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2018 이노베이트 코리아 후기

(홍보팀 황현영)

 

헤럴드경제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주관으로 2018년 이노베이트 코리아가 74일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이노베이트 코리아는 과학IT포럼으로 올해로 2회째 개최되고 있으며, 이번 해에는 새로운 미래, 초연결시대라는 주제를 가지고 과학기술 및 의료분야의 인사들을 초청해 강연 및 토론을 진행했다.

 

 

권충원 헤럴드 대표의 개회사로 포럼은 시작되었고, 이어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신성철 KAIST 총장의 축사가 있었다. 개회사와 축사에서는 공통적으로 R&D 연구 및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와 혁신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특히 원광연 이사장은 우리사회의 초연결, 출연연의 초연결, 대학과 기업의 초연결을 강조하여 우리시대의 초연결이 어디에서나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이어 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장이 기조연설을 맡아 ‘4차산업혁명과 블록체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세계적인 4차산업혁명의 동향과 그 속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점검하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전망을 소개했다.

 

이번 이노베이트 코리아는 총 6개의 세션과 특별강연, 종합토론이 1(Convergence, 한계를 넘다)2(Connection, 신세계를 열다)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여러 과학기술계의 전문가들, 대학생들이 깊은 고민과 생각을 담은 의견을 나누어주었다.

 

그 중 1부의 두 번째 세션으로 진행되었던 KIST 로봇미디어연구소 오상록 단장의 강연(‘신인류, 휴머노이드 로봇’)을 짧게 소개하며 2018 이노베이트 코리아 후기를 마치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봇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만화나 SF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영화 센테니얼맨’, ‘아이로봇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로봇으로 정의되기 위해서는 1) 감지의 기능(sense), 2) 생각 혹은 연산의 기능(thinking, processing), 3) 동작(action)의 기능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만약 감지의 기능 없이 자동으로 걷기만 하는 사물이 있다면, 그 사물은 로봇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로봇의 이미지는 아닌 무인자율자동차나 드론 등을 로봇이라고 부를 수 있다.

 

최근 센서, 프로세서 혹은 연산기술,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이 로봇의 활용 분야를 더욱 넓히고 있다. 하지만 로봇 기능의 발달에 문제점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외부의 변화나 정보를 감지하기 위해 센서를 새로이 추가하면 그만큼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고, 이 정보를 연산하기 위해 또 더 큰 용량의 배터리가 필요하다. 로봇 내에 이러한 모든 기능을 탑재하기 위해서는 로봇 기기의 비용이 상승하게 될 것이고, 기술적인 제약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클라우드 컴퓨팅이나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로봇에 고성능 클라우드 컴퓨터가 연결된 모바일 네트워크를 연결한다면, 고도의 연산은 로봇 기기 내부가 아니라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 이렇게 IoT 기술,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이용한다면 더 이상 감지, 연산, 동작의 기능을 로봇 내에 두지 않고 로봇 외부에 두고 활용할 수 있게 되어 로봇 기능의 시공간적 제한도 많이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교통정보, 뉴스, 날씨 등의 정보를 네트워크를 통해 제공받고 있다. 이러한 기존의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 IoT, 빅데이터, 인공지능, 클라우드 컴퓨팅 등의 기술이 접목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로봇이 초연결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기술임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낸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정보화 시대가 도래했고, 정보화 시대에 발달한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기술이 초연결사회를 가져오고 있다. 지금은 바로 초연결시대에 대한 고민을 해야할 때이다.

 

여러 매체에서는 초연결시대의 인공지능 기술, 로봇의 발달이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의 산업혁명에서도 사라지는 일자리들이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이 생겨나는 일자리들이 있었듯,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미리 걱정하기 보다 그 변화에 대비하고, 다음 세대애 이를 교육하고자 노력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로봇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그에 따른 변화에 대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를 이뤄낼 수 있어야한다. 로봇의 역할이나 개념, 로봇을 둘러싼 윤리나 법에 대해서 미리 사회 구성원들 간의 논의와 그에 따른 합의가 있다면 이후의 새로운 변화를 더욱 긍정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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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IT여성기업 R&D지원 앞장 서
- IT여성기업인협회 여성 IT기업 성장지원을 위한 업무 협약 -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병권)은 IT여성기업인협회(KIBWA, 회장 전현경)와 6월 12일(화) KIST 서울 본원에서 IT여성기업의 성장 및 지원을 위한 업무협력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IT여성기업인협회는 여성의 취업환경을 개선하고 IT여성기업인의 경영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2001년 창립한 대표적인 여성 IT기업인단체로, 전국 2개 지회와 350여개의 회원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협약기관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기업 활동 촉진을 통한 IT여성기업의 성장에 앞장서고 있다.

 

KIST는 IT여성기업인협회와의 이번 협약을 통해 KIST의 축적된 우수한 연구역량을 활용하여 IT여성기업인협회 회원사의 성장지원을 위한 애로기술 상담, 기술이전, 특허나눔과 기술자문 등을 지원한다.

 

또한 이번 협약식을 통해 KIST 중소기업지원센터는 IT여성기업인협회 회원사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자리도 계획하고 있다. 오는 7월 4일(수) 회원사 대표들과 KIST 연구자들과의 기술상담회가 개최될 예정이며, 향후 KIST와 IT여성기업인협회 회원사와의 기술상담회는 연간 1회 정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KIST 이병권 원장은 “이번 협약을 바탕으로 IT여성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일원이 되길 희망하고, 여성기업의 매출증대 및 여성의 사회ž경제적 지위보장과 일자리 창출 등 가시적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지속적인 협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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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업 생태계 바꿀 미래 스마트팜 핵심기술들을 선보인다.
- SFS융합연구단, 4일(월) R&D협업연구로

미래 스마트팜 핵심기술 모은 기술박람회 개최
- KIST 주관 5개 출연기관 공동 개발한 스마트팜 기술, 향후 농가 보급 확산 기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병권)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분원장 하성도)는 6월 4일(월) KIST 강릉분원 율곡홀에서 SFS(Smart Farm Solution)융합연구단이 개발한 스마트팜의 핵심기술들을 한 곳에 모아 전시하는 기술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기술박람회에는 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원광연 이사장을 비롯하여 KIST 이병권 원장,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성일 원장,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곽병성 원장, 한국식품연구원 박동준 원장과 스마트팜 관련 학계 및 기업 등의 주요 인사들 200여명이 참석해 SFS 융합연구단에서 그동안 개발한 핵심기술 설명회 및 시연회 참관 행사가 진행되었다.   

 

기술박람회에 전시된 기술들은 2015년 10월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유영민)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지원으로 KIST를 주관기관으로 한 SFS융합연구단의 성과로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 한국식품연구원(KFRI) 등 5개 출연연구기관들이 협업하여 개발된 기술들이 이날 한자리에 모여 선보였다. 

 

아울러, 이날 기술박람회에는 SFS융합연구단에서 개발한 기술을 이전 받은 ㈜컬티랩스 등 9개 기업이 별도의 부스를 설치·운영하여 기술박람회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본 기술박람회에서 전시한 핵심기술들은 1)작물 생육계측 및 분석기술, 2)복합생리/환경 계측 기반 스마트 관수시스템, 3)물 절약을 위한 순환식 양액 살균기술 및 양배액 처리기술, 4)스마트 복합환경제어시스템, 5)스마트 온실작업관리시스템, 6)에너지 최적관리시스템, 7)스마트팜 정보활용시스템, 8)식의약 원료용 기능성 작물 재배기술 등 8개(총 세부연구기술 18개) 분야이다. 향후 이 기술들은 우리나라의 농·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데 활용될 예정이다.
 
SFS융합연구단은 ㈜노루기반 등 6개 기업에 12억 원의 기술이전 성과를 냈고, 기술출자기업인 ㈜컬티랩스를 통하여 태안군에 화력발전소의 폐열을 이용한 1 헥타르(ha, 10,000㎡) 규모의 스마트팜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포항시 및 세종시에 스마트팜 테스트베드를 설치·운영함으로써, 연구실에만 머물러 있는 기술이 아닌 현장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현장 애로기술 해결형 기술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KIST 이병권 원장은 “SFS 융합연구단에서 개발한 기술들이 국내 스마트팜 관련 기업들을 통하여 국내외 농업현장에 적용될 예정이며, 이는 우리나라 스마트팜 산업생태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데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구책임자인 SFS융합연구단 노주원 단장은 “앞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등과의 스마트팜 R&D협업체계를 통해 농가 보급확산을 위해서 지속적인 기술개발에 매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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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KIST인상 수상자 발표
- 임화섭 박사, 강경수 박사 총 2팀 ‘이달의 KIST인상’ 수상 -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병권)은 5월 30일(수) KIST 서울 본원에서 우수한 연구업적을 달성한 총 2팀의 연구자들이 ‘이달의 KIST인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임화섭 박사

KIST 영상미디어연구단 임화섭 박사(책임연구원)팀은 3차원 신체 스캐닝 기술과 스케치 애니메이션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 기술은 한 대의 카메라(컬러/깊이)로 사람의 형상을 고속으로 3차원 모델링할 수 있는 기술로, 간단한 스케치만으로 캐릭터를 자동으로 생성하고 일반 사람들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사용자 참여형 인터렉티브 컨텐츠 제작 기술이다. 이 기술은 고화질의 3차원 모델을 빠르게 생성하므로 3D 프린팅 및 3차원 신체 측정, 가상환경 아바타 생성 등에 활용가능하다. KIST는 관련기술을 ㈜옐로테일에 기술이전했다. 임화섭 박사팀은 이번 기술의 수월성을 입증하고 기술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강경수 박사

KIST 시스템천연물연구센터 강경수 박사(선임연구원)팀은 국민생활건강과 밀접한 주제인 유산균의 미세먼지 보호 효능에 대한 새로운 용도를 발굴하였다. 강 박사팀은 토양에 서식하는 ‘예쁜꼬마선충’이라는 벌레를 이용한 여러 가지 유해물질의 독성평가(Environmental Toxicology)에 관한 연구를 이미 발표한바 있는데, 관련 연구를 비디오 저널(Journal of Visualized Experiments)로 출간하여 전 세계 연구자들이 표준 프로토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KIST는 이 기술을 ㈜한국야쿠르트에 기술이전하였으며, 강 박사팀은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이달의 KIST인상에 최종 선정되었다.

 

 

이달의 KIST인상은 원의 발전에 가장 창조적, 혁신적으로 기여한 우수 직원을 발굴하여 포상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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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眼目)은 귀하의 '경쟁력'입니다(KIST 문화예술 강좌)

KIST에서는 예술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감상을 통해 창의성을 증진하고, KIST 가족의 다양한 문화적 수요에 부응하고자 KIST 예술문화마당 강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5월에는 미술가를 소재로한 영화를 통해 컨템퍼러리 미술을 이해하고 함께 생각해 보는 자리를 가질 예정입니다.

 

  o 강좌명 : 영화로 만나는 미술가와 명작들

   o 일   시 : 2018년 5월 28일(월) 오후 4시~ 5시 30분

   o 장   소 : 국제협력관 제 2회의실

   o 주   관 : 문화경영팀 + 서울시립미술관

   o 강   사 : 신운화 / 조선대학교 미술학부 초빙교수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동 대학원 졸 (철학 박사)

                 - 중앙대, 서울대 등 강의, 서울시립미술관 객원 강사 


물감을 뿌리는 화가로 유명한 잭슨 폴록... 그의 작품은 자유와 예술적 혁신의 표상이기도 하면서 미국적 정신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폴록은 예술가적인 고집과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작가였으며, 중서부 출신으로서 2차 대전 후 새롭게 미술의 중심으로 떠오른 뉴욕에 진출하여 큰 성공을 거둡니다. 폴록이 활동하던 시기는 추상표현주의라는 새로운 조류가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었고, 그는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폴록의 작품 세계는 인디언의 땅 그림, 작품의 대형화, 미술사적 혁신의 요구, 새로운 정신성과 사회적 메시지 등 20세기 중반... 당대 미국 미술의 중요한 특징들을 모두 감싸안고 있습니다. 한편 이 때의 추상표현주의 미술은 미술사적으로 20세기 추상 회화의 정점을 이루면서, 또한 새로운 전환점으로서 이후의 미술의 방향에도 입체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폴록을 중심으로 한 전성기의 추상표현주의 미술, 당대 미술계를 움직인 여러 주요 인물들을 함께 다루게 됩니다. 부인이자 화가였던 리 크래스너를 비롯하여 막강한 비평가 그린버그, 페기 구겐하임을 비롯한 뉴욕의 화랑 관계자들 및 동료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를 통해 폴록과 당대 미술의 사회적 상황, 미술사적 의미와 영향 관계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20세기 이후 현재까지의 주류 현대 미술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강추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안목을 키울수 있는 유익하고 흥미로운 강좌이오니 관심있는 KIST 가족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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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 없는일..? 사실은 너무 필요한 일이다... (5월 창의포럼 후기)

   


2018년 5월 창의포럼에서는 풍부한 상상력과 신선하고 유머러스한 시선, 감각적 문체로 독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등단 23년차 여류소설가 ‘은희경’ 작가를 초청했다. 작가 은희경(1959~)은 전라북도 고창출신으로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자대학교,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후 출판사에 근무하던 30대 중반의 어느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대표작 『새의 선물』을 썼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이후 《타인에게 말걸기》,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중국식 룰렛》 등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96년 문학동네 소설상을 비롯하여 1997년 동서문학상, 1998년 이상문학상, 2000년 한국소설문학상, 2002년 한국일보문학상, 2006년 이산문학상, 2007년 동인문학상, 2014년 황순원문학상 등 안받은 상이 없을 정도로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현재 활발한 집필활동과 더불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자그마한 체구에 은회색 자켓과 데님 계열의 푸른색바지, 등까지 내려오는 갈색톤의 웨이브진 긴머리 그리고 의상과 잘 매치되는 멋스런 파스텔톤 줄무늬 머풀러를 매고...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로 다소곧이 우리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은희경입니다’ 로 인사를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른 시간인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와 주셨다. 이렇게 일찍 일과를 시작하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나도 평소에 지금쯤 일을 시작할 시간이긴 하다. 작가들이 대부분 밤에 작업을 많이 하는데 난 아침에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키운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아침형’이라는 건전한 생활습관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곳이 일산이어서 이곳에 오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여기 KIST 북문에 도착한게 7시 반이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예외적인 날이다. 그런데 이른 시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벌써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 하나쯤은 그냥 가볍게 살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 날씨... 커피... 잡념... >

오늘 비가오는 날씨에 이렇게 KIST에 오게 되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날씨 굉장히 좋아한다. 왜냐하면 뭔가 이야기가 시작될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지 않는가. 작가들이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라고 하면 ‘아, 역시 감수성이...’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작가들은 그렇게 감상적이지 않다. 감상적이면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작가들 만큼 냉정한 사람은 없는거 같다. 냉정해야지만이 휴머니즘을 설득력 있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날을 좋아하는 것은 일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나가놀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일이 좀 잘 된다.

  

오늘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KIST에 왔는데 오늘이 이슬람 라마단 시작일이라고 한다. 여기 와서 아침에 석잔의 커피를 마셨는데 평소하고 비슷한 양이긴 하다. 오늘같이 라마단을 시작을 하면 이슬람 신자들은 새벽 4시부터 밤 7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물도 못 먹는다. 그런데 의외로 고통스러운게 커피를 못 마시는 거라는 친구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잡념이 많은것도 작가의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말씀드릴 것은 작가들의 잡념 같은것 일수도 있다. 왜냐면 잡념이라는 것은 모두가 한 방향을 가리켜 보일 때 그곳에서는 안보이는 것일수 있는 것이다. 어떤 상투적인 것들, 그리고 이미 결정 되어버린 것들, 틀에 갇힌 것들... 그런 것들로부터 되도록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보고 인생에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과학자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작가들이 과학자들을 만나길 좋아하고 수학자의 사랑, 과학자의 사랑 이런 소설들도 꽤 있다. 소설가나 과학자나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야 될 환경, 지니고 있는 어떤 조건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너무나 서로 상반된 방향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서로 매력을 느끼나 보다.

