큐멘터리적 분위기를 강조할 때) 기법과 스테디캠(Steadicam, 편집하지 않고 공간을 무한정 늘리는 장점) 기법에 대해 설명하고 그 기법을 가장 잘 드러낸 ‘라이언 일병 구하기’(핸드 헬드)와 ‘어톤먼트’(스테디캠)의 전쟁장면을 비교하며 설명했다. 특히 어톤먼트의 경우 롱 테이크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낸 영화라며 꼭 한번 볼 것을 권유했다.

 

인생은 영화처럼 영화는 인생처럼

 

‘인생은 영화처럼 영화는 인생처럼’ 심영섭 교수가 방명록이 남긴 말이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란다. 강연 말미에 심영섭 교수는 영화가 삶은 풍성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보기위해 노력한다면 삶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직관의 힘이 생긴다고 했다. 우리의 눈은 우리가 생활하고 생각하는 좁은 테두리만을 바라보는 구식카메라라면 영화를 담아내는 카메라는 더 풍성한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라고 했다. 배우와 스토리에만 집중하지 말고, 영화의 속살을 볼 수 있는 3가지 요소, 그리고 약간의 인문학적 지식을 가진다면 영화를 더 영화답게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모두가 영화비평가가 될 필요는 없다.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 즐기는 것도 훌륭한 영화감상법이다. 하지만 때로는 심영섭 교수가 말한 것처럼 배우의 관점이 아닌 영화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은 감독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