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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Talk/사내직원기자

[창의포럼] 나영석PD (박병수 기자)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스콜라 철학자 빅톨 위고

 

나영석 PD의 최근 예능프로그램인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를 보면 정주와 여행이란 서로 다른 설정이지만 프로그램 구성은 출연자의 일상을 익숙함과 낯섦을 절묘하게 조화시킨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고, 그것으로부터 사유를 촉발시키는 철학자를 연상시키는 대세 예능 PD가 연구자와의 만남을 위해 KIST를 찾았다.

 

나영석에게 예능이란

 

참신한 예능프로그램을 많이 만든 나영석 PD에겐 남다른 창의적 사고방식 혹은 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모든 것을 일로 해결하는 일 중독자였다. 일이 잘될 때 성취감을 느끼고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그는  예능프로그램 만드는 이유를 시청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꿈도 세상에서 효용가치가 있을 때 꿈이 되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시청자가 좋아하는 교집합을 찾아서 예능프로그램을 만들 때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은 대중이 사랑해 주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고, 대중이 좋아하는 것만 추구하면 나의 즐거움이 존재하지 않기에 괴롭다고 했다. 대중들에게 나영석 PD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부터이다. 나영석 PD도 ‘1박 2일’ 이전에 본인이 만든 프로그램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주제의식도 없이 만들었다고 했다.(물론 그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만을 쫓다가 진정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몰라서 당시는 나영석표 예능을 찾기 위해 탐구하던 시기였다고 했다.

 

관습에서 탈피하는 나영석표 예능의 출발

 

나영석 PD가 처음 구상했던 ‘1박 2일’은 이전 예능프로와 다르지 않았다. 출연자들을 경쟁시키고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통상의 개념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복불북’이란 게임으로 승부를 실력이 아닌 운에 맡기는 것이었다. 이런 ‘1박 2일’이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으로 진화한 이유는 관습으로부터의 탈피였다. 출연자들이 목적지로 이동하는 장면의 촬영을 위해 모든 차량에 고정 카메라를 달았다. 전체 프로그램 중 3분가량을 사용하려고 후배에게 편집을 시켰더니 후배가 10분으로 편집을 해왔다. 연출자가 없는 공간에서 출연자들끼리의 나이트 이야기, 피디 뒷담화 등 정말 재미있고 진솔한 이야기가 많았다. 자극적이지 않은 소소한 일상이야기는 예능프로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관습대로 편집했더라면 ‘1박 2일’은 그저 그런 예능프로로 막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후배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서 예능프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자신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찬했다.

 

예측된 50%, 예측되지 않은 50%

 

‘1박 2일’ 이후 나영석 PD의 예능은 또 진화한다. ‘1박 2일’ 이전이 방황의 시기였다면 그 이후는 연구주제를 발견한 시기라고 했다. 게임이나 경쟁 등 관습적 요소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캐릭터, 인물끼리의 소통, 관계에서 만들어 지는 이야기 그런 소소한 일상을 담은 새로운 예능의 가능성을 ‘1박 2일’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꽃보다 할배’, ‘삼시 세끼’다. 1박 2일에서 획득한 평생의 연구주제인 리얼리티 예능은 무엇인가를 소거해가면서 아날로그적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 리얼리티 예능에도 물론 나영석 PD만의 준비된 치밀한 장치가 있다. 냄비도 없이 2개만 주어진 솥으로 요리하면서 만들어지는 실수들, 비빔밥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 이름을 가진 동물들 이 모두가 거대한 악(?)의 기획자인 나영석 PD가 만들어낸 드라마라고 했다. 전지전능한 악의 기획자인 나영석 PD라고 해도 예측한대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경우는 50%에 불과하다고 했다. 리얼리티 쇼는 예측되지 않은 돌발상황을 현장에 맞게 진행되도록 그대로 두는 것이 해답이라고 했다. 그런 대표적 경우가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스타일로 요리를 못할 것 같아서 섭외했는데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은 차승원의 경우라고 했다.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과학의 많은 법칙도 소소한 일상을 낯설게 관찰하다가 발견된 것이다. 쳇바퀴처럼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도 실상은 새로움의 연속이다. 주변을 낯설게 하고, 생각하면서 질문을 던져보자. 나영석표 예능에 버금가는 우수한 연구성과가 그 안에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