  

< 문학... 도끼로 내면을 깨는것.... >

작가들은 어떻게 다른 방향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또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는지 그런 말씀을 좀 드려보려 한다. <행복에 대한 질문, 문학>이라는 제목을 이곳 담당하는 분하고 상의를 하면서 정했는데 조금 어색하긴 하다. 왜냐면 문학이 행복이라는 것하고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은 불편한 걸 자꾸 들춰내는 것이다. 누구는 그런 말도 했다. ‘문학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내면을 깨는 도끼여야 된다’ 이런 말을 했는데 얼어붙은 내면이라는 것은 그냥 우리가 상투적으로 살고 있는 어떤 삶의 패턴이나 또 우리 머릿속에 굳어져있는 어떤 그 고정관념 같은 것,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혜택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여러가지 특권들까지 포함된다. 쉽게 이야기하면 현재 내가 알고 있는것 안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그런 보수성이 우리의 내면 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자기자신을 ‘나 보수적인 사람이야~~ 나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고, 타인을 이해하고, 나 열린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그 모든것은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뀐다. 우리 자신이 유기체이기도 하고 모든 환경은 유기물이다. 과학자들 앞에서 이런 말은 좀 이상한거 같지만 어쨌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그런것들... 어떤 의심과 불온함이 문학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패턴이라고 부를수 있는 얼어붙은 내면을 깨주는 도끼가 곧 문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것 같다.

  

만약에 <행복에 대한 질문, 문학> 이렇게 이야기 했을때 그 뜻이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 가’에 대한 질문이라면 이것은 자기계발서의 다루어지는 부분이다. ‘무엇이 행복이냐. 무엇이 행복인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하면 그것은 인문학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너무 자기계발서의 세계에 빠져있다. 물론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는 거, 내가 충분히 어떤 것을 우위를 점하는 것... 그런 방법이 어쨌든 우리에게 굉장히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균형을 잡아주는 <추> 가 바로 인문학적인 생각이라고 난 믿고 있다. 균형을 잡아주는 추가 무거워서 귀찮긴 하다. 하지만 이것이 어딘가에서 내 중심을 잡아줘야지 앞으로 나아갈 때도 나의 좌표를 읽으면서 나아갈 수 있다.

  

< 내 방식의 휴머니즘... >

지금 사회가 너무 자기계발서의 세계 속으로 치우쳐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한다. 예전에는 강연할 때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난 인간이 기본적으로 나약하고 모순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을 위대하다는 어떤 틀 속에 자꾸 넣으려고 하고, 미담을 만들고,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포장하고 하는 이런 것들이 인간에게 위로가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추악한 점, 모순 이런 것을 그대로 인정하게 하는 것이 내 방식의 휴머니즘이었다. 소설 속에 정돈된 모습이 아니라 화장실 문을 열어보고, 빨래를 들춰보고 이런 식으로 까칠하고 삐딱한 소설을 많이 썼다. 평론가나 독자들이 ‘아, 은희경 소설은 너무 냉소적이다, 너무 페시미스트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난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휴머니즘의 방식이었다. 섣불리 위로를 하거나, 상처를 덮거나, 화해하거나 이런 것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싸울 사람들은 싸워야 하고, 도저히 안맞는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 하고, 그런 것을 냉정하게 보자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그래서 강연을 다닐 때 너무나 좋은 결말을 갖고 그런 것이 위로고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린 조금 더 냉정해져야 된다. 거리를 둬야 된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 우리는 너무 한쪽으로 경도되어 있다... >

요즘 강연에서는 무슨 얘기를 하냐면 ‘책을 좀 읽읍시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한다. 오래전에 어떤 의사, 교수 이런 전문가집단에서 독후감 심사를 한 적이 있다. 그 대상이 되는 책이 여러 권 있었는데 거의가 자기계발서에 대한 독후감을 냈더라. 그때 유행이었던 자기계발서가 <감성지수를 높여라>, <EQ를 높여라> 등등이었다. 그런데 정작 고흐의 산문집, 고흐의 편지글, 소설 이런건 안본다. 감성을 키우는데 있어 직접 그림을 보고 또 소설을 읽고 이런 걸 접하면서 자신의 감성지수를 키우는게 아니라 <감성지수를 키워라> 이런 책을 보는 거다. 이제 모든것을 정보로만 여기고 자기 감정이나 자신의 판단도 정보로만 생각하지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어떤 감각이나 통찰 이런 것을 중요하게 안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감성을 키우라는데 감성을 키우라는 잔소리를 읽고 있지 진짜 감성을 키우려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십여년 사이에 정치적인 것도 있고 사회적인 것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들이 너무 실용적인 세계... 즉 나의 이익을 위해서 ‘경쟁에서 이기는 것’ 이런 것에 대해서 너무 뻔뻔스럽게 경도되어 있는것 같다.

 

< 소설가의 눈으로 보는 우리사회... >

예전에 내가 자라던 시기에 억압을 느꼈던 것은 허세, 허위의식같은 거였다. 예를 들면, 혼을 담은 시공... 무슨 자기 직업에 혼까지 담는가. 모든 것이 허세와 허위의식이 너무 많았다. 경제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던 그 시기에 이런 이데올로기에 얽매어 너무 억압을 많이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래서 그런 허세를 부리고, 어려운 책 끼고 다니고 이런 것을 비웃는 글을 많이 썼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그런게 없이 드러내놓고 자기 욕망, 나만 이기면 된다는 거, 그런 거에 대해서 너무 노골적이 된거 같다. 그게 난 그 몇년 사이 우리 사회가 너무 이렇게 실용적인 것을 강조하고, 자기 이익만 쫓는 그런 경향이 노골화된 이유가 뭔지 너무 궁금하다. 이건 사회학자도 얘기할 수 있고, 정치적인 쪽으로도 분석할 수 있다. 여러가지 관점이 있겠지만 소설을 쓰는 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즉물적인 세계에 빠져 들었나 곰곰히 생각해 본다. 어떤 위기감, 불안도 있고 자기욕망이 실현되지 못할거라는 것에 대한 자기방어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자기 자신의 좌표를 읽지않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얼어붙어있는 얼음덩이(내면) 즉,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세계 안에서 그 시스템 안에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려고만 한다. 이 시스템이 왜 잘못됐는지, 이 시스템이 뭘 어떤 식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는지...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안하게 된거 같다. 난 그런 질문이 정말 진정한 행복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인문적인 깨달음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좌표를 읽는 어떤 생각의 사생활이 없고 자기 스스로가 뭔가를 생각해서 자기를 알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자꾸만 자기계발서같은 것에 조언을 구한다. 멘토를 찾고 하는것이 자기 스스로가 선택하는 삶에서 멀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

소설을 읽는 독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요즘 현실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어서라고? 인터넷 때문이라고? 일부만 맞는 말이다. 소설을 안 읽는 것은 최근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이란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현실이 힘들수록 더 설득력을 얻는 것 같다. 우리 모두 스펙을 쌓고 취업을 하고 생활비를 벌고 자리보전을 하기 위해 눈앞의 손익계산을 위주로 살아간다. 소설을 읽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 아리엘 도르프만은 소설가이다. 그는 1973년 피노체트가 군부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칠레에서 들었다.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그가 대사관으로 달려갔을 때 거기에는 천여 명의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혁명을 꾀하다 감옥에 갇히고 고문과 추방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밖으로 한발짝만 나가면 대사관을 포위한 군인들의 총에 맞을지도 모르는 고통스럽고 극적인 상황. 그들은 결코 한가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도르프만은 서른 명쯤 되는 난민들이 모여 큰소리로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돈키호테는 스페인 라만차마을에 사는 한 샌님의 이야기다. 그는 기사이야기에 심취한 나머지 즉, 소설을 많이 읽은 탓에 망상에 빠져 스스로를 기사로 칭하고 모험을 떠난다. 풍차를 향해 돌격하고 가상의 공주에게 구애하는 희극이 펼쳐진다. 그럼 도르프만이 목격한 난민들은 긴장을 풀고 웃으려고 돈키호테를 읽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는 군인이었다. 전투 중에 왼팔을 잃었고 해적들에게 포로로 잡혀 지하감옥에서 5년을 보냈다. 천신만고 끝에 조국으로 돌아온 그를 맞아준 것은 냉대와 괄시뿐. 그러나 그는 썩어빠진 스페인 사회를 원망하고 욕하는 대신 그것을 풍자하여 자유분방한 걸작을 만들어냈다.

  

그 책의 서문에서 ‘한가하신 독자들에게’ 라고 씌여있다. ‘한가하신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지상의 모든 불편이 도사리고 온갖 비통한 소리가 모여 있는 감옥에서 수태되었다’ 바로 그것이다. 고통스럽고 급박한 상황에서 난민들이 돈키호테를 읽는 것은 험난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발휘한 세르반테스를 본능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닥쳐오는 불운에 속수무책이지만 고난에 맞서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과 존엄성을 인간은 갖고 있다. 바로 그것을 깨우쳐 주기 때문에 소설은 고통스러운 순간에 힘이 될 수 있었다고 도르프만은 말한다. 개인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찬양하고 실천하는 돈키호테의 정신이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소설을 읽는 일이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맞는다. 소설은 돈 버는 일이나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소설은 그런 일에 내몰리느라 개인의 자유가 속박당하는 시스템에 저항한다. 우리가 남이 조종하는 대로 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라는데 가장 강력한 응원을 보내는 것이 문학이다. 시스템에 따르지 않으니 효용성이 없을 수밖에 없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예술은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불온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별 의미가 없다. 세르반테스가 제시한 비전은 그의 글에 한마디로 표현돼 있다.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것...’ 이 문장을 독자들을 위한 한가한 잔소리로 추천하고 싶다.

  

< 예술, 문학은... 고정관념을 깨는것이다... >

이렇게 문학이나 예술은 지금 결론이 이미 나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고정관념들을 계속 깨뜨린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에 저항한다. 이 시스템 안에서 성공하려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깨치고 혹은 이 시스템이 인간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전향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아이디어와 계기를 주는 발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 문학과 같은 예술이고 인문학이다.

  

‘야, 지금 이렇게 살기 바쁜데 한가하게 무슨 소설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불가능한 현실 같지만 거기서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서 역사가 바뀌어 왔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지금까지도 신분제도 그대로 있고, 여성한테 참정권도 없었을 것이다. 신분사회에서 누군가가 ‘어 왜 이렇게 신분이 정해져 있어? 이거는 좀.. 인간 다 똑같은데 기회가 이렇게 안 주어진다면 불공평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분명히 그 사회에서 불온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은 현재는 없었을 거다. 그런 시스템에서 계속 ‘너 안 돼. 지금 네 신분에 맞는 일을 해야지. 그게 지금 바람직한 일이고 모두가 바라는 거야’ 이런 말에 안주했다면 우리는 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자꾸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현실에 자꾸 적응하려고 하는 것이 쉬우니까.

  

< 누구나 보수가 되기 쉽다... >

대다수에 속해 있는게 쉽기 때문에 그렇게 보수적이 되어간다. 대다수에 속해 있고 어떤 기득권을 누리고 있으면 다른 사람 말을 듣는게 불편해진다. 그러면 점점 편한 사람들끼리만 만난다. 우리끼리 얘기하면 다 우리끼리는 다 맞는 말이다. 그러다보면 자기 확신이 생기고 다른 사람은 틀린것이 된다. 점점 계층은 나눠지고 반목하게 된다.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가 자기 스스로는 ‘나는 유연하고 나는 열려있고 남의 말 다 들을 마음이 있어. 우리 소통하자. 우리 대화 나누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대화로 풀자’ 라는 말은 ‘너 내 말 좀 더 들어봐. 내 말이 맞는거야’ 이런 얘기에 다름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와 약자들이 가만히 있어서 유지되는 평화라는 것은 불합리하기도 하거니와 굉장히 불안정한 시스템이다.

  

어쨌든 간에 ‘어 이상하다? 지금 이게 맞는 건가? 지금 내가 잘하는 건가? 이렇게 가는게 괜찮은 거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나 문학이란 얘기다. 문학이나 기초예술 분야는 어쨌든 계속 현재를 갱신하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다. 어떤 영화감독이 ‘인간은 다 억압 안에서 살고 있어요. 왜냐면 어떤 시스템에 맞춰서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또 경쟁에서 이겨야 되기 때문에... 하지만 본인들은 매일매일 일과가 바쁘고 이런 시스템이 워낙에 그렇게 돌아가게 되어있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라고 이야기 했다.

 

< 인간... 누구나 위로와 되돌아봄이 필요하다... >

예술가들은 그 억압을 관찰하는게 그들의 직업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인간을 억압하는지. 빅데이터에서 이건 어떠세요? 하고 살 물건을 추천을 해준다. 내가 딱 필요했던 물건인데 좋네~~ 하다보면 계속 구매하라는 것을 사고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왜? 편리하니까. 편리하다는 것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기득권 안에서 자기 자리를 공고히 하는 거다. 이런 중에서 누군가가 너를 지켜보고 너를 조종하는 것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이 문학이다.

  

가정을 예를 들어보자. ‘이만하면 우리 가정은 잘 꾸려지고 있어. 왜냐면 내 아내는 굉장히 살림도 잘하고, 내가 원하는 걸 탁탁 알아서 해주고 정말 현모양처야. 우리 애들도 잘 크고 있고 공부도 잘하고 있고 나한테 반항도 하지 않고 뭐 이만하면 잘 되는 거겠지!’ 그랬을 때 어떤 소설은 ‘그럴까요? 당신 아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요?’ ‘집에 있겠지.’ ‘그럴까요?’ 그런 생각을 자꾸 의심을 품게 해준다. 그러니까 불편하고 알기 싫다. 인간사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평온하지 않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도 ‘아... 이 문을 열기 너무 두렵다’ 하는 생각으로 만나야 될 사람이 있고, ‘내가 모르는게 뭐 있어.’ 이런 잘난 사람에게도 깜짝 놀랄만한 일은 매일 벌어진다. 아무리 친구가 많고 모든걸 갖추고 있다고 해도 ‘아.. 정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없을까. 지구상에 누군가 한사람만이라도 지금 깨어서 내 고민을 들어줬으면~~’ 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순간이 일상에서 시간적으로는 조그만 부분이다. 하지만 이 균열은 우리라는 인간을 엄청나게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 그런 것들이 중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 그런 것을 봐주는게 바로 문학이다.

