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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창의포럼 : 신경림 시인(11.14)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소설을 잡문이라 폄훼하며 평생 시만을 고집하는 늙은 시인이 등장한다. 그 시인은 본인의 쓴 소설마저도 제자의 이름으로 발표한다. 태백산맥과 아리랑으로 유명한 대하소설가 조정래 선생도 시를 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부인 김초혜 시인을 ‘떠받들고’산다고 한다. 문학에 등급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가 이렇게 존귀하게 대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시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난한 조국의 시인

 

신경림 시인이 ‘갈대’로 등단한 1956년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이었다. ‘절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대한민국’이라는 외국잡지 기자의 말에 울분을 토하면서도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조국에서 갈대와 같은 서정시를 쓰는 것은 진정 옳은 일인지 시인은 묻고 또 물었다. 답을 찾지 못한 시인은 낙향했고 거의 10년간 작품활동을 중단했다. 신경림 선생은 시는 우리 삶의 모습과 정서가 표현되어야 하고,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때 감동을 주는 것이라며 본인의 시론을 폈다. 이런 시론을 대변하듯 신경림 시인이 이후 발표한 ‘농무’같은 작품은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사회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한 시들이 주를 이룬다.

 

시는 힘 있는 이미지다

 

시인이 현실을 비판하는 시를 쓰자 많은 이들이 현실참여시 대열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시인의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시가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적․역사적 상상력만 있으면 재미있는 시라 할 수 있는가? 18세기 문어로만 썼던 시를 구어체로 쓰면서 시작의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던 워즈워스를 예를 들면서 신경림 시인은 시는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그것을 시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여야 한다고 했다. 시가 이미지로 전달될 때 시가 시다워진다.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산문 쟁이 소설가들이 시인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이미지를 압축적이고 간결한 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당나라 시인 왕유가 ‘시는 글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했다는데 시인의 설명을 들으니 그 말이 또렷해진다. 신경림 시인은 시가 시다워 지려면 이미지에 덧붙여 시인의 생각을 힘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시의 언어는 시인의 자존감이기도 하기에 유약하기보다는 힘 있는 언어가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고 했다.

 

 

첫 느낌과 말의 재미

 

시가 앞의 두 가지 조건을 만족했다 해도 남들이 이미 경험한 것, 표현한 것으로 시를 쓰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고 했다. 시인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걸을 보고,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고, 만지지 못한 것을 만질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시인은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느낌을 새롭게 표현해야만 하는 개척자의 사명을 띠고 있다. 신경림 선생은 좋은 시가 갖추어야할 마지막 조건으로 우리 말의 맛을 제대로 살려야한다고 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익숙한 말을 시적언어로 잘 구사해야 좋은 시를 만들 수 있다. 김소월과 서정주가 우리 말을 시어로 가장 잘 구사한 시인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 품에서 배운 말들이 좋은 시어의 밑바탕이라고 했다. 아마도 어머니가 자식에게 전달하는 언어에 자애로움과 순수함이 담겨 있기에 최적의 시어가 아닐까.

 

항상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는 과학자와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표현해야만 하는 시인은 공통점이 많다. 시인은 연구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시를 읽으면서 풀어보라고 권했다. 퇴근길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쓰여있는 시를 보며 시인이 느낀 그 감정을 공유하며 감동받은 적이 있다. 업무에 몰두하다 가끔 창밖을 보며 찰나의 휴식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듯 늦가을에 시집 한권이 삶의 청량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