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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나는 기업인인 동시에 예술가"…원치용 하바지트 한국사무소 대표

 

[이색 KIST 人]경쟁을 즐기는 성격, KIST에서의 경력 발판으로 가는 곳마다 제 몫
각종 작품 전시회 참가서 음반 출시까지 영역 확장 중

 



 천천히 걸어가려도 나도 모르게 자꾸 빨리 가게 돼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가네/
회전목마 타는 순간 스쳐만 가는 화면 어지럽게 보이네 기억할 틈도 없이 지나쳐 버리는데/

여기서 쉬다가 금방 뒤쳐질까봐 악착같이 가게 돼 끝도 안보이면서 계속되는 경쟁/
맑은 밤 달빛을 올려 쳐다보면서 울어대는 늑대들 포기할 수도 없이 싸워야만 하는데/

(후렴)초조한 생각은 꿈속까지 따라오고 시간은 앞으로 얼마가 남았는지/
저녁이 올 때면 하늘 색깔은 예쁘고 너에게 다가가 힘껏 껴안아 주고 싶어/

천천히 걸어가려도 자꾸 빨리 가게 돼 계속되는 경쟁 속에 싸워야만 하는데/
                                                 곡명 : 경쟁(Competition)
                                                 작사․작곡 : 틴치용(Tynk Chiyong)


올 3월 발행된 앨범 ‘A gift for me’의 타이틀곡 ‘경쟁’의 가사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계속되는 경쟁 속에서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인간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 곡을 작사․작곡․편곡한 주인공은 바로 원치용 하바지트 한국사무소 대표다. 근무했던 다국적 기업마다 현지인으로 지사장을 맡은 경력이 돋보이는 원 대표가 음반을 냈다 하여 젊은 사람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20여 년간 몸담고 있던 각 기업에서 한국 지사장 겸 기술 마케팅 담당자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쌓아온,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긴 기업인이다. 음악만이 아니다. 8차례의 공동 전시회 참가에 이어 2005년 개인전까지 개최한 경험은 그의 또 다른 이색 경력이다.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기업 무대에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자기 위치를 확고히 굳힌 동시에 음악과 미술을 넘나드는 원 대표의 독특한 행보는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라는 궁금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KIST는 현재의 성공적 삶에 밑거름” 

원 대표는 5년간 KIST에 몸담았던 자랑스런 ‘KIST 人’이기도 하다. 그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KIST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며 “인생의 고비 때마다 KIST는 내게 큰 힘이 됐다”고 회고한다.

원 대표의 전공은 기계공학이다. 유네스코 파리 본부 임원으로 뽑힌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프랑스에서 공부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귀국했던 85년 원 대표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KIST와 만나게 된다. KIST가 특례 보충역으로 연구원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마침 뽑는 분야가 기계공학의 열 유체 쪽이라 원 대표의 전공과도 딱 들어맞았다.

KIST에서 맡은 일은 반도체 공정이나 병원에서 많이 필요로 하는 ‘클린 룸’ 연구였다. 그 때만 해도 반도체 산업이 막 걸음마를 뗀 단계여서 대기업들이 앞 다투어 설치할 만큼 클린 룸에 대한 수요가 많았으나 국내 기술은 질적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원 대표는 클린룸에 관련된 기술을 정립하고 표준화하고 부품 국산화의 토대를 잡는 데 동료들과 함께 온 힘을 기울였다. 한국 클린룸의 기술 기준 초안을 잡은 것도 기여했다.

연구를 통해 만난 동료들은 12년간의 외국 생활로 한국의 모든 것이 낯선 원 대표에게 많은 힘이 됐다고 한다. 그 때의 인연으로 지금껏 우정을 이어가는 동료들도 꽤 된다.
“사실 프랑스에서 나올 땐 학위를 다 마치지 못한 상태여서 병역 의무만 마치면 돌아가려고 생각했습니다. 현지에서 다 마치지 못한 과제도 있었어요. 하지만 5년간 KIST에서 연구하면서 한국에서의 삶에 적응하게 됐고 결혼도 했습니다. KIST 덕분에 이곳에 뿌리내리고 지금껏 살아가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겠죠(웃음).”
 
그는 과제 계획서나 보고서 등 서류 작성 노하우를 배운 것도 KIST에서 얻은 수확으로 꼽는다. 동료․선배들의 각종 보고 자료를 어깨 너머로 보면서 감각을 익힌 것. 이는 지금까지 줄곧 마케팅 계통에 종사하면서 각종 사업을 따내고 제품을 홍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천상 기업인”

병역 의무 이행 후 KIST 연구원으로서 남지 않았던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명료했다.
“저는 경쟁을 즐기는 타입입니다. 긴장감으로 터질 것 같은 치열한 산업의 현장이 바로 제가 있을 곳이죠. 경쟁에서 승리했을 때의 성취감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한 마디로 뼛속까지 기업인 체질인 셈이죠.”
그 때문에 원 대표는 연구의 길을 택하지 않고 전공을 바탕으로 한 기술 마케팅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 원 대표는 지금 근무하는 한국 하바지트를 포함, 5군데의 업체에 몸담았고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했다.