 

< 소설은 생각의 근육... 감정의 근육을 만든다... >

네가 원하는 인생이 뭔지, 네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거기에 맞는 생각을 하고 거기에 맞는 어떤 인생을 살아라’ 라고 하는것이 실제로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어떤 시스템 속에 대해 내 안정된 위치를 흔들지는 모른다. 이것이 바로 좀전에 말씀드린 대로 어떤 <추>이다. 묵직하고 귀찮지만 나의 균형을 잡아주는 추... 이제 우리가 ‘그런걸 깨우쳐 준다면 나도 소설 좀 읽어봐야지’ 모두가 같은 얘기를 할때 ‘그럴까요?’ 그런 얘기를 하는 거라면 나도 한번 읽어봐야지 하는 분이 계실거다. 어렵지 않다. 조금의 훈련이 필요할 뿐이다. 모든 것은 다 훈련이 필요하다. 그림을 보는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이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글을 안다고 문학 작품을 금방 알겠는가. 조금 읽어봐야 된다. 왜냐면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어떤 미적인 도구를 가지고 알려준다. 그냥 ‘재난에 처한 사람하고 그 가족과 자연재해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을 우리가 도와야 된다.’ 이렇게 한마디로 하면 될것을 소설은 몇권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루키라는 일본작가를 많이 아실 거다. 하루키가 쓴 소설 중에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라는 소설이 있다. 중편소설 몇개를 묶은 책인데 고베 지진에 관한 얘기다. 그런데 그 소설에 지진 얘기 하나도 안 나온다. 작가들이 어떤 사건을 소재로 할때 자기 방식으로, 자기 미의식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어떤 작가는 다치고 죽고 이런 사람들에 대한 비극을 쓸 수도 있고 또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어떤 죄의식이나 이런 걸 쓸 수도 있을거다. 근데 하루키는 어떤 걸 썼냐면 지진 얘기 하나도 안 나오고 그냥 평범한 일상이다. 평범한 일상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어떤 사람은 홈리스로 살아간다. 알고 보면 그사람은 안정된 직장도 있고 가족도 화목하게 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근데 이 사람이 혼자 떠돌고 있다. 왜 그러냐면 뭔지 자기가 그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거에 대한 어떤 죄책감을 계속 느끼는 거다. ‘지진 이후에 이 사람은 사회적인 무엇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설명 안 하는게 문학이다. ‘아 왜 설명을 안 해주는 거야. 그래서 왜 이 사람이 이러는데’ 하는 것을 독자가 알아가는 동안에 스스로 어떤 재난에 대한 비극도 인식하게 되고, 소중한 것을 잃었던 사람들하고의 연대감, 그 사람의 고통에 연대감을 느끼게 되는 거다. 이런 것이 문학의 방식이기 때문에 픽션이라는 것은 읽는 사람이 생각할 자리를 많이 만들어 놓는다. 내가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귀찮은 거다. 하지만 그것이 내 생각의 근육, 내 감정의 근육을 만들어 준다. 우리가 어떤 어두운 문 앞에 서 있을때 두려운 상황...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은 고독감.. 그런것이 잠깐 스칠때 나한테 내 자신의 강함을 일깨워준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작품이 뭔가 각성을 주는 거다. 난 그것을 ‘당신의 통각을 찾아준다’ 라고 표현한다.

 

아까 돈키호테에서도 봤지만 대부분 우리는 계속해서 이시스템 안에서 그냥 살아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먼 데에서 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럴때 자기를 좀 멀리서 보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문학이다. 철학책도 마찬가지다. 장자를 읽어보면 ‘나는 여기서 이정도는 실수해도 되겠구나. 이정도는 조금 실패해도 되겠구나’ 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이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줄만큼 커다란 그 어떤 스케일을 체험하게 한다. 조금 방식은 다르지만 문학도 조금 더 멀리서 자기를 보게 만든다. 왜냐면 내가 이 시스템 안에서 사고하던 그 방식이 아니니까.

  

<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라는 소설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거다. 영국의 맨부커상 중에서 외국문학에 주는 상. 그 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그 책이 또 소설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소설을 읽게 만든 경우이기도 하다. 그 소설을 보면 채식주의자라는게 물론 채식을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남편의 시점으로 쓰여 있다. 읽으신 분들도 있을거다. 남편이 한마디로 나는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고 나는 잘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내가 잘한 것 중에 나는 결혼도 좀 잘한 편인데 나는 예쁜 여자도 싫고, 똑똑한 여자도 싫고, 그냥 나를 잘 보필하고 나를 위해서 가정을 잘 이끌어줄 여자를 원하는데 우리 아내가 그걸 잘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아무 불만 없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아내가 자기가 이제 고기를 안 먹겠다고 하면서 나한테도 고기반찬을 안 해준다. 내가 보통 불편한게 아니다. 그래서 심지어 직장상사하고 부부동반으로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자기 아내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이러니까 분위기 싸해지고 남편이 너무 분노가 치민 거다.

 

이 남편 공감된다. 자기 장인 장모한테 다 고자질을 한다. 그러니까 장인 장모 다 ‘이런 기집애가 지가 뭐라고 남편을 고기를 안 해주고’ 이렇게 된거다.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막 야단을 치면서 억지로 고기를 먹인다. 결국 병원에 가고... 그 뒷얘기는 중요하지않다. 이렇게 다 스토리를 말한다고 해서 이게 스포일러가 아니다. 문학작품은 줄거리가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이끌어가는 이야기 속에 배어있는 작가의 생각이다. 즉 작가의 주장이다. 줄거리로만 보면 ‘아 이 여자 왜 이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뭐 좀 남편한테 고기도 해주고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되지. 왜 이러는 거야?’ 이렇게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여자는 폭력을 거부한 거다. 단순히 어떤 육식의 폭력만이 아니다. 남편이 자기를 대하는 방식. 아내를 하나의 역할로만 보는 거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AI가 와서 그 역할을 해도 괜찮은 상황이다. 누군들 AI를 부리고 싶지 자기가 AI가 되고 싶겠나. 아내의 삶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거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에 흐르고 있는 폭력에 대한 고발이 있다. 어린 시절 개를 잡던 군인출신 아버지의 그 야만성... 그리고 그 아버지가 이끌어온 가부장제 안에서의 자기가 순종해야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자기다운 인생을 살 수 없었고, 아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어진 대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자기 인생에 대한 어떤 그 공허감, 두려움 그런 것들이 들어 있다.

 

남성들만 있는 경영자 강연에서 그 소설의 앞부분을 소개했을때 그분들이 그 남편이 뭐가 문제냐고 이렇게 얘기를 하다가 나중에 뒷부분을 알려드렸을때 ‘그 소설 한번 읽어보고 싶다’ 라고 이야기 했다. 근데 그 소설 읽고 실망했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런분들은 더 읽어야 된다. 왜냐면 아직 게임의 룰을 파악을 못한 거다. 소설이라는 것은 성공담이 아니다. 실패 이야기이다. 소설은 문학은 아웃사이더, 소수자, 실패자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 실패하는 이야기이다. 실패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럼 이 세상이 실패자로 다 가득 차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인가? 그게 아니다. 왜 실패했는가를 분석해서 다음에는 성공하려고? 절대 그게 아니다. 성공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주입하고 그 성공에 따르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받고 있는 억압들... 그런것에 대해서 깨우치게 하는 거다. 모든 작가는 휴머니스트이다. 인간에 대해서 애정이 없으면 소설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인간이 뭔가, 인간의 삶은 뭔가’ 이런 것을 관찰하고 이야기로 만드는게 소설가이다.

 

< 쓸데 없는일... 사실은 너무 필요한 일이다... >

어떤 장애를 이겨내고 뭘했다, 역경을 이겨내고 뭘 성공했다 그러면 그걸 보면서 우리 인간은 역경을 통해서 위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소설에 있는 어떤 실패담을 보면 인간은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난 두 깨달음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노력을 해야 되는 쪽인 자기개발서의 세계... 즉 역경을 극복하고 위대함을 찾는 세계에 경도돼 있다는게 문제다.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다는 세계로 조금씩 끌어내주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성공담이 나한테 어떤 인간애를 더 막 고양시키는게 아니라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 공원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아이들 교육을 하거나 다 뭔가를 하고 있다. 휴식이라곤 하지만 모든게 한 순간도 내가 지금 헛되게 보내면 안돼... 하는 이런 강박을 다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오락을 하는데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서 아니라 남들은 이거 한다는데 나도 좀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고있는게 문제다. 멍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것이다. 근데 멍한 시간이 많아야 된다. 그런데 공원에서 다들 무언가를 열심히 히고 있었는데 “와” 하면서 일제히 하늘을 보더라. 무지개가 뜬것이다. 다들 무지개를 보면서 좋아하는 그 장면에서 막 인간애가 샘솟았다. 이 쓸데없는 일을 할때 그럴때 인간이 자기가 되는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우리는 뭔지 시스템 억압 속에서 살아남거나 성공하거나 유리한 자리를 차지한다는데 너무 쫒기는 것 같다. 어떤 평범한 생각 속에 묻혀있는 게, 다수의 어떤 생각 속에 묻혀있는 게, 내게 안전을 보장해 주지만 그것이 나의 행복은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게 내가 여러분께 하고싶은 말이다.

  

< 소설... 새로운 관점의 제시... >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소설이 있다. 우리가 페미니즘책 하면 무슨 굉장히 핍박받은 여성이나 비극에 처한 여성들이 자기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이야기는 그냥 약간 사회학적인 상상일뿐이다. 문학적인 상상은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다. 문학적인 상상은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는 통각을 깨우려는게 문학이다. 어떤 비극적인 독특한 상황에서의 인간애라 하는 이런 것은 조금은 새로운 발견이라기 보다도 약간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약간 가깝다. 사실 북한 문학은 그런게 많다.

  

소설의 이야기를 보면 주인공 여성이 중산층 여성이다. 아무 부러울게 없이 보인다.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남편도 전문직이고, 아이들도 좀 컸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데 이 여자가 자기 방을 원한다. 여성들에게 자기 방이라는게 굉장히 의미가 크다. 버지니아울프의 ‘자기만의 방’ 산문집에 보면 여성은 자기만의 방과 식당에서 마음껏 쓸 수 있는 20실링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 말은 여성의 어떤 자기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 돈을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0만원쯤 된다고 한다. 어쨌든 그 사람도 평범힌 사람은 아니었던 거다. 그 규모가 어쨌든 여성들에게 제일 중요한게 자기만의 방과 그냥 생각없이 쓸 수 있는 그 정도의 돈이다 말했을 정도로 중요한 거다. 왜냐면은 자기라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공간이니까...


근데 ‘19호실로 가다’에서는 주인공 여성이 자기 방을 갖기를 원한다, 물론 남편에게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이 허락하는 방 그런 방은 자기 방이 아닌 거다. 그래서 자기가 어떤 여관에 19호실을 정해 갖고 정기적으로 그곳에 간다. 가서 그냥 가만히 있다 오는 거다. 무엇을 하기 위한게 아니라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니까... 근데 그걸 남편이 알게 됐다. ‘왜 그러지? 무슨 비밀이라도 있나?’ 하고 뒤를 밟고...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그 얘기에서도 이 남편이 이해를 못한다. 부족한게 뭐가 있어서 이러는 걸까? 나한테 말하면 다 해결해 줄 텐데. “너한테 말 안하고 싶은 게 나의 자유야” 그런 것이 있다는 걸 이해를 못하는 거다. 가족인데, 사랑하는 사람인데, 나는 내 아내에게 정말 부족함이 없이 모든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거다. 근데 남편(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되는 거지만 다른 관점을 문학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 문학 작품이라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굉장히 다른 여러가지 관점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방식하고 다른 방식으로 노숙자를 보고, 다른 방식으로 재난을 보고, 다른 방식으로 행복에 대한 개념에 대해 생각하고... 자꾸 다른 방식의 것을 제시한다. 작가들 전부 평소에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어떤 이야기들을 쓴다. 그래서 문학작품들 속 인간들은 전부다 이해할 수가 없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이때 왜 이러는 거야? 너 그여자 사랑하잖아. 그 여자가 지금 너 좋다는데 왜 떠나? 같이 살면 되잖아...‘ 현실에서는 그게 굉장히 쉬운 것 같지만 그 사람의 내부로 들어가면 그것은 좀더 복잡한 문제인 거다. 그런 복잡함을 자꾸 일깨우고 다른 방식으로 하게 하는게 문학작품이다. 그러면 결국 많은 작가들이 인간을 관찰하고, 연구해 보니까 ’이러기도 합디다‘ 라고 소설로 쓰는거다. 어떤것들은 내 생각하고 비슷하고 나를 깨워주지만 어떤 것들은 나랑 전혀 다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면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 마무리 말... >

그럼 어떤 책을 읽어야 되나 하는 문제에 부딛친다. 오늘은 책을 추천하지 않을 거다. 왜냐면 옷처럼 책도 다 자기에게 맞는 책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작가가 되던 시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모작가가 있었는데 10년 전에 읽었을 때에는 이해를 못해 읽지 못하고 그냥 내려놨다. 그런데 10년을 더 산 다음에 더 많이 깨지고, 더 많은 사유의 틀이 늘어났을 때 그 작가가 이해가 됐다. 그래서 사람은 각자 다 다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나한테 반드시 좋으란 법이 없고 싫으란 법도 없다. 그래서 책을 추천할 순 없지만 그런 것을 꾸준한 독서로 책을 많이 접하는 기회를 통해서 자기에게 맞는 작가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문학이라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다른 접근 방법을 떠오르게 하고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틀을 깨는 것이고 그래서 불온하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다. 결국 불온함이 우리의 작은 균열 같은것... 그런것에 대해서 각성과 위로를 동시에 준다. 모든 문학작품이 다 작가가 인간을 보는 방식이다. 그런 방식이 많아지면 그만큼 유연질것이다. 어느 프랑스 철학자가 이것을 ‘문학 작품에서 자기 이해를 벗어난 존재를 만난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이해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나를 보호해 주었지만 그만큼 폐쇄적이었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 그것이 삶의 치유이고 문학이다’ 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오늘 이 문장을 강연의 결론으로 삼고싶다. 경청해 주시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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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사태평~~ 난... 스트레스..!!! (4월 창의포럼 후기)

   

오늘 4월 창의포럼에서는 훈남 외모에 날카로운 분석과 거침없는 진단으로 각종 방송계를 누비고 있는 건강과 심리분야의 힐링닥터... 정신의학과 전문의 양재진 원장을 초청했다. 그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정신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현재 ㈜더진메디베스트그룹 대표이사이자 진병원 대표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02년 ‘진정신과 의원’에서 출발하여 2008년도 부터 <진병원>이라고 하는 알코올중독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특화병원을 개원했으며 2011년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으로 지정받은바 있다.

  

다방면의 다양한 방송프로에서 만나는 그는 사실 알코올중독 치료의 최고 권위자이다. 친근한 외모와 진솔한 언변을 무기로 종편 STORYON 「렛미인」에서 출연자들의 심리 상담을 통해 내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고, MBN 「황금 알」, JTBC 「닥터의 승부」 등에서 유용한 건강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MBN 「동치미」, O TVN 「어쩌다 어른」 등 여러 방송에서 자문위원, 전문가 패널 및 MC로 출연하여 실력을 겸비한 달변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외에도 활발한 강연활동과 2005년에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서를 출간한바 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방송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큰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헤어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은듯한 한껏 멋을낸 머리... 등뒤에 커다란 해골 무늬를 새긴 데님천으로된 셔츠... 핏이 살아있는 검은 바지에 큼직한 버클 장식 혁대... 그리고 흰 운동화... 의사라는 고정관념에서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예인스러운 튀는 복장을 한 그가 우리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정신의학과 전문의 양재진입니다. 반갑습니다’ 로 말문을 연 그는 사회자의 극찬의 소개에 매우 만족해 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 ‘스트레스 그리고 나’ 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과 한 시간반 정도 얘기를 나눠볼까 한다. 크게 개략적으로 스트레스란 무엇인가, 그리고 스트레스가 우리한테 왔을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런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런 순서로 강의를 할 예정이다. 일단 여러분들은 스트레스 많이 받는가?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고 대답을 했는데 어떤게 스트레스 인가? 스트레스가 무언가? 대답하기 싫은데 자꾸 물어보는 이런것도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하면 떠오르는게 주로 부정적인 의미들인데 보통 많은 분들이 떠올리는게 화, 짜증, 답답한 거, 마음대로 안되는거... 주로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데 과연 스트레스가 그렇게 꼭 나쁜 놈일까!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외래어 1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외래어가 꽤나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필이면 이 스트레스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외래어 1위라니.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스트레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환경에서 오는 모든 정신적, 신체적 자극>을 통칭해서 스트레스라고 한다. 즉 스트레스라는 것이 꼭 그렇게 부정적이고 나쁜 놈만은 아니라는 거다. 사실 내가 오늘 강연에 늦을까봐 아, 어떡하지... 빨리 가자! 라고 생각을 하면서 정신적 압박을 받은 것도 스트레스 일거다. 지금 운동하다가 담이 와서 여기저기가 아픈데 이것도 스트레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꼭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것만 스트레스는 아니다.

