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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창의포럼 : 김영수 중국전문가 (12.12)

창의포럼 후기 : 김영수 중국전문가(12.12)

 

 

 

진시황 시해에 실패한 형가 뒤로 수 만개의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진다. 무모하면서도 낭만적인 자객 형가의 죽음을 장이머우 감독은 ‘영웅’에서 화살비로 표현했다. 비운의 자객 형가도 사마천의 사기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사마천에 사기에는 4천여 명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2백명이 주인공이고 그 중 120명이 형가와 같은 비극적 주인공이라고 사기의 권위자 김영수 박사는 말했다.

 

 

 

 

九牛一毛

박경리 선생과 문정희 시인에게 사마천은 생물학적으로 거세당한 남성이 아니라 육신은 죽어서도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려했던 진정한 사내였고, 작가정신을 함께 나누는 동지였다. 궁형을 당한 후 사마천은 친구에게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人固有一死,或重于泰山,或輕于鴻毛,用之所趨異也)고 말했다. 사형을 당해서 당장의 명예를 지킬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아주 미미한 보잘 것 없는 ‘구우일모’의 죽음이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역사에 길이 남을 사서(史書)를 남기겠다는 사마천의 태산 같은 의지가 궁형의 치욕을 기꺼이 감수한 힘이었던 것이다. 궁형을 당한 후 세상을 보는 사마천의 눈, 사관이 바뀌었다고 김영수 박사는 말했다. 궁형 이전의 사서는 황제를 찬양하는 내용이 주였다면 치욕을 감수한 이후의 사서는 세상의 부조리와 권력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었고, 수많은 보통사람의 이야기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은혜와 원수

김영수 박사는 중국사람의 특징을 ‘은혜와 원수는 대를 이어서도 갚는다’라는 짤막한 구절로 표현했다.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 한신이 한량이었던 시절 빨래터 아주머니께 밥을 얻어먹었는데(漂母飯信, 표모반신), 성공한 후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는 베풀고, 아무리 작은 은혜라도 반드시 보답하라는 사기의 가치철학이 이 고사에 담겨있다고 했다. 사기는 은혜관만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철학도 담겨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치졸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복수하는 것이 품격 있는 복수라 했다. 손빈은 절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무릎아래를 잘리는 빈형을 당했으면서도 23년 동안의 치밀한 준비를 통해 전쟁터에서 배신자 방연에게 복수를 행했다는 손빈과 방연의 고사가 품격 있는 복수의 예라고 김영수 박사는 설명했다.

 

管鮑之交와 리더십

조직 성공의 80%는 팔로어들의 기여라는 말이 있다. 팔로어들의 참여가 없으면 성공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김영수 박사는 관포지교가 팔로우십의 전형이라 설명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상자리 마저도 적임자에게 양보할 수 있었던 포숙이 있었고,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정적 관중을 통 크게 기용한 제나라 환공의 리더십이 어우러져 제나라는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김영수 박사는 언격(言格)이 곧 인격이라며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사서이면서도 아름다운 말로 맛깔스럽게 버무려낸 사기의 문학적 표현은 한 글자, 한 글자를 소중하게 생각한 사마천의 언격이라 했다. 리더의 격조 있는 언행은 분쟁도 해결한다며 리더의 언격을 재차 강조했다.

 

개혁은 믿음이다.

김영수 박사는 2013년 대한민국의 화두는 개혁이라 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내실있는 강소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체질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사기에서도 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강국으로 발전했지만 개혁에 실패한 나라는 어김없이 몰락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신뢰가 생명이라고 했다. 도성 문 앞에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 금 50냥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이를 실천한 이에게 50냥을 지급하여 법과 제도의 신뢰성을 회복한 상앙의 입목득신(立木得信, 나무를 세워서 신뢰를 얻다) 고사를 인용했다.

한나라 개국의 일등공신인 한신도, 개혁을 통해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든 상앙도 그 말로는 비참했다. 사기에는 물러나야 할 때를 몰라서 죽음에 이른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무엇이든 필요한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한 해를 정리하며 사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