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號 항해, 독일에 길을 묻다

 

"독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독일 제품의 경쟁력 때문이지, 환율 때문이 아니다." 이 발언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불균형 문제 제기에 대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답변이었다. `Made in Germany`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진다. 필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유럽연구소가 독일 잘란트주(州)에서 20여 년간 운영된 인연으로 독일 인사들과 교류하며 독일 사회의 내면을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됐다. 필자 눈에 비친 현재의 독일은 유럽 내 확고한 리더십 아래 정치·경제·사회 체계가 조화를 이루는 모범적 선진 강국이다. 현재 독일의 모습에서 국가 개혁을 추진하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주요 7개국(G7) 국가 중 유일하게 제조업 비중이 전체 경제의 20%가 넘는 독일은 벤츠,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은 물론 전 세계 2700여 개 히든챔피언 중 절반 가까이를 보유한 강소기업 천국이다. 글로벌 선도기업과 강한 히든챔피언의 조화는 독일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이다. 안정된 사회복지 체계 위에 새로운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제 상황뿐 아니라 중도우파인 기민-기사연 연합정당이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과의 연정을 통해 만들어내는 정치 체계도 흥미롭다. 각 정당의 국익과 국민을 위한 토론과 협의는 이념을 넘어 생산적인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화두인 4차 산업혁명 또한 독일이 미국과 함께 이끌고 있다. 값싼 인건비를 찾아 생산 기반의 해외 이전을 추진한 다른 선진국과 달리 독일은 자국 내 산업기지를 유지하기 위해 제조업 혁신을 끊임없이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은 고용 유지는 물론 공장 전체의 스마트화라는 `스마트 팩토리` 구현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국가 차원의 뒷받침이 더해진 것이 `인더스트리 4.0`이다. 그리고 이것을 확장시킨 개념이 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포럼 회장 눈에 비친 4차 산업혁명의 모습일 것이다.

 

"유럽연합(EU)은 독일과 프랑스가 함께 이끌던 `메르코지(Merkozy)` 시대에서 독일 단독의 `메르켈지(Merkelzy)` 시대로 바뀌고 있다." 티머시 가튼 애시 옥스퍼드대 교수의 표현처럼 독일의 위상과 리더십은 공고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유럽 일부 언론이 현 독일을 우려와 시샘 어린 시각에서 제3제국(나치)에 이은 `제4제국`의 출현이 아니냐고 평가할까. 독일은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1882년 고종이 독일인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를 외교부 차관 격인 통리아문 참의로 임명하면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된다. 독일의 시스템은 곳곳에 스며들어 우리나라 근대화의 기반이 됐다. 우리나라 헌법 또한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을 모델로 제정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라인강의 기적은 한국 압축성장 시대의 표상이었고, 아우토반에서 얻은 영감은 우리 경제 발전의 활로였다. 과연 이러한 독일 시스템을 지탱하는 근간은 무엇인가? 독일인들은 성숙한 합의 문화를 통해 게젤샤프트(Gesellschaft)라는 특유의 합리적인 공동체의식을 만들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기본과 원칙, 자율과 책임이라는 의식이 사회 곳곳에 스며 있다. 독일의 혁신은 실리콘밸리처럼 빠르고 폭발적이지 않지만 견고하고 지속적으로 진행돼 특유의 기술 역량과 경쟁력을 확보해나간다.

 

 필자가 독일 대학·연구기관 과학자들의 연구·실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도 철저한 기본과 원칙, 자율과 책임에 입각한 연구 방식과 자세다. 혁신과 변화가 핵심인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아이러니하게도 전통과 규율, 기본과 원칙이 견고히 내재된 독일이 있다는 사실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대비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하위라고 평가한 항목들도 그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부분이다.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자세로 우리가 축적한 자산을 다지고, 사회 전반의 내실을 가다듬을 때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앞당겨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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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ST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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