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IST Talk/사내직원기자

[Dr.Jung's R&D Clinic] 6. 파인만 알고리즘(2)_정종수 기자

 

지난 칼럼에서 필자가 파인만 알고리즘을 설명하면서 단계 1 ‘문제를 쓴다’를 제치고 단계 2 ‘열심히 생각한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했습니다. 이제는 미루어둔 단계 1 ‘문제를 쓴다’, 즉 연구주제 선정을 다룰 차례입니다.

 

[ 파인만 알고리즘 단계 : 1. 문제를 쓴다 ]

 

파인만 알고리즘을 다시 써 봅니다.
1. 문제를 쓴다. 2. 열심히 생각한다. 3. 답을 쓴다.
1. Write down the problem. 2. Think real hard. 3. Write down the solution.

그럼 단계 1 ‘문제를 쓴다’에서, ‘문제를 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독자들이 연구를 처음으로 하기 시작할 때, 직접 ‘문제를 쓴’ 기억이 있으신지요? 필자가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선배의 연구주제를 이어받아서 연구를 시작했으니까 직접 ‘문제를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그 선배가 ‘문제를 쓴’ 걸까요? 그 연구를 왜 하는지, 왜 중요한지에 대해 그 선배가 설명하기는 했지만, 선배도 그 주제에 대해 잘 아는 상태는 아니었던 기억으로 보면 ‘문제를 쓴’ 건 아마도 지도교수님이라고 추측됩니다. 초보 연구자로서는 연구 분야나 주제에 대해 아예 감도 없고, 도대체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알기 어렵지요. 그래서 석사는 물론, 박사과정까지도, 지도교수가 논문 주제를 던져주는(?)거겠지요. 하지만 주어진 문제에 대해 연구를 해서 결과가 좀 나오고, 초보 단계를 벗어나면,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싶어지게 됩니다. 박사과정이라면 그래도, 내 주제를, 내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욕심이 생길 겁니다. 하지만 연구에 대해 조금 감을 잡은 2-3년차라도, 문제를 정확히 ‘쓰는’ 이 1단계를 잘 하는 건 여전히 많이 어렵습니다. ‘문제를 쓴다’는 것은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해결해야 할, 풀어야 할 문제를 잘 정의한다는 말입니다.

 
[ 어떤 연구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연구의 시작입니다. ]

 

필자를 포함해서 연구자들은 대부분 연구 프로젝트를 따고(?)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를 합니다. 그런데 연구 프로젝트 선정과정에서는 제출된 제안서 또는 계획서를 심사합니다. 어떤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푼다는 계획을 계획서에 제시하고 그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받아야만 하지요. 그러니, 어떤 연구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연구를 시작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입니다. 현실적 측면에서는 ‘열심히 생각한다’에 비해서도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합니다. :) 그러니까 연구자는 본인의 연구분야에서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문제에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서 헛수고를 하고 있다(finding precise answers to the wrong questions)”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헛수고를 하는 것은 ‘문제를 쓰는’ 데 실수를 범하기 때문이지요. 잘못 파악해서 문제를 '만들어 내는' 상황이 되면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기 때문에 ‘문제를 쓰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


문제를 잘 쓰기 위해서 어떤 것이 문제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막막하지요? 그럼 필자가 연구하는 '바이오가스 정제법'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질문을 하겠습니다. '바이오가스 정제법'은 파인만 알고리즘 1단계에서 이야기하는 '문제'라고 하면 맞을까요? 아닌 것 같지요? ‘바이오가스 정제법’은 '연구 분야'이지, 풀어야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연구 분야라고 부르기에도 사실 범위가 너무 넓은 것 같네요. 그럼 범위를 조금 좁혀 볼까요? '바이오가스 중 실록산의 정제방법'은 어떤가요? 이건 '특허 제목' 정도? 하지만 연구 ‘문제’는 아직 아닙니다. 필자의 7월 27일자 칼럼 4. 실제 연구과정을 한번 따라가 봅니다에 '바이오가스 정제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문제들을 정리했습니다.


