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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KIST

A4 1장짜리 연구내용 '세계최초 연구 성과' 된 사연?

 

 

 

송진동·장준연 박사팀 '다기능 스핀논리소자' 개발…스핀트랜지스터 온도 한계 극복
한 칩에 다양한 기능 집적 가능, 크기·소비전력 등 최소화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가전제품을 분해해보면 작은 칩들이 복잡하게 나열돼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칩들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제품의 크기와 소비전력을 줄이면서도 처리속도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 같은 개념이 최근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연구진들에 의해 현실화됐다. 송진동 광전융합시스템연구단 박사 ·장준연 스핀융합연구센터 박사 연구팀과 이긍원·홍진기 고려대 디스플레이 반도체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전자의 자기적 특성을 활용해 상온에서 작동하는 다기능 스핀논리소자 개발에 성공한 것. 이 소자를 활용하면 영상과 음악, 인터넷, 정보저장 등에 필요했던 각각의 소자를 하나로 합칠 수 있다.

 

 

전기적 동작이 가능한 스핀소자를 실제로 구현한 데 이어 상온에서 동작하는 스핀논리소자를 개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송진동 광전융합시스템연구단 박사는 "FPGA(field-programmable gate array)와 같이 자기 스스로를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회로가 있긴 하나 상용화된 회로는 미리세컨드단위로 동작하여 실시간으로 프로그램이 되지 않으며, 실시간 동작이 가능한 나노세컨드단위로 동작하는 회로는 극저온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상용화하기 어려웠다"며 "우리가 개발한 소자는 상온에서 나노세컨드 단위로 작동해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향후 FPGA시장의 정서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연구 성과는 과학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네이처에 온라인판 1월 31일·오프라인 2월 7일 게재됐으며, '주목할만한 연구(featured paper)' 로도 선정돼 관련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편의에 따라 스스로 변화하는 카멜레온 프로세서 핵심…'인듐안티모니 반도체'

 

 

소비자들은 스마트폰과 휴대용 전자기기의 발전과 함께 더 가볍고, 더 작고 에너지를 덜 소모하는 전자제품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도 스핀을 이용한 전자소자를 차세대 반도체 소자 핵심기술로 인식하고 많은 연구를 진행 중이다.

 

특히 스핀논리소자는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소멸되지 않고, 소비전력은 감소시키며 컴퓨터 연산효율을 증가시키는 자기적 특성을 이용하고 있어 효율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낮은 신호 대 잡음비, 집적도의 한계 및 낮은 작동 온도 등으로 인해 응용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인식돼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외부 자기장에 따라 전기저항이 매우 민감하게 변화하는 '인듐안티모니 반도체'에 주목했다. 송진동 박사에 따르면 인듐안티모니는 상온·저온 등에서 전자의 이동도가 높고, 유효질량이 작아 낮은 인가전압에서도 과잉 전자가 쉽게 생성되며, 외부 자기장의 방향에 따라 전기 전도도가 크게 변화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송 박사는 "2004년 홍진기 고려대 교수팀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며 "인듐안티모니 반도체가 자기장으로 제어될 수 있도록 안듐안티모니 층의 구조나 높이 등을 맞추는 실험을 진행, 2007년 스핀소자로서의 가능성을 발견 하게됐다"고 말했다.

 

분자빔박막성장장치(MBE)를 이용, 원자층 수준으로 조성과 표면상태를 정밀 조절해 고품질의 인듐안티모니 전자-정공 접합 반도체를 제작한 연구팀은 기본적인 논리연산인 AND, OR, NAND, NOR 연산기능을 상온에서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또 인가전압 없이 자기장으로 on/off 조절이 가능함을 실험을 통해 증명해냈다.

 

연구진은 자기장으로 스위치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자의 에너지 소비를 크게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AND, OR, NAND, NOR 연산기능을 자유자재로 바꿈으로써 작동 또는 작동하지 않는 소자로 전환할 수 있어 칩 하나로 다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컴퓨터를 분해했을 때 보이는 다양한 칩들의 역할을 하나의 칩에서 가능하게 해 전자 제품의 크기와 소비전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메모리 및 논리 소자를 한 칩에 집적할 수 있어 컴퓨터를 부팅과정 없이 바로 실행할 수 있고 처리속도 또한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가변형 다기능 특성으로 인해 연구자들은 이 같은 소자를 주변환경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피부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카멜레온에 빗대어 카멜레온 프로세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변형 논리소자는 인공위성과 같은 원격조정이 필수적인 장치에도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네이처 최신 연구소식지에서 인터뷰한 마크존슨 미국 해군연구소 박사에 따르면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의 칩 일부가 고장나 기능을 못하면 칩의 다른 부분에 재 프로그램 해서 그 기능을 대신 하게 함으로써 지구 통제실에서 인공위성의 회로를 수리 할 수 있다.

 

 

3년 연구결과 A4지 달랑 1장…믿어주지 않았다면 성과 없었다

 

"초기 3년간 진행 한 연구를 보고서로 작성하라고 하면 A4지에 그래프 4개뿐입니다. 이걸 참아주지 않았다면 이 같은 성과는 나오지 않았겠지요"(송진동 박사)

 

"적지 않은 시간동안 한 우물 팔 수 있게 도와주신 KIST 에 감사드리죠. 한동안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아 저희도 심적 부담이 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전격지원과 함께 끈기 있게 기다려주신 경영진분들 덕분에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장준연 박사)

 

 

연구팀이 이 같은 성과를 내기까지는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초기단계에는 연구성과가 거의 나오지 않아 심적인 부담이 컸다.

 

장준연 박사는 "장비구축을 시작으로 다른 연구팀에 비해 지원을 많이 받은 편인데 5년이 지나도 성과가 나오지 않아 연구자들 스스로도 부담이 컸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들이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믿어줬고 그 결과 2009년 지금의 연구 성과를 있게 한 제 1의 성과가 사이언스지에 게재됐다"고 말했다.

 

실제 연구진들은 이번 연구성과에 앞서 2009년 기존에 이론으로만 제시됐던 전자의 스핀을 이용한 '스핀트랜지스터 소자'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이 연구 성과가 현 성과의 모태가 됐다는 것이 홍진기 교수의 설명이다.

 

송 박사 역시 연구 초기단계에서 얻은 성과라고는 A4지 1장분량의 그래프 4개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IST의 연구자들과 경영진들은 조금 더 지켜보자며 송 박사를 위로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는 세계최초 다기능 스핀논리소자 개발에 성공하는 쾌거를 얻었다.

 

송 박사는 "이번 연구로 저온에서만 작동하는 스핀소자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메모리 소자에 치우쳐 있는 한국 반도체 산업을 논리소자로 확대할 수 있어 실리콘 기반 반도체에 이어 차세대 반도체 산업에서도 한국이 세계적 기술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연구진들은 개발한 소자의 상용화를 위해 소형화하는 과제를 수행할 계획이다. 장준연 박사는 "우리가 개발한 소자가 얼마만큼 소형화가 가능한지 계속적으로 연구할 것"이라며 "이 외에도 개발 도중 발견한 문제점 해결도 같이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