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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독일vs한국 연구소

 

 

독일 하면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다. 나의 경우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BMW, 벤츠, 폭스바겐 같은 명품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라는 것이다. 또한 세계 대전, 히틀러, 유태인 학살과 같이 역사적으로 나쁜 기억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독일을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아마도 분단 국가였다 것, 우리에게 한강의 기적이 있었다면 독일에는 라인 강의 기적이 있었다는 점 등에서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독일에 와서 맨 먼저 깨달은 것은 독일은 한국과는 정반대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빨리빨리'에 익숙해 있다면 독일 사람, 독일 사회 전체는 참으로 느리게 움직인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독일 사람들은 개인주의가 강하다. 또 한국 사람이 고추장 같이 화끈하다면 독일 사람은 치즈 맛같이 미지근하다.

 

나는 두 나라의 국민성 차이는 날씨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을 떠나올 때 한국은 여름철이었다. 30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냉방기 가동이 늘어나 정전사태가 벌어졌었다. 또 비가 왔다하면 억수같이 쏟아져 물난리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8월 중순에 독일에 도착했을 때 이곳은 한국의 가을 날씨 같았다. 구름 낀 날이 많아서인지 여름철에도 그렇게 덥지 않다. 또 집중 호우나 태풍도 없다.

 

겨울철은 어떤가. 한국은 2013년 벽두부터 강력한파로 중부지방의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단다. 한국은 영하의 추위에 떨고 있지만 지금 이곳 독일은 영상의 기온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폭설이 쏟아질 때 이곳에선 이슬 같은 비가 내린다. 한마디로 자연환경이 한국에 비해 훨씬 온순하다. 이런 날씨의 차이는 두 나라 국민성의 차이를 만드는데 분명히 기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차이가 문화와 역사, 과학기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KIST유럽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연구소 바로 이웃에 있는 프라운호퍼 연구소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설립 40주년 기념식 초청이었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 고위 공무원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현 소장이 연구소의 40년 역사를 소개하였다.

 

내가 놀란 것은 40년 동안 이 연구소를 거쳐 간 소장이 단 두 명뿐이라는 점이다. 전임 소장 두 분은 각각 18년씩 연구소를 운영했고, 현 소장은 제3대 소장을 맡고 있었다.

 

← 지난해 여름 자르강 주변에서 열린 옛날 자동차 전시회

 

우리는 어떤가? KIST유럽연구소가 설립된 지 16년째인데 제 6대 소장이 취임하였다. 평균 3년의 임기로 소장이 바뀌었다. 이것은 한국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독일의 산업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설립된 것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산업기술연구회와 비슷한 목적을 가졌다. 우리나라에서 산업화를 위한 연구는 대개 단기간으로 끝난다.

 

그러나 프라운호퍼 연구소에서는 주로 미래시장을 주도할 첨단기술을 연구하는데,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산업체 인력양성까지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소장이 18년씩 연구소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소장의 임기를 늘리면 독일연구소와 같은 우수한 연구 성과를 많이 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림자가 비슷하다고 하여 본체가 같은 것이 아니 듯,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따라 하더라도 근본이 다르다면 결코 같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근본 중 하나는 독일 정부와 사회가 과학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독일에서는 연구소 경영에 대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대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이런 원칙이 만들어진 근간에는 과학자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그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근본으로는 일관성 있는 정책과 연구소 운영이다. 독일 연구소 소장의 임기를 종신제로 한 것은 궁극적으로는 일관성 있는 연구소 경영이라는 차원에서 채택한 방법인 것이다.

 

우리나라 연구기관 기관장의 임기가 짧은 것이 좋은 점도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고 변화가 심한 오늘날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즉 단기간에 좋은 성과를 내는 데는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경영방법과 정책도 바뀌는데 이것은 마치 술 취해서 '갈지자'로 걷는 사람 같아서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는 나로호 발사 실패를 통해서 이미 이런 경험을 하였다.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추격하는 것이 연구소의 주요 목적이었던 지난 세월동안에는 단기적 접근 방법이 나름대로 먹혔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과학기술수준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어려운 것은 다른 나라에도 어렵고, 그들에게 쉬운 것은 우리에게도 쉽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일,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푸는 일에는 장기적 안목의 정책과 전략이 필요하다. 독일은 이미 오래 전에 경험으로 그것을 깨닫고 실제로 경영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의 나라 독일에 와서 우리나라 자동차가 다니는 것을 보면 가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독일보다 4,50년 뒤쳐졌음에도 독일에 자동차를 수출한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한국 차와 독일 차를 비교해보면 한국 차가 갖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자동차의 기본적인 성능은 비슷하게 만들면서 세부적으로 차별화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 독일에서 한국 차를 팔 수 있게 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에서도 이런 틈새를 찾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독일과 차별화된 연구주제나 연구방법을 찾고 그것을 극대화 한다면 특정 과학기술분야에서 독일을 앞서 갈 수 있을 것이다. 공공연구기관에도 한국의 수출기업들처럼 틈새시장을 찾아서 차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대한민국 4.0시대를 여는 시기로 성숙된 의식과 시스템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이에 이호성 KIST 유럽연구소장은 독일의 과학기술과 그 발전의 바탕이 되는 사회·문화적인 환경에 대해 생생하게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이 소장은 독일에서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편지나 일기 형식으로 쓸 예정입니다.

 

  • 이호성 소장은 KAIS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바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근무를 시작, 17년 동안 시간·주파수 표준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광펌핑 세슘원자시계를 개발해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2003년 이후에는 표준연의 주요보직을 맡아서 후배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연구재단에서 나노·융합단장으로 2년간 근무한 바 있습니다.

 

  • 2012년 9월 KIST유럽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해 한국과 유럽연합을 잇는 가교역할을 위한 국제협력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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