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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KIST 연구원에서 하유미팩 만들기까지…좌충우돌 인생기

 

 

 

 

유현오 사장, 고분자 하이브리드센터에 4년간 연구 활동
KIST에서 '공부·연애·창업'을 배우다

 


날씨가 쌀쌀·건조해지는 가을에는 피부의 유·수분 밸런스가 흐트러진다. 때문에 환절기엔 수분 가득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마스크 팩이 인기다.

 

 

홈쇼핑과 인터넷 등에서 여심을 사로잡은 수용성 하이드로갤 마스크, 일명 '하유미 팩'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팩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주는 장영실상과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에서 주는 세계일류상품, 한국고분자학회 벤처기술상 등을 휩쓸었다. 그리고 팩을 개발한 제닉의 유현오 사장은 지난 10월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으로 선정되는 등 주목받는 1인이다.

 

그런데 이 팩을 만든 유현오 사장이 KIST에 몸담았던 출연연 출신이라고?! KIST의 연구생활 노하우로 기업을 만들기까지. 유현오 사장을 만나봤다.

 

 

KIST에서 공부·연애·창업까지

 

 

"96년 12월이었을 겁니다. KIST에 대학원생으로 들어갔었죠. 기숙사에서 살았고 거기서 연애해서 결혼까지 했네요.(웃음) KIST에서 연구했던 그때가 제게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선한 미소와 소탈함을 지닌 덕분인지 유현오 사장은 첫 인상부터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 최근 중국까지 사업을 확장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KIST'라는 말에 매우 반가워하던 그. KIST 연구원 생활을 이야기 해달라고 하자 무언가 떠올리는 듯싶더니 그 시절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KIST의 고분자 하이브리드센터에 4년간 몸을 담은 유 사장은 "L41885실에서 홍승만 박사님과 같이 연구를 했었다. 연구실 방 번호가 아직도 생각난다"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그가 KIST와 인연을 맺게 된 이유는 'KIST 학연 석박사과정(연구는 KIST에서, 학점은 학교에서 받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저희 학교와 KIST가 학연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KIST 박사님께서 제 담당 교수님에게 '군대 다녀온 학생 한명 지원해 달라'고 요청 하셨죠. 담당 교수님 밑에 저를 포함 3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저만 군대를 다녀와서 제가 KIST에 가게 됐습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연구소 생활이었지만 2년간 기숙사에서 지내며 그 누구보다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는 "2인 1실로 침대가 두개 놓여있었고 1달에 5~6만원정도로 저렴했다"며 "당시 여자친구가 근처 대학을 다녀서 만나게 됐는데 연구소생활이 바쁘다보니 KIST근처에서 데이트도 많이 했다. 2년 반을 만나 결혼했고 지금도 집에 KIST 데이트 사진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센터에서는 주로 고분자 물성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했다. 기업들과 공동연구도 많이 진행했고, 함께 연구한 성과가 상업화 되고 특허가 되는 것이 매우 뿌듯했다. 지금의 하이드로갤 마스크도 그렇다. KIST 연구원 시절 천연고분자를 이용해 개발한 신개념 바이오매트릭스(Bio-Matrix)가 근간이 돼 만들어졌다.

 

그는 "KIST에서의 연구는 하이드로갤 마스크와는 조금 다르지만 큰 그림은 같다고 볼 수 있다"며 "연구소에서 기업 공동연구를 많이 했었다. 그때 기업이 어떻게 일을 하고 연구에 접근해야하는가를 배웠고 지금 사업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낭여행 아이디어로 마스크 팩 만들었지만…50억 빚더미 노숙자 될 뻔"

 

 

"학창시절 호주배낭여행 중 여행경비가 떨어져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잠시 일했습니다. 뙤약볕에서 작업을 하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군요. 그때 현지인들이 냉장고에 넣어둔 물에 적신 수건을 얼굴에 덮어줬고, 이를 화장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유현오 사장은 원래 상처 치료하는 약을 개발해 산업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약대 경험이 필요했던터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때 떠오른 것이 호주배낭여행 중 현지인의 노하우였다.

