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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나는 걸어다니는 책…저를 대출하세요"

 

 

 

 

 

김찬수 연구원, 휴먼라이브러리로 '사람책' 되다
"처음엔 부담됐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뜻 깊은 시간 가져"

 

휴먼라이브러리.

 

사람이 책이 되는 도서관. 휴먼 라이브러리에 소장된 '사람 책'은 독자가 된 이웃과 둘러 앉아 자신의 경험과 지식, 생각을 나누며 감동과 즐거움, 지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사람책을 읽는다?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신개념 문화운동이 세계 각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리빙라이브러리( Living Library )라고도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덴마크 출신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2000년 열린 한 뮤직 페스티벌에서 창안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KIST에서도 계산과학센터의 김찬수 연구원이 책이 되어 대출됐다. 아주머니, 고등학생, 초등학생 등 평소에 KIST를 쉽사리 만날 수 없었던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들어보자.

 

 

사람책 부담됐지만…"동시간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알고 싶기에"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부담스러워서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라는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죠."

 

평소에 책을 좋아해 주말이나 쉬는 날에 자주 도서관을 찾는다는 김찬수 연구원. 그의 단골 도서관은 KIST 근교에 위치한 성북도서관이다. KIST 근처라 쉽게 찾을 수 있고 월곡역에 무인대출기가 있어서 대출·반납이 편했다. 도서관 관계자도 주소를 KIST로 수정해 대출권수를 늘려주기도 했다.

 

 


"성북구에 살지 않아 대출권수가 적었는데 KIST가 주소가 되면서 늘어났어요. 너무 감사해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말씀 드렸죠. 그런데 어느 날 도서관장님께서 절 부르시더니 '우리가 기획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좀 도와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게 바로 '휴먼 라이브러리'었어요."

 

지난 7월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 받은 그는 너무 좋은 내용이지만 '내가 과연 나가도 되는 것인가. 부족하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런 모습을 본 도서관장이 그에게 건네준 책은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였다.

 

이 책은 16명의 사람책과 만난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엮은 것으로 소방관, 장학사, 직장인, 작가 뿐 아니라 싱글맘, 게이, 트렌스젠터, 정신질환자, 60세에 시인이 된 할머니 등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그들은 책을 통해 성공한 삶을 논하는 반면, 끝임 없이 실패한 삶을 꾸밈없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게이아저씨가 왜 이런 삶을 선택했는지, 또 순종적인 삶을 살던 할머니가 갑자기 여행을 다니면서 시인이 된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을 재밌고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맘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한번에 찾지 못했지만 계속된 고민과 실패 속에서도 결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잘 살고 있다는, 실패한 인생도 중심이 있었다는 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그도 전자계산학을 공부했지만, 경제와 사회, 시 등에 관심을 갖고 경제학과 문학도 공부하면서 계속 미래를 고민해왔다. 통계물리․경제물리 등을 천착하던 어느 날  "많은 것을 해 보는 것도 좋지만 T자형 같이 중심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겠냐"는 지인의 조언에 계산과학과 경제학 등이 모두 필요한 거시경제 계산과학 연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책뿐만 아니라 그는 아버지처럼 모시는 시인에게 "그 사람들은 네가 잘나서 너의 이야기를 들으러 오려는 것이 아니다. 너와 동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야"라는 이야길 들었고, 크게 공감해 사람책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용기를 내 성북도서관에 연락했다.

 

김찬수 연구원 "'나처럼 실패한 사람도 잘 살고 있다. 중심을 갖고 인생을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도서관 관계자 "그런 내용을 들려주시길 원했습니다"

 

이에 그는 「좌충우돌 삶의 공부」라는 주제를 정해 사람책이 되기로 결심했다.

 

 

초등학생부터 전업주부까지…함께 꿈을 이야기하다

 

 

2012년 8월 18일 토요일. 김찬수 연구원을 비롯 바리스타, 화가, 미술치료사, 컴퓨터프로그래머, 경찰관 등 12명 사람책이 휴먼라이브러리를 위해 성북도서관에 모였다. 책 대출은 오전, 오후 2번으로 나뉘었으며 도서관 안의 커피숍의 각 테이블에서 이루어졌다. 그를 대출하러 온 첫 대출자는 3명의 여자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글을 쓰는 것을 좋아는 하지만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더군요. 마음이 아팠어요. 더 큰 꿈을 가지라고 조언했습니다. 물론 공무원이 나쁜건 아닙니다. 하지만 막연하게 '꿈 =공무원'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해결하고, 사람들을 돕고 싶기 때문에 공무원이 돼야겠다는 꿈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직업은 삶의 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오후에는 아주머니와 초등학생 등 12명의 대출자가 그를 찾았다. 아주머니들은 자신의 자녀이야기를 하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고, 김 연구원 또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이야기 했다. 부모님 없이 혼자 온 아이도 있었다. 어떻게 여길 왔느냐고 물으니 "판사가 되고 싶은데 법관이 되려면 이것저것 많이 알아야 해서 찾아왔다"고 당차게 이야기했다고.

 

부담을 안고 시작한 사람책이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대출시간은 정말 짧았다. 그는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꼭 참여하고 싶다.

 

"저의 이야기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어요. 사람책이 될 기회를 주신 것에 정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성북 도서관에서 선물을 받았다. 조그마한 글귀가 써져있는 스피커 모양의 조각이다.

 

'당신이 나눠주신 '한권'의 삶 귀하게 간직하겠습니다. 함께한 시간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