  

스트레스를 크게 둘로 나눠보면 좋은 놈이 있고 나쁜 놈이 있다. 좋은 스트레스가 사실 여러분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좋은 스트레스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는 거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받는 대부분 스트레스들은 당장은 나를 좀 짜증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거나, 좀 힘들게 할지 몰라도 다 내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자극들이다. 두번째 우리가 이것을 극복할 수 있고 극복해야 되는 스트레스가 좋은 스트레스에 해당이 된다. 즉 우리는 현재 이런 자극들로 인해서 순간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들 수는 있지만 이를 감당하고 극복해냄으로써 좀 더 나은 내가 되는데 꼭 필요한 스트레스를 바로 좋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나쁜 스트레스... 이것들이 문제가 되는데 ‘디스트레스’는 역시 두 가지이다. 첫째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스트레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랫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스트레스가 바로 나쁜 스트레스다. 이 나쁜 스트레스 때문에 살아가면서 사는게 참 힘들다, 답답하다, 혹은 살기 싫다, 그리고 삶의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게 바로 이들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질환들의 주원인으로 작용하는 원인 또한 이들이다.

  

그럼 이런 스트레스가 우리한테 실제로 왔을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자. 여기 첫번째 사진에서 보듯이 커다란 주차장에 무질서하게 여러색깔의 차들이 두엉켜 있고, 또 두번째 사진은 주차된차가 색깔별로 가지런하게 줄맞춰 있다고 생각해 보자. 또 한장의 사진을 보자. 차가 사고가 났다. 앞바퀴 날아가고 뒷유리창 날아가고, 이렇게 사고가 났을때 일반적으로 교통사고에 대한 운전자의 반응을 보면 사고 가까이에서 보험회사에 전화하거나 아니면 그옆에 쪼그려 앉아서 망연자실해 하거나, 뒤차와 사고가 났으면 뒤차 운전자와 멱살잡이 하거나 삿대질하고 싸우는게 우리가 보는 교통사고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데 이 사진속에 이 인간을 봐라. 운전자로 추정되는 그는 기타를 치고 있다. 뭘 말하고 싶은가 하면 똑같은 교통사고라는 스트레스(자극)가 왔을때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보여준 사진이다. 사실 정신과적으로 봤을 때 기타치는 이 사람을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 넌 괜찮은데... 난 속터지진다.... >

지금하는 이야기가 오늘 강의 가장 중요한것 중에 하나다. 우리에게 10이라는 크기의 스트레스가 왔다고 생각해 보자. 스트레스의 크기가 10이니까 그것에 대한 반응도 9나 10이나 11정도로 스트레스에 대해서 반응을 보이는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똑같은 10이라는 크기의 스트레스가 왔는데 그걸 한 2나 3으로 밖에 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좋게 얘기하면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굉장히 답답하고 속 터지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속하는 분들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본인은 본인이 저기에 속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꽤나 많은 분들이 아! 우리팀의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본인은 정작 그것도 모르고 웃으면서 아~ 이러고 있을 거다. 여기 속한 사람들은 딱 보면 해맑고 순수해 보이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굉장히 밝다. 긍정 에너지 뿜어 대서 옆에 사람까지 같이 기분이 좋아지는 굉장한 장점을 가진 반면 단점은 눈치가 없는 것이다. 이분들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모르기 때문에 옆에 사람들이 답답하고 속 터져 죽는 거다. 그리고 이분들은 스트레스가 왔을때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본인은 무병장수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하지만 함께 사는 배우자, 그리고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 그리고 저런 분들을 부하직원으로 둔 직장상사는 암에 걸릴 가능성이 굉장히 올라간다.

  

< 난 왜 거절을 못할까 ?.... >

반대로 똑같은 10이란 크기의 스트레스가 왔는데 이걸 남들보다 훨씬 크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다. 좋게 얘기하면 굉장히 꼼꼼하고 섬세하고 세심한 분들이다. 나쁘게 얘기하면 굉장히 예민하고 민감한 분들이다. 이분들은 둘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한쪽은 좀 부드럽고 약한 쪽에 속한 분들이다. 부드럽고 약한 쪽에 속한 분들의 특징은 첫째로 주변사람들의 평가가 좋다. ‘그 사람 착해. 사람 좋아. 배려심 좋아’ 이런 얘기를 주로 들으시는 분들이다. 두 번째로 저런 분들을 흔히 관찰할 수 있는게 같이 밥을 먹은 후에 식당에서 나가는데 굳이 테이블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일행 중 누군가 핸드폰이나 지갑 같은 소지품을 놓고 가지 않았나 챙겨주시는 분들... 아니면 같이 술 먹고 집에 갈때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아니라 일행 전부를 택시 태워 보내고, 대리 불러 보내고, 다 보내고 나서 마지막에 내가 택시타고 집에 가야 마음이 뿌듯하고 편하신 분들... 세번째는 이분들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인데 ‘이것 좀 해줘.’ 그러면 속으론 진짜 하기 싫은데 ‘응. 알았어’ 하고 뒤돌아서 ‘미쳤어. 미쳤어’ 하고 자책하고 후회하면서도 거절 못하시는 분들이다. 여기에 속하는 분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저분들은 손을 절대로 높게 들지 않는다. 손을 들때 손이 머리보다 올라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손을 보통 어깨 아래로 살짝든다. 그리고 손을 들때 그냥 들지 않는다. 혹시 누가 내가 손드는걸 쳐다볼까 주변을 살피시며 손을 듦과 동시에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손을 내린다.

  

그럼 이분들은 왜 이런 모습을 보일까. 저분들은 특징이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이 남들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남들한테 싫은 소리도 못하고, 나쁜 말도 못하고, 특히 거절을 못하는 특징을 보인다. 저분들이 착해서 주변사람을 그렇게 잘 챙기고 배려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인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거다. 예를 들어 이쪽에 속하는 분들이 거절 못해서 맨날 당하고, 맨날 힘들고 하다가 어느날 굳게 결심을 하고 ‘내가 이제는 거절하고 산다’ 라고 결심하고 거절을 딱 했다 치자. 그러면 거절한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와 상대방이 마음이 쓰여서 일주일동안 잠을 잘 못잔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 또 거절 못하고 다 해주는 거다.

  

< 내가 왜 싸움닭 이야 ???... >

반대로 똑같이 예민하고 민감한데 좀 강하고 센 쪽에 속하는 분들이 있다. 강하고 센 쪽에 속하는 분들의 특징은 첫째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만의 원리원칙이 있다. 이 나만의 원리원칙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법률적으로 대부분 옳은 얘기고, 맞는 얘기고, 좋은 얘기다. 그럼 뭐가 문제가 되느냐. 나만의 원리원칙이니까 나만 지키면 되는데 주변 사람들한테 지키라고 강요한다는게 문제다. 막 떠오르는 사람 있지 않는가? 저분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은 이렇다. ‘사람이라면’, ‘직장인이라면’, ‘어른이라면’ 이런 얘기들을 주로 하시는 분들... 이런 가치관 자체가, 규칙 자체가 나쁜 얘기 아니고 좋은 얘기고 대부분 들으면 다.

  

다 맞는 얘기지만 그것은 본인한테 해당이 되니까 본인만 지켜야 되는데 주변 사람들한테 자꾸 지키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다. 또 저분들의 두 번째 특징은 좋게 얘기하면 사회에서 정의의 사도, 나쁘게 얘기하면 싸움닭이 많다. 예를 들면 지하철을 타고 간다고 치자. 근데 노약자석에 젊은 친구가 앉아있고 다음 역에서 어르신이 타서 그 앞으로 갔는데 얘가 양보를 안한다. 그럼 우리 같으면 ‘아, 어르신한테 양보 좀 하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넘어가지만 이분들은 그런 꼴을 보고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앉아있는 젊은 친구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어린놈의 새끼가 싸가지 없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쫓아낸다든지... 누군가 난폭운전을 하고 지나가면 ‘아, 위험하게 왜 저래.’ 하고 말면 되는데 이미 차는 지나가서 들리지도 않는데 막 소리 지르면서 ‘저런 놈 때문에 대한민국 발전 안된다’ 고 막 소리 지르시는 분들... 그리고 이분들이 가장 자신의 저런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많이 보여주는 곳이 어디냐면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곳인데 우리가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곳들은 주로 음식점이다. 저분들이 유행시킨 유행어가 있다. ‘사장 나와. 점장 나와. 매니저 나와.’ 자, 나 여기 속한다고 손을 들고 싶지만 좀 전에 했던 부정적인 얘기들이 마음에 걸려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닌데’ 라는 생각에 손을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분들을 위한 약간의 변명 혹은 해명을 좀 하겠다.

  

< 나도 장점 있습니다.... >

저분들은 굉장한 장점이 있다. 첫째, 일을 아주 잘한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맡긴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고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는걸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끝까지 하건, 아랫사람을 조져서 끝까지 시키던 어떻게든 일을 해낸다. 두 번째 장점은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근데 아무한테나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 저분들은 내 영역(바운더리)이 있다. 그래서 내 영역 안에 내가 인정해서 집어 넣어준 내 사람들에 대해서 예를 들면 아버지는 별로고, 어머니는 좋고, 형제 중에서도 형은 좋은데 동생은 싫고, 친구 중에서 너는 마음에 들어. 이렇게 내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항상 있다. 그래서 자기가 인정한 내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리 힘들어도 이고, 지고, 안고, 끌고라도 함께 가려는 굉장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분들이 이고, 지고, 안고, 끌고 가는 그분들이 제발 ‘나 좀 놔달라고, 나 좀 그만 끌고 가라’고 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거다. 뭐 이정도 해명을 해본다. 보통 조직사회 수장으로 갈수록 이쪽 성격이 많다.

  

< 나 때문에... 너 때문에 누가 힘들까?... >

다시 정리를 해보면 똑같은 스트레스가 왔을 때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데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지만 답답하고 속 터지는 쪽에 속하는 이분들은 누가 힘들까? 본인은 편하다. 세상 살기 아주 편하다. 대신 주변 사람들이 힘들다. 그럼 예민하고 민감한 쪽에 있으면서 부드럽고 약한 쪽에 속하는 이분들은 누가 힘들까? 주변 사람은 되게 편하다. 이분이 다 챙겨주고 맞춰주고 하니까... 나만 힘든다. 예민하고 민감한데 강하고 센 쪽에 속한 분들은 누가 힘들까? 첫째, 주변사람 힘들다. 맨날 잔소리하고 뭐라고 해대고 자꾸 뭘 시키니까... 근데 문제는 주변사람만 힘든게 아니라 자기자신도 힘들다는 거다. 내 스스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분들이기 때문에 좀전에 이야기한거 같은 얘기를 해드리면 굉장히 억울해하고 서운해 하고 분해하면서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다. 그럼 왜 이렇게 똑같은 스트레스가 왔을 때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일까?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불안도와 민감도라는 것의 차이 때문이다. 누구나 다 불안이나 긴장, 불안도와 긴장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어떤 분들은 불안도나 긴장도가 낮고 어떤 분들은 적당하고 어떤 분들은 불안도와 긴장도가 높기 때문에 같은 스트레스 같은 자극이 왔을 때 다르게 반응을 보이는 건데 그것에 대한 얘기를 좀 하려한다.


<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불안도... 긴장도... >

지금 보는것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피크닉하는 사진하고 주차장 사진이다. 이평범한 일상은 불안도와 긴장도가 아주 일반적인 분들의 모습이다. 다음 사진은 불안도와 긴장도가 아주 높은 분들의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이 피크닉 사진을 보자. 매트리스별로, 파라솔별로, 남자별로, 여자별,로 애들별로, 장난감별로 기가 막히게 줄을 세워놨다. 또 이 주차장 사진을 보자. 노랑, 빨강, 파랑, 까망, 은색, 흰색... 색깔별로 아주 예쁘게 맞춰놨다. 이 사진을 보면서 몇몇 분들은 ‘어우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살아~’ 하고 답답함을 느끼며 흐트러뜨리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분도 있을 수 있다. 또 몇몇 분들은 이제야 무언가 좀 정리가 된 듯한 느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분도 있을수 있다. 그 반응을 가지고 나는 이쪽에 좀 더 가까운지, 저쪽에 좀 더 가까운지를 추정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처음에 보여드린 주차장에 색깔별로 가지런하게 줄맞춰 있는 사진을 보고 다들 기겁하고 있을 때 검은색 차들이 가지런히 서있는 맨끝에 노란차를 발견한 발견한 분... 이 차는 노란색인데 왜 여기 있지? 하면서 나 홀로 속상해 하는분도 있다. 보통 강의를 가면 100명에 1명 정도 있기 때문에 이 컨벤션홀에도 분명히 계실거다. 이 노란 차를 발견하신 분들을 우리가 뭐라고 부르냐하면 ‘불안도와 긴장도의 끝판왕’이라고 부른다. 즉 불안도나 긴장도가 높다는건 뭐일까? 노란 차를 발견한 것처럼 남들 눈에 안 보이는게 나한테는 보이고, 남들 귀에 안 들리는 게 나한테는 들리고, 남들은 눈치 못채는 묘한 분위기라는 걸 나는 눈치를 챈단 말이다. 즉, 남들한테는 자극이 아니고 스트레스가 아닌게 나한테는 자극이자 스트레스이고, 그 각각의 자극을 남들보다 훨씬 더 크게 받아들이다 보니까 하루하루 안정되게 사는데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쏱아야 되는 분들이다. 반면 이런 노란차를 발견한 불안도와 긴장도의 끝판왕 분들은 최고 장점이 센스가 무척 좋다는 것이다. 아까 말한 대로 남들이 못 보는걸 보기 때문에 그런 쪽에 맞는 일을 하면 굉장히 좋다. 특히 틀린 그림 찾기 이런 게임 굉장히 잘할거다.

  

< 누가 날 닮은 아이일까? ... >

그럼 이런 불안도나 긴장도라는 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고 왜 사람마다 다를까? 이 차이는 바로 성격으로부터 오게 된다. 캐릭터, 퍼스널리티라고 하는 이 성격을 100이라고 놓고 봤을때 절반에 해당되는 50%는 언제 만들어지는 성격일까? 이건 가지고 태어나는 성격이다. 이걸 우리가 흔히 기질이라고 이야기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을 하면 아버지 정자, 어머니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고 72시간 내에 어머니 자궁벽에 착상이 된다. 이후 세포분열이 되면서 사람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수정이 되고 착상이 될때 이미 결정이 되어있는 성격이다. 그러면 가지고 태어나는 성격인 기질은 당연히 엄마, 아빠한테서 받는 거다. 이론적으론 이 성격이 엄마, 아빠한테 반반 받아야 될텐데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아실거다. 아이의 성격이 엄마, 아빠를 반반 닮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한쪽을 더 많이 닮게 되어 있다.

