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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류주희 연구원 부부, 7년 만에 실험실서 벗어나 크리스마스 추억 만들다


두 아이와 함께 가족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 도전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함께한 좋은 추억이 있어야 한대요”

KIST 의공학센터 테라그노시스연구단의 류주희 연구원과 한국무역보험공사에 다니는 그의 남편 조의리 씨는 둘 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공대 출신이다. 두 사람은 대학원시절 실험실에서 만나 연애를 3년이나 하고 결혼했건만 변변한 크리스마스 추억이 없다. 크리스마스 때도 실험실이나 도서관에 있었다는데, 조 씨의 변명(?)에 따르면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디를 가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란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특별한 이벤트를 기대하는 다른 젊은 여성들과 달리 흔쾌히 실험실에 동행해준 여자친구의 진심에 감동한 조 씨와, 남자친구의 낭만보다는 성실함과 한결같음을 높이 산 류 연구원은 아마도 천생연분이었던지 두 사람은 순탄하게 결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부부가 됐다고 두 사람의 크리스마스가 더욱 특별해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각자의 일과 연구에 바빴고, 2009년 12월 첫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육아까지 겹쳐 더더욱 기념일을 즐기기 힘들었다.

그런 부부가 결혼 4년, 사랑을 시작한지 7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추억 만들기에 나섰다. 두 사람은 이미 산타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확신의 단계로 가는 시기에 접어든지 오래지만, 만3세가 되면서 부쩍 말이 늘은 첫 딸 하린이가 “산타할아버지 집에서 본 트리를 만들어보자”며 두 눈을 반짝였기 때문이다. 마침 KIST에서 가족 트리 만들기를 지원하는 이벤트를 진행했고, 류 연구원이 이벤트에 당첨되는 행운을 안았다.


류 연구원의 가족이 트리를 만든 건, 지난 19일 저녁 8시. 그날 오전 국내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져 나라가 뒤숭숭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세미나에서 성실히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고, 온 가족이 처음으로 트리를 만들 생각에 들떠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류 연구원의 추억 만들기 현장을 찾아가 봤다.


네살박이 딸의 첫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 “이거는 엄마 별, 이거는 나(내) 별”

“꺄르르르~”

집안에 들어서기 전, 여자아이의 웃음소리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거실 가운데 세워진 아직은 푸른색 그대로의 크리스마스 트리 주위를 하린이가 춤을 추며 빙빙 돌고 있다. 기분이 좋아서일까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소위 ‘배꼽인사(두 손을 배꼽에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90도 이상 숙이는 인사)’를 하고는 장식물들을 가져와 구경시켜 준다. 초승달처럼 가늘어진 눈에 즐거움이 한 가득이고,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선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린아, 크리스마스가 뭔지는 아니?”


재차 물어도 대답 없는 하린이 대신에 옆에 있던 류 연구원이 “하린이가 잘 모르는 건 짐짓 못 들은 체를 한다”고 설명하며 대신 하린이가 대답할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트리 어디서 봤지?”라고 묻는다. 엄마를 닮아 흥분하면 목소리가 커진다는 하린이가 어느 때보다 우렁차고 씩씩한 목소리로 “산타할아버지 집에서”라고 대답한다. 옆에서 류 연구원이 “마트나 어린이집에서 본 거 아니냐”고 확인해도 하린이의 생각은 달랐다. 하린이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본 것은 분명 산타할아버지 집에서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본다는 남편 조의리 씨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무엇보다 하린이가 좋아하는 모습이 가장 흡족한 듯 했다. 조 씨는 “크리스마스에 좋은 기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그런 기억들이 나중에 힘든 일이 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이번 이벤트의 목적을 설명했다. 그는 “하린이가 세 돌이 될 때 이런 기회를 마련하게 돼서 행복하다”며 “아이가 매우 좋아하는 것이 무척 기쁘다”고 덧붙였다.


살짝 졸린 표정으로 한 쪽에 앉아 구경하던 9개월 된 둘째 아들 하율이도 분위기가 익숙해지자 슬슬 반짝이는 장식물에 손을 뻗는다. 하율이의 손에 잡힌 장식물들은 나무에 걸리지 못하고 곧장 작은 입으로 직행한다. 중간 중간 인터넷으로 완성된 트리 모델을 참고하랴 하린이의 질문에 대답해주랴 바쁜 류 연구원의 임무 중 하나는 하율이의 입에서 장식물을 늦지 않게 구출하는 것. 류 연구원이 가루가 떨어지거나 부서질 염려가 큰 것 대신에 비교적 안전한 것들을 갖고 놀게 해줬건만 금세 하율이의 얼굴에는 반짝이가 여기저기 묻어있고, 낑낑거리며 상자 하나와 씨름 중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의 에이스는 역시 하린이. 작은 손으로 부지런히 장식물을 나무에 걸며 “점점 예뻐진다”고 좋아한다. 하린이는 어느 틈에 트리 밑동에 덮는 장식 천을 치마처럼 허리에 두르고 있다.

웃음으로 이어진 꾸미기 작업이 1시간쯤 지났을까, 트리에 조명을 밝히고 주변에 인형친구들을 세우는 것으로 류 연구원 가족의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가 완성됐다. 처음 만드는 것이라지만 하린이의 천부적인 트리 만들기 소질 덕분인지 산타마을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완성된 트리를 앞에 두고 류 연구원에게 소원을 묻자 “남편이 광주에 가서 너무 우울해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고 우리 가족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길 바란다”고 대답한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습기가 가득하다.


사실 크리스마스를 늘 일상의 하루와 다름없이 보내던 류 연구원 부부가 유독 올해 추억을 만들어보자고 나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조 씨가 광주로 발령을 받아 떨어져 지내게 된 것. 예상보다 일찍 발령이 결정돼 트리를 만드는 당일, 조 씨는 다음날 새벽 5시 기차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둘 다 애정표현을 잘하거나 무슨 일에 유난을 떠는 성격들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며 기쁨을 함께하고, 힘들고 지칠 때는 서로를 많이 의지했던 터라 걱정과 아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연구만으로도 힘든 류 연구원에게 어린 두 아이까지 오롯이 맡겨놓고 떠나는 조 씨의 마음도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조 씨는 “부친이 순환근무를 하셔서 그리움을 많이 느끼며 자랐기 때문에 가족이 같이 있을 때의 행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가족이 항상 같이 있어야 하는데 타지 근무를 하게 돼 아쉽지만 주말마다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크리스마스 소원은 아주 현실적인 바람들인데, 내가 없는 2년 동안 애기들이 안 아팠으면 좋겠다”며 “손이 많이 가는 시기에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부인이 힘든 고비를 잘 넘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