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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STORY/KIST 소식(행사·연구성과)

창의 포럼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12.7)

 

창의 포럼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12.7)

국민배우 안성기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라는 언론 인터뷰에서 악기를 하나라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얼마 전 늦가을 밤 축제 때 연습이 부족하다며 겸손해 하며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던 연구원들을 보았다. 국민배우 안성기처럼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이들에겐 연주자인 그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가야금과 평생 연애하며 살았다는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에게 가야금은 어떤 의미일까?

 

괴짜와 가야금

8월 창의포럼 특강 강사였던 김훈 작가처럼 황병기 감독의 음악인생 출발도 피난도시 부산이었다. 황병기 감독은 자신의 학창시절을 괴짜로 표현했다. 수업시간에는 도발적 질문을 던져 논쟁을 유발시켰고, 퇴학을 당할 뻔도 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주 골치 덩어리 학생이었다고 황병기 감독은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가야금을 배우지 않겠냐’는 반장의 권유에 이끌려 우연히 찾아간 강습소의 가야금이 황병기 감독의 인생을 바꾸었다. 무슨 연유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야금을 배워야 한다는 다짐을 한 순간 아버님의 강력한 반대도 그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중학생 황병기는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업적 뒤에는 그의 수준급 바이올린 연주실력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이 있었다는 나름의 논리로 아버님의 반대를 설득했다고 회상했다.

 

즐거움과 가야금

황병기 감독은 중학시절 가야금을 연주하면서부터 하루도 연주를 쉰 적이 없다고 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매일 가야금 연주를 한다고 했다. 어떤 직업을 가지든, 어떤 직장을 다니든 연애를 계속하는 것처럼 자신도 매일 가야금과 연애하고 있다고 했다. 연애 이야기가 부족했던지 황병기 감독은 논어로 자신과 가야금의 관계를 증명하려 했다. 가야금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정말 기쁜 일이고(學而時習之 不亦悅乎), 황병기 감독에게 가야금은 좋아하는 것 이상의 즐기는 것이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 없이 즐거워서 계속 연마한 가야금이 어느새 황병기 감독의 직업이 되었다. 베토벤이 악성으로 추앙받는 것도 그의 사후 유럽시민계급의 성장 때문이었던 것처럼 자신이 국악과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대한민국의 성장 덕택이라며 자신을 낮춘다.

 

가야금과 숙명

황병기 감독이 작곡한 가야금 연주곡이 강의장인 컨벤션홀에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 곡을 단 가곡 ‘국화 옆에서’, 박두진의 시 ‘청산도’에 영감을 얻어 작곡한 숲(뻐꾸기, 비),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에 곡을 붙인 ‘달하 노피곰’. 자신이 제작한 곡임에도 음반이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고액의 관세를 지급할 뻔 했으나 우체국장의 배려(?)로(신품이 아닌 중고품으로 처리) 관세금액이 줄었다는 이야기처럼 황병기 감독이 곡 이면에 숨겨진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 마다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강연 말미에 황병기 감독은 가야금과 본인의 관계를 숙명이라고 했다. 가야금을 통해서 결혼을 하고, 가야금이 직업이 되고, 이화여대 교수 은퇴 뒤에도 가야금을 통해 다시 4번의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고 했다. 국립국악원 60년 역사가 본인의 가야금 인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황병기 감독, 60년을 매일 함께한 가야금을 숙명이라는 단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똑똑한 사람은 무섭지 않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수학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버드대학 수학과 교수가 한 말이란다. 가야금과 숙명적 연애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원로예술가의 강연이 ‘재능만 믿고 배움을 게을리 한 적이 없는지, 업(業)으로만 생각하고 재미와 열정을 빼놓은 것은 아닌지’ 바쁘다는 이유로 챙기지 못한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