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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KIST Opinion

[전자신문] 연구시설·장비, 자체개발·공동활용으로 연구 역량 높이자(탄소융합소재연구센터 황준연 박사)

 

연구시설·장비, 자체개발·공동활용으로

연구 역량 높이자

 

전쟁터에 나간 군인에게 무기가 중요한 것처럼 연구자에게는 연구 장비와 시설이 중요하다. 연구 장비는 나노과학이나 뇌과학 같은 기초 과학뿐만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 환경공학기술(ET) 등 응용 과학에 이르기까지 연구의 성패를 좌우한다. 지난날 역사에서 우수한 무기는 전쟁의 승패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 현대의 치열한 과학기술 전쟁에서 연구자가 더 우수한 장비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연구 장비와 시설 수요는 일정한 패턴으로 발생한다.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필요성이 발생하면 새로운 연구 분야가 생겨나고, 이에 따르는 새로운 장비 개발이 요구된다. 사회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정도에 따라 연구 장비 수요는 비례한다.

 

국제 경쟁력을 만들어 내는 첨단 연구 장비 개발은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 집중돼 있다. 기초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 연구자는 스스로 우수 연구 장비를 개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사례가 많다. 연구에 적합한 장비 개발이 얼마나 중요한지 방증해 준다. 아직 우리나라의 연구 장비 개발 수준은 미흡한 실정이다. 복합 소재 분야도 소재를 합성·제어·분석하는 장비부터 부품을 제작하는 공정 장비까지 많은 장비가 활용된다. 그러나 고성능 장비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연구 장비 가격은 성능이 우수할수록 급등한다. 1% 성능 향상을 위해 지불하는 대가가 몇 배로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산업 구조에서 국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연구 장비 구입뿐만 아니라 자체 개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매년 초 연구계의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연구시설 장비 예산 심의' 준비와 평가 결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기술·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연구 시설, 장비 도입에 기울이는 관심이 크다. 대형 연구 시설, 장비 확충에 신중을 기한다. 규모 면에서 최근 5년 동안 연구 시설, 장비 구축에 든 비용은 4조원에 육박한다. 국가가 거시 차원에서 연구 시설, 장비를 구축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형·고가의 연구 시설, 장비에는 소중한 국민 세금이 투입된다. 중복 투자, 지나치게 높은 성능 등으로 도입되는 문제는 방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새로 도입하는 연구 시설과 장비는 '연구시설·장비 예산 심의'를 받는다. 국가 예산으로 구축한 시설·장비를 유효하게 활용해 연구자·연구기관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게 목적이다. 다른 기관과 공동 활용을 통한 교류 확대, 시설이 미비한 중소기업 지원, 데이터 생산, 기준 제시 등 공익 측면이 크다.

 

현재 장비 예산 심의 방식에는 개선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저부가 연구 주체인 연구자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중복 투자 방지, 공동 활용 같은 형식에 따르는 규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창의 및 미래 지향의 연구 활동은 위축될 우려가 있다. 연구 과정에서 경제성이 낮은 장비, 중복 구입이 불가피한 사례도 발생한다. 연구시설장비심의평가제가 심의에만 집중하기보다 연구 장비 자체 개발, 공동 활용, 자유로운 연구 풍토 조성에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현행 제도 개선을 위해 연구자와의 소통을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 실정에 적합한 최적 장비를 개발하고 장비 산업 육성, 연구 성과 제고 방안을 찾자.

 

시설과 장비만 갖춘다고 연구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연구 성과는 시설·장비뿐만 아니라 연구자의 뛰어난 상상력, 수많은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연구 장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쟁 같은 기술 개발 경쟁 속에 연구 시설, 장비는 가장 중요한 무기 가운데 하나다. 거북선은 당대 최고 전함이었다. 그러나 현대 해전에서 거북선을 타고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기술 개발 전쟁터에서 한 배를 탄 동료다. 국민 세금으로 도입된 연구 시설과 장비가 개인 소유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관련 연구계가 장비, 시설을 공유한다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 정부와 연구자 스스로 공익을 우선하는 자세를 갖추는 게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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