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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11th. 알하젠과 림스키-코르사코프, 그들의 신기루.

 

 

여러분 안녕하세요? DJ 사내기자 김미현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잘 지내고 계셨지요?
이제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네요. 저는 요사이 더위 때문에 잠을 잘 못자고 있어요.

‘여름밤’을 떠올리면 저는 사막이 생각납니다. 정확히는 사막의 밤입니다.
사막의 밤은 아주 서늘하겠지요, 더운 여름밤도 시원하게 잠들 수 있을 거예요.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 쏟아질 듯 떠 있고. 제가 누워있을 천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낙타도 앉아 있을 모습을 그려봅니다.
사막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가 상상하는 사막은 약간 동화 같은 이미지네요.


오늘은 이 사막을 고리로 삼아 과학과 음악을 연결해보겠습니다.


 사막의 과학자 알하젠(Alhazen)과의 만남에 앞서 먼저 이슬람 과학에 관하여 간단히 살펴볼까요?

 8세기 중엽 아라비아는 아바스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만수르(재위 754~775), 하룬 알 라시드(재위 786~809), 알 마문(재위 813~833) 등 유명한 칼리프들이 잇달아 선치를 펼치며 그와 더불어 이슬람의 학문과 예술도 크게 발달합니다. 당시 바그다드의 궁정에서는 아랍인을 비롯한 여러 각국의 학자들이 초청되어 주로 (아랍보다 앞서나가고 있던) 고대 그리스의 학문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일에 종사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번역 만에 그치지 않고 정교하고 긴 주석을 덧붙여 나름대로의 의견과 논평을 함께 기술했으며 이는 곧 이슬람 과학의 독특한 특성과 내용의 바탕이 됩니다.

 

 그 후로 줄곧 고대 그리스를 비롯하여 인도의 천문과 수학 등 여러 나라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왔던 이슬람 과학은 10~13세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번역의 시대를 거쳐 활약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 이슬람 과학은 천문학, 수학, 의학, 화학(연금술)의 새로운 지표로 자리매김 하게 됩니다. 이는 13세기 들어 유럽에 대학이 설립될 무렵, (서방에서는 이미 망실된) 고대 그리스의 과학을 다시 서방으로 전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더욱 확실해 집니다.

 또한 수학의 ‘아라비아 숫자’와 훗날 화학의 전신이 되는 ‘연금술’ 등은 이슬람 과학의 모태에서 태어난 산물들이며 지금의 과학을 이루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의 커다란 산물로는 이슬람의 광학이 있습니다.
이슬람 문명권의 지역적 특징인 넓은 사막 지대는 신기루를 비롯한 여러 광학현상이 나타났으며, 사막의 모래바람 등의 강한 바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병에 걸려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눈과 시각 현상에 대한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광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과학자 알하젠(Alhazen, 965?~1039)은 바로 이 광학의 발전에 공헌한 아라비아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입니다. 알하젠은 그의 라틴어 이름이며 원래 이름은 ‘이븐 알하이삼’이며 이라크의 바스라에서 출생입니다. 주 저서인 <광학의 서>는 서양의 베이컨 J.케플러 등 유럽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그는 ‘알하이삼의 문제’로 유명합니다. 그는 구면거울, 포물선 거울, 기둥거울 등 거울의 표면에 따라 광원과 눈의 위치가 정해졌을 때 거울 표면 위에서 반사가 이루어지는 점을 구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 경우를 설정하고 풀이했습니다. 또한 입사간과 반사각의 비례가 일정하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이는 후에 천문관측기구의 발명과 카메라의 발명에 크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에게 있어 사막이란 무엇이었을까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자 의문의 모래의 강,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됩니다. 사막의 신기루는 존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허상을 보여줍니다. 신기루가 거짓이 아닌, 실체를 비추는 거울과 같듯이 그가 추구했던 과학과 지식 역시 진리로서 존재하지만 법칙이나 이론으로 체계화 되지 않은 사막의 신기루 같습니다.

 어쩌면 그는 뜨거운 모래바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선인장을 닮았습니다. 사막의 환경에서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주어진 환경에서 지식을 쫓아 확고하게 나아가는 학자였으니까요.

 

 두 번째로 사막과 음악을 소개드립니다. 사막의 음악, 사막의 이야기하면 단연 ‘천일야화’가 떠오릅니다. 천일야화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세헤라자데’는 김연아 선수의 프리스케이팅 곡으로도 유명합니다. 여러분도 사막의 음악으로 쉽게 연상되지요?

