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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news

대한민국 5대 국새…피말렸던 400일간의 제작기

대한민국 5대 국새…피말렸던 400일간의 제작기 
금 41kg 투입…1차 주조 실패·예산 부족·용접 실패 등 다사다난
도정만 KIST 박사 "국새엔 돈 뿐아니라 국가철학·기술이 함께 담겨"
 

 ▲ 제 5대 국새의 예비실험에서 제작까지 실무 책임을 맡은 KIST의 도정만 박사.
 ⓒ2011 HelloDD.com
"태극기와 국장(나라문장) 그리고 국새-. 법령으로 지정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3가지다. 태극기와 국장은 국민이 크게 바꾸자는 운동을 벌이지 않으면 모를까 바뀔 수 없다. 하지만 국새는 유일하게 만들 때 마다 제원이 바뀐다. 그때마다 국가를 상징하는 정신과 철학, 재료와 기술이 들어가는 것은 국새가 유일하다. 국새는 그 당시의 세상을 반영할 수 있다."

대한민국 공식 문서에 사용되는 인장인 제 5대 국새가 지난 9월말 완성됐다. 이 국새의 예비실험에서 제작까지 실무 책임을 맡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문길주) 도정만 박사(계면엔지니어링연구센터 책임연구원)는 새 국새 안에 담긴 정신과 철학에도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국새를 공식 사용하는 국가는 프랑스와 일본 정도로 그다지 많지 않다. 때문에 국새 제작 기술이 표준화 돼 있거나 보편화 돼있지 않아 만들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일반인은 국새마다 각 나라의 기술과 역사, 철학 등이 진득하게 담겨 있음을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다.

일부 사람들은 '국새를 뭣하러 찍느냐, 인쇄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도 박사는 "남들이 안한다고 그 문화를 폐기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한다. "국새는 국가의 상징과 세상을 반영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중요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이번 5대 국새의 공식 제작기간은 4개월이었지만 KIST는 이미 8개월 전부터 예비실험을 통해 국새제작의 토대가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힘썼다. 도 박사팀의 국새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직접 들어봤다.

◆ 문길주 원장 "국새용 합금개발 예비연구 돌입하라"

국새 제작과정을 들어보기 전에 우선 제5대 국새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5대 국새는 금과 은, 구리, 아연, 이리듐으로 구성된 금합금으로 만들어졌다. 이리듐은 5대 국새에 처음 들어간 물질로 운석 충돌이 일어났던 지층에서만 주로 발견될 뿐 지표면상에서 거의 찾기 힘든 희귀물질이다. 금합금에 소량 들어가면 경도가 높아지는 장점이 있어 균열 방지율을 높일 수 있다.

크기는 국새의 존엄성과 권위·위엄을 높이기 위해 가로, 세로 높이 10.4cm, 무게는 3.38kg로 기존국새보다 크게 제작됐으며, 국새 내부를 비우고 손잡이인 인뉴와 아래 부분 인문을 분리하지 않은 일체형 주물로 제작했다.

▲완성된 제 5대국새 모습.
ⓒ2011 HelloDD.com
지난 6월 국새제작에 착수해 9월말 국새를 완성한 KIST가 국새 제작을 담당하게 된 것은 결코 운이 아니었다. 도 박사는 99년에 이미 3대 국새 제작과정에 투입이 된 경험이 있었으며, 3대 국새에서 문제가 됐던 균열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2010년 9월부터 지속하고 있었다.

3대 국새 제작시기에는 외환위기 직후여서 국새 제작하는데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국새 두깨(께)를 1~2mm로 얇게 만들어 단단하지 못했다. 또 제작기간도 1달로 너무 짧아 완성도 있게 만들지 못한 점이 도 박사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의 국새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를 시작한 그는 가장 먼저 귀금속 공학으로 눈을 돌렸다. 국새라는 것이 권위와 전통성을 상징하다 보니 예술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국새 제작에 필요한 산업체의 기술들을 조사하는 등 지속적으로 리스트 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는 도중 4대 국새가 논란이 돼 폐기처분됐고 균열로 사용이 중단돼 국가 기록원에 보관돼 있던 3대 국새를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아 3대 국새 복원에 도 박사가 투입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4대 국새에 대한 보고서와 3대 국새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 그는' 기존의 국새가 균일하지 않은 알갱이로 이루어진 점을 보완해야 한다. 5대 국새는 몇 천 몇 만번 찍어내도 튼튼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예비실험 과정에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이리듐을 넣어 합금하면 합금 성분간 조직을 치밀하게 해 균열을 방지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곧 실험은 난관에 부딪친다. 금값이 치솟으면서 마지막 합금조성 검증단계를 수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신임원장이던 문길주 원장에게 '국새용 합금제작에 필요한 예비연구를 하라'는 전언이 떨어졌다. 개인 연구과정에서 벽에 부딪쳤는데 공교롭게 공식 연구 과제로 부여된 것이다.

"문 원장이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새 연구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KIST에서 1억원을 지원 받아 합금조성 검증실험을 진행한 결과 우리는 빛깔은 물론, 이전 국새보다 튼튼한 합금을 완성해낼 수 있었다. 특히 연실률도 좋으면서 강도는 높은 그런 합금을 만들었다. 이 실험에서 우리는 KIST가 국새 제작을 성공해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5대 국새 제작자를 선정하는 일정을 행정안전부에서 공고해 KIST는 새 실험결과를 국새제작 과제 제안서에 담아 제출했다. 덕분에 KIST는 경쟁입찰을 거쳐 최종적으로 국새제작자로 선정된다.

