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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먹으면 1등, 그러나 죽는다’…올림픽의 검은 유혹 ‘도핑’ 당신은 복용 하시겠습니까

 

 

 

잦은 약물 투여로 목숨을 잃은 스포츠 선수들
KIST 도핑콘트롤센터, 국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스포츠 우리가 책임진다!

 

 

 

2012 런던올림픽 개막이 D-4를 앞두고 있다. 전 세계를 무대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전 세계 스포츠 선수들은 오늘도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의 승부가 세계 랭킹 순위를 정하는 운동경기는 검은 유혹이 뒤 따르기 마련. 바로 ‘도핑(약물 복용)’이다. 도핑의 여부를 가려내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과학기술이다. 올림픽 개최를 맞아, 도핑 역사에 따른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알아봤다.

 '이 약을 복용하면 확실히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대신 부작용으로 7년 뒤 사망한다. 당신은 복용할 것인가?'

 

미국의 한 스포츠 잡지에서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에게 이 같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80%의 선수들이 '기꺼이 약을 복용하겠다'고 대답했다. 운동선수들에게 있어 성적은 목숨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도핑(Doping, 약물복용)이라는 단어는 Dope라는 술의 명칭에서 비롯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수렵민족인 카필족이 사냥을 나가기 전 사기를 높이기 위해 알콜이 강한 술(Dope)을 먹고 그 힘을 빌어 사냥했던데서 유래됐다.

 

그렇다면 도핑 관련 체계적인 룰은 언제부터 탄생했을까.

 

과거에는 선수들의 약물 복용에 대해 규정이 심하지 않았다. 역사에 따르면 B.C 3세기 고대올림픽 제전경기부터 19세기(1801년~1900년) 올림픽에서도 사용되어진 것으로 알려있다.

 

하지만 실제 약물중독으로 선수들이 목숨을 잃게 되자 세간은 도핑을 금지해야한다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1886년 프랑스 보르도와 파리사이의 600Km 사이클 경기에서 약물복용에 의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고,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경기에서 마라톤 우승자인 토머스 힉스가 경기 종료 후 과량의 흥분제 복용 때문에 졸도, 1906년 로마올림픽 사이클 종목에 출전한 덴마크의 커트 젠센 선수가 암페타민을 복용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심작발작 ▲빈맥 ▲간장손상 ▲고환기능 장애로 인한 성기능 퇴조 ▲불면증 ▲이상흥분 ▲정서불안 등 약물 부작용 때문에 동유럽에는 '코치, 감독을 맡을 50대가 없다는 괴담'이 돌았을 정도다. 그만큼 60~70년대를 주름잡았던 선수들이 생을 일찍 마감했다는 것.

 

선수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자 도핑에 대한 규제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1964년 동경올림픽부터 도핑을 스포츠 일탈 행위로 '자격박탈'이라는 제재가 검토됐고, 1967년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무분과위원회가 도핑의 정의와 금지약물목록을 발표해 1968년부터 그레노블 동계 및 멕시코올림픽게임부터 도핑검사를 실시했다.

 

 

도핑 금지약물 무엇이 있을까?

 

 

도핑금지약물은 현재 240 여가지로 정해져 있다. 도핑 관련 과학기술이 발달하는 만큼 수법도 교모해져서 약물의 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권오승 KIST 도핑콘트롤센터장은 “자신의 혈액을 뽑았다가 게임하기 전에 집어넣어서 산소 운반량을 증가 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 역시 금지목록에 들어있는 도핑방법”이라며 “임상단계에서 비 승인된 약물도 사용해선 안 되고, 이뇨제도 안 된다. 이뇨제는 고혈압 환자가 먹는 약이기도한데 소변을 묽게하기 때문에 약물 투여 사실을 은폐할 수 있어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도핑금지약물을 살펴보면 실제 일반 환자들이 복용하는 약물도 포함돼있다. 정말 아파서 먹어야 하는 경우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는 “치료목적사용 면제신청서(TUE)” 라는 증명서류를 작성해 KADA(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 제출하면 괜찮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흥분제류, 마약류, 근육강화제류, 유전자 도핑, 화학물리적 조작 등이 금지돼 있다.

 

 

시료분석 어떻게 이뤄지나?

