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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남이 가지 않은 길에서 '답' 찾을 수 있죠“

 

 

 

 

박태진 원장, KIST연구원에서 지속가능경영원장으로
“산·학·연 경험 살려 소통 가교역할 할 것“

 

 

이공계 출신으로 KIST에 몸 담았던 한 과학자가 어느 날 '경영'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고자 연구소문턱을 나섰다. 이공계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연구만 했던 터라 경영에 대한 지식은 부족했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은 그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렇게 대한상공회의소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이 된 박태진 원장은 지난해 연임까지 하며 4년 째 기업과 정책입안자들 사이에서 소통 가교역할을 이어나가고 있다.

 

과학기술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과학자가 됐지만 지금은 산업계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기업인과 연구자 간의 브릿지 역할을 하고 있는 박태진 원장. 그는 왜 경영을 택하게 됐을까. 박 원장을 직접 만나봤다.

 

 

꿈의 직장 KIST 입사, 그러나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박 원장은 6.25전쟁 휴전이 막 시작된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 그야말로 먹을 것, 입을 것 하나 없는 시절에 태어나 배고픈 유년기 시절을 보냈지만 작은 체구와 달리 힘 있는 걸음걸이와 말투에서 그의 강직함이 묻어났다.

전 국민이 가난했던 시절,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발전을 이룩해냈던 것은 과학기술이었다. 공대를 나온 젊은이들이 경제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과학자가 돼야겠다'마음 먹은 그는 먼저 학업에 충실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하며 진정한 과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대학원생활을 하며 다양한 연구를 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꿈의 직장 KIST에 입사 한다.

Q. KIST에는 어떤 계기로 들어왔는가.

 

 

A. 어릴 적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다. 과학기술을 공부해 국가에 기여하고 싶다 생각해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원을 다녔고 졸업한 해인 1977년 KIST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당시 KIST는 과학기술계 사람들에게는 꿈의 직장으로 KIST를 다닌다고 하면 일등 신랑감으로 불렸다.

 

 

Q. 4년 후 미국으로 떠났다가 다시 KIST로 돌아왔다 들었다.

 

 

A. 4년 정도 일하니 외국에서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많이 배우고 돌아와 크게 기여하자는 생각에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석사, 박사과정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하기에는 여건이 취약했다. 기왕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신문에 날 정도였으니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Q. 꿈의 직장을 떠난 미국 유학, 힘들진 않았나.

 

 

A. 당시 우리나라와 미국의 GDP차이는 20배가 넘었다. 한국에서 대단한 재벌이 아닌 이상 미국에서 가난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다. KIST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돌이 갓 지난 아이와 부인 셋이 미국을 가야했다. 소위 전액 장학금 (full scholarship)을 받았지만 등록금 면제와 싱글 학생이 최소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 식구가 쓰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아내가 베이비시터도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지금까지도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Q. 미국 유학 후 KIST에서 어떤 연구를 했는가.

 

 

A. 귀국 후 KIST에 다시 입사해 미국 유학에서 공부했던 석유화학 촉매를 연구했다. 촉매는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많이 사용되며, 특히 석유화학분야에 많이 쓰인다. 그런데 90년대부터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환경오염물질을 제거하는데 촉매를 쓰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청정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됐고 환경관련 프로젝트에 투입돼 연구를 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 성과는.

 

 

A. 처음 KIST에 입사해 연구원으로 일할 때 냉매로 널리 쓰이는 염화불화탄소(CFC)를 국산화하기 위한 연구에 참여하였는데 유학 후 다시 입사했을 때 CFC가 오존 층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대체물질을 제조하는 연구에 참여하게 됐다. 이 때 환경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학협력단장, 산·학·연 첫 가교역할을 시작하다

 

 

전 세계가 환경오염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 우리나라 역시 관련 프로젝트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박 원장은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에너지환경전문위원으로 파견돼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국책과제를 관리하기에 이른다. 프로젝트를 관리하면서 연구소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지식들을 습득했고, 이 경험은 그를 경영의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Q. KIST에서 산학협력단장과 KISTEP 전문연구위원 등 연구 외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있다.

