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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창의포럼] 김주영 작가 (박병수 기자)

 

 

작가들의 경험은 소설의 중요한 소재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읽은 난중일기가 모티브였고, 박범신의 은교는 강경의 황금들녘에서 경험한 치명적 아름다움이 주인공 은교로 형상화되었다. 김주영 작가의 창작에너지도 어린시절의 경험이다.

  

 

가난의 경험

 

김주영 작가의 유년시절을 대표하는 단어는 가난이다. 먹을 것이 없어 술지게미로 허기를 달랬다가 술 냄새 때문에 선생님께 혼이 났다고 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그가 즐겨 찾은 곳은 수돗가였다. 지독한 굶주림에 어머니께서는 소년 김주영에게에게 절대 뛰지 마라. 엎어지면 못 일어난다.’라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수업료는 고사하고 책과 공책을 살 돈도 없어 창호지를 엮어서 노트를 만들었다. 김주영 작가 연배의 아버지 세대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작가의 맛깔스런 비유가 그 시대를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김주영 작가는 그가 겪은 가난, 그로 인한 수치심, 고통, 응어리가 글의 소재가 되고, 창작의 에너지라 했다. 김주영 작가의 글에서 가난과 함께 늘 등장하는 것이 어머니다.

 

엄마, 엄마, 엄마

 

이런 연유에서인지 천둥소리’, ‘홍어’, ‘멸치’, ‘잘가요 엄마등 작가의 작품에는 어김없이 어머니가 등장한다. 전작들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상상 속의 어머니라면 잘가요 엄마의 어머니는 김주영 작가의 실제 어머니다. 아버지가 계셨지만 중학교 입학 후에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고, 어머니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가난은 필연이었다. 모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그 재혼이 작가의 어린 가슴에 못을 박았다. 작가의 기억 속에 어머니는 가난, 고통, 슬픔, 회한, 수치였다. 그 아픈 기억은 마흔이 될 때까지 작가와 어머니를 단절시켰다. 어린 시절의 처절했던 고통의 기억이 소설의 소재가 되고,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 후에야 작가에게 어머니는 은혜로운 존재로 다가왔다. 작가는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내면서 관계를 복원했다. 마음 속에 고통과 회한, 치명적 경험을 준 어머니를 빼고 작가 김주영과 그의 작품을 논할 수 없다.

 

, 유일한 친구

 

과부집의 가난한 아이인 김주영은 함께 놀 친구가 없었다. 외톨이 김주영에게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청송군 월전리 외톨이 소년 김주영은 책을 사기위해 80리 떨어진 안동까지 걸었다. 80리 비포장길을 책을 읽으며 걷다보면 집에 도착할 때 쯤에는 이미 새 책을 다 읽은 후였다. 대학시절 거지와 같이 생활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김주영 작가는 책만은 놓지 않았다. 가난한 외톨이 소년을 지탱해준 겪이 없는 친구 이 그를 작가의 길로 인도한 매개체였을 것이다. 김주영 작가는 미국의 여성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예를 들며 최악의 밑바닥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그녀를 변화시킨 것도 결국 책이었다고 했다.

 

호기심과 상상력

 

책이 김주영 작가 밥벌이의 길을 열었다면 상상력은 그의 작품을 풍성하게 하는 재료였다. 그는 이념이나 종교에 너무 몰입하면 반쪽 세상만 보게 되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라고 했다. 꿈꾸는 사람과 함께하면 저절로 꿈이 생긴다며 서식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비단잉어 코이의 예를 들었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관찰, 그것을 통해 얻은 지혜가 상상력의 원천이라 했다. 또한 모든 상상력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인문학이라며 독서와 영화감상을 권했다.

 

 

 

객주라는 작품을 위해서 전국의 장터라는 장터를 모두 다녔다. ‘화척이라는 작품을 위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개성을 가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절필선언을 했다. 작품에 적합한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밤새워 국어사전을 뒤졌다. 팔순에 이른 지금도 현장의 생생함을 작품 속에 녹여내기 위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김주영의 상상력은 철저한 현장정신에 있다. 우리는 80대 노작가처럼 치열하게 현장을 누비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