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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창의포럼 : 김홍희사진작가 (03.20)

 

 

 

김홍희 작가가 초등학교를 입학한 1966년, 대한민국의 두 번째 도시 부산조차도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 다수였다. 바로 그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과학기술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선각자적인 상상력에 김홍희 작가는 놀랐다고 했다. 작가는 상상력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작가에게 ‘패러다임, 패턴, 인식체계, 틀’이라는 말은 상상력을 저해하는 고정관념과 동일한 의미인 것 같았다.

 

직업의식 vs 윤리

 

김홍희 작가는 사진을 크게 광고사진, 저널사진, 예술사진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설명했다. 베트남전 종군기자로 참여해 전쟁을 피해 강을 건너는 가족의 저널사진을 찍은 일본인 사진작가는 그 작품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다. 퓰리처 상의 상금을 그 가족에게 나누어주고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보다는 사진을 찍었다는 비난을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선택했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남아공의 사진작가도 사진을 찍기 전에 굶어 죽어가는 소녀를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는 비난에 자살을 했다. 김홍희 작가는 위험에 빠진 개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그들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전쟁을 멈추는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종군기자 입장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우선하는 가치라는 ‘입장의 철학’을 스승으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그렇지만 김홍희 작가 본인은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사람을 먼저 구할 것이라고 했다.

 

인식 vs 감상

 

사진은 논리나 이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감성적으로 느껴야 한다고 했다. 호박, 마차, 유리구두라는 단어를 통해 신데렐라를 연상하듯 기존의 지식과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인식을 한다. 이런 인식체계는 예술사진이나 개인적 영역의 저널리즘 사진을 해석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눈 쌓인 황량한 길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예술사진 한 점을 김홍희 작가가 소개하면서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다. 어떤 이는 ‘외롭다’고, 어떤 이는 ‘희망이 있다’라고 답변했다. 그 예술사진 캡션에는 ‘불빛에게 물었다. 거기가 끝이냐고. 불빛이 답했다. 여기가 시작이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사진을 찍은 작가는 인생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 속의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와 연결시켜서 인식하고자 하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철학 vs 예술

 

김홍희 작가는 과거의 예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다비드상’, ‘천지창조’,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작품을 소개했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스킬로 만든 작품들이 과거에는 찬사를 받았지만 현재는 완성도만으로 예술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뜨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눈에 보이는 형상 혹은 이미지는 분명 파이프인데 눈으로 읽는 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텍스트이다. ‘이것’이라고 지칭하는 순간 그 범주와 패러다임에 갇혀 헤어나지 못한다. 파이프라는 이미지와 텍스트는 전혀 연관관계가 없음에도 동일한 범주 안에서 인식하기에 다른 해석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관습적으로 보고 읽고 인식하는 체계를 뒤틀어서 새로운 해석과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 현대예술의 특징이라고 했다. 비트겐슈타인과 소쉬르 같은 철학자는 기호학에서 이것을 규명하기 위해서 두꺼운 철학 서적을 썼지만 예술가는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의 철학 강의 같았다. 김홍희 작가는 까치 담배를 파는 몽골가게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의 삶은 그렇게 한 갑씩 매끈하게 포장되고 말았다”라고 적었다. 이성, 논리, 합리라는 것들이 보고 듣기에는 매끈한 담뱃갑처럼 좋다. 하지만 ‘한 갑’이라는 틀 안에 우리의 인식과 사유체계가 갇히고, 우리의 상상력이 ‘한 갑’이라는 집단에 속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력의 적들에 대한 사주경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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