 

 

도핑분석에 사용되는 시료의 대상은 '소변'과 '혈액'으로 화학, 약학, 생화학 분야의 전공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권 센터장에 따르면 IT발달과 새로운 도핑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시료분석은 어떻게 이뤄질까. 시료는 A, B로 나눠져 밀봉이 된 상태로 센터로 들어온다. 그러면 연구자들은 B 시료를 냉장보관하고, A 시료만을 오픈해 성분을 분석한다. A 시료로부터 결과가 나오면 KADA와 WADA(세계반도핑기구) 등 관련기관에 보고를 한다. 문제가 없으면 괜찮지만 금지약물이 나올 경우, B시료를 재 분석한다. 단 선수 (혹은 대리인)가 도핑콘트롤센터에 직접 방문해 간단한 설문을 한 후 직접 B시료를 오픈해주면 분석을 실시한다.

 

 

 

88 서울올림픽에서 남자육상 100M 금메달리스트였던 벤존슨이 도핑에 의한 실격 및 자격정지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강남에 도핑콘트롤센터가 있었는데 벤존슨이 직접 방문해 B시료를 확인하고 오픈, 재분석을 했었다. 하지만 또 다시 약물이 검출됐고 그는 그날 밤 비행기로 모국으로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14개국 중 16번째로 ‘국내 도핑콘트롤센터’ 설립되다

 

 

어떤 국가가 올림픽경기와 같은 거대 국제대회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국제공인 도핑콘트롤센터를 보유해야한다. 현장의 시료를 가져와 분석한 후 빠른 시간 내에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 내에서 운영하지 않으면 올림픽, 육상경기 등을 유치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나라는 88올림픽이 개최되기 4년 전인 1984년 4월 26일 KIST를 약물검사기관으로 선정, 그 해 9월 도핑콘트롤센터를 설립하고 약물검사 분석기술의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도핑콘트롤센터는 WADA(세계반도핑기구)가 시행하는 공인시험을 매년 3회에 거쳐 통과해야 정식 활동이 가능하다. 권오승 센터장은 "테스트 1회 당 총 6개의 시료가 오고 어떤 약물이 들어있는지 우리가 검사를 해서 결과를 보낸다. 공인시험결과가 기준을 만족하지 않으면 인증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세계에는 32개국이 35개의 국제공인실험실이 운영되고 있으며, KIST 도핑콘트롤센터는 14개국 16번째의 랩으로 선정돼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연간 5000개 이상 시료 분석, 도핑센터 24시간 풀가동

 

 

"평소 센터에 시료가 들어오면 텐 워킹 데이라고 해서 10일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올림픽이나 세계 육상대회같이 큰 대회의 경우, 24시간 혹은 48시간 내 보고를 해야하는 등 시간이 짧다. 2011 대구육상대회때도 48시간내 보고를 위하여 24시간 업무를 했었죠"

도핑콘트롤센터는 ▲1986서울아시안게임 ▲1988서울올림픽 ▲1999년 동계아시안올림픽 ▲1999년용평동게아시안게임 ▲2002FIFA월드컵대회 ▲2002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 ▲2011 대구IAAF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도핑시료를 분석하는데 참여해 대회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센터의 시료분석수는 5000개 이상으로 365일 기기가 돌아가고 있다. 권오승 센터장은 "2000년대 초 연간 시료분석 수는 700여개로 10여년간 큰 성장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며 "뿐만 아니라 2010년에는 혈액 파라미터 및 GC/C/IRMS에 대한 국제실험실공인기준인 ISO17025를 획득함으로써 분석수준의 범위를 모든 시료로 확장하게 됐다. 또 2011년에는 다성분동시분석법을 개발해 시료분석에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을 효율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포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우리 센터가 기여한 것은 센터에 근무한 선배연구원 뿐 아니라 센터 연구원 모든 분들이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묵묵히 맡은 업무를 열심히 수행해 준 덕분"이라며 선배연구원을 비롯 센터 연구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88올림픽 개최 당시 센터는 정직원만 30여명이 되는 규모였다. 그에 반에 지금은 20여명(정직원 6명)으로 규모가 많이 축소된 상황이다. 지속적으로 국제공인실험실로 인정받으며 도핑관련 연구를 수행해 나가는 일은 다양한 스포츠 행사를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하나다. 88올림픽을 통해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린 것처럼 다양한 경기를 유치함으로써 대한민국을 홍보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센터는 2014 인천아시아게임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등 대규모 대회를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할 계획이다. 권 센터장은 “큰 대회를 앞두고 인력, 시설, 장비 등 모든 면에서 꼼꼼하게 챙길 계획”이라며 “규모와 내용면에서 세계적인 센터가 되기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