첫 직장이었던 외국 타이어 업체에서 원 대표는 고객사의 마음을 얻기 위해 3-4시간 걸리는 먼 거리 출장도 마다하지 않고 발로 뛰었고 고객사의 스펙에 맞는 맞춤형 타이어 개발하도록 연구원들과의 의사소통 역할에도 적극 나섰다. 결국 이 기업은 타 업체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국내 자동차 업체가 수출용 차량에 장착하는 타이어 물량을 독식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일상적이며 반복적인 업무는 견디지 못하는 원 대표는 첫 번째 회사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뤄낸 후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서 새로 둥지를 튼 곳이 산업용 특수 폐기물처리전문 업체인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 S사였다. 당시 S사는 한국환경관리공단에서 발주한 최첨단 산업용 폐기물 첨단 소각로 사업을 수주한 국내 대기업과 손잡고 기술 이전을 준비 중이었다. 국내 기업에는 아직까지 소각로를 운영하고 관리할 만한 노하우가 부족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원 대표는 소각로 운영․관리에 관한 기술 이전을 총괄했다. 파트너사 기술자를 교육․훈련시키는 것부터 소각로 가동 후 1년 간 프랑스의 핵심 기술자들이 상주해가면서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까지 원 대표는 모든 관련 업무를 관장했다. 이후 성공적으로 론칭된 이 소각로는 현재까지도 잘 가동되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원 대표는 그 뒤 덴마크 계 방송통신용 장비 전문 회사를 거쳐 2002년 현재의 회사에 안착했는데 우연하게도 KIST에 근무할 때 어느 회사에 낸 이력서가 계기가 됐다. 10여 년간 묻혀있던 이력서를 헤드헌터 업체가 발굴해 사람을 구하던 하바지트와 연결시킨 것이다.
           
산업용․전동용 벨트를 생산하는 하바지트에서 원 대표는 현재 국내 자동차 업계와 식품 업계의 플라스틱 벨트 시장을 선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죠”

가끔씩 나이가 들어 음반을 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7080 대상 가요나 트로트 계통을 선택한다. 원 대표는 다르다. 목소리와 가사, 스타일 면에서 50대가 발매한 음반치고는 믿기지 않는 젊은 감각을 자랑한다. 그의 예명 ‘틴치용’도 젊음을 상징하는 틴에이저(Teenager)에서 따왔다. 마치 중년이 된 후 젊은 시절의 꿈을 찾아 록 밴드를 재결성한 과정을 그린 영화 ‘즐거운 인생’의 주인공들 같은 느낌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 그들은 그리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살다 돌파구로 음악을 다시 시작했고 원 대표는 성공 가도 속에 젊었을 때부터 놓지 않았던 예술에 대한 열정을 활짝 꽃피웠다는 점이다.

“대학생 때부터 음악․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프랑스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면서 연주와 그림 그리기에도 소홀하지 않았죠. 현지에서는 손쉽고 저렴하게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제 첫 음반 속 타이틀곡인 ‘경쟁’은 그 시절에 만든 겁니다. 20년 만에 드디어 빛을 보게 돼 정말 기쁩니다.”




왜 이제 와서 전시회를 하고 음반을 낼 생각을 했을까. 원 대표는 한마디로 ‘필이 꽂혔다’는 표현을 서두로 꺼냈다.
“‘경쟁’ 후렴구를 보면 ‘초조한 생각은 꿈속까지 따라오고 시간은 앞으로 얼마가 남았는지’란 구절이 있습니다. 50대가 되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이젠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다’에서 ‘지금 아니면 안된다’란 쪽으로 생각이 급선회했죠.”
녹음 편집 기술의 발달로 컴퓨터 프로그램만으로도 작곡․편곡할 수 있어 원 대표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었다. 내친 김에 컴퓨터 프로그램과 전문 반주자․스튜디오의 도움을 받아 2009년 음반의 두 번째 곡인 ‘가만있지 않은 사랑’을 작곡했고 두 곡을 묶어 음반 발매에까지 이르렀다. 원 대표는 앞으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전시회와 음악 활동을 해 내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KIST 人으로서 KIST에 한 마디를 부탁했다.
“KIST가 세워질 당시에는 생산기술 연구가 주 목적이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기업이 전문연구소를 세워 현장에 바로 필요한 기술 위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KIST 같은 정부 출연 연구소는 생산연구 분야 외에도 기초 기술 개발에도 신경을 더 많이 쓰게 됐죠. 기초 분야 연구에 집중하다 보면 단기간에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정부와 KIST 구성원들은 KIST가 당장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기초 기술을 튼튼히 하는 산실로서의 거듭나도록 애써주시길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