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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김상근 교수 창의포럼(03.14)

르네상스의 대표적 예술가 다빈치의 숨겨진 걸작 '앙기아리 전투'가 500년만에 발견된 날인 지난 14일, 신학자이자 르네상스 전문가인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KIST를 방문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러한 열정이 과학기술의 메카 KIST에서 제2, 제3의 르네상스를 불러올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과 르네상스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모든 현대인들의 숙제다. KIST의 연구자들에게는 더욱 밀접하고 시급한 문제다. 어떻게 하면 과거와 단절하고 창조적, 혁신적 사고로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을까? 최근 기업인들은 인문학을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인문학자 김상근 교수는 그 해법을 르네상스에서 찾는다. '암흑 시대'라고 불리는 중세가 끝나는 시점인 동시에 인간의 시대, 창조의 시대가 열린 시점이 바로 르네상스다.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단테, 미켈란젤로, 다빈치,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등 수많은 천재가 등장한 인간 창조성의 황금기인 것이다. 새 시대를 꿈꾸는 우리들이 르네상스를 반드시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다.

본질을 찾으려면 기존의 것에 도전하라

르네상스가 위대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사물과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기 시작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신(神)이 지배한 시대인 중세에는 개인은 종교적 의미로만 이해되었다. 종교적 세계관에 맞추어 과학조차 퇴보하였다. 하지만 르네상스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은 과거 성스럽고 엄숙하기만 하던 천사, 성 베드로,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슬퍼하고, 의심하고, 추위에 떨고, 불만을 품은 모습들을 회화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인간 내면의 본질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본질을 볼 수 있을까? 무용가 트와일라 타프는 저서 <창조적 습관>에서 '본질을 규명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규명해 놓은 것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는 연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나는 이 법칙을 따라야 하는가?' '왜 나는 남과 다를 수 없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본질을 규명하는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체(Dolce)의 삶을 추구하라

'Dolce stil novo'. '상큼하고(sweet) 새로운 방식'이라는 뜻이다. 바로 창조성이 탄생하는 방식이다. 르네상스의 선구자인 단테는 글을 쓸 때 항상 9살때 만난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떠올렸다. 자연히 글 쓰는 순간이 가장 가슴뛰고 설레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돌체(Dolce, sweet)의 글쓰기에서 걸작 <신곡>이 탄생했다. 김 교수는 우리 KIST 연구자들에게도 “여러분은 연구를 할 때 가슴이 뛰십니까? 진정으로 매혹되어 연구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매혹된 자가 창조한다. KIST의 모든 연구자들이 돌체(Dolce)의 연구를 하는 날, 우리 과학기술의 르네상스가 일어날 것이다.

동서고금이 만나는 곳에 창조가 있다-메디치 효과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의 요람으로 불리운다. 수많은 르네상스의 천재들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성장했다. 이 메디치 가문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피렌체 공의회를 열었는데, 이것이 오랜 시간 각자의 전통을 발전시켜 오던 동방 비잔틴교회의 플라톤 학파와 서방 카톨릭교회의 아리스토텔레스 학파가 처음으로 마주한 역사적인 순간이다. 현상의 세계를 탐구하는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와 초월적 이데아를 논하는 플라톤 학파, 상이한 두 사상의 교류는 르네상스 창조성의 원천이 되었다. 이렇게 상이한 것이 만나 창조가 이루어지는 현상을 '메디치 효과'라고 부른다. 동질성을 강조하는 한국사회도 창조를 위해서는 변하고 뒤섞여야 할 필요가 있다.

미켈란젤로의 창조성의 비밀

'천지창조'로 유명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에는 미켈란젤로의 노고가 녹아 있다. 그는 4년에 걸쳐 누워서 그림을 그리느라 등과 목이 굽을 정도였다. 그를 이렇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든 것은 타락한 교황청에 대한 분노와 심판 의지였다. 그래서 분노한 하느님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을 만큼 작업에 몰입했다. 그가 라파엘로 등 당대의 다른 화가에 대한 경쟁심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면 지금과 같은 걸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쟁은 결국 벤치마킹일 뿐이다. 내재적 동기에 의한 몰입만이 파라곤(Paragon, 완벽한 모델)을 추구하는 길이다. 미켈란젤로는 이러한 내재적 몰입을 통해 조각·회화·건축의 파라곤(다비드상·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성 베드로 성당)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우리보다 뛰어난 고대가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를 통치한 메디치 가문은 장기 집권을 꿈꾸지 않았다. 대신 가문이 50년 뒤에 문을 닫더라도 영원히 남아 있을 예술과 학문,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했다.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 숨쉬는 인류 정신의 산물이 바로 고전이다. 바람대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와 학자들은 수많은 고전을 남겼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명작을 남길 수 있게 해 준 추동력도 바로 고전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휴머니즘의 부흥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재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키케로의 문장, 호메로스의 시, 라오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우리보다 뛰어난 고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문명에 대한 재숙고가 일어났다. 우리가 하는 생각과 고민을 이미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인문학은 시작된다.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떠난 르네상스 여행에서 동서고금이 만났던 피렌체, 미켈란젤로의 파라곤이 있는 시스티나 성당 등 다양한 곳을 둘러보며 인류의 위대한 창조성을 간접체험할 수 있었다. 훌륭한 강연을 통해 진정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었던 돌체(Dolce)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