◆ 국새 1차 주조 실패, "바보라고 말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기간을 충분히 가지고 예비 실험을 한 덕분인지 국새는 생각처럼 잘 만들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국새가 워낙 무겁다 보니 국새 본을 뜨기 위해 왁스를 사용하면 강도가 약하다는 문제점이 발생했고, 더욱이 여름에 진행한터라 왁스가 녹는 경우도 발생했다.

▲제 5대 국세의 모형 틀.  곳곳의 균열을 발견할 수 있다.
ⓒ2011 HelloDD.com
특히 국새모형심사위원회 심사와 국새제작위원회 추인을 거쳐 제5대 국새의 외형이 결정돼 모형 틀을 받았으나 봉황과 무궁화 등을 하나하나 만들어 덧붙인 것이어서 균열이 일어나고 밑 부분이 떠있어 본을 떠 쓸 수가 없었다.

도 박사팀도 국새를 따로따로 만들어 붙이면 됐겠지만 그는 일체형으로 제작해야한다고 생각, 수정을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애를 먹었다.

도 박사가 투입돼 제작된 3대와 5대 국새는 일체형이지만 논란이 돼 폐기된 4대 국새의 경우 3단으로 나눠 제작을 했었다. 왜 일체형을 고집하느냐고 묻자 그는 "분리를 해도 문제는 없지만 3조각을 붙이기 위해 360도 용접을 해야하는데 도중에 변형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인문사회학적 측면을 살펴봤을 때도 일체형이 아니면 문화적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보급 도자기 2개중 하나는 일체형이고 하나는 조각조각을 붙인 도자기라고 생각해 봤을 때 아무래도 조각난 도자기는 문화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국새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장으로서 그 가치가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합금과정에서도 애를 먹었다. 도 박사는 "5대 국새에는 금(밀도 19.3)과 은(10.49) 구리(8.94), 아연(7.14), 이리듐(22.56)이 들어있지만 밀도가 각각 달라 합금하는게 쉽지 않았다"며 "국새 1차 주조과정에서 합금을 실패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8월 31일, 도 박사팀은 진짜 국새를 녹이기 이전 순금을 녹여 예비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대 성공. 9월 3일 모합금으로 진짜 국새를 만드는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모합금을 붓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 금의 밀도가 높아 구리가 떠버려 산화돼 버린 것이다.

"원래 순금으로 제작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런데 모합금으로 국새를 만들자 실패했다. 실패를 검증해보니 합금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가장 초보적인 실수였다. 바보냐고 말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실수였다."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도 박사는 바로 다음 날인 4일(일요일) 실패보고서를 작성해 5일(월요일) 문 원장에게 보고를 마쳤다. 그러면서 국새 제작을 위한 금 14kg를 KIST에 다시 한번 요청하며 15일까지 국새를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KIST 관계자들은 도 박사를 다시 한번 믿어줬고 급하게 금을 구해 7일 건네줬다. 도 박사팀은 8일~9일 새벽 4시까지 모합금을 만들었고 완성된 모합금을 가지고 국새 주조 장소로 새벽 7시 출발했다. 그렇게해서 9월 9일 국새를 주조,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우리나라 5대 국새를 완성해냈다.

그러나 국새 완성의 기쁨도 잠시, 속을 비워 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거푸집을 파낸 구멍을 용접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미세한 기공들이 자꾸 생겨나 매워지질 않았던 것이다. 충분히 열을 가해 용접하면 괜찮지만 완성된 국새가 일그러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에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레이저 용접을 시도하자 기공을 막을 수 있었다.

◆ "국새는 군사무기가 아닌데…항공기 기준으로 비파괴 실험을 하다"

국새제작의 감리로 활동했던 기관이 국방기술품질원이어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고 한다. 3대 국새 때는 감리가 없었고, 4대 국새 때는 제작과정 감리는 생략한 채 구체적인 감리 기준없이 품질을 위한 감리만 진행하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문제로 이번 제작에서는 군사 무기를 검사하는 국방기술품질원이 직접 감리를 맡았다. 국새는 군사 무기가 아니지만 항공기 기준으로 감리기준을 설정해 철저하게 검증을 했다. 항공기의 모든 재료는 이물질과 균열이 없어야 하는데 5대 국새도 이 기준을 만족시키고 통과했다.

기존보다 강도가 2배 이상 높아졌기 때문에 1년에 5000번씩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 5대 국새. 이제 도 박사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국새제작의 노하우를 담은 책을 발간하는 일이다.

그에 따르면 국새 제작과 관련된 전통기술 기록이 따로 남겨있지 않아 우리 선조들이 어떤 방법으로 국새를 만들어 왔는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도 박사팀은 최대한 전통기술기법에 가까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선조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정밀주조법을 전부 수작업으로 진행해 최대한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했다. 이제 이 기술들을 책과 동영상 등으로 남겨놓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이 남은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기에 실패도 있었지만 KIST를 주관기관으로 예술세계, MK전자가 참여하는 국새 제작단의 꿈은 모두 '국새를 잘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국새에 대한 논란이 없어 목표는 달성한 것 같다. 우리의 바람은 국민의 바람처럼 국새를 잘 만드는 것이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5대 국새는 탄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번 5대 국새 제작에는 금 41kg을 사용, 약 4억 원이 투입됐다. 어려운 제작 과정에 끝까지 지원해주고 노력해준 사람들이 있기에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5대 국새가 빛을 볼 수 있었다고 도박사는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공을 돌린다. 그러면서 밤낮없이 고생한 연구자들과 실패도 인정해주는 그런 문화를 조성해준 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행안부와 KIST, MK전자, 예술세계 등 관계자들이 5대 국세 주조 상태를 검사하고 있다.
ⓒ2011 HelloDD.com
 


<대덕넷 김지영 기자> orghs12345@HelloDD.com      트위터 : @orghs

2011년 10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