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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STORY/KIST 소식(행사·연구성과)

신입직원 교육(01.14)

 

들어오자마자 각자의 자리에 흩어져 바삐 일하느라 서로의 존재조차 미처 몰랐던 우리 신입직원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 교육 첫날, 반가움을 한가득 안고 교육장으로 향했다. 첫날은 KIST 선배이신 원장님을 비롯한 여러 보직자들로부터 KIST 생활에 꼭 필요한 말씀들을 전해듣는 시간이었다.

먼저 원장님의 말씀으로 이날 교육을 열었다. 여러 말씀 중 '잔소리'와 '가르침'의 차이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진정성에 있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이어진 KIST 선배들의 말씀에서는 모두 선배로서 신입직원들에게 최대한 의미있는 교훈을 전해 주시려는 진정성이 느껴졌고, 귀담아 듣는 우리 신입직원들에게서는 그 가르침들을 토대로 KIST에서의 꿈을 준비하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첨단' 과학기술 엘리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선비정신'?

KIST 연우회의 박연훈 회장님이 과학기술계 선배님으로서 우리 신입직원들을 위해 전해 주신 키워드는 조금 의아하게도 '선비정신'이었다. 선비는 한자어로 존재하지 않는 순 우리말로서, 조선을 지배한 '사대부'들을 칭한다. 이러한 역사 속의 선비가 오늘날의 첨단 과학기술 엘리트와 만나는 지점은 바로 현대 엘리트의 책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진리와 덕행에 대한 수양과, 사회와 국가에 대한 공헌 등과 같은 '선비도(道)'는 정확히 현대의 엘리트인 우리 KIST 신입직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특히 더불어 가는 공생의 가치가 대두되고 있는 최근,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하는 과학기술 엘리트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 마땅한 가르침이었다.

 

과학기술 연구 지원의 패러다임은 변화할 것이다

‘국가 과학자 1호’에 선정된 저명한 과학자인 뇌과학연구소의 신희섭 소장님은 연구생활의 선배로서 신입 연구자들을 위해 현실적인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셨다. 현재 한국의 연구실적은 양으로는 유수의 국가들과 견줄 만큼 굉장히 성장했다. 그러나 논문 인용 횟수 등 질적 인덱스를 살펴보면 오히려 과거에 비해 후퇴하는 양상마저 보인다고 한다. 이유는 연구자 수가 너무 많아짐에 따라 수준 미달의 연구들도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KIST의 우수한 연구원들에게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지만, 이를 통해 이제는 연구의 양적 성과보다도 질적 성취에 더 집중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 성과에 대한 집착보다는 장기적 안목에 따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과학기술 연구 지원의 패러다임이 이처럼 성숙하게 진화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비전이 생겼다.

교육 둘쨋날, 해도 채 뜨지 않은 컴컴한 새벽부터 KIST에 모여 다같이 버스를 타고 강릉분원으로 향했다. 지각도 할법한 빡빡한 일정이었음에도 모두 제시간에 모여 상쾌하게 강릉으로 떠날 수 있었다. 처음 가본 강릉분원은 깔끔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오죽헌의 도시답게 곳곳에 푸른 대나무들이 운치를 더해 주었다.

 

우리는 KIST 동기다

4개 조로 나뉜 우리는 조별로 '가족'이 되었다. '바람난 가족', '(10분 뒤)친해질 가족' 등 재미난 가족명을 짓고 서로의 역할을 정했다. 가장 어린 조원이 할아버지가 되기도, 가장 나이 많은 조원이 막내딸이 되기도 했다. '다른 조원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식사를 함께 한다', '술자리에서 서로의 흑기사/흑장미가 되어 준다' 등 톡톡 튀는 가족 규칙도 정했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덕분에 순식간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이 분들과 KIST 가족으로서 정답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자라났다.

 

나와 KIST의 비전을 우뚝 세우다

각자의 비전보드를 만드는 시간이 주어졌다. 주어진 자료는 패션·여성·인테리어·산악·낚시 잡지들 한 묶음. 올 시즌 최신 트렌드를 소개하는 형형색색의 패션화보를 뒤적이는 동기들의 얼굴에는 난색이 가득했다. "시사 잡지나 과학 잡지가 필요해~"라는 투덜거림도 들렸다. 나 또한 머릿속의 추상적인 비전들을 어떻게 잡지 속 이미지들로 표현해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 앞에는 거짓말처럼 형형색색의 비전들이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이어 조별로 모여 앉아 KIST의 비전보드도 꾸며 보는 시간을 가졌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달에 KIST 분원을 세우는 등 KIST의 장밋빛 미래가 하나둘씩 떠올랐다.

사실 비전이라는 것이 자칫하면 뜬 구름처럼 느껴져 피부로 와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며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나니 어느새 나의 비전과 KIST의 비전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77초,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마지막 순서로 팀별 게임 릴레이 대항전이 이어졌다. 언뜻 무슨 교육적 목적이 있는 것인지 의아해지는 제기차기-후프 넘기기-공 받기-좁은 공간에서 버티기 릴레이였다. 이 모든 것을 77초에 완수해야 했다. 모두들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땀흘려 목숨걸고 연습했다. 처음엔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던 미션들이 한번, 두번 연습을 거치고 나니 가볍게 달성되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몇십 년만에 다시 제기를 차고 후프를 돌리다 보니, 이틀째 이어지던 교육에 조금은 지쳤던 몸과 마음이 다시 신나는 에너지로 재충전되었다. 물론 그보다 더욱 소중했던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땀흘려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마지막 날, 원장님을 비롯한 보직자들과 우리 KIST 신입직원들은 하루동안 'KIST 봉사단원'으로 변신해 강릉시의 노인분들과 따뜻한 떡국을 나누었다.

 

떡국 한 그릇의 온기를 주고받다

쉽게 생각했던 떡국 나눔 봉사는 생각보다 고려사항이 많은 까다로운 일이었다. 야외 봉사장소의 수도관이 얼어 봉사 시작 전 탁자를 닦고 그릇을 헹구는 일부터가 난항이었다. 가까스로 떡을 불리고, 사골과 만두, 고명 등 재료를 '스탠바이'시켜 놓고, 커다란 솥 두 개를 설치해 준비를 끝마쳤다. 봉사장소에는 노인분들이 하나둘씩 도착해 떡국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셨다. 후식으로 준비한 귤을 껍질까지 직접 까놓으며 준비를 마쳤다. 마침내 떡국이 맛있게 끓여졌고 KIST 봉사단원들은 쟁반 가득 떡국을 실어 날랐다. 노인분들이 떡국을 맛있게 비우시는 모습을 보니 몇 시간 동안 추운 바깥에서 준비했던 보람이 있었다. 앞으로 KIST에서 일하면서 언제나 처음처럼, 떡국 한 그릇의 온기를 기억하며 나눔과 공생을 고민하라는 뜻에서 이런 소중한 봉사 기회를 마련해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적인 교육 일정 외에도 신선한 회와 함께 숱하게 건배를 외친 즐거운 저녁식사, 마지막 날 아침 추위를 이겨내고 지켜본 강릉 경포대의 해돋이와 소망을 적어 날려보낸 풍등도 잊을 수 없다. 너무나 알차고 즐거웠던 교육으로 시작한 덕분에 앞으로의 KIST 신입직원 생활도 정말 기대가 된다. 앞으로 초심이 그리워질 때마다 신입직원 교육에서 얻은 수많은 가르침을 떠올리며 KIST에서의 앞날을 펼쳐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