 

 

A. 유학을 마치고 친정으로 돌아와 17년간 연구생활을 했다. 그러다 2003년 KISTEP 전문위원으로 파견근무를 했다. 전문위원들은 당시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연구비가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사업기획, 세부과제 선정과 연구수행 평가 등을 수행했다. 2년간 에너지환경연구를 담당했는데 시험실에서 떨어져있다보니 연구의 전문성은 없어졌지만 대신 환경에너지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보는 시각을 갖게 됐다. 2005년 KIST로 돌아와 산학협력단장을 맡게 됐다. 산학협력단은 ▲연구소에서 개발된 기술을 산업계에 이전하고 판매하는 역할과 ▲대학원생을 KIST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했다. 그때 산업계와 학계를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Q.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어떤 계기로 지원하게 됐나.

 

 

KISTEP 에너지환경전문위원, 산학협력단장, 한국청정기술학회장 등 활동하며 산업계 및 학계와 함께 일을 많이 했다. 그 경험을 살려 산·학·연간의 가교역할을 해보고자 도전하게 됐다.
 

Q. 지속가능경영원은 어떤 업무를 하는 곳인가?

 

 

A. 지속가능경영이란 말 그대로 회사가 오래도록 지속경영 하는 것을 말한다. 오랜기간동안 회사가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트리플 버텀라인(triple bottom line)이 중요하다. 트리플 버텀라인이란 기업 이익, 환경 지속성, 사회적 책임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기업 실적을 측정하는 비즈니스 원칙을 말한다. 기업이 아무리 돈을 잘 번다고 해도 환경을 파괴한다던지, 소비자를 속이거나 근로자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오래 버틸 수 없다. 이것이 지속가능 경영의 개념이다. 지속가능경영원은 기업들이 트리플 버텀라인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산업계의 의견이나 건의사항을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에서 입안한 정책을 산업계에 안내하는 일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환경규제에 관련된 공지를 기업에 전달하기도 하며, 산업계에 필요한 새로운 법안을 만드는 것에도 힘쓰고 있다.

 

 

Q. 환경 전문가로 기업의 환경지속성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이산화탄소 감축을 강조하는 듯하다.

 

 

A. 일반적인 환경물질은 방출되면 지역주민들이 실시간 피해를 입게 되지만 이산화탄소는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까지 피해를 입힌다. 특히 지금 당장이 아닌 20~30년 후에 지구에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Q. 지속가능경영원에서 이산화탄소 감축 R&D를 집행하는 일도 하고 있나.

 

 

A. 지속가능경영원은 과학기술계 연구기관과는 달리 기술개발 연구는 수행하지 않지만 국내외에서 개발된 신기술을 산업계에 소개하거나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에너지 관리기법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Q. 연구자가 기업을 대변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어려운 점은 없는가.

 

 

A. 지금 3대 원장인데, 1대 원장은 경영학 박사였고, 2대 원장은 경제학 박사였다. 그러나 두 분은 환경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환경경영, 나아가 지속가능경영 전문가가 되셨다. 반면에, 나는 환경 분야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전 원장님들에 비하면 경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다행히도 KIST에서 산학협력단장을 맡았던 경험이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Q. 향후 계획.

 

 

A. 연구소 생활을 할 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이공계 사람들이었지만 지속가능경영원에서는 주로 문과사람들과 만난다.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과·이과 단절이 심하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기업인들은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연구를 요구하지만 연구자들은 필요한 기술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연구를 하다 보니 수요가 맞지 않는다. 이공계 전문가로서, 지속가능경영원에 몸을 담고 있는 원장으로서 두 분야가 소통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브릿지 역할을 하고 싶다.

 

 

Q. KIST 후배들에게 한마디.

 

 

 

A.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와보니 매우 흥미롭다. 이공계 출신이 꼭 기초연구나 기술개발을 위한 응용연구만 해야 한다는 선입관을 버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해줬으면 좋겠다. 또 기업과 공동 연구할 때 그 연구가 정말 산업계에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해주길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산업계가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길 바란다.

 

부족한 회사경영 지식을 채워주기 위해 그의 자리에는 경영책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려는 열정과 노력이 박태진 원장을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제일 큰 원동력이 아닐까. 과학기술계가 배출한 경영 리더로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