 

"대학원과 KIST를 다니지 않았다면, 배낭가방 경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모든 경험이 융합돼 지금의 '수용성 하이드로갤 마스크'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탈 없이 승승장구 한 듯한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IMF가 터져 취업난을 겪었고, 창업 후 과한 사업 확장에 노숙자가 될 뻔 한 것.

 

"IMF로 인해 취업이 안됐었죠. 그래서 위촉연구원으로 KIST에서 생활했습니다. 대학원까지 나와서 취업을 못하니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연구는 열심히 했습니다. 박사님들이 시키는 일을 그냥 하는게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습관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됐고 운 좋게 외국계 회사에 스카웃 됐어요."

 

고생한 끝에 된 취업인지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지만 창업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물론 회사사장도 그런 그를 잘 알고 있었기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2001년 9월 작은 사무실 하나를 얻는다.

 

"중소기업 사장은 슈퍼맨이라는 말이 있죠. 초창기엔 연구개발에서부터 시장조사와 납품까지 혼자 다 했어요. 그러나 중소기업에게 제품을 판매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외국 시장을 보게 됐습니다."

 

 

홍콩, 산티아고, 두바이를 시작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그는 미국 시장을 뚫기로 마음먹었다. 미국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더 많은 나라에 제품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2년 중소기업청의 미국 수출사절단에 포함돼 미국에 도착한 그는 미국 전역을 누비며 제품을 알렸다. 바이어들은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지만 끈질긴 설명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물꼬를 시작으로 귀국 후에도 끊임없이 협상했고 그 결과 2003년 7월 미국 대형 소매 체인인 타깃, 에카드와 1000만 달러어치의 납품계약을 맺었다. 이후 영국의 대표적인 잡화 소매점인 부츠(Boots)에서도 판매를 시작, 현재 제닉은 일본, 스위스, 말레이시아 등 3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 중이다.

 

서른 중반, 그에게 또 한번 시련이 찾아왔다. 과도한 회사 확장으로 경영난을 겪은 것.

"회사가 탈 없이 돌아갈 때 억대의 외제차도 끌고 다녔고 '내가 잘나서 사업도 잘 되는거야'라는 자만감ㅇ로 살았습니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야겠다는 욕심이 들었고 약 80여 가지의 화장품을 개발해 유명 스포츠선수를 앞세워 광고까지 찍었죠. 그러다보니 모아둔 돈은 바닥이 났고 보증이 50억을 넘었죠."

 

"일이 잘되니 교만했습니다. 실패를 맛보면서 나 혼자 회사를 이끈 것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깨달았고 겸손해지기로 했습니다. 그 이후로 술과 인맥으로 이끌던 회사 분위기를 신뢰로 바꿨어요."

 

 

실패의 쓴 맛을 본 후 그는 '겸손'을 경영 1원칙으로 삼았다. 그동안 술로 영업하고 인맥을 쌓아온 문화도 바꿨다. 그러면서 다시 회사는 활기를 찾았고 매출 10배를 달성, 코스닥상장까지 성공하는 등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출연연 출신 창업하고 싶다면?…"내가 전문가라는 생각 내려놔야"

 

 

출연연 출신 연구원들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서지만 성공보다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보니 그냥 연구소에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 유 사장에게 처음부터 창업을 꿈꿔왔기에 조금 다를 수 있으나 연구소 사람들이 창업을 할 때 간과해선 안 되는 점을 알려달라 묻자 "내가 전문가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창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내가 이 분야에선 전문가니까 잘 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장은 다르다"며 "교만이 제일 무서운 적이다. 사업을 하려면 최고라는 생각을 내려놔야한다. 또 내 아이디어가 독특하니까 창업한다기보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한다"고 말했다.

 

또 KIST에서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그는 용기의 말도 잊지 않았다.

"KIST에서 공부하던 시절 주변 박사님들은 최고의 학벌을 갖고 있었다. 내가 갖지 못한 스펙 때문에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하지 말아라. 시대는 변화하고 연구개발도 계속 변한다. 스펙도 중요하나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시각을 많이 갖길 바란다."