  

그러면 누가 날 닮은 아이인가?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집에서 하는 얘기를 하면 안된다. 착하고 말 잘듣고 좋은건 다 나 닮았고 나쁜건 다 아빠 닮았다고... 엄마 닮았다고 이야기들 한다. 과연 누가 날 닮은 애인가?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배우자하고 싸워서 배우자가 꼴 보기 싫어 죽겠을때 똑같이 꼴보기 싫은 애는 배우자를 닮은 아이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경험들 있으실 거다.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애가 누구냐... 엄마, 아빠가 엄청 크게 싸우고 아빠가 확 집을 나가버린 상태에서 엄마와 둘이 남겨진... 아빠 닮은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아이다. 그 아이는 그날은 앉아있어도 혼나고, 돌아다녀도 혼나고, 웃어도 혼나고, 울어도 혼나고... 그러면 누가 날 닮았을까? 날 닮은 애는 화 안났을 때... 평정심 유지하고 있을때 나도 모르게 자꾸 뭔가 눈에 걸리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는 아이가 나를 닮은 아이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이유가 뭐냐면 내가 살다보니 이러이런 나의 성격때문에 내가 항상 힘들었고, 불편했고, 뭔가 문제가 생겨서 그놈의 성격을 좀 고치려고 하는데 진짜 안 고쳐진다. 근데 그런 내 모습이 아이한테 보여질 때 조금이라도 보여지면 ‘야, 쟤 저러다 커서 나처럼 이러면 되게 힘들 텐데’ 라는 나만의 불안, 걱정 때문에 애한테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어 있다.


< 나랑 다른 저 사람에게 왜 끌릴까?... >

이게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겪는 대인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몇번 보지도 않았고 나한테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싫은 사람이 있다. 괜히 정 안가는 사람... 나한테 뭘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사람이 왜 괜히 싫을까? 그 사람한테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반대도 있다. 괜히 좋은 사람, 특히 이성 간에... ‘나한테 딱히 잘해준 것도 아니고 많이 보지도 않았고 특히 내 이상형하고 거리도 먼데 왜 나는 쟤한테 자꾸 끌리지?’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그 사람은는 나한테는 없는걸 그 사람이 가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얘길 한다. ‘이성은 서로 간에 결핍에 끌린다’ 라고 한다. 그러다보니까 어떤 참사가 일어나느냐. 이쪽 동네에 있는 사람들 하고, 반대쪽 동네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끌려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유가 뭐냐면 이쪽 사람들이 볼때 사람들은 정말 멋있다. 왜냐면 자기는 계획이라는 걸 세워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 사람들이 일처리를 계획적으로 해나가는 모습이 되게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이쪽 사람들이 볼때 자기들은 매일 불안과 긴장이 내 어깨를 혹은 목을 짓누르는 것처럼 항상 뭔가 좀 조이는 듯한 삶을 살아서 답답하고 불편한데... 얘네들한테는 불안 따위를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상당히 부러운 것이다. 또 이 사람들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굉장한 불안과 공포가 있다. 그래서 일탈을 꿈꾸지만 이분들은 일탈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항상 정해진 길을 간다. 근데 얘네들을 길이 없다. 그냥 자기 맘대로 막 이렇게 가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또 그런 자유분방함이 부러워서 서로 이런 차이로 끌려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함께 살다가 이런 차이 때문에 죽도록 싸우게 되는 거다.

  

< 좋아서 결혼해 놓고 왜... 죽도록 싸울까? ... >

여러분들이 흔히 겪는일... 실제로 우리한테 부부치료를 받으러 오는 분들 중에 가장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는 커플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조금 생활에서 와 닿게 설명을 하면 이렇다. 이쪽에 있는 사람이 치약을 밑에서부터 열심히 짜 올리면 얘가 가운데를 확 눌러버리고... 반대쪽에 있는 성격의 남편이 자다 깨서 변기 뚜껑을 올리고 볼일을 보고 들어가 잤는데 부인이 아무 생각없이 와서 앉았다 변기에 빠졌다는 둥 뭐 이런 것들... 실 사례도 있다. 나한테 왔던 부부인데 결혼 한지 한 1년 좀 넘었던 젊은 부부였다. 부인의 특기와 취미는 청소와 정리, 남편의 특기는 마신 컵 아무데나 놓기, 물 마시고 여기다 놓고, 콜라 마시고 저기다 놓고, 심지어 화장실에 커피잔이 가있고... 부인이 그걸 맨날 수거하고 다니다가 어느날 너무 화가 난거다. 왜 나만 이걸 자꾸 해야 돼? 그래서 거실에 소파 옆 테이블 위에 남편이 마시다 만 컵을 일주일 동안 내버려 둬봤다. 자 일주일 뒤에 그 컵은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거다. 그러니 부인이 얼마나 화가 났겠나. 남편을 불러다가 ‘야 인간아. 네 눈엔 이게 안 보이냐?’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컵은 남편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남편의 뇌에서는 그 컵을 치워야 될 대상으로 인지하는게 아니라 가구와 마찬가지로 그냥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물건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이걸 치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한다.

  

반대 케이스도 있었다. 이 집은 결혼한지 좀 된 집이었고 나이 차이가 좀 났었는데 남편의 특기와 취미 역시 청소와 정리, 부인의 특기는 어지럽히기...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집안이 완전히 난장판이다. 부인이 깨 있으면 집이 더 더러워지기 때문에 부인을 빨리 재우고 남편이 청소를 한다. 그리고 자고 있는 부인과 깨끗해진 집을 보며 뿌듯한 마음에 잠이 든다. 아침에 출근할때 깨끗한 집을 보며 뿌듯한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그리고 퇴근하고 오면 또 난장판... 남편이 어느날 생각을 했다. ‘이거 내가 자꾸 해줘 버릇해서 이러나’ 그리고 ‘왜 나만 자꾸 이렇게 괴롭고 청소를 해야 되지?’ 그런 마음에 ‘너도 한번 괴로워봐라’ 라고 하면서 일주일 동안 청소를 안했다. 자, 일주일 후에 누가 괴로울까? 남편만 괴롭다. 부인은 익숙한 환경이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 사람... 변하지 않는다... >

그럼 이분들이 안 싸우고 잘사는 방법이 뭘까. 안 싸우고 잘 사는 방법은 딱 하나다. 불편한 사람이 치우는 거다. 대부분은 이쪽에 있는 사람들이 이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청소를 시킨다. 마신 컵 갖다 놔라, 양말 거꾸로 뒤집지 마라, 옷은 벗었으면 세탁기 통에 갖다 놔라’ 라고 10년 동안 보통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보통 살기 위해서, 순전히 살아남기 위해서 변한 척 조금 조금씩 노력을 한다. 그러면 이 분들은 내가 잔소리를 해서 사람을 바꿔 놨다고 되게 뿌듯해 한다. 과연 이 분이 바뀌었는지는 집에 CCTV를 설치하고 일주일만 혼자 여행을 갔다가 온후 CCTV를 보시면 깜짝 놀랄거다. 정확하게 6일 반나절 동안 옛날로 돌아가서 살던 인간이 그 반나절 동안 살아보겠다고 다시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대표적인 유형의 커플이 있다. 이쪽에 속하는 사람(A), 즉 부드럽고 약한 쪽에 속한 분들은 아까 얘기한 것과 같이 싫은 말도 못하고 나쁜 말도 못하고 거절도 못하기 때문에 ‘나는 뭔가 항상 손해보고 산다.’ 라는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다. 근데 반대쪽 사람들(B)을 봤더니 이쪽 동네에 있는 사람들은 할 말, 하면 안되는 말을 다 하는 거다. 그런 부분이 대리만족도 느끼고 굉장히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B가 봤을 때 A는 완전 자기 밥이다. 그렇게 말을 잘 들을 수가 없다. 이분들이 서로 끌려서 같이 사는 경우 어떻게 될까? B는 갱년기 올때까지는 되게 잘 산다. 반면에 A는 어떻게 되느냐. 화병이 생긴다. 그래서 저희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장 주 단골 고객들이 A쪽 분들이다.

  

< 저 인간... 바꿀수가 있을까? ... >

이렇게 ‘사람이 안 변한다’는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정신과의 대전제가 뭐냐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그럼 그게 진짜 안 변한다는 뜻일까. 그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게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인 거다. 그런데 사람이 변하기 위해선 필요한게 3가지가 있다. 첫째 동기가 있어야 된다. 근데 이 동기라는 건 내가 능동적으로 어디 가서 막 찾는게 아니라 주로 수동적으로 당하는 거다. 그리고 긍정적인 동기보다는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 동기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 나 이렇게 살다가 큰일 나겠다’ 아니면 ‘내가 아이한테 이렇게 했다가는 큰일 나겠다’ 혹은 ‘아, 이런 버릇가지고 내 이런 생활습관으로는 회사에서 큰일 나겠다’ 뭔가가 생겼을 때 ‘나 바뀌어야 되겠다.’ 라는 동기가 딱 생긴다. 이런 동기는 많이들 경험해 보았을거다. 두번째는 ‘동기’ 다음에 반드시 필요한 게 의지다. ‘내가 어떻게든 죽어도 바뀌어야 되겠다... 죽어도 변해야 되겠다’ 라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된다. 근데 이 동기와 의지까지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갖는다. 그럼 이 동기와 의지가 보통 며칠 가냐하면 작심삼일로 딱 3일 간다. 보통 3일... 길면 3개월... 세번째가 제일 중요하다. 동기, 의지 이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뭐냐. 바로 충분한 시간 동안의 충분한 노력이다. 그럼 얼마의 시간이 충분한 거냐.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많이 다들 들어보셨을 거다. 어느 한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 1만 시간인데 이걸 24로 나누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 우리가 하루 24시간 잡았을 때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그리고 하루에 8~9시간 일하는 시간, 출퇴근 시간 등 다 빼고 내가 오롯이 이것 하나만을 위해서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보통 하루에 3시간 정도밖에 안 나온다. 그럼 이 3시간을... 일만 시간을 3으로 나누고 그걸 365로 해보면 딱 10년이 걸린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투자해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성격을 바꾸거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행히 일할 때도 할 수 있다. 밥 먹으면서도 생각할 수 있다. 즉, 잠자는 시간하고 기타 잡시간을 빼고 최소 하루에 10시간 정도는 ‘나 이거 변해야지, 나 이거 바꿔야지, 나 이렇게 해봐야지’ 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가 있는 거다. 그럼 일만 시간을 하루에 10시간으로 나누고 이걸 365으로 나누어 보면 3년이 걸린다. 그래서 보통 우리가 어떤 성격 하나를 혹은 어떤 행동 하나를 반복함으로써 나의 패턴으로 바꾸는데 걸리는 시간이 보통 3년 정도이다. 즉 동기가 생기고 의지를 가진 다음에 최소 3년 정도 하루에 10시간씩 꾸준히 노력을 해야 내 성격 하나가 바뀌는 거다. 정확한 동기 혹은 나의 강렬한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나 시선을 바꾸는게 훨씬 더 본인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고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거다.

  

< 유아기... 중요하다~!!! >

앞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가지고 태어나는 성격이 절반, 그리고 절반의 반. 즉 25%의 성격은 언제 만들어지는 성격일까. 이건 ‘아동기’에 만들어 진다. 아동기를 보통 성장발달 쪽에서는 ‘유아기’라고 한다. 유아기 즉 쉽게 생각해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만들어지는 성격이 25%나 된다. 우리나라 나이로 따지면 한 만 5~6세 된다. 그러면 태어나서 유아기 때는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까? 엄마다. 옛날에는 우리 아버지 세대때는 사실 남자가 육아에 참여를 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이 양육에 거의 참여를 안하고 가끔 훈육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쓸데없이 어마어마하게 지나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하나로 집안 분위기가 좌지우지 되곤 했다. 아버지가 술 마시고 통닭이라도 하나 사들고 오면 집안 분위기 좋고, 아버지가 술 한잔하고 인상 막 쓰고 들어오면 어머니가 ‘얘들아 아버지 기분 안 좋으신가보다. 조용히 해라’ 이런식으로 아이의 유아기에 아버지가 영향을 미쳤다.

  

요즘에 젊은 남편들... 한 20~30대 정도의 아빠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부인에게 소환이 되어서 아이 양육에 참여를 하게 된다. 요즘 젊은 아빠들이 몇년전부터 제일 싫어하는 프로가 2개가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와 ‘아빠 어디가’ 라는 프로다. 부인이 시키면 하기 싫고 안해도 되는데 애들이 아빠에게 ‘저 아빠는 하는데 왜 아빠는 안 해?’, ‘왜 아빠는 나랑 안 놀아줘?’ 하면서 애들이 나쁜 아빠로 인식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양육에 참여를 한다.

  

< 내 아이 성격 3/4 은 어디서 오나?.... >

요즘에 젊은 남편들은 아이 양육, 육아에 참여를 한다. 과거에는 참여를 안했지만 현재는 분위기 변했다. 직접 아이 육아에 참여를 함으로써 유아기에 아이가 엄마, 아빠의 영향을 받는다. 성격의 1/4이 첫째 어떤 환경에서 아이가 자랐느냐라는 양육환경, 두번째 어떤 교육, 가정교육을 어떻게 해서 애가 자랐느냐를 가지고 만들어진다. 재밌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이야기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되는 성격의 4분의 3이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인가? 바로 부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거다. 요즘 간혹 강의를 가거나 상담을 하거나 교육을 가거나 했을 때 젊은 부모들 같은 경우에 예전과 좀 다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질문하는게 똑같았다. ‘어떻게 하면 애가 공부를 잘 해요?’, ‘어떻게 해야 집중력을 올릴 수 있어요?’, ‘ADHD 약을 먹으면 진짜 집중력이 올라가나요?’ 이런 얘기들을 주였는데 한 2~3년 전부터 물어보는게 조금씩 변했다. 뭘 물어보느냐면 ‘어떻게 하면 우리애가 좀 괜찮은 사람이 되냐? 어떻게 하면 우리애가 좀 인성이 좋은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느냐’ 라는 인성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한다. 2~3년 전부터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채로 공부만 잘한 사람들이 감옥에 가는걸 정말 많이 본 이후로 인성이 중요하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애가 괜찮은 사람으로 자랄수 있느냐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 있다. 누가 괜찮아야 애가 괜찮아지는가 바로 부모다. 성격의 3/4을 차지하는 부모가 괜찮아야 된다. 즉 내가 괜찮은 사람이고 배우자가 괜찮은 사람이어야 아이가 괜찮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 그 괜찮은 배우자는 누가 선택하나? 결국 누가 괜찮아야 애가 괜찮나? 이게 정답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성이 좋은 사람에게 끌린다. 인성이 좋은 그 사람도 인성이 좋은 사람한테 끌린단 말인 거다. 즉 내가 인성이 좋아야 인성이 좋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커지고... 나와 내 배우자가 인성이 좋아야 우리 아이가 인성이 좋은 사람으로 자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 성격의 1/4 내가 만든다.... >

성격중 나머지 1/4, 이게 바로 10대, 20대, 30대를 거쳐 대략 만 40세까지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성격이다. 과거엔 만 40세면 성격이 굳어진다고 그랬다. 그때는 60살이면 죽었으니까... 근데 요즘에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내가 볼때는 40대 중반 정도까지 성격이 만들어지는것 같다. 그럼 재밌는게 평생 가지고 살아가야 되는 성격의 4분의 1밖에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보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뭐야. 부모가 다 내 인생 이렇게 만든거 아니야?’ 반대로 ‘내가 이렇게 된거 부모 탓이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실제로 상담을 하다보면 그런 분들 꽤나 많다. ‘엄마가 내 인생을 망쳤어요., 아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어요, 우리 부모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등등...

