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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KIST Opinion

[디지털타임스] 역동적 연구문화가 `강한 한국` 만든다(윤석진 부원장)

 

역동적 연구문화가 `강한 한국` 만든다

 

대한민국의 관문 인천국제공항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공항이다. 국제공항협의회(ACI)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ASQ)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ASQ에서 5점 만점에 4.994점이라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올해는 인천공항이 세계 공항 서비스 수준 향상에 크게 공헌했다는 점을 특별히 인정해 '특별 공로상'도 수여했다. 학회, 국제협력사업 등 해외 출장으로 인천공항을 이용할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 세계 어떤 공항도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유럽 출장 중에 경험한 로마 피우미치오 공항에서의 경험은 두고두고 생각난다. 피우미치오 공항에서 출국심사소를 지나 대합실에는 생뚱맞게 그랜드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다. 장식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하고 피아노 공연을 위한 것이라 하기에는 준비가 너무나 부족했다. 음향시설도, 최소한의 관람용 좌석도 없었다. 그런 엉성한 곳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비행기를 기다리던 승객 한 명이 용감하게 피아노 덮개를 열고 의자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여러 국가에서 온 승객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다. 그 정도는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달랐다. 피아노를 연주하던 승객이 익숙한 가곡의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하나둘 행복 가득한 얼굴로 동참하여 합창을 시작했다. 어떤 이가 신청곡을 외치면 다른 이는 스마트폰으로 악보를 찾아 연주자에게 보여줬다. 낯선 이와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툴지만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피우미치오 공항의 품격은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생체인식 등 첨단기술을 총동원해 스마트 공항으로 만들겠다는 우리의 계획과는 차원이 달랐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탑승 게이트로 향한 뒤로도 합창은 계속 되었다. 생뚱맞은 피아노 한 대로 감동적인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단순히 유럽의 문화라고 넘어가기엔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다. 유럽에 머무는 동안 어떤 차이가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했는지 묻고 또 물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그들이 보유한 다양성과 포용성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기에 그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도 대응이 가능하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새로운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배움을 얻고, 협력으로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원천으로 본다. 그렇기에 나의 다름을 이상하게 보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서툰 연주, 노래 실력이라도 거리낌 없이 발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유럽 사회가 역사적으로 다양성과 포용성을 가진 사회는 아니었다. 효율성을 추구하며 획일적 사회를 지향한 나치즘과 파시즘이 사회의 주력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또 독일은 게르만족의 활동할 충분한 지리적 사회경제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라벤스라움을 주장하며 배타적으로 살인적인 이주 정책을 펴기도 했다. 7300만 명 이상의 귀한 목숨을 앗아간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화를 겪고서야 뼈에 새긴 교훈이 다양성과 포용이었다. 

 

지난 20세기 우리는 눈가면을 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와 같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효율성을 무기로 경제를 발전시켜왔다. 이를 통해 전쟁의 폐허에서 자동차, 조선, 반도체, 스마트폰 등 첨단의 주력산업 기반도 다졌다. 우리가 밟아 온 성공의 길은 효율성이라는 DNA를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당연히 다양성을 키울 여유를 갖기 어려웠다. 짧은 시간 내에 산업 일꾼을 길러내느라 교육도 획일화가 불가피했다. 효율성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우리에게 포용은 사치였는 지 모른다.  물론 지난 10여 년간 변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3년간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본부장 재임 기간을 되돌아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저성장이라는 뉴노멀 속에 창의를 토대로 한 혁신성장만이 유일한 대안이 된 지금, 우리 과학기술계 또한 다양성의 부족이라는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또한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자발적으로 경계를 허무는 융합을 기대하기에 우리의 포용성 수준 역시 아직은 끓는 점에 이르지는 못했다. 2016년도 기준, 상향식 개인기초연구사업 규모는 1조1085억으로 전체 국가연구개발사업 중 5.8%에 불과한 실정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정동 교수도 '축적의 길'에서 다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스몰베팅 스케일업 전략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도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바로 다양성과 포용성을 보유한 사회로 변모한 것이 아니다. 지독한 내부갈등과 반작용을 견뎌내야만 했다. 우리가 효율성이라는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와 다양성과 융합을 통한 효과성을 지향하는 사회가 되는 데에는 앞으로도 많은 노력과 고통을 필요로 할 것이다. 우리 과학기술계가 새로운 길에 선두에 섰으면 한다. 피아노를 치듯 누군가는 새로운 연구를 제시하고, 합창에 참여하듯 다양한 연구자들이 융합해 문제를 해결해 내는 역동적인 연구문화를 필자는 꿈꾼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친숙한 구호를 마음에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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