 

Q. KIST 위촉연구원으로 지냈다고 들었습니다.

 

A. KIST 학연 박사과정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원생 때 들어가게 됐습니다. 어느 날 KIST 박사님께서 제 담당 교수님에게 '군대 다녀온 학생 한명 지원해 달라'고 요청 하셨죠. 담당 교수님 밑에 저를 포함 3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저만 군대를 다녀와서 제가 KIST에 가게 됐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KIST에 남았고 그 때 위촉연구원으로 지냈습니다.

 

Q. KIST에서의 추억 무엇이 있으신가요?

 

A. 기숙사에서 2년간 생활을 했는데 2일 1실로 침대가 두개 있었어요. 기숙사 친구들이랑 테니스 코트에서 운동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밤에 연구하다 배고프면 경희대 근처에 나가 떡볶이도 사먹었죠. 그리고 여자친구가 KIST 근처 대학을 다녀서 만나기 시작했어요. 2년 반 정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KIST에서 데이트를 많이 했는데 집에 당시 사진들도 있어요.  제겐 그때가 참 아름다웠던 시절이죠.

 

Q. KIST에서 연구생활이 창업하는데 도움 됐나요?

 

A. 완전 같다고는 할 수없지만 하이드로갤이 고분자 물성으로 큰 그림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박사님들이 일을 시키시면 왜 해야 하는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사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그리고 KIST에서 기업과 공동연구도 많이 했는데, 연구성과가 산업화되고 특허도 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 기업에서는 어떤 식으로 연구를 해야 하는지 배운 것 같아요.

 

Q. 아직도 KIST분들과 연락을 하시나요?

 

A. 그럼요. 당시 담당 박사님들께 스승의 날에는 항상 꽃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Q. KIST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제가 있을 당시 KIST에는 최고의 학벌들이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갖지 못한 스팩을 가진 분들을 보면서 혼자 큰 벽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니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공부로 성공하고 싶다면 꼭 필요하겠지만 그 길 말고도 다른 길이 많다는 것을 사회에 나와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 신입사원 면접에서 절대 학벌은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그런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시대는 계속 바뀌고 연구개발도 마찬가지로 계속 변화합니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그런 시각을 많이 연습하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수용성 하이드로갤 마스크는 어떻게 개발하신건가요?

 

A.학창시절 호주배낭여행 중 여행경비가 떨어져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잠시 일했습니다. 뙤약볕에서 작업을 하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군요. 그때 현지인들이 냉장고에 넣어둔 물에 적신 수건을 얼굴에 덮어줬고, 이를 화장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Q. 사업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A. 회사가 탈 없이 돌아갈 때 억대의 외제차도 끌고 다녔고 '내가 잘나서 사업도 잘 되는거야'라는 자만감으로 살았습니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야겠다는 욕심이 들었고 약 80여 가지의 화장품을 개발해 유명 스포츠선수를 앞세워 광고까지 찍었죠. 그러다보니 모아둔 돈은 바닥이 났고 보증이 50억을 넘었습니다. 노숙자가 될 뻔했어요. 일이 잘되니 교만했습니다. 실패를 맛보면서 나 혼자 회사를 이끈 것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깨달았고 겸손해지기로 했습니다. 그 이후로 술과 인맥으로 이끌던 회사 분위기를 신뢰로 바꿨어요.

 

Q. 기업추구 가치를 '건강'과 '문화로 꼽으신다 들었습니다.

 

A. 2010년 제닉의 자격이라는 사내동호회를 만들어 전 직원이 바이올린, 클래식 기타, 플루트 가운데 한 가지 악기를 선택해 매주 한 차례 악기수업을 받습니다. 저는 최근 플루트를 배우고 있어요. 송년회에는 우리끼리 음악연주회도 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 8월에는 제닉 라이딩 동호회를 결정해 제닉 로고를 새긴 옷을 맞춰 입은 뒤 제닉 깃발을 자전거에 달고 경기 양평의 양수역에서 출발해 충북 충주댐까지 126km를 완주했습니다. 산행도 하고요. 이런 활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