문제 1.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려면 화석연료 대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문제 2. 우리나라에 적합한 경제성 있는 신재생에너지 대안이 없다.
문제 3. 가스터빈 발전도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문제가 있다.
문제 4. 바이오가스는 발열량이 낮고 불순물 문제도 있다.
문제 5. 실록산 제거 흡착제의 경제성이 나쁘다.
문제 6. 흡착재생용 실리카 겔 흡착제는 재생온도가 너무 높다.


연구문제 1. 폐열로 재생이 가능한 흡착제를 개발해야 한다.
연구문제 2.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연구질문 1.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떤 현상에 의해 결정되는가?
연구질문 2. RPA의 실록산 흡착-탈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여기서 필자는 문제 1~6, 연구문제 1,2, 연구질문 1, 2라고 썼습니다. 이것들은 언뜻 보면 모두 ‘문제’의 형식인데 굳이 구별해서 쓴 이유는 무얼까요? 단계 1에서 말하는 '문제'는 이 중에서 어떤 것일까요?


[ 문제인가, 질문인가? ]

 

연구에서는 문제와 질문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여기서 복잡하게 문제, 연구문제, 연구질문 이라는 용어를 쓴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문제→생각한다→답(Problem→Think→Solution)에서 단계 1에서 다루는 것이 ‘문제’일까요? 학교에서는 기말고사 등 시험을 많이 치는데, 시험 ‘문제’는 ‘문제’, 즉 영어로 problem일까요? 시험에서는 ‘문제’를 잘 풀어서 답(answer)을 씁니다. 맞지요? 그렇다면 시험 '문제'의 번역으로는 answer의 짝인 question(질문)이 더 맞겠네요. 이에 반해서 문제(problem)의 짝은 해법, 해결책이라고 번역하는 solution이 맞구요. 현실에서는 이 둘을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으니 엄밀하게 나누는건 어렵습니다. 또 용어가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는 문제와 질문을 구분하고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설명한대로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 문제이고, 답이 필요한 것은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자의 ‘연구수행전략’ 수업에서는 약간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문제와 질문을 확실하게 나눕니다.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연구개발의 목적으로 설정하는 반면에, ‘해결책’을 위해 필요한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을 잘 써서, ‘답’을 찾는 것을 연구 목표로 정하도록 합니다.


[ 연구를 위한 문제와 질문의 예시 ]

 

말로 설명하는 걸로는 이해가 쉽지 않지요? 앞에서 적은 문제와 질문을 예시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에너지원으로, 경제성 있는 신재생에너지인 바이오가스가 제시됩니다. 그런데 바이오가스가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바이오가스의 낮은 발열량과, 함유되어 있는 실록산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흡착재생용 실록산 흡착제, 즉 낮은 온도의 폐열로 재생이 가능한 경제적인 흡착제를  개발해야 합니다. ‘낮은 온도의 폐열로 재생-탈착이 가능한 경제적인 실록산 흡착제’라는 필자의 ‘연구 문제’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많은 ‘문제-해결책’ 단계를 거치지만, 아직 실제 연구에 도달한 건 아닙니다. 필자는 ‘연구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질문’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그 ‘답’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질문 1.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연구질문 2.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떤 현상으로 결정되는가?
연구질문 3. RPA 표면에서 실록산 흡착-탈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좋은 문제, 좋은 질문 ]