  

그런데 우리가 성격적으로 성숙한다는게 어떤 거냐면 내가 만들어가는 10대, 20대, 30대 동안 내 성격을 잘 만들어서 내가 태어난 기질 그리고 양육환경과 가정교육에 의해서 만들어진 성격을 잘 조절하면서 사는게 바로 성격적으로 성숙한다... 라는 거다. 즉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 탓, 엄마 탓, 아빠 탓을 하고 있는 분들은 ‘나는 정신적으로 혹은 성격적으로 아직 많이 미성숙해요’ 라고 말하는거 밖에 안된다. 한 20대까지는 그 얘기가 통한다. 자기가 만들어온 성격이 조금밖에 안되기 때문에 부모 탓 하는게 이해되고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 하지만 최소 30세가 넘어서 혹은 35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모 탓을 한다는건 ‘나는 아직 내 성격을 잘 만들지 못해서 이걸 조절할 정도의 성숙함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 내 아이... 괜찮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

그러면 아까 얘기한 불안도와 긴장도하고 도대체 이 성격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느냐? 가지고 태어나는 기질 안에 사실 불안도나 긴장도가 어느 정도 결정이 돼 있다. 갓난아기를 보셨던 기억을 잘 떠올려 봐라. 약간 극단적인 예지만 어떤 애는 잠투정 한번 시작하면 기본 한두 시간이고 엄마 팔 떨어지게 만들고 겨우 잠든걸 내려놓으면 또 깨고, 자기가 덮고 자는 이불만 바뀌어도 못자는 애가 있다. 그리고 옆집 아줌마가 아니라 할머니가 와서 ‘아이고 예쁘다’ 해도 낯가리면서 막 우는 애들이 있다. 반면에 어떤 애들은 자나보다 하면 벌써 잠들어있다. 그리고 아무데나 갖다놔도 잘 잔다. 지나가는 아줌마가 ‘아이고 예쁘다’고 해도 방긋방긋 웃는 애가 있다. 즉 애기들은 이미 태어날때 그 기질 안에 불안도나 긴장도가 이미 결정이 돼있다. 전자는 예민하고 민감한 애, 후자는 순한 애... 가지고 태어난 불안도와 긴장도가 기질 안에 녹아있는 거다.

  

근데 사실 더 중요한 건 가지고 태어난 불안도, 긴장도 보다 유아기 시절이다. 이 시절에 가지고 태어난 불안도나 긴장도가 수정이 된다. 예를 들어서 불안도나 긴장도를 높게 가지고 태어난 애가 있는데 이 유아기 때 집안 분위기가 엄마,아빠가 매일 싸우고, 집에는 항상 불안과 긴장이 흐르고, 애는 주로 꾸중 혹은 비난 같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서 자라면 가지고 태어난 높은 불안도나 긴장도가 강화가 돼서 더 올라간다. 반면에 똑같은 높은 불안도나 긴장도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부모 사이좋고, 가정 화목하고, 집안에 항상 안정감이 흐르는 집 그리고 칭찬, 격려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로 받고 자랐다고 하면 높았던 불안도나 긴장도가 완화가 되어 낮아진다. 그렇게 가지고 태어난 불안도나 긴장도를 이 시기에 수정을 하게 되고, 그 수정되고 변형된 불안도나 긴장도를 가지고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보이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 스트레스를 받으면 ?... >

그러면 이런 스트레스가 실제로 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간략하게 몇 가지 이야기 하겠다. 스트레스 받으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힘든 일을 겪으면 마음이 아프다... 하는 얘기들을 하는데 우리의 이놈의 마음은 어디 있을까? 과거의 분들은 마음이 아프다 그러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실제로 굉장히 격렬한 사랑 후에 결별을 할 때나 아니면 정말로 가족의 죽음이라든지 큰 스트레스 앞에서는 실제로 가슴이 아프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가슴에 있을까? 그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은 머릿속, 뇌 안에 있다. 우리 뇌 안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들이 우리의 기분, 감정, 생각 등등을 다 조절해 준다. 근데 이 신경전달물질.. 도파민, 그리고 세로토닌도 많이 들어보았을 거다.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중요한건 이들이 뇌 안에서 자기들끼리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우리의 기분, 감정을 다 조절해 주는데 처음에 얘기했던 나쁜 스트레스,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스트레스, 혹은 오랫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스트레스에 의해서 이들 사이에 균형이 깨져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거다.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진 그런 질환들이 바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주로 다루는 질환들이다.

  

<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다.... >

우울증의 유병률이 대략 몇 퍼센트 될까? 우울증의 유병률은 약 10%다. 유병률이 10% 정도나 되는 질병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예를 들면 여기에 100명이 있다 그러면 이중에 10명은 걸렸거나 걸려있거나 혹은 앞으로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인 거다. 유병률이 10%인데 대신 남녀차가 있다. 여성한테서 남성보다 2배 더 많이 생긴다.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호르몬 때문에 그렇다. 여성 성호르몬이 꼭 성호르몬 역할만 하는게 아니라 그중에 에스트로겐은 아까 언급한 신경전달물질과 더불어서 뇌에서 기분을 조절해준다. 여성에게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전 증후군, 산후 우울증 같은게 생기는게 바로 이 때문이다. 산후우울감은 대략 60%에서 호소한다. 그리고 그중에 대략 20%가 산후우울증으로 간다. 그래서 옛날에 어르신들이 그런 얘기 했다. 애 낳을 때 혹은 애 낳고 나서 초기에 잘해야 그게 평생 간다 라고 그랬는데 그때 잘 못하면 큰일 난다. 또하나 여성이 우울증이 잘 생기는 이유는 결혼하고 한 20년 정도 남편 뒷바라지, 애들 뒷바라지 열심히 했는데 애들은 10대 넘어가면 엄마랑 안 놀아준다. 그리고 남편은 40대 50대까지 맨날 밖으로 떠돈다. 그러면 집안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나는 도대체 뭐하고 살았나. 내 인생은 어디 있나. 이게 빈둥지 증후군이라는 건데 이런 거 때문에 우울증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울증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두가지가 문제 때문이다. 첫째 우울증인지 모르고 지나가다가 더 힘들어지는 경우를 막아보자. 두번째 우울증이라는 병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증상이 심각한 병이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우울한 거를 ‘나 우울증인가봐’ 이런 얘기를 안했으면 좋겠다. 우울증 증상은 내가 이야기하는 것중에서 몇 가지가 골라서 나타난다. 첫번째 실제로 상담을 오신 분들이 ‘저 우울해요. 슬퍼요.’ 라고 얘기하는 분들은 별로 없다. 대부분 뭐라고 얘기 하느냐하면 ‘가라앉는다’ 는 표현 많이 한다. ‘기분이 가라앉아요.’, ‘마음이 가라앉아요.’ 이런 얘기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두번째 그냥 우울한 게 아니라 불안하고 초조진다. 지은 죄도 없는데 막 쫓기는 것처럼 가만히 못 있게된다. 세번째 눈물이 많아진다. 누군가한테 내 얘기 좀 하려고 그러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데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네번째가 제일 중요한 증상인데 만사가 귀찮아진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옆에 해야 되는 일이 있는데 하기가 싫다. 옛날에 재밌게 하던건데 귀찮아서 하기가 싫다. 이걸 무의욕증이라고 한다. 의욕이 뚝 떨어진다. 이게 우울증의 기분증상 중에 가장 중요한 증상이다. 그래서 간혹 가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에게 도움이 되라고 ‘야, 산책 좀 해. 나가서 운동 좀 해. 그러니까 더 우울하지’ 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그건 마치 지금 발이 부러져서 깁스하고 있는 친구한테 ‘야, 다리운동을 해야 빨리 낫지. 뛰어’ 라고 얘기하는 거하고 똑같은 거다.

  

< 우울증... 불면... 그리고 아프다... >

신체증상이 따라 온다. 몸으로 나타나는 증상인데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잘 나타나는 증상이다. 신체증상의 첫번째는 수면이 망가진다. 잠을 못잔다. 자려고 누워있으면 오만 잡생각이 떠올라서 못자든가, 잠이 겨우 들었는데 자꾸 깬다든지 혹은 두세 시간밖에 못잤는데 새벽에 깨서 더 이상 못자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수면의 질이 나빠지니까 꿈을 많이 꾸게 된다. 낮 동안에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니까 악몽을 많이 꾸게 된다. 두번째 신체증상은 식욕변화가 온다. 남자에서 거의 대부분, 여자에서 한 절반정도는 식욕이 뚝 떨어진다. 뭘 먹고 싶지도 않고 먹어도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고 그러니까 당연히 살이 쭉쭉 빠지게 된다. 반대로 남자에서 극히 일부와 여자에서 나머지 절반은 폭식을 한다. 근데 이게 배고파서 먹는게 아니다. 본인도 음식물 여기까지 차 있는거 본인도 안다. 근데 그냥 뭔가 허한거 달래겠다고 계속 우겨넣게 되는 거다. 세번째 신체증상이 우리나라에서 특히 중년여성에서 가장 흔한 증상인데 몸이 여기저기가 아프다. 가장 흔한게 두통, 머리 아프고 얹히고, 체하고, 토하고, 아님 배탈 나서 설사하고 아님 목, 어깨 뭉쳐 아프고, 허리 아프고. 무릎 아프고 온몸이 다 아프다. 근데 이게 한꺼번에 아프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아프다. 안타까운 건 나는 아파 죽겠는데 병원 가서 검사하면 다 정상이라고 나온다. 그래서 맨날 듣는 얘기가 ‘신경성입니다. 스트레스성입니다’ 가 우리나라의 가장 흔한 것이다. 우리를 찾아오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내과, 통증의학과, 가정의학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이런 데를 최소 두세군데 돌다가 오시는 분들이 제일 많다. 그 다음 네번째 신체증상은 에너지 레벨이 뚝 떨어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곤해지고 그냥 막 누워있고 싶고 그렇다.

  

< 이런 증상 생기면 위험하다.... >

다음으로 인지증상이 사실 제일 중요한 증상인데 많은 분들이 우울증 증상이라고 인지를 못하는 것들이다. 인지증상 첫번째는 ‘사고의 왜곡을 통한 부정적 사고의 반추’라고 하는데 쉽게 얘기하면 머리에 무슨 막이 씐 것처럼 외부에서 오는 모든 자극이 다 나쁘게만 해석이 된다. 일이 잘 되고 있는데 내가 봤을 때는 왠지 망할것 같고, 이제 거의 다 끝났는데 해봤자 소용없을것 같고, 그냥 상대방은 나한테 안부인사 물은 건데 왠지 나를 비꼬는거 같고 얘도 나를 싫어하는것 같고, 저애도 나 미워하는것 같고, 이것도 해봤자 소용없을것 같고, 저것도 다 안될거 같고...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들어온다. 근데 그게 한 번에 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게 우리 환자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증상이다. 두번째는 이런 증상 때문에 자존감이 뚝 떨어진다. 옛날엔 내가 괜찮은 사람 같았는데 지금은 내가 볼때 예전에 비해서 쓸모없는 사람, 가치 없는 사람, 옛날보다 못난 사람처럼 스스로가 자꾸 인지가 된다. 그러면서 계속 자존감이 떨어진다. 이러다보니 주변사람들 특히 가족한테 쓸데없는 지나친 죄책감만 든다. 나 때문에 우리 애들만 힘든것 같고 나 때문에 내 부인만 힘든것 같고, 나 때문에 우리 엄마만 고생하는것 같고 그게 가면 어디까지 가느냐하면 ‘나만 사라지면 될것’ 같고 까지 가는 거다. 세번째 집중력이 뚝 떨어진다. 일을 하는데 도저히 손에 안 잡히고 내가 좋아하던 드라마, TV에서 영화가 돌아가는데 눈은 거기에 있지만 머릿속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그리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단기 기억력이도떨어지면서 깜박깜박하고 건망증이 심해진다. 그래서 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 치매하고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그걸 우리가 가성치매라고 하는데 이런 증상은 당연히 우울증이 완치되면 다 없어지는 거다. 그 다음 네번째 인지증상은 우유부단해지며 결정장애가 생긴다. 옛날 같으면 바로바로 결정해서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A냐 B냐 선택해라 그러면 A를 하자니 B가 걸리고 B를 하자니 A가 걸린다. 하자니 이게 걸리고 안 하자니 저게 걸리고 결정을 못 내린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절대로 중요한 결정을 못하게 하고 치료 이후로 선택을 미루게 한다.

  

< 통계로 보면... 이렇다... >

그다음에 이 세상 아무도 내 마음 몰라주는 것 같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힘들 것 같고, 내일이 희망이 없을것 같은 절망감이 들게 된다. 이렇게 힘들다보니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 그리고 죽고 싶다, 확 죽어버릴까~~ 라는 자살사고, 자살충동까지 생기는게 우울증이다. 우울증 때 우울해서 자살하는게 아니다. 우울증의 하나의 증상으로 자살사고, 자살충동이 생기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40명 정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살시도자가 아니고 자살로 돌아가시는 사람수다. 자살시도자는 거기에 곱하기 한 100쯤 해야 될 거다. 매일 밤 응급실에 자살시도한 분들이 엄청나게 오는데 그분 중에 돌아가시는 분들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40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40×365 해보면 일 년에 몇 명이나 자살로 돌아가시는지 나온다. 그 많은 분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그분들 중에 대략 80% 정도가 정신과적 질환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분들이다. 그리고 그분들 중에 대략 70% 정도가 이 우울증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분들이다. 즉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그많은 분들 중에 최소 60% 이상은 우울증 때문에 사망한다는 얘기다.

  

그럼 우울증이 무슨 걸리면 무조건 죽는 무서운 병이란 이야기가 아니라 통계가 말하는건 이거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는데 치료를 안 받았다든지,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에 중단했다든지, 혹은 우울증치료를 받았고 완치된 이후에 재발이 됐는데 다시 치료를 안 받았다든지 그런 경우가 이런 자살로 이어지는 위험군이다. 우울증 때 제일 위험한 시기는 제일 우울할 때가 아니다. 제일 우울할 때는 아까 말한 의욕이 없기 때문에 자살도 못한다. 그런데 치료를 막 시작한 초창기에 의욕이 좀 생길 때가 제일 위험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에 대한 혹은 정신과약에 대한 어마어마한 사회적 편견이 있다 보니까 이제 좀 살만하고 좀 괜찮아지면 다 치료를 중단해버리거나 중단을 시킨다. 딸이 우울증이라 병원에 와서 치료를 하는데 아버지가 집안망신이라고 약을 못 먹게 하거나 부인이 치료를 받고 있는데 남편이 병원에 전화해서 욕을 하며 왜 우리 부인을 멀쩡한 여자를 정신병자 만드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데가 대한민국이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우울증으로 저렇게 많이 죽게된는 것이다.

  

< 치료하면 나을수 있다... >

우울증은 치료만 4~6개월 정도 잘 받으면 거의 다 완치되는 병이다. 정신과 치료가 그리고 아직도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상담실에 들어와서 ‘환자용 침대가 없네요?’ 라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있다. 카우치라고 아는가? 눕는 의자를 말한다. 미드 혹은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에도 아직도 카우치가 나온다. 누워서 환자는 혼자 떠들고 정신과 선생은 옆에서 졸고 있고 이런게 자주 나오는데 드라마 작가들이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이 좀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현대 정신과는 정신분석학에서 출발을 했지만 모든 치료의 70% 이상은 약물치료이다. 정신과는 신경생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울증도 똑같다. 우울증의 치료는 70%가 약으로 치료한다. 나머지 30%가 상담인데 처음엔 병에 대한 설명, 치료에 대한 설명, 그 다음에 약 잘먹게 만들고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 치료가 좀 되어 인지증상이 좋아진후 부터는 재발방지를 위한 상담이 들어가게 된다.