 천일야화는 아라비안나이트(The Arabian Nights' Entertainment)라고도 하며 천일 밤 동안의 이야기라는 뜻만큼 180여 편이 넘는 다양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6세기경 사산왕조 때 페르시아에서 시작, 8세기 말경까지 아랍어로 번역되어 그 후에 이집트의 카이로를 중심으로 또 많은 이야기들이 추가되어 15세기경 완성되었습니다. 페르시아와 인도를 비롯하여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의 갖가지 설화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구성도 매우 복잡하고 흥미롭습니다.

 

 

 이 이야기는 대표적인 액자구성으로 하나의 커다란 틀이 되는 이야기와 그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됩니다. 어느 날 (인도와 중국까지 통치한) 사산왕조의 샤푸리 야르왕이 왕비의 부정을 목격하고 죽이게 됩니다. 그 후 모든 여성을 증오하여 순결한 처녀를 신부로 맞이하고 다음날 죽이기를 반복하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그 나라의 대신들 중 하나에게 지혜로운 딸(세헤라자데)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진해서 왕의 신부가 되어 왕을 섬기게 되고 매일 밤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게 됩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왕은 하루하루 그녀를 죽이는 것을 미루게 되고 결국 이야기는 천일 하룻밤 동안 계속됩니다. 마침내 왕은 아름답고 현명한 세헤라자데를 사랑하게 되고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이 커다란 이야기 안에서 세헤라자데가 왕에게 들려준 이야기 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알라딘과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바다의 신밧드의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환상적이고 흥미로운 천일야화는 미술과 음악, 문학과 그 밖의 예술분야의 소재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 중 오늘 제가 소개할 음악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곡 ‘세헤라자데’입니다.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Andreevich Rimsky-Korsakov, 1844~1908)는 러시아의 음악가로 관현악법의 대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5인조로 유명한 러시아 국민 음악파로 당시 차이코프스키 등의 유럽풍 낭만파 음악에 대항하고 러시아의 민족음악을 고취시키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는 원래 해군 장교로 아마추어 음악가에서 출발하였지만 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가 될 만큼 음악이론에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은 화려한 관현악법을 기초로 동화적인 환상이 특징입니다.

 그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교향곡 <세헤라자데>는 천일야화 중 몇 가지 이야기들을 뽑아 작곡했으며 제1악장 <바다와 신밧드의 배>, 제2악장 <칼랜다 왕자의 이야기>, 제3악장 <젊은 왕자와 공주>, 제4악장 <바그다드의 축제, 청동기사의 난파>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제1장의 주인공 신밧드를 아마도 해군 장교 시절을 떠올리며 림스키 자신을 녹여 작곡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신밧드의 이야기에 이어 제2악장은 탁발승 왕자 칼랜다의 이야기와 함께 퉁명스럽고 거친 샤푸리 왕의 음과 가녀리고 부드러운 세헤라자데의 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제3악장은 세헤라자데와 샤푸리 왕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제4악장 성대한 축제로 막을 내립니다.

 자 그럼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있어서 사막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에게 사막이란 천일야화라는 예술적 모티브를 품고 있는 영감의 원천, 태양빛에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아름답고 유혹적인 신기루 같은 존재였습니다. 존재하지만 실재가 아닌 것, 사막의 신기루. 손으로 만지거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처받은 왕의 마음을 치유하고 받아들였던 세헤라자데의 사랑처럼 말이죠. 그에게 사막이란 영감, 환상, ‘세헤라자데’ 그녀 자체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알하젠, 그 과학자도 어렸을 적 어머니 세헤라자데의 무릎에서 오래된 페르시아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을지 모릅니다. 그 이야기들이 한 바퀴 대륙을 돌고 두 바퀴 시대를 돌아 ‘천일야화’로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요? 각기 다른 시대에서 각자의 시간동안 사막의 신기루에 매료되었던 두 사람, 두 사람의 사막을 우리도 한번 들어볼까요? 천일동안 계속 되었던 사막의 노래를요.

 

Rimsky-Korsakov:Scheherazade/Gergiev·Vienna Philharmonic·Salzburg Festival 2005.


 

 

Rimsky-Korsakov: Scheherazade - op.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