필자의 수업에서는 문제 1~6을 practical problems 즉 실제 문제라는 표현을 씁니다. 실제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진짜 해결해야 하는 좋은 연구 문제가 나옵니다. 그리고 ‘실제 문제’는 실제로 문제라야 합니다. 연구자들은 본인들이 하고 있는 연구 문제가 진짜 중요한 ‘문제’라고 모두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문제는 문제가 아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연구를 하기 때문에 그냥 그것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꼭 해결해야만 하는’ 심각한 문제도, ‘세상을 바꿀만한’ 해결책이 필요한 것도 아닌거지요. 그런 문제를 연구하겠다는 계획서를 냈는데 그 프로젝트를 선정해서 연구비를 주면 프로젝트 지원기관의 입장에서 큰 실수겠지요.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연구자들이 실제 문제가 아닌 문제를 문제라고 착각하고 연구를 하는 겁니다. 시간을 많이 들이고 열정을 가지고 연구를 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문제’에 대해 ‘정확한 답’을 찾는 연구라면 헛수고지요. 실제 문제가 아니라도 연구를 하면 논문을 쓸 정도는 됩니다. 하지만 이건 실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논문을 한 편 쓴 것이고, 당연히 좋은 논문도 아닐 겁니다. 논문이 좋은 논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문제를 쓰는게 꼭 필요합니다.


문제의 유형: 발생형과 설정형 ]


필자가 제시한 문제를 다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온난화 문제, 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화석연료 대체에너지원을 개발하는 문제, 우리나라에는 경제적인 신재생에너지의 생산조건이 좋지 않다는 문제, 대안인 가스터빈 발전도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문제, 바이오가스의 낮은 발열량과 불순물 문제, 실록산 제거의 경제성 문제, 실리카 겔 흡착제의 재생온도가 높다는 문제, 엔진 폐열로 재생하는 흡착제를 개발하는 문제. 이 중에는 모두들 ‘아 그건 정말 문제다’라고 공감할 문제와 ‘그것도 문제인가? 이해가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문제의 유형에는 ‘발생형’ 문제와  ‘설정형’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라도 문제라고 인정할, 이미 발생한 ‘발생형’ 문제와, 입장에 따라서 문제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설정형’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발생형 문제'가 공통적으로 인정받는 문제라면, '설정형 문제'는 '바람직한 상태'를 설정하고 그 상태에 비교해서 현재 상태가 문제라는 걸 이유를 제시해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연구자 본인이 지도교수님, 박사님을 설득해야 하면 ‘설정형 문제’입니다. 설정형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게 공감을 끌어 내야하니 이것이 당연히 어렵지요. 또한 설정형 문제의 대상인 ‘바람직한 상태’라는 것이 어떤 상태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렵고, 각자 미래의 상황을 어떻게 예상하는가에 따라서 결론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론: ‘질문’을 잘 쓰자. ]


이제 칼럼의 결론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꼭 해결해야만 하는’ 심각한 문제를 대상으로 삼고, ‘세상을 바꿀만한’ 해결책을 답으로 쓰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결책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적절한 ‘연구 질문’을 설정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다시 필자의 예를 든다면, 기술개발의 영역인 ‘바이오가스의 재생가능 흡착제’의 개발 연구문제에서 시작되었지만, ‘질문’은 ‘흡착제의 흡착가능온도는 어떤 현상에 의해 결정되는가?’ 또는 ‘흡착소재의 실록산 흡착-탈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하는 과학 연구의 영역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실록산의 흡착-탈착 메카니즘을 과학적으로 밝혀낸다면, 원하는 흡착-재생온도와 흡착량을 가지는 실록산 흡착소재를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뛰어난 연구자들을 만나보고 느낀 점은 연구만 많이 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꼭 풀어야 하는 문제를 잘 제시하고 그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연구에 집중해서 답을 찾아내고 그 문제와 답을 잘 설명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칼럼을 읽은 독자 여러분들도 연구도 연구 잘 하는 법 공부도 많이 하셔서, 모두 뛰어난 연구자가 꼭 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칼럼까지 안녕히 ~~

 

2017.09.11 [Dr.Jung's R&D Clinic] 5. 파인만 알고리즘

2017.07.27 [Dr.Jung's R&D Clinic] 4. 실제 연구과정을 한번 따라가 봅시다.

2017.07.10 [Dr.Jung's R&D Clinic] 3. 에디슨처럼 연구한다’는 말은 칭찬?
2017.06.09 [Dr.Jung's R&D Clinic] 2. 칼럼 제목이 Dr.정's R&D 클리닉?
2017.05.25 [Dr.Jung's R&D Clinic] 1. 연구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