  

< 우울증... 마음을 굳게 먹어라... No, No, No... >

우울증을 이렇게 길게 설명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흔한 병중에 하나이고 우리나라에서 사망원인 중 가장 높은걸 차지하는게 자살이라서 그렇다. 대한민국이 OECD에서 자살률 1위인거 다 아실거다. 노인자살률 세계 1위, 20세 이하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 20대 사망원인 1위 자살, 30대 1위 자살, 40대 1위 자살, 50대부터는 암이 1위로 바뀌서 자살은 2위가 된다.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이다. 여러분들은 안하실거 같지만 근데 자살이라는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유혹을 느끼고 그리고 실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근데 이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 우울증이기 때문에 제발 이런 증상이 있으면 참지 말고 그리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병원에 가시라. 가까운 누군가가 우울증으로 힘들다 얘기하면 아까 얘기한 것처럼 산책을 해라, 햇볕을 쬐라 라는 쓸데없는 얘기하지 말고 손잡고 병원에 데려가면 된다. 그게 사람 하나 살리는 거다.

  

우울증 환자분들한테 절대 해서는 안되고 제발 좀 안했으면 하는 말이 있다. ‘마음을 굳게 먹어라’ 이중에 감기가 걸렸을 때 본인의 의지로 콧물을 멈출 수 있는분? 마음을 굳게 먹어서 기침을 멈춰 보신분 있는가? 병의 증상을 즉, 생리적 현상을 내 의지로 어떻게 할수 없는거다. 근데 우리나라는 정신과적 질환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한 자가 걸린다, 의지가 약해서 걸렸다, 사람이 무슨 양초도 아닌데 막 심지를 굳혀라,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그러면 안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환자분들은 내가 마음이 약해서, 내가 의지가 약해서 이런 병에 걸렸구나... 라는 생각에 안그래도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데 자존감이 더 떨어지고 증상은 더 악화된다. 그래서 제발 가족 중 혹은 친구가 이런 병 우울증으로 힘들어한다고 그러면 그 사람을 살리는 길은 손잡고 그냥 병원 데려가는게 정답이다.


< 이런 증상이 조울증이다... >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하루에도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나빴다가 왔다갔다 하는데 조울증 아니냐 묻는다. 근데 우울증은 앞에서 쭉 이야기한 증상 중 다섯가지 이상이 2주일 이상 지속돼야 우울증이다. 하루 그냥 우울한건 그냥 기분이 우울한 거다. ‘조증’이라는건 1주 이상 지속돼야 된다. 즉 하루에도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건 조울증이 아니다. 그냥 성격이다. 감정기복이 심한 성격일 뿐이다.

  

그리고 불안장애 중에 공황장애만 좀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우울증이 여성에서 2배가 많다고 그랬는데 교과서에는 불안장애는 남녀 차이가 없다고 나온다. 근데 신기한게 한 5~6년 전부터 남성에서 공황장애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유는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실제로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늘어났다 라는것, 그거 아는가? 우리가 하루에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18세기에 영국 농부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하고 똑같다고 한다. 그때는 태어나서 40~50세면 죽었다. 50세까지 살았다 치고 영국 농부가 50년 동안 평생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우리가 요즘에 하루에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하고 똑같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자극의 세계에서 살다보니 당연히 스트레스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니까 공황장애가 많이 생긴게 원인일수 있다. 또 하나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공황장애다 라고 커밍아웃이라도 하듯이 이야기한다. 방송에서 혹시 ‘나 발 부러졌어요’ 이런 얘기 들어보았는가? 연예인들이 그동안 방송에서 공황장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픈하지 못했거나, 공황장애인지 몰랐던 환자분들이 수면위로 올라온 거다. 한 5~6년 전부터 공황장애가 확 늘어났는데 압도적으로 남성에서 많다.

  

< 최순실은 공항장애라고 했다... >

공황장애는 두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 공황발작이라는 거, 이게 원래는 panic attack이다. 그거를 우리나라 말로 바꾸다 보니까 그걸 발작으로 해석을 해놔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오해를 하는데 panic attack이다. 근데 공황공격 그러면 되게 웃기잖는가. 그래서 이렇게 공황발작이라고 해놓은거 같은데 공황발작이라는 증상이 있어야 된다. 두번째는 ‘이게 또 오면 어떡하지.’ 라는 예기 불안이 있을 때 우리가 공황장애란 진단을 내리게 된다. 공황발작은 여러분들이 살면서 겪을수 있는 최대의 불안, 긴장의 공포치 곱하기 1000 하면 된다. 죽을 정도의 공포가 공황발작의 핵심이다. 갑자기 불안해지고 긴장이 되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숨쉬기가 힘든게 특징이다. 심장이 미친듯이 빨리 뛰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때처럼 가슴이 아파온다. 그래서 응급실에 실려간 분들이 꽤나 많고 온몸에 식은땀이 나면서 손끝 발끝에 이상한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고, 내가 내가 아닌것 같은 느낌, 심지어 유체 이탈하듯이 내가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또 하나는 주변사람들의 말소리가 꼭 물속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웅웅웅 하면서 멀어지는 느낌, 그리고 바로 앞에 내 앞에 사람이 있는데 사람이 갑자기 쫙 멀어지는 느낌들..... 그러면서 내가 미칠 수도 있겠다. 내가 어떻게 잘못될 수도 있겠... 라는 공포, 제일 심한 형태로 내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까지 느끼는게 공황발작이다.

  

그리고 또하나 문제는 이게 처음엔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첫 에피소드가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번째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아무 이유 없이 나타난다는 거, 즉 운전하다가 갑자기 오고, 밥 먹다 갑자기 와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 일상생활을 못한다. 그래서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공황장애는 초기치료가 중요하고 빨리 치료를 받아야 그나마 예우가 좋아진다. 공황장애 그러면 비행기를 못 탄다는 공항장애로 아시는 분들도 있는데 최순실씨도 재판 불출석 사유에 공항장애 때문이라고 써놨더라. 사람이 좀 배워야 된다.


< 무서운 알콜의존증... >

알콜의존증은 아까 사회자분가 잘 설명해 주었지만 나의 전문분야이다. 알콜의존증은 오해들을 하는게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폭... 술먹고 술주정을 부려야 알콜중독이라고들 알고 있다. 그렇지가 않다. 알콜중독 진단기준 중에 술주정은 그중에 그저 아주 조그만 부분일 뿐이다. 그게 있건 없건 크게 상관이 없다. 한번 술문제가 생기면 그 상태에서 술을 끊고 단주하고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알콜남용에서 시작해 100% 알콜의존으로 간다. 생각보다 굉장히 흔한 질환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치게 관대한 질환이고 이게 생각보다는 굉장히 무서운 질환이다. 우리나라에서 담배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금연시설을 많이 늘려나가고 TV에서 옛날 영화에 심지어 오리지널 영화를 보는데도 모자이크처리를 하고있다. 그런데 혹시 주변에 담배 때문에 이혼했다는 이야기 들어본적있는가? 담배 때문에 살인을 했다, 담배 때문에 자살했다, 들어본적이 없는 이야기다. 근데 술은 이게 다 가능하고 다 현재 존재하고 있다. 술 때문에 이혼하는 집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실제 나의 입원환자 중에서 이혼 당하신 분들 굉장히 많다. 두번째 술 때문에 가족을 죽였거나 혹은 가족을 찌르거나 가족을 다치게 했던 인간이 우리나라에 엄청 많다.

  

알콜의존은 무서운게 첫째 한 집안, 한 가족을 다 망가뜨린다는거다. 절대 나만 죽지 않는다. 두번째 유전이 된다는 거다. 알콜중독은 대물림이다. 알콜의존증의 제일 중요한 원인 하나는 유전이다. 내가 만약에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삼촌 혹은 외삼촌, 외할아버지 정도의 가까운 친척이 술을 좋아했는데 술 때문에 돌아가신 분, 혹은 술먹고 많은 문제를 일으킨 분이 한분이라도 계신다면 난 술을 안먹어야 된다. 즉 남들에 비해서 나는 알콜의존이 될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은거다. 알콜의존은 남자하고 여자하고 양상이 다르다. 남성 알콜의존은 그냥 좋아해서 먹다가 알콜의존이 된다. 보통 남자들이 술을 규칙적으로 많이 먹기 시작하는게 우리나라에서 대학 들어가거나 군대가거나 사회생활 시작하는 20대 초 중반이다. 알콜에 의해서 뇌가 망가져서 술을 조절해서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진게 알콜의존인데 남자는 평균 15년 걸린다. 즉 30대 중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알콜의존이 생기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근데 여자분들은 좀 복잡하다. 여자분들은 알콜의존이 많이 생기는 나이가 두군데 있다. 첫번째는 남자하고 똑같이 그냥 술 좋아해서 술 많이 먹다가 일차성으로 알콜의존이 되는거, 여자도 똑같이 20대 초반부터 술을 많이 먹는다 치면 알콜에 의해서 뇌가 망가지는데 남자보다 더 짧다. 10년밖에 안걸린다. 이유는 첫째는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 자체가 남성의 절반밖에 안된다. 그러다보니 똑같은 양의 술을 마시면 깨기까지 남자보다 두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거다. 그 두배의 시간만큼 뇌, 간, 췌장 등등이 알콜에 의해서 망가질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두번째 이유는 알콜은 수용성이라 물에 녹는다. 근데 여성은 남성보다 체내에 수분이 적다. 지방이 많다 보니까. 이 얘기는 똑같은 양의 술을 마셨을 때 혈중최고 알콜농도가 남자보다 여자에서 두배 빨리 올라간다는거, 즉 똑같이 소주 한병 마시면 여자가 남자보다 더 빨리 취하고 더 늦게 깬다. 곱하기 2정도 생각하면 네 배만큼 더 힘든 거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알콜에 의해서 뇌가 망가지는 시간이 5년이나 짧다. 그래서 여성분들은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에 알콜의존 생기는게 제일 많다. 또 하나는 여성의 기분과 관련되는 성호르몬 그게 변화가 오는 시기가 50세다. 폐경... 요즘에 완경이라고 표현하는데 성호르몬 변화로 인해서 갱년기 우울증이 오거나 혹은 아까 말한 빈둥지증후군이라는게 오는 나이가 대충 그쯤이다. 결혼하고 한 15년, 20년 그 나이때 우울증이 오는데 그 우울한걸 치료를 받아야 되는데 나 혼자 달래겠다고 집에서 부엌에서 홀짝 홀짝 술 마시다가 이차적으로 알콜중독이 되는 경우다.

  

또 우리나라는 원샷문화, 파도문화, 2차~3차 문화 등이 있기 때문에 혼자마실때 보다 같이 먹을때 훨씬 더 많이 먹는다. 혹시 친구와 먹거나 회식할때 내가 얼마나 마셨는지 기록한 다음에 집에서 혼자 그만큼 드셔보시라. 절대 죽어도 그만큼 안들어간다. 그리고 이놈의 동호회... 좋은 등산 동호회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주목적이 산타는 건지 술먹는 건지 맨날 번개하고 산을 타는 쪽은 별로 없는데 하산경로에는 뭔 술집, 음식점이 그렇게 많은지.. 실제로 이런 동호회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술 먹다가 알콜중독이 되는 중년여성들이 굉장히 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은 이런 차이가 있다.

  

< 알콜의존증... 똑바로 알자... >

알콜의존증은 앞으로 말하는 4가지가 있을때 우리가 알콜의존증이라고 한다. 4개 중에 하나만 해당이 되도 알콜의존증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4가지 말하면 속으로 ‘웃기고 있네. 그럼 대한민국 남자는 다 알콜중독이냐’ 이런 얘기를 할텐데 대한민국 성인남성의 40%가 문제성 음주다. 문제성 음주가 뭐냐면 현재 알콜의존증이거나 혹은 이대로 쭉 마시면 알콜의존증이 되는 음주를 말한다.

  

첫째 내성이 생겨야 된다. 두통약을 매일 먹으면 언젠가부터 진통제가 약발이 안듣고 2알 먹어야 된다. 알콜도 똑같다. 즉 뇌에서 요구하는 알콜의 양이 점점 늘어나면서 내가 술을 마시는 양과 회수가 점점 늘어나는게 내성이다. 이미 남성분들 중 거의 다 30대에 이 내성을 경험하셨을 거다. ‘야 마시다보면 늘어’ 하면서 마시다 보니까 ‘진짜 늘었어’ 이게 내성이다.

  

두번째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이게 중요한데 금단증상은 뇌에서 요구하는 알콜량은 점점 늘어나는데 사람이 그만큼 못 마시면 뇌가 ‘빨리 술 줘’ 하면서 술 달라고 저 혼자 흥분을 한다. 첫번째 신체적 금단증상은 몸으로 나타난다. 제일 흔한게 술 안마시면 잠을 못 잔다. 술을 연달아 삼사일 마시다가 ‘아우 죽겠다 오늘은 쉬어야지’ 하고 누우면 말똥말똥 해진다. 그러면 자려고 술을 먹는다. 환자분들이 많이 얘기하는게 ‘자려고 밤에 한두잔 해요’ 하는데 거꾸로다. 사실은 술 때문에 못자는 거다. 두번째, 밥 먹거나 잘 때 옛날에 비해서 땀이 그렇게 많이 난다. 세번째 손떨림 증상이다. 손떨림은 가만히 있을때는 괜찮다. 그런데 술잔 잡을때 달달달 떨리고, 담배 피우거나 손으로 뭘 쓰거나 손으로 뭔가 행동을 할때 떨리기 시작한다. 점점 손만 떠는게 아니라 턱도 떨고 온몸을 달달 떨게 된다. 그 다음에 가만히 못 있게 된다. 안절부절해서 왔다 갔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번째 금단증상부터는 심각한 거다. 이때부터는 정신병적 금단증상이라고 헛것이 보이고, 귀신보이고 헛소리 들리게 된다. 세번째 금단증상이 알콜성 간질이다.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입원했는데 한 이틀 지나니까 갑자기 헛소리 하고 간질 중상을 보인다. 그러면 뇌파검사, 피검사하고 그다음 주치의가 제일 먼저 물어 보는게 평상시에 술 많이 드시는가 물어본다. 술 끊기고 이삼일 지나면 금단 증상이 아주 심하게 오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직업적 사회적 기능이 망가지는 거다. 술 때문에 일을 못하거나 아니면 지각 결석 등을 하다 잘리게 되는것, 경제활동 못하게 되는것, 사회적 기능 망가지는것 안에 아까 얘기한 술주정이 들어간다. 집에서 때려 부수고, 밖에서 시비 걸다 맞아서 병원가고, 때려서 경찰서 가고 이런 것들... 그다음 여기 술 마시고 아무대서나 자는분도 있는데 그러다 동사 할뻔 하고, 경찰차 타고 들어오고 다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제일 중요한 대인관계가 망가지는 거다. 술 때문에 가족과 배우자와 갈등이 있고 그러다가 주변사람들과도 갈등이 생기는것 그리고 친구들 다 떠나고... 옆에 남아있는 친구가 없거나 있다면 한두 명 같은 알콜중독 친구밖에 안남게 된다. 알콜의존은 반드시 치료받아야 되는 질환이고 제일 중요한건 알콜의존은 가족의 병이라는 거다. 절대 혼자 죽는 병이 아니다.

  

< 환경을 바꾸어 볼까?... >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적당한 운동을 해라. 외부환경이 둘러싼 모든 정신적 신체적 자극을 통틀어서 스트레스라고 하기때문에 죽지 않는한 스트레스를 안받는건 불가능하다. 그럼 이 스트레스,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힘들어 죽겠다 고 한다면 나를 바꾸던지, 환경을 바꿔야 된다. 환경을 바꾸는 것, 어떤게 있을까? 내가 ‘배우자하고 싸워서 배우자 때문에 못 살겠어’ 이럴땐 이혼... 회사를 다니는데 상사는 나만 괴롭히고 동료들이 맘에 안 들어 죽겠고. 못 다니겠어... 어떻게 하면 되나? 이직... 이직하기 전에 퇴사... 아파트에 사는데 위에는 애들이 운동회를 하는지 시끄러워 죽겠고 나는 혼자 사는데 아래에선 까딱하면 애들 뛰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이사... 이혼, 퇴사, 이사 이중 하나라도 해보신 분도 있을거다, 층간 소음으로 이사해 보신 분, 혹은 배우자와 갈등 때문에 이혼해 보신 분, 아니면 그 전 회사 마음에 안 들어서 때려치우고 여기 온 분, 사람이 살면서 죽을 때까지 받는 100가지 스트레스를 미국 정신과 부부의사가 순위를 메겨놨다. 그 10개 안에 지금 얘기한 3개 다 들어가있다. 10위 안에 재미있는게 이혼이 들어 있는데 또 하나 있는데 뭐 들어있는지 아는가? 결혼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사도 들어 있다. 그 다음 회사내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이 들어가 있을 거다. 그 외에 배우자의 죽음, 자식의 죽음 이런게 들어있다. 미국은 1등이 배우자의 죽음이다. 우리나라는 배우자의 죽음은 순위에 없었던 같은데.. 자식의 죽음이 1등이다. 우리나라는 아무튼 이 환경을 바꾸 것은 생각만큼 쉽지않다.

  

< 그럼... 무엇을 바꾸어나 하나?... >

이혼에 대해서 환경을 바꾸는 예로 이혼에 대해서 재미있는 조사가 있다. 재혼전문 사이트에서 한건데 이혼하고 재혼한 그후에 그 재혼생활 결혼만족을 조사한게 있다. 이혼했던 이유, 원인 등을 이 전 배우자한테서 찾았던 분들은 재혼하고 결혼만족도가 낮다. 근데 이혼의 이유, 원인 등등을 나한테서 찾았던 사람들을 재혼하고 결혼만족도가 높다. 이게 뭘 뜻할까? 즉 환경 백날 바꿔봤자, 배우자를 맨날 갈아 치워봤자 결국 내가 변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반복해서 일어난다라는 거다. 이것을 증명해주는 옛어르신들의 명언이 있다. ‘그놈이 그놈이다’ 라는 말 들어봤을거다. 이게 ‘남자는 다 똑같애’ 라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의 깊은 뜻은 결국 나를 바꾸지 않으면 배우자를 아무리 바꿔봤자 누구를 만나든 간에 결국 같은 문제는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라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이걸 이야기 하기위해 처음에 스트레스는 받을때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 불안도와 긴장도가 이렇게 다르고, 그건 성격으로부터 오는거고 성격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설명을 드린 거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만들어진 사람이고 어떻게 지금 나를 만들어 가냐가 핵심인 거다. 환경이라는 바꾸기 쉽지 않고 백날 바꿔봤자 결국 내가 바뀌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이 된다고 다시한번 말씀드린다.

  

< ‘나’ 를 알아야 한다.... >

나를 바꾸려면 내가 누군지 알아야 바꿀거 아닌가. 내가 누구냐에 대한 생각을 하고 사시라. 누구 누구씨 당신은 어떤 분이세요? 하고 물어보면 선뜻 답하는 분이 한명도 없다. 왜? 별로 생각 안해보고 사니까....그러다가 이런 얘기들을 한다. 남편은 어디 다니고, 부인은 뭐하고, 애는 몇 명이고, 큰 애는 어쩌구 둘째는 어쩌구... 이게 본인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다. 그래서 본인 얘기를 해보라 하면 또 고민한다. 도대체 이 사람이 나한테 원하는 답이 뭔 가하고. 그러다 얘기를 한다. 부모님은 어디계시고, 형제 자매 어떻고, 이게 본인 이야기? 365일 중에 거의 대부분 우리가 ‘나’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여기는 것들은 사실 사회적 관계 속에 대한 나의 얘기다. 근데 진짜 본연의 나, 나는 도대체 어떤 성격인지, 본인 성격 어떤가 물어보면 대부분 ‘어떤 때는 내성적인데 어떤 때는 외향적’ 이라고 답한다. 물론 하나로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나를 구성하는 것 중에 주로 밖으로 많이 표현되는게 결국 그게 나의 성격의 본 모습이다. 어떤때는 내성적이고 어떤때는 외향적이겠지만 주로 남들에게 비춰지는 혹은, 내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성격은 어떤 건지 정도는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된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왔을 때 이렇게 즉, 나는 불안도와 긴장도가 높은 사람인지 낮은 사람인지, 나는 남들에 비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인지 적게 받는 사람인지, 그리고 이런 성격뿐 아니라 나는 진짜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고, 현재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건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게 어떤 건지, 난 어떨때 행복한지 혹은 어떨때 우울하고 슬픈지, 어떨때 즐거운지 기쁜지 등등... 즉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떤 사람인지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자아성찰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돌아보는 것인데 정말 별거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할 여유나 시간이 별로 없었다.

  

< 한번... 일기를 써 보자... >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림을 그려나가기 위해서 하는 자아성찰에 가장 도움이 되는 행위가 일기쓰기다. SNS에 사진올리고 고독, 울고싶다... 이런거 말고... 일기란 무엇이냐면 내가 묻고 내가 답하는 나와의 대화다. 오늘 하루 했던 일을 쓰는게 아니다. 일기쓰는 몇가지 팁을 알려드린다. 첫째 매일 쓰려고 하지 마라. 써야만 하는게 되는 순간 쓰기가 싫어진다. 언제 쓰면 될까? 필 받을때 쓰면된다. 어떨때 뭘 쓰고 싶은 삘을 받나? 기쁠때 뭘 쓰고 싶은 분들은 강연 끝나고 나한테 오셔야 할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때 뭔가를 쓰고 싶은 필을 받느다. 거기다가 맥주 한잔이나 와인 한잔 곁들이면 대박이다. 그런날 쓰면 된다. 한 1~2주에 한번 정도... 그리고 쓸때 오늘 뭘했고 뭘먹었고 그런거 쓰지 마시라. 오늘 내가 왜 기분이 안 좋았는지를 쓰면 된다. 그러면 대부분 누구와의 관계 속에 갈등이 주원인이다. 그러면 나는 왜 그 사람과 싸웠을까? 싸웠을 그 당시에는 감정이 올라가 있기 때문에 왜 싸웠는지 화만나지 기억도 안나고 잘 모른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 집에 혼자 앉아 차분히 그때 내가 그 사람하고 왜 싸웠지? 라는 걸 떠올려 보면 원인을 찾을수 있다. 근데 그 원인이 시답지 않거나 참 하찮은 것들이다. 별거 아닌 걸로 대부분 싸운다. 그럼 그 별거 아닌걸 찾은 다음에 해야 할게 있다. 대부분 상대방의 말, 단어, 말투, 표정. 혹은 나를 쳐다보는 시선 뭐 등등 별거 아닌 것 때문에 싸웠을 거다. 근데 그것 때문에 이 사람하고 전에도 싸운 적이 있는지.... 부부나 가족이면 분명히 되풀이 됐을 거다. 혹은 이것 때문에 나는 이 사람 말고도 다른 사람하고 싸운 적이 있는지.... 이걸 찾아가는 거다. 그 다음은 어? 내가 이것 때문에 저 친구하고도 싸웠었네... 하면 그럼 그다음 단계는 뭐냐. 그럼 이게 뭐길래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길래 왜 나는 이걸 가지고 그렇게 싸움을 반복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글로 써보는거다. 이게 중요한게 사람이 말을 한다는 거는 생각을 최소한 한번은 정리해야 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글로 쓴다는 거는 생각을 최소 두세번 정리해야 글로 쓸 수 있게된다.

  

글로 쓰면서 생각을 두세번 정리하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거나 굉장히 어렵고 힘든 거라고 여겼던게 사실을 별게 아닌 거라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혹은 별게 아니라고 느껴서 방치해 뒀던게 사실은 나도 모르게 나한테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하는거를 발견할 수도 있게된다. 일기는 그런 작업이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그림을 그리는데 지금 얘기한 내 약점, 건들면 욱 하고 올라오는 것, 혹은 내 몸에 난 가시같은 것, 나의 단점 그걸 찾아내면서 나의 몸에 난 가시같은 아이들은 내가 함부로 휘둘러서 남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살았는지.... 더 중요한 건 그런 것들 때문에 내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상처를 주고 살아왔느냐를 찾아가는 작업인 것이다.

  

< 마무리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움... >

그걸 찾고 끝내는게 아니다. 사포로 지우듯이 그것을 바꾸려는 아까 말한 일만 시간의 법칙 같은 노력을 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게 일기를 쓰고 자아성찰을 하는 진짜 목적인 것이다. 그러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나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고, 나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심지어 그럼으로써 변화되는 나를 알게 됐을때 자존감이 올라간다. 내가 좀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가지만 실제로 그런 변화를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달라진 나를 스스로 발견했을 때 자존감이 쭉쭉 올라간다. 또 하나는 주변사람들의 피드백이다. ‘야 너 옛날보다 되게 괜찮아졌다. 너 옛날에 빽빽대고 욱욱 대고 하더니 요즘엔 되게 젠틀하네. 잘 참네. 혹은 너 옛날보다 생각이 깊어졌어 등등’ 주변에서 들려오는 그런 긍정적인 피드백이 또 내 자존감을 올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자존감이 올라가면 결과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느냐면 제일 좋은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때 내가 괜찮은 사람이면 남들이 뭐라 떠들어도 신경이 크게 안쓰게 된다. 남들이 날 어떻게 쳐다보는가도 별로 신경이 안쓰인다. 즉 타인의 시선, 타인의 말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거다. 여러분들이 아마 오늘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하고 이 강의를 듣는 지금 6시까지 타인의 시선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나 될까? 일어나서 아침에 씻고 옷 입을 때부터 시작될것이다. 혹 누군가와 같이 산다면 눈 뜨는 순간부터 시작될거다. 날 이렇게 쳐다보면 어떡하지, 날 이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 옷 입고 갔다가 괜히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등등... 그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자존감을 올리는 이 자아성찰이라는 걸 통해서 여러분이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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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교향악단 초청 벚꽃맞이 우리동네 음악회

 

 

 

벚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봄날, 2018년 KIST 상반기 예술문화마당 공연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 초청 <벚꽃맞이 우리동네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연주회에서 아름다운 음악의 하모니를 들려주었던 서울시립교향악단은 73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향악단입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전 예술감독의 리더십 아래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성장한 서울시향은 탁월한 음악적 성과와 프로그래밍으로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영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국과 중국, 일본 등에서의 대형 공연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아시아의 주요 오케스트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서울시향은 전문 공연장에서의 콘서트 외에도 방문형 콘서트인 '우리동네 음악회', 한강변에서 펼쳐지는 '강변음악회', '광복적 기념 음악회' 등 다양한 공익 공연을 통해 서울 시민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데요, 이번달에는 KIST 존슨강당에서 벚꽃맞이 우리동네 음악회를 통해 성북구 근처의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려주었습니다.

 

목관 앙상블, 현악 5중주, 타악기 앙상블 세 팀이 대중과 친숙한 클래식 레퍼터리를 위주로 진행한 이번 음악회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모차르트, 오보에·클라리넷·바순을 위한 디베르티멘토 작품 439b

 - 텔레만, 플루트와 오보에를 위한 6개의 소나타 中 1번

 - 드로브자크, 현악 5중주 2번, Op 77 1악장

 - 라이히, 나무조각을 위한 음악

 - 타악기 즉흥연주

 - 프리드먼&사뮤엘즈, 회전목마

 - G. H. 그린, 로그 캐빈 블루스

 - 에드워드 최, 죽음의 바퀴

 

20여명의 연주자와 스텝진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와 해설들을 KIST 임직원뿐 아니라 성북구 근처 주민들, 가족들이 즐길 수 있었던 이번 음악회는 벚꽃이 아름답게 핀 봄날 열렸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벚꽃맞이 우리동네 음악회, 다들 잘 즐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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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KIST인상 수상자 발표

분자인식연구센터 송은주 박사, '이달의 KIST인상' 수상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병권)은 3월 30일(금) KIST 서울 본원에서 우수한 연구업적을 달성한 연구자에게 ‘이달의 KIST인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KIST 분자인식연구센터 송은주 박사(책임연구원)팀은 생명체 내의 성장과 노화, 유지 및 번식에 필수적인 현상인 세포분열에서 암과 같은 다양한 질환의 원인이 되는 비정상적인 세포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송 박사팀은 해당 단백질의 분해를 막거나 활성을 조절하는 탈유비퀴틴화* 효소인 ‘USP35’를 발견하고, 이 효소(USP35)가 세포분열에 있어서 필수 단백질인 ‘Aurora B’의 안정성을 유지시키고, 활성에 기여하여 정상적인 세포분열에 도움을 준다는 새로운 분자적 기전을 제시하였다.

*탈유비퀴틴화 : 유비퀴틴화(몸 속에서 필요 없어진 단백질에 붙어서 세포분열 필수 단백질인 Aurora B단백질을 제거하는 현상)의 가역적 반응

 

이번 연구는 새로운 세포분열 기전을 발견함으로써 비정상적인 세포분열의 억제 및 세포분열 필수 단백질(Aurora B)의 기능 향상에 도움을 주어 향후 항암제나 관련 질환의 치료제 개발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 연구내용은 국제학술지인 ’Nature Communications’ 2월호에 게재되었으며, 송은주 박사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KIST인상을 수상했다.

 

이달의 KIST인상은 원의 발전에 가장 창조적, 혁신적으로 기여한 우수 직원을 발굴하여 포상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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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국민과 함께하는 다채로운 ‘과학의 날’ 행사 개최


- 연구소 담 낮춰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과학상상나눔 페스티벌 개최
- 역사관에선 외국인과학자에 한국 과학발전사와 최형섭 박사 정신 공유
- 지하철 과학관 ‘사이언스 스테이션’ 미래 과학자 양성공간으로 탈바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병권)은 제51회 과학의 날을 맞아 연구자, 시민, 학생 등이 참여한 가운데 4월 20일(금)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KIST 본원에서 2018년 과학의 날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미래 과학꿈나무, 외국인과학자, 지역주민, 시민 등 400여명이 참가했다.

KIST 본원 잔디마당에서 개최된 ‘과학상상나눔 페스티벌’에서는 미래 과학꿈나무인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상상그리기 대회, 과학실험체험 등 다양한 참여형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또한 어린이뿐 아니라 학부모 대상 프로그램인 ‘자녀 이공계 진로상담’, ‘KIST 역사관 투어’까지 진행하여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였다.

KIST 인근의 국내 최초 지하철 과학관인 상월곡역 ‘사이언스 스테이션’에서는 지역주민과 지하철이용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과학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특히 지하철 이용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학기술에 바란다’ 앙케이트를 실시하여, ‘귀갓길 안전 지능형 CCTV’, ‘친환경 폐비닐 처리’ 등 총 5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시민들로부터 제안되었다. 이외에도 과학 스토리텔링 공연, 과학교구 제작체험 등 시민 눈높이에 맞춘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을 운영하였다.


아울러 KIST에서 활발히 연구 활동 중인 외국인과학자들을 대상으로 KIST 설립 과정 등을 포함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사 소개와 함께 연구현장에서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Round Table’이 KIST 역사관에서 개최되었다. 특히 초대 KIST원장과 최장수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한 故 송곡(松谷) 최형섭 박사의 업적을 소개하고, 생전에 그가 남긴 연구자의 덕목에 대하여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참석한 외국인과학자들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 연구현장의 모습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하였고, 자국과의 연구협력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희망들도 전달했다.

 

KIST 이병권 원장은 “과학의 날을 맞아 우리 국민 여러분들께서 과학기술에 기대하는 바에 대하여 보다 더 잘 알게 되었으며, 이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앞으로 KIST는 미래 영역을 개척하는 본연의 임무는 물론,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생활 속 어려움